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눈을 부릅뜨고 몇 초 동안 멈칫하더니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탁!털썩!곧이어 그는 리볼버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온몸에 힘이 풀렸다.“난... 난 그만할래! 내가 졌어!”“내가 졌다고!”정팔의 의기소침한 목소리가 울렸고 심지어 울음소리까지 섞였다.조금 전까지 카지노를 휩쓸며 침착하고 자신감 넘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멘탈이 붕괴된 것 같았다.그는 방아쇠를 당길 용기가 나지 않았다.그의 손놀림으로도 빈 탄창을 찾아낼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정팔은 그 방아쇠를 당긴다면 오늘 이 자리에서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그는 죽고 싶지 않았다. 아직 누리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그는 돈이 엄청 많았고 마카오에 몇천 명의 애인이 있었다!“태석이 형, 문 회장이 전에 약속한 금액의… 두 배를 돌려드리겠습니다!”“전 못하겠어요...”정팔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두 눈에 초점을 잃은 채 태석이 형을 보고 말했다.태석이 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왜냐하면 그는 정팔의 심정을 너무 잘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태석이 형이었어도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을 것이다.“하하, 태석이 형, 멀리 안 나갑니다!”이원이 웃으며 밖으로 안내하는 손짓을 했다.그는 태석이 형과 정팔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속 시원했다.맺혔던 한이 풀린 것 같았다!‘잘난 체하더니! 본 도련님의 카지노를 발칵 뒤집으러 왔다며? 어디 한번 계속해 보시죠?’태석이 형과 정팔이 떠난 뒤, 이원은 고개를 돌려 자신의 “매형”을 쳐다보았다.“고마워! 근데 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이원은 윤도훈을 빤히 쳐다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무시와 멸시로 가득 찼던 두 눈은 의아함과 호기심으로 가득하였다.‘이 자식, 보통이 아니야! 아무짝에 쓸모없는 꼭두각시는 더더욱 아니고…’이런저런 생각이 들다보니, 이원은 윤도훈이 자신의 누나에게 접근한 목적이 궁금했다.“나는 네 매형이야!”윤도훈이 어깨를 으쓱
골든 비치 카지노에서 나온 뒤, 이진희는 계속 윤도훈의 팔짱을 끼고 있었는데 마치 사랑에 빠진 어린 소녀 같았다.이원은 더는 윤도훈을 누나가 찾은 꼭두각시로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의 누나가 사기를 당하진 않을까 걱정이 됐다.아무리 여장부 같고 도도한 그의 누나라도 사랑에 빠지면 바보가 되기 마련이니 말이다.윤도훈의 오늘 활약에 그는 이 사람이 조금 위험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당장 조사해! 이 자식에 관한 모든 걸 알아 와!”“네, 사장님!”한편, 페라리에 앉은 이진희는 방긋방긋 웃던 미소를 거둬들이고 차갑고 도도한 얼굴로 돌변했다.“윤도훈 씨, 앞으로는 스킨십할 때 자제 좀 부탁할게요. 또다시 불필요한 스킨십하고 그러면 허승재보다 먼저 사라지게 해줄 거예요!”이 망나니 놈이 자신을 끌어당겨 그의 다리에 앉히는 행위에 대해, 이 도도한 이 씨 집안 아가씨는 화가 많이 났다.그녀의 눈에는 윤도훈은 그저 꼭두각시에 불과했기 때문에 그녀가 좌지우지할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자꾸만 윤도훈이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그럼, 진희도 좀 자제해 줄래? 나한테 함부로 스킨십하지 말아야지?”윤도훈이 뜨뜻미지근하게 물었다.이진희는 흠칫 놀라더니 되물었다.“무슨 뜻이에요?”“우리는 거래를 했고, 나는 약속대로 꼭두각시 노릇을 할 수 있어.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당해줄 수도 있고! 그리고 당신들이 마음속으로부터 나를 무시하고 멸시하는 것을 막을 수도 없지! 하지만 폭력은 쓰지 말아 줬으면 좋겠어. 아무리 연기라도, 자꾸 뺨을 때려서야 되겠어?”윤도훈은 차갑게 말했다.“당신...”이진희는 그의 말을 듣더니, 그를 쳐다보는 눈빛이 흔들렸다. 그녀의 눈 밑에는 알 수 없는 억울함이 스쳐 지나갔다.화를 주체 못 하고 윤도훈한테 걸어가 뺨을 때리려 했던 게, 과연 연기일까? 그래, 그거야. 이 사람 때문에 긴장했을 리는 없어!심호흡한 후, 이진희는 다시 무표정해 보이도록 감정을 추슬렀다.“오늘
“네가 찾는 족족 다 죽여버릴 거야!”그는 방 안의 물건을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던져 부숴버렸다. 이 청년이 바로 허씨 가문의 큰 도련님인 허승재였다. 그는 이진희를 너무나도 갖고 싶었다. 하지만 갖는다고 해도 천성적인 생리적 결함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이유로 지금의 비뚤어진 성격과 변태적인 소유욕이 만들어졌다!...이틀 후, 윤도훈은 택시를 잡아타고 낡은 달동네에 도착했다. 율이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전에 살던 집을 처분하는 바람에 이곳에서 셋방을 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그때 윤도훈의 얼굴엔 빙그레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율이의 병증이 많이 호전되어 퇴원해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오늘 윤도훈은 율이에게 따뜻한 보금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일찌감치 돌아와 집을 정리하려고 이곳에 왔다.초보적으로 용황경을 익힌 윤도훈은 딸의 병증이 더는 심해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또한 그가 직접 만든 약 처방은 해외에서 들여온 것보다도 훨씬 더 효과가 뛰어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부작용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용수초라고 불리는 진귀한 약재를 손에 넣는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반드시 율이의 병을 완전히 낫게 할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도운시의 크고 작은 약방을 모두 뒤졌지만 용수초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이젠 어쩔 수 없이 운명에 맡겨야 한다!문 앞에 도착한 순간, 윤도훈의 얼굴에 노기가 피어올랐다. 조금 전 좋았던 기분이 산산이 깨져버리는 순간이었다.집 안에 있던 물건들이 문 앞에 제각기 널브러져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로 인해 모조리 문밖에 내던져진 것이다.그때, 집주인이 가방을 하나를 갖고 나와 바닥에 툭 던져버렸다. 그 충격에 가방이 열렸고 안에 있던 장난감 곰 인형과 옷가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율이의 장난감과 아이가 어릴 적 입었던 옷이었다!“이 지저분한 쓰레기들은 다 뭐야? 꼴 보기 싫어 죽겠네!”뚱뚱한 중년 여주인이 투덜거리며 물건을 내던졌다.윤도훈은 인형과 옷을 주
저번 율이의 병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했을 때 윤도훈은 일상용품을 대충 챙겨 병원으로 가 율이를 간호했었다.한동안 집을 비웠다고 집주인이 말도 없이 물건을 내던지고 사람을 쫓아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윤도훈이 대체 왜 쫓겨나야 한단 말인가? 월세를 냈으니 이 집의 주거권은 분명 그에게 있다. 그저 집주인이 그를 계약을 연장할 능력도 없는 사람이라고 얕잡아보고는 계약 기간이 다 끝나기 전에 쫓아내려 하는 것이다.윤도훈은 돈을 얻을 인연을 만났지만 아직 현금을 손에 넣진 못했다. 저번 이진희는 율이의 병원비를 내줬을 뿐 돈을 직접 준 건 아니었기에 윤도훈은 현재 다른 거처를 구할 돈이 없었다.더욱이 율이가 집에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자신과 아빠가 집에서 쫓겨났다는 이 상황을 알게 된다면 크게 상심할 것이 분명하다.“안 가겠다고? 사람이라도 불러서 끌어낼까? 내가 못할 것 같아?”집주인이 윤도훈에게 손가락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바로 그때, 한쪽에서 삐딱한 말소리가 들려왔다.“윤도훈, 너 설마 월세도 못 내서 쫓겨난 거야?”그 말과 함께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이 흉악한 인상의 사람들을 데리고 마당으로 걸어들어왔다.주선미와 그녀의 현재 남편 유현이었다!“하하. 억지로 안 가겠다고 버티는 것 같은데?!”유현이 조롱 섞인 웃음을 터뜨리며 윤도훈에게 말했다.“이런 주제에 사람을 시켜 우리 선미를 건드려? 체면을 위해선 집안도 말아먹을 인간 같으니라고! 사람을 고용하고 차를 빌리는 돈이면 몇 개월 월세는 족히 나올 텐데?”주선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윤도훈, 네 그 대단한 여자친구는 어디에 있어? 페라리를 몰고 와서 월세를 내달라고 해!”그녀는 이어 분노 어린 얼굴로 입술을 꽉 깨물며 말했다.“감히 날 건드리다니. 정말 유치하고 어이없어. 오늘 내가 똑똑히 알려줄게. 넌 내 발아래에 짓밟혀야 하는 쓰레기라는 걸 말이야! 오빠, 단단히 혼내고 내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들어 줘!”“자기야, 걱정하지 마!”유현이 험악한 인상
“그렇다면 오늘 내가 그 빌어먹을 병을 고쳐줄게! 거기 서서들 뭐해! 저놈을 밟아!”수광이 험상궂은 표정으로 손짓하며 명령하자 그의 수하들이 씩씩거리며 윤도훈을 둘러쌌다.“하하... 그렇게 안 가겠다고 버티더니 이 꼴이 됐네. 이 사람들이 해결해 줄 테니 이제 내가 사람을 불러올 필요는 없겠어.”손도 안 대고 코 풀게 생긴 상황이 벌어지자 집주인이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하지만 얼마 후, 믿기 어려운 광경이 그녀의 눈앞에 펼쳐졌다.퍽! 퍽! 퍽!윤도훈이 주먹을 날리자 한 사람의 갈비뼈가 안으로 움푹 패어 들어감과 동시에 산산이 조각났다. 이어 다리를 한 번 휘두르자 3명이 피를 내뿜으며 쓰러졌다.그야말로 충격적인 광경이었다!사실 윤도훈에겐 대단한 싸움 기술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그의 공격 속도, 힘, 반응속도에서 모두 사람들을 압도했다.몸에 흐르는 용의 기운으로 인해 윤도훈의 육체적 강인함은 이미 인류의 한계를 초월했다.30초도 채 되지 않았음에도 수많은 수광의 부하들이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럽게 바닥에서 나뒹굴었다.가볍게는 골절이나 인대 파열, 심하게는 목숨까지 보장하기 힘들 정도로 심하게 다쳤다.윤도훈은 이 강한 힘을 얻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힘의 정도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남자는 멍해진 얼굴로 자신의 먼 머리를 만지작거렸다.윤도훈, 주선미, 집주인도 모두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심지어 윤도훈 자신까지도 화들짝 놀랐다. 자신이 이렇게나 강했었다니!주선미의 짙은 화장을 덧칠한 얼굴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일그러졌다.저 가난뱅이가 왜 저렇게 싸움을 잘하지?부부로 몇 년을 함께 살았는데 왜 지금까지 몰랐단 말인가? 게다가 저 가난뱅이는 신장까지 하나 팔아치우지 않았던가? 신장 하나가 없어도 저렇게 날뛸 수 있다고?그때 윤도훈이 여전히 살기가 남아있는 눈빛으로 수광을 보며 걸어갔다.수광의 얼굴엔 두려움이 역력했다. 동생들의 모습을 보니 저도 모르게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놈은 정말 자비가 없는 괴물이다!팔
은표 어르신이라고 불리는 남자가 사람들을 이끌고 들어온 후 마당 안 분위기는 삽시간에 바뀌었다. 모두들 저도 모르게 윤도훈에게 시선을 돌렸다.그때 조용히 현장을 떠나려 했던 유현과 주선미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집주인 또한 마찬가지였다.그 이유는 수광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수광에게 도움을 줄 사람이 온 것인가?수광이 그 사람을 부르는 호칭으로 보아 분명 그보다 훨씬 더 강한 사람일 것이다.“은표 어르신, 마침 잘 오셨어요. 저놈이 이렇게 많은 우리 형제들을 잔인하게 때려눕혔어요. 제발 저를 대신해 우리 형제들의 복수를 해주세요!”말을 마친 수광이 윤도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잔뜩 겁에 질렸던 표정에 어느새 의기양양함이 가득 담겨있었다.“이 자식아, 싸움 좀 한다고 거들먹거리지 마. 넌 우리 은표 어르신 앞에선 새 발의 피도 못 되는 놈이거든! 은표 어르신이야말로 진정한 유단자이셔! 은표 어르신의 힘이라면 손가락만 한 번 까딱해도 너 같은 건 손쉽게 깔아뭉갤 수 있어! 나도 은표 어르신 앞에선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니까! 넌 끝났어! 하하하...”수광의 말에 유현, 주선미, 그리고 집주인은 도망칠 생각을 완전히 접었다.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멍청한 사람이라도 천하의 수광의 뒤를 봐주고 있는 사람이 바로 은표라는 걸 보아낼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때문에 은표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는 쉽게 가늠할 수 있다.은표가 있는 한 윤도훈은 절대 조금 전처럼 날뛰지 못할 것이다.은표의 세력과 권력 앞에서 싸움 실력은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수광의 말에 의하면 은표는 심지어 유단자이기까지 하다.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무시무시한 포스를 내뿜고 있는 은표가 윤도훈에게 내릴 벌을 기대하고 있을 때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고 말았다!은표가 잠시 윤도훈을 살펴보고는 다급히 그에게 다가가 공손히 허리를 굽히는 것이다.“윤도훈 씨, 무슨 일이에요? 괜찮으세요?”은표는 송가네 할아버지의 사람이었다. 조금 전 그가 윤도훈에게 시선을 주었던
가난뱅이 놈이 수광의 뒷배에게 저렇게나 존경을 받다니!수광의 최후를 본 주선미와 유현은 자신의 다리와 허리가 뒤틀리는 것만 같았다.“윤도훈 씨, 저 사람들은...”은표가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을 보며 물었다.이 두 사람이 누구인지 확신할 수 없었기에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이다.“꺼지라고 해요!”윤도훈이 차갑게 말했다.그의 목소리엔 이제 일말의 감정도 남아 있지 않았다. 전엔 주선미라는 여자에게 한 줄기의 희망이라도 잡고 있었다면 지금 이 순간엔 그것마저도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다만 주선미는 필경 율이의 생모이기에 그녀를 다치게 할 수는 없었다.“그래. 우린 갈게! 우린 갈게!”유현이 여전히 윤도훈을 노려보고 있는 주선미를 끌고 걸음아 나 살려라 현장을 떠났다.“윤도훈 씨, 저번 저희 어르신을 살려주셨는데 급히 병원에 모셔다드리다 보니 겨를이 없어 감사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저희 어르신과 도련님께서 윤도훈 씨를 모셔 정중히 인사하려고 해요. 혹시 오늘 시간 괜찮으세요? 바쁘시면 다음으로 정해도 되고요. 윤도훈 씨의 뜻에 따를게요.”도운시 지하세계 우두머리이자 송가네 도련님의 오른팔인 그가 지극히 공손하게 윤도훈에게 청하고 있다.윤도훈은 처음엔 거절하려고 했으나 급히 생각을 바꿨다.“혹시 용수초라는 약재를 갖고 있나요?”은표가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그건 저도 잘 몰라요. 하지만 저희 어르신께서 몸이 편찮으셔서 병 치료를 하느라 많은 진귀한 약재들을 모아 창고에 보관해 두었거든요. 아마... 있을지도 모르겠네요.”“좋아요! 그럼 잠시 물건만 정리하고 함께 갈게요.”윤도훈이 고개를 끄덕였다.윤도훈이 밖에 내던져진 물건을 안에 넣으려 몸을 돌렸을 때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지저분하게 널려있던 물건들이 깔끔히 사라져버렸다.“윤... 윤도훈! 네 물건은 내가 이미 안에 들여놨어. 그리고 편히 지내. 얼마든지 있어도 돼. 다 괜찮아...”집주인이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윤도훈에게 말했다.어느새 집주인이 밖에 내던졌
윤도훈은 일단 은표를 병원으로 보내 율이의 퇴원 절차를 마친 뒤 아이를 데려와 함께 송가네 집으로 가기로 했다.오늘 험악한 일이 벌어진지라 아이를 혼자 병원에 두는 건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것이다.아빠와 함께 다른 집에 초대됐다는 것을 알게 된 율이는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사실 5살이 된 율이는 이미 일찌감치 유치원에 다녀야 했었다. 하지만 병을 앓고 있던 탓에 줄곧 유치원에 가지 못했던 것이다. 하여 율이는 항상 외로웠고 사람을 그리워했다.송가네 가문 저택에 도착하자 마당에 마주 앉아있는 두 노인의 모습이 보였다. 송가네 할아버지의 오른쪽엔 송윤이 바비인형을 안고 증조할아버지가 장기를 두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다른 한 명의 노인은 청색의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실로 괴이했다. 그 뒤엔 스무 살 남짓한 묘령의 여자가 서 있었는데 준수한 외모에 S라인 매혹적인 몸매를 뽐내고 있었다.윤도훈은 마당에 들어선 후 일단 가면을 쓴 노인을 살펴보고는 묘령의 여자에게 시선을 돌렸다.“뭘 봐요?”묘령의 여자가 윤도훈의 시선을 느끼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차갑게 쏘아붙였다.이 여자, 성격이 별로 안 좋은 듯하다.“윤도훈, 자네 드디어 왔군!”송가네 할아버지가 윤도훈을 보고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를 맞이했다.은표가 윤도훈의 거처까지 찾아냈다는 건 송가네 집안에선 이미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그 모습에 가면 노인과 묘령의 여자의 눈에서 놀라움이 비쳤다.천하의 송가네 할아버지가 젊은이 한 명에게 저토록 예를 갖추다니?“지연아, 조용히 있거라. 저 젊은이는 네 할아버지의 손님인 것 같구나.”가면 노인이 말했다.지연은 그제야 입을 삐쭉거리며 윤도훈에 대한 적대적인 눈빛을 거두었다.하지만 마음속에선 이미 윤도훈을 변태적인 부류의 사람으로 각인시켰다. 그가 쳐다보던 곳이 그녀를 분노케 했기 때문이었다.“어르신, 안녕하세요.”윤도훈이 자연스레 말했다.“이 아이는...”송가네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율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