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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혼인신고

은옥매가 심지안의 곁을 스쳐 지나가며 등을 톡톡 두드리고는 위로하는 척 말했다.

“지안아, 화내지 마. 내가 이미 네 언니를 혼내줬어. 언니로서 응당 동생에게 양보해야지.”

“지안아, 미안해. 나 내일 바로 우석이한테 가서 약혼을 취소하자고 말할게.”

심연아는 연민을 잔뜩 불러일으키는 그렁그렁한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며 상처받은 얼굴로 말했다.

“감정이라는 거 마음대로 할 순 없지만 넌 그 사람을 좋아하고 있잖아. 네 언니인 내가 그 사람과 너무 가까이 지내면 안 되는 거였어...”

심지안은 그녀의 역겨운 말에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가까이 지냈다는 건 침대에서 함께 뒹굴 정도로 가까이란 뜻이야?”

“너 그게 무슨 막말이야!”

심전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약혼은 예정대로 진행할 거야. 청첩장도 다 보냈는데 취소하라고? 난 그런 창피는 당할 수 없어.”

“제 말은 모두 사실이에요!”

심지안이 눈물이 가득 차올라 붉어진 눈으로 은옥매를 가리키며 한글자 한글자 내뱉었다.

“심연아도 저 사람처럼 다른 여자의 남편을 빼앗는 취미가 있어요. 대체 왜 저런 사람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건데요!”

말이 끝나기 바쁘게 심전웅이 심지안의 뺨을 후려갈겼다.

감당할 수 없는 힘의 충격에 심지안은 머리에서 윙윙 소리까지 들려왔다.

그 모습을 본 은옥매의 눈동자에 잠시 흐뭇함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감추고는 당황스러운 척 심전웅을 막았다.

“이러지 말고 말로 하세요!”

“저런 애를 감싸긴 왜 감싸. 집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 집에서 얌전히 있으려면 있고 아니면 당장 꺼져. 죽은 네 엄마처럼 보기만 해도 짜증 나니까.”

심전웅은 분노에 씩씩거리며 일그러진 표정으로 심지안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딸을 보는 아버지의 눈빛이 아닌 한 맺힌 원수를 향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안이는 아직 어리니까 당신이 이해해요. 당신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하잖아요. 어서 나랑 같이 들어가서 자요.”

은옥매는 심연아에게 눈짓하며 말했다.

“지안이를 잘 위로해줘.”

심연아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일만으로도 바쁘실 텐데 제 어리석음 때문에 심려 끼쳐드려 죄송해요.”

...

심지안은 뺨을 맞던 자세 그대로 멍하니 자리에 서 있었다.

은옥매가 엄마와 아빠 사이에 끼어들어 두 사람 사이에 금이 가게 만든 건 분명한 사실이다. 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신 뒤에는 한 살이 된 심연아를 안고 뻔뻔스럽게 들어와 집안 안주인 자리를 꿰찼다.

그럼에도 왜 오늘날 배척당하는 건 심지안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제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심전웅이 그녀의 몸에 손을 댄 그 순간, 그녀는 아버지의 본색을 똑똑히 알게 되었다. 그의 마음엔 자신과 엄마의 자리라는 건 단 한 톨도 남아 있지 않다는 걸 말이다. 그들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자그마한 틈새조차 생기지 않을 것이다.

심전웅과 은옥매가 침실에 들어간 뒤 문이 닫히는 순간, 심연아의 얼굴에선 웃음기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그 대신 자리 잡은 건 무정하고도 사악한 조롱 섞인 표정이었다.

그녀는 심지안에게 가까이 다가가 두 사람만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낮은 목소리로 심지안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난 또 강우석을 꼬시는 게 어려울 줄 알았잖아. 손가락만 몇 번 까딱하니까 나한테 빠져서 너와 헤어지겠다고 하던데? 너무 재미없어. 참, 그리고 너한테 질린 지 오래됐다고 하더라.”

심지안은 무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 자식 개 아니야? 개똥을 그렇게 좋아하는 거 보면.”

심연아는 분노에 눈을 부라렸다.

“너 입에 걸레라도 물었어? 말 좀 가려서 해!”

심지안은 곧바로 몸을 돌려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침대에 기대어 앉아 가방 안에서 명함을 꺼냈다. 그 위에는 이름과 전화번호가 새겨져 있었다.

「성. 연. 신.」

하지만 강우석의 엄마는 성 씨가 아니었지 않나.

아마 평소 늘 이모라고 부르다 보니 잘못 기억했나 보다.

심지안은 그런 시시콜콜한 부분은 개의치 않은 채 명함에 쓰여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성연신 씨, 안녕하세요. 저 결정했어요. 내일 오후 혼인신고하러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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