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아가 잠에서 깼을 때 방에 두 사람이 더 있었다. 정유진과 온유한이다.“새언니? 왜 여기에 있어요?”“성유 송년회 보러 왔어.”정유진은 온유한을 힐끗 쳐다본 뒤 말했다.“송년회가 끝나가는데 현장을 예쁘게 디자인이 한 사람이 왜 여기에서 자고 있어?”강지아는 머리를 쥐여 잡으며 말했다.“같이 소란 피우기 싫어서 잠깐 눈을 붙인 건데... 새언니, 이제 가려고요? 같이 가요.”정유진이 엉겁결에 온유한을 쳐다보자 온유한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강지아는 마치 그의 말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그를 공기처럼 여겼다.그 모습에 정유진이 웃으며 말했다.“일 있으면 먼저 가봐요. 지아는 내가 데려다줄게요.”온유한이 떠나자 강지아는 두 눈이 멍해졌다.정유진이 다가가 안아주자 계집애는 이내 정유진을 꼭 껴안았다.극도의 안정감이 필요한 모양이다.“새언니, 왜 같이 왔어요?”“내가 도착했을 때 이미 있었어.”강지아는 잠이 쏟아지는 눈으로 정유진을 바라보더니 콧방귀를 뀌었다.“첫사랑과 같이 안 있고 여긴 뭐하러 왔대요?”“네 생각엔? 성유의 송년회가 유한 씨와 무슨 상관이 있겠어? 네가 걱정되어서 온 게 아닐까?”“그런 걱정 따위 필요 없거든요.”“그럼 주유정과 재결합하는 걸 보고만 있을 거야?”강지아는 뽀로통하게 말했다.“새언니, 굳이 자기 것이 아니라면 뺏을 필요도 없겠죠.”정유진은 본인 기분이 강지아에게 영향을 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진짜로? 정말 너의 유한 오빠를 다른 사람에게 줄 거야? 내가 알기로는 지금 주유정과 사귀는 사이는 아닌데. 한 번 도전해 보지 않을래?”강지아는 짜증이 난 듯 머리를 쥐어뜯었다.“몰라요. 그 여자가 돌아온 이후로 연락을 잘 안 해요.”“이렇게 내버려 두는 게 내키지 않는다면 너도 유한 씨를 놓지 못하겠다는 뜻이야. 어찌 됐든 너의 오빠와 나는 항상 너를 응원할 거니까 너의 행복이 제일 중요해.”“새언니가 제일 좋아요!”정유진은 그녀에게 옷을 건네며 말했
드디어 방학이 되었다. 강지찬은 가족을 데리고 곧장 해성시로 날아갔다.그가 설 쇠러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본가는 아내와 아이, 장인어른과 장모를 데리고 해성시에 나가 설을 쇤다는 말을 들었다. 강홍식은 하마터면 화가 나 기절할 뻔했다.임미연은 자신의 귀를 믿을 수 없었다.“지찬 오빠와 유진 언니가 해성에 갔다고요?”“그럴 리가.”고세연은 얼떨떨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지만 속은 은근히 통쾌했다.강씨 가문은 절대 쉽게 들어올 수 없을뿐더러 강지찬과 정유진도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임미연 같은 여자가 들어온다면 고세연의 그동안 고생은 헛된 것이 아니겠는가?“강지찬과 정유진이 화해한 거 아니에요?”임미연이 서운한 얼굴을 보이자 고세연은 불난 집에 부채질했다.“그래서 요즘 본가에 통 나타나지 않은 거였네요. 그리고 얼마 전에 연우를 데리고 놀이공원과 승마장에 갔다고 하던데 인제 보니 계속 정유진의 집에 머물고 있었네요.”임미연의 안색은 숨길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워졌다.고세연은 아주 통쾌했지만 일부러 아닌 척했다.“미연 씨,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데 어디 아파요?”임미연은 눈시울을 붉히던; 억울한 듯 강홍식을 바라봤다.“어르신, 지찬 오빠를 불러주면 안 돼요?”강홍식은 난처했다.강지찬이 부른다고 쉽게 온다면 매일 그를 불효자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대여섯 살 때 할아버지를 따라다닌 강지찬은 그의 말을 전혀 듣지 않았다.“그, 그게...”강홍식이 우물쭈물하자 임미연은 다시 말했다.“지찬 오빠는 강씨 집안의 기둥이고 집안의 가장이에요. 가장이 없는데 설을 어떻게 보내요? 밖에 다른 사람이 알면 우리 강씨 집안을 어떻게 생각하겠어요?”맞는 이치지만 강지찬도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안다고 해도 그에게 직접 말할 사람은 없었다.임미연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배를 어루만지며 말했다.“어르신, 배 속에 강씨 집안의 장손이 있어요.”원래부터 귀가 얇은 강홍식은 손자 체면을 봐서라도 전화는 걸어야 했다.하지만 직접 걸지 않고 집사에게
설날 강원훈이 집에서 아이를 때렸고 강지호의 울음소리가 본가 전체에 울려 퍼졌다.주연지는 아들과 새해에 여행을 가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강원훈이 번복해 강지호가 소란을 피우다가 결국 얻어맞았다.아들이 숨을 내쉬며 우는 것을 보니 주연지도 답답했다.“호텔까지 다 잡았는데 왜 못 간다는 거예요? 내연녀가 같이 있어 달래요?”강원훈은 짜증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순간 이 모자를 집안에 데려온 것이 큰 실수라고 생각했다. 숨 돌릴 틈도 주지 않으니 말이다.“닥치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러면 짐 싸서 꺼져!”말을 마친 뒤 떵떵거리며 계단을 올라갔고 그 모습에 주연지는 깜짝 놀라 입을 딱 벌렸고 강지호만은 옆에 가만히 있었다.옷을 갈아입은 강원훈을 보니 외출하려고 하는 것 같다.주연지는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설날 아침부터 어디에 가려고요?”강원훈이 코웃음을 쳤다.“요즘 한 여대생이 눈에 띄더라고. 일도 잘하고 말도 잘 들어. 왜, 불만이 있어?”주연지는 온몸을 떨었지만 강원훈은 아무런 미련 없이 가버렸다.이 사람이 밖에서 다른 여자를 만나고 여자가 한두 명이 아닌 것을 알지만 아들 때문에 한 번도 여자를 집에 데려오지 않았다. 최대한 주연지에게 숨기기 위해 노력했다.주연지도 그냥 모른 척해다. 여자가 없는 남자가 어디 있겠는가?적어도 강원훈이 그녀에게 돈을 주고 확실한 명분도 주지 않았는가? 강씨 집안의 셋째 사모님 명의가 있고 아들에게 돈이 있으니 더 욕심낼 것도 없었다.그런데 지금 강원훈은 아들 앞에서 바깥 여자 얘기를 꺼냈다.“강원훈, 이 나쁜 놈!“주연지는 고가의 값비싼 꽃병을 깨뜨렸다.조예원도 셋째 집에서 나는 심상치 않은 소리를 들었다.휴대폰 영상 속에서 조예원 어머니가 정유진에 대해 물었다. 조예원 어머니는 두 사람이 손절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당부했다.“날씨가 따뜻해지고 유진이가 한가해지면 아이들과 함께 돌아와. 나도 유진이를 본지 오래돼서 보고 싶어.”조예원은 자기 어머니가 외손자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다.
시커먼 한약을 강지현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마신 뒤 그릇을 조예원에게 건네며 겨우 입을 열었다.“밖에 무슨 일이 있어요?”“셋째 집안에서 싸우고 있어요. 강원훈이 집을 나간 것 같아요.”강지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쟁반을 들고 문앞까지 걸어간 조예원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정유진이 가족과 함께 해성시에 가서 설을 쇤다는 얘기 들었어요?”강지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매우 두꺼운 실내복을 입고 있었지만 뒷모습은 전혀 뚱뚱해 보이지 않았다.조예원이 말했다.“비행기표를 끊었으니 우리도 같이 나가서 진찰을 받읍시다.”강지현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괜찮아요.”조예원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지현과 함께 출국해 병원에 가기로 한 이상, 반드시 가야 한다.강지찬과 정유진 가족은 닷새 만에 돌아왔다.강지아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누군가에게서 온 친구 신청을 받고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누구야?”정유진이 물었다.“주유정이요.”강지아는 친구 신청을 수락했다.그러자 주유정에게서 바로 전화가 오더니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지아야, 오늘 서울 돌아온다며? 언제 도착해? 나 오늘 이사하는데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싶어.”“오늘 서울 돌아온다는 걸 어떻게 아셨어요?”“유한이 오늘 이사 도와주러 왔어. 친한 친구 몇 명 불러서 집들이 겸 축하 파티를 열 예정이니 너도 와.”“네...”강지아가 대답하자 정유진이 물었다.“가고 싶지 않으면 가지 마. 왜 스스로에게 난처한 일을 만들어?”강지아는 얼굴을 찌푸렸다. 아니나 다를까 서울로 돌아오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이번에 거절하면 또 다음이 있겠죠. 매번 거절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내가 겁이 나서 피하는 줄로 알 거예요.”강지아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가는 게 뭐 대수라고.”그러고는 바로 고개를 돌려 서원준과 같이 가자고 메시지를 보냈다.서원준은 난처한 처지인지 아닌지도 생각하지 않고 두말없이 승낙했다.금방 설이 지난
“방씨 아주머니, 이 여자는 왜 아직도 여기 있는 거예요?”강지아는 화를 참고 말했다.“오빠가 일부러 전화해서 나가라고 했잖아요. 여기는 오빠와 새언니의 집이에요. 그런데 본인이 뭐라고 계속 여기에 있는 거예요?”강지아가 욕설을 퍼붓기 전에 정유진은 얼른 연우의 귀를 막았다.방경숙은 난처한 얼굴로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사모님, 아가씨. 저는...”“아주머니와 상관없는 일이야. 내가 나가기 싫어서 안 나간 거니까.”임미연이 나서서 방경숙의 난처함을 풀어줬다.지금 임미연은 임신한 상태이고 이 아이가 진짜로 강지찬의 아이인지 아닌지 방경숙은 몰랐기에 본인이 나가지 않겠다고 하는 이상, 억지로 내보낼 수 없는 노릇이었다.“나가기 싫다고? 네가 뭔데 나가기 싫다는 거야?”강지아는 경호원을 노려보며 말했다.“거기서 멍하니 뭐 하는 거예요. 이 여자 당장 쫓아내요. 게스트 룸에서 쓰던 물건들은 다 버리고요.”당장이라도 큰일이 벌어질 것 같은 상황에 정유진은 연우의 귀를 막고 위층으로 올라갔다.“엄마, 저 이모 누구야? 왜 우리 집에 있어?”“응, 손님이야.”정유진은 딸을 침대에 눕힌 뒤, 코트를 벗겼다. 하인더러 욕조를 소독하게 한 후, 아이에게 목욕을 시켜줬다.녀석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휴대전화를 건네주며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집에 왔는지 물어보라고 했다.연우는 혼자 소파에 올라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아래층에서 강지아의 성난 목소리가 또 들렸다. 강지찬이 돌아온 것 같지만 정유진은 아래층으로 내려가지 않았다.임미연이 아직도 집에 있는 것을 본 강지찬의 얼굴은 잔뜩 어두워졌다.더 이상 말을 섞기 싫어 장형준에게 임미연을 내보내라고 했다.강지찬을 보름이 넘도록 보지 못한 임미연은 자기를 만나자마자 나가라고 할 줄은 몰랐다.“지찬 오빠, 나한테 이러면 안 돼요.”임미연은 한 손으로 배를 움켜쥐고 눈시울을 붉혔다.“나는 오빠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아요...”“집을 사줬잖아? 거긴 조용하니까 임산부에게 좋아.”강지찬은 아무렇지
온유한이 여기 있는 것이 의외는 아니었지만 강지아는 뭐가 두려운지 알 수 없었다.잘못한 것도 없는데 말이다.문을 연 온유한은 밖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어리둥절해 했다.강지아도 그를 바라봤다.흰 셔츠를 입고 머리카락이 약간 헝클어진 모습은 평소 빈틈없는 온 선생과 딴판이었다.“온 선생님, 또 만났네요? 안 들여보낼 거예요?”서원준이 웃으며 예쁘게 포장된 상자를 그의 앞에 내밀었다. 그가 강지아 대신 준비한 집들이 선물이었다.강지아 자신도 미처 선물을 준비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이때 주유정이 다가와 물었다.“유한 씨, 누구야... 지아가 도착했네. 어서 들어와.”온유한은 그제야 손잡이를 잡은 손을 놓고 집안으로 두 사람을 들어오라고 했다.서원준은 들고 있던 선물을 주유정에게 건네며 말했다.“지아가 준비한 거예요.”“고마워. 지아야. 선물까지 준비하다니.”강지아는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준비한 것 아니에요.”주유정의 미소가 굳어졌다.서원준은 조용히 혀를 내두르며 팔을 들어 강지아의 목을 감았다.“내가 준비한 거나 네가 준비한 거나 다 똑같잖아. 뭘 그렇게 따져?”그러자 주유정이 얼른 말했다.“맞아, 누가 준비하든 똑같지. 고마워.”강지아가 한마디 했다.“아직 안 뜯어봤잖아요.”주유정의 얼굴이 다시 얼어붙었고 얼른 선물 포장을 뜯었다.서원준은 혼자 미소를 지었다. 이제 보니 이 계집애는 다른 사람을 난처하게 해도 본인이 난처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선물은 바디 전체가 하얗고 목이 가느다란 예쁜 꽃병이었다.“조 대가의 작품이네요.”주유정은 기쁨을 금치 못했다.“서원준 씨도 조 대가의 팬일 줄 몰랐어요. 이 하얀 꽃병과 매칭되는 검은색 꽃병도 있지 않아요? 이 선물 너무 소중해요. 전에 잡지에서만 보고 실물은 본 적이 없는데.”이번에는 서원준이 난처해졌다. 집들이용으로 쓸 만한 물건을 고르다가 집에 있는 아무 물건이나 가져온 것인데 바로 마음에 들어 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마치 그가 정성을 들여 특별히 고른 것처럼 말
주유정은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연락하는 친구가 많지 않았다. 저녁으로 샤부샤부에 소주 한잔을 마시니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단지 그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할 뿐, 강지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주유정이 챙겨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옆에 있던 서원준은 확실히 외향적인 성격이었다. 강지아를 위해 고기를 집어주고 물을 부어주기도 했으며 주유정의 친구들과도 얘기를 잘 나눴다.수저를 든 강지아는 입맛이 없는지 허튼소리를 하는 서원준을 보며 얼굴을 찡그렸다.맞은편에는 온유한이 앉아 있었다. 분명 보고 싶어서 이곳에 왔지만 정작 마주 앉아 있으니 또 보고 싶지 않았다.“지아야, 이 스파클링 와인 한 번 마셔봐? 달짝지근한 게 식감이 괜찮아.”주유정이 장밋빛 술 한 병을 건네주며 맛있다고 칭찬했다.“그래, 맛 좀 봐.”서원준은 바로 가져왔고 강지아도 한번 맛보고 싶어 손을 들었는데 순간 누군가가 술을 가로챘다.“지아는 안 마셔.”온유한의 말에 서원준이 눈살을 찌푸리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밥상 분위기가 왠지 이상한 느낌에 주유정이 웃으며 수습에 나섰다.“지아가 마시고 싶으면 좀 마시게 해. 이 술은 얼굴 피부에도 좋고 도수도 높지 않아서 외국 사람들은 꽤 즐겨 마셔.”“지아는 안 마셔.”온유한이 또 한 마디 내뱉자 강지아는 벌컥 화가 났다.“마실 거야.”온유한은 그녀를 힐끗 바라보더니 술잔을 자신의 옆에 놓았고 지아에게 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마실 거라고.”강지아가 또 말하자 온유한은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오늘 며칠이야?”강지아는 순간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내일 생리 날임을 알았다. 주의하지 않고 함부로 먹으면 내일 생리통 때문에 움직이지도 못할 것이다.못마땅했지만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렸다. 괜히 마셨다가는 본인 몸만 상하게 될 것이다.이때 한 남자인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오늘 9일인데 왜, 술 먹는 것도 날짜를 봐가면서 마셔야 해?”하지만 여자들은 진작 알아들었고 주유정은 의아한 표
손님들이 모두 떠나자 온유한이 난잡해진 집안을 치웠다.소매를 걷어붙이니 메스를 드는 손이 길고 시원시원해 보였다.그와 함께 짐을 정리하던 주유정은 의아한 듯 물었다.“유한 씨, 지아가 나 안 좋아하는 거지?”온유한은 그녀를 힐끗 보고 말했다.“그런 거 아니야.”주유정은 본인 생각을 솔직하게 말했다.“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너와 친한 줄 알았는데 그런 것 같지도 않아. 그건 그렇고 그 서원준은 지아의 남자친구야? 아니면 지아가 좋다고 따라다니는 거야? 두 사람 보니까 아주 친해 보이던데.”“몰라.”온유한은 나가는 김에 버릴 쓰레기 두 봉지를 문 앞에 놓고 손을 씻은 후 외투를 가지러 가자 주유정이 물었다.“가려고?”온유한이 그녀를 쳐다보자 주유정은 얼른 설명했다.“시간이 늦었는데 게스트 룸에서 차라리...”“아니야.”“유한 씨...”주유정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달려들어 온유한을 끌어안았다.“안 가면 안 돼?”온유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새집이 처음이라 혼자 있기가 좀 두려워.”온유한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일이 있어서 가봐야 해.”주유정은 눈앞의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왜 돌아왔는지 정말 몰라? 진짜로 내 입으로 말해야겠어?”온유한은 인상을 찌푸렸다.“아니, 그럴 필요 없어.”주유정은 순간 흠칫 놀랐다.“그럴 필요 없다고? 아직도... 아직도 내 탓을 하는 거야?”“그런 거 아니야.”눈앞의 여인은 아름답고 지적이며 얼굴에는 소년 시절 그를 설레게 한 흔적이 아련히 남아 있었다.하지만 이 모든 것은 옛날의 과거에 불과하다.그녀를 탓하지 않는다는 말에 주유정은 다시 활짝 웃었다.“그럼 나 용서해 주는 거야? 유한 씨, 이해해줘서 고마워. 내가 그동안 얼마나 유한 씨를 그리워했는지 모를 거야. 유한 씨를 떠나고 나서 나도 많이 후회했어. 하지만 그때는 나도 방법이 없었어. 부모님에게 딸이 나 하나뿐이니까. 나에게 큰 기대를 건 사람들이라 그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어.
식탁 위의 분위기는 상당히 어색했다.최신애는 강지아에게 많이 먹으라고 말하며 계속 반찬을 얹어 주었다.앞에 있는 접시는 가득 찼지만 강지아는 최신애가 짚어 준 반찬을 한 입도 먹지 않은 채 먹고 싶은 것은 스스로 집어 먹었다.최신애의 얼굴은 잔뜩 어두워졌다.온혁진이 기침을 하며 강지찬과 강씨 가문으로 말머리를 돌렸다.“오빠 회사 일은 잘 몰라요. 제가 관여할 일도 없고요.”강지아는 온혁진의 물음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거절했다.“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오빠한테 물어보세요.”식사를 마친 뒤 강지아는 전화를 받고 나갔다.그녀는 온유한에게 데려다 달라고 하지 않고 직접 운전해서 갔다.밖에서 차 떠나는 소리가 들리자 최신애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아들아, 지아는 대체 무슨 뜻이야?”핸드폰을 들고 흉부외과 팀의 온라인 수술 토론을 보고 있던 온유한은 최신애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지아가 뭘 하든, 신경 쓰지 말고 묻지도 마세요. 아무 말도 하지 마시고요.”강지아는 화령과 술을 마시러 나갔다.화령의 기분이 좋지 않아 두 사람은 오늘 에이프릴 홀에서 방 하나를 빌려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미안해, 온씨 저택으로 들어간 첫날 밤인데 내가 불러냈네. 온 대표님이 화내겠다?”“그 사람 기분 따위 상관 안 해.”강지아가 소파에 편안히 누우며 말했다.“무슨 일인데? 최금성이 왜 또?”“별거 아니야.”화령이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최금성의 소울메이트가 돌아왔어. 지금 밖에서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을 거야.”“소울메이트?”강지아는 깜짝 놀랐다.“유주?”화령이 물었다.“너도 알아?”강지아가 일어나 앉으며 혀를 찼다.“골치 아프게 됐네.”그 말에 화령의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왜 골치 아픈데, 정확히 얘기해봐.”술을 마실 마음이 싹 사라진 강지아는 화령보다 더 초조해 보였다.“왜 돌아왔대? 오랫동안 밖에 있다가 갑자기 돌아온 이유가 뭐야?”화령은 더욱 초조해졌다.“대체 왜 그러는 건데? 유주라는 여자, 대체
온혁진과 최신애는 마당에 서서 강지아를 기다리고 있었다.강지아에게 최고의 대접을 해주는 것이었다.최신애의 미소는 눈으로 보기에도 어색했다.가장인 온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부터 우리는 한 가족이야. 지아야, 필요한 게 있으면 네 아주... 네 어머니에게 말해.”최신애도 말했다.“그래, 그래. 얼른 방에 가서 마음에 드는지 봐봐.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바꿔줄게.”고개를 끄덕인 강지아는 열려 있는 문을 바라보며 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최신애가 유난히 열정적으로 말했다.“지아야, 먼저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어. 조금 이따가 저녁 식사 준비할게. 오늘 저녁은 네가 좋아하는 음식만 준비하라고 했어.”강지아는 깜짝 놀랐다.“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하세요?”“당연히 기억하지.”최신애가 약간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키웠는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모를 리가 있겠니? 너는 매운 걸 싫어했어, 어릴 때 실수로 고추를 먹으면 한참을 울었어. 네 엄마가 아무리 달래도 소용없었지, 그 매운맛이 가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어.”“그걸 기억하시네요.”강지아가 말했다.간단한 몇 마디였고 특별히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최신애는 왠지 얼굴이 화끈거렸다.문을 들어서자 강지아는 긴장을 풀었다.이곳에 결국 들어오게 되다니... 평생 다시는 들어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하지만 옛말대로 매듭은 매듭을 묶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나는 게스트 룸에 있을게요.”강지아의 말에 최신애와 온혁진은 깜짝 놀랐다.“아, 아니. 네가 게스트 룸에 있으면 안 되지...”온유한이 말했다.“2층 방 좀 정리해 주세요.”게스트 룸이 2층에 있었기에 온유한은 당연히 그녀와 한 층에 있고 싶었다.강지아도 별말은 하지 않았다.최신애는 즉시 사람들을 시켜 2층에 있던 온유한 방 옆의 방을 강지아의 취향에 맞게 정리했다. 창고에 물건이 많았지만 하인들이 함께 움직여 30분 만에 강지아에게 아름답고 아늑한 방을 만들어줬다.강지아가 세수를 하기 위해 위층으로 올
연우의 생일 파티에는 강씨 가문의 친지들이 많이 참석했기에 강지아는 낯이 익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한동안 응대를 해야 했다.화장실에 가서 화장을 고친 뒤 손을 씻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허리를 꽉 잡았다.“누구야, 놔!”깜짝 놀란 강지아가 발로 그 사람을 밟으려 했다.이것은 장형준에게 배운 호신술이었다. 하이힐로 상대방의 발을 밟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호신술이었다.하지만 하이힐로 밟기 전에 강지아를 안고 있는 사람이 그녀의 귀에 대고 말했다.“나야.”온유한이였다.강지아는 움직이지 않았고 소리도 내지 않았다.온유한의 품과 몸에서 나는 냄새가 너무나 익숙했다.그에게 꽉 안겨 귀에서 들리는 그의 숨소리는 한 번 또 한 번 그녀의 심장을 강타했다.이제는 그가 두렵지 않다.하지만 완전히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심장은 여전히 두근거렸으며 몸은 본능적으로 저항하려 했지만 예전처럼 그를 보자마자 떨리는 것은 아니었다.“내 생각 안 했어? 지아야?”온유한의 물음에 강지아는 매우 평온하게 말했다.“생각했어.”그 대답에 온유한이 오히려 놀랐다.강지아가 놓아달라는 듯 온유한을 밀어내자 온유한도 그녀의 뜻대로 그녀를 놓아주었다.강지아가 말했다.“오늘 저녁에는 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 내일 오후에 데리러 와. 같이 온씨 저택으로 가자.”온유한은 또 한 번 놀랐다.“지아야,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니?”“알아, 우리 결혼했잖아. 같이 온씨 저택에 돌아가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쉽게 한 말 같지만 당연하지 않다...온유한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너는 온씨 저택에 갈 필요 없어. 우리 그냥 서울 캐슬에 살자. 그 집은 너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거야. 거기서 살면 편할 거야.”“아니, 온씨 저택으로 들어갈 거야.”강지아가 단호하게 말했다.강지아가 집에 들어와 살 거라는 소식을 들은 최신애는 마음속으로 거부감을 느꼈다.이제 강지아와 그녀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
“온씨 가문이 정말 예전 같지 않아, 작년에 많은 일이 일어나면서 태안 그룹의 평판도 영향을 받았지.”“그건 다 최신애가 자초한 일이야, 이제는 강씨 가문의 아가씨에게 아부하려고 하지만 강지아가 어디 쳐다보기라도 해?”“강 대표가 냉정하다고들 하지만 온씨 가문에게는 정말 잘해주네. 최신애가 예전에 강지아에게 어떻게 했는지 다들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끔 귀에 들려오자 얼굴이 빨개진 최신애는 화가 나면서도 당황스러웠다.강지아도 몇 마디 들었지만 그냥 무시해 버렸다.“조카딸 생일 때문에 잠깐 돌아온 거야? 아니면 더는 안 나가는 거야?”화령의 물음에 강지아가 미소를 지었다.“내가 마치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말하네.”“그래, 넌 돌아다니기를 좋아하지 않아. 그냥 피하러 다니는 거지.”서원준이 다가오자 화령이 웃으며 말했다.“한 번 나가면 두 명 다 피할 수 있구나.”서원준은 여전히 건들거리는 모습이었다.“돌아왔어?”“응, 돌아왔어.”강지아가 동하민을 향해 손을 내젓자 동하민이 그녀의 가방을 가져왔다.화령이 농담으로 한마디 던졌다.“우리 강씨 가문의 아가씨가 선물 주는 버릇은 고치지 못했나 봐.”서원준도 웃었다.“나한테도 줄 선물이 있나 보네.”말투에는 비꼬는 기색이 없었다. 이미 마음을 놓은 건지 아니면 일부러 가볍게 보이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강지아는 이번에 브로치 선물을 준비했다. 남자 것과 여자 것은 당연히 달랐지만 모두 예뻤고 값비싼 것들이었다.“또 도매한 거야? 정성이 없네.”화령은 겉으로는 비난했지만 이미 브로치를 들고 가슴에 대어 보고 있었다. 입과 몸이 따로 노는 게 특징인가 보다.강지아가 말했다.“나에게 뭐라고 하지 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바빴는지 너도 알잖아.”화령이 콧방귀를 뀌었다.“바쁘겠지, 펀과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니느라 얼마나 바빴겠어. 그래도 브로치가 내 미모와 잘 어울리니까 마음에 드네, 고마워.”말을 마친 화령은 선물과 잔을 들고 알아서 자리
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의 가족 모임에 강홍식과 고세연은 초대받지 못했기에 참석하지 않았다.본가로 돌아오자 강홍식이 마당에 서서 강지찬과 강지아를 불효자식이라고 욕했지만 둘 다 아버지를 무시했다.강지아는 바로 자기 집 마당으로 돌아갔다.정유진은 강지아가 결혼식 날 왜 모른 척했는지 물어볼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내내 강지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지아가 걱정돼.”강지찬은 아내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어. 본인도 속으로 알고 있을 거야. 서원준과 결혼하는 것보다 온유한과 결혼하는 게 낫다는 걸.”사실 강지아는 지금 서원준과 결혼하지 않은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무고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그날 밤, 강지아는 화령과 동하민을 데리고 해외로 패션쇼를 보러 떠났다.에이프릴 홀.술을 좀 많이 마신 최의현은 옆에 있는 온유한의 어깨를 탁탁 치며 말했다.“친구야, 우리랑 술 마신 지 얼마나 됐지? 너 벌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온유한이 미소를 지으며 앞에 있는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한 잔을 따라 강지찬을 향해 들었다.“지찬아, 내 잔도 받아줘.”강지찬은 온유한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나서야 잔을 들고 멀리서 살짝 부딪혔다.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은 이렇게 화해했다.온씨 집안.최신애가 매우 불쾌해하며 거실에 앉아 한숨을 쉬자 신문을 보던 온혁진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졸리면 자러 들어가, 아들이 오늘 늦게 들어올 거야. 기다릴 필요 없어.”최신애는 또 한숨을 쉰 후 말했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남들은 며느리를 들이면 기뻐서 날뛰는데 우리 집은 왜 이럴까요? 며느리에게 차 한 잔도 못 얻어 마시고 조상님보다 더 조상님 대접을 해줘야 하잖아요.”온혁진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누구를 탓하겠어? 당신이 불평할 자격이 있어? 경고하는데 이런 말 아들 앞에서 하지 마. 지아가 온씨 가문의 문턱도 안 들어오겠다고 해도, 평생 우리를 부모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은 아무 말도 할 자격이
강지아는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온유한을 잔뜩 경계하는 눈빛은 싸늘하기만 했다.온유한은 쟁반을 둥근 테이블 위에 놓으며 미소를 지었다.“지금 먹기 딱 좋으니까 얼른 와서 먹어.”온유한의 모습은 마치 두 사람 사이에 떨어져 있던 3년의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강지아는 배가 고팠지만 가까이 가지 않았다.“알았어.”온유한은 항복하는 듯 말했다.“와서 밥 먹어, 나는 잘게.”말을 마친 온유한은 옆방 침실로 들어갔다.강지아는 여전히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이 집이 완전히 그녀의 취향에 맞게 꾸며져 있다면 충전기도 그녀가 평소에 두던 곳에 있을 것이다.테이블 아래 서랍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충전기가 그 안에 있었다.밥을 먹은 뒤 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한 강지아는 옷장을 열자마자 깜짝 놀랐다.옷장 안의 옷마저 그녀의 옷장에 있는 것들과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었다.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운 강지아는 잠들지 못할 줄 알았으나 새벽까지 깊이 잠들었다.천장을 바라본 강지아는 무력감이 들면서도 이런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아래층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는 온유한은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조금이나마 덜 위험한 모습을 보이면 강지아의 경계심도 조금은 풀어지게 될 것이다.발걸음 소리를 들은 온유한은 신문을 가지런히 접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아침 식사 준비됐어, 어서 와서 먹자.”말을 마친 뒤 주방으로 가서 밥과 반찬을 차렸다.집안일을 하는 온유한은 왠지 모르게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아마도 잘생긴 남자는 무슨 일을 해도 멋져 보이는 법인가 보다.“얼른 와, 맛이 괜찮을 거야.”온유한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강지아는 순간 깨달았다. 이 집에 하인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면 어제 저녁 식사와 오늘 아침 식사도 온유한이 준비한 것일까?마음이 너무 닫힌 탓인지 이에 대해서도 전혀 감동을 하지 못했다.감동은커녕 마음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안 먹을 거야, 좀 이따
결혼식 연회는 계속되었지만 결혼식이 아니라 친지 친구들 간의 대형 모임으로 변했다.강지찬은 받은 축의금은 모두 돌려줄 것이며 오늘 이 자리에 온 하객들은 맘 편히 먹고 마시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강지찬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장형준이 와서 보고했다.“대표님, 서원준 씨가 돌아왔습니다.”밖에 있는 서원준은 손에 있던 외투도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고 넥타이도 매지 않았다. 입고 있던 셔츠도 헐렁해졌다.입구의 테이블에서 술병을 하나 집어 들고는 바닥에 쏟으며 안으로 걸어 들어온 그는 강지찬 앞에 다가와 술병을 위로 집어 들었다.장형준은 서원준이 혹시라도 폭력을 쓸까 봐 재빨리 강지찬 앞을 가로막았다.강지찬은 장형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비키라고 했다.“왜?”강지찬이 술병을 바라보며 묻자 서원준이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진작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날만 기다린 거예요?”강지찬은 솔직하게 말했다.“응, 예상했어.”“그래요, 그렇군요.”서원준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어 술을 한 모금 마셨다.하지만 강지찬에게 폭력을 쓰지 않았다.술병의 술을 다 마신 후, 그는 서연희를 데리고 호텔을 떠났다.성대한 결혼식이었지만 남자 측의 친지와 회사 동료들을 합쳐도 두 테이블밖에 되지 않았다.돌아가는 길, 두 모자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원준은 서연희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마당은 강지아가 전에 개조해 조금 변화가 있었다. 풀들이 제각각 자라던 마당이 강지아 덕분에 많이 질서정연해졌다.가을이 되었음에도 꽃들이 여전히 만발해 있었다.“지아가... 이제는 오지 않겠지?”서원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기 어머니에게 물 한 잔을 가져다 주었다.서연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아들아, 지아의 오빠를 원망하지 마라. 오늘 이런 상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어. 지아의 마음속에 네가 없다는 것을.”한참 후, 서원준이 말했다.“알아.”주위 인테리어가 너무 익숙했던
온유한이 강지아를 거실 한가운데에 앉히자 강지아는 순간 멍해졌다.이 집은 온유한이 현채영에게 사 준 집이 아니었던가? 왜...“강지아 씨가 이 환경에서 안정감을 느낄 거라고 유한 씨가 그랬어요. 여기 있는 모든 물건들도 유한 씨가 직접 하나하나 주문 제작한 거고요. 어떤 물건들은 해외에서 들여온 거예요. 강지아 씨가 산 것과 같은 제품이에요. 온유한 씨가 겨우 찾아낸 거예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강지아 씨가 이 집의 주인이에요. 나는 그냥 온유한 씨가 고용한 연기자일 뿐이에요. 오늘이 내 마지막 출연이 될 거예요.”강지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두 사람, 그런 사이 아니었어요...?”“아니에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온유한 씨의 마음속에 여자는 항상 강지아 씨뿐이에요. 이건 의심할 필요 없어요.”현채영은 프로페셔널하게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조용히 물러났다.집이 아주 넓었지만 강지아는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지아야, 마음에 들어?”온유한이 다시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강지아는 그 손을 뿌리쳤다.“내가 감동할 거라고 생각해? 감동하고 그다음에 같이 잘 살 거라고 생각해? 온유한, 인생이 장난이야?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모든 일이 쉽게 넘어갈 것 같아?”강지아는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자리에 서 있는 온유한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리모컨을 눌렀다. 이내 열려 있던 대문이 서서히 닫혔다.“뭐 하는 거야? 나를 가두려고? 이것도 우리 오빠에게서 배운 거야?”강지아가 비웃으며 말하자 온유한은 다시 문을 열더니 그녀가 입고 있는 웨딩드레스를 가리켰다.“정말 그런 차림으로 강씨 본가에 돌아갈 거야? 그리고 지찬이와 형수님은 아직 호텔에 있어. 지아야, 일단 위층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한 다음 우리 다시 이야기하자.”강지아는 그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오빠와 형수를 만나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기에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 위층이라고 해도 저택의 집과 똑같았기에 강지
“알았어! 그래! 내가 꺼질게! 강지아, 분명 나를 찾아와서 울 날이 있을 거야.”분노에 가득 찬 서원준은 외투를 벗고 흐트러진 머리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초라한 얼굴로 옷을 들고 사라졌다.강지아가 이제 막 숨을 돌리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나를 방어하는 건 내가 혹시라도 서원준에게 해를 끼칠까 봐서야?”온유한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강지아는 더 이상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지아야, 네 마음속에 내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네.”강지아는 냉정한 얼굴로 온유한을 바라보았다.“그렇지 않아?”그러고는 온유한의 손을 뿌리치고 웨딩드레스를 들고 걸어 나갔다.하지만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녀를 안아 들었다.“온유한, 뭐 하는 거야?”온유한은 그녀를 차 안에 앉혔다.차는 다시 출발했고 이번만큼은 온유한도 신호위반을 하지 않고 조용히 운전했다.하지만 차는 명도 빌딩이나 강씨 혹은 온씨 저택으로 향하지 않았다.“어디로 가는 거야?”“우리의 새집으로.”새집.만약 두 사람이 정말로 사랑하는 신혼부부였다면 이 말을 들은 그녀는 분명히 기대에 부풀었을 것이다.하지만 강지아는 그저 눈을 감았다.“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온유한이 아무 말 없이 계속 운전하자 강지아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말해도 소용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차는 마침내 고급 빌라 단지로 들어섰다.강지아는 이곳을 잘 알고 있었다. 온유한이 여기에 수십억 원짜리 집을 현채영에게 사줬다. 당시 이 소식을 들은 화령은 너무 부러워했다.“여기로 와서 뭐 하려고?”“도착하면 알게 될 거야.”차는 한 대형 빌라로 들어섰다.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마당에 현채영이 서 있는 것을 본 강지아는 말문이 막혔다.온유한은 대체 뭘 하려는 걸까?옛 애인과 새 애인을 양손에 끼고 노는 걸 보여주려는 건가?“지아야, 내려.”온유한이 차 문을 열더니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강지아는 그저 황당하다는 생각뿐이었다.“내려가서 뭐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