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사랑한 건 죄였어요.”유시아가 말했다.“난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거예요.”유시아는 임재욱을 3년간 사랑했다. 그녀는 그를 온 마음을 다해 미친 듯이 사랑했지만 결국 얻은 것이라고는 3년간의 옥살이와 자격이 없다는 그의 말뿐이었다.임재욱이 사랑하는 여자가 죽자 유시아는 숨을 쉬는 것조차 죄가 되었다.울면서 웃는 유시아의 얼굴을 바라보면 임재욱은 왠지 모르게 옛 기억이 떠올랐다. 아기 새처럼 피곤한 줄도 모르고 자신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던 유시아가 말이다.“재욱 오빠, 날 좋아하면 죽기라도 해요?”당연히 아니었다.결국 임재욱은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그녀를 사랑한 임재욱은 유시아를 누구보다도 아껴주었고 심지어 그녀 대신 누명을 써서 5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남은 것이라고는 이미 떠나버린 유시아와 이혼합의서 한 장뿐이었다. 그는 그제야 깨달았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법이라는 걸.그가 사랑받게 될지 아니면 슬픔을 얻게 될지는 전부 유시아에게 달려있었다.
View More“...”말문이 막혀 버린 임재욱.생리통이 심한 유시아의 고통을 모르듯이 유시아 또한 지금 임재욱이 느끼고 있는 고통을 모른다.무릎을 위로 올렸을 뿐인데 그게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유시아는 모를 것이다.한참 지나서 임재욱은 고개를 들어 유시아를 바라보며 그녀의 팔을 꼭 잡았다.이를 갈면서 그녀의 이름을 뱉어내는데.“유시아...”당장이라도 자기를 잡아먹을 것 같아서 유시아는 두려움에 또다시 발버둥을 치며 벗어나려고 했다.임재욱은 손을 내밀어 그녀를 다시 잡으려고 했으나 유시아가 이기고 만다.단숨에 피팅룸에서 도망쳐 나온 유시아는 의문이 가득한 직원들의 시선을 마주하며 황급히 백화점에서 나왔다.도망이라도 치는 듯이 한숨도 돌리지도 않고 택시에 올랐다.“기사님! 일단 출발해 주세요!”운전기사는 바로 시동을 걸었다.“손님, 어디로 모실까요?”‘어디로 가야 할까?’유시아에게는 답이 없는 물음이었다. 그녀마저도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디로 갈 수 있는지 모르기에.잠시 생각하더니 유시아는 입을 열었다.“그냥 가주세요. 요금은 제대로 지급해 드릴게요.”“네, 손님.”택시는 가다가 멈추고 멈추다가 다시 달렸다.시원한 밤바람이 창문을 타고 들어와 유시아의 머리를 휘날렸다.유시아는 파르르 떨더니 창문을 굳게 닫아 버렸다.그러다가 가방에서 핸드폰 벨 소리가 들려왔는데, 임재욱이었다.발신자 번호를 보고서 유시아는 망설이다가 바로 끊어버렸다.이윽고 그녀는 한참 밖을 내다보면서 생각에 빠지게 되었다.중시 거리라 차는 계속 막히고 있지만 유시아는 차에서 내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운전기사는 도시 외곽으로 달렸는데, 그곳은 차도 얼마 없고 막힘도 없었다.어느 한 별장 구역을 지나자, 유시아는 갑자기 차를 멈춰 세웠다.“멈춰주세요.”택시비를 내고서 유시아는 차에서 내려 불빛이 아른거리는 별장 구역을 바라보았다.그곳은 반월 별장으로 소현우와 함께 지냈던 집이다.소현우가 없어도 이곳은 유시아에게 피난처와 같은 곳이다.기분이 나쁘거나 괴롭힘을
임재욱은 화를 참고 성큼성큼 다가가 잡지를 빼앗아버리고 드레스를 훅 던졌다.“입어봐.”유시아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드레스를 가지고 피팅룸으로 들어갔다.문을 여는 순간 누군가가 뒤에서 확 밀치는 느낌이 들었다.갑작스러운 힘에 유시아는 안으로 넘어지고 말았다.이윽고 문이 굳게 닫히는데, 뒤돌아보니 임재욱이었다.좁은 피팅룸은 사면이 거울로 되어 있다.음침한 얼굴을 하는 임재욱의 모습이 시야를 가득 채워 유시아는 이유 모를 압박감이 들었다.“왜... 왜 따라 들어온 거예요?”“지퍼가 뒤에 있잖아.”임재욱은 가슴 앞에 양팔을 감싸 안은 채 여유작작한 모습으로 문에 기대었다.“지퍼 올려주려고 따라 들어왔어.”순간 유시아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그럴 필요 없으니 나가세요.”임재욱 앞에서 옷을 벗기고 새로운 옷으로 입어보고 싶지 않았다.하물며 그가 여기서 무슨 파렴치한 짓을 할지도 모르고.임재욱은 피식 웃으며 물건을 훑어보듯 유시아를 바라보았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순수한 척하는 거야? 네가 보지 못한 곳까지 본 사람이야. 내가.”“할아버지 칠순 잔치에 가고 싶지 않아요.”유시아는 입술을 깨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가고 싶지 않다고요.”눈살을 찌푸리며 임재욱은 갑자기 그녀의 옷깃을 잡아 자기 품속으로 끌어당겼다.“유시아, 내가 바보 같아? 무덤덤한 모습으로 날 대하고 있는데 내가 모를 것 같아? 용재휘를 해외로 쫓아 버려서 그러는 거지? 이런 식으로 나한테 복수하겠다는 거야?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응?”임재욱을 바라보며 유시아는 실소가 터지고 말았다.“내가 뭐라도 되든 안 되든 그게 중요해요? 임 대표님은 전혀 상관없잖아요.”유시아는 자기 포지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임재욱을 3년 동안 사랑했고 3년 동안 미워했고 지금은 더 이상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임재욱에게 있어서 자기는 그저 ‘파트너’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유시아가 누구든 뭐라도 되든 안 되든 그 자신도 개의치 않게 되었다.임재욱은
유시아는 아주 오랜만에 임재욱을 보는 것만 같았다.지난번 강석호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을 때도 용재휘에 대해서만 얘기했었다.용재휘가 떠나고 나서 화실을 맡게 되자마자 바삐 돌게 되었는데 그 뒤로 병원에 간 적이 없었다.가만히 생각해 보니 두 사람은 열흘이 훌쩍 넘보도록 보지 못했다.반가운 마음은커녕 임재욱이 전보다 더욱더 낯설고 무섭기만 했다.“그럭저럭 잘 지냈어요.”유시아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며 물었다.“재욱 씨는요?”덤덤하기 그지없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서 임재욱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창밖을 보고 있는 유시아의 모습에 임재욱은 입술을 사리 물었는데, 마음이 다른 데로 가 있는 듯한 그녀의 모습이 언짢았다.버스를 타고 있는 것처럼 모든 승객이 낯선 것처럼, 전혀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돌아오는 답이 없자 유시아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는데 자기를 주시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눈이 마주치고 그의 시선을 감당할 수 없어 유시아는 또다시 파르르 떨며 고개를 돌렸다.“뭘 그렇게 봐요?”임재욱은 손을 내밀어 약간 포악한 모습으로 유시아의 턱을 잡아 강제로 고개를 돌렸다. 다시 자기와 눈이 마주치게끔.두 눈을 지그시 뜨고 유시아를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그제야 입을 열었다.“내 여자 보고 있었어. 무슨 문제라도 돼?”“...”보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억지를 부리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중심 거리라 차가 막혀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임재욱은 그런 상황이 갑갑하여 거리에서 내려 유시아를 데리고 한식당으로 들어갔다.조용한 룸으로 들어오고 나서 임재욱은 두 사람 모두 즐겨 먹는 음식을 주문했다.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임재욱이 입을 여는데.“다음 달에 할아버지 칠순 잔치가 열릴 거야. 너도 같이 가자.”그 말을 듣고서 유시아는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행여나 잘못 들은 건 아닌지 거듭 의심까지 들기도 했는데.“네? 뭐라고요?”칠순 잔치에 함께 가자고 하는 임재욱의 말과 그러한 생각에
용재휘처럼 유시아도 실력이 만만치 않으니 말이다.그리고 아이들을 상대로 유시아는 상대적으로 간단한 방식으로 가르치고 있다.정신을 몰두하여 사과 한 알을 그리고 있을 때, 옆에 있던 아이가 갑자기 정적을 깨뜨렸다.“시아 쌤, 저기 어떤 아저씨가 보고 있어요.”유시아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는데 유리문 밖에 서 있는 남자가 보였다.임재욱이다. 오늘 퇴원하자마자 유시아를 보려고 일부러 찾아온 것이다.겸사겸사 용재휘가 남긴 흔적도 보고.그렇게 1층부터 훑으면서 올라왔는데 2층에 이르자마자 유시아의 모습에 시선이 쏠리게 된 것이다.필을 들고 몰두하고 있는 유시아의 모습이 아름답고 우아해 보였다.그림을 그리고 있으나 가장 아름다운 그림은 그림을 그리고 있는 유시아의 모습이었다. 임재욱의 눈에는.시선이 마주치자, 임재욱은 멋쩍은 듯 바로 몸을 돌려 1층으로 내려갔다.소파에 느긋하게 기대어 앉아 있는데 직원이 그에게 따뜻한 물 한 잔을 가져다주었다.그의 외모에 저절로 시선이 끌린 직원은 내심 속으로 감탄했다.‘누구 가장이지? 너무 잘생겼잖아.’“재욱 씨.”유시아가 아래층으로 내려왔다.“병원에서 막 나와도 되는 거예요?”“그럼, 안 돼? 내 집고 아닌데 평생 병원에서 살았으면 좋겠어?”임재욱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유시아를 흘겨보았다.이윽고 손목시계까지 보면서 다시 입을 여는데.“언제 퇴근해?”“6시 아니면 7시쯤에야 퇴근할 것 같은데요.”유시아는 살짝 머뭇거렸다.아이들은 거의 다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고 그림 그리기에 소질이 있어 자원으로 혹은 부모님의 등살에 여기로 온 것이다.초등학교 하교 시간은 4, 5시쯤이고 유시아는 한두 시간 정도 수업을 하곤 한다.6, 7시가 되어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갔을 때 유시아는 야식 먹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갔었다.매일을 그렇게 보냈는데 임재욱이 옴으로 하여 모든 패턴이 망가졌다.“일단 밥부터 먹으러 가세요.”“완쾌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몸부터 챙기셔야죠.”“저 기다렸다가
뼈마디만 남은 듯한 유시아의 손목이다.힘을 아주 살짝만 들여도 단번에 부러질 듯한 모습에 용재휘는 가슴이 미어졌다.“시아 씨는 물건이 아니잖아요... 그렇게 쉽게 팔아넘기지 말아요...”“그러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어요.”유시아는 그를 바라보며 피식 웃더니 힘껏 또다시 그의 손을 뿌리쳤다.이윽고 걸음을 재촉하며 구치소 문 앞에 있는 마이바흐 차로 다가갔다.뒷좌석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며 입을 열었다.“강 비서님, 출발하세요.”임재욱의 뜻이었다. 구치소 앞에서 용재휘를 마중하고 그에게 직접 해외로 떠나라고 하는 것.그래서 일부러 강석호에게 유시아를 데려다주라고 한 것이다.시동이 걸리고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백미러에 용재휘의 모습이 보였다.미친 듯이 뛰어오는 그의 모습. 어떻게든 달리고 있는 차를 멈춰 세우려고 하는 그의 모습...절로 가슴이 미어지는 순간이었다. 유시아는 차마 볼 수 없을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갈기갈기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안간힘을 써가며 쏟아져 나오려는 눈물을 꾸역꾸역 삼키면서.‘참아... 심씨 가문이 파산나는 것도 재휘 씨가 감옥에 들어가는 것도 절대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어...’‘내가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인데... 참자...’같은 날 저녁 티켓이었다.용재휘는 비행기에 오르고 나서 유시아에게 사진 한 장을 보냈다.비행기 안에서 공항을 찍은 사진인데, 떠난다는 뜻이었다.유시아는 입술을 사리물고 끝끝내 아무런 답장도 하지 않았다.용재휘가 떠난 지 삼 일째 되던 날, 유시아는 택배 하나를 받았는데 보낸 이가 용재휘였다.속포 안에는 화실 키랑 화실과 계약서를 비롯한 화실과 관련되어 있는 여러 문서가 들어있었다.그 외에 쪽지 한 장이 있는데.[화실, 그리고 어린 친구들 모두 시아 씨한테 맡길게요.] 유시아는 그 키를 손에 꼭 쥐고서 깊은 사색에 잠겼는데 망설인 끝에 임재욱에게 전화를 걸었다.“뭐 좀 의논하고 싶어서 전화하는 길이에요. 재휘 씨는 이미 해외로 떠났는데 가면서 운영하고 있던 화실을
남자 감옥은 여자 감옥보다 더더욱 험악할 것이다.용재휘처럼 어릴 적부터 명문 세가의 도련님으로 살아왔던 사람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만신창이가 된다.유시아는 자기 힘으로 지키고 싶은 사람들을 어떻게든 지키고 싶었다.그 힘이 아주 미약할지언정 그들을 위해 용기는 내고 결심을 내리면서....임재욱은 변호사에게 소송을 취소하라고 했고 용재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석방되었다.그 소식을 듣자마자 유시아는 바로 구치소 앞으로 달려가 그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기 시작했다.직접 용재휘를 마중하여 직접 용재휘를 해외로 보내려고.만약 정운시에서 계속 머물게 된다면 임재욱은 반드시 또다시 수를 써서 그를 괴롭힐 것이다.불과 며칠 만이지만 용재휘는 전보다 훨씬 수척해진 모습이었다.수염도 조금 나고 입고 있던 옷도 주글주글해지고 무척이나 퇴폐해 보였다.푸른색 츄르닝을 입고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유시아를 보고서 용재휘는 빠르게 달려왔다.“시아 씨.”“수고했어요.”유시아는 그를 향해 웃었다.“이제 다 괜찮아요.”웃고 있는 그녀와 달리 용재휘의 얼굴은 점점 일그러졌다.“임재욱한테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죠? 이렇게 쉽게 풀어줄 사람이 아닌데.”“그런 거 아니에요. 재휘 씨...”유시아는 망설이다가 다시 천천히 덧붙였다.“재휘 씨가 지내던 해외로 그만 돌아가요. 그리고 다시는 여기로 돌아오지 말아요. 그렇게 해주면 안 될까요?”용재휘는 갑작스러운 말을 듣고서 눈을 가늘게 뜨며 생각에 잠겼다.“임재욱 뜻인가요?”“내 뜻이기도 해요.”유시아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엄숙하게 말했다.“여기에 있으면 내가 피곤해져서 그래요. 여기저기 사고만 치고 말이에요. 뺑소니 사고를 낸 것도 아직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았어요. 임재욱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다시 재휘 씨를 법정에 세울 수 있다고요. 제발...”“시아 씨!”용재휘는 갑자기 손을 내밀어 그녀의 손목을 꼭 잡았다.“같이 가요. 같이 해외로 떠나서 우리 집으로 가요.”어차피 임재욱은 아직 병상에 누워있고 유
유시아도 더 이상 빙빙 돌려 말하고 싶지 않았다.임재욱 앞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가 보온 도시락통을 테이블 위에 놓고서 입을 여는데.“비아냥거리려고 부르신 거예요? 제가 보기엔 아닌 거 같은데.”임재욱은 그리 한가한 사람도 아니기와 그렇게 실없는 사람도 아니다.유시아를 부른 건 용재휘 사건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고 싶다는 의지가 깃들어 있다.다만 유시아는 그에 마땅한 대가를 좀 치러야 할 뿐이고.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유시아에게 두려운 것이 없고 감당할 수 없는 것도 없다.임재욱은 살짝 웃으며 손끝으로 안경테를 무심코 툭 밀었다.“점점 똑똑해지는데? 네가 그러면 그럴수록 내가 널 갖고 싶어지잖아.”임재욱은 노트북을 한쪽으로 밀고서 유시아의 손목을 확 당겨 잡았다.침대 머리에 그녀를 앉히고 어느새 새빨개진 그녀의 귀 망울을 서서히 간지럽혔다.“변호사한테 소송 취소하라고 할 수 있어. 그럼, 용재휘는 감옥에 가지 않아도 되겠지? 근데 너도 앞으로 걔랑 다시는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그 말을 듣고서 유시아는 경계가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게 무슨 뜻이에요?”‘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무슨 뜻이지? 재휘 씨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건가?’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유시아를 바라보며 임재욱은 피식 웃었다.“긴장할 필요 없어. 정운시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뜻이었어.”용재휘가 지냈던 해외로 돌아가서 계속 도련님 행세를 하면서 지내라는 것.정운시에서 감빵 생활이나 하면서 지내는 것보다 훨씬 낫다.사고를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느 쪽이 좋은지 판단을 내릴 수 있다.유시아는 자기도 모르게 한시름을 놓게 되었다.“알았어요. 해외로 떠나게 할게요. 다시는 정운시에 들어오지 못하게 제가 그렇게 만들게요.”“실은 좀 궁금해...”임재욱은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보면서 입술을 살짝 사리물었다.“내가 화낼 수도 있는데 이렇게 또다시 찾아와서 사정하는 이유가 뭔지... 용재휘가많이 신경 쓰이나 봐? 그래?”쓴웃음을 지으며 까칠한 눈매로 계속 숨
말을 마치고 유시아는 바로 위층으로 올라갔다.풀이 잔뜩 죽은 듯한 유시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허씨 아주머니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그리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부엌으로 돌아갔다.침실로 돌아온 유시아는 힘없이 두 사람만의 침대로 뻗었다.임재욱의 손에 꼭 조였던 목은 아직도 따끔거렸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일을 망친 것만 같았고 임재욱에게 미움을 제대로 사면서 용재휘까지 심연으로 더 밀어버렸으니.너그러운 마음으로 봐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우스웠다.유시아는 옷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더듬어 심하윤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한참을 망설였지만 결국은 그럴 용기가 없어 용재휘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임재욱에게 사정을 하는 건 이로써 글러 먹은 것 같으니 다른 길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변호사 측 역시 상황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대우 그룹 근처에서 용재휘가 임재욱을 들이박았고 목격자도 많고 곳곳에 CCTV가 있었다.인증, 물증까지 확보한 상황에서 용재휘한테 음주 운전 테스트까지 했는데 음성으로 나와 일은 더더욱 심각해진 것이다.실수가 아니라 계획 살인으로 성질이 달라졌기에.지금의 형세로 본다면 무기징역은 아니더라도 몇 년 정도는 선고받을 것 같다.유시아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다른 방법은 없나요? 감옥에만 들어가지 않게 해주세요. 배상금은 얼마든지...”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유시아는 자기가 내뱉은 말에 웃음이 터졌다.‘배상금? 임재욱한테 돈을 준다고?’임재욱에게 있어서 돈은 숫자에 불과한데.그깟 돈을 받으려고 합의해 주는 그런 사람이 절대 아니란 말이다.그렇게 많은 일을 겪고서도 유시아는 아직도 바보 같고 순진하다.그 뒤로 유시아는 집에 이틀 정도 있었다.임재욱과 대놓고 싸우기도 했으니 이제 와서 또 아첨을 떤다는 건 말도 안 되니 말이다.오히려 그와 반대로 임재욱의 심기를 건드리면서 역효과를 일으킬지도 모른다.3일째 되던 날 강석호가 왔다.임재욱의 지시로 자료를 가지러 왔는데
이제 막 차 사고를 겪고 응급실에서 실려 나온 임재욱이지만 손힘이 대단했다.그에게 꽉 잡힌 턱이 산산조각 날 것만 같았다. 이성을 잃을 정도로 아파 났는데.유시아는 아주 민감하게 그의 정서를 알아차렸다.화를 내는 것이 확실하며 진심으로 노발대발하고 있다고.‘내가 너무 급했어...’응급실에서 갓 나온 사람한테 용서니 뭐니, 용재휘를 위해 부탁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말이다.“말해!”얼굴이 당장 터질 것만 같은 유시아를 죽일 듯이 노려보면서 임재욱은 소리를 질렀다.괴로워하는 그녀의 모습을 훤히 보고 있음에도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말하라고 했잖아! 근데 왜 말을 안 해!”유시아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겨우 소리를 내었다.“부탁 좀 할 게요. 재휘 씨 한 번만 봐주세요. 절대 감옥으로 보내지 말아 주세요...”병상에 누워서 유시아를 괴롭히던 임재욱은 ‘용재휘’라는 이름을 듣고서 마침내 터지고 말았다.응급치료를 받고 나온 환자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단번에 유시아의 목을 잡고 침대로 눕혔으니. 꼼짝달싹 못 할 정도로.순간 링거 호스로 피가 거꾸로 흐르게 되었다.그게 마냥 거추장스러웠던 임재욱은 단번에 링거 호스를 뽑아 버렸는데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를 보였다.핏발이 가득 서린 두 눈으로 유시아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입을 여는데.“다정한 척, 관심하는 척, 부드러운 척... 온갖 척이라는 척은 다 하더니 이거였어?용재휘 그놈이 감옥에 들어갈까 봐 걱정돼서? 내가 그놈 봐줬으면 하지? 그렇지?”응급실에서 사신과 겨루고 있을 때 유시아는 단 1초도 밖에서 기다리지 않고 구치소로 달려갔다.용재휘를 위해 변호사를 선임하고 필요한 물건들까지 꼼꼼히 챙겨 가져다주었다.임재욱이 죽든 말든 전혀 개의치 않았고 용재휘가 감옥에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장 애간장이 탔다.유시아에게 있어서 임재욱은 소현우보다 못하고 용재휘보다 못하며 심지어 예전에 키웠던 개만도 못했다.이러저러한 생각에 임재욱은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순간 눈앞이 희미해지
굿노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굿노벨에 등록하시면 우수한 웹소설을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완벽한 세상을 모색하는 작가도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로맨스, 도시와 현실, 판타지, 현판 등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읽거나 창작할 수 있습니다. 독자로서 질이 좋은 작품을 볼 수 있고 작가로서 색다른 장르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어 더 나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작성한 작품들은 굿노벨에서 더욱 많은 관심과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