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오후.심전웅 등 집안사람들이 모두 외출하자 심지안은 신분증을 챙긴 뒤 짐을 싸 들고 약속 장소로 나갔다.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캐리어를 본 성연신이 의아한 듯 물었다.“이사하려고요?”심지안이 말했다.“결혼해요, 우리. 하지만 조건이 있어요. 전 지금 잠시 머무를 곳이 필요해요.”“그리고요?”“없어요.”성연신이 얼음장같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나한테 돈 외 다른 것은 바라지도 말아요.”일반적으로 여자에겐 낭만적인 결혼 생활에 대한 로망이 있다. 그녀가 이렇게 쉽게 승낙한 건 분명 만족스러울 정도의 이익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여 아무것도 필요 없다는 그녀의 말을 성연신은 쉬이 믿을 수가 없었다.심지안은 그의 속내를 파악하기라도 한 듯 빙그레 웃음 지으며 말했다.“성연신 씨, 자고로 백 퍼센트란 없는 법이에요. 또 알아요? 연신 씨가 날 사랑하게 될지?”그녀는 운이 나빠 쓰레기 같은 남자를 만난 것일 뿐, 그건 그녀를 원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어디서든 퀸카 대접을 받는 인기 만점이던 그녀였다!성연신은 눈을 가늘게 치켜뜨고는 눈앞의 여자를 쳐다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래요. 뭐 자신감이 있는 건 좋은 일이죠.”20분 뒤.혼인신고를 마친 심지안의 눈동자엔 복잡함이 잔뜩 어려있었다. 어제의 일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만난 지 하루도 채 되지 않는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으니 말이다.정말이지 자신이 저질러 놓고도 믿을 수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성연신은 그녀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무슨 일 있으면 명함에 적힌 번호로 연락해요.”“알겠어요.”심지안이 머뭇거리며 말했다.“저기, 제가 머무를 곳은 어디에 있나요?”“운전기사가 데려다줄 거예요.”말을 마친 성연신은 손목시계를 슥 보고는 다른 차를 타고 빠르게 자리를 떴다.“심지안 씨, 제가 짐을 차에 실어드릴게요.”심지안의 눈앞에 건장한 몸집의 중년 남자가 나타났다. 그녀는 한눈에 어
심지안의 당황스러움을 눈치챈 운전기사가 설명했다.“도련님께선 귀국하신 지 얼마 되지 않으십니다. 때문에 본가를 제외하고 소유한 집은 이것 하나뿐입니다. 만약 아가씨가 불편하시다면 제가 도련님에게 말씀드릴게요.”“전 괜찮아요!”그녀는 잠시 강우석의 삼촌이 오랫동안 해외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다른 부잣집 도련님들과는 달리 집이 하나밖에 없다는 건 어쩌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일 것이다.하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다. 한 지붕 아래에서 지내다 보면 더 빨리 친해질 수 있을 테니 말이다.오후 다섯 시 반, 모든 짐 정리를 마쳤다.그녀는 거실을 쭉 둘러보았다. 별장의 전체적인 인테리어 스타일은 심플 그 자체였는데 반드시 필요한 가구들과 전자제품을 빼고는 아무것도 없어 썰렁한 느낌까지 들었다. 운전기사의 말대로 확실히 최근에 이사를 한 것 같았다.심지안의 시선이 이어 냉장고로 향했다. 냉장고 문을 여니 안에 꽉 채워져 있는 신선한 식자재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빙긋 웃으며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찾기 시작했다.아내로서 일하고 들어온 남편에게 따뜻한 음식을 준비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30분 뒤, 성연신이 집에 돌아왔다.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오자 심지안은 바쁜 와중에도 고개를 돌려 성연신을 바라보았다. 남자는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있었는데 넓은 어깨와 긴 다리, 곧게 뻗은 몸선이 어우러져 만든 정장핏은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였다.비현실적인 남자의 모습에 눈길을 사로잡힌 심지안은 저도 모르게 몇 번이나 쳐다보고는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올라가서 쉬어요. 음식이 다 준비되면 부를게요.”성연신은 앞치마를 입고 반달웃음을 지어 보이는 여자를 보며 덤덤히 “네.” 한마디 대답하고는 서재로 올라갔다. 그 모습은 마치 여자가 요리하는 일을 아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 같았다.하지만 누가 알았겠는가, 오늘은 심지안이 처음으로 직접 요리를 하는 날이라는 걸 말이다.물론 요리는 대실패였다.심지안은 자신이 만든 제육볶음을 한참 쳐다보고는
심지안은 황급히 배달 앱을 끄고 채소를 써는 척 칼을 들었다.“거의 다 됐어요. 훌륭한 셰프의 고급 요리를 맛보려면 기다림은 필수죠!”성연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서재로 돌아갔다.그는 만약 상 위에 놓여있는 검게 타버린 브로콜리를 보지 않았다면 아마 그 말을 믿었을지도 모른다.배달 앱은 21세기 가장 위대한 앱이다. 심지안은 배달되어 온 음식을 모두 접시에 깔끔하게 담아 그럴듯하게 상 위에 차려놓고는 배달 주머니와 그릇들을 모두 깊숙한 곳에 숨겼다.모든 준비를 마치고 난 뒤 그녀가 소리쳤다.“다 됐어요. 어서 나와서 드세요!”밥상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심지안은 긴장한 얼굴로 성연신의 낯빛을 살폈다. 별다른 변화 없는 그의 얼굴을 확인하자 그녀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배달 앱이 아주 많이 유용하긴 하지만 계속 이런 식으로 속인다면 언젠가는 들키고 말 것이다. 꼬리가 길면 밟히기 마련이니 말이다.시간을 내어 제대로 요리를 배워봐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심지안이었다.그녀는 한편으로 밥을 먹으면서도 한편으론 온갖 잡다한 생각에 사로잡혀있었다.그때 돌연 복부에서 극심한 고통이 밀려왔다.그녀는 가쁜 호흡을 내뱉으며 두 손으로 배를 움켜쥐었다.그녀의 변화를 인지한 성연신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그녀를 보며 말했다.“왜 그래요?”심지안이 창백해진 얼굴로 말했다.“괜찮아요. 그저 배가 좀 아파서 그래요. 전 진통제 하나 먹고 올 테니까 연신 씨는 식사 계속해요.”말을 마친 그녀는 손으로 상을 집고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서고는 한 걸음 한 걸음 방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성연신의 이마가 살짝 찌푸려졌다.“진짜 배만 아픈 거 맞아요?”“네. 고질병이에요.”해외 출장 기간 동안 그녀는 스트레스 때문에 가끔씩 복통이 있었고 그때마다 진통제 한 알을 먹으면 괜찮아졌었다.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통증은 나아지지 않고 도리어 더 가중되기만 했다.심지안의 방 문 앞을 지나가던 성연신의 눈에 고통스럽게 배
몸이 탈진하도록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을 위해 변명을 해주느라 애쓰는 여자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성연신의 눈동자가 더욱 깊어졌다.그 말을 들은 의사는 동의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심지안에게 말했다.“일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건강이에요. 몸이야말로 나의 가장 중요한 재산이니까요.”“선생님의 말씀이 맞아요. 앞으론 절대 거르지 않고 제때 식사하도록 할게요.”그녀가 가엾은 얼굴로 물었다.“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일단 링거를 맞아요. 남편한테 가서 병원비를 계산하라고 하세요. 잠시 후 간호사가 데리러 올 거예요.”의사가 진단서와 약처방을 성연신에게 건넸다.성연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것들을 받아들고는 1층으로 향했다.남자의 건장한 뒷모습을 보며 심지안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오늘 음식을 제대로 차리지 못한 것도 모자라 자신을 병원에까지 실려 오게 만들었다. 너무나도 창피했다.병원 응급실엔 사람이 너무 많았고 이제 더이상 응급실에 있을 필요가 없었기에 그녀는 일반병실로 옮겼다.병원비를 모두 지급하고 난 뒤 병실에 올라온 성연신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에게 아직 처리할 일이 남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심지안은 얼른 혼자 링거를 맞아도 괜찮으니 회사에 가도 된다는 의미로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남자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임시 간호원 한 명을 찾아주고는 병원을 나섰다.링거를 다 맞고 나니 어느새 밤은 깊어져 있었다. 너무 피곤했던 심지안은 병원에서 그대로 잠들어버렸다.다음 날 아침 깨어났을 때, 그녀는 심전웅으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오늘 오후 우 대표를 만나 계약을 체결하는 일을 잊지 말라는 내용이었다.심지안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딸이 외박을 했는데도 아버지란 사람은 회사 일에만 관심을 둘 뿐, 걱정의 말 한마디조차 하지 않는다.하지만 어릴 때부터 비일비재한 일이었던지라 이미 익숙해져 딱히 슬프지도 않았다.심지안은 침대에 잠시 앉아있다가 병원에서 나가 택시를 타고 성연신의 별장으로 돌아갔다.
손남영이 아래턱을 만지작거리며 자리에 멈추어 서 있는 성연신을 보며 물었다.“아는 사람이에요?”성연신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왜 빨리 달려나가서 영웅처럼 구해주지 않고요?”그가 배시시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연약한 여자가 변태한테 당하는 걸 보고만 있으려고요?”“알긴 하는데 친하진 않아.”그 말인즉슨 도와줄 생각은 없다는 것이다.‘연약한 여자’ 라니... 혼인신고를 하던 날 그 무거운 캐리어를 혼자 끌고 다니던 여자가 아닌가...그 반응은 손남영이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성연신은 오지랖을 부리며 다른 사람의 일에 참견하는 사람이 아니다.하지만 손남영은 여전히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왜냐하면 눈앞의 그 여자가 너무나도 매혹적인 미모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길고 곧게 뻗은 다리, 잘록한 허리, 백옥같이 하얗고 광채가 도는 피부, 몸에 걸친 심플한 정장을 뚫고 드러난 완벽한 S라인 몸매, 그야말로 국내 최고 인기 여배우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절세미인이었다.손남영은 그런 여자가 고초를 겪는 건 보고 싶지 않아 성연신에게 말했다.“형과는 안 친하다고 했잖아요. 그럼 내가 가서 도와줄까요?”순간 성연신이 차가운 눈으로 그를 쏘아보며 날카롭게 내뱉었다.“뭐라고?”그의 과격한 반응에 화들짝 놀란 손남영은 손을 내저으며 다 장난이라는 듯 말했다.“아니에요, 아니에요. 제가 저기에 껴서 뭘 하겠어요!”성연신은 그제야 심지안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중년 남자는 어딘가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듯 필터 없이 입에 담지 못할 더러운 말들을 내뱉었다.“너 내 앞에서 연기하지 마!”중년 남자는 어디에서 우스운 얘기라도 들은 듯 비릿한 웃음을 짓고는 사방에 침을 튀기며 말했다.“지금 곧바로 나한테 사과하고 얌전히 올라가. 내가 6층에 방을 잡아놓았으니까. 일이 끝나면 내가 사인해 줄게. 쓰레기 년이 감히 나한테 귀한 집 아가씨 행세를 할 생각은 하지도 마!”“나한테 같이 자달라고 하기 전에 거울로 당신 얼굴부터 좀 보세요. 나한테 당신이 가
핸드폰 저편에서 심전웅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또다시 분노를 터트렸다.“내가 언제 몸을 팔라고 했어. 네 능력이 부족해 프로젝트를 망쳤으면서 그런 말도 안 되는 변명으로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지 마!”심지안은 이마를 찌푸렸다.“전 그런 적 없어요. 그 사람이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제 몸에 손을 댔다고요...”“넌 무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준비해왔던 프로젝트를 망쳐버렸어. 네 무책임한 행동이 회사에 얼마나 큰 손실을 빚었는지 알기나 해?”“저 때문이 아니라고 이미 말씀드렸잖아요. 못 믿으시겠다면 조사해보세요. 주차장에 CCTV도 있을 테니까요.”“쓸데없는 말 그만해. 듣고 싶지 않으니까. 회사의 손실을 책임지거나, 우 대표의 용서를 받고 다시 계약을 체결하거나, 둘 중에 하나를 골라. 이건 내가 네게 주는 마지막 기회야!”그 말을 끝으로 심전웅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귓가엔 무정하기 그지없는 뚜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심지안은 정신을 잃기라도 한 듯 처량한 얼굴로 핸드폰 화면에 쓰여진 「아빠」 두 글자를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등 뒤의 차량이 귀를 찢을 듯한 경적 소리를 낸 다음에야 정신을 차린 그녀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자리를 내어주고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미안함을 전했다.그때 손남영의 차도 주차장에서 나왔다. 그는 한눈에 교차로 중앙에 서 있는 심지안을 발견하고는 백미러로 시선을 돌렸다. 뒷좌석에 앉아있는 성연신 또한 심지안이 서 있는 방향에 눈길을 고정하고 있었다. 손남영이 물었다.“가는 길에 태워줄까요?”성연신은 습관적으로 차 창문을 열고는 서늘한 바람을 맞이했다. 그가 입을 열려고 한 순간, 마침 그를 발견한 심지안이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성연신을 바라보고 있었다.이어 여자의 얼굴을 뒤덮었던 슬픔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찬란한 미소만 그 자리를 채웠다. 그녀가 활짝 웃으며 팔을 흔들었다.“신이 씨!”“풉!”손남영은 깜짝 놀라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웃음을 터뜨렸다.신이 씨? 너무나도... 다정한 호칭이다!성연신이 얼굴을 굳히며
심지안은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올랐다. 며칠간 숨조차 편히 쉬지 못하며 참고 억눌렀던 감정이 폭발해버리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해외에서 몸이 망가질 정도로 일에 심신을 다 바쳤다. 하지만 그 결과 남자친구에게 배신을 당한 것도 모자라 이젠 밥도 먹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충 옷을 걸친 다음 택시를 타고 심씨 가문 계열사 난진 그룹으로 향했다.그녀가 회사에 도착했을 때 마침 회의를 마친 사람들이 회의실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심연아는 심전웅의 등 뒤에서 일에 대한 궁금증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심전웅은 자애로운 얼굴로 대답해주고 있었다. 그야말로 보기 좋은 다정한 부녀의 모습이었다.심전웅은 지난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토록 온화하고 부드러운 태도를 심지안에게는 단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다.그녀는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서러움에 또다시 눈물이 차올라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애써 표정을 감추었다.심연아가 앞에 서 있는 심지안을 발견하고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환히 웃으며 말했다.“지안아, 드디어 돌아왔구나. 요즘 어디에 갔었던 거야?”심지안은 가식적인 그녀의 표정을 힐끗 보고는 가소롭다는 듯 시선을 돌리고 단도직입적으로 심전웅에게 물었다.“왜 3개월 동안 저한테 월급을 주지 않은 거예요?”심지안의 질문에 심전웅의 얼굴이 아까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180도 바뀌었다. 그는 심지안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말했다.“이유를 묻기 전에 네가 어떻게 행동했는지부터 생각해.”심지안이 화가 난 얼굴로 말했다.“제가 다 얘기했잖아요. 오늘 계약을 체결하지 못한 건 제 탓이 아니라고요. 이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전 어제 관련된 모든 자료를 읽고 숙지했어요. 업무적으론 절대 착오가 없었어요. 상대방이 절 존중하지 않아 일이 틀어진 거예요.”그녀는 어제 링거를 맞으면서도 늦은 밤까지 자료를 읽었다. 일에 있어선 항상 누구보다도 진지한 태도로 임하는 그녀였으니 말이다.“네가 무슨 낯으로 어젯
그 말을 들은 심연아의 얼굴에 은밀한 흥분감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녀는 심각한 얼굴로 심지안을 막아섰다.“지안아, 그런 충동적인 말은 하면 안 돼. 이곳은 네 집인데 그만두고 어디에 간다는 거야? 나한테 돈이 있으니까 퇴근하면 너한테 보내줄게. 그것으로 월급을 받았다고 생각해. 응?”“쟤가 뭘 하든 신경 쓰지 마! 나가고 싶으면 빨리 꺼져! 짜증 나게 눈앞에서 아른거리지 말고!”심지안이 절대 우 대표에게 사과하지 않을 거라는 걸 확인하고 나자 더더욱 화가 치솟아 오른 심전웅은 경비원을 부른 뒤 심연아의 팔목을 잡고 씩씩거리며 사무실로 들어가 버렸다.얼마 후 경비원이 달려와 나가지 않으면 끌고서라도 내보낼 기세로 심지안의 몸을 잡았다.“내 몸에 손대지 마. 나 혼자 나갈 수 있어!”그녀는 깊게 호흡하고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당당한 걸음을 내디디며 밖으로 나갔다.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회사 문을 나서자마자 심연아를 찾아온 강우석과 마주쳤다.심지안의 어두운 얼굴을 본 강우석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그녀에게 충고랍시고 말했다.“너와 연아는 가문에서의 지위가 하늘과 땅 차이잖아. 넌 아저씨의 말에 군소리 없이 따라야지 맞서선 안 돼. 남자는 자신의 말을 고분고분 잘 듣는 여자를 좋아하잖아. 그런데 넌 쓸데없이 너무 꼿꼿해.”심지안은 외모도 출중하고 능력도 있지만 집안의 도움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반평생을 노력해도 이렇다 할 집 한 채조차 마련하지 못할 것이다.가난함이라면 치를 떠는 강우석은 항상 부와 권세를 움켜주기를 갈망했다. 하여 자신에게 날개를 달아줄 뒷배를 얻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그였다.“얘기 다 끝났어?”심지안은 강우석 이 쓰레기만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구역질이 올라올 것만 같았다. 그녀가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말했다.“꺼져.”“너!”강우석은 냉정한 그녀의 태도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난 진심으로 널 돕고 싶어서 한 말인데 태도가 왜 그래?”“내가 언제 너한테 도와달라고 했어? 오지랖 부리지 마.”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