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굳게 먹었지만, 막상 그를 마주하려고 하니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었고 어젯밤 난폭했던 그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용기를 내어 방 안으로 걸어갔다.문을 열고 들어가자 오은화가 활짝 웃으며 그녀를 맞이했다.“퇴근하셨네요?”송연아는 인사하며 안을 훑어봤고 소파에 앉아 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으나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대표님 안에 계세요.”송연아는 신발을 갈아신고 애써 밝은 미소를 지으며 방 안으로 들어와 인사를 건넸다.“강 대표님.”강세헌은 보고 있던 신문을 내려놓았고 비아냥대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대표님?”결혼하기 싫다며 티 낼 때는 언제고 갑자기 태도가 변하니 밀당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송연아는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네며 간곡하게 부탁했다.“일부러 건드린 게 아니라 정말 실수였어요. 죄송해요.”“설마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에 모든 게 용서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강세헌은 나른한 자세로 의자에 기대앉아 다리를 꼬며 말했다.언제부터인지 굽신거리는 송연아의 모습을 보면 저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고 눈치 보며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그녀의 모습이 우습게 느껴졌다.이 사실을 송연아가 알게 된다면 그를 변태라고 생각할 게 틀림없었다.그러나 현실은 생존을 위해 고개를 숙이고 굽신거려야 하는 불쌍한 신세였다.송연아는 넋을 잃은 채로 그를 바라보다 일자리는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그의 비위를 맞췄다.그녀는 물 한 잔을 따라 들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강세헌을 보며 말했다.“강 대표님, 넓은 아량으로 저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억지웃음을 짓는 그녀의 모습을 본 강세헌은 비웃으며 말했다.“웃는 게 참 못생겼네요.”긴장을 풀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웃고 싶었으나 강세헌 앞에서는 도저히 긴장을 풀 수가 없었다.그녀는 입술을 깨물었고 강세헌을 만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정말 너무 죄송해요.”“사과하려면 성의를 보여야죠. 예를 들면 지금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진다던가?”
송연아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큰 뱀 두 마리에 몸이 칭칭 감겨 숨 쉴 수 없는 상태였고 질식하기 직전 한 줄기의 빛이 보여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다...살았다는 안도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눈을 뜨자 웬 남자가 가운이 반쯤 벗겨진 채 앞에 서 있었고 기세등등한 모습은 금방이라도 그녀를 잡아먹을 듯 했다.순간 정신이 번쩍 든 송연아는 소파 구석에 몸을 웅크렸고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다.“지금 뭐 하는 짓이에요!”막 잠에서 깬 그녀의 목소리는 허스키했고 약간의 떨림도 느껴졌다.일부러 잡아당길 때는 언제고 놀란 척하는 그녀의 모습에 강세헌은 헛웃음이 나왔다.“남자가 많이 고픈가봐요? 자는 척 연기까지 하고.”송연아는 숨이 막혀왔으나 강력한 기세로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아니거든요!”강세헌은 그녀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정말요?”그는 서서히 몸을 숙여 그녀에게 다가갔고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압박감은 금방이라도 그녀를 덮쳐버릴 것 같았다.송연아는 본능적으로 두 손을 뻗어 막았다.부드러운 손은 강세헌의 가슴에 닿았고 살이 맞닿는 느낌에 고개를 숙이자 그녀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하얀 피부에 가늘고 굴곡이 선명한 손은 매우 예뻤다.손바닥의 온도는 피부를 뚫고 혈액 속을 파고드는 것 같았다.강세헌은 저도 모르게 흥분됐고 이 모든 게 송연아 때문이라며 그녀를 탓했다.“남자 없이 못 사나봐요? 일부러 절 자극하는 거예요?”송연아는 입술을 깨물었다.“참 뻔뻔하네요!”“뻔뻔하다고요? 당신이 먼저 절 만졌잖아요.”꿈속 상황에 겁이 났던 그녀는 저도 모르게 팔을 뻗었고 마침 그 손이 가슴에 닿았다. 그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든 송연아는 그제서야 자신의 손이 그의 가슴에 있다는 걸 알아챘고 단단하고 뜨거운 느낌에 깜짝 놀라 손을 거뒀다.손바닥에는 아직 그의 온기가 남아있었다.그녀는 시선을 어디로 돌려야 할지 몰랐고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달콤하고 매혹적인 그녀의 향기는 사람을 유혹했고 가까이 다가가고 싶
강세헌은 어제 그녀의 방에서 잠을 잔 게 아니었다. 손댄 흔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방안은 가지런했다.송연아는 샤워를 한 뒤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녀의 자리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었고 그곳에 그녀가 설 위치는 없었다.송연아는 실망한 채 몸을 돌렸고 병원에서 나온 뒤 한참 동안 생각에 빠진 그녀는 자신한테 더 이상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그날 밤, 그녀는 블루브릿지에 도착했다.입구에 서서 막 들어가려던 찰나 최지현을 발견했다.왜 여기에 있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강세헌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이상한 건 아니었다.송연아는 재빨리 안으로 들어가 그녀의 뒤를 따랐다.최지현은 룸으로 들어갔고 상대는 강세헌이 아니라 대학 시절 최지현한테 구애했던 재벌 2세였다.비록 돈은 많았지만 외모가 별로인 탓에 최지현은 줄곧 그를 거절했었다.‘최지현이 왜 저 사람을 만나는 거지?’호기심이 생긴 송연아는 둘이 어떤 사이인지 알아내고 싶었다. 그녀는 살금살금 다가가 열린 문틈 사이로 재벌 2세가 다정하게 최지현을 껴안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이상하게도 최지현은 거절하지 않았다.송연아는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강세헌과 사귀는 사이 아니었나? 설마 바람피우는 건가? 강세헌이 발견하면 가만두지 않을 텐데.’그때 안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주혁아, 우리 이제 헤어지자.”그 말을 들은 주혁은 표정이 굳어졌다.“왜 갑자기 헤어지자고 하는 거야? 너 설마 다른 남자 생겼어?”최지현은 다급하게 설명했다.“그런 거 아니야. 그냥 서로 잘 안 맞는 것 같아서.”주혁은 어이가 없었다.“내 돈은 펑펑 잘만 쓰더니만 갑자기 안 맞는 것 같다고?”안 그래도 못생긴 얼굴은 더 옹졸해 보였고 주혁은 단호하게 말했다.“난 절대 너랑 못 헤어져.”최지현은 주혁의 얼굴을 볼 때마다 강세헌이 떠올랐다. 강세헌한테 들키기 전에 하루빨리 토 나올 정도로 못생긴 주혁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싶었다!최지현은 그가 이별에 쉽게 동의하지
전화를 끊고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핸드폰을 탁자 위로 던졌다.펑 소리가 났다!송연아는 깜짝 놀랐지만 조용히 서서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누구든지 자신의 여자가 전 남친과 얽혀 있다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강세헌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그게 ...”그녀가 말을 하려 했다.강세헌은 분노에 휩싸여 송연아를 쳐다보는 것조차 불쾌했다.그는 진정이 되지 않아 이를 갈았고 눈에는 분노가 꽉 차있었다. 그가 이렇게까지 화가 나는 것은 자기 여자의 이러한 모습이 싫었기 때문이다.여기에 있으면 계속 방금 들었던 불쾌감이 떠올랐던지 그는 밖으로 나갔다.송연아는 무의식적으로 그를 따라 나가며 불렀다.“강 대표님...”강세헌은 분노에 불타며 말했다.“꺼져!”그녀는 걸음을 멈췄다. 강세헌이 자신에게 기회를 주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해도 오늘 같은 일을 당했으니 기분이 좋을 수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따라가지 않았다.오늘 여기 온 이유가 강세헌에게 계속 의사 일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할 예정이었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안 된다는 걸 느끼고는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그때 문 앞에 들어오는 남자가 보였다.고훈은 여기에 놀러 왔는데 강세헌과 마주치자 웃으며 인사를 했다.“강 대표...”강세헌은 그를 힐끗 쳐다보더니 무시하고 밖으로 나가 곧장 차에 탔다.강세헌은 성질이 나쁘기로 소문난 사람이었기에 고훈은 개의치 않았다.그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송연아는 멀리 떨어져 있어서 무슨 말을 하는지 듣지 못했지만 고훈이 강세헌과 웃으며 무슨 말을 하는 것만 보았다. 송연아의 가슴은 순식간에 조여 왔다.지난번에 강세헌이 바로 이 남자를 이용하여 송연아를 망치려고 했었다.‘그렇다면 강세헌이 또 같은 수작을 부리려고 고의로 나를 여기로 오라고 한 건가?’순간, 그녀는 강세헌을 죽이고 싶었다!‘이 남자, 정말 나쁜 놈이다. 아니, 그냥 짐승이다!’‘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어떻게 이토록 짓밟을 수가 있지?’송연아는 뒤돌아서서 숨을 곳을 찾으
어쨌든 이 여자는 애초에 강세헌이 그한테 찾아준 여자였다.송연아는 실망했다. 역시나 강세헌이였다.“여기에 개인룸이 있는데 거기로 가서 놀아 볼까요? 근데 송연아씨는 미인 중에 미인인데 강세헌은 왜 싫다고 할까요?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 건가?”고훈은 웃으며 송연아를 바라보았다.강세헌은 여자 친구가 한 번도 없었고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그의 주변에 남자들만 있고 여자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성적으로 무력하거나 아니면 게이라고 의심도 한다. 한마디로 정상이 아니라는 거다.송연아는 속으로 비웃으며 그는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좋아하지 않을 뿐이라고 생각했다.최지현이 전 남자친구와 얽혀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가 얼마나 화를 냈는데 그건 바로 신경이 쓰여서 그런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했다.“그래도 강세헌한테는 정말 고맙다고 해야겠어요. 강세헌이 아니었으면 어찌 당신을 만났겠어요?”그날 부상을 당하긴 했지만 칼을 들고 그를 위협하는 그 여자의 모습은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었다. 보통의 여자들은 원치 않으면 두려움에 비명만 지르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았다.송연아는 차가운 눈빛으로 이를 악물고 말했다.“나도 고맙다고 해야겠네요.”“그럼 동의하는 거죠?”고훈의 눈빛이 밝아졌다.송연아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고개를 숙여 자신을 붙잡고 있던 그의 팔을 깨물어 고훈이 고통스러워할 때 또 그 틈을 타 머리로 그의 얼굴에 들이박았다.고훈은 코피를 흘리며 외쳤다.“으악!”고훈이 고통을 호소하며 얼굴을 가리고 있을 때 송연아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바로 도망쳤다. 너무 무서웠지만 그녀는 잡히면 끝이기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도망쳤다. 고훈이 따라올 가봐 뒤돌아보며 계속 달렸다. 땀에 흠뻑 젖고 기운이 다 빠지고 사람들이 많은 곳임을 확인하고는 멈춰서 길옆에 앉더니 두려워서 참아왔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며 마음속으로 강세헌을 미워했다. 그는 몇 번이고 이런 식으로 그녀를 위험에 빠뜨렸다. 그녀는
거실에는 백수연이 실크 잠옷을 입고 매혹적인 몸매를 뽐내며 소파에 앉아 있었다.송연아를 보자 그녀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어머, 연아 왔구나.”송연아는 두 손을 꽉 움켜쥐었다.‘어머니가 아프신 사이에 벌써 들어와 있다니?’송연아는 백수연 손목에 있는 값비싼 옥팔찌를 보고는 생각했다.‘강씨 집안에서 받은 돈으로 잘들 살고 있네.’“송태범 찾으러 왔어요.”백수연은 기다란 머리를 뒤로 넘기며 말했다.“너의 아빠 안 계신다.”송연아가 돌아서자 백수연이 불렀다.“잠깐만, 돈 달라고 온 건 아니지? 강씨 가문의 며느리가 돈이 없다는 게 말이 돼? 우린 돈이 없어. 알지? 너의 엄마한테 돈이 얼마나 들어가는지.”‘정부인 주제에 주인행세를 하다니.’“송태범은 아직 울 엄마와 이혼하지 않았어요. 그가 병원비 지불을 거부하면 고소할거예요.”“너 ...”백수연은 뭔가 말하고 싶었지만 현관으로 들어오는 사람을 보자마자 친절한 얼굴로 바뀌었다.“송태범이라니? 너의 아버지인데 어떻게 이름을 부르니?”송연아는 그녀의 급변한 태도에 뒤로 돌아보니 송태범이 보였다. 그녀는 바로 간단하고 직설적으로 말했다.“돈 줘요.”송태범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강씨 가문에 시집가더니 무서운 게 없다는 거야? 방금 뭐 나를 고소한다고?”“엄마 수술비 백만 원 그때 얘기 끝냈잖아요.”“지금 돈이 없어.”“강씨 집안에서 2억을 받아 넣고 돈이 없다는 게 말이 돼요? 아빠, 나는 당신의 딸이고 엄마는 당신의 아내에요. 약속을 지키세요. 그렇지 않으면 한번 싸워보시죠. 저는 두려울 것 없으니까.”“날 협박하는 거야?”“내가 여자라는 이유로 당신은 나한테 한 번도 관심을 주지 않았어요. 단지 나를 이용하고 통제하려고만 했어요. 저도 사람이에요. 자꾸 내몰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송연아의 죽음도 두렵지 않다는 표정을 본 송태범도 놀라더니 어차피 이제 강씨 가문으로 시집갔으니 언젠가 또 이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 바로 말을 바꿨다.“따라와.”그가 서재 쪽으로
사무실로 돌아온 강세헌을 만난 임지훈은 서둘러 다가가 인사했다.“대표님.”강세헌은 그를 쳐다보더니 안 좋은 어조로 물었다.“내가 알아보라고 한 건 알아냈어?”임지훈은 속으로 말했다.‘내가 뭐 몸이 몇 개라도 되는 줄 아시나 보지.’“아직입니다. 지금 막 출발하려던 중입니다.”‘무슨 일이 또 있었던 거지? 왜 화를 내는 걸까?’임지헌은 생각했다.이때 비서가 들어와서 말했다.“강 대표님 안내 데스크에 최씨 성의 아가씨가 대표님 찾으신다고 하는데요.”“최씨? 설마 최지...”임지훈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세헌의 눈이 차가워지고 얼굴에 분노가 스며드는 걸 보고 입을 다물었다. 이어서 강세헌이 차갑게 말했다.“임 비서, 가서 데려와.”“네.”잠시 후 임지훈이 최지현을 데리고 들어왔다.강세헌은 책상 옆에 서서 양복 재킷을 벗어 의자 등받이에 아무렇지 않게 올려놓고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최지현은 여전히 품위가 넘쳤다.“제가 갑자기 찾아와서 혹시 방해가 됐나요?”그녀는 따뜻하게 말했다.“아니요.”강세한은 아주 가볍게 대답했다.어차피 그녀와 결혼할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녀가 깨끗하고 순수한지 아닌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최지현은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그게... 저기...”“돈 필요해요?”강세헌은 바로 콕 집어 물었다.최지현은 깜짝 놀랐다.‘내가 돈이 필요하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강세헌은 그녀와 더 길게 얘기하고 싶지 않아서 직설적으로 물었다.“얼마 필요해요?”최지현은 당황해하며 설명하려고 했다.“아버지가 편찮으셔서 ...”“천만 원? 1억?”강세헌은 그녀의 설명을 듣고 싶지 않았다. 왜 필요한지 이미 알고 있었기에 따지고 싶지도 않았다.최지현은 강세헌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꼈지만, 그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녀는 강세헌 앞에서 자신이 완벽하게 빈틈없이 행동했다고 생각했다.그한테 부탁하러 온건 도저히 다른 방법이 없어서였다.주혁이가 24시간 내에 돈을 갚으면 헤어져 주겠다는 조건이었다. 주혁은 최지현
강세헌은 짜증이 났다. 그날 밤의 그 느낌은 너무 선명한데 최지현은 남자친구가 있었고 또 그 남자친구와 친밀한 모습을 봤을 때 절대로 섹스를 해본 적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날 밤 그 여자는 절대로 최지현 같지 않았다.“그날 감시 카메라가 망가져서 확실한 증거가 없어요. 확실히 뭔가 잘못되었을 수 있어요. 다시 가서 확인해 볼게요. 혹시 그때 뭔가 남겨주신 거라도 있으시면 좋은데...”“잠깐만... 그만해, 됐어.”진정하고 생각해 보니 그 상황에서 섹스를 할 수 있는 여자가 정말로 진중한 여자일까?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을 내어주는 여자에게 얼마나 순수하길 바라는 걸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는 거였다.생각하다 보니 이제 어떤 여자였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사라졌다.그를 지켜보던 임지훈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그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최지현 씨가 대표님 심기를 건드렸습니까?”강세헌이 눈을 번쩍 뜨자 그의 눈동자는 회색 물감을 뿌려놓은 듯 칙칙했고 냉기가 가득했다.임지훈은 곧바로 말을 바꿨다.“아닙니다. 가보겠습니다.”말하기 바쁘게 임지훈은 암흑에 휩싸인 사무실을 빠져나갔다.책상 앞에 앉은 강세헌은 조용한 분위기에 기분이 가라앉았다.임지훈한테 그만 조사하라고 한 것은 이제 그날 밤에 대한 일은 더 생각하지 않고 그냥 사고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더 이상 감정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이때 노크 소리가 들리자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들어와.”비서가 들어와서 보고했다.“최지현 씨한테 금액 전달했고 이제 떠났어요. 그리고 방금 서강 제약 왕 대표님 전화 오셨어요. 대표님께서 블루브릿지에 언제 도착하실 수 있는지 물었어요.”강세헌은 그제야 자신이 약속이 있었다는 걸 기억했다. 서강 제약은 투자자를 찾고 있었다. 서강에서 항암 약을 연구하고 있었는데 자금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강세헌이 약속에 동의한 것은 그 사업의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국내외를 통틀어 모두 항암 약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성공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