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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응.”

“술 마셨어?”

“친구랑 조금 마셨어.”

욕실에서 샤워하는 소리가 들리자 온하랑은 찡그린 얼굴로 뒤척이며 편히 잠들지 못했다.

이내 침대가 푹 꺼지는 느낌이 들었다.

커다란 손이 그녀의 허리에 닿더니 우아한 곡선을 따라 점점 아래로 내려가며 만지작거렸다.

“음... 오늘은 안 돼...”

온하랑은 눈을 감고 비몽사몽인 채로 그를 밀어냈다.

행여나 아이가 다칠까 봐 무의식적으로 걱정했다.

큰 손이 우뚝 멈추더니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얼른 자.”

졸음이 쏟아지는 탓에 그녀는 금세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난 온하랑의 곁에는 이미 온기가 사라지고 없었다. 단지 살짝 구겨진 침대 시트를 통해 어젯밤에 누군가 옆에 누워 있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그녀는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왔다. 대체 어제 왜 바로 잠이 들었냐는 말이다.

물론 오늘 말해도 상관없었다.

온하랑은 재빨리 씻고 옷장으로 걸어가서 부승민이 입을 흰색 슈트를 골라주었다. 그리고 어쨌거나 임신은 경사스러운 일이라 밝은 톤의 스프라이트 넥타이를 골라 침대맡에 놓았다.

아침 조깅을 마친 부승민은 홈웨어 차림으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 고개를 들어 계단에서 내려오는 온하랑을 바라보며 손에 든 서류를 내려놓고 말했다.

“밥 먹자.”

아침 식사를 마치고 온하랑은 심호흡하더니 행복과 기대가 엿보이는 얼굴로 먼저 입을 열었다.

“오빠한테 할 말이 있어.”

둘 사이에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아마 부승민도 기뻐하겠지?

“나도 할 말 있어.”

부승민의 어조로 사뭇 가라앉았다.

“그럼 오빠 먼저 해.”

온하랑의 해맑은 미소에는 수줍음이 살짝 묻어났다.

“온하랑, 우리... 이혼하자.”

부승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에 놓인 서류를 집어 들고 건네주었다.

“이건 이혼 합의서야. 우선 읽어보고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 최선을 다해 만족시켜 줄 테니까.”

온하랑의 심장이 털컥 내려앉았고,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부승민을 멍하니 바라봤다.

이내 머릿속이 새하얘지면서 혹시 잘못 들은 건 아니냐는 의심마저 들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목소리를 억지로 쥐어짜 냈는데, 입을 열자마자 ‘이혼’이라는 두 글자만 더듬더듬 중얼거렸다.

이혼하자니?

아무 일 없다가 갑자기 왜 이혼하겠다는 거지?

아무런 예고도 하지 않은 탓에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날 밤 우리 둘 다 꾀에 넘어간 탓에 마지못해 결혼했잖아. 어차피 공개도 안 했는데 이왕이면 빨리 끝내는 게 좋지 않겠어?”

부승민은 소소한 일상 이야기라도 하는 것처럼 무심한 말투로 말했다.

온하랑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지더니 한기가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심장이 마치 커다란 손에 꽉 움켜쥔 듯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의 말과 달리 사실 온하랑은 무려 9년 동안이나 부승민을 사랑해 왔다.

16살에 처음 부씨 일가에 와서 25살에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 될 때까지, 첫사랑에 눈뜨기 시작해서 3년이라는 결혼 생활 동안 그녀의 풋풋한 청춘을 다 바치지 않았는가?

적어도 온하랑은 강요가 아니라 자의였다.

하지만 그에게는 마지못해 허락한 결혼이라니?

그녀는 침을 꿀꺽 삼키고 나서 연신 심호흡했다. 이내 부승민을 빤히 쳐다보며 애써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 3년 동안 우리 나름대로 잘 지내지 않았어? 이미 마음먹은 거야? 나랑 이혼하기로...?”

이혼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는 것조차 고통이 느껴지는 듯싶었다.

“응.”

“할머니 할아버지는...”

“내가 알아서 설득할게.”

“만약 내가...”

‘임신했다면...?’

부승민은 살짝 짜증 난 듯 그녀의 말을 끊었다.

“서윤이가 귀국했어.”

순간, 온하랑은 숨이 멎는 느낌이 들었다. 이 말은 마치 비수처럼 날아와 그녀의 가슴이 꽂혀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

결국 경직된 몸으로 이혼 합의서를 건네받아 기계적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았어, 한 번 확인해 볼게.”

꾀에 넘어가 마지못해 결혼했다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사실 요점은 추서윤의 귀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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