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정은 짜증이 치밀어 미칠 지경이었다. 그녀는 툭 은서를 밀쳤다. “비켜, 이 아비 없는 자식아.”그러자 은서는 바닥에 넘어졌고 화단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혔다. 은서의 머리엔 바로 멍이 들었다. 밀려오는 통증에 은서가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기분 좋게 화원을 산책 중이던 정인월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진씨에게 소리가 나는 쪽으로 데려다 달라고 한 정인월은 그곳에서 은서를 부축하고 있는 민경하를 발견했다. 아이는 얼굴이 새빨개질 정도로 울고 있어 측은하기 그지없었다. “무슨 일이냐.”정인월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은서가 눈시울을 붉히며 “증조할머니.”하고 정인월을 부르더니 곧 민경하의 종아리를 끌어안고 흐느꼈다. 정인월이 정원에 있을 줄 몰랐던 신미정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러나 곧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이가 길을 제대로 보지 않고 넘어져서 울면서 민 실장에게 응석 부리고 있었어요. 어머님은 왜 나오셨어요?”민경하는 시선을 내리고 은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는 굳이 신미정의 거짓말을 들추지 않았다. 정인월은 신미정을 힐끔 쳐다보더니 태연하게 말했다. “바람 좀 쐬러 나왔어.”그러더니 그녀는 민경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민 실장, 입양 수속은 다 끝났어?”민경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류 확인만 끝나면 가서 처리하면 됩니다.”민경하가 고개를 들자 정인월은 그의 얼굴에 난 손바닥 자국을 볼 수 있었다. 정인월은 순간 인상을 찌푸렸다. “민 실장, 얼굴이 왜 그런 건가?”민경하가 말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차에서 내릴 때 실수로 부딪혔어요.”민경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은서가 소리쳤다. “그런 거 아니거든요. 경하 삼촌은 마귀할멈에게 맞은 거예요.”정인월이 어리둥절해졌다. “마귀할멈이 누구야?”은서가 신미정을 가리켰다. “저 사람이요. 증조할머니, 저 사람이 경하 삼촌을 때렸어요. 그리고 또 경하 삼촌을 강아지라고 욕했어요.”“얘가, 무슨 헛소리를 하는
아무래도 정인월은 나이가 있었던 터라 아무리 있는 힘을 다했다고 하더라도 신미정이 민경하를 때린 것만큼 아프지는 않았다. 하지만 50대가 넘은 신미정은 뺨을 맞았다는 사실에 수치심을 많이 느끼고 있었다. 그러니 너무 아픈 건 아니었어도 따귀에 그만 멍해지고 말았다. 신미정은 얼굴을 부여잡고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정인월을 쳐다보았다. “어머님?”정인월이 표정을 굳힌 채 말했다. “한서가 사고 났을 때 민 실장 얘들이 팀을 이끌지 않았다면 한서가 돌아왔을 때 회사에 한서의 자리가 남아있긴 했겠니? 네가 계속 사모님 소리를 들을 수나 있었을 것 같아?”“민 실장... 그리고 한성의 모든 직원들은 모두들 자기 능력으로 일하고 돈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야. 신미정 네 부하가 아니란 얘기라고. 네가 때리고 싶다고 때리고 욕하고 싶다고 욕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넌 지금 강씨 가문 얼굴에 먹칠하는 거라고.”신미정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녀는 한참 만에야 이를 악물고 말했다. “어머님,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정인월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네가 사과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민 실장이야.”신미정은 주먹을 꽉 움켜쥐고 민경하를 향해 웅얼거리는 말투로 말했다. “미안해.”민경하는 신미정의 사과에 아무런 대꾸 없이 정인월에게 말했다. “전 먼저 가보겠습니다.”“잠깐만.”정인월이 민경하를 불러세웠다. “민 실장, 따라오게. 얼굴에 상처는 처치하고 가.”알겠다고 대답한 민경하가 정인월의 휠체어를 밀고 자리를 떠났다. 신미정은 어두운 얼굴로 주먹을 꽉 움켜쥔 채 두 사람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았다. 한참을 걸어서야 정인월이 한숨을 내쉬었다. “민 실장, 자네가 고생이 많아.”민경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때문에 사모님에게 핀잔을 주실 필요 없으세요. 어찌 되었든 대표님 어머님이시잖아요.”정인월이 웃으며 말했다. “자네는 한서보다도 두 살이나 어리면서 늙은이 같은 얘기를 하는구먼. 아무리 한서가 기억을 잃었다고 해도 따
“민서 씨... 어리시죠. 제 사촌 여동생과 나이가 비슷해요. 성격도 그렇고요. 조용하게 있을 땐 귀엽죠.”“...”‘민 실장, 이 귀신 같은 놈. 말은 잘하네.’어리다는 건 나이가 맞지 않다는 말이었다. 사촌 여동생과 나이가 비슷하다는 건 동생 같다는 것이었다. 조용하게 있을 땐 귀엽다는 것은 평소엔 당해낼 재간이 없다는 뜻이었다. 결국은 마음대로 인연을 맺어주려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정인월은 민경하의 말뜻을 못 알아들은 사람처럼 말했다. “2개월 동안 민 실장이 회사에서 민서에게 일을 가르쳤다고 들었네. 지금은 많이 배운 것 같아. 그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오냐오냐 키워서 누구 말도 안 듣는데, 자네가 그 아이를 이렇게까지 이끌어줄 수 있다는 건 민서도 자네를 인정하는가 보네.”민경하가 말했다. “민서 씨가 똑똑하고 잘 배우셔서 그래요. 전엔 그저 노는 데에만 정신이 팔렸지만 지금은 마음을 다잡았으니 실력이 빨리 느는 것도 당연한 일이죠. 그리고 민서 씨가 제 말을 잘 듣는 게 아니라, 아무래도 대표님께서 카리스마가 있으셔서 그런 걸 거예요.”어떻게든 피해 가려는 민경하의 모습에 조금 우울해진 정인월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민 실장, 민서가 별로인가?”민경하가 에둘러 표현했다. “전 민서 씨 좋게 보고 있어요. 지금 상태만 잘 유지하신다면 앞으로 충분히 좋은 성과를 내실 수 있을 거예요.”“됐네.”정인월이 민경하를 노려보았다. “내 손주사위가 되는 게 그렇게 싫은가?”말문이 막힌 민경하가 한참 만에야 대답했다. “회장님, 연애라는 건 서로가 원해야 하는 거잖아요. 저에게 민서 씨는 그저 동생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에요. 물론 민서 씨도 그럴 거고요.”“마음이야 서로 알아가면 되지.”정인월이 말했다. “민서 성격이 고집스러워서 싫은 건가? 민서가 본성이 나쁜 아이는 아닌데 교육을 잘못 받아서 그래. 이젠 내 몸이 하루하루가 옛날 같지 않으니 한서 남매가 잘 지냈으면 하는 마음뿐이라네. 한서는 자기 주견이 있
강한서가 멈칫했다. “이 말이 다친 적이 있다고요?”“전에 도련님께서 강운 도련님과 시합하실 때 강운 도련님이 타신 것이 바로 이 말이에요. 당시 말이 통제 불능이 되었던 것도 부상이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목 여기에...”서수만은 말하며 말의 머리를 밀어 목 밑의 털을 강한서에게 보여주었다. “이 사이에 상처가 길게 나 있었어요. 무엇에 긁힌 것인지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 못이나 그런 날카로운 물건이었을 거예요. 고삐를 잡아당기면서 상처가 깊어져 통증 때문에 통제 불능이 된 거였어요.”“그 상처는 잘 낫지도 않아 찢어지고 아물기를 반복하다 한 달 만에 겨우 다 나았어요. 지금까지 이곳엔 털이 자라지 않고 있죠. 오늘 승마하실 때 아마 이곳을 건드려 그렇게 반응했던 것 같아요.”훈련사는 오랫동안 말들과 지내며 정이 많이 쌓였다. 그는 강한서가 그 말을 팔거나 안락사를 시킬까 봐 말을 대신해 사정했다. “도련님, 평소엔 온순한 아이예요. 사람도 잘 따르고 우승도 한 적 있어요. 만약 다치지 않았다면 절대 그럴 리가 없었을 거예요.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시면 제가 잘 훈련할게요.”정신이 든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전 훈련사님께서 하신 얘기가 기억나질 않네요. 당시 강운이가 다쳤었나요?”“도련님께서 제때 구해주셔서 강운 도련님은 다치지 않으셨지만 오히려 도련님께서 팔이 탈골되셨었죠.”강한서는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오늘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만약 다음에도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이 말은 다른 곳으로 보내세요. 사람을 다치게 하는 말은 여기 계속 둘 순 없어요.”훈련사가 얼른 장담하며 말했다. “다음엔 절대 이런 일 없을 겁니다.”강한서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그 말의 상처 부위를 한참 동안 빤히 쳐다보더니 곧 돌아서서 승마장을 벗어났다. 그 시각. 한현진은 돌아가는 길에 김 교수님에게 전화했다. “교수님, 지금 한주에 계세요?”“네. 여쭤볼 게 있어서요. 지금 시간 괜찮으세요?”“네. 그럼 제가 도착하면 주소
김수철이 손을 내저었다. “지금 중요한 건 현진 씨예요. 얼른 검사해 보세요. 몸조리가 아직 완전히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이 되었으니 만약 무슨 문제가 있다면 최대한 빨리 아이를 지켜야 해요.”긴장하지 않고 있던 한현진은 김수철의 말에 갑자기 불안해졌다. 그녀는 밥도 제대로 먹지 않고 차미주에게 전화해 함께 검사받으러 가자고 했다. 한현진은 한성우를 데리고 오지 말라는 당부를 깜빡 잊고 하지 못했고, 결국 차미주는 한성우와 함께 한현진에게로 왔다. 차에 탈 때, 한현진은 차미주에게 나지막이 얘기했다. “성우 씨는 왜 같이 온 거야.”차미주가 대답하기 전에 한성우가 말했다. “형수님, 제가 없으면 형수님께서 병원에서 검사를 마치고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혼전 임신했다는 사실은 바로 기사화될 거예요. 제가 있으면 기사는 제가 다 내릴 수 있어요.”차미주가 말했다. “유통기한이 지난 임신 테스트기를 사 왔으니 뒷처리 정도는 책임져야지.”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성우 씨가 계시면 언론사에서 사진을 못 찍을 수는 있겠지만, 성우 씨 입은 아마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모든 사람들이 알도록 만들겠죠.”한성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그런 말씀 마세요. 저 입 무겁다고요.”한현진이 “제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아요.”라는 표정을 지었다. 차미주가 물었다. “현진아, 어쩔 생각이야? 만약 임신이면 강한서에게 안 알려줄 생각인 거야?”한현진이 대답했다. “알려줄 거야. 하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야. 그 전에 이 사실이 새어나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그녀는 말하며 한성우는 쳐다보았다. “성우 씨는 내 계획의 옥에 티예요.”한성우는 할 말을 잃었다. 차미주는 곧 무섭게 한성우를 노려보았다. “오늘 일 절대 발설하지 않겠다고 당장 맹세해.”한성우는 차미주가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남자친구보다 친구가 중요한 여자친구를 만났으니 뭐 어쩔 거야?’‘바라는 대로 해줄 수밖에.’한성우는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오늘
차미주와 한현진 모두 말문이 막혔다. 한성우는 뻘쭘한 표정을 지으며 욕을 지껄였다. “헛소리하지 마요. 이 분은 내 친구예요.”그러더니 차미주를 옆으로 끌어왔다. “여긴 내 여자친구. 검사하실 분은 내 여자친구의 친구세요.”차미주가 한성우를 밀어버리며 말했다.“누가 네 여자친구야? 마음대로 그렇게 부르지 마.”한준우은 조금 의외인 듯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은 마치 “너도 이런 날이 있구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한성우의 형은 의사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고 가볍게 한성우를 놀린 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미 준비해 뒀어요. 여기 유 선생님께서 안내하실 겁니다. 어떤 검사를 진행하는지도 유 선생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한현진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전하고 한성우의 형 옆에 있던 여자 의사와 자리를 벗어났다.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차미주는 모든 과정을 동행했다. 그들이 자리를 떠나고 나서야 한성우의 형은 한성우를 쳐다보았다. “언제 여자친구를 사귄 거야. 어머니, 아버지께 그런 얘기는 들은 적 없는데. 얼마 전에도 나한테 우리 병원 의사를 너에게 소개해 주라고 하셨어.”한성우가 나른하게 창가에 기대며 태연하게 말했다. “내가 말씀드리면 다음 날 바로 집으로 찾아가서 조부모님까지 조사하려고 하실 거잖아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호구조사 하는 줄 알겠어요.”한준우이 소리 내 웃었다. “아무래도 네가 제일 잘나가니까 그런 거지. 너에게 여러모로 어울리는 아가씨로 찾아서 결혼시켜 아이도 낳고 그러시려는 거야.”한성우가 코웃음을 쳤다. “본인들이 낳은 아이도 신경 쓰지 않으시면서 손주를 바라시다니, 웃기시네요.”한준우은 한성우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들 형제는 사이가 좋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서로 겪은 일들은 비슷할 수밖에 없었다. 한성우는 농촌에서 자라며 최소한 할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살 수 있었지만 부모님 곁에서 자란 다른 형제들의 동년은 부모님이 없는 아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삐딱선을 타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일
차미주는 이미 잔뜩 흥분해 있었다. “이게 바로 내 딸이야? 세상에, 이렇게 작다니. 너무 신기해.”그러면서 차미주는 한현진에게 말했다. “현진아, 현진아. 빨리 봐. 내가 너 임신이라고 했잖아.”울컥한 한현진은 한참 만에야 대답했다. “왜 이렇게 작아요? 안 건강한 거 아니에요?”그 말에 유소민이 웃었다. “이제 한 달밖에 안 됐으니 작은 게 당연해요. 건강한지 아닌지는 어떻게 보아낸 거예요?”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전에 제가 몸이 안 좋아서요. 아이에게 영향이 있을까 봐 걱정이거든요.”유소민이 멈칫하더니 물었다. “모든 검사 결과가 나와야 저희도 판단할 수 있어요. 지금은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으세요. 마음 편히 계시면 돼요.”한현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시 후 다시 물었다. “선생님, 제 남편이 정관 수술을 했는데 아기에게 영향이 있을까요?”유소민이 할 말을 잃었다. “남편분께서 정관 수술을 했는데 어떻게 임신을 하신 거죠?”한현진이 말했다. “아마도 수술이 실패하지 않았을까요?”유소민은 이 초보 엄마에게 말문이 막혔다. “일반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아요. 하지만 그래도 걱정이 된다면 태아가 조금 더 큰 뒤에 정밀 검사를 받아보시면 돼요.”알겠다던 한현진은 곧 또 다른 질문을 떠올리고는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음주는 아기에게 영향이 있을까요?”“당연하죠. 임신하셨는데 어떻게 술을 마셔요?”유소민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술 드셨어요?”한현진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전에 임신인 줄 몰라서 조금 마셨어요.”“조금이라면 얼마나 마셨어요?”한현진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차미주가 말했다. “반병이요. 바로 어제 마셨어요. 그때는 임신이라고는 전혀 생각도 안 하고 있어서.”유소민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엄한 태도로 한현진을 꾸짖었다. 한현진의 얼굴이 잿빛이 되었다. 왜 진작 임신일 걸 눈치채지 못했을까? 진작 알았다면 누가 뭐라고 하든 주강운과 술을 시음하러 가지 않았을 것
애초부터 강한서는 다리를 심하게 다친 것이 아니라 너무 오랫동안 와병하며 근육이 위축되었던 것뿐이었다. 본가로 돌아온 며칠 동안 재활 훈련과 음식 조절을 열심히 하고 있었으니 그의 몸도 빠른 속도로 회복이 되었다. 비록 건강은 많이 좋아졌지만 송가람은 점점 더 말이 없어지는 강한서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 강한서의 냉담함에 은근히 불안해진 송가람은 먼저 한현진 얘기를 꺼냈다. “요즘 현진 씨가 집에 없으니 집안 분위기가 허전한 것 같아요. 비록 현진 씨가 전엔 계속 제가 한서 오빠를 구한 일로 저를 원망하긴 했지만 사실 전 집에 여동생이 있는 게 좋았거든요.”한현진의 이름을 들은 강한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송가람이 혼잣말하듯 말했다. “아빠에게 들었는데 친구와 바람 쐬러 여행을 갔다고 하더라고요. 현진 씨는 워낙 친구가 많아서, 지난번엔 강운 오빠와 가더니 이번엔 누구와 함께 갔는지 모르겠어요.”강한서는 여전히 송가람의 말에 대꾸는 하지 않더니 오히려 그녀에게 물었다. “가람 씨. 할머니가 어제 이젠 제 다리도 거의 다 회복이 되었으니 시간을 내 감사 인사를 전하러 가라고 하시더라고요. 아저씨께 이번 주말에 시간이 있는지 물어봐 주시겠어요? 만약 시간이 맞으면 이번 주말에 찾아뵐게요. 이번 기회에 가람 씨가 절 구한 일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 드려야겠어요. 그래야 가람 씨를 곤란하게 하지 않을 테니까요.”송가람이 멈칫했다. 그녀는 순간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 “네. 돌아가서 아빠께 여쭤볼게요.”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시간을 확인했다. “기사님께 모셔다드리라고 할게요. 저도 이젠 쉬어야겠어요.”송가람은 조금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강한서의 건강이 점점 좋아지고 있으니 송가람에게는 이곳에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그녀가 떠난 후 강한서는 쉬어야겠다던 자기 말대로 방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은서의 방으로 향했다. 그림을 그리고 있던 꼬마 아가씨는 노크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찾아온 사람이 강한서라는 것을 확인한 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