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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뭐라고요? 멀쩡한 데다가 이미 정신을 차렸다고요?”

도시 중심부 병원 안, 이진희의 기사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놀라서 물었다.

“환자는 별일 없습니다. 외상을 조금 입은 것 말고는 멀쩡합니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리가요? 그 사람 차에 치였을 때 상태가 엄청 심각해 보였고 피도 많이 났어요.”

기사는 귀신이라도 본 듯한 얼굴이었다.

“말씀하셨다시피 그냥 겉으로 보기에만 그랬을 거예요.”

이진희의 아름다운 눈동자에 의문이 스쳐 지나갔다. 의사의 말이 농담이 아니란 걸 확인한 뒤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럼 제가 가볼게요.”

병실 문이 열리고 이진희는 멍한 얼굴로 침대 위에 앉아 있는 남자를 보았다.

윤도훈은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게다가 몸 상태도 어쩐지 이상했다.

머릿속에 여러 가지 정보가 떠올랐다.

용혼소울링, 용황경, 용안관천술...

이게 다 뭘까?

게다가 계속 은근히 아팠던 왼쪽 신장에서 한 줄기 열기가 흘러나와 사지로 퍼져나가는 듯해 불편했다.

윤도훈이 제대로 살펴보려 할 때 이진희가 들어왔다.

고개를 든 윤도훈의 눈동자에 놀라움이 스쳐 지나갔다.

아름답다!

과거 윤도훈의 혼을 쏙 빼놓았던 주선미도 눈앞의 미인과 비교하면 삽시에 빛이 바랠 것이다.

“당신은...”

윤도훈은 입을 뻐끔거리며 불확실한 어조로 물었다.

이진희는 대답 대신 그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자해 공갈하려던 사람 맞죠?”

잠시 넋을 놓고 있던 윤도훈은 한참 뒤에야 그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상대방이 운전하는 차량을 향해 돌진했으니 자해 공갈단으로 여기는 게 당연했다.

“아뇨...”

윤도훈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 그러면 정말 죽고 싶었던 거예요?”

이진희가 무덤덤한 얼굴로 물었다.

“네...”

윤도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죽지 못했으니 이제 어쩔 생각이에요? 계속 자살 시도할 생각인가요?”

이진희의 눈에서 빛이 반짝였다. 그녀가 어떤 의도로 이런 질문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녀의 질문에 윤도훈은 침묵을 지켰다.

이진희는 서늘한 눈빛으로 윤도훈을 훑어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에 윤도훈은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펄쩍 뛸 뻔했다.

“우리 결혼하는 거 어때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윤도훈은 짧게 소리를 지른 뒤 입을 떡 벌리고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뭐라고요? 방금 뭐라고 했어요?”

“우리 결혼해요!”

이진희가 무표정한 얼굴로 한 번 더 말했다.

윤도훈은 넋이 나갔다. 그는 심지어 조금 전 차에 치인 것이 눈앞의 그녀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말을 할 리가 없었다.

“그런 눈빛으로 보지 말아줄래요? 저 멀쩡하거든요!”

윤도훈의 눈빛을 느낀 이진희가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

윤도훈은 헛기침했다.

“그런데 왜죠? 절 그렇게 중요시하는 건가요?”

이진희는 한껏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제가 당신을 선택한 건 당신을 얕보기 때문이에요. 간단히 말하자면 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제 약혼자가 되길 바라요. 당신은 자살 시도를 한 사람이니 당신이 가장 좋을 것 같네요. 어차피 당신은 자기 목숨을 소중히 생각하지 않잖아요. 어차피 버릴 목숨일 텐데 저한테 이용당해요. 물론 공짜로 이용할 건 아니고 그에 상응하는 보수를 지급할 거예요!

말이 끝나자마자 윤도훈의 눈동자가 빛났다. 상대방은 분명 부자일 것이다.

“알겠어요. 당신이 내게 4천만 원, 아니, 1억 6천만 원을 줘서 내 딸을 구해준다면 어떻게 해도 좋아요!”

중환자실은 1일당 입원 비용이 아주 비쌌다. 만약 정말 딸에게 맞는 골수를 찾게 된다면 돈이 얼마나 들지 몰랐다.

게다가 눈앞의 그녀는 돈이 부족해 보이지도 않았기에 윤도훈은 그녀에게 거액의 보수를 요구하려고 마음먹었다. 상대방이 그와 값을 흥정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말에 이진희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미리 얘기하지만 약혼자는 그냥 타이틀에 불과해요. 나랑 당신 사이에는 그 어떤 실질적인 관계도 없을 거예요!”

“상관없어요. 내게 1억 6천만 원을 줘서 내 딸을 구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요!”

윤도훈이 다시 한번 말했다.

“당신은 데릴사위가 되어야 해요. 억울한 일도 당할 수도 있고 우리 집안사람들이 당신을 깔볼 수도 있어요. 쉽게 말하자면 당신은 그저 꼭두각시에 불과해요!”

이진희는 우선 쓴소리부터 할 생각이었다.

“1억 6천만 원으로 내 딸을 구할 수 있다면 아무래도 괜찮아요!”

“알겠어요...”

이진희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녀가 돈을 주어 그의 딸을 살려준다면 눈앞의 남자는 뭐든 받아들일 것 같았다.

목숨도, 체면도 모두 내려놓을 것만 같았다.

...

중환자실 안, 율이의 주치의인 조강인이 율이의 눈꺼풀을 들어 확인한 뒤 옆에 놓인 기계를 힐끗 쳐다보았다.

“가망이 없네요. 준비하세요!”

“알겠습니다, 조 선생님.”

간호사는 그의 말에 대답한 뒤 흰 천으로 시체를 덮으려 했다.

율이는 눈을 감은 채로 꼼짝하지 않고 누워있었다.

연약한 어린 생명은 이미 종착지에 다다른 듯했다.

조강인은 미안함이나 안타까움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냉담한 표정으로 율이를 힐끗 보았다.

“병원비도 내지 못하고. 수입 특효약을 계속 쓴다면 며칠 더 살 수 있었을 텐데. 거지니 그냥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지.”

조강인이 입을 비죽이며 중얼거렸다.

바로 그때, 누군가 부랴부랴 밖에서 뛰어 들어왔다.

간호사의 손에 들린 흰 천을 본 윤도훈은 삑사리를 내며 말했다.

“잠깐만요, 지금 뭐 하려는 거예요?”

“환자는 이미 세상을 떴습니다...”

간호사가 깜짝 놀라 대답했다.

“아뇨! 그럴 리가 없어요. 율이야! 율이야!”

그 말에 윤도훈은 큰 충격을 받은 사람처럼 낮게 포효하며 병상 옆으로 달려갔다.

이미 숨이 멎은 채로 눈을 감고 있는 딸을 보는 순간, 윤도훈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이 율이의 작은 손을 꼭 쥔 채로 살살 흔들었다.

“율이야, 일어나봐! 눈 떠서 아빠 봐야지! 율이야! 율이야, 내 딸아!”

조강인이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병실에서 왜 소란을 피우세요? 이미 죽었으니 얼른 간호사가 옮기게 하세요.”

“아뇨, 율이는 안 죽었어요! 율이가 이렇게 빨리 죽을 리가 없어요. 율이한테 특효약을 썼나요? 특효약을 썼는데 이렇게 빨리 죽을 리가 없잖아요.”

윤도훈은 눈이 벌게져서 따져 물었다.

조강인은 코웃음을 치며 조롱 섞인 어조로 말했다.

“요금 미납한 지 꽤 되셨잖아요. 그런데 특효약이라뇨? 우리 병원이 자선단체인 줄 아세요?”

“제기랄! 당신 참 사악한 의사네요! 왜 우리 딸한테 약을 쓰지 않은 거예요? 왜죠? 제가 말했잖아요. 제가 가서 돈을 모을 테니 먼저 제 딸한테 약을 써달라고요. 어떻게 우리 딸이 죽어가는 모습을 그냥 지켜만 볼 수 있어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죠? 대체 어떻게!”

윤도훈이 피눈물을 흘리며 책망했다.

“당신이 한 말이 무슨 소용이 있죠? 당신이 누군데요? 당신 딸은 이미 죽었어요. 간호사, 얼른 시체 옮겨요! 중환자실은 시간당 비용을 내야 하니까 돈이 그렇게 많으면 계속 여기서 소리 지르세요!”

조강인은 냉소를 흘린 뒤 성가시다는 듯이 재촉했다.

“아뇨. 제 딸은 죽지 않았어요! 죽지 않았다고요!”

윤도훈은 율이의 작은 손을 잡고 억울한 듯 고함을 질렀다.

다음 순간, 심장이 뛰면서 한 줄기 뜨거운 열류가 그의 손에서 율이의 손으로 옮겨져 율이의 체내로 들어갔다.

“이미 죽었다니까요. 이렇게 붙잡고 있어도 소용없어요. 차라리 집으로 데려가서 안고 계세요. 여기서 소란 피우지 마시고요!”

조강인이 말했다.

“아뇨, 제 딸은 죽지 않았어요! 제 딸은 살아날 거예요!”

윤도훈의 체내에서 흘러나온 열류가 율이의 체내로 들어갔다.

뜨겁게 달아오르는 왼쪽 신장과 머릿속에 떠오르는 많은 정보에 윤도훈은 자기 몸에 변화가 생겼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윤도훈은 왼쪽 신장에서 느껴지는 열류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그것을 자유롭게 사용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절대 포기하지 않을 셈이었다. 그는 필사적으로 율이의 체내에 열류를 주입하며 기적이 일어나길 간절히 바랐다.

“살아난다고요? 미쳤어요? 활력징후가 전혀 없는데 어떻게 살아날 수 있다는 거죠? 당신 딸이 살아난다면 전 앞으로 물구나무로 서서 걸어 다닐 거예요.”

조강인은 경멸에 찬 어조로 말했고 옆에 있던 간호사가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바로 그때, 율이의 몸에 연결되어 있던 측정기에서 ‘삐’ 소리가 났다.

곧이어 심장 측정기 스크린 위에 그려졌던 직선에 파동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이내 더욱 강렬해지면서 규칙적으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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