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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디자이너?

반지훈은 안색이 조금 흐려져서 저도 모르게 강해신에게 물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니?”

“우리 엄마는 그렇게 유명하지 않아요. 말해도 아저씨는 모를걸요. 아, 참. 아저씨, 여자친구 있어요?”

강해신은 얼른 화두를 돌렸고 반지훈은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여자친구?

그의 곁에 여자가 있기는 했지만 그는 그녀를 여자친구라고 인정한 적이 없었다.

강해신은 눈을 접어 웃으며 말했다.

“우리 엄마 소개해줄까요? 엄마는 유명하지 않지만 엄청 대단해요. 그리고 엄청 예뻐요. 엄마가 우리를 낳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반지훈은 입을 꾹 다문 채 대답하지 않았다.

확실히 두 아이는 외모가 출중했고 이런 아이들을 낳은 여자라면 외모가 평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반지훈은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그들과 본인 사이에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걸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강성연은 확실히 임신하거나 아이를 낳은 적이 없었다.

반지훈은 여자아이의 얼굴이 무척이나 익숙하게 느껴졌다.

때마침 강해신의 스마트 워치가 진동했고 고개 숙여 확인하니 형에게서 온 전화였다.

아이는 핑계를 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저씨, 저 화장실 갔다 올게요.”

강해신은 엉덩이를 씰룩거리면서 화장실로 달려갔고 통화 버튼을 누른 뒤 스마트 워치를 귓가에 대고 말했다.

“형?”

강시언은 현재 병원에 도착해 DNA 검사 결과를 손에 넣었다.

“해신아, 결과 나왔어.”

“그 사람 우리 아빠 맞아?”

“맞아. 그 사람이 우리 아빠야.”

강시언의 말에 강해신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어쩐지 우리랑 닮은 것 같더라고. 그런데 우리 아빠면서 왜 그 나쁜 여자랑 같이 있는 거지?”

강시언은 검사 결과를 들고 병원을 나섰다.

“양엄마가 말했잖아. 엄마는 6년 전 그 나쁜 여자의 함정에 빠져 그 집안에서 내쫓긴 거라고. 아빠는 우리의 존재도, 엄마도 모르고 있어. 이건 분명 그 나쁜 여자 탓일 거야.”

강해신은 어두워진 안색으로 말했다.

“흥, 그 나쁜 여자는 우리 아빠를 가지고 싶은 모양인데 꿈 깨라 그래!”

아이들은 아빠를 손에 넣을 생각이었다.

강해신이 몸을 돌리는 순간, 아이는 누군가와 부딪쳐 바닥에 넘어졌다.

갑자기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이런 애가 다 있어? 눈이 안 달렸니?”

초란은 자기 옷을 툭툭 털며 말했다. 그 옷은 고가 브랜드 옷이라 집에서는 입지 못하고 약속이 있을 때나 가끔 입는 값비싼 옷이었다.

그런데 한 아이가 그런 옷을 건드렸으니 기분이 언짢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이의 얼굴로 시선을 옮긴 순간, 초란은 깜짝 놀랐다.

아이는 반지훈과 굉장히 닮아 있었다.

강해신은 바닥에서 일어나 옷을 툭툭 털며 말했다.

“눈이 안 달린 건 아줌마겠죠.”

“너… 너 엄마가 누구니?”

초란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갑자기 반지훈과 닮은 아이가 튀어나오다니, 어쩌면 다른 여자가 반지훈의 아이를 낳은 걸지도 몰랐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럴 리가 없었다. 반지훈은 평소 여자에게 관심이 없었으니 말이다. 6년 전 그때를 제외하고는…

6년 전 일이 떠오르자 초란은 도저히 진정할 수가 없었다. 강성연은 반지훈과 관계를 맺은 적이 있었는데 어떻게 단 하룻밤으로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데 하필 강성연이 귀국했고 초란은 이곳에서 반지훈과 굉장히 닮은 아이를 만났다.

“우리 엄마가 누군지, 아줌마가 알 자격이 있어요?”

강해신은 그녀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런데 초란이 아이의 팔을 덥석 잡았다.

“애가 참 당돌하네. 너희 엄마는 어른한테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았나 보네?”

강해신은 고개를 돌리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아줌마 엄마야말로 아이는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았나 보죠.”

아이의 눈빛은 반지훈이 화낼 때랑 똑같았다.

“너희 엄마 망할 강성연이지?”

초란이 자신의 엄마를 욕하자 강해신은 그녀의 손을 힘주어 콱 물었다.

“악!”

강해신에게 물린 초란은 화가 나서 아이를 밀쳤고 바닥에 넘어진 아이는 갑자기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엉엉엉엉, 이 아줌마가 나 때렸어요. 엉엉엉.”

강해신의 울음소리에 종업원 몇 명이 나타났다. 그들은 아이가 바닥에 넘어져서 큰 소리로 우는 모습과 그 맞은편에 한 여자가 기세등등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에 종업원들은 얼른 강해신에게 다가가 아이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손님, 어떻게 아이를 밀칠 수가 있어요?”

“어딜 참견해? 누가 아이를 밀쳤다는 거야? 걔 혼자 넘어진 거야!”

강해신은 울먹이며 말했다.

“제가 아줌마랑 부딪쳤다고 절 밀친 거잖아요. 그리고 저희 엄마 보고 망할 인간이라고 욕했으면서! 엉엉엉엉.”

종업원들은 아이를 동정하기 시작했다.

레스토랑 매니저는 얼른 그 일을 반지훈에게 보고했다. 그 아이는 반지훈과 함께 식사하러 온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반지훈은 곧장 몸을 일으켜 레스토랑 매니저를 따라 현장으로 갔고 강유이와 희승 또한 그들의 뒤를 따랐다.

“오빠!”

강유이는 강해신이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울고 있자 얼른 그에게로 다가갔다. 아이는 초란을 째려보며 말했다.

“왜 우리 오빠를 밀친 거예요?”

“누가 밀쳤대? 너희들 오늘 나한테 누명을 뒤집어씌우려고 작정했구나? 빌어먹을 꼬맹이들, 내가 누군지는 알아? 오늘 아주 단단히 혼쭐 내주겠어!”

초란은 그들이 어쩌면 강성연의 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울컥 화가 치밀어 손을 들어 아이들에게 손찌검하려고 했고, 강유이는 일부러 앞으로 나섰다.

‘짝’ 하는 소리와 함께 뺨을 맞은 아이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고 주위에 있던 종업원들은 그 모습에 다들 화가 났다.

강유이의 흰 뺨에 아주 짙은 붉은색 흔적이 남았지만 아이는 울지 않았다.

“네… 네가 갑자기 앞에 나선 거야.”

초란은 당황했다. 아직 손이 다 내려가지도 않았는데 강유이가 불쑥 튀어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반지훈을 본 초란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하게 질렸다.

“반… 반지훈씨…”

강유이의 뺨에 남은 손자국에 반지훈의 표정이 싸늘해졌고 그의 주위를 둘러싼 공기 또한 삽시에 차가워졌다.

“지금 아이한테 손찌검하신 겁니까?”

“난… 아니, 지훈씨. 이 아이가 먼저 날 들이받았어요. 사과는 하지 못할망정 나한테 대들기까지 했다고요. 이것 봐요. 날 물기까지 했잖아요.”

초란은 물어뜯긴 손을 내보였고 그 위에는 잇자국이 선명히 나있었다.

강해신은 훌쩍이며 말했다.

“아줌마가 먼저 저 욕했잖아요. 게다가 우리 엄마한테 망할 인간이라고 해서 문 거라고요.”

커다란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강해신은 서글프게 울었고 주위의 종업원들은 마음이 아팠다.

“아무리 아이가 부딪쳤다고 해도 그렇지, 부주의로 그럴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왜 굳이 아이한테 따지고 들려고 하세요?”

“그러니까요. 자식도 있을 텐데 아이를 사랑할 줄 전혀 모르네요.”

“아이를 저렇게 때리려 하다니, 아이한테 트라우마가 남겠어요.”

반지훈은 강유이와 강해신의 옆으로 걸어갔다. 그는 먼저 뺨이 붉게 부었음에도 이를 악물고 울지 않는 강유이의 뺨을 쓰다듬었고 뒤이어 강해신의 눈물을 닦아줬다.

두 아이의 기분은 그의 기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반지훈은 몸을 일으키더니 반박 따위는 용납하지 않을 듯한 눈빛으로 초란을 보며 말했다.

“아이한테 사과하시죠.”

“지훈씨, 이 두 아이랑 당신이 무슨 사이인데…”

반지훈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와 두 아이는 아무런 사이도 아니었지만…

“무슨 사이인지는 당신이 상관할 바 아닙니다. 당신이 강미현의 어머니인 걸 봐서 아이들한테 사과만 한다면 앞으로 이 일로 추궁하지는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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