그와의 결혼이 헛된 망상이었을까

그와의 결혼이 헛된 망상이었을까

Oleh:  라오  On going
Bahasa: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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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송재이가 헛된 망상에 빠졌다고 한다. 자유를 만끽하고 싶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영원한 결혼생활을 꿈꾼다.제자리에 서서 다리가 저릴 때까지 기다리다가 결국 포기하고 나서야 바깥세상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됐다. 하이힐이 불편해 벗어던지고 맨발에 달렸더니 저 멀리 달려가고 나서야 설영준이 미친 듯이 쫓아왔다.그는 숨을 헐떡이며 눈시울을 붉혔다.“송재이,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 게 처음이야. 한 번만 더 기회를 줘.”송재이는 유감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지금 나 좋다는 남자가 너무 많아서 영준 씨는 줄 서서 기다려줘야겠어.”[억지로 강요하는 게 어떤 느낌일 것 같아? 그건 겪어봐야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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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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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 Su Kim
신작 몇편 뜨더니 이틀새에 요거하나 남고 다 사라졌네요
2024-05-06 14:20:49
2
30 Bab
제1화 갖고 노는 여자, 미련 따위 없어
남자들은 28살이 넘으면 다들 그쪽으로 욕구가 강렬한 걸까?오늘 밤만 해도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송재이는 더 이상 감당이 안 됐다.하지만 그녀는 누구보다 설영준을 잘 알기에 가느다란 손으로 그의 척추를 천천히 쓸어내렸다. 서툰 솜씨로 더듬거리며 끝내 그의 성감대를 찾았고 설영준의 무거운 신음과 함께 뜨거웠던 섹스도 마침내 끝났다.“나 다음 달이면 25살이야.”송재이는 이불을 걷고 침대에서 일어나 바닥에 널브러진 속옷과 원피스를 주워서 하나씩 챙겨입기 시작했다. 뒤에 달린 지퍼가 손이 닿지 않아 고개 돌려 침대 머리맡에 기댄 설영준을 힐긋 쳐다봤는데 그는 한창 담배에 불을 지피고 뽀얀 연기를 내뿜으며 그녀와 시선을 마주쳤다.송재이는 우아한 자태로 자리에 앉아 긴 머리를 쓸어넘기고 새하얀 등을 훤히 드러냈다.설영준의 눈빛이 그녀의 몸에서 맴돌았다.잠시 후 그나마 신사답게 담배를 지그시 물고 몸을 일으키며 제법 자연스럽게 그녀의 지퍼를 올려주었다.“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공기 속에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나도 이젠 어린 나이가 아니야. 나만의 가정을 차리고 싶어.”그녀가 답했다.설영준은 담뱃재를 톡톡 털었다.“우리가 처음 섹스할 때 내가 했던 말을 까맣게 잊었나 봐?”“안 잊었어. 나랑 결혼 안 한다고 했잖아.”송재이는 치맛자락을 꽉 잡고는 애써 담담한 척 웃어 보였다.“사실 이 3년 동안 너에게 무척 고마웠어. 내가 가장 힘들 때 나 대신 중병에 걸린 우리 엄마를 위해 신장을 찾아주고 병원비도 대줬잖아. 비록 살려내진 못했지만...”여기까지 말한 그녀는 목소리가 슬픔에 잠겼다.6개월 전, 그녀는 엄마의 장례식을 마치면서 설영준과 이별할 결심을 했지만 마음속에 줄곧 일말의 미련이 남아 있었다. 그러다가 어제 그가 조건이 비슷한 집안의 주현아 씨와 함께 반지를 고르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완전히 단념했다.애초에 송재이가 설영준과의 이런 관계를 시작하기로 했을 때 두 사람 다 솔로였다. 설영준은 의젓했고 그녀는 돈이 시급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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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빨간 줄 두 개!
미행은 절대 아니다. 송재이는 자신이 그럴만한 매력이 없다는 걸 잘 아니까.설영준을 본 순간 그녀는 왜 가슴이 찔리는지 이해되지 않았다.일정한 거리를 사이에 두고 그녀는 설영준의 눈에 담긴 웃을 듯 말 듯한 기운을 바로 알아챘고 왠지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났다.“아는 사이에요?”맞은편에 앉은 지민건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뒤쪽을 바라봤다.하지만 그는 근시이고 오늘 급하게 나오느라 깜빡하고 렌즈를 착용하지 못해서 눈앞이 희미할 뿐 아무것도 안 보였다.송재이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전화를 끊었다.“아니요, 몰라요.”곧이어 저번에 쥬얼리샵에서 본 주현아 씨가 나타났다.이제 막 화장실을 다녀온 모양인지 하이힐을 신고 새하얀 롱 원피스를 하늘거리며 설영준의 옆으로 걸어갔다.설영준도 송재이한테서 시선을 거두고는 맞은편에 앉은 주현아만 쳐다볼 뿐 더는 곁눈질하지 않았다.방금 마신 커피가 입맛에 안 맞았던지 혹은 또 설영준을 마주쳐서 너무 긴장했던 탓인지 별안간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지민건은 그녀의 안색이 안 좋은 걸 보더니 집으로 바래다주겠다고 했다.마침 그녀도 같은 생각인지라 가방을 챙기고 그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가게 문 앞까지 가려면 설영준과 주현아를 스쳐 지나야 하니 그녀는 무심코 두 사람을 힐긋 쳐다봤는데 주현아가 한창 수줍은 표정으로 테이블 위에 놓인 설영준의 손가락을 매만졌다.설영준도 거침없이 바로 주현아의 손을 꼭 잡았다....돌아가는 길에서 송재이는 유은정의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싱글벙글 웃으며 소개팅을 잘했냐고 물었다.“어때 재이야? 마음에 들어?”지민건은 옆에서 운전에만 집중했다.송재이는 그를 힐긋 쳐다보다가 입을 막고 솔직하게 대답했다.“괜찮은 분 같아. 성실하고 착해 보여.”적어도 처음 봤을 때 도망치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니까. 어차피 그녀도 결혼할 생각이 있었던지라 인연이 닿으면 지민건과 더 가깝게 지내볼 의향도 있었다.여기서 제일 뿌듯한 건 당연히 유은정이다. 그녀는 먼저 설영준의 험담을 잔뜩 늘려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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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대표님 즐겁게 해드려
그 생각이 든 순간 송재이는 온몸에 소름이 쫙 돋고 벼락을 맞은 것만 같았다.지금 이 추측을 입증하기 위해 송재이는 당일 밤에 바로 약국에 가서 임테기를 샀다.빨간 줄 두 줄이라니!그녀는 어안이 벙벙해졌다.몇 번이고 더 테스트했지만 결과는 똑같았다.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이제 막 힘겹게 설영준을 단념하고 그와의 관계에 마침표를 찍었는데 왜 또 이런 치명타를 주는 걸까?임신한 몸으로 남자의 집까지 찾아가 결혼을 다그치는 파격적인 스토리는 많이 들어봤지만 그녀는 늘 그런 방식이 존엄도 없고 멍청해 보였다.게다가 그녀가 마주해야 하는 건 설씨 일가와 같은 재벌 가문이다.막강한 권력으로 서민의 삶을 처참하게 짓밟는 건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다.만약 설영준이 그녀가 임신한 걸 알면 기뻐할까?어휴, 당연히 아니겠지.그와 함께한 3년 동안 이 남자가 처음부터 섹스와 결혼을 철저하게 갈라놓는 인간이란 걸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안다.설영준의 아내가 될 사람은 오직 그와 조건이 대등한 정략결혼 상대일 것이다. 주현아와 같은 재벌가 따님이 제격이다.송재이처럼 바람이 불면 휙 쓰러지는 하찮은 존재는 가당치도 않다.그녀는 설영준에게 끌려가 낙태를 당하고 싶지 않았다. 이 세상에 그녀의 가족은 단 한 명도 없다.배 속에 아이는 유일한 핏줄이니 그녀는 더 이상 잃고 싶지 않았다....설도영의 과외를 관둔 송재이는 친한 선배에게 또 다른 학생들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선배는 아주 열성적으로 곧장 그녀에게 학생을 찾아줬다.이런 1대1 레슨은 시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아 낮에는 밴드에 가서 공연 리허설을 하고 밤에는 또 아르바이트를 한 건 할 수 있다.그녀는 배를 가볍게 어루만졌다. 어쩌면 요 녀석을 위해서라도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더 열심히 살아가야 할 듯싶다.지민건은 송재이가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구했다고 하니 축하하는 의미로 밥 한 끼 사주겠다고 했다.송재이는 수업을 마친 후에야 그 문자를 확인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알겠다며 단답형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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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정략결혼일 뿐 신경 안 써
서로 눈이 마주친 순간, 송재이는 짜증이 확 밀려와 고개를 돌리고 거들떠보지 않았다.이에 설영준은 아무렇지 않은 듯 휴대폰을 거둬들이고는 거만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타!”전 애인을 마주할 때 누군들 화려하게 빛나고 싶지 않을까?하지만 오늘 밤 룸에서 그와 마주친 광경은 더할 나위 없이 초라하고 난감했다!송재이는 입술을 꼭 깨물고 휴대폰 앱을 열어서 콜택시를 부르려고 했는데 설영준이 차에서 내려와 긴 다리를 내뻗으며 그녀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그의 손에 검은색 큰 우산이 쥐어져 있었다.계단 위에 서 있는 송재이는 그를 내려다보고 있지만 남자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압적인 포스에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이때 설영준이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말 안 들어?”거만하기 짝이 없고 뭐든 당연하다는 듯한 이 말투, 그녀는 순간 두 사람이 이별하지 않은 줄로 착각할 뻔했다.다만 송재이는 곧바로 사색을 가다듬고 말했다.“설영준 대표님, 고맙지만 나 혼자 할게...”“새 남친 별로던데.”설영준의 감미로운 목소리에 야유의 뜻이 살짝 담겨 있었다.그는 송재이의 다른 한 손을 잡아당겨 그녀를 더 가까이 다가오게 했지만 송재이는 여전히 머리를 높이 들었다.“나랑 헤어지고 결혼한다더니 고작 저딴 자식을 찾아? 재이 쌤, 누굴 엿 먹이는 거야?”설영준은 지금 그녀를 비웃기도 하고 방금 그녀의 처지를 비웃기도 했다.송재이의 얼굴이 처참할 정도로 벌게졌다.그녀는 발끈 화내며 설영준을 째려봤다.“내가 어떤 사람을 찾든 너랑 뭔 상관인데? 오늘 밤에 네가 여기 있단 걸 알았다면 오지도 않았어.”그녀는 지민건에게 속아서 이리로 왔다.다만 이 점은 굳이 설영준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설영준이 그녀의 손목을 확 잡고 두말없이 차 쪽으로 끌어갔다.아무리 몸부림을 쳐봐도 그에겐 전혀 소용이 없었다.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조수석에 앉아 있었고 설영준은 안으로 차 문을 잠가버렸다.설영준은 줄곧 차가운 표정이었다.매번 이런 표정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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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겁도 없이 아이를 안고 도망쳐
지금 이건 그와 주현아가 곧 결혼할 사이라는 걸 묵인한 셈이다.그들과 같은 상류층 사람들은 결혼과 연애에 관해서 자신만의 기준과 계획이 다 있다. 송재이는 이 점을 매우 잘 안다.그럼에도 직접 그에게 이런 말을 들으니 마음이 복잡미묘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그녀가 아무 말 없자 설영준이 손을 내밀어 그녀의 얼굴을 만지려 했는데 이번에 송재이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옆으로 피했다.“주현아 씨는 괜찮을지 몰라도 난 아니야.”송재이는 다시 한번 고개 들어 여전히 눈물을 머금고 있었지만 말투는 좀 전보다 단호하고 강인했다.“설영준 대표님, 난 어릴 때부터 엄한 가정에서 자라서 누군가의 내연녀로 살 순 없어. 그런 여자를 원하는 거라면 사람 잘못 찾았어.”그녀는 이를 악물고 설영준이 차마 입밖에 내뱉지 못한 말을 거침없이 쏟아부었다.그는 지금 송재이의 몸에 대해 조금 관심이 남아 있다. 그가 완전히 질리기 전까지 송재이는 도둑고양이처럼 숨어 지내야 한다.이게 바로 그와 함께한 대가이다.전에는 그의 ‘스폰’이 필요했다. 엄마의 병을 치료해야 하니까. 다만 이젠 유일한 아픔인 엄마가 없으니 송재이는 더는 저 자신을 속상하게 굴고 싶지 않았다.평소에 고양이처럼 얌전하던 그녀가 대뜸 발톱을 드러내자 설영준은 마냥 흥미진진할 따름이었다.그는 눈썹을 들썩이며 진한 미소를 보이더니 목소리를 한껏 내리깔았다.“내연녀는 하기 싫고 떳떳하게 여자친구가 되고 싶은 거야? 지민건의 여자친구?”그는 또다시 송재이를 비꼬았다. 결국 골랐다는 게 고작 그런 쓰레기냐고 비아냥댔다.송재이는 그런 설영준이 너무 이상했다. 이번엔 그녀도 발끈한 게 아니라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내 눈엔 너나 그 인간이나 다 거기서 거기야. 아무도 선택 안 해.”그녀는 화난 기색 없이 진지하게 말했다.“여자는 다양한 남자를 만나보는 것도 일종의 성장 경험이야. 너희들을 떠난 건 내게 해탈이지. 난 아직 젊고 예뻐. 성격도 나쁘지 않고. 이런 내가 나한테 꼭 어울리는 진짜 인연을 못 찾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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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함정에 빠지고 스스로 인정하기
이때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액정에 ‘현아’라는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설영준은 정신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영준 씨, 이달 26일에 내 외조카 생일이야. 걔 데리고 나가서 생일파티 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영준 씨도 같이 갈래?”설영준은 휴대폰을 꽉 잡고 관자놀이를 문지르더니 감미로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래, 같이 가.”...송재이는 돌아와서 지민건에 관한 일을 모조리 유은정에게 알려주었다.깜짝 놀란 유은정은 반나절이나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가 이토록 겉과 속이 다른 남자일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전화기 너머로 유은정은 연신 송재이에게 사과했다.지민건과 유은정의 아빠는 함께 골프 치는 사이였고 유은정이 아빠 따라 골프 치러 갔을 때 그와 알게 되었다고 한다. 본인에게 오래 사귄 약혼자가 있었으니 망정이지, 안 그러면 그녀가 먼저 지민건에게 대시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기왕 인연이 닿지 않은 김에 절친을 소개해주었는데 이런 사람이었다니. 유은정은 지민건에게 씌웠던 필터가 와장창 무너지는 기분이었다!취지는 좋았으나 일을 망쳤으니 유은정은 송재이에게 훠궈를 한 끼 사주기로 했다.훠궈를 먹을 때 송재이는 유은정의 약지 손가락에 낀 블링블링한 반지를 보았다.유은정은 배시시 웃으며 연말에 약혼자와 결혼한다고 했다.둘은 이것저것 많은 얘기를 나눴지만 유독 설영준만은 한 글자도 언급하지 않았다.송재이가 한때 이 남자를 얼마나 많이 좋아했는지 유은정은 누구보다 잘 안다.이제 겨우 내려놓기로 마음먹었으니 앞으로 최대한 더는 엮이지 말기를 바랐다.하지만 왜 항상 빗나가는 걸까....이날 송재이는 오케스트라 리허설을 막 마치고 대기실에 돌아왔는데 다들 수상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삿대질을 해댔다.“몰라뵀네요. 평상시에는 마냥 얌전하기만 하더니 뒤에서는 내연녀인 걸 알면서도 뻔뻔스럽게 애인 노릇이나 하고 있어요?”“이래서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니까요. 이렇게 발랑 까진 사람인 줄 누가 알았겠어요!”평소 송재이와 친한 첼리스트 서유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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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날 차단했다고?!
“다들 서서 뭐해? 연습은 안 하고 여기서 농땡이 부리는 거야?”뭇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송재이, 연지수, 두 사람은 나 따라와.”사무실.“지금처럼 부정적인 여론이 증폭하면 오케스트라 명성에도 영향을 미쳐.”단장이 말하며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재이는 이참에 한동안 쉬는 건 어때? 모레 있을 공연은 안 나와도 돼. 네 포지션은 지수를 대타로 내보낼 생각이야!”이건 뭐 하찮은 송재이로 소중한 연지수를 지키는 셈일까?!“그렇지만 저는 이미 한 달이나 준비했어요...”송재이는 꿋꿋하게 쟁취해보려고 애를 썼다.“쉬어 그냥!”단장이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송재이에게 이토록 엄한 말투로 말해본 적이 있었던가?원래 올해 수석 피아니스트가 되는 건 거의 정해진 거나 다름없는 일인데 이 사달이 벌어지니 연지수에게 자리를 빼앗길 뿐더러 승진의 기회도 아득히 멀어졌다.오랜 시간 노력해온 수고가 이젠 가망이 없는 수포가 되어버렸다.그녀는 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사무실을 나섰다.빠른 걸음으로 연습실 복도를 스쳐 지나갈 때 창밖의 불빛이 새어 들어와 그녀를 환하게 비췄다. 송재이는 마치 열대 우림에서 금방 나온 듯 온몸에 피곤함과 허탈함이 담겨 있었다.연지수는 대놓고 깨고소한 표정을 짓더니 의기양양하게 송재이를 또 한 번 쳐다봤다.송재이는 정말 내키지 않았다!오케스트라 수석이 되는 건 그녀의 꿈이었을 뿐만 아니라 한때 엄마와 했던 약속이기도 하다.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녀는 이대로 죽기만을 기다릴 수 없었다.송재이는 일단 게시판에 올라온 글과 야릇한 사진까지 전부 누가 업로드한 것인지 조사에 나섰다.사진 속에서 송재이만 얼굴이 공개되고 상대방은 완벽하게 가려졌다.‘왜 나만 당해?!’그녀는 휴대폰을 꺼내서 설영준에게 카톡을 보냈다.[영준 씨.]그런데 문자의 왼쪽에 빨간 느낌표가 떠버렸다! 그리고 그 위에는 짤막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친구로 등록되지 않은 사용자입니다...]설영준이 그녀를 차단하다니?!송재이는 한참 넋 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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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난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네가 수작 부린 거지? 설영준 대표랑 계약까지 마쳤는데 갑자기 변동이 생겼다면서 프로젝트 취소했어. 이거 너 때문이지?!”송재이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나서야 앞에 선 남자가 똑똑히 보였다.그는 바로 지민건이다!지민건은 그녀의 반항도 무릅쓰고 뒤에 있는 벽으로 몰아붙였다.송재이는 질식할 것만 같고 머릿속이 백지장이 되었지만 지민건의 주절거리는 말속에서 어떻게 된 영문인지 다 알아챘다.이 사건은 설영준과 연관이 있다. 바로 그가 지민건의 이익에 손해를 입혔다!송재이는 이를 악물고 지민건이 한눈판 사이에 잽싸게 발로 걷어찼다.중요 부위를 걷어차인 지민건은 고통이 몰려와 낯빛이 사색이 되었고 곧바로 손을 놓아주었다.점잖았던 이미지가 철저하게 무너졌다.그의 험상궂은 몰골을 다 지켜봐 왔지만 지금 이 순간 또다시 끔찍해질 따름이었다.“나 보복당했어. 다 너 때문이야!”송재이는 잠시 넋 놓고 있다가 그의 이 말을 곰곰이 되새겨보았다.보복을 당했다라...설마?그녀는 지민건을 쳐다보며 미간을 구겼다.“그 사진들 네가 올린 거야?”순간 지민건은 시선을 피했다.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그의 표정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다.“설영준과 협력하는 그 중요한 시기에 이런 게시글을 올린다고?”지민건도 참 어리석지. 스스로 총구에 달려들다니!송재이는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사진 속 설영준은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고 그녀 본인만 떡하니 공개됐다.그러니까 지민건은 오직 그녀를 겨냥해서 이런 짓을 벌인 것이다. 그날 밤 룸에서 송재이가 그의 체면을 짓밟았다고 이렇게 나왔다.지민건은 사소한 원한도 다 갚는 인간이구나!다만 사태가 그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설영준은 얼굴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그의 반응은 단호할 따름이었다. 버럭 화를 내더니 이젠 아예 지민건의 연락조차 안 받는다.답답하고 울분이 치솟던 지민건은 어디에 풀지 몰라 서성거리다가 오늘 송재이를 찾아와 다짜고짜 울분을 토하고 있다!“생각보다 대단한데? 진짜 설영준이랑 엮여있네?”경멸과 야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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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결국 딴 여자의 냄새를 배고
눈앞에 나타난 여자는 케이크를 손에 들고 달콤한 미소를 지어 보였고 옆에 있는 슈트 차림의 남자는 훤칠한 키에 잘 생기고 고귀한 기운을 내뿜었다.두 사람은 키 차이나 외모, 기질 전부 천생연분이 따로 없었다.마지막으로 설영준을 본지가 벌써 보름 전이다.송재이는 한참 후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연우는 두 사람을 보더니 잔뜩 흥분하며 의자에서 뛰어내려 슬리퍼를 챙겨 신고 쪼르르 달려갔다.아이는 주현아의 허리를 꼭 안았다.연우는 말을 못 해서 작은 얼굴을 주현아의 손바닥에 비벼댔다.주현아는 한없이 부드러운 눈길로 아이를 바라보며 한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었다.“오늘은 우리 연우 생일이지.”“다들 왔네?”민효연이 아래층의 인기척 소리를 듣더니 숄을 걸치고 천천히 2층에서 내려왔다.그녀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민효연의 시선 속에서 주현아의 미소가 살짝 굳었고 등골도 뻣뻣해졌지만 여전히 남자의 팔짱을 꼭 꼈다.“엄마, 제 약혼자 영준 씨가... 엄마 보러 왔어요.”“영준이 오랜만이네.”민효연은 매우 우아하고 이 나이에도 포스가 차 넘친다. 그녀는 설영준의 앞에 서서 고귀한 자태로 인사를 건넸다.설영준도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사장님, 잘 지내셨어요? 어디 편찮으신 데는 없고요?”두 사람은 담소를 나누며 간단하게 근황을 얘기했다. 민효연이 선을 넘지 않게 일상적인 질문을 했고 설영준도 예의 바르게 일일이 대답했다.두 사람은 연우를 데리고 이미 예약한 레스토랑에 가서 생일을 함께 보낼 예정이었다.민효연은 이혼한 이후로 수년간 칩거했다. 그녀는 떠들썩한 걸 싫어해 두 사람의 초대를 완곡하게 거절했다.주현아는 스스럼없는 모습을 보였지만 송재이와 마주한 순간 눈가에 복잡미묘한 기운이 감돌았다.송재이도 대뜸 얼굴이 빨개졌다!주현아는 분명 그녀를 알아봤을 것이다.전에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들에서 남자의 얼굴이 가려졌지만 그들이 탄 차가 검은색 벤틀리였기에 지인들은 설영준의 차라는 걸 바로 알아본다!이제 막 잠잠해졌는데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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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방패막이
민효연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또 한참 쳐다보더니 결국 아무 말 없이 위층으로 올라갔다.사진에 관한 일은 모두가 약속한 듯 한 글자도 언급하지 않았다.하지만 송재이는 그들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주현아나 민효연이나 다들 그녀를 문란하고 천박한 년으로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한편 그들은 설영준에 대해 이런 편견이 없다.남자는 당연히 풍류가 넘치고 기개가 있지만 여자는 음탕하고 천박하다는 오명을 뒤집어써야 한다!이 사회가 원래 여자에 대한 편견이 많고 많은 법이다.송재이는 이런 불공평함을 바꿀 수 없으니 그저 묵묵히 참고 살아야 했다.그녀는 참 운이 안 따라주는 사람이다.분명 설영준을 피하고 싶었는데 하필이면 또다시 이 악순환에 휘말려 들었다.민효연이 제 딸의 약혼자와 불분명한 관계를 이어가는 과외교사를 바로 해고할 줄 알았는데 송재이는 의외로 그런 통보를 받지 못했다.연우의 생일이 지난 후 송재이는 더 이상 민효연의 집에서 주현아를 보지 못했다.그때 눈치챘다. 민효연과 주현아는 모녀 사이지만 둘은 썩 친해 보이지 않았다....송재이는 설영준의 집에서 3년 동안 설도영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다. 선생과 제자의 관계를 떠나 그녀는 이 아이에게 별다른 감정이 없다고 생각했고 설영준의 집을 떠난 이후로 이 아이와 따로 더 연락한 적도 없었다.문득 걸려온 설도영의 전화에 송재이는 마냥 놀라울 따름이었다.그래도 결국 전화를 받았다.“선생님, 저 친구랑 싸워서 지금 병원에 있어요...”설도영이 말을 더듬거렸다.전화기 너머로 아이는 가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가족들한테 감히 알릴 용기가 없어요. 선생님이 이리로 와주실 수 없나요? 감사의 뜻으로 제가 나중에 밥 한 끼 사드릴게요.”“...”송재이는 말문이 막혔다.거절하고 싶은데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병원에 도착해보니 설도영이 말한 ‘싸움’이 사실과 다르다는 걸 알아챘다. 이건 다툰 게 아니라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설도영에게 맞은 격이다.인상 속 설도영은 점잖은 중학생이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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