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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사과를 받아들이다

“아니에요, 의사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인걸요. 어르신, 고마워할 필요 없으세요. 전 이선우라고 합니다.”

이선우는 말을 마치고 좀 전에 놓았던 침들을 뽑았다.

“이제 정상적으로 움직이실 수 있으실 거예요.”

옆에 앉아있던 열일곱쯤 되어 보이는 어린 여자애가 할머니를 부축했다.

“할머니, 좀 어때요?”

“이제 괜찮아.”

“진짜요? 할머니 저 정말 놀라 죽는 줄 알았잖아요.”

여자애가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주변에 서있던 사람들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회장님, 귀인을 만나셨네요. 다행이에요.”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이제 다들 일하러 가시죠. 소희야, 가서 이 의사분께 1억짜리 수표 한 장 드리거라.”

“네?”

손녀인 김소희가 멍하니 서있기만 했다.

“뭐 하는 거야, 어서 가지 않고.”

“안 돼요 할머니, 진짜 치료가 된 건지도 모르고 아까 먹은 알약이 효과가 있는지도 모르는 건데 이렇게 많이 주면 어떡해요. 혹시 독약이면 어떡하려고요.”

“꼬마 아가씨, 제 의술을 의심하는 건 좋은데 인성까지 의심하진 말죠? 어르신이랑 아무런 원한도 없는 관계인데 제가 왜 독약을 드렸겠어요.”

안 그래도 기분이 안 좋은 상태였는데 김소희에게 의심까지 받으니 이선우는 조금 불쾌해지려고 했다. 하지만 김소희가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도도하게 말했다.

“흥, 저희 할머니를 모르실 리가 없잖아요. 양성의 모두가 우리 할머니랑 관계를 맺고 싶어서 다들 안 달나 있는데 그쪽이라고 다르다는 보장 있나요? 제가 오해를 했을지는 몰라도 뭔가 꿍꿍이가 있을게 분명해요.”

“조용히 해!”

김홍매가 호통을 치자 김소희가 흠칫 놀랐다.

“죄송해요.”

“하하하, 너 같은 손녀가 옆에 있는 걸 보니까 할머님 쓰러지신 것도 이해가 되네.”

“너!”

이선우의 말에 김소희는 분해서 화를 내려고 했지만 할머니의 눈치가 보여 하려던 말을 삼켰다.

“의사양반, 미안하네. 우리 손녀가 곱게 커서 뭘 잘 몰라. 목숨 살려줘서 고마워요. 소희야, 얼른 사과드리고 수표 가져와.”

이선우가 다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돈은 필요 없어요, 사실 여기 집 보러 왔는데 아까 직원들이 회장님이라고 부르는 걸 보니 혹시 이 회사의 회장님이신 건가요? 혹시 그렇다면 조금 할인해주시겠어요?”

이선우가 넉살 좋게 말했다. 김홍매가 그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

“집 보러 오셨군요. 여긴 제 회사가 맞아요. 오늘 마침 새로 들어온 집이 있어서 손녀랑 보러 왔다가 심장병이 도진 거예요. 그럼 이렇게 하죠. 집 한 채를 그냥 내드릴게요. 목하영 별장에 빈자리가 생겼거든요. 거기에 1억을 더 얹어줄 테니 이 늙은이 목숨값이다 생각하고 받아줘요.”

“아니요, 정말 괜찮습니다. 그냥 조금 할인이나 해주세요.”

김홍매가 짐짓 기분 나쁘다는 듯이 말했다.

“왜요, 이 늙은이 목숨값이 그 정도도 안된다고 생각해요?”

“무슨 소리세요, 절대 아니죠. 오해하지 마세요. 그럼 정말 염치없지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이선우는 더는 회장님의 호의를 거절할 수 없었다. 이때 김소희가 수표를 들고 돌아왔다. 김소희는 할머니가 별장을 그냥 내준다고 하는 소리를 듣자 더 기분이 안 좋아졌다.

“아니 할머니, 별장까지 준다고요? 그냥 운 좋게 할머니를 살린 것뿐인데 수표 한장도 과분해요!”

“얘가 못하는 말이 없네. 할머니 화나서 죽는 꼴 보고 싶어? 할머니 목숨값이 그 정도도 안된다는 소리야? 얼른 가서 집열쇠나 가져와.”

김소희도 더는 반항하지 못하고 시키는 대로 했다.

“의사 선생님, 아까는 함부로 얘기해서 죄송했습니다. 그리고 저희 할머니 살려주셔서 감사해요.”

“그래, 사과는 받을게. 앞으로는 할머니 화나게 하지 마. 그럼 어르신,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감사해요.”

이선우가 그만 자리를 뜨려는데 김홍매가 그를 잡았다.

“저녁에 황조호텔에서 미팅이 있는데 밥이라도 한 끼 같이 하고 갈래요? 오해는 하지 마세요.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어서 그러는 거니까.”

“어르신, 죄송하지만 저녁은 가족들이랑 먹기로 해서요. 나중에 기회 되면 찾아뵐게요.”

김홍매는 조금 아쉬웠지만 더 이상 만류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선우가 떠나자 김홍매는 김소희를 꾸짖기 시작했다.

“왜, 아까워?”

“아니에요.”

“이놈아, 어릴 때부터 엄마 없이 이 할미가 널 직접 키웠어. 네가 지금 무슨 생각 하는지 다 보인다. 하지만 오늘 굉장히 실망했어. 알지?”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김소희가 눈물을 흘렸다. 김홍매는 손녀를 소파에 앉히고는 차분히 타일렀다.

“할머니는 널 후계인으로 생각하고 있어. 그러니 어릴 때부터 무슨 일을 하나 누굴 만나나 다 멀리 내다볼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친 거고. 누가 됐던 깔보거나 가볍게 생각하면 안 돼.”

“방금 저 친구가 날 치료해 줄 때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어. 하지만 전혀 무술인 같지는 않았고 그가 감추고 있는 기운이 뭔지 알아낼 수가 없더라. 이게 뭘 설명하는지는 알겠지? 저 아이가 나보다 훨씬 신성한 기운을 품고 있다는 거야. 심지어 그 괴물들도 이길 수 있을 정도로 강해.”

“말도 안 돼요 할머니.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뭔가 착각한 거 아니에요?”

김소희도 무술인으로서 그 괴물들이 얼마나 흉악했는지 알고 있었기에 이 말이 매우 놀라웠다. 방금 본 그 의사가 할머니보다 강한 사람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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