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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모욕을 당하다

호텔 방문이 열렸다.

매튜는 금빛 단발머리에 헐렁한 가운을 입고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런대로 잘생긴 얼굴에 푸른 눈은 마치 독사가 사냥감을 노리는 것처럼 하영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하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5천만 원의 성과금을 위해 그녀는 지금 억지웃음을 짓고 있다.

“사장님, 실례합니다.”

매튜는 어깨를 으쓱 올렸다가 내리며, 웃는 모습으로 몸을 옆으로 비켜 세웠다. 그러고는 어색한 한국어로 말했다.

“강 비서님, 드디어 오셨네요.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두근거리는 가슴은 터질 것 같았지만 하영은 겉으로는 침착한 척했다.

그리고 당당한 발걸음으로 스위트 룸에 들어가 미리 준비한 계약서를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곁눈질로 객실에 놓여 있는 모든 물건을 꼼꼼히 훑어보았다.

매튜가 맞은편의 소파에 앉은 후, 하영은 비로소 그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똑같이 앉았다.

곧이어 매튜가 와인 한 잔을 건네왔다.

잔을 받아 든 하영은 매튜의 와인잔에 낮게 부딪혔다.

“환대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매튜의 눈에는 화색이 돌았다.

“강 비서님 뭐 좀 아시네. 쭈뼛쭈뼛하지 않고…… 좋아, 내 스타일이야!”

하영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순조롭게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고개를 들어 손에 든 와인을 쭉 들이켰다.

이를 본 매튜의 미간에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이렇게 술 한 잔 마시고, 내 계약을 따내려는 건 아니지? 그럼 너무한데…….”

하영은 매튜가 순순히 계약을 해줄 거라는 생각은 진작에 집어치웠다.

와인잔을 내려놓고 못 들은 척 사무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사장님께서 우리 MK와 협력할 의향이 있다는 얘기 들었습니다. 아시아에서의 MK의 실력도 잘 알고 계실거라 생각합니다. 매튜 사장님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고자, 제가 저희 사장님을 대표하여 이렇게 계약을 체결하러 왔습니다. 사장님, 어떻습니까? 생각해 보셨습니까?”

매튜의 얼굴에 웃음이 걷혔다. 하영을 쳐다보는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하영은 비록 마음이 조마조마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냉정을 유지했다.

지금 정유준을 가지고 상대방을 압박하는 것이야 말로 자신의 유일한 살길임을 알고 있다.

방 안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어색한 기류가 계속 감돌자 매튜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강 비서의 말, 맞아. MK가 이렇게 나의 체면을 세워준 이상, 내가 계약에 서명하지 않을 수 없지.”

말을 마친 매튜는 손을 뻗어 책상 위의 계약서를 들고 대충 훑어보고 서명했다.

하영은 어리둥절했다. 매튜가 그렇게 쉽사리 계약서에 사인할 줄은 정말 몰랐다.

그러나 이런 상황일수록 하영은 방심할 수 없었다.

매튜는 계약을 체결한 후, 하영에게 건네주었다.

“자, 강비서가 원하는 것은 주었으니, 이제 그쪽도 내가 원하는 걸 줘야겠지? 오늘은 나랑 함께 즐겨보자고……”

하영은 아연실색했다. 그리고 곧 알아듣지 못하는 척 연기했다.

“사장님, 제 주량은 사장님과 비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누가 술 마시쟀어?”

매튜는 갑자기 몸을 앞으로 기울여 다짜고짜 하영의 손목을 잡았다.

“강 비서, 너희 MK, 나에게 이윤을 3%만 줬으니. 나도 양보할 만큼 했잖아. 그러니까 내 이익은 너로 받을 수밖에…….”

하영은 순식간에 머리가 하얘졌다.

‘계약이…… 바뀌었어?!’

‘정유준의 작품인 건가……?’

이 계약은 오직 그들 두 사람만이 참여했다!

마음은 점차 차가워졌지만, 반대로 하영의 몸은 유례없이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고 있다.

하영의 눈동자가 갑자기 크게 떠졌다. 탁상 위의 술잔을 바라보았다. 매튜가 틀림없이 술에 약을 탔을 것이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죽을힘을 다해 매튜를 필사적으로 밀어냈다.

매튜의 푸른 눈에 욕망이 가득 차 있었다. 하영은 순간, 오늘 매튜가 자신을 고이 보내주지 않을 것을 깨달았다.

매튜가 힘으로 밀고 들어왔다. 힘에 부쳤다. 그의 얼굴이 자기 얼굴에 가까이 오자 하영은 고개를 돌려 그의 손등을 힘껏 물었다.

“아악!”

매튜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자기 손이 하영에게 물려 피가 나자, 순간 화가 난 매튜는 하영의 뺨을 한 대 갈겼다.

따귀를 때린 손에 대체 얼마나 많은 힘을 실었는지 모른다.

하영은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다. 입안에는 비릿한 피 냄새가 가득했다.

“여기까지 와서 무슨 청순을 떨어!”

매튜는 테이블 위의 보드카를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입에 담기 힘든 욕을 내뱉으며, 하영의 턱을 부여잡고 강제로 입에 술을 쏟아부었다.

입과 코로 술이 사정없이 흘러 들어갔다. 하영은 숨 막혀 질식해 죽을 것 같았다.

미친 듯이 발버둥 쳤지만, 자신의 몸을 짓누르고 있는 매튜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정신을 잃기 직전까지 가자 하영의 눈가에서 눈물이 맥없이 흘러내렸다.

진작 알았어야 했어!

5천만 원에 달하는 성과금을 제시한 건 MK에 입사 3년 만에 처음이었다.

스스로 자신을 속이려 했다. 정유준이 자신을 변태의 품속으로 떠밀 정도로 모질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녀의 오산이었다. 정유준을 너무 믿었다.

유준의 오피스 와이프, 하지만 그는 자신을 여태껏 돈으로 하룻밤 욕정을 해결할 수 있는 노리개 정도로 여겼을 뿐이다.

입고 있던 옷들이 사정없이 찢어지고,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나 절망할 때, 한쪽에 놓인 꽃병이 하영의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해 꽃병으로 매튜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뒤통수에서 붉은 피가 콸콸 흘러내렸다. 매튜는 손으로 머리를 잡고 하영에게 욕지거리를 했다.

“X발 년이…… 감히 내 머리를 쳐? 죽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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