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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내 목적이 뭘 것 같아?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갓 파티장에 도착한 이기태와 백윤정은 무대 위의 사람을 확인한 순간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영도 자신의 우스운 꼴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저 지금 벌어지는 일들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입을 크게 벌리고 있을 뿐 이제는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축축하게 젖은 끈적한 머리카락이 얼굴에 달라붙어 초라하고 우스웠다.

이 모든 걸 윤이건은 묵묵히 지켜봤다. 샴페인 잔을 든 손에서 슬쩍슬쩍 퍼런 핏줄이 불룩 튀어나왔고 눈은 가늘어졌다.

‘이진, 대체 내가 모르는 비밀이 얼마나 있는 거야?’

그래도 3년간 함께 지내온 전처인데 그녀에 대해 아는 게 이렇게 없으리라 생각지도 못했다.

무대 위에서 턱을 살짝 쳐들고 있는 여자를 보고 있자니 윤이건은 눈썹이 일그러졌다.

“안녕하세요. 다시 한번 소개하죠. 저는 AMC 대표 이진입니다. 오늘 AMC와 GN 그룹의 인수합병 파티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대 위에서 얘기하고 있는 이진의 표정과 자태는 무척 적절했다.

충격에 굳어버린 이 씨 가문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입가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그녀는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이진의 말이 들려오자 파티장에 있던 사람들은 이제서야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정신을 차리고 다급하게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그들은 베일에 싸여 있는 회사의 대표가 이 씨 가문 큰딸이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자기 집 회사를 인수하다니 대체 뭐 하자는 건지.

아니나 다를까 백윤정이 이기태의 팔을 잡아당기며 무대 쪽으로 걸어갔다.

일그러진 얼굴 때문에 짙게 바른 파운데이션이 주름 사이에 끼어 있었다. 표정을 보니 그녀가 얼마나 화났을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도 있었다.

“이진, 대체 뭐 하자는 거야? 네가 윤 대표랑 이혼하고 기분이 안 좋은 건 알겠는데. 인수 합병이 애들 소꿉장난인 줄 알아?”

이진은 무대 아래에 서 있는 자신의 계모, 백윤정을 빤히 쳐다봤다.

오늘날의 GN그룹은 이진의 친어머니가 직접 설립한 회사다.

하지만 건강기만 하던 사람이 갑자기 큰 병에 걸렸고 병원에 옮겨진 사흘 뒤 다시는 눈을 뜨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로부터 일주일 뒤, 그녀가 어머니를 잃은 슬픔 속에서 빠져나오지도 않았을 때 아버지라는 사람이 다른 여자와 그녀보다 1살 어린 여동생을 데리고 집에 들어왔다.

벌써 몇 년이 흘렀건만 이진은 여전히 그날의 기억이 또렷했다. 저택 문이 열리고 이기태 뒤에 두 여자가 따라 들어오던 그날이.

“이진, 인사해. 이 분은 백윤정 이모야, 그리고 여긴 네 동생이고. 앞으로 한 가족으로 지낼 사람들이야.”

데릴 사위로 외가에 들어와 산 그녀의 아버지는 잘생긴 껍데기 외에 봐줄 만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회사를 관리할 능력도 없었기에 그 중책은 당연히 백윤정 모녀에게 넘어갔고.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에도 병원에 발 한번 붙이지 않아 마지막 순간 자기 혼자 곁을 지켜주던 일이 다시 되살아 나 이진은 옆에 놓인 주먹을 꽉 그러쥐었다. 강인하기만 할 것 같은 그녀의 눈가도 어느새 발갛게 물들었다.

예전의 기억을 다시 떨쳐버린 이진은 케빈 손에서 지분 양도 서류를 낚아채더니 사람들 앞에 펼쳐 보였다.

“글은 읽을 줄 알죠?”

“이…… 여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하얀 종이에 선명하게 쓰인 글자를 보자 백윤정은 순간 머리를 세게 맞은 듯 어질어질했다. 이윽고 고개를 홱 돌려 이기태를 바라봤다.

“딸…….”

자기를 부르는 이기태의 호칭에 헛웃음이 났다.

아버지라는 사람이 얼마나 오랜 시간 그녀를 딸이라고 부르지 않았는지 모른다. 아마 돌이켜 보면 이영이 온 그때부터였을 거다.

“같은 식구끼리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잖아.”

이기태의 얼굴은 흙이라도 씹은 듯 어두웠다. 아마 친딸이 자기 등 뒤에 칼을 꽂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모양이다.

“같은 식구요? 이 대표님, 그렇게 안 봤는데 참 재밌는 사람이시네요.”

이진은 지분 양도서를 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이윽고 가는 손가락뼈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애초에 백윤정과 결탁해서 제 어머니를 해치고 GN 그룹을 먹어버릴 때는 언제고 지금 우리가 가족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너! 그게 무슨 헛소리야!”

이기태와 백윤정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진이 사람들 앞에서 거리낌 없이 이런 말을 내뱉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모양이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 들어는 봤죠? 저 당신들한테 복수하기 위해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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