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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3년 전, 부승민은 추서윤을 본가로 데려간 적이 있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그녀는 아무리 멀리 떨어졌다고 해도 매일 본가에서 학교를 다녔다. 물론 이유는 단지 가끔 찾아오는 부승민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날 비록 그녀의 바람대로 마주쳤지만, 추서윤이 여자 친구라며 가족에게 소개하는 부승민의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심지어 정원에서 서로 포옹하고 키스하는 두 사람을 발견하지 않았는가?

그녀는 앞으로 평생 멀리서만 부승민을 지켜봐야만 하나 싶었다.

부승민과 결혼하는 날까지도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물론 꿈이라면 언젠간 깨어나기 마련이다.

추서윤이 바로 그녀의 단잠을 깨운 장본인이었다.

온하랑은 심장이 따끔거리는 통증을 느꼈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랜만이에요. 서윤 씨는 더 예뻐졌네요.”

이제 와서 ‘둘째 새언니’라는 호칭은 죽어도 부르지 못할 것이다.

추서윤이 생긋 웃었다.

“고마워, 너도 예뻐졌네. 참, L.X 친필 사인 음반은 마음에 들어? 네가 예전에 L.X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은데, 마침 해외 활동하다가 알게 된 친구거든. 이번에 귀국하기 전에 사인받으면서 특별히 네 이름까지 적어달라고 부탁했어.”

온하랑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동안 침착하고 여유 넘치기로 소문난 그녀인데 순간 혼란스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마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웃음거리 신세로 전락한 광대처럼 느껴졌다.

이내 멍하니 부승민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애원하듯 바라보았다.

부승민이 추서윤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자신이 챙긴 선물이라고, 그가 특별히 부탁한 것이라고 말해주길 속으로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부승민은 무심하게 쳐다보며 그녀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말을 했다.

“왜? 서윤이가 준 선물이 마음에 안 들어?”

온하랑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고, 대체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한참 후, 그녀는 평정심을 되찾고 무덤덤하게 말했다.

“회포는 나중에 풀고 다들 오전부터 기다렸는데 얼른 앉아서 본론부터 얘기합시다.”

“응.”

이 말을 듣자 추서윤이 고개를 돌려 부승민을 바라보았다.

“승민아, 먼저 사무실에 가 있어. 점심에 같이 밥 먹는 거 까먹지 말고.”

“알았어.”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온하랑은 씁쓸한 기분이 들었고, 괴로운 나머지 숨 쉬기조차 힘들었다.

부승민의 마음에 적어도 자신이 손톱만큼의 존재로나마 남아 있거나 아직도 그에게 일말의 감정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 자신이 너무 우스웠다.

...

회의가 끝나자 벌써 오후 3시가 되었고, 양측은 어느 정도 합의를 이루었다.

온하랑은 앞에 놓인 서류를 정리했다.

“다들 고생하셨어요. 제가 한 턱 살 테니까 1층에 새로 생긴 샤부샤부 집 어때요? 원조라서 맛은 보장하죠.”

추서윤의 매니저 안수빈이 말했다.

“좋아요!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니죠.”

회의실에 있던 사람들도 잇달아 대답하더니 기분 좋게 함께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안수빈이 물었다.

“서윤아, 부 대표님께서 식사 같이하자고 했잖아. 차라리 대표님도 부를까?”

추서윤은 웃으며 말했다.

“가서 물어보고 올게. 같이 안 갈 수도 있거든.”

“그럴 리가? 대표님이 널 얼마나 잘 챙겨주는데.”

추서윤의 스텝이 농담을 던졌다.

“서윤 언니, 겸손이 지나친 거 같은데요? 부 대표님과 무슨 사이인지 다들 뻔하죠. 언니가 귀국하자마자 MQ 광고 모델로 발탁해 줬는데 말 다한 거 아니에요?”

“됐어, 다들 조용!”

추서윤은 쑥스러운 듯 온하랑을 바라보았다.

“하랑아, 사람들 데리고 먼저 가 있을래? 난 이따가 승민 데리고 갈게.”

그녀의 얼굴에 피어난 웃음꽃을 보며 온하랑은 심장이 콕콕 쑤시는 것 같았고,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다. 이내 서류를 사무실에 놓고 다른 사람과 함께 1층 샤부샤부 집에 가서 룸을 예약하고는 간단하게 주문을 마치고 앞장서서 분위기를 띄우기 시작했다.

그동안 늘 해오던 일이라 분위기가 금세 무르익었다.

룸 안은 점점 시끌벅적해졌고, 양측은 웃고 떠들며 대화를 이어갔다.

안수빈은 온하랑에게 화제를 돌렸다.

“전무님의 이름은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죠. 이 업계에 종사하신 지 꽤 되셨죠?”

프로젝트 매니저가 잽싸게 대답을 가로채더니 온하랑의 어깨를 두드리며 자랑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얼마 안 됐어요. 고작 3년? 우리 전무님은 비록 나이가 어리지만 능력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죠. 작년에 인기를 끌었던 Legacy, 그 MOBA 모바일 게임은 바로 전무님께서 마케팅 디렉터를 담당했죠.”

안수빈은 그런 내용이 궁금한 게 아닌지라 다시 물었다.

“정말 대단한데요? 제가 듣기로 전무님은 부 대표님의 여동생이라고 하던데, 맞나요?”

프로젝트 매니저는 굳은 얼굴로 아무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말뜻은 마치 온하랑이 낙하산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틀린 말은 아니죠. 할아버지께서 절 키워주셨거든요.”

온하랑은 미소를 지었다.

“회장님이 직접 키워주시다니, 굉장하신데요?”

안수빈이 피식 웃었다.

애매한 뉘앙스에 프로젝트 매니저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들의 안색도 어두워졌다.

그러나 온하랑은 시종일관 태연한 표정을 유지했다.

“저희 아버지와 할아버지께서 허물없이 지낸 덕분에 길거리에 나앉는 참사는 면했거든요.”

“그래요? 아버님께서 회장님에게 간을 기증해서 그런 건 아니고요?”

안수빈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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