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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걔가 굳이 따라다닌 거야

송지음은 고개를 숙이며 수줍음과 두려움이 섞인 말투로 말했다.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옆에 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야유하기 시작했다. “준혁아, 왜 그래. 왜 이렇게 잡혀 살아?”

그 말에 서준혁은 무심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흑요석이 담긴 듯한 눈동자로 송지음을 쳐다보았다. 그의 말투는 조금 나른했다. “어리잖아. 내가 많이 아껴줘야지.”

야유는 점점 더 커졌다. 그때, 누군가가 질문했다. “난 준혁이가 신유리 같은 스타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순식간에 룸은 조용해졌고, 송지음의 얼굴에 걸려있던 웃음도 그대로 얼어버렸다. 그는 입술을 깨물며 서준혁을 쳐다보았다.

서준혁의 얼굴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는 나른하고 게으른 모습으로 눈을 깜빡이더니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좋아한 적 없어. 걔가 굳이 따라다닌 거야.”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방금 입을 연 사람이 바로 말을 보태었다. “그러게 말이야. 몇 년 지기 친구지만, 준혁이가 여자 때문에 전화까지 바꾼 건 이번이 처음이야. 제수씨, 당신이 준혁이한테 유일한 존재에요.”

그 말에 서준혁은 인상을 찌푸렸다. “누구보고 제수씨래? 선 넘지 마.”

웃고 떠들며 한바탕 소란이 지난 후, 갑자기 누군가 입을 열었다. “맞다, 연우진도 이따 온다던데. 준혁아, 우진이 귀국한 거 알고 있었어?”

송지음은 궁금했는지 조용히 서준혁에게 물었다. “연우진이 누구예요?”

서준혁은 가볍게 대답했다. “아무도 아니야. 그냥 친구.”

송지음은 고분고분하게 대답하고는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녀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친구라고 말하는 서준혁의 안색이 별로 좋지는 않았다.

송지음은 아주 오랫동안 사람들이 말하는 착한 여자로 살았다. 그녀가 제일 잘하는 짓이 바로 착한 척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옆에 앉아있는 서준혁을 몰래 훔쳐보았다. 심장 박동은 또 제멋대로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조건은 사실 서준혁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게다가 그의 옆에는 신유리처럼 훌륭한 여자도 있었다.

하지만 신유리 생각을 할 때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서준혁이 방금 한 말이 떠올랐다. 그는 신유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신유리가 굳이 따라다닌 것뿐이다.

그 생각을 하자 송지음의 마음에 왠지 모를 우월감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신유리가 아무리 훌륭하면 뭐? 서준혁이 좋아하는 사람은 결국 나잖아?

기분 나쁘다는 그녀의 말 한마디에 바로 개인번호까지 바꾸고. 그는 누구에게나 다 전화번호를 알려줬지만, 신유리에게만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송지음의 우쭐함이 사라지기도 전에 방금 그녀가 무시한 사람이 문 앞에 나타났다.

신유리는 코트를 입은 채로, 기럭지가 훤칠한 남자를 따라 안으로 들어왔다.

곧이어 그녀는 누군가 그를 부르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연우진.”

연우진은 우아하고 교양 넘치는 집안 출신이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몸에서도 교양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준수했고,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걸려있었다. 몸 전체에 온화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송지음은 의식적으로 서준혁을 쳐다보았고, 인상을 찌푸리는 그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는 신유리를 단단히 노려보고 있었다.

송지음은 손을 뻗어 그의 소매를 잡아당기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준혁 씨, 목이 말라서요. 물 한 잔 따라주면 안 돼요?”

서준혁의 시선이 그제야 거두어졌다.

그가 시선을 거두는 그 순간, 신유리가 마침 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신유리는 송지음과 눈이 마주치게 되었다.

송지음은 흠칫했지만 이내 억지로 무해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신유리와 인사를 했다.

신유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 앉았다.

룸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연우진과 엄청 잘 알던 사람들이었다. 인사를 끝낸 후 그들이 그에게 물었다. “우진아, 왜 신유리랑 같이 들어와?”

그들은 최근의 모임을 신유리에게 알려준 적이 없었다. 거기다 방금까지 그녀의 얘기를 하고 있었으니, 난처한 게 당연했다.

연우진은 웃음에는 다정함이 숨어있었다. “오는 길에 만났어. 길에 갇혀 있더라고. 그래서 같이 왔지.”

“그래? 엄청난 우연이네.” 서준혁은 자신의 컵에 술을 따랐다. 그는 곧이어 새로운 컵을 꺼내 술을 따르더니 그것을 서준혁의 앞으로 밀어버렸다. “좀 마실래?” 그의 말투에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연우진은 조용히 그 술잔을 다시 밀어버렸다. “됐어. 유리 차가 망가져서 조금 이따 데려다줘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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