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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우린 어제 혼인신고를 했어

그 말을 들은 심연아의 얼굴에 은밀한 흥분감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녀는 심각한 얼굴로 심지안을 막아섰다.

“지안아, 그런 충동적인 말은 하면 안 돼. 이곳은 네 집인데 그만두고 어디에 간다는 거야? 나한테 돈이 있으니까 퇴근하면 너한테 보내줄게. 그것으로 월급을 받았다고 생각해. 응?”

“쟤가 뭘 하든 신경 쓰지 마! 나가고 싶으면 빨리 꺼져! 짜증 나게 눈앞에서 아른거리지 말고!”

심지안이 절대 우 대표에게 사과하지 않을 거라는 걸 확인하고 나자 더더욱 화가 치솟아 오른 심전웅은 경비원을 부른 뒤 심연아의 팔목을 잡고 씩씩거리며 사무실로 들어가 버렸다.

얼마 후 경비원이 달려와 나가지 않으면 끌고서라도 내보낼 기세로 심지안의 몸을 잡았다.

“내 몸에 손대지 마. 나 혼자 나갈 수 있어!”

그녀는 깊게 호흡하고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당당한 걸음을 내디디며 밖으로 나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회사 문을 나서자마자 심연아를 찾아온 강우석과 마주쳤다.

심지안의 어두운 얼굴을 본 강우석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그녀에게 충고랍시고 말했다.

“너와 연아는 가문에서의 지위가 하늘과 땅 차이잖아. 넌 아저씨의 말에 군소리 없이 따라야지 맞서선 안 돼. 남자는 자신의 말을 고분고분 잘 듣는 여자를 좋아하잖아. 그런데 넌 쓸데없이 너무 꼿꼿해.”

심지안은 외모도 출중하고 능력도 있지만 집안의 도움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반평생을 노력해도 이렇다 할 집 한 채조차 마련하지 못할 것이다.

가난함이라면 치를 떠는 강우석은 항상 부와 권세를 움켜주기를 갈망했다. 하여 자신에게 날개를 달아줄 뒷배를 얻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그였다.

“얘기 다 끝났어?”

심지안은 강우석 이 쓰레기만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구역질이 올라올 것만 같았다. 그녀가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말했다.

“꺼져.”

“너!”

강우석은 냉정한 그녀의 태도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난 진심으로 널 돕고 싶어서 한 말인데 태도가 왜 그래?”

“내가 언제 너한테 도와달라고 했어? 오지랖 부리지 마.”

말을 마친 심지안이 발걸음을 떼려고 했을 때 분에 못 이긴 강우석이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심지안, 넌 네가 무슨 대단한 여자라도 되는 줄 알아? 난 우리가 그동안 함께 했던 정을 생각해서 연인은 아니더라도 친구는 돼주려고 했어. 네가 안쓰러워 보여서 충고도 한 거고.”

그 말을 들은 심지안이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강우석의 외모만큼은 확실히 출중하다는 걸 인정했다. 심지어 대학 시절 킹카로도 통했으니 말이다.

강우석의 구애를 받아줬던 건 그의 외모 때문이기도 했다. 거기에 항상 다정했던 행동과 어릴 적부터 함께 보내면서 쌓였던 정까지 더해져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랑의 감정이 빠지니 눈앞의 이 남자는 외모나, 성격, 능력 모든 면에서 성연신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았다.

“대단하신 강 도련님과 내가 어떻게 친구가 되겠어. 난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겠는걸.”

심지안이 피식 웃고는 똥 씹은 표정을 짓고 있는 강우석의 옆을 지나쳐 걸어갔다.

진유진에게서 온 카톡 문자에 답장을 한 다음 시계를 보니 이미 오후 다섯 시가 되어있었다. 심지안은 진유진을 만나러 그녀의 회사로 향했다.

회사에서 나온 진유진이 심지안을 보고는 걱정스레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일이 왜 그렇게 심각한 방향으로 흘러간 거야? 왜 사직까지 했어?”

그녀는 심지안의 문자를 보고는 걱정되는 마음에 당장 반차까지 낼 뻔했다.

심지안은 씁쓸한 얼굴로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자초지종을 모두 알게 된 진유진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올랐다.

“네 아버지는 일의 옳고 그름도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이야?”

자신의 딸이 큰일을 당할 뻔했는데도 그의 관심사는 오직 프로젝트뿐이다. 그것도 모자라 딸의 월급까지 갈취하다니, 정말이지 도저히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는 사람이다.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절대 친딸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했을 것이다!

“이젠 집도 가지 않고 회사에도 발을 들이지 않을 거야. 시끄러운 일이 반으로 줄었으니 이것도 꽤 괜찮네.”

심지안이 홀가분한 듯한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진유진의 눈엔 오히려 그녀의 서글픔만 보였다.

“괜찮아. 돌아가기 싫으면 돌아가지 않으면 되는 거지. 잘됐어. 이제 우리 집에 와서 함께 지내.”

“아니야. 나 이미 지낼 곳 찾았어.”

“뭐? 벌써 전셋집을 찾은 거야?”

“아니.”

심지안이 멋쩍은 얼굴로 머뭇거리며 말했다.

“나 강우석의 삼촌과 결혼했어. 마침 그 사람도 결혼 상대가 필요하다고 하더라고. 우린 어제 혼인신고도 했어. 그리고 그 사람의 집에 빈방이 있어 들어가 함께 살게 됐고.”

진유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이야?”

만난 지 하루 만에 결혼하다니!

“지안아, 네가 그 사람이랑 사귀는 건 반대 안 해. 하지만 결혼 같은 큰일은 좀 더 신중하게 고민해봐야 하는 거 아니야?”

그녀는 해외 출장에서 돌아온 뒤 연이은 충격에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로 인해 그녀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의 범주를 벗어나게 된 것임이 분명하다.

“음... 당시엔 술기운이 좀 있긴 했어. 하지만 결혼에 대해선 충분히 생각했으니까 걱정하지 마.”

심지안이 화제를 돌렸다.

“너 얼마 전 나한테 얘기했잖아. 너희 회사에서 직원을 구한다고. 아직도 나한테 적합한 자리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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