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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로운 제안
위태로운 제안
작가: 고운

제1화

“환자분은 천성적으로 자궁벽이 얇은 편이라 태아의 위치가 정상이 아닐 가능성이 커요. 평소에 식단 조절 잘하고 운동도 빼먹지 마시고 항상 조심하는 게 좋아요.”

의사가 말하면서 처방전을 작성하고 건네주었다.

“자, 약 가지고 가세요.”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온하랑은 처방전을 건네받고 천천히 일어섰다.

이때, 의사가 한 마디 더 보탰다.

“진짜 조심해야 해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가 큰일 날지도 몰라요.”

자궁벽이 얇으면 유산하기 쉬웠다. 게다가 한 번 유산하면 다시 임신하지 못하는 임산부들이 대다수였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꼭 유의할게요.”

온하랑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결혼 3년 차, 그녀만큼 아이의 탄생을 고대하는 사람도 없었기에 아이를 꼭 잘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약을 받은 다음 온하랑은 병원에서 나와 차로 돌아갔다.

기사가 시동을 걸고 백미러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모님, 도련님께서 오후 3시 비행기로 돌아오시는데 아직 20분 남았어요. 바로 공항으로 가실까요?”

“네.”

20분 뒤에 그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온하랑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떠올랐고, 마음속은 기대로 가득 찼다.

부승민이 한 달 가까이 출장 중이라 그가 너무 보고 싶었다.

그녀는 공항으로 가는 내내 가방에서 임신 확인서를 꺼내 몇 번이고 들여다보고는 손으로 아랫배를 살짝 감쌌다.

이곳에 그녀와 부승민의 아이가 있으며 8개월만 기다리면 곧 태어난다.

지금은 당장 이 기쁜 소식을 부승민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뿐이다.

공항에 도착하자 기사는 눈에 잘 띄는 곳에 차를 세웠다.

“사모님, 도련님께 연락 한번 해보실래요?”

온하랑은 시간을 확인하더니 부승민이 이미 비행기에서 내렸을 것으로 추정하고 전화를 걸었지만, 휴대폰이 꺼져있다는 안내음만 흘러나왔다.

“비행기가 연착된 것 같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봐요.”

온하랑이 말했다.

한참이 지나도 부승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온하랑은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통하지 않았다.

“더 기다려봅시다.”

비행기 연착은 워낙 흔한 일이라 한두 시간씩 늦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두 시간 후.

온하랑은 다시 부승민에게 연락했고, 마침내 무미건조한 안내음이 아니라 누군가 전화를 금세 받았다.

“오빠, 비행기 내렸어?”

휴대폰 너머로 침묵이 이어지더니 나긋나긋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승민이 지금 화장실에 갔어. 이따가 다시 연락하라고 할게.”

온하랑이 대답하기도 전에 상대방은 이미 전화를 끊었다.

결국 그녀는 휴대폰 화면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번에 부승민이 출장하면서 여비서와 동행하지 않았던 거로 기억하는데...

이내 깜깜해진 휴대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부승민의 연락만 하염없이 기다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10분이 지났지만, 부승민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았다.

온하랑은 5분을 더 기다렸다가 참지 못하고 부승민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이 한참 동안 이어지다가 끊기기 직전 드디어 연결되었고, 휴대폰 너머로 익숙한 남자의 매력적인 목소리가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여보세요? 온하랑?”

“오빠, 어디야? 기사님이랑 지금 터미널 주차장 D 구역에 있는데, 바로 이쪽으로 오면 돼.”

순간 침묵이 이어졌다.

“미안, 비행기 내리고 휴대폰 켜는 걸 깜빡해서 이미 공항을 떠났어.”

온하랑의 미소가 서서히 굳어갔다.

“그럼... 집에 가서 기다릴게.”

온하랑은 입술을 깨물었다.

“오빠한테 할 말 있거든.”

“알았어. 나도 할 말 있어.”

“저녁은 아줌마한테 오빠가 좋아하는 반찬을 준비해달라고 할 테니까...”

“너 먼저 먹어. 볼 일 있어서 늦게 갈 거야.”

온하랑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말투만큼은 차분했다.

“알았어.”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휴대폰 너머로 아까 그 여자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승민아, 미안해. 방금 하랑이가 연락이 왔는데 내가 깜빡하고 얘기하지 못했어.”

온하랑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내 얼굴을 찡그리며 부승민에게 누구냐고 물어보려는 순간 전화가 뚝 끊겼다.

결국 휴대폰 화면만 바라보다가 입술을 깨물더니 기사에게 말했다.

“집에 가시죠.”

사실 기사는 그녀의 대답만 듣고도 뭔가를 짐작하고 서둘러 공항을 빠져나갔다.

비록 온하랑은 입맛이 별로 없었지만, 배 속에 있는 아이를 위해서라도 저녁을 조금 먹었다.

거실에는 TV가 켜져 있었다. 쿠션을 안고 소파에 앉은 그녀는 TV 볼 생각도 하지 않고 시계만 주야장천 들여다보았다.

벌써 밤 10시였다.

온하랑은 하품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비몽사몽인 와중에 몸이 붕 떠오르는 것처럼 느껴졌고, 누군가 자신을 안고 걸어가는 듯싶었다.

정신이 몽롱한 그녀는 익숙한 향기와 희미한 술 냄새를 맡으며 중얼거렸다.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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