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사연은 재빨리 다가와 아빠가 깨신 걸 보더니 마음이 훨씬 놓였다.“아빠, 좀 어때요?”그녀가 물었다.“많이 좋아졌어.”허성태는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그는 부영권을 보더니 그가 구해준 줄 알고 두 손을 맞잡으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신의님, 구해주신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부영권은 연신 고개를 내저었다.“제가 아니라 우리 천기각 주인님께서 구해주셨어요!”허사연은 난감한 표정으로 아빠에게 해명했다.“아빠, 서준 씨가 구해드렸어요.”“진서준 씨가?”허성태는 의자에 앉아있는 진서준을 바라보며 감격과 흥분에 겨운 표정을 지었다.오늘 그는 진서준에게 두 번이나 구원받았다.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있을까?“살려줘서 고맙네. 자네는 앞으로 우리 가문의 귀빈이야!”진서준이 허씨 일가의 귀빈으로 거듭나자 병실 안에 있는 의사들은 복잡미묘한 기분이 들었다.허씨 일가는 서울시를 휘어잡는 존재이다!그런 가문의 귀빈으로 된다는 것은 앞으로 평생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뜻이다!게다가 진서준은 나이가 젊고 허성태의 두 딸도 아직 미혼이다.어쩌면 허씨 일가의 따님과 좋은 인연을 맺을 수도 있다.“다들 이만 물러가거라. 어르신 편히 쉬게 해드려.”부영권이 병실의 의사들에게 손을 흔들었다.그들은 감히 더는 머무르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졌다.인파로 붐볐던 병실이 한순간 텅 비어버렸다.“서준 씨, 저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저한테 연락 주세요.”부영권은 개인 번호를 그에게 남겨주었다.강남 명수 부영권의 개인 전화번호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은 10명을 초과하지 않는다.허씨 일가라 해도 부영권 조수의 번호만 갖고 있다.허성태는 부영권이 진서준에게 이토록 깍듯이 대하자 놀랍기도 하고 이해되지도 않았다.번호를 받은 후 진서준도 몸이 거의 회복한 것 같아 자리를 떠나려 했다.“저도 이만 가볼게요. 약재를 다 구하시거든 다시 연락 주세요.”진서준이 말했다.“잠깐만요, 서준 씨!”허사연이 재빨리 그를 불러세웠다.진서준은 눈썹을 살
오늘 연회에 참석한 하객들은 전부 상류층의 유명 인사들이라 진서준처럼 평범한 옷차림의 일반인은 제지당하기 마련이다. 문 앞의 경호원은 이런 옷차림의 하객을 처음 본지라 바로 차단했다.“손님, 초대장 보여주시죠!”경호원이 진서준을 가로막으며 말했다.진서준은 차분하게 대답했다.“초대장 없어요.”“초대장 없으면 입장하실 수 없습니다!”경호원이 야유 조로 말을 이었다.“밥 한 끼 얻어먹을 생각이라면 밖에 나가 우회전하시면 작은 식당이 하나 있거든요.”진서준이 싸늘한 눈빛으로 경호원을 노려봤다.“나 이지성 찾으러 왔어. 들어가서 진서준 왔다고 전해. 바로 알아들을 거야!”경호원은 여전히 듣는 척도 않고 진서준을 내쫓으려 했는데 칼날같이 예리한 그의 눈빛과 마주한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알았어요... 지금 바로 가서 전할게요!”경호원은 종종걸음으로 이지성에게 다가가 허리를 숙이고 나지막이 말했다.“도련님, 진서준이라는 분이 도련님 찾으러 왔습니다.”경호원의 말을 들은 이지성은 눈을 가늘게 떴다.백일잔치가 끝나거든 그를 찾아가려 했는데 집 앞까지 먼저 찾아올 줄이야.연회장의 뭇사람들을 보며 이지성이 변우재에게 손짓했다.“도련님, 무슨 일이십니까?”“진서준 이 새끼가 지금 왔대. 이따가 들어오거든 너 애들 거느리고 그 자식 잘 감시해!”이지성의 눈가에 야유가 가득 찼다.“내가 오늘 이 새끼 서울시에서 이름 날리게 해 주겠어!”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든 분야를 섭렵하고 있다.진서준이 만약 여기서 창피를 당한다면 앞으로 서울시에서 취직하기도 어려울 것이다.가장 중요한 건 연회가 끝난 후 이지성은 진서준도 제 엄마처럼 똑같이 장애인으로 만들어 종일 모욕을 당하게 할 생각이다!“네, 도련님!”변우재가 흥분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마치 진서준이 겪을 처참한 결말을 미리 보는 것만 같았다.문밖에서 진서준이 5분 정도 기다린 후 대문이 벌컥 열리고 변우재가 열댓 명의 건달들을 거느리고 그를 싸늘하게 쳐다봤다.“야 이 새끼야, 네가
그의 명령에 열댓 명의 경호원이 진서준을 둘러쌌다.덩치 큰 체구의 경호원들이 왜소한 체구의 진서준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주위를 둘러싼 하객들은 차가운 시선으로 지켜볼 뿐 경찰에 신고하거나 앞장서서 말리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다들 진서준이란 젊은이가 조만간 죽을 거라고 여겼으니까.진서준이 한 걸음 내딛자 더킹 룸 전체가 뒤흔들렸다.그는 곧이어 경호원들에게 몸을 돌리고 가차 없이 돌진했다.퍼퍼퍽...고작 몇 개의 동작에 열댓 명의 덩치 큰 사나이들이 죽은 개처럼 바닥에 축 처졌다.이 광경을 본 모든 이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다들 못 믿겠다는 눈길로 진서준을 쳐다봤다.바닥에 쓰러진 변우재는 발밑에 한기가 차오르고 떨리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이 자식 사람 맞아?’메인 석에 앉아있던 한 중년 남성이 이 장면을 지켜보더니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그가 바로 이지성의 아버지인 이혁진이자 이씨 일가의 세대주이다.그는 무인이라 진서준의 실력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적어도 그조차도 진서준의 상대가 될 수 없다.긴 단상 위에서 이지성은 부하들이 일격을 견디지 못하는 모습에 욕설을 퍼부었다.“이런 쓰레기 같은 것들, 감방 다녀온 새끼 하나 못 제압해?!”진서준은 이지성을 쳐다보며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뭐... 뭐 하려는 거야?”이지성은 발끝에서부터 한기가 차올랐고 두 눈에 공포가 휩싸였다.“네가 우리 엄마 두 다리를 부러뜨렸지? 오늘 너도 똑같이 해준다!”엄마의 처참한 모습을 떠올리니 진서준의 눈가에 스친 살의가 더 짙어졌다.그는 한걸음에 이지성의 앞으로 돌진해왔다.이지성이 미처 정신 차리기도 전에 진서준이 그의 다리를 걷어찼다.이혁진이 말리려고 했으나 진서준의 속도가 너무 빨라 두 눈 뜨고 아들이 두 다리가 잘리는 걸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철컥철컥!”뼈가 부러지는 청아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지성이 순간 바닥에 주저앉았다. 두 다리는 마치 꼭두각시처럼 전혀 통제되지 않았다.“으악...”처참한
이혁진은 허사연을 보자 활짝 웃으며 재빨리 그녀를 마중 갔다.“허사연 씨, 여긴 어쩐 일로 오셨어요?”허사연이 차가운 표정으로 대답했다.“누군가가 여기서 소란을 피운다고 들어 직접 확인하려고 찾아왔어요.”“일개 건달일 뿐이에요. 저희가 알아서 해결할 수 있으니 사연 씨까지 신경 쓸 필요 없어요.”이혁진이 손을 비비며 웃었다.“오늘 밤 호텔 내의 모든 손실은 전부 저희 가문에서 배상하겠습니다.”이혁재가 이토록 겸손하게 말하니 허사연은 담담하게 웃으며 대답했다.“배상은 필요 없고 우리 호텔에서 허술하게 관리한 탓에 이 같은 일이 벌어졌으니 다 우리 쪽 책임입니다. 소란을 피운 자가 누구인지 얼른 확인해야겠네요.”이혁진이 앞에서 길을 안내했다.“네, 그럼 이쪽으로 오세요.”주변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고 또다시 쉬쉬거렸다. 진서준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에 연민과 야유가 가득 담겨 있었다.이씨 일가와 허씨 일가는 아예 같은 레벨이 아니다. 허씨 일가에서 손을 한 번 휘두르면 서울시 전체에 감당할 자가 몇 가문이 안 된다.이지성은 이리로 걸어오는 허사연을 보자 냉큼 눈물로 호소했다.“사연 씨, 저 새끼가 제 다리를 분질렀어요!”허사연은 그의 말을 듣더니 미간을 확 찌푸렸다.그녀가 오늘 이 일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허씨 일가는 서울시에서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다.“걱정 마세요. 우리 가문에서 오늘 반드시 지성 씨 일을 원만하게 해결해드리겠습니다!”허사연이 엄숙하게 말했다.이 말을 들은 이지성은 기분이 째질 것만 같았다.그녀는 곧바로 시선을 돌려 한 무리 사람들을 훑어봤다.“대체 누가 감히 여기서 소란을 피운 건지 똑똑히 지켜봐야겠어요...”그녀는 말을 채 잇지도 못한 채 문득 입을 다물었다. 마치 누군가가 손으로 자신의 목을 꽉 잡는 것만 같았다.허사연은 진서준에게 시선이 꽂히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이지성은 그녀의 표정을 관찰하지 못하고 허리를 곧게 펴며 진서준에게 욕설을 퍼부었다.“진서준, 이 세상 물정도 모르는 건
강성철의 명성은 너무 큰지라 허씨 집안마저 그를 건드리지 못했다.진서준은 사연의 고려를 눈치챈 후 말했다.“허사연 씨, 사람을 데리고 돌아가세요. 이 일은 제가 처리하면 됩니다.”“당신이 직접 처리한다고?”이혁진은 비웃었다.“강성철 어르신께서 오시기만 하면 그쪽은 죽은 거나 다름없어!”사연은 어금니를 꼭 깨물고는 서준을 보며 말했는데 그녀의 시선은 아주 굳건했다.“진서준 씨, 당신은 저희 허씨 집안의 은인이세요. 그러니 저희는 절대 서준 씨를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사연의 이런 단호한 태도는 서준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그래. 당신이 정 허씨 집안을 이 구렁텅이에 빠뜨리게 하고 싶다면 내가 힘을 보태주지!”혁진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이를 갈았다. 그는 직접 성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원래 성철이 그에게 진 신세를 써버리고 싶지 않았다. 얼마나 소중한 기횐데 이런 작은 일에 사용하기엔 너무 아까웠다.그런데 만약 이씨 집안이 사연이 서준을 데려가는 것을 눈 뜨고 가만히 보고만 있으면 분명 상류사회의 비웃음을 자아낼 것이다.이후, 또 누가 이 씨네 와 비즈니스 합작을 하려 할 것인가!전화를 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호텔 밖에서 큰 소리가 들려오면서 뒤이어 소란스러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사람들은 호기심에 유리창 너머로 밖을 보았는데 그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아래에는 사람들로 뒤덮여 있었고 그들의 손에는 칼을 들었다. 호텔은 삽시에 이들에 의해 막혔다. 대략 세어보니 적어서 백 명이나 되었다.사연은 이 장면을 보자 간신히 갖고 있던 희망이 재가 되는 것을 느꼈다.그녀도 비록 경호원을 데리고 오긴 했지만 이십여 명밖에 되지 않았다. 이십 명이 백명과 싸운다면 질 게 뻔했다. 더욱이 상대방은 무기도 들고 있었다.비록 강성철이 그녀를 어떻게 하진 못하지만 진서준은 분명 죽을 것이다.끼익...연회장의 문이 열리면서 스무 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두 줄로 들어와서 일자로 늘어섰다. 그들은 전부 키가 백구십 정도였고 검은색 양복을 입고
성철의 부하가 움직인 것을 보자 겁이 많은 사람들은 눈을 막으면서 이 피비린내 나는 장면을 감히 보지 못했다.성철은 부하를 막지 않았다. 자신이 죽을 거라고 계속 말하던 사람이 어떻게 죽는지 보고 싶었다.하지만 시퍼런 칼이 서준의 팔에 닿으려 할 때 그는 움직였다.서준은 손을 내밀어 두 손가락으로 칼을 잡았는데 아주 안정적이었다.성철의 부하는 덩치도 컸고 키도 190이 넘었다. 몸엔 근육이 단단히 잡혀있었는데 마치 큰 돌덩이 같았다. 그러니 그의 힘은 비리비리한 서준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니었다.하지만 지금 서준은 두 손가락으로 그의 목숨을 앗아갈 뻔한 칼을 허공에 멈추게 했다.다들 입을 크게 벌렸고 성철도 제법 놀란 듯했다.젊었을 적 성철이라 해도 두 손가락으로 칼을 잡지는 못했을 것이다.“감히 나한테 칼을 휘두르다니, 죽지 못해서 안달이네요.”서준은 말을 마치자마자 손가락을 세게 튕겼다.펑!큰 소리 후 칼은 절반으로 갈라졌다.성철의 그 부하는 연이어 뒤로 물러서면서 탁자에 부딪혔다. 그때야 간신히 힘을 빼고 제대로 섰다.그때 그는 자신의 손이 찢기면서 선홍색 피가 용솟는 것을 발견했다.성철의 눈동자는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서늘하게 말했다.“좀 배운 놈이구나. 그러니까 이렇게 날뛰는군.”“하지만 넌 상대를 잘 못 골랐어!”성철이 손을 쓸 거라고 생각한 찰나, 그의 머리 위에 달려 있던 샹들리에가 예고 없이 떨어졌다.이 위기의 순간에 성철의 부하 한 명이 힘껏 그를 밀어냈다.결국 이 부하는 성철 대신 떨어지는 샹들리에에 맞아 핏덩이로 되었다.서준도 샹들리에가 떨어지는 순간 아직 경악 속에서 헤매고 있던 사연을 안고 새처럼 뒤로 몸을 날렸다.성철은 이 장면을 보자 심장이 미세하게 떨렸고 눈동자엔 두려움으로 가득했다.만약 부하가 목숨으로 그를 구하지 않는다면 죽는 건 아마 그였을 거다.원래 성철은 이게 단순히 우연일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조금 있다가 벌어지는 일은 그로 하여금 아까 서준이 했던 말을 믿게 하였다.
성철은 강인한 남자였다. 스스로 팔을 부러뜨리면서 아픈 신음 하나 내지 않았다.손에 들고 있던 막대기를 버린 후 성철은 몸을 돌려 서준을 보았다.“선생님, 마음에 드십니까?”“음, 나쁘지 않군요.”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당신의 부하더러 붓, 주사 그리고 노란 종이를 가져오라고 해요.”곧 성철은 서준이 원하는 모든 물건들을 가져오게 했다.그는 종이를 탁자에 놓고 붓을 들어 주사를 먹으로 삼고 손을 휘저으며 재난을 막는 부적을 그렸다.“이걸 갖고 다니면 목숨을 구할 수 있을 겁니다.”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감사합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성철은 마치 소중한 보물이라도 얻는 것처럼 부적을 옷 주머니에 넣었다.예전엔 성철은 이런 풍수지리를 믿지 않았다. 미신적이라 여겼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 그는 서준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서준은 성철이 이 부적을 손에 넣은 후 그에게 해를 가하는 게 두렵지 않았다. 상대방을 살릴 수 있으면 당연히 그를 다시 끝이 보이지 않는 재난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선생님, 제가 뭘 도와드릴 수 있을까요? 말만 하시면 오늘 이씨 부자의 목숨을 끊을 수 있습니다.”이 말이 끝나자마자 이씨 부자의 안색은 순간 창백해지면서 바들바들 몸을 떨었다.연회에 참석한 사람들도 놀란 얼굴을 했다.“이렇게 죽이기엔 너무 아까워요. 가끔은 빈털터리로 사는 것도 죽음보다 잔인할 때가 있거든요.”홀의 기온은 서준이 이 말을 한 후 물이 얼어붙을 정도로 차갑게 변했다.지수는 눈앞의 서준을 보았다. 정말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자신이 마음대로 괴롭히던 서준이 이렇게 변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그녀는 서준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사람을 구하면서 세상을 어진 마음으로 대하는 의사, 사람을 두렵게 만드는 악마.도대체 뭐가 진정한 너야?’“이지성, 얼마 남지 않은 즐거운 시간을 잘 보내길 바라.”말을 마친 후, 서준은 몸을 돌려 호텔 밖으로 나갔다.서준이 간 후, 성철은 혁진을 차갑게 쏘
희선의 말을 듣자, 서준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제가 전화해 볼게요.”서준은 핸드폰을 꺼내 서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두세 번이 지나도록 받는 사람이 없었다. 불길한 예감이 점점 더 강해졌다.“어머니, 서라가 어디에서 출근해요? 제가 찾으러 갈게요.”“서라는 요즘 명성 호텔에서 출근해. 이 길 따라 남쪽으로 한 3킬로미터 정도 가면 돼.”희선은 창문 밖의 길을 가리키며 말했다.서라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서준은 한시도 지체하지 않았다. 오분도 되지 않았을 때 그는 호텔 입구에 도착했다.이건 사성급 호텔이었는데 아까 서준이 갔던 오션 호텔과 비교할 수 없었다.그렇더라도 일반인이 함부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서준은 빠른 걸음으로 호텔 안에 걸어갔다.호텔 로비에 서 있던 두 직원은 서준을 보자 얼굴에 경멸스러운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여기에서 일 년간 일하면서 서준처럼 두꺼운 낯짝으로 들어오는 가난한 사람은 처음 보았다.“안녕하세요. 여쭙고 싶은 게 있는데요. 진서라가 여기서 일합니까?”서준은 직원 한 명 앞에서 예의 있게 물었다.하지만 직원은 불쾌하다는 듯 코를 막으면서 뒤로 반걸음 물러섰다.“조금 떨어져요. 본인 몸에서 역겨운 냄새가 나는 줄도 몰라요?”오전 동안 바쁘게 다니다 보니까 몸에선 확실히 땀 냄새가 났다. 그러나 심하진 않았다.상대방이 자신을 깔본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원하는 게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미안합니다. 진서라가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서준이 서라를 물어보는 것을 듣자 여직원의 두 눈엔 경멸로 가득했다.“진서라 취향도 참 독특하다니까. 이런 남자도 눈에 들어오나 보지?”다른 여직원이 이 말을 들은 후 함께 비웃었다.“전엔 그렇게 청순한 척하더니 지금은 자기를 갖고 논 남자가 이렇게 일하는 데까지 찾아오고 말이야.”두 사람이 자신의 동생을 모욕하는 것을 듣자 서준은 순간 화가 났다.가족은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거였다. 감히 함
진지한 얼굴로 대꾸하는 진서준을 보자 노인은 그 순간 완전히 얼어붙었다.사실 노인은 무도 바닥에서 전해 내려오는 작은 속임수를 썼는데 그 속임수를 쓰면 심장 박동과 맥박은 물론 호흡도 완전히 멈출 수 있었다.30분 동안 숨을 죽이면 누구나 다 노인이 죽었다고 믿게 된다.이 속임수를 이용해서 노인과 아들은 꽤 많은 돈을 뜯어냈는데 이번엔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인 진서준을 잘못 건드린 것이었다.“지금부터 널 절단해서 다시 조립해야겠어.”진서준이 톱을 들고 휙휙 허공을 가르며 말하자 노인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소리쳤다.“나 진짜 아무 병도 없어, 날 놔줘!”“아니야, 넌 병이 있다니까?”“진짜 없어! 방금 그건 전부 연기였어. 너희를 모함하려고 일부러 그런 거라고.”이 말이 떨어지자 현장은 곧바로 발칵 뒤집혔다.“뭐? 국색천향을 모함하려고 그런 거라고? 저 영감 왜 그런 짓을 했지?”“이 늙다리가 내 선한 마음을 이용했다니.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어!”“이런 놈은 진짜 토막을 내야 돼. 그냥 놔주면 또 저런 꾐수로 돈을 뜯어낼 거야.”조금 전까지 동정하던 사람들도 다 등을 돌려 노인을 비난하기 시작했다.노인은 절망적인 상황에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노인은 단지 돈 받고 연기한 것뿐인데 이렇게 최악의 상황에 몰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자기 속임수를 간파당한 것도 모자라 이렇게까지 얻어맞고 사람들의 비난을 받아야 했다.“누가 시켜서 우리를 모함하게 한 거야?”진서준이 차가운 눈빛으로 추궁하자 노인은 잔뜩 쫄아서 말했다.“나도 몰라, 우린 그냥 돈 받고 한 거야.”진서준이 머리를 돌려 청년을 바라보자 청년 역시 기겁하며 바로 소리쳤다.“우린 진짜 몰라. 누가 시켰는지 모른다니까.”“도대체 모르는 거야? 아니면 감히 말하지 못하겠다는 거야?”진서준이 싸늘하게 웃으며 추측했다.“장씨 가문 가주 장정범이 너희를 보낸 게 맞아?”그 순간, 현장 사람들도 뭔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오늘은 마침 장씨 가문의 회연단 발표
“헐? 방금 저 노인 손이 움직인 거 같은데, 내 착각인가?”이 말이 나오자마자 주변이 술렁이기 시작했다.“나도 봤어. 그냥 눈이 피곤해 환각을 본 줄 알았는데?”“설마 저 녀석이 진짜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거야?”“말도 안 돼, 성 신의가 직접 확인하고 가망 없다고 했잖아.”순식간에 온갖 말들이 쏟아졌다.하지만 진서준은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느긋하게 노인에게 속삭였다.“이봐, 영감, 숨 참는 기술은 꽤 쓸 만하네? 하지만 아쉽게도 넌 횡련 무인이 아니야. 조금만 더 참아봐. 이제부터는 더 아플 거거든.”진서준의 말에 노인의 눈꺼풀이 다시 한번 미세하게 떨렸다.진서준은 손바닥을 더욱 세게 휘둘러 따귀를 날리기 시작했다.찰싹! 찰싹!매서운 따귀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고 그 섬뜩한 소리에 구경꾼들의 머리카락이 곤두설 정도였다.이건 사람을 살리는 게 아니라 그냥 죽이는 거 아닌가?청년은 화가 치밀어 올라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계속 이러다간 죽은 척 연기하는 아버지가 진짜 죽어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따귀를 날리던 진서준이 갑자기 손을 멈췄다.“생각보다 더 잘 버티는데?”“비켜! 이 미친놈아! 우리 아버지 시체를 이렇게 두들겨 놓고도 부족해?”청년이 분노하며 달려들었지만 진서준은 주먹 한 방으로 청년을 다시 바닥에 때려눕혔다.“뭐가 그렇게 급해? 따귀로 안 깨면 다른 방법을 써야지.”진서준이 천천히 돌아서서 유씨 가문의 경호원들에게 말했다.“톱 하나 가져와 봐. 사지를 잘라낸 다음 다시 조립하면 무조건 살릴 수 있어.”이 말이 떨어지자 구경꾼들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사람을 잘라낸 후에 다시 조립한다고?대체 어느 미친놈이 그런 미친 짓을 한단 말인가?노인은 이미 바닥에서 식은땀을 쏟고 있었다.방금 따귀를 날리던 이놈 성격이라면 정말 그럴지도 몰랐다.“오빠, 그건 제가 난생처음 듣는 치료법인데요?”유정이 의아해하며 묻자 진서준이 웃으며 되물었다.“정말 이 영감이 죽었다고 여기는 거야?”“네? 설마..
“살릴 수 있는지 없는지는 직접 보면 되잖아.”진서준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가 못 살려내면 네가 원하는 대로 하도록 하지. 그리고 직접 외쳐줄게. 이 약은 독약이라고 말이야.”이 소동은 결국 성동석까지 불러들이게 했다.성동석이 급히 달려와 진서준에게 물었다.“김평안 씨, 무슨 일이죠?”“별일 아니에요. 이 사람 아버지가 국색천향을 먹고 중독돼 죽었다고 주장하더라고요.”진서준이 간단하게 설명했다.“말도 안 돼!”성동석은 단번에 부정했다.“국색천향은 나도 직접 먹어봤고 연구도 했어. 이 약의 성분은 대부분 온화한 약재라서 절대 독성이 있을 리가 없어.”“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너희 약을 먹고 죽었어. 팩트 앞에서는 변명이 통하지 않아!”청년은 국색천향 때문이라는 주장에 집착했다.청년의 흥분한 모습을 본 성동석은 아무 말 없이 앉아 노인의 맥을 짚었다.약 30초 후, 성동석은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맥상으로 보면... 확실히 살 가망이 없어.”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맙소사! 성 신의님도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이 노인은 정말 국색천향을 먹고 죽은 게 틀림없어.”“망했다... 나도 방금 한 알 먹었는데 이제 나도 죽는 거 아냐?”“유씨 가문이 돈에 눈이 멀어서 반쯤 완성된 약을 내놓은 거야.”분노의 소용돌이가 빠르게 퍼져갔다.현장에 있던 박진용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내 회연단... 이거 팔아야 해 말아야 해?’한편, 목적을 달성했다고 판단한 청년은 노인을 업고 떠나려 했다.그때였다.“거기 서, 아직 네 아버지를 살려내지 못했어.”진서준이 길을 막아섰다.“꺼져! 우리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어. 네가 뭐로 살린다는 거야?”청년은 다시 버럭 화를 냈다.‘이놈 머리에 문제 있는 거 아냐? 사람이 이미 죽었다는데 아직도 신선인 척하면서 헛소리하네?’“살릴 수 있는지 없는지 곧 알게 될 거야.”진서준은 대꾸도 없이 청년의 어깨에서 노인을 빼앗아 바닥에 던졌다.쾅!둔탁한 소리와 함께 뼈가 바닥에
주최자로서 유정은 국색천향을 먹고 사람이 죽었다는 말을 듣자마자 바로 다가갔다.“당신 말대로라면 당신 아버지가 우리 약을 먹고 문제가 생겼다는 건가요?” 유정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당연하지!”청년은 유정을 노려보며 큰 소리로 외쳤는데 딱 봐도 감정이 격앙된 모습이었다.“너희 가문에서 불량 약품을 팔아서 우리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거잖아!”“일단 진정하세요.”유정이 달래듯 말했다.“우리 약은 각 부서의 검사를 거쳤기 때문에 절대 문제가 있을 리 없습니다.”이 말은 현장에 모인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만약 사람들이 청년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버린다면 이번 발표회는 완전한 실패로 끝날 게 뻔했고 그렇게 되면 제일 기뻐할 사람은 장씨 가문일 것이다.“헛소리 마! 어쩌면 너희도 그 부패 관리들과 한패일지도 모르지.”청년은 전혀 믿지 않는 태도로 소리쳤다.“정말 약에 문제가 없다면 우리 아버지가 왜 죽었겠어?”“정말 숨이 끊어진 게 맞는지는 좀 더 확인해 봐야겠네요.”유정은 미간을 찌푸린 채 말을 이어갔다.아무리 독약이라고 해도 독이 퍼지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고작 몇 분 만에 노인이 숨을 거둘 수 있을까?“우리 아버지는 이미 숨도 쉬지 않아. 이래도 돌아가신 게 아니라고? 혹시라도 불에 태워서 뼛가루로 만들어야 죽었다고 인정할 거야?”청년이 분노에 차서 고래고래 소리쳤다.“여러분! 절대 이 집 약을 사지 마세요. 정말 사람 죽이는 약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매일 8층까지 가쁜 숨도 안 쉬고 오르내리셨는데, 그런 건강한 몸도 이 약에 중독돼 돌아가셨어요. 난 지금 딱 하나만 묻고 싶어. 도대체 너희들이 파는 게 보약이야? 아니면 독약이야?”손님들 사이에서도 수군거리는 소리가 퍼졌다.“이거 가짜처럼 보이지 않는데? 설마 진짜 약에 문제가 있는 거야?”“내가 듣기로는 장씨 가문에서 발표한 회연단이 본래 유씨 가문 거였대. 그런데 장씨 가문이 훔쳐 가서 유씨 가문이 급하게 새로운 약을 만들어서 내놓은 거래.
“설마 우리 발표회 때문에 너희 귀빈들이 전부 이쪽으로 온 건 아니겠지?”말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처럼 장정범의 가슴을 찔렀다.‘이년, 말하는 거 진짜 독하네.’“유정, 너희 가문은 성 신의를 앞세워 가짜 약을 내놓고 있는데, 성 신의가 이 사실을 알면 너희 가문과 관계를 끊겠다고 하지 않겠어?”장정범의 얼굴이 새파래졌다.성동석이라는 이름은 장정범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그야말로 신출귀몰하는 명성이 자자한 명의였는데 서남 최고의 유씨 가문이라 해도 그런 인물을 함부로 불러들일 수 없을 것이다.“무슨 말이야? 저기 앉아 계신 분이 바로 성 신의님이야.”유정은 자신만만하게 무대 위의 성동석을 가리켰다.성동석의 얼굴을 확인한 장정범의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졌다.“못 믿겠으면 가서 직접 인사라도 해봐. 본인이 맞는지 확인해 보면 되잖아.”유정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제아무리 성 신의라 해도 고작 사흘 만에 회연단보다 더 나은 보약을 만들 수 있을 리 없어.”장정범이 이를 악물었다.“그걸 판단하는 건 우리가 아니라 이 자리의 손님들이 아니겠어?”유정이 여유롭게 웃었다.바로 이때, 유명 인사 한 명이 다가왔다.“유정 씨, 유씨 가문의 국색천향은 정말 대단하더군요. 몇 년 동안 없애지 못한 다크서클이 한 알 먹고 싹 사라졌어요. 피부 미용뿐만 아니라 신장 강화에도 효과가 있대요. 저는 지금 무릎도 안 아프고 허리도 안 뻐근해 계단 열 층도 단숨에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래층의 회연단이랑 비교하면 완전히 하늘과 땅 차이죠. 어라? 장정범 씨, 여기 계셨네요?”이 사람은 장정범을 보자마자 흠칫 놀라더니 황급히 몸을 돌려 달아났다.장정범의 면전에서 이 정도로 회연단을 까는 건 솔직히 좀 심했다.무엇보다 장정범은 본래 지하 세계 출신이었다.괜히 장정범을 기분 나쁘게 했다가는 이후의 삶이 순탄할 리가 없었다.“장정범, 사람들의 반응을 똑똑히 들었어?”유정이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아니면 직접 한 알 먹어볼래?”“필요 없어.”장
“너희들 들었어? 유씨 가문도 발표회를 열었대. 바로 위층에서 말이야. 듣자 하니 성 신의님 도움을 받아서 국색천향이라는 보약을 출시했대. 효과가 장씨 가문 회연단보다 더 무시무시하대.”“진짜야? 회연단도 이미 대박인데 그보다 더 강력한 보약이 있다고?”“당연히 진짜지. 내 친구가 바로 위층에 있어. 나도 곧 올라갈 생각이야.”“좋아, 나도 가서 확인해 봐야겠어. 진짜인지 아닌지.”소식은 빠르게 퍼졌다.발표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몇몇 사람들은 아예 인사도 없이 바로 떠나버렸다.지금은 좋은 시간대도 아니었기에 회연단의 발표회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이 상태로 가다가는 발표회가 시작될 때쯤엔 아예 현장이 텅 비게 될지도 모른다.“도대체 무슨 일인지 빨리 알아봐! 왜 사람들이 다 떠나는 거야?”장정범은 즉시 집사를 호출해 상황을 파악하게 했다.그때 박진용이 다가왔다.“장정범 씨, 이게 무슨 일이죠? 왜 사람들이 점점 더 줄어드는 거죠?” 박진용이 의아해하며 물었다.“모르겠어요, 아마 다들 밖에 나가서 신선한 공기나 마시려고 그러나 봐요. 내가 이미 사람을 보내서 알아보고 있어요.”장정범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곧 집사가 허겁지겁 달려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가주님, 큰일 났습니다! 나간 사람들 전부 위층으로 갔습니다!”“뭐? 위층으로 갔다고?”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에 장정범과 박진용은 모두 깜짝 놀랐다.유씨 가문의 발표회는 바로 위층에서 열리고 있었다.박진용과 장우림이 아까 올라갔을 때 위층은 텅 비어 있었다.그런데 왜 지금 모든 사람이 위로 올라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들이 의아해하는 사이, 또 다른 손님들이 위층으로 향했다.“올라갑시다. 우리가 가서 직접 상황을 확인해 봐야죠.”장정범은 이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혹시 위층에 있는 보물이 장씨 가문이 발표하려는 회연단보다 더 대단한 보물인 걸까?그럴 리가 없었다.하지만 장정범 일행이 위층에 도착했을 때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조금
“그래, 바로 우리 위층에서 연다고 해.”“아까 박 도련님이 가봤다는데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하더라. 네가 가서 유정 씨한테 간단히 위로라도 해주고 와.”장정범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하자 장우림은 즉시 아버지의 의도를 알아차렸다.“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다녀오죠.”장우림은 호탕하게 웃으며 부하 몇 명을 이끌고 위층으로 향했다.같은 시각, 유씨 가문의 발표회장은 여전히 한산했고 손님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유정이 의외로 침착하게 기다리는 모습을 보이자 진서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그때였다.“유정! 너희 유씨 가문도 오늘 발표회를 열 줄은 몰랐네.”장우림이 거만한 걸음걸이로 웃으며 들어왔다.장우림을 본 유정의 표정이 불쾌해졌다.“아래층에 있으면 될 텐데 여기엔 왜 왔어?”“당연히 너희 인원수라도 좀 채워주려고 온 거지. 여기 현장이 이렇게 한산한데 내가 손님 몇 명 데려와서 분위기라도 살려줄까?”장우림이 비아냥댔다.“필요 없어.”유정이 냉랭하게 대답했다.“유정, 나 궁금한 게 있는데, 너희 유씨 가문은 회연단도 없이 도대체 뭘 발표하겠다는 거지?”장우림이 미간을 찌푸리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장씨 가문이 이미 중요한 자료를 전부 빼돌렸는데 무슨 발표회를 연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렇게 망신당하고 싶은 건가?“네가 알 필요 없어.”유정이 담담하게 말자 장우림은 콧방귀를 꼈다.“그래, 나야 알 필요 없겠지. 대신 오늘이 지나면 유씨 가문은 금도의 웃음거리가 되겠군.”“누가 웃음거리가 될지는 아직 모르지.”유정이 물러서지 않고 야무지게 맞받아쳤다.“그럼 두고 보자고.”말을 마친 장우림은 부하들을 데리고 떠났다.장우림이 떠나자 유정은 서두르지 않고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몇 곳에 걸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세련된 차림의 여성들이 몇 명 들어왔다.“혹시 성 신의님이 여기 계시는가요?”“성 신의님께서 피부 미용에 좋은 약을 개발하셨다고 들었는데, 정말인가요?” 한 여성이 물었다.“그럼요, 당연히
같은 시각, 장씨 가문의 발표회 현장에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이 몰려와 북적거리고 발 디딜 틈도 없었다.금도의 모든 부자가 한자리에 모인 듯했다.지금 이 상황은 장정범의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었다.머지않아 장씨 가문의 건실 그룹은 서남 전역에서 이름을 날리게 될 것이고 유씨 가문은 서서히 몰락해 그들의 발밑으로 떨어질 터였다.장정범의 야망이 결코 작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장정범은 단순히 제약 산업에만 머물 생각이 아니라 서남 전역을 노리고 있었고 서남 지역의 절대적 패권을 원하고 있었다.“장정범 씨, 신제품 출시 축하합니다.”박진용이 사람들을 데리고 찾아왔다.“박 도련님, 오셨어요? 어서 앉으세요.”장정범은 극진한 태도로 맞이했다.박씨 가문은 서남 지역 출신이 아니지만 현재 그들은 협력 관계였기에 장정범도 박진용에게 충분한 존중을 보였다.“장정범 씨 덕분에 이번에 제대로 한몫 벌게 생겼습니다.”왔다 갔다 하는 손님들을 보며 박진용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고작 발표회 하나 열었을 뿐인데 이 정도라면 약이 정식 출시되는 날에는 서남 전역을 들썩이게 할 것이다.위층에 있는 유씨 가문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였다.아까 유정이 박진용에게 전 재산을 날릴 수 있다고 하던 헛소리를 생각하면 우습기 짝이 없었다.“앞으로 우리 장씨 가문 사업에도 많은 지원 부탁드립니다, 박 도련님.”장정범이 씩 웃었다.박씨 가문은 대한민국 전역에서도 손꼽히는 재력을 자랑하는 가문이었다.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협력한다면 장정범의 건실 그룹에는 엄청난 이득이 될 터였다.사업은 단순히 부동산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되고 돈이 되는 일이라면 모든 분야를 섭렵해야 했다.그 분야에서 정상에 서려면 간단하게 돈을 때려 박으면 된다.이번에 장정범은 제약업계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지기 위해 건실 그룹 자금을 전부 회연단에 투자했다.투자한 만큼 수익도 따라오기 때문이었다.“장정범 씨, 오늘 유씨 가문도 발표회를 연다고 하더군요. 알고 계셨습니까?”박진용이 뜬금없이
“혹시 박 도련님이 장씨 가문에서 회연단을 사셨나요?”“그건...”박진용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애초에 이 회연단이라는 약은 본래 유씨 가문에서 개발한 거였는데 장씨 가문이 빼돌린 셈이었다.그러니 이걸 사들였다고 말하는 게 좀 껄끄러웠다.“맞아요, 꽤 많은 양을 샀죠.”박진용은 어차피 숨길 필요가 없었다.박진용이 직접 확인한 결과, 회연단의 효과는 확실했다.그래서 이 회연단으로 시세를 조정해서 큰돈을 벌 생각이었다.박서명이 이제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분명 칭찬해 줄 것이다.“박 도련님, 선의로 한마디 하자면 지금이라도 회연단을 전부 처분하세요. 안 그러면 손해가 어마어마할 겁니다.”“말도 안 되는 소리네요.”박진용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유정 씨, 제가 아까 도와드리려고 했던 거 아시죠?”“알아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충고하는 거예요.”유정의 말에 박진용은 코웃음을 쳤다.“유정 씨, 혹시 질투하는 겁니까?”“질투요?”유정이 피식 웃으며 박진용을 쳐다봤다.“박 도련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더 이상 말하지 않을게요.”어차피 할 말은 다 했으니 믿든 말든 그건 상대방의 몫이었다.박진용은 더 이상 대화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박진용이 사라지자 여전히 텅 비어 있는 발표회장을 보며 진서준이 입을 열었다.“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건데?”“서두를 필요 없어요. 진짜 재미있는 건 이제부터니까요.”유정의 눈빛이 반짝였다.“유정 씨, 제가 뭐 도와드릴 일 있을까요?”조슬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조슬기 씨는 저 자리에 앉아 계시면 됩니다.”유정이 무대 위 한가운데에 놓인 눈에 띄는 좌석을 가리켰다.“네? 그게 다예요?”조슬기가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이제 막 뭔가 중요한 걸 시키는 게 아닐지 긴장하고 있었는데 앉아만 있으라니, 조슬기는 이해할 수 없었다.“네, 그리고 혹시 누군가 조슬기 씨와 신수란 씨를 알아보면 국색천향을 홍보해 주시면 됩니다.”“네, 그 정도야 문제없죠.”조슬기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