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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온하랑은 휴대폰을 손에 꼭 움켜쥐었다. 가슴이 아픈 나머지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부승민이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추서윤을 데리고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니.

심지어 모두가 알고 있는 공공연한 사실이며 다들 두 사람을 축복해 주기 바빴지만, 오직 그녀만 감쪽같이 속았을 뿐이었다.

지난 3년 동안 부승민이 결혼했다는 건 그의 가족밖에 몰랐다.

여태껏 단 한 번도 친구들을 소개해 준 적이 없었던 건 물론이고, 가끔 마주치더라도 사람들은 지레 그녀가 부씨 일가의 양녀인 줄 알았다.

“사모님?”

차를 빼기 위해 차고를 찾은 기사는 온하랑의 차가 아직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온하랑은 재빨리 눈물을 닦으며 못 들은 척하더니 곧바로 시동을 걸어 출발했다.

사적인 감정 때문에 업무에 지장 주는 게 제일 싫은 그녀였다.

당장은 일에 매진하면서 주의력을 분산시킬 수밖에 없었다.

부승민의 메일 주소를 클릭하고 첨부파일에 계획표를 업로드한 뒤 온하랑은 전송을 눌렀다.

곧이어 부승민이 답장을 보냈는데 여느 때처럼 간결했다.

「좋아. 앞으로 신경 좀 써 줘.」

온하랑은 머뭇거리다가 ‘알겠어’라고 답장하고는 재빨리 업무를 배분했다.

퇴근 시간이 되자 부승민이 문자를 보냈다.

「저녁에 볼일이 있으니까 먼저 가.」

입술을 질끈 깨문 그녀는 또다시 바늘로 심장을 콕콕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이내 떨리는 손가락으로 ‘알겠어’라고 답장했다.

어쨌거나 그녀도 BX그룹의 임원에 속하는지라 예전에는 저녁 약속이 생기면 부승민은 무슨 일인지, 어떤 사람을 만나는지 구체적으로 얘기해줬는데 요즘은 단지 볼 일 있다는 말로 대충 둘러댔다.

볼 일이라는 게 아마도 추서윤을 만나러 가는 거겠지.

이때, 부승민의 문자가 도작했다.

「출장 끝나고 돌아오면서 선물을 챙겼는데 깜빡하고 못 줬어. 내 캐리어에 있으니까 직접 가져가.」

온하랑이 대답했다.

「알았어.」

부승민은 휴대폰 화면 속 단답형 문자를 보다가 갑자기 짜증이 스멀스멀 치밀어 올랐다. 이내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손을 뻗어 미간을 문질렀다.

임지호가 문을 두드리며 들어섰다.

“대표님, 추서윤 씨가 왔습니다.”

온하랑이 사무실을 나서는 순간 아직 퇴근하지 않은 직원 몇 명이 밖에서 숙덕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아까 대표님을 찾으러 온 여자분이 혹시 여자 친구예요? 몸매가 죽여주던데.”

“마스크를 써서 아쉽네요.”

“대표님 여자 친구분의 눈이 추서윤이랑 닮았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그 할리우드 톱스타요? 설마! 해외에서만 활동하지 않아요?”

“대표님과 진짜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큼, 전무님.”

누군가 그녀를 발견하고 인사를 건넸다.

수군거림이 멈추고 직원들이 잇달아 인사했다.

“전무님.”

온하랑은 눈을 내리깔고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미 퇴근했으니까 편하게 얘기 나눠요.”

말을 마친 그녀는 성큼성큼 걸어갔다. 차분한 발걸음은 왠지 모르게 다급함이 엿보였고, 눈시울이 점점 붉어지면서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자칫 가슴이 찢어지는 장면을 목격할까 봐 얼른 자리를 피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추서윤이 그를 만나러 회사까지 찾아왔단 말인가?

아직 이혼하지도 않았는데 정녕 아내인 그녀가 회사에 버젓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건가?

등 뒤에서 직원들이 다시 말을 이어갔지만, 주제가 바뀌었다.

“전무님 너무 예쁘지 않아요? 하지만 매번 마주칠 때마다 왠지 모르게 무서워요. 역시 대표님의 여동생답네요.”

한 신입 사원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전무님이 대표님의 여동생이었어요?”

“물론 피 한 방울 안 섞인 동생이라는 게 함정이지만, 이미 돌아간 전무님의 아버지가 은혜를 빌미로 회장님을 협박해서 수양딸로 받아들이게 했거든요. 아니면 BX그룹에 어찌 입사하겠어요?”

“누구한테서 들었는데요?”

“홍보팀이 그러던데.”

“사실 전무님은 꽤 괜찮은 사람이에요.”

지하 주차장, 온하랑이 안전벨트를 매고 고개를 드는 순간 두 명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부승민은 아침에 그녀가 골라준 흰색 슈트를 입고 있었는데, 반듯하고 훤칠한 몸매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그의 옆에는 마스크와 야구 모자를 쓴 한 여성이 다정하게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젖히고 열심히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한편, 부승민은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이고 부드러운 표정으로 성심껏 들어줬다.

여자는 무슨 말을 하는지 애교 섞인 몸짓으로 부승민의 팔을 흔들었다.

부승민은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는데, 입 모양은 '좋아'라고 대답하는 듯싶었다.

그의 첫사랑 추서윤이 드디어 돌아왔다.

온하랑은 밝은 톤의 넥타이가 유난히 눈이 부시는 느낌이 들었다.

이는 그녀가 임신을 축하하기 위해 직접 골라준 넥타이였다.

그러나 부승민은 이제 이 넥타이를 매고 첫사랑과 데이트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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