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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강성연은 심호흡하면서 평정심을 되찾으려 노력했다. 그녀는 곧 미소 띤 얼굴로 대꾸했다.

“반지훈씨는 저희한테 어떤 태도를 바라시는 거죠? 사과를 바라시는 거라면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반지훈은 그녀가 사과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강성연은 자신의 태도를 달리 하며 그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반지훈씨.”

그녀가 진짜 본인을 낮추면서 나오자 반지훈은 어쩐지 그것이 더 못마땅하게 여겨졌다.

“강성연씨가 친구를 위해 사과를 할 줄은 몰랐네. 그런데 왜 자기 언니를 해치는 짓을 했는지는 정말 모르겠네.”

강성연은 의아한 얼굴로 허리를 펴며 되물었다.

“방금 그 말 무슨 뜻이죠?”

자기 언니를 해치다니?

강미현을 말하는 건가?

반지훈은 그녀의 얼굴 가까이 다가가서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자기가 한 일은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이었군.”

그는 말을 마친 뒤 냉담하게 몸을 돌렸다.

“오늘 일은 그냥 넘어가도록 하지.”

그들이 떠나자 송아영은 그제야 한시름 덜었다. 그러나 조금 전 반지훈이 강성연에게 했던 말이 이상했다.

“성연아, 방금 반지훈씨가 한 말 무슨 뜻이야?”

“내가 어떻게 알아?”

강성연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내가 일부러 강미현을 해코지하려 한다고 생각하나 보지. 강미현의 남자니까 당연히 강미현 대신 화를 내주려 그러는 거 아니겠어?”

“뭐라고? 강미현이 반지훈의 여자라고?”

송아영은 경악한 표정이었다.

“반지훈씨 진짜 사람 보는 눈이 없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하필 강미현 그런 여자랑 만나다니.”

강성연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며 말했다.

“여기서 다른 사람 걱정할 여유도 있어? 넌 어떻게 너희 아빠한테 설명할지나 생각해.”

말을 마친 뒤 강성연은 걸음을 옮겨 자리를 떴고 송아영은 입을 비죽이며 재빨리 그녀의 뒤를 따랐다.

다음 날, 강성연은 구입해야 할 원료 리스트를 구매 부서 직원에게 건넸다.

“내가 준 리스트대로 원석 구입하세요. 만약 문제가 생긴다면 당신들이 알아서 책임져야 해요.”

구매 부서 직원은 리스트를 한 번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강성연이 떠나고 난 뒤 구매 부서 직원은 당장 그녀가 건네준 구매 리스트를 정리하려고 했는데 때마침 사무실 전화가 울렸다.

그녀는 리스트를 책상 위에 올려놓은 뒤 몸을 일으켜 전화를 받으러 갔고 다른 한 여직원이 그녀의 책상으로 걸어가더니 핸드폰으로 리스트 위에 적힌 원석 공장들의 주소와 연락처를 찍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자신의 위치로 돌아가 그 사진을 강미현에게 보냈다.

사무실에 앉아있던 강미현은 구매 부서 직원이 보내온 사진을 확인하고는 차갑게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었다.

구매 부서를 그녀에게 맡겼으니 그녀를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무실 전화가 울리자 강미현은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미현아, 엄마가 네 핸드폰에 연락했는데 핸드폰이 꺼져 있더라?”

초란은 그녀의 핸드폰이 꺼져 있어 어쩔 수 없이 사무실 전화로 연락했다.

강미현은 그녀의 말에 안색이 흐려졌다.

“내 핸드폰은 빌어먹을 강성연이 망가뜨렸잖아. 전화 받을 수 있으면 그게 이상한 거지. 내일 핸드폰 바꿀 생각이야. 그런데 무슨 일로 연락했어?”

“너희 아빠 오늘 강성연을 집으로 부르시겠대. 그러니까 오늘 저녁에 반지훈씨 데리고 집에 와서 밥 먹어. 너희 두 사람 관계가 확실하다는 걸 보면 너희 아빠도 강성연이 제멋대로 굴게 놔두지는 않을 거야.”

강미현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구겼다.

“엄마, 지훈씨가 언제 우리 집에 가서 밥 먹자고 한 적 있어? 지훈씨가 거절하면 어떡해?”

6년 동안 반지훈은 단 한 번도 그들 집에서 밥을 먹겠다고 한 적이 없었다.

“어떤 수단을 써도 상관없으니 일단 데리고 와. 잊지 마. 너희 아빠는 지금 널 눈여겨보고 있어. 그렇게 안 하면 너희 아빠가 널 도와줄 것 같니?”

초란은 강미현이 한시라도 빨리 반지훈의 옆자리를 꿰찼으면 했다. 저번에 두 아이를 마주친 뒤로 그녀는 줄곧 불안에 떨고 있었다.

강미현은 초란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최근 몇 년간 강진은 그녀와 반지훈의 일로 그녀를 아주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런데 강성연이 세계적인 주얼리 디자이너가 돼서 돌아온 지금, 반지훈이라는 뒷배가 없다면 강미현은 강성연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강성연은 자신의 사무실에 앉아 옛 직원들의 자료를 살펴봤고 그중 반크 아저씨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녀가 기억하는 바로 반크 아저씨는 어머니의 비서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그가 위너 주얼리를 관리했고 그 당시 위너 주얼리는 서울시에서 최고의 매출을 자랑했다.

그가 사직한 뒤로 위너 주얼리 매출은 줄곧 하락세를 보였다.

그 순간, 갑자기 핸드폰이 진동했다.

강성연은 핸드폰 화면 위에 뜬 이름을 확인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몇 년간 자신에게 연락 한번 한적이 없던 그녀의 아버지였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잠시 사색에 잠겼다.

다시 강씨 집안으로 돌아가는 건 그녀에게 조금 낯선 일이었다. 별장 안에 들어서자 도우미 아주머니가 맨 처음 그녀를 알아봤다.

“아가씨?”

화려하게 꾸민 초란은 소파에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강성연이 나타난 순간, 그녀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몸을 일으켰다.

“어머, 우리 성연이 돌아왔니?”

초란을 보자 강성연은 문득 그녀가 유이의 뺨을 때렸던 일을 떠올렸고 그 순간 표정이 무섭게 굳었다.

강성연은 빠르든 늦든 그녀가 유이에게 진 빚을 꼭 갚게 할 생각이었다.

초란은 웃으면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너희 아빠가 너 귀국하신 거 알고 같이 밥이나 먹자고 부른 건데 표정이 왜 그래? 조금 이따가 너희 아빠 보시면 언짢아하시겠다.”

강성연은 냉소를 흘렸다.

“전 어쩐지 이 식사 자리가 절 해치려고 만들어진 것 같은데요?”

그녀는 귀국한 뒤 아버지에게 연락한 적이 없으니 강미현이나 초란이 아버지에게 귀띔한 것이 분명했다.

6년 동안 연락이 없었던 그녀를 특별히 집으로 불러서 함께 식사하자고 하다니, 그러면서 안부 한마디 묻지 않는 것에 강성연은 마음이 차게 식었다.

“어머, 얘 좀 봐. 같이 밥 먹자고 집으로 부른 건데 누가 널 해치겠니?”

“참 가식적이네요. 전 당신이 천한 것이라고 부르는 게 더 익숙하고 친근한데요.”

강성연은 그녀를 도발하듯 일부러 친근하다는 말에 힘을 주어 얘기했다.

초란이 화를 내기도 전에 위층에서 낮고 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연아, 6년이나 지났는데 네 그 버르장머리 없는 성격은 변함이 없구나. 엄마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니?”

강성연은 웃었다.

“우리 엄마는 돌아가셨는데요. 화장할 때 옆에 계셨잖아요.”

“해외에서 6년 동안 뭘 배운 거니? 누가 어른한테 그렇게 얘기하래?”

강진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그는 강성연을 내쫓았던 일로 조금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는데 강성연은 여전히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있지 않았다.

초란은 강진의 앞에 가서 그를 설득하며 말했다.

“여보, 성연이한테 화내지 마요. 제가 계모인 건 사실이잖아요. 성연이가 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전 이해해요.”

“저한테 당신은 계모보다 못한 존재인데요.”

“강성연!”

강진이 버럭 화를 내며 호통을 쳤다.

“어른한테 대들라고 오늘 너더러 집에 와서 밥을 먹으라고 한 거 아니다! 불만 있으면 지금 당장 나가!”

강성연은 얼굴에 화가 가득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6년 전 그녀를 내쫓았을 때도 강진은 지금처럼 무정했다. 그는 초란과 강미현의 말이라면 곧이곧대로 다 믿었고, 반대로 강성연은 제멋대로 굴고 어른을 존경하지 않는다고 혼이 났었다.

강성연은 피식 웃었다.

“솔직히 이곳에 1초라도 있고 싶지 않아요.”

그녀가 몸을 돌려 떠나려는 순간, 문밖에서 강미현이 반지훈의 팔에 팔짱을 끼고 걸어왔다.

초란과 강진은 반지훈을 보자마자 그를 맞이하러 나갔다. 그 순간 강진은 조금 전 분노했던 감정을 완전히 잊은 듯, 다른 사람이 된 듯 굴었다.

“반지훈씨, 여기 오실 줄은 생각 못했네요.”

“네.”

반지훈은 대충 고개를 끄덕인 뒤 강성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오늘 집안이 참 떠들썩하네요.”

강진은 강성연을 한 번 보더니 머쓱한 얼굴로 말했다.

“아, 이건 제 작은딸 강성연입니다.”

“이제야 알았네요. 세계적으로 유명하신 주얼리 디자이너 Zora가 강씨 집안의 따님이었군요.”

강진은 쑥스러운 듯 웃어 보였다.

“네. 아마… 쟤 엄마를 닮아서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가 봐요.”

강성연은 팔짱을 낀 채로 마치 외부인처럼 그들이 말을 한마디씩 주고받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들이 반지훈에게 온갖 아양을 떠는 모습에 강성연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여러분들 식사에 방해되지 않게 저는 이만 가볼게요.”

자리를 뜨려는데 강미현이 일부러 그녀의 앞을 막으면서 웃으며 말했다.

“성연아, 오랜만에 돌아온 건데 같이 밥이라도 먹자.”

초란 또한 맞장구를 치며 온화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래, 성연아. 아빠한테 삐져서 그러는 것 같은데 그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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