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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강세헌은 눈썹을 치켜들며 압도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뭐라고?”

“됐어. 네 행복을 위해서라면 화를 참는 것쯤은 당연히 해줘야지.”

강세헌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심재경을 바라보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만 가지.”

임지훈이 차를 몰고 멀어져갔다.

심재경은 송연아를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가 마침 휴게실로 돌아가 송연아를 찾으려고 할 때, 그녀가 병원 안에서 걸어 나왔다.

“연아야.”

“선배, 저 이제 돌아가려고요.”

미소를 짓는 송연아의 모습에 심재경은 기분이 말이 아니었다.

“네 어머니 심장 기증자 말이야, 내가 최선을 다해 찾아볼게.”

어머니 얘기가 나오자 송연아는 몸이 흠칫 떨렸지만, 그래도 애써 차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는 숨길 수 없었다.

“정말요?”

심장이식은 기증자를 찾기 어렵기로 유명했다. 어떤 환자는 사망할 때까지도 기증자를 찾지 못하기도 한다.

“감사해요, 선배.”

송연아는 감사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눈가가 점점 붉어졌다.

“우리 사이에 감사는 무슨...”

심재경은 약간 미안한 감이 들었다. 만약 강세헌이 없었더라면 그녀는 꿈과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집까지 데려다줄게.”

“아니에요.”

송연아는 송씨 저택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기에 어쩔 수 없이 거절했다. 심재경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

심재경과 헤어진 후, 송연아는 택시를 타고 별장으로 돌아왔다. 강세헌이 영원히 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오은화는 처음보다 표정이 훨씬 풀린 송연아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세요? 기분 좋아 보이네요.”

“그냥 문득 아주머니랑 둘이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요.”

오은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때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저는 뭐죠?”

송연아는 신발을 갈아 신다가 말고 거실에 서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남자는 혐오 섞인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신문과 TV에서 자주 본 익숙한 얼굴에 그가 자신의 ‘남편’이라는 것을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당신이... 어떻게 왔어요?”

송연아는 강세헌이 그토록 끔찍하게 여기는 신혼집에 올 줄은 몰랐다. 결혼식도 참석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던가.

강세헌은 어두운 안색으로 물었다.

“내가 내 집에 오는데 허락 맡을 건 없지 않나요?”

송연아는 머리를 숙였다. 따지고 보면 확실히 그녀가 ‘강세헌의 집’에 침입한 것이었다.

“사인해요.”

강세헌은 이혼협의서를 테이블 위로 던졌다. 송연아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덤덤하게 협의서를 바라봤다. 그래도 그녀는 어머니의 수술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싶었다.

“강...”

송연아는 강세헌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다가 호칭을 빼고 말했다.

“혹시...”

“이혼하기 싫어요?”

강세헌은 그녀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딱 잘라 말했다. 이혼협의서에 순순히 사인하지 않을 줄은 알았다. 순순히 사인할 여자면 이토록 비겁한 방식으로 결혼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결정 후회하게 될 거예요.”

강세헌은 성큼성큼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가 오해한 것을 보고 송연아는 거실 안으로 들어가 설명하려고 했다. 하지만 문턱에 발이 걸려 핸드백과 함께 넘어지고 말았다.

송연아는 황급히 물건을 주워 담기 시작했다. 그러다 주변에서 찾을 수 없는 한 가지 물건을 찾기 위해 머리를 들었는데. 절대 들켜서는 안 될 물건이 강세헌의 발끝에 떨어진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황급히 손을 뻗어 물건을 감추려 했다.

이때 강세헌이 발을 뻗어 약을 밟았다. 송연아는 머리를 들었다. 강세헌은 그녀의 긴장을 보아낸 듯 허리를 숙여 약을 주워 들었다. 두 알씩 포장된 약은 한 알을 먹고 한 알이 남아 있었다. 낯선 이름이기는 하지만 명확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72시간 긴급 피임약.

바보도 이걸 보고 무슨 영문인지 알아차릴 것이다. 강세헌은 당황한 표정의 송연아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

“신혼 첫날 밤에 다른 남자를 만난 건가요?”

강세헌이 송연아에 대한 혐오는 더욱 깊어지기만 했다.

송연아는 주먹을 꼭 쥐며 손 떨림을 숨겼다. 그의 질문에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다른 남자를 만난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저도 이렇게 결혼할 생각 없었거든요.”

송연아의 모습을 보고 강세헌은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는 약을 송연아의 얼굴을 향해 던졌다. 예리한 모서리에 스치면서 생긴 상처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

송연아는 눈을 꼭 감았다. 얼굴에 난 상처보다 강세헌의 모욕이 더욱 마음 아팠다. 그녀는 입술을 꼭 깨물며 약을 주워 들었다. 손에 힘이 너무 들어간 나머지 손바닥이 아프기 시작했다.

“남자를 그렇게 원해요? 좋아요, 그럼 원하는 만큼 만족하게 해줄게요.”

강세헌은 이 말을 남기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가 한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이튿날 바로 알 수 있었다.
Comments (1)
goodnovel comment avatar
소사랑
소설의 진행을 위해 이런 바보같은 상황이 되다니..송연아 너도 어쨌든 유부녀 신분으로 바람핀건 사실이니 너의 행동에 책임은 져야겠지..모욕이라고 생각하는것도 우숩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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