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 시간이 되어도 유현석이 돌아오지 않자, 가정부는 나가서 찾기 시작했다. 딸이 수저를 놓는 걸 도와주려 하자 이영화는 예비 사위가 혼자 앉아 있기 불편할까 봐 가서 챙겨주라고 떠밀었다. ‘설마 그럴 리가.’하늘이 무너져도 연재준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유월영은 마지못해 거실로 다가갔다.연재준이 2인용 소파에 앉아 있었다. 유월영은 옆에 있는 소파로 다가갔지만 이내 연재준의 손에 잡혀 옆에 함께 앉았다.그가 귓가에 속삭였다.“어머님과 무슨 얘기를 했어?”유월영은 귀가 예민하여 살짝 피했다.“별말 안 했어요.”“별말 안 했는데 나에 대한 태도가 그렇게 변했다고?”연재준은 그녀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내가 눈치 못 챈 줄 알아? 방금 어머님이 나를 못마땅하게 여겼잖아. 내가 어디가 장모님 눈 밖에 날 게 있어?”연재준의 말도 안 되는 자신감은 그가 지나치게 우월한 조건에서 기인했지만, 자식을 돈으로 여기는 부모가 아니라면, 결혼할 때 상대방의 인품을 제일 우선시하는 게 당연했다.유월영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남녀 사이가 확실시 않는데 그러면 탐탁해하겠어요?”연재준의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다. 유월영도 기왕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니 서로 솔직해야 하고 못 물어볼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연재준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어머님이 스위스에 계신다고 했잖아요. 백유진도 스위스로 보낸 건, 어머님과 벗이 될 수 있도록 보낸 건가요? 무슨 신분으로?”연재준은 그녀의 손가락으로 장난치면서 웃었다.“그건 어머님이 맘에 안 들어 하신 거야? 아니면 당신 마음에 안 든 거야?”유월영은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물었다.“왜 말을 돌려요? 대답하기 많이 어려운 문제인가요?”“말투는 나를 따라 하는 건가?”연재준은 그녀를 와락 자신의 품으로 끌어안았다. 유월영은 서둘러 그의 가슴을 밀치고 나서야 품에서 빠져나왔다. “엄마가 아직 부엌에 있다고요!”그녀는 부모님 앞에서 껴안고 애정 행각을 할 생각이 없었다.
유월영은 인제야 백유진과 연재준 사이의 관계를 완전히 알게 되었다. 그를 보면서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더 많은 생각으로 이어졌다.남자는 그렇게 “순진”하지 않으며 연재준 같은 남자는 더욱 그랬다. 여자가 그에게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그는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백유진이 자신을 좋아하는 걸 알면서도 그녀가 자신 곁에 올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은 자신을 좋아해도 된다는 걸 묵인한 셈이다. 작년 설날 전에 있었던 일 때문에 그녀에게 불만이 있었고, 그녀에게 계속 냉랭하게 대했다. 그가 백유진을 곁에 둔 건 그녀를 화나게 하기 위해서일 뿐만 아니라, ‘변심’해서일지도 몰랐다. 유월영은 씁쓸한 듯 말했다.“재준 씨 어머님, 백유진 씨를 맘에 들어 하시겠죠? 재준 씨보고 백유진이랑 결혼하라고 하지 않으세요? 서정희 말로는 연 회장님께서 백유진을 받아들였는데 왜 갑자기 또 허락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하던데. 연 회장님이 백유진과 재준 씨 어머님 사이를 아셨던 게 아닐까요?”유월영은 연씨 가문의 집안일에 대해 잘 모르지만, 연 회장이 전처의 일에 대해 꺼린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연재준은 그녀의 턱을 살짝 잡으며 말했다.“유 비서님, 당신은 비서이지 탐정이 아니야. 그렇게 예민할 필요가 없어.”그녀는 하나를 보면 열을 알았다. 작은 단서라도 눈에 띄면 그녀는 전체 자초지종을 알아챘다. 유월영은 연재준의 손을 피하면서 말했다.“그럼 재준 씨 나랑 결혼하면 어머님이 반대하지 않으세요? 마음속의 며느리는 백유진을 점찍어 두신 것 같은데.”“어린애들이나 부모님 말씀 잘 따르지.”유월영은 마음이 심란해져서 다시 반지를 빼느라 안간힘을 쓰면서 중얼거렸다. “꼭 뺄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야. 손에 박힌 것도 아니고 왜 안 빠지지.”연재준은 지금 그녀의 감정이 매우 잘 느껴졌다. 그녀가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챘으며, 그게 무엇 때문이지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차분하게 설명했다.“아직도 내 말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남편이 돌아온 걸 듣고서 이영화도 막 음식을 상에 올려놓으며 말했다.“그럼 밥 먹을 준비해요. 오늘 월영이 재준 군을 데려오면서 미리 말을 안 해서, 아무것도 준비 못 했어요. 모두 집에서 만든 음식이라 재준 군 입에 맞을지 모르겠네.”연재준은 일어나서 유월영 아버지의 창백한 얼굴을 쓱 보고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제가 미리 찾아뵙겠다고 월영이한테 얘기를 안 했습니다. 그래서 월영이도 미리 얘기를 못 드렸을 거예요. 월영이 탓 아닙니다.”유월영 어머니는 사위가 보면 볼수록 맘에 들었다. 그녀는 오랜만에 기분이 좋아져서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재준 군, 우리 월영이 너무 오냐오냐하지 말게.”그리고는 이내 또 잊지 않고 딸의 편을 들어줬다. “하긴 우리 월영이 이렇게 착한데 오냐오냐하면 뭐 어때요.”유월영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모두 식탁에 앉고, 유월영 어머니는 연재준에게 우선 국을 떠줬다. 그러고는 계속 그의 밥 위에 반찬을 집어 줬다. “재준 군, 이걸 먹어봐요. 굴비가 아주 토실해요.”“그리고 이 불고기도 얼른 먹어봐요. 월영이 제일 좋아하는 반찬이에요.”“밥 다 먹으면 저기 과일도 먹어요. 월영이 좋아하는 신 귤도 있고.”연재준은 유월영을 보며 물었다.“신 걸 좋아해?”유월영 어머니가 웃으며 대신 대답했다.“그래요. 오늘도 한 박스 사다 놨어요.”“참, 재준 군 생년월일 아직 모르는데. 여기서 결혼하려면 사주도 봐야 하고 그에 맞는 결혼할 날짜도 골라야 해요.”“물론 이건 우리가 재준 군 아버지를 만난 후에 다시 의논해도 돼요.”잉이영화의 열정적인 태도에 비해 유현석은 무뚝뚝하게 앉아 있었다.하지만 유월영과 이영화의 관심은 모두 연재준에게 쏠렸던 터라, 누구도 유연석이 줄곧 아무 말 없이 음식은 손에 대지도 않은 채 긴장한 기색으로 앉아 있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마치 누군가가 신경에 거슬리는 듯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연재준은 시종일관 예의 바른 미소를 지었다. 이영화의 모든 질문에도 차
유월영은 연재준의 이 엉뚱한 생각에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그래도 다행히 연재준이 농담할 기분이라도 되니 유월영은 마음이 놓였다. “반지가 빠지지도 않는데 내가 어떻게 결혼 물리겠어요? 전 600억 배상할 돈이 없네요.”“응. 그게 내 목적이야. 뺄 수 없는 반지로 널 납치하는 거지.”연재준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아까 아버님께 손가락질받을 때는 좀 화가 났었는데, 당신이 잘 달래줘서 괜찮아졌어.”‘누가 달랬다고 그래. 여전히 왕자병이야.’유월영이 물었다.“재준 씨, 소은혜에게서 또 무슨 수를 배운 거예요?”이건 또 무슨 장난이람?“내가 남한테서 배울 게 뭐 있어?”연재준은 시치미를 뗐다.“연 대표님께서 윤영훈 흉내 내던 걸 기억나게 도와드릴까요?”연재준은 그녀의 입술에 세게 입을 맞춘 후 돌아서서 골목길을 걸어 나갔다. 유월영은 웃음을 참으며 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문을 채 열기도 전에 가정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모님! 사모님! 괜찮으세요?”유월영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영화는 가정부의 부축을 받으며 소파에 기대어 두 눈을 감고 숨을 고르고 있었다.가정부는 급히 혈압계를 꺼내 혈압을 측정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높았다. 유월영은 급히 혈압약을 찾아 그녀 입에 물려주었다. 한참 후에야 이영화는 깨어나 괜찮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유월영은 심각한 얼굴로 가정부와 같이 어머니를 침대에 부축해 눕혔다. 이영화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네 아버지 말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요즘 좀 무슨 일로 불안한가 봐. 계속 이랬다저랬다 하지, 술도 많이 마시고 툭하면 집에도 안 들어오고 물어보면 화부터 내고...”자주 술 마시고 집에 안 들어온다는 건 가정부한테서도 들은 적이 있었다. “아버지가 자주 어머니에게 화를 내신다고요? 가정부가 왜 저에게 안 알렸죠?”이영화는 남편에게 완전히 실망한 듯 말했다.“내가 말하지 말라고 했어. 네가 걱정할까 봐. 아버지 말 듣지 않아도 돼. 내가 보기에 재준
“...” 유월영은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유현석도 자기가 딸에게 손찌검하게 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어차피 손을 대게 된 이상 주먹을 꽉 쥐고 호통을 쳤다.“난 네 아버지야. 그러니까 내 말을 들어야 해. 내가 그 자식과 결혼하지 말라 했으면 하지 마! 그 자식은 좋은 사람이 아니야!”유월영은 손을 내려놓고 차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렇다면 당신이 예전에 날 빚보증용으로 바쳤던 그 채권자들은 좋은 사람들이었어?”유현석은 그 말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유월영은 뒤끝이 심한 사람이 아니었다.연재준이 예전에 그녀에게 했던 속상했던 일들, 그리고 유현석과 이영화가 그녀를 팔아버리려고 했던 일들도 전부 용서했고 “과거는 그냥 과거일 뿐”이라는 태도로 그들을 대했다.하지만 오늘 유현석은 유월영 인내심의 한계를 건드렸다.“당신은 먼 옛날부터 날 버리려고 작정해 놓고선 이제 와서 아버지의 신분으로 날 압박하고 공제하려 하지 마. 솔직히 말해서 당신은 날 다스릴 자격이 없어. 당신이 다시 어머니를 화나게 하면 난 어머니를 모셔갈 거야.”말을 마치고 유월영은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얼굴에 날린 그 귀싸대기는 불어오는 바람을 맞아 얼얼했고 꿀꺽 군침을 삼킨 후, 유월영은 결국 골목을 뛰쳐나갔다.하지만 뜻밖에도 골목 입구에서 그 마이바흐를 보게 되었다.연재준은 차에 기대어 서 있었고 햇빛이 그의 온몸을 살포시 비추어 따뜻함을 한층 더해주었다.유월영은 천천히 다가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왜 아직도 안 갔어요?”연재준은 한눈에 유월영의 오른쪽 얼굴에 찍힌 붉은 손바닥 자국을 발견했고 급기야 시선이 어두워졌다. “내가 왜 안 갔겠어? 여기 와 봐.” 떠나지 않은 것은 물론 유월영과 유현석이 티격태격하다가 불쾌한 기분으로 헤어질 것을 짐작했기 때문이다.유월영은 연재준 앞으로 걸어갔고 연재준은 주머니에서 두 손을 꺼내 그녀의 얼굴을 감쌌다. 그 손바닥은 난로처럼 따뜻했다.“뭐 하는 거예요?” 유월영은
연재준이 검은 실내 슬리퍼를 신고 흰색 카펫을 밟으며 유월영에게 다가갔다. “일주일이나 지났는데 내가 그립지 않았어?” 유월영은 시선을 돌리며 서둘러 부인했다. “그립지 않았어요.” 하지만 연재준은 솔직하게 인정했다. “난 네가 그리웠어.” “...” 유월영은 이제야 “필살기는 바로 진심”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연재준은 한술 더 떠서 당당하게 유월영에게 응석을 부렸다. “넌 내가 보낸 메시지에 답장도 안 했잖아.” 연재준은 유월영과 1미터 가까이 다가와 그녀의 안전거리에 들어가 유월영은 어쩔 수없이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메시지요? 난 받은 적 없었는데요.” 그러자 연재준은 “아, 받지 못했구나. 그럼 내가 널 오해했네. 괜찮아, 내가 직접 말해줄게.”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유유하고 그윽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기야, 난 널 갖고 싶어.” “뭐라고요!” “있잖아 자기야, 내 넥타이가 네 방에 있을 거야. 잘 다려서 보관해 둬. 네 손을 묶을 때 넥타이가 주름졌잖아, 기억나? 그리고 네 팬티가 내 트렁크에 있던 사진도 네게 보내줬잖아...” 유월영은 급히 손을 내밀어 연재준의 입을 틀어막았다. ‘이곳에 아무리 그들 둘만 있다 해도 이런 말은 함부로 꺼내는 건 좀 아니지 않냐, 이 망할 놈아!’ 연재준은 유월영의 허리를 감싸 안았고 머리를 숙여 정확하게 그녀의 입술을 찾아 자기 입술을 대고 물고 빨며 난리를 피웠다. 유월영은 부드럽게 두 번 밀어냈지만 연재준은 당연히 밀리지 않았다. 진심으로 밀쳐내고 싶었던 게 아니니까.. 연재준은 항상 차가운 기운이 감도는 도도한 사람이었고 성적인 대화는 거의 하지 않는 편이어서 가끔 한두 마디 하면 유난히 대조적이었고 이러한 대조는 듣는 사람을 미치도록 자극했다. 유월영은 방금 연재준이 내뱉은 세 마디 때문에 넘어간 걸 자연스럽게 인정했다.성적인 욕구가 있는 건 남자뿐만이 아니라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쭉 하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이미 해본 경험이 있으니 이런 상황
유월영은 이튿날에 동해안 저택을 떠났고 연재준의 배웅을 거절했다. 대신 이승연한테서 연락받고 점심 식사 약속을 잡았다.유월영이 화장할 때 연재준은 화장대에 기대어 그녀를 바라보며 자기를 제쳐놓고 다른 사람과 약속을 잡은 사실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넌 언제부터 이승연과의 관계가 그렇게 좋아졌어?”유월영은 눈썹을 그리며 덤덤하게 받아쳤다. “왜요? 연 대표님께서 신 교수님과 윤 대표님의 나와의 관계를 껄끄러워하는 것도 모자라 이젠 이 변호사와의 관계까지 간섭하려고 하는 건가요?”연재준은 솔직히 말해 둘의 관계를 진짜 신경 쓰고 있었다.그래서 유월영의 화장품 가방에서 그녀의 화장과 잘 어울리는 립스틱을 골라서 그녀의 턱을 들어 올리고 대신 입술에 발라주었다. “그들이 원래대로라면 내게 속한 네 시간을 빼앗아 갔는데 내가 불평도 한마디 못 해? 자기야, 내게 그렇게 엄격하게 대하지 마.”유월영은 스르르 입꼬리가 올라갔고 연재준은 몸을 숙여 다가와 립스틱을 바르며 말했다.“웃지 마, 발라주기 어려워.”연재준은 정신을 도사리고 립스틱을 발라주었고 유월영은 그의 오뚝한 콧날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이건 연재준이 유월영에게 두 번째로 립스틱을 발라주는 시간이었다.처음으로 발라주던 때는 상가 유람선에서였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유월영은 연재준이 능수능란하게 바르는 모습을 보며 분명 백유진에게 여러 번 발라줬던 경험이 있을 거라고 단정 지었다.하지만 지금은 연재준에게 속삭이듯 묻게 되었다. “누가 재준 씨에게 립스틱을 발라주는 법을 가르쳤나요?”연재준은 자세히 발라주고 나서 손가락으로 유월영의 입술 가장자리의 립스틱을 흐릿하게 문지르며 대답했다. “한 번 보면 알 수 있는 걸 굳이 누구한테서 배워야 해?”하긴 그 말도 맞는 것 같았다. 연재준은 어떤 일이든 손쉽게 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봐, 맘에 들어?”유월영은 연재준의 화장을 높게 평가했다. “예뻐요. 맘에 들어요.”연재준은 무심코 립스틱 뚜껑을 닫고 유월영의 입술에 기습 키스를 했다.
유월영은 약통을 받아 급히 가방에 넣었다. 유월영이 먹지 않는 모습을 본 이승연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왜 안 먹어?”그리고 이내 유월영의 약손가락에 껴있는 반지를 발견하고 놀란 말투로 물었다.“너 재준 씨랑 결혼하려고 해?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거야?”“어젯밤 재준 씨가 아이를 갖자고 제안했어. 근데 난 아직 고려 중이야.” 유월영이 웃음기를 빼고 진지하게 말했다.“근데 몇 달 전에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의사가 예전에 내가 유산한 적이 있어 자궁벽이 얇아져 임신하기 어렵다고 하더라.”이승연도 사뭇 진지한 태도로 조언했다. “내 생각은 네가 아이를 확실히 원하는 게 아니라면 아무리 임신하기 어려운 체질이라 해도 피임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봐.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피임하지 않다가 아이를 별로 원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진짜 임신했다고 하자. 다시는 임신하기 어렵게 될까 봐 원하지 않지만 억지로 낳게 될 수도 있어.”유월영이 입술을 꾹 깨물며 머리를 끄덕였다. “잘 생각해 볼게.”식사를 마친 후, 유월영은 이승연을 자기 집으로 초대해 오늘 밤을 함께 지내자고 했다.“어차피 우리 집은 아버지와 어머니, 나까지 해서 셋인데 사람이 많으면 더 북적이고 좋잖아.”하지만 이승연은 머리를 저었다. “아니야. 일 년에 한 번뿐인 섣달그믐날인데 너희 가족이 잘 쇠는 게 맞아. 난 사무실에 돌아가 내년에 열릴 재판을 준비하겠어.”“정말 나랑 안 갈 거야?” “얼른 돌아가. 어머니가 걱정하시겠다.”이승연의 태도가 확고해 유월영은 홀로 차를 운전해 봉현진으로 향했다.오늘은 가정부도 휴가를 내서 자기 가족과 명절을 쇠러 가 저녁 식사는 이영화가 직접 준비했다.유월영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소매를 걷어 올리고 앞치마를 두른 채로 부엌으로 들어가 어머니를 도왔다.연재준이 마침 메시지를 보내 유월영이 뭘 하고 있는지 물었다.그러자 유월영은 도마 위에 놓여있는 생선을 찍어 그에게 보여주었다.그 생선은 이미 배를 열어 찢어져 있었고 피범벅인 상태였다.연재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