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마디만 남은 듯한 유시아의 손목이다.힘을 아주 살짝만 들여도 단번에 부러질 듯한 모습에 용재휘는 가슴이 미어졌다.“시아 씨는 물건이 아니잖아요... 그렇게 쉽게 팔아넘기지 말아요...”“그러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어요.”유시아는 그를 바라보며 피식 웃더니 힘껏 또다시 그의 손을 뿌리쳤다.이윽고 걸음을 재촉하며 구치소 문 앞에 있는 마이바흐 차로 다가갔다.뒷좌석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며 입을 열었다.“강 비서님, 출발하세요.”임재욱의 뜻이었다. 구치소 앞에서 용재휘를 마중하고 그에게 직접 해외로 떠나라고 하는 것.그래서 일부러 강석호에게 유시아를 데려다주라고 한 것이다.시동이 걸리고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백미러에 용재휘의 모습이 보였다.미친 듯이 뛰어오는 그의 모습. 어떻게든 달리고 있는 차를 멈춰 세우려고 하는 그의 모습...절로 가슴이 미어지는 순간이었다. 유시아는 차마 볼 수 없을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갈기갈기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안간힘을 써가며 쏟아져 나오려는 눈물을 꾸역꾸역 삼키면서.‘참아... 심씨 가문이 파산나는 것도 재휘 씨가 감옥에 들어가는 것도 절대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어...’‘내가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인데... 참자...’같은 날 저녁 티켓이었다.용재휘는 비행기에 오르고 나서 유시아에게 사진 한 장을 보냈다.비행기 안에서 공항을 찍은 사진인데, 떠난다는 뜻이었다.유시아는 입술을 사리물고 끝끝내 아무런 답장도 하지 않았다.용재휘가 떠난 지 삼 일째 되던 날, 유시아는 택배 하나를 받았는데 보낸 이가 용재휘였다.속포 안에는 화실 키랑 화실과 계약서를 비롯한 화실과 관련되어 있는 여러 문서가 들어있었다.그 외에 쪽지 한 장이 있는데.[화실, 그리고 어린 친구들 모두 시아 씨한테 맡길게요.] 유시아는 그 키를 손에 꼭 쥐고서 깊은 사색에 잠겼는데 망설인 끝에 임재욱에게 전화를 걸었다.“뭐 좀 의논하고 싶어서 전화하는 길이에요. 재휘 씨는 이미 해외로 떠났는데 가면서 운영하고 있던 화실을
용재휘처럼 유시아도 실력이 만만치 않으니 말이다.그리고 아이들을 상대로 유시아는 상대적으로 간단한 방식으로 가르치고 있다.정신을 몰두하여 사과 한 알을 그리고 있을 때, 옆에 있던 아이가 갑자기 정적을 깨뜨렸다.“시아 쌤, 저기 어떤 아저씨가 보고 있어요.”유시아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는데 유리문 밖에 서 있는 남자가 보였다.임재욱이다. 오늘 퇴원하자마자 유시아를 보려고 일부러 찾아온 것이다.겸사겸사 용재휘가 남긴 흔적도 보고.그렇게 1층부터 훑으면서 올라왔는데 2층에 이르자마자 유시아의 모습에 시선이 쏠리게 된 것이다.필을 들고 몰두하고 있는 유시아의 모습이 아름답고 우아해 보였다.그림을 그리고 있으나 가장 아름다운 그림은 그림을 그리고 있는 유시아의 모습이었다. 임재욱의 눈에는.시선이 마주치자, 임재욱은 멋쩍은 듯 바로 몸을 돌려 1층으로 내려갔다.소파에 느긋하게 기대어 앉아 있는데 직원이 그에게 따뜻한 물 한 잔을 가져다주었다.그의 외모에 저절로 시선이 끌린 직원은 내심 속으로 감탄했다.‘누구 가장이지? 너무 잘생겼잖아.’“재욱 씨.”유시아가 아래층으로 내려왔다.“병원에서 막 나와도 되는 거예요?”“그럼, 안 돼? 내 집고 아닌데 평생 병원에서 살았으면 좋겠어?”임재욱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유시아를 흘겨보았다.이윽고 손목시계까지 보면서 다시 입을 여는데.“언제 퇴근해?”“6시 아니면 7시쯤에야 퇴근할 것 같은데요.”유시아는 살짝 머뭇거렸다.아이들은 거의 다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고 그림 그리기에 소질이 있어 자원으로 혹은 부모님의 등살에 여기로 온 것이다.초등학교 하교 시간은 4, 5시쯤이고 유시아는 한두 시간 정도 수업을 하곤 한다.6, 7시가 되어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갔을 때 유시아는 야식 먹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갔었다.매일을 그렇게 보냈는데 임재욱이 옴으로 하여 모든 패턴이 망가졌다.“일단 밥부터 먹으러 가세요.”“완쾌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몸부터 챙기셔야죠.”“저 기다렸다가
유시아는 아주 오랜만에 임재욱을 보는 것만 같았다.지난번 강석호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을 때도 용재휘에 대해서만 얘기했었다.용재휘가 떠나고 나서 화실을 맡게 되자마자 바삐 돌게 되었는데 그 뒤로 병원에 간 적이 없었다.가만히 생각해 보니 두 사람은 열흘이 훌쩍 넘보도록 보지 못했다.반가운 마음은커녕 임재욱이 전보다 더욱더 낯설고 무섭기만 했다.“그럭저럭 잘 지냈어요.”유시아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며 물었다.“재욱 씨는요?”덤덤하기 그지없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서 임재욱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창밖을 보고 있는 유시아의 모습에 임재욱은 입술을 사리 물었는데, 마음이 다른 데로 가 있는 듯한 그녀의 모습이 언짢았다.버스를 타고 있는 것처럼 모든 승객이 낯선 것처럼, 전혀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돌아오는 답이 없자 유시아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는데 자기를 주시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눈이 마주치고 그의 시선을 감당할 수 없어 유시아는 또다시 파르르 떨며 고개를 돌렸다.“뭘 그렇게 봐요?”임재욱은 손을 내밀어 약간 포악한 모습으로 유시아의 턱을 잡아 강제로 고개를 돌렸다. 다시 자기와 눈이 마주치게끔.두 눈을 지그시 뜨고 유시아를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그제야 입을 열었다.“내 여자 보고 있었어. 무슨 문제라도 돼?”“...”보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억지를 부리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중심 거리라 차가 막혀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임재욱은 그런 상황이 갑갑하여 거리에서 내려 유시아를 데리고 한식당으로 들어갔다.조용한 룸으로 들어오고 나서 임재욱은 두 사람 모두 즐겨 먹는 음식을 주문했다.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임재욱이 입을 여는데.“다음 달에 할아버지 칠순 잔치가 열릴 거야. 너도 같이 가자.”그 말을 듣고서 유시아는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행여나 잘못 들은 건 아닌지 거듭 의심까지 들기도 했는데.“네? 뭐라고요?”칠순 잔치에 함께 가자고 하는 임재욱의 말과 그러한 생각에
임재욱은 화를 참고 성큼성큼 다가가 잡지를 빼앗아버리고 드레스를 훅 던졌다.“입어봐.”유시아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드레스를 가지고 피팅룸으로 들어갔다.문을 여는 순간 누군가가 뒤에서 확 밀치는 느낌이 들었다.갑작스러운 힘에 유시아는 안으로 넘어지고 말았다.이윽고 문이 굳게 닫히는데, 뒤돌아보니 임재욱이었다.좁은 피팅룸은 사면이 거울로 되어 있다.음침한 얼굴을 하는 임재욱의 모습이 시야를 가득 채워 유시아는 이유 모를 압박감이 들었다.“왜... 왜 따라 들어온 거예요?”“지퍼가 뒤에 있잖아.”임재욱은 가슴 앞에 양팔을 감싸 안은 채 여유작작한 모습으로 문에 기대었다.“지퍼 올려주려고 따라 들어왔어.”순간 유시아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그럴 필요 없으니 나가세요.”임재욱 앞에서 옷을 벗기고 새로운 옷으로 입어보고 싶지 않았다.하물며 그가 여기서 무슨 파렴치한 짓을 할지도 모르고.임재욱은 피식 웃으며 물건을 훑어보듯 유시아를 바라보았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순수한 척하는 거야? 네가 보지 못한 곳까지 본 사람이야. 내가.”“할아버지 칠순 잔치에 가고 싶지 않아요.”유시아는 입술을 깨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가고 싶지 않다고요.”눈살을 찌푸리며 임재욱은 갑자기 그녀의 옷깃을 잡아 자기 품속으로 끌어당겼다.“유시아, 내가 바보 같아? 무덤덤한 모습으로 날 대하고 있는데 내가 모를 것 같아? 용재휘를 해외로 쫓아 버려서 그러는 거지? 이런 식으로 나한테 복수하겠다는 거야?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응?”임재욱을 바라보며 유시아는 실소가 터지고 말았다.“내가 뭐라도 되든 안 되든 그게 중요해요? 임 대표님은 전혀 상관없잖아요.”유시아는 자기 포지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임재욱을 3년 동안 사랑했고 3년 동안 미워했고 지금은 더 이상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임재욱에게 있어서 자기는 그저 ‘파트너’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유시아가 누구든 뭐라도 되든 안 되든 그 자신도 개의치 않게 되었다.임재욱은
“...”말문이 막혀 버린 임재욱.생리통이 심한 유시아의 고통을 모르듯이 유시아 또한 지금 임재욱이 느끼고 있는 고통을 모른다.무릎을 위로 올렸을 뿐인데 그게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유시아는 모를 것이다.한참 지나서 임재욱은 고개를 들어 유시아를 바라보며 그녀의 팔을 꼭 잡았다.이를 갈면서 그녀의 이름을 뱉어내는데.“유시아...”당장이라도 자기를 잡아먹을 것 같아서 유시아는 두려움에 또다시 발버둥을 치며 벗어나려고 했다.임재욱은 손을 내밀어 그녀를 다시 잡으려고 했으나 유시아가 이기고 만다.단숨에 피팅룸에서 도망쳐 나온 유시아는 의문이 가득한 직원들의 시선을 마주하며 황급히 백화점에서 나왔다.도망이라도 치는 듯이 한숨도 돌리지도 않고 택시에 올랐다.“기사님! 일단 출발해 주세요!”운전기사는 바로 시동을 걸었다.“손님, 어디로 모실까요?”‘어디로 가야 할까?’유시아에게는 답이 없는 물음이었다. 그녀마저도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디로 갈 수 있는지 모르기에.잠시 생각하더니 유시아는 입을 열었다.“그냥 가주세요. 요금은 제대로 지급해 드릴게요.”“네, 손님.”택시는 가다가 멈추고 멈추다가 다시 달렸다.시원한 밤바람이 창문을 타고 들어와 유시아의 머리를 휘날렸다.유시아는 파르르 떨더니 창문을 굳게 닫아 버렸다.그러다가 가방에서 핸드폰 벨 소리가 들려왔는데, 임재욱이었다.발신자 번호를 보고서 유시아는 망설이다가 바로 끊어버렸다.이윽고 그녀는 한참 밖을 내다보면서 생각에 빠지게 되었다.중시 거리라 차는 계속 막히고 있지만 유시아는 차에서 내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운전기사는 도시 외곽으로 달렸는데, 그곳은 차도 얼마 없고 막힘도 없었다.어느 한 별장 구역을 지나자, 유시아는 갑자기 차를 멈춰 세웠다.“멈춰주세요.”택시비를 내고서 유시아는 차에서 내려 불빛이 아른거리는 별장 구역을 바라보았다.그곳은 반월 별장으로 소현우와 함께 지냈던 집이다.소현우가 없어도 이곳은 유시아에게 피난처와 같은 곳이다.기분이 나쁘거나 괴롭힘을
조금 전에 인사를 나누었던 경비원이었다.“아가씨를 찾는 분이 계십니다. 임재욱이라고 하는데 들여보내도 되겟습니까?”“...”‘이렇게 빨리 찾아온 거야?’임재욱은 유시아가 갈 곳이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무조건 소현우와 지냈던 별장으로 갔겠다고 단정했다.유시아는 아랫입술을 깨물다가 입을 열었다.“아니요. 제가 나갈게요.”말을 마치고 그녀는 바로 별장 밖으로 향했다.불을 끄고 별장 문을 닫는 순간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별장 안을 거듭 들여다보았다.조명 하나 없이 어두컴컴하기만 했지만, 무척이나 아쉬웠다.이곳에 연연하고 이곳에 남아 있는 기운에 발목이 잡혔다.그리고 왠지 모르게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다는 좋지 않은 예감도 들었다.한참 지나서 유시아는 문을 별장 대문을 닫고 빠르게 걸어 나왔다.별장 구역 밖에 마이바흐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임재욱은 뒷좌석에 앉아 있었는데 유시아가 오는 것을 보고 직접 문을 열어주며 비아냥거렸다.“시아쌤답지 않게 왜 사고 치고 도망가는 거예요?” 유시아는 그의 곁에 앉아서 무덤덤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임재욱은 바로 고개를 돌려 강석호에게 말했다.“출발하세요.”시동이 걸리면서 임재욱은 또다시 조롱하기 시작했다.“여기가 유난히 마음에 드나 봐?”그 말에 유시아는 마침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하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덤덤하기 그지없었다.“그래서요?”임재욱은 한참을 침묵하더니 갑자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소현우가 남겨준 아파트 그리고 저 별장까지 나한테로 넘겨. 내가 가져야겠어.”그 말을 듣고서 유시아는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조금 전 온몸을 습격했던 그 예감 때문에.식스 센스라는 것이 정말로 있는 듯 무서울 정도였다.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다는 생각만 들었지 정말로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놀라움과 괴로움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겨우 입을 여는데.“어떻게...”“네가 자꾸 도망가잖아.”임재욱은 그녀의 말을 끊어버리고 똑바로 바라보며 한 글자씩 뱉었다.“내가 그동안 너무 인
피비린내가 느껴지고 나서야 유시아는 천천히 멈추기 시작했다.임재욱은 바로 그녀의 턱을 잡아당겨 두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대답하라고!”“맞아요.”유시아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대놓고 그에 대한 모든 한을 드러냈다.“미워요. 지금 당장 죽어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정도로요. 가능하다면 평생 그쪽 얼굴 보고 싶지 않을 만큼으로 밉고 싫어요.”“그래.”임재욱은 아픈 말만 하는 유시아를 바라보면서 입꼬리를 올렸다.“어차피 넌 평생 날 사랑할 리도 없잖아. 그럼, 평생 날 미워해. 평생토록 날 미워하고 증오해.”유시아의 사랑이든 미움이든 그게 뭐든 받아들일 수 있었다.하지만 유독 자기를 무시하고 홀대하는 그녀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늦은 밤, 두 사람 모두 어두운 얼굴로 각자 별장으로 들어갔다.임재욱은 쇼핑백 두 개를 들고 들어와서 옷을 갈아입고 있는 유시아에게 말했다.“입어 봐. 사이즈 맞지 않으면 바꾸고.”유시아는 그의 손에서 드레스를 건네받았다.임재욱의 마음을 도통 알 수가 없으나 소현우가 남겨준 집까지 빼앗아 가는 것으로 자기에 대한 불만이 가득하다는 것만은 확인되었다.집까지 모두 넘겨주고 나면 유시아는 정말로 빈털터리가 된다.만약 그의 심기를 건드리게 된다면 그다음은 심씨 가문 차례가 될 것이다.그러한 상황이 펼쳐지게 되면 유시아가 했던 모든 희생이 물거품으로 되어 버린다.유시아는 쇼핑백을 들고서 옷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으려고 했다.그때 임재욱이 문을 가로막아 버리는데.“우리 사이에 그냥 갈아입지 그래?”유시아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임재욱은 한 걸음 더 다가와 웃는 듯 마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왜? 밀당이라도 하겠다는 거야?”그런 임재욱을 바라보면서 유시아는 피식 웃었다.“제가 어찌 감히... 보기 싶으시다면 보여 드려야죠.”말하면서 그녀는 드레스를 가지고 거울 앞으로 다가가 천천히 하나씩 벗기 시작했다.원피스, 이너, 스타킹... 양파 껍질을 벗기듯이 한층 씩.마지막 한 층이 되었
남은 거라곤 아무것도 없는 유시아, 그나마 쓸 수 있는 건 머리와 입뿐이다.아픈 말들로 임재욱의 몸에 상처만 낼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그런 그녀의 모습에 임재욱은 가볍게 웃기만 했다.고개를 바짝 들고 한 마디도 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귀엽다면서.고개만 숙이고 하자는 대로 비굴하게 모두 따라왔던 꼭두각시보다는 훨씬 났다.적어도 영혼이 살아 있고 생기가 넘치니 말이다.임재욱은 손을 들어 핏기가 거의 없는 그녀의 입술을 만지작거렸다.“난 그런 말만 골라서 하는 네 입술이 좋아.”유시아는 갑자기 두 손으로 그를 확 밀쳐내는데.“임재욱 씨, 그만해요!”사방이 막힌 기분이 들었다.아무런 내색도 없이 모든 것을 앗아가는 임재욱의 모습에 숨이 막혔다.울고 난리를 피우고 아픈 말들로 공격을 해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으니.유시아는 임재욱을 호되게 째려 보고서 밖으로 걸음을 재촉했다.옷방을 나서려는 그 순간 임재욱은 또다시 뒤에서 그녀를 확 끌어안았다.유시아는 단숨에 푸근하고 넓은 그의 품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그녀를 들어 안고서 임재욱은 두 사람만의 침대로 유시아를 던지고 바로 덮쳐왔다.운명을 받아들인 듯 유시아는 눈을 감았다. 항상 이랬으니.임재욱은 기분이 나빠지기만 하면 이와 같은 방식으로 유시아를 괴롭히고 아프게 했다.시작은 임재욱의 화로 끝은 유시아의 고통으로.주인이 애완견을 대하듯이 기분이 좋을 때는 애지중지 여기고 여기저기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이것저것 가득 사주고.그러나 만약 애완견의 애교 정도가 지나치다면 바로 그 자신만의 방식으로 누가 주인이고 누가 스폰서를 받고 있는지 똑똑히 알려 준다.전과 달리 임재욱은 난폭하게 그녀의 옷을 찢어 버리지 않고 아주 부드럽게 얼굴에 뽀뽀부터 했다.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한 듯 조심스러워하는 그의 모습과 뽀뽀에 유시아는 그만 간지러워 고개를 돌렸다.임재욱은 바로 그녀의 고개를 돌려왔다.“시아야, 너 그거 알아? 5년간의 네 기억을 지우기 위해 내가 얼마나 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