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씨 가문의 가장으로서, 그 당시 하현이 전성기였음에도 그의 자리를 대신 할 수는 없었다. 지금 하씨 대문호가 권력을 잡고 있다 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가장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 두 가지 점에서 하태규의 능력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소문에 의하면 그는 당시 하씨 가문을 대표해서 군단에서 싸웠는데 과거 격렬했던 여러 대전이 그와 관련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인물은 비록 외부에서는 명성이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하씨 가문 내부에서는 그 비중이 어마어마했다. 특히 그는 군단과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듣기로 지금 군단의 전신이라 불리는 사람과 그는 관계가 얽히고 설켜 있었다. 또 예를 들자면 강남 군단에서 당도대는 당인준의 손에 확실히 장악되어 있었지만, 그는 어떤 사람도 동원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보통 군사인 하태규가 사람을 불러 쓰려고 하면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때, 하태규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감히 이런 짓을 한 거야?”하민석은 고대 복장을 하고 옆쪽에서 걸어 나오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어르신, 알면서 왜 물어 보시는 건가요……?”“지금 남원에서 감히 우리 하씨 가문에 손을 댈 수 있는 사람이 그 사람 말고 누가 또 있겠습니까?”“하지만 그 사람은 항상 제멋대로 날뛰어서 다들 일찍이 익숙해졌으니 맞으라면 맞아야죠……”“지금 가장 번거로운 일은 우리 하씨 가문이 어렵게 일가를 운영해서 자리를 펴기 시작해서 남원 길바닥 힘을 한데 모으려고 하는데……”“그 사람이 이 기회를 빌어서 우리 자리를 끝장 냈으니 이건 우리 하씨 가문과 맞서는 거예요!”하민석의 얼굴은 비할 데 없이 안 좋아졌다. 하지만 그의 속마음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태규는 얼굴빛이 변하더니 잠시 후에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자리를 펴려고 하는 일을 내가 어떻게 모르겠어?”하민석이 웃으며 말했다. “어르신, 최근 몇 년 동안 집안의 잡다한 일은 신경 쓰지 않으시고 오로지 한 가지 일에만
하태규는 하민석을 매우 깊이 바라보다가 잠시 후,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민석아, 내가 잊었네. 요 몇 년 하씨 가문의 큰 일은 네 말한 마디로 결정을 했었는데……”“네가 이미 결정을 내렸으니 나는 당연히 이견이 없지……”“감히 그럴 수 없죠.” 하민석이 미소를 지었다.“저는 잠시 어르신을 대신해서 가장의 권력을 행사할 뿐입니다. 어르신이 언제든지 권력을 거두어들이려고 하시면 저는 순순히 양보해야죠……”하태규가 담담하게 말했다.“이미 권력을 넘겨줬는데, 돌아올 이유가 어디에 있어……”“다만 이번에는 그 사람에게 손을 대야 하니, 최선을 다해보자……”“내 이름으로 글을 몇 장 써서 내 전우들, 부하들, 동료들을 다 모셔 와……”이 말을 듣고 하민석은 가볍게 웃었다. 이 늙은이가 숨겨둔 인맥을 드디어 꺼내 쓰려고 한다. 이번에 비록 하경원을 이용해서 그 사람과 잘 놀지는 못했지만, 이 늙은이의 숨겨둔 인맥을 몰아내기에 충분하다. 이것은 뜻밖의 즐거움이다. 듣자 하니 당시 이 늙은이와 군단에서 관계가 있던 사람들 중에 어떤 이들은 아직도 군단에 남아 있고, 어떤 이들은 관청에 있고, 어떤 이들은 길바닥에서 잘 나가는 건달들도 있고, 어떤 이들은 상업계에서 큰 소리치는 사람들도 있었다……이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이면 하민석은 이 사람들을 자신의 인맥으로 만들 자신이 있었다. 관건은 이 사람들이 함께 하씨 가문 할머니 백세 잔치에 오면 어떤 장면이 연출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하씨 가문은 비록 강남의 하늘이었지만 때로는 밖으로 자신의 권위를 밖으로 드러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시시때때로 길거리의 개와 고양이들이 감히 하씨 가문을 도발한다. 그럼 뭐가 되겠는가?그 사람을 포함해 하씨 가문을 도발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다!……며칠 동안 설은아가 가장 걱정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너무 답답해서 결국 많은 사람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분명하게 물었다. 마침내, 관청에 있던 한 친구가 그녀에게
최근 며칠 동안 재석과 희정은 하현에게 아주 잘 대해 주었다. 죄책감 때문인지, 아니면 마음이 불편해서 인지도 모른다. 은아가 괜찮은 걸 보니 하현도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을 것이다.저녁에 스마트 밸리로 돌아 왔을 때 뜻밖에도 설유아가 와 있었다.“형부, 큰 일 하나 알려 줄게요! 큰 경사예요!”설유아는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하현은 궁금해 하며 말했다.“경사? 너 결혼해?”“칫,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요. 난 남자친구도 없는데, 형부랑 결혼할까요?”설유아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설은아를 바라보았다.“무슨 경사야? 빨리 말해 봐.”하현이 물었다. 설유아는 환한 얼굴로 하현의 팔을 다정하게 감싸 안으며 말했다.“형부 맞춰봐요. 맞추면 내가 뽀뽀해줄게요……”말을 하면서 그녀의 눈동자엔 다른 빛이 번뜩였다.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이 녀석아, 난 관심 없어……”“형부……”설유아는 불만이 많아 참지 못하고 설은아에게 달려가 어리광을 부렸다. “언니, 언니 형부 좀 봐, 이런 직설적인 남자는 여자들의 마음을 조금도 이해를 못해!”설은아는 두 사람이 소란을 피우자 웃으며 말했다. “너, 네 형부 놀리지 마. 내가 그냥 말할게……”“유아가 가장 좋아하는 두 연예인이 우리 남원에 온대, 이 계집애가 벌써 밤새 얘기 했어.”이 말을 듣자 하현을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이게 경사야?”설유아는 굽히지 않고 응석을 부리며 말했다. “그럼요! 내 남신과 여신이 모두 온다는데 이게 경사가 아니면 뭐가 경사겠어요?”“응.”하현은 관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현이 아무렇지 않은 모습을 보자 설유아는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형부, 왜 이렇게 기분이 안 좋아요? 질투하는 거 아니에요?”“내가 무슨 질투를 해? 장난해?”하현이 말했다.“질투할 필요 없어요. 둘 다 하나는 예쁘고 하나는 멋있어요……”“자자, 형부, 사진 좀 보여줄게요……”
이튿날.설은아는 모처럼 한가해졌는데, 또 설유아가 새 옷을 한 번 사겠다고 아우성을 치는 것을 보고 하현을 데리고 자기의 소중한 여동생과 함께 쇼핑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설유아는 키도 크고 자신만의 미적 감각의 있어서 여러 쇼핑몰을 돌아다녔지만 적합한 옷을 찾지 못했다. 비록 하현은 숨이 막힐 만큼 힘들어 했지만 오히려 이런 삶을 좋아했다. 평범하게 쇼핑하고, 물건을 사고, 먹고, 마시고, 이런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은 그가 보기에 싸움꾼처럼 속고 속이지 않고 햇빛으로 가득 차 보였다. 아쉽게도 그는 이런 생활을 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아무리 즐기고 저녁까지 돌아다녀도 하현은 견딜 수가 없었다. “안되겠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면서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난 안되겠어!”“아무래도 밥부터 먹어야 되겠어! 안 그러면 난 안 갈래!”하현이 고집하는 것을 보고 은아와 유아는 먼저 밥을 먹자고 할 수밖에 없었다.“멀지 않은 곳에 가까이 남원 타워가 있으니 회전식당 가서 밥 먹자. 내가 예약할게.”하현은 장소를 찾는 것도 귀찮아졌다. 자기 식당에 가서 밥 한끼 먹으면 그만이었다. 게다가 그곳은 조용한 곳이라 아마 혼자 어디 가서 좀 누워 있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어쨌든 하루 종일 짐을 들고 걸어 다녀서 정말 피곤했다. 남원 타워에 도착하니 생각지도 못하게 평소보다 사람이 10배는 더 많이 있었다.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야광 봉을 손에 든 채 한쪽으로 몰려가 아이돌의 이름을 큰 소리로 외치는 이들도 많았다.“양지수! 사랑해!”“채곤 오빠! 내가 너 닮은 애기 낳아 줄게!”“아아아아아!”온갖 소리가 뒤섞여 시끄러워 듣기만 해도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 하현은 금세 얼굴을 찡그렸지만 설유아는 벌써 기쁜 기색을 드러냈다. “알았다. 내 남신과 여신이 왔나 봐!”“오늘 남원 타워에 오다니?”말을 마치고 설유아는 흥분한 표정으로 하현과 설은아를 데리고 앞으로 비집고 나갔다.그 방향에는 남원 타워 회전
“유아? 유아는 자기 남신, 여신을 만나러 간다고 우리보고 먼저 가서 밥 먹고 있으래요. 이따가 올 거라고.”“그렇게 컸으니 잃어버리진 않을 거야. 알아서 하겠지.”“먼저 올라가서 쉬자.”은아는 하현이 조금 짜증이 난 것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알았어.”하현도 군말 없이 엘리베이터 앞으로 갔다.“당신들 둘, 들어갈 수 없어요!”보안요원이 손으로 막으며 쌀쌀맞게 입을 열었다. 하현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왜요?”“오늘 모든 엘리베이터는 스태프와 연예인 팀만 이용할 수 있어요. 일반인은 이용할 수 없어요!”보안요원은 계속해서 말했다.“파파라치가 끼어들지 않도록 하기 위한 거예요.”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건 남원 타워 회전식당으로 가는 전용 엘리베이터인데 당신들 행사와는 상관없지 않아요?”“누가 관계가 없대요? 이따 대 스타 몇 명이 공연을 마치고 회전식당에 식사를 하러 가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관계자가 아니면 들어갈 수가 없어요!”보안요원이 냉담하게 말했다. 하현은 웃었다. “당신 말은, 이 스타들은 특권이 있고 우리들을 밥 먹을 권리도 없다는 말인가요?”“맞아요!”“스타들의 안전을 위해서 당신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식사하러 갈 수 없어요.”보안요원이 쌀쌀맞게 입을 열었다. 하현은 잠시 생각하더니 그들이 자신의 회전 식당을 전세 낸 것 같았다. 그는 바로 전화를 걸어 취소시키려고 했지만 은아는 오히려 속삭이며 말했다.“하현, 아니면 네가 원하는 대로 밖에 가서 먹자.”“내가 유아를 찾아 올게. 우리 먼저 집에 갔다가 다시 구경하러 오자.”하현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도리를 아는 사람이었고, 가장 중요한 것은 설은아가 이렇게 말한 이상 그는 당연히 거절하지 않았다. 이 생각에 미치자 그와 은아는 돌아서서 가버렸다. 뒤에 있던 두 보안요원은 냉소적으로 웃으며 촌뜨기라고 몇 마디 욕을 한 것 같았지만 하현도 따지기 귀찮았다.
“무슨 말이에요?”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 “오늘 온 사람들은 다 대스타야. 무슨 실수라도 하면 네가 혼자 감당 할 수 있겠어?”한 보안원이 물었다. 하현은 냉담하게 말했다.“내 기억이 맞다면, 여기는 공공 장손데? 내가 걸어가면 안 된다고? 그런 법이 어디 있어?”“평소에는 괜찮지만 오늘은 안 돼!”보안대장이 싸늘한 목소리고 말했다.“당신들은 공공자원을 임의로 점용한 거네? 공공장소에서도 사람의 통행을 금지하다니! 힘이 대단하네!”“그래, 우리 힘은 대단하지, 우리 뒤에 있는 사람들은 다 대스타야! 그들이 아무렇지 않게 몇 분 동안 버는 돈은 네가 평생 벌 수 없는 돈이야!”“이게 특권이지!”보안원은 위협하며 말했다.하현은 비웃었다.“그럼 내가 기어코 지나가 볼까?”“여기 경계선이 있으니 한 번 해봐!”곧 십여 명의 보안원들이 도착했고, 모두 삼십여 명이 함께 하현을 에워쌌다. 이 장면을 지켜보며 하현은 차갑게 말했다.“자, 그럼 내가 한 번 해볼게.”곧 그는 전화를 걸어 담담하게 말했다.“슬기, 남원 타워 책임자한테 3분 안에 나를 만나러 오라고 해. 오늘 남원 타워 쇼핑몰 운영 중단시켜.”하현이 전화하는 소리를 듣고 보안원들은 모두 비웃었다. 남원 타워 책임자한테 오라고 한다고?쇼핑몰 운영 중단까지?이 녀석은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온몸에 걸친 것을 다 합쳐도 2만원도 안 될 거 같은데, 여기서 뻐기기는. 정말 말은 자기 얼굴이 긴 줄을 모르는 구나.남원 타워 책임자에게 굴러오라고 하지 않았나?그럼 우리가 3분만 기다려 보지 뭐.말소리가 커서 곧 연예인 팀 사람들이 알아차렸다.몇몇 연예인들의 매니저가 와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특히 양지수의 매니저 심지애는 그쪽 세계에서 무게감이 있었다. 듣기로 이번 행사는 원래 남원 타워 쇼핑몰에서 할 수 없었던 행사였는데 특별히 남원 타워 고위직 임원들에게 연락을 해서 이 일을 주선했다고 한다.
하현은 원래 표정이 멀쩡했었는데 이 말을 듣자 참지 못하고 냉랭하게 말했다.“나 엘리베이터 타고 가서 밥 먹을 거야. 나 못 올라가게 막지 마.”“좋아, 그럼 안 막을게.”“지금 내가 나가려고 하는데 당신들이 내가 가는 길을 또 막으면 당신들은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내가 여기서 날아가라는 거야?”하현의 말을 듣고 심지애는 차갑게 말했다.“당신이 어떻게 나가든지 그건 내 알 바 아니야. 어쨌든 너 지금 당장 꺼져!”하현이 여기서 허풍 떠는 소리를 듣고 심지애와 사람들은 모두 웃었다.이놈은 저놈들이 꺼지기 바라는 건가?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야?보안 요원들이 하현을 쫓아내려고 할 때 멀지 않은 곳에서 몇 몇의 스타들이 다가왔고, 팬들은 환호하기 시작했다. 심지애가 빠르게 건너갔다.한 남자와 한 여자 두 스타는 비할 데 없이 눈부시게 빛났다. 심지어 많은 스타들 중에서도 그들은 더 눈에 띄는 편이었다. 남자는 검은 티셔츠에 멜빵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희고 말쑥한 키에 겉으로는 유순해 보였지만 속은 시커먼 것이 분명했다. 그는 농구공을 손에 들고 이리저리 던지고 있었다. 여자는 심플한 화이트 스커트를 입고 있었는데, 그녀의 깜찍한 몸매가 돋보이는 데다 예쁜 얼굴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두 사람은 바로 현재 인기 절정의 스타 양지수와 채곤이었다. 채곤은 지금 속삭이며 말했다.“지애 누나, 무슨 일이에요?”“이 사람이 기어코 달려들더니 우리가 막아서니까 우리보고 꺼지라잖아.”심지애는 냉소적으로 말했다.양지수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지애언니, 이건 작은 일일 뿐이에요. 아마 급한 일이 있어서 가려고 하는 걸지도 모르잖아요. 그냥 보내주세요.”“안돼, 여기 방금 깨끗하게 청소해놨어. 나 이따가 농구 시범을 보여줘야 하는데, 모래 한 알로 내 플레이에 지장을 주면 어떡해?”채곤은 갑자기 입을 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보안원, 당신들 여기서 뭘 더 기다려요? 빨리
지금 이 순간.채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신지애는 멍해졌다.양지수 조차도 약간 어리둥절해 했다. 보안 요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다들 하나 같이 얼이 빠져있었다. 왜냐하면 하현에게 공손하고 깍듯하게 인사한 중년의 남자는 다름 아닌, 바로 남원 타워의 사장이었기 때문이다. 남원 타워의 주인과 다름없는 사장이 이 남자 앞에서 이렇게 공손하게 굴다니.관건은 그의 뒤편에 서 있던 사람이 봤을 때, 그의 등은 식은 땀으로 옷을 다 적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하현이 방금 남원 책임자가 3분안에 올 거라고 말했는데 정말 3분도 안돼서 굴러 떨어졌다. 방금 전까지 심지애가 하현 앞에서 거만하게 굴었었다면, 지금은 그들이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들은 이 테두리 안에서 지내왔기 때문에 돈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 일반 사람들 앞에서는 그들이 특권을 가지고 있었고 거만하게 굴 수 있었다. 하지만 부자들 앞에서 그들은 정말 광대일 뿐이었다. 멀리 있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남원 타워의 이 고위 임원들 앞에서도 그들은 깍듯하게 대해야 했다. 그럼 남원 타워의 고위 임원들도 깍듯하게 대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도대체 무슨 신분이란 말인가?지금 이 순간, 채곤과 사람들은 숨이 막힐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부자들 앞에서 그들이 아무리 명성이 있다 한 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 사람들은 전부 스폰서들이다! “1분 늦었네……”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 남원 타워 사장은 이 말을 듣고 하마터면 무릎을 꿇을 뻔 했다. 지금 떨면서 말했다.“회…… 회장님, 늦었습니다. 하지만 보셨다시피 오늘 여기 사람이 너무 많아서……”“제가 도저히 밀고 올 수가 없었습니다……” 이 사장이 이렇게 입을 열자 다른 고위 임원들도 하나같이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남원 타워도 천일 그룹의 산하 기업 중 하나인데, 만약 방금 전까지 이 임원들이 이 젊은이가 도대체 어떤 신분인지를
최희정이 하현에게 눈길을 돌렸고 그녀의 눈 밑이 두툼하게 응어리졌다.그리고 그녀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홀 한가운데로 가서 당당하게 의자에 앉은 뒤 이영산을 가리켰다.“영산아, 그림 가져와 보렴.”“아버지와 함께 잘 살펴볼게.”두 사람은 모두 대가족 출신이라 이 방면에 대해 피상적이긴 했지만 어느 정도 안목이 있었다.특히 설재석은 요즘 강남에서 소장품을 열심히 연구하며 더 많은 지식을 쌓은 터였다.그렇지 않았다면 이영산이 누군가의 비위를 맞춰 가며 ‘맹호하산도’를 구해 왔을 리가 없다.이영산은 황급히 하현을 보고는 얼른 그의 손에 든 ‘맹호하산도’를 설재석에게 공손히 건네주었다.설재석은 짐짓 돋보기를 꺼내 신중하게 쳐다보았다.몇 분 뒤 설재석은 최희정의 귀에 대고 귓속말을 했다.최희정은 귓속말을 듣고 이영산을 힐끔 쳐다보았다.그녀의 눈빛에 살짝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이영산은 순간 소름이 확 끼쳤다.그녀의 눈빛이 너무나 무서웠던 것이다.‘맹호하산도’가 위작임을 간파한 것임이 분명하다고 그는 짐작했다.설은아와 설유아도 싸늘한 표정으로 이영산을 바라보고 있었다.감히 양아들인 주제에 가짜를 가지고 설 씨 집안에 와서 큰소리를 치다니 죽어야 마땅했다!그러나 최희정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얼굴이었다.그녀는 잠시 이영산을 쳐다보다가 하현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하현, 자네 그 입 좀 작작 놀리지 그래?”“이 그림은 분명 진짜야! 당인의 진품이 맞아!”“적어도 억은 넘을 거야!”“안목도 천박한 놈이 어쩌다 운이 좋아서 내 딸한테 붙어먹더니! 그 부귀영화 좀 누린다고 골동품과 서화까지 이러쿵저러쿵하는 거야? 자네가 그럴 자격이 된다고 생각해?”“더욱 웃긴 것은 자네가 감히 내 소중한 아들을 무시하고 모욕했다는 거야. 얼른 무릎 꿇고 그에게 사과해!”“그렇지 않으면 이 집에 발붙일 생각도 하지 마!”하현의 눈빛에 차가운 파도가 일렁거렸다.그는 이 서화에 분명
정말로 능력이 있는 사람은 데릴사위가 될 수 없다.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 사람들이 모두 이영산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당연히 이영산의 편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하현, 아무것도 모르면 입 다물어! 헛소리하지 마!”“맞아! 자기가 뭔지도 모르는 놈이 이영산을 모독하다니!”“무슨 전문가인 척을 해?! 당신이 가짜라면 그게 가짜가 되는 거야?”“학벌도 없고 지식도 없으면서 감히 서화를 좀 아는 척 허세를 부려?”“이영산은 우리 금정 수장계에서는 소문난 존재야. 그러니 그가 진짜라고 했으면 틀림없는 진짜야!”친척들이 동요하며 하현에 대한 거침없는 비난과 비아냥을 이어가자 설은아는 그 말들이 귀에 거슬렸는지 점점 안색이 일그러져 갔다.설유아도 얼굴이 새까맣게 타들어갔다.이영산이 이렇게까지 뻔뻔하게 나올 줄 몰랐다.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이 물건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전문가를 찾아서 직접 감별하게 하면 되겠죠.”“감정하는 비용은 제가 내겠어요!”조금도 흔들림이 없는 하현의 말에 이영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하현이 지나치게 담담하다는 것도 걸렸지만 그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보다 큰 이유는 이 그림이 오천만 원에 산 것이 아니라 몇백만 원에 인터넷으로 산 물건이기 때문이었다.만약 그가 돈이 있었다면 설 씨 가문의 양아들이 되려고 온갖 방법을 다 쓸 필요가 없다.가짜 그림을 판 판매자는 이 물건이 가짜인지 진짜인지 누구도 감별할 수 없을 정도라고 호언장담했다.그러나 이영산은 그를 믿지 않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최희정과 설재석의 부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요즘 너무 많은 돈을 쓴 터라 진짜 그림을 살 돈이 없었다.그런데 최희정과 설재석이 말한 그 데릴사위가 이 사실을 까발린다고?정말로 그럴 수 있단 말인가?“이게 뭐라고 그렇게들 싸워?”“여기가 청과시장이야?”바로 그때 입구에서 약간의 위엄 서린 목소리가 들려왔다.“우리가 대가족이라는 걸 몰라? 버릇이 이렇게나 없어서야 되
”난 부모님의 친아들이 아니라 양아들에 불과해.”“하지만 나도 잘 알고 있어. 우린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만족스럽게 해 드릴 방법을 궁리해야 한다는 걸.”“그들이 조금이라도 웃을 수 있다며 전 재산을 다 부어서라도 기꺼이 웃게 만들어야 해!”“하지만 당신들은 친자식이라는 이유로 대충대충 해도 마음만 전하면 된다?”“그래? 결국 난 남이라는 거지?”“부모님께 아무리 정성을 쏟는다고 해도 당신들의 흙 묻은 무보다도 못하다는 거지?”이영산은 억울한 듯 눈썹을 일그러뜨렸다.이윽고 그는 어지러운 듯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옆에서 장리나가 그를 부축하며 입을 열었다.“그러게 내가 당신한테 몇 번이나 말했어?!”“당신이 아무리 친자식처럼 효도한다고 해도 결국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혈육의 정과는 절대 비교할 수 없을 거라고 했잖아!”이 말을 들은 주변 사람들은 한숨을 내쉬며 안타까운 눈빛으로 이영산을 바라보았다.“맞아. 요새 이영산처럼 저렇게 효도하는 아들도 드물어.”“최희정과 설재석이 늘그막에 이렇게 효도하는 양아들을 만난 것은 크나큰 행운이야.”“무엇보다 이영산이 친딸보다 더 효도한다는 게 관건이야.”“오천만 원짜리 이 서화를 준비했다는 건 부모님을 위한 무한한 마음을 대변하는 거지.”“시집간 딸은 출가외인이라고 하는데 출가도 안 한 딸이 양아들 뒤꿈치도 못 따라간다니!”“내가 보기엔 최 여사 부부가 이영산한테 재산을 물려줘야 한다고 봐!”“저런 배은망덕한 것들한텐 절대 한 푼도 줘선 안 돼!”“당신들 정말...”사람들의 말을 들은 설유아는 화가 나서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설은아의 표정도 차갑게 식었다.이 손님들이 이미 이영산 부부에게 매수되었다는 것을 그녀가 눈치채지 못할 리가 있겠는가?이영산은 그녀의 미색을 탐낼 뿐만 아니라 정 씨 가문 아홉 번째 방주의 발언권이 설재석에게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일을 꾸민 것이다.“설은아, 설유아. 그렇게 화내지 마.”“이 흙 묻은 무는
”하하하, 선물 가져왔어요?”이영산은 씩 웃으며 하현이 들고 있는 비닐봉지에 시선을 던졌다.“설마 이거 말하는 건 아니겠지?”“금정에 와서 부모님을 만나 뵙고 재결합하려고 하는데 비닐봉지라니? 부끄럽지도 않아?”설은아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이영산은 이미 하현이 들고 있던 검은 비닐봉지를 빼앗아 자기 마음대로 열어 보았다.싹이 난 무같이 생긴 것이 눈에 들어왔다.“무? 조금 전 어디 밭에서 뽑아 왔어?”“포장도 따로 없이 검은 비닐봉지에?!”“이거 천 원은 하나?”“어쩐지 부모님이 당신을 두고 쓸모없다, 쓸모없다 하시더라니!”“재결합 선물에 이런 걸 선물이라고?”“천 원도 안 되는 것을! 염치가 없어도 원!”“썩 꺼져!”“우리 설 씨 가문에서 당신을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최희정과 설재석이 금정에 와서 알게 된 사람들은 이영산의 말을 듣고 하나같이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그들의 시선에는 혐오감과 경멸함이 가득 들어 있었고 하현의 존재가 그들의 모임의 격을 떨어뜨려 놓았다고 느꼈다.하현은 이 사람들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그저 그 사람들 중 아무도 이 백두산 산삼을 알아보는 이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하현이 아무런 동요도 없는 모습을 보이자 사람들은 데릴사위가 창피한 줄도 모른다며 비아냥거렸다.“정말 쓸모없는 인간이야!”이영산은 하현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자, 자, 자. 이번에 부모님을 위해 내가 준비한 선물을 좀 보시죠. 이것은 명나라 당인의 서화입니다.”이영산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서화 한 권을 꺼내 테이블 위에 펼쳐놓고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미소를 지었다.“맹호하산도!”“당나라 말기 출세작이죠!”“이 물건을 구하기 위해 내가 얼마나 많은 수집가들과 주먹다짐을 했는지를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해요. 결국 거금 오천만 원을 주고 손에 넣었죠!”“아마 진정한 가치는 그 열 배도 넘을 거예요!”이영산은 자신이
말을 하는 동안 하현은 트렁크를 열고 짐을 챙기려 했다.그러자 검은 비닐봉지 같은 것이 보였고 그 안에는 흙 묻은 산삼 같은 것이 흐릿하게 보였다.“백두산 산삼?”하현은 왕인걸이 자신을 위해 이렇게까지 준비했을 줄은 몰랐다.백두산 산삼이라니?!이것은 진정한 강장제이다.일반 중장년층이 복용한다면 몸은 튼튼하게 해 주고 힘을 북돋아 준다.이번에 혼인증을 다시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하현은 최희정과 설재석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그들의 체면을 세워 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스쳤고 그는 지체 없이 비닐봉지를 손에 덥석 들었다.그때 소식을 접한 설은아가 건물 입구에서 달려 나왔다.하현의 손에 들린 비닐봉지를 보고 그녀는 살짝 어리둥절해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하현, 이건...”“오랜만에 부모님을 뵙게 되었는데 성의 표시는 해야지.”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 뿐 긴 말은 하지 않았다.설유아는 언니가 나오자 혀를 쏙 내밀며 쏜살같이 달아났다.하현의 말을 들은 설은아는 살짝 놀란 듯 어리둥절해했다.하현이 자신의 부모와 관계를 잘 풀어가기 위해 이런 선물을 준비했을 줄은 몰랐다.하지만 그녀는 살짝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지금 새로 들인 양아들 내외가 마침 와 있어.”“그들이 말을 예쁘게 하지 않더라도 좀 참아.”말을 마친 뒤 설은아는 자신의 차에서도 선물 상자를 꺼낸 뒤 하현을 데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집안에는 이미 수십 명의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모두 금정의 부유한 사람인 것 같았다.최희정과 설재석 두 사람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하현이 모르는 남녀가 장내를 이끌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나이는 서른도 안 되어 보였고 남자는 무던한 표정에 여자는 서늘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아이고, 은아. 왜 안 보이나 했어?”“오늘은 아버지가 한턱내는 날인데 이집의 어엿한 반쪽 주인인 당신이 안 보여서 걱정했잖아!”“당신은 아버지 친딸이니까 이런 일에 좀 더 신경을 써야지,
원래 하현은 이 일에 자꾸 엮이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노인 혼자서는 절대 그 고통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결국 잠시 생각에 빠진 하현은 보헤미안 옷차림의 여자에게 말했다.“아가씨, 할아버지 몸에 뭔가 더러운 것이 있어요.”“당신들이 교통사고를 당한 것은 아마 그것 때문일 겁니다.”“그러니 당신들이 시간이 된다면...”“더러운 거라뇨?”하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보헤미안 옷차림의 여자는 분노를 터뜨렸다.“당신은 일억 때문에 차량에 달려들어 우리 할아버지를 죽이려고 했어요!”“자기변명을 하려고 이제는 뭐라구요? 우리 할아버지한테 더러운 게 있다구요?”“그렇게 허튼소리 하다가는 제 명에 죽지 못할 거예요!”자신의 할아버지는 평생 덕을 쌓고 선을 행했고 자주 정진하고 염불을 외던 분이셨다.그처럼 선량한 사람에게 어떻게 더러운 기운이 붙을 수가 있던 말인가?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난 보헤미안 옷차림의 여자는 하현이 있는 곳을 향해 손바닥을 휘둘렀다.“탁!”그러나 그녀의 손바닥은 하현의 얼굴에 닿지 못했다.언제 하현의 곁에 왔는지 그새 설유아가 들어와 여자의 손을 덥석 잡았다.“아가씨, 우리 형부는 좋은 마음으로 한 거예요!”“아무도 나서서 도와주려 하지 않았는데 우리 형부가 도와줬으면 고맙다고 해야지 이게 무슨 짓이에요?”“정말로 우리 형부가 한 행동이 당신 할아버지한테 해가 되었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하세요!”“형사가 우리 책임이라고 하면 우리가 책임지면 되죠!”“하지만 사람의 호의를 몰라보고 함부로 그런 말을 하는 건 못 참아요!”설유아는 날카로운 눈초리로 여자를 바라보았다.“게다가 당신이 뭐라도 된다고 생각해요?”“감히 내 형부한테 손찌검을 해?”본 적 없던 설유아의 패기에 하현은 눈이 휘둥그레졌다.자신의 눈에는 그저 어린 소녀처럼 보였던 설유아가 이렇게까지 성장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보헤미안 옷차림의 여자도 설유아의 기세에 놀랐는지 살짝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만약 이 상황에서 사람을 구해내지 않으면 양심에 걸려서 참을 수가 없을 것 같아.”하현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고 온화한 미소로 설유아를 안심시켰다.하현의 말을 들은 설유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다가 결국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자기가 형부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성격 때문이 아니었던가?이런 생각이 들자 설유아는 그의 손을 계속 잡고 있을 수 없었다.결국 설유아가 그의 손을 놓자 그가 한 걸음 내디디며 부리나케 벤츠 차량으로 뛰어들었다.“저기, 우리 할아버지 구해 주시려고요?”보헤미안 옷차림의 여자는 다소 여윈 하현의 몸을 보고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사람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였다.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선 죽은 사람의 손이라도 빌려야 할 판이었다.그녀에겐 애초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할아버지를 구해 주신다면 일억을 드릴게요. 제발 우리 할아버지 좀 구해 주세요!”하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벤츠로 발걸음을 재촉했다.엄청난 디젤 냄새가 코를 찔렀고 벤츠 차량은 이미 완전히 변형되었다.노인의 하반신은 안쪽에 꽉 끼어 있었고 고통으로 인해 의식을 잃었으며 내장의 압박이 심한 듯했다.하현은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지 않고 왼손으로 천천히 벤츠 차량의 철골을 받친 후 오른손으로 노인의 옷을 잡아당겨 그를 직접 끌어내려고 했다.“잠깐만요! 지금 뭐 하는 거예요?”하현이 강제로 사람을 끌어내리려고 하자 보헤미안 옷차림의 여자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사람을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 아는 거예요? 지금 우리 할아버지를 죽일 셈이에요?”“이렇게 억지로 할아버지를 빼내려고 하다가 대동맥이라도 다처서 피를 흘리게 되면 어떻게 해요?”“사람을 구하려는 거예요? 아니면 죽이려는 거예요?”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삐걱’ 하는 소리와 함께 벤츠 차량의 골격이 다시금 흔들리며 아래쪽으로 천천히 내려앉았다.왈칵!의식을 잃은 노인은 거대한 철골 덩어리에 몸이 눌려 본능적으로 피를 토해내었다.하현은
여자는 주위를 둘러보며 소리쳤다.“여기 누구 좀 도와주시겠어요?”“우리 할아버지 좀 살려주세요!”노인의 안색은 더욱 나빠졌고 벤츠의 구겨진 철골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주변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지켜볼 뿐이었다.트럭이 폭발하기도 전에 철골이 누르는 압력을 구겨진 벤츠가 이기지 못할 것 같았다.그러면 노인은 구조되기도 전에 압사할 것이다.그때가 되면 119가 와도 아무 소용이 없다.울먹이는 여자를 보고 주변에서 동영상을 촬영하던 사람들도 어느새 카메라를 끈 채 불안하고 허망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몇 명은 앞으로 나서려다 끝내 망설이며 발걸음을 움직이지 못했다.그들도 모두 잘 안다. 부자인 것 같은 이 노인을 구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를.하지만 상황이 너무나 위급했다.만약 사람을 구하지 못하고 같이 압사된다면 그야말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많은, 아니 모두를 잃는 것이었다.삐걱삐걱!바로 그때 벤츠의 철골이 다시 거친 소리를 내며 무너질 듯 주저앉으려고 했다.의식을 잃은 노인은 고통스럽게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고 입가에는 피가 주르르 흘러내렸다.이를 본 여자는 더욱 일그러진 얼굴로 안타까워했다.그녀는 주위에 있는 건장한 남자들을 보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저기요! 제발 우리 할아버지 좀 살려주세요!”“도와주신다면 천만 원씩 드릴게요!”“아니, 일인당 일억씩 드릴게요!”보헤미안 옷차림을 한 여자의 말에 사람들은 이들이 정말 부자라는 생각에 더욱 주저하는 내색을 비췄다.하지만 그럴수록 아무도 감히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감히 나섰다가 사람을 살리지 못하면 괜히 역정만 듣게 되고 안 좋은 일이 엮이기만 할 뿐 아닌가?만약 이 사건에 명문가들의 원한이 뒤섞여 있다면 그야말로 괜히 나섰다가 된통 당하게 되는 것이다!이 광경을 보고 하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앞으로 나서려고 했다.설유아는 재빨리 그를 끌어당겼다.“형부, 왜 그러세요?”하현은 낮은 목소리로 말
하현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설유아, 날 믿어. 이 차도, 그리고 이 목걸이도 어쩌다 그냥 들어온 것뿐이야.”“다른 사람이 나한테 사과의 의미로 준 거야.”“알았어요, 알았다구요. 형부, 설명하지 않아도 돼요. 형부가 언니를 위해 이런 걸 준비했다고 해서 화낼 사람 아무도 없어요.”“이제 곧 결혼기념일이잖아요.”“큰 선물을 준비해서 이참에 당연히 재결합까지 가야죠!”이 말을 한 순간 갑자기 설유아의 마음 저 깊은 곳이 아려왔다.그리고는 목에 걸려 있던 까르띠에 목걸이를 풀었고 아쉬운 표정을 뒤로하며 선물 상자 속에 넣었다.하현은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입을 열었다.“뭐해?”“뭘 하긴요?”설유아는 콧방귀를 뀌며 입을 열었다.“언니 물건이니까 돌려줘야죠. 그런데 형부, 가끔은 좀 빌려 쓸 수도 있어요.”“나도 이건 탐이 나지만 언니 마음을 상하게 할 순 없어요.”말을 하면서 설유아는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이 물건이 정말 하현이 자신에게 주는 것이기를 바랐다.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여주인공이 아니라 단지 여주인공 뒤에 있는 어린 소녀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그러니 유리 구두는 반드시 여주인공에게 돌려줘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불경한 죄를 얻게 된다.하현은 이 모습을 보며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처제한테 주는 거라고 말했잖아. 정말로 처제한테 주는 거야.”“어서 집어넣어. 언니도 절대 뭐라고 하지 않을 거야.”“결혼기념일엔 내가 따로 준비하면 돼!”설유아는 하현의 말이 전혀 믿기지가 않았다.까르띠에 목걸이에 미련이 남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녀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단호하게 선물 상자를 닫았다.“오늘 형부가 나 때문에 진홍헌의 얼굴을 때린 일은 비밀로 할게요.”“아마 언니가 알면 깜짝 놀랄 거예요!”“언니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 주세요!”설유아는 주먹을 쥐며 위협적인 자세로 말했다.하현은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난 절대 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