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영은 원래부터 긴장하고 있었다. 온지유에게 밀려날 것 같았지만 두 사람의 말을 들으니 다시 자신이 생겼다.온지유는 여씨 가문 안주인의 자리에 앉고 있긴 했지만 아무도 몰랐다. 그러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게다가 나중에 이혼할 가능성이 아주 컸다.그녀는 두 사람을 보더니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 말했다.“두 분 성급하게 들어가지 마세요. 여진 그룹은 들어가기 쉽지 않거든요. 아마 들어가 보기도 전에 문 앞에서 쫓겨날 거예요.”주소영이 웃으며 말했다.“그럴 리가요. 난 여이현의 숙모라고요. 누가 감히 날 막아요!”장수희는 숙모라는 명분으로 들어가 심지어 대접받기를 바라고 있었다.그러자 주소영이 말했다.“온지유 씨가 두 분을 경계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요. 온지유 씨는 여이현 씨의 비서예요. 두 분의 출입 소식은 온지유 씨가 제일 먼저 듣게 된다고요. 그런데 정말로 쫓겨나지 않을 거로 생각하세요?”장수희는 그제야 생각을 하며 다소 불쾌한 듯 말했다.“듣고 보니 그렇네요. 병원에 있을 때부터 따박따박 말대꾸했으니까 분명 우리를 쫓아내려고 하겠네요!”“조카라는 년이 어른을 공경할 줄 하나도 모르고 대체 학교에서 뭘 배운 건지, 쯧!”온채린은 그녀의 말에 불안한 듯 말했다.“그럼 어떻게 해요?”장수희는 높게 솟은 건물을 보았다. 건물 제일 위쪽엔 여진 그룹의 로고가 걸려 있었다.이 건물 전체가 여씨 가문의 소유였으니 분명 돈은 차고 넘쳐 흐를 것이었다.그녀는 자신의 가족 중 부잣집으로 시집갈 사람이 있으리라곤 전혀 상상조차 못 해봤다.“제게 방법이 있어요! 그런데 두 분 동의하실지 모르겠네요.”주소영이 말랬다.장수희는 고개를 돌려 주소영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아이고 아가씨, 참 좋은 사람이네요. 어떤 방법이 있는데요?”반 시간 뒤.여진 그룹 문 앞에서는 소란이 일어났다.장수희는 로비 직원에게 온지유를 찾으러 왔다고 했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다. 분명 그들은 온지유의 친척이었지만 온지유는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로비 직원은 온지유가 아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모두에게나 친절하고 욕심도 없는 사람이었고 장수희가 말한 것과 다른 사람이었다.장수희가 계속 난동을 부리니 오히려 장수희가 무례하고 막무가내인 사람으로 느껴졌다.그녀는 보안 요원을 불러 내쫓고 싶었다.하지만 마침 기자 스티커를 붙인 차가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게다가 문 앞에는 환경미화원들이 있었다.기자들은 전부 사회부 기자였고 그들을 취채하러 온 것이니 이런 난동을 그들에게 보일 수 없어 그녀는 장수희에게도 손을 대지 못했다.그때 장수희도 로비 직원이 무엇을 신경 쓰는지 눈치채곤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기자가 있었다.이것은 그녀에게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장수희는 더는 난동을 부리지 않았고 밖으로 나갔다.“빨리 막아요!”로비 직원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얼른 보안 요원들에게 장수희를 막으라고 소리를 쳤다.“지금 뭐 하는 거예요! 사람을 이렇게 막 붙잡아도 되는 거예요?!”장수희는 보안 요원들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자 소리를 쳤다.“온지유가 나 붙잡으라고, 내 입 막으라고 시킨 거죠! 그렇죠!”온채린은 장수희가 곧 붙잡힐 것 같아지자 소리를 질렀다.“살려주세요! 여기 무고한 사람을 때리려고 해요! 사람 때려요!”밖에 있던 기자들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회사 안을 보았다.여진 그룹 안에서 일어난 난동에 중요 뉴스감을 잡은 듯 기자들은 바로 달려 들어왔다.그런 기자들을 입구 보안 요원들이 막고 있었지만, 그들은 생방송으로 찍고 있었다.그들은 마침 환경미화원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던 차였다.온채린은 그런 기자들을 보곤 바로 달려가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여러분들 보세요! 저희는 이 회사 비서인 온지유의 친척이에요. 온지유에 대해 밝힐 것이 있습니다...”그녀의 말에 기자들은 눈을 반짝였다.온지유라는 비서에 대해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온지유는 여이현의 수행 비서였다. 게다가 금방 환경미화원의 입에서 온지유의 좋은 평가를 듣게 되었으니 이것은 여진 그룹의 스캔
“온 비서님, 큰일 났어요!”온지유는 마침 화장실에서 매무새를 정리하고 나오던 참이었고 다급하게 달려오는 이윤정의 모습에 물었다.“무슨 일이에요? 왜 그렇게 다급하게 달려오고 있었는데요.”“온 비서님의 일이에요!”이윤정은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저요?”온지유는 이해가 되지 않아 담담하게 물었다.“저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는데요.”“온 비서님 숙모랑 사촌 여동생이라는 분이 찾아왔어요.”그녀의 말에 온지유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두 사람의 이름만 들어도 엄청 골치 아픈 일이 생겼으리라 생각했다.이윤정은 핸드폰을 꺼내 생방송을 보여주었다.그녀의 숙모와 사촌 동생은 그녀의 가족에게서 돈을 뜯어내지 못하자 기자들 앞에서 불쌍한 사람인 척 이미지를 만들고 있었다.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었다.심지어 그들은 피땀을 흘려 번 돈으로 그녀의 대학 등록금까지 내주었다고 말했다.겨우 대기업에 입사했는데 조금 살만하니 키워준 은혜도 모르고 삼촌과 숙모를 모르는 사람 취급한다고, 자신들에게 일전 한 푼 준 적이 없다고, 그녀의 대학 등록금을 부담한 탓에 집안의 재산을 전부 탕진해 온채린이 좋은 학교에 갈 수 없었다고 했다.지금은 집안에 큰일이 생겼지만 온지유는 그럼에도 그들을 도와주지 않았고 가만히 삼촌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무정하고 냉정하며 배은망덕한 이미지를 그녀에게 만들어주고 있었다.실시간으로 방송하고 있었던 터라 많은 댓글이 달렸다.[대박,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이런 일이 있다니. 정말 인간도 아니네!][이 두 사람도 참 불쌍하네요. 옷차림도 소박한 것을 보아 평소에 돈을 아주 아끼며 살았겠네요. 제가 아까 온지유라는 사람을 인터넷에 검색해 보았는데 비싼 것만 입고 있더라고요. 심지어 명품 가방까지 들고 있고 말이에요. 참, 이번에 여진 그룹 자선 활동에 한 벌에 몇억 하는 옷을 입고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그 여자랑 이 두 사람을 비교해보니 참 하늘과 땅 차이네요!][아, 온지유요? 저 알아요. 저랑 같은 학교 다녔는데
온지유는 로비로 내려가자마자 문 앞에 있는 수많은 기자들을 발견하게 되었다.앞으로 들이민 카메라를 향해 장수희는 울면서 자신이 당한 일을 말하고 있었다.온채린의 심지어 눈물에 부어버린 눈으로 카메라를 보며 말하고 있었다.“여러분들의 관심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이 있으니 저희는 곧 억울함을 풀 수 있겠네요.”“어떤 억울함?”온지유가 싸늘한 얼굴로 나오며 말했다. 그녀는 두 사람처럼 연기하는 것을 싫어했기에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연기를 한다고 내가 두려움을 느끼고 두 사람이 원하는 대로 해줄 거로 생각했어요?”그들은 모두 온지유에게 시선을 돌렸다. 온지유는 그들이 다가와도 전혀 두려운 기색이 없었다.그러자 장수희는 더욱 히스테릭하게 울면서 온지유를 향해 손가락질도 했다.“온지유, 이 양심 없는 것. 난 네 숙모야. 네 숙모한테 어떻게 매정할 수가 있는 거니! 네가 어릴 때부터 내가 그렇게 예뻐해 주고 그렇게 잘해주었는데 어떻게 우리한테 그럴 수가 있는 거니!”“언니, 양심에 찔려서 나온 거죠? 지금이라도 저랑 우리 엄마를 도와준다면 전처럼 다시 평화롭게 지낼 수 있을 거예요.”온채린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기자는 온지유를 보더니 마이크를 건네며 물었다.“온지유 씨, 이 두 분이 사촌 여동생과 숙모라고 주장하시는데 사실인가요?”온지유는 카메라를 보며 담담하게 답했다.“네.”그러자 댓글창이 또 한 번 난리가 났다.[세상에, 전부 사실인가 보네. 그런데도 이렇게 뻔뻔하게 대답하다니, 정말이지 배은망덕한 사람이었어!][인간은 은혜를 잊어서는 안 돼요. 아무리 지금 잘나간다고 해도 가족을 버리다니요. 심지어 대학교도 무사히 졸업할 수 있게 도와준 숙모인데 대학교에서 헛공부를 했나 보네요.][목소리를 듣기만 해도 짜증이 나네요. 저도 삼촌이랑 숙모 품에서 자랐는데 너무 공감되네요. 절대 키워준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되죠!][우리 가서 신고합시다. 저 여자 여진에서 해고당해야 마땅하다고요! 우리가
온채린이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언니를 위해서 집안의 돈을 다 쓴 탓에 제 대학 등록금도 부모님이 여기저기서 빌린 돈으로 내고 있다고요.”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그들의 거짓말은 점점 더 켜졌다. 더는 주위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았다.“배은망덕한 년!”“뻔뻔한 더러운 년!”이때 누군가가 갑자기 온지유를 향해 달걀을 던졌고 그녀의 앞에 툭 떨어졌다.온지유는 고개를 들어 보았다. 그쪽에는 이미 몇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있었고 손에는 달걀과 밀가루를 들고 있었다. 그들은 전부 온지유를 향해 던졌다.온지유는 급히 손으로 막았다. 보안 요원도 얼른 그들에게 다가가 막아섰다.“뭘 막아요! 애초에 뻔뻔하고 사악한 사람인데! 남의 가정을 파탄 낸 것도 모자라 비서인 척 누군가의 내연녀 짓이나 하고 있고 말이에요!”그녀를 향해 달걀을 던진 사람이 말했다.그녀의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었다. 어딘가 준비된 사람 같기도 했다.장수희가 찾아오고 사람들이 달걀을 던진다는 건 꼭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이런 상황을 꾸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장수희를 보았다. 기세등등한 것이 그녀가 굴복하는 모습이 보고 싶은 듯했고 여론의 힘을 이기지 못해 얌전히 자신들에게 돈을 주기를 바란 것 같았다.기자는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물었다.“온지유 씨, 저분들의 말이 사실인가요? 계속 누군가의 내연녀로 살아오면서 남의 가정을 파탄을 냈나요?”온지유는 화가 치밀었다. 기자들이면서 진실을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기삿거리를 위해 막무가내로 취채했으니 말이다.하지만 그녀는 이성을 잃어서는 안 되었다. 만약 여기서 이성을 잃고 화를 냈다간 저들의 말이 사실로 변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당장 저 사람들 잡으세요!”온지유가 차갑게 말했다.“카메라에 찍혔으니 끝까지 책임을 지게 할 겁니다.”“네, 온 비서님!”보안 요원들은 사람들을 둘러쌌다.온지유가 강경하게 나오자 그들은 더는 소란을 피울 엄두를 내지 못했다.다시 마음을 다잡은 온지유는 기자를 보면서 네티즌들
멀지 않은 곳에서 분노가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정미리가 온경준을 태운 휠체어를 밀며 다가왔다. 그녀도 역시나 잔뜩 화가 난 상태였다.온지유는 놀란 얼굴로 두 사람을 보았다.“아빠,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장수희는 계속 자신의 말이 맞는다고 억지를 부리면 될 줄 알았지만 온경준이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온경준을 본 순간 장수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아주버님.”온경준은 잔뜩 엄숙한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감히 내 딸을 이렇게 괴롭히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요! 제수씨, 예전에는 그냥 속 좁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본성은 나쁘지 않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나 속이 썩은 사람인 줄은 몰랐네요. 기자들을 불러 내 딸을 모함하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거죠!”“아주버님... 그게 아니라... 전 별다른 말 하지 않았어요. 그냥 지유가 숙모인 저를 공경하지 않는다고만 말했을 뿐이에요!”온경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더는 그녀의 변명을 들을 생각도 없었던 그는 결판을 내리기로 했다.“우리 지유를 대체 뭐라고 생각한 거죠? 제 욕심을 채우기 위해 이런 수단을 쓰다니요! 세상 사람들에게 그렇게 알리고 싶어 하니 그럼 밝혀도 되겠네요. 제수씨네 가족들이 그간 얼마나 부도덕한 짓을 했는지!”장수희는 그제야 두려움을 느끼며 울면서 말했다.“아주버님. 아주버님 안 돼요. 아주버님은 재준 씨 형이잖아요. 동생이 죽어가고 있는데 그러시면 안 되잖아요!”정미리는 불쌍한 척 연기하는 정수희를 더는 참아 줄 수가 없었다.“동서, 이건 동서가 응당 받아야 하는 대가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부 말해야 우리 딸이 얼마나 억울한지 밝힐 수 있지 않겠어?”판이 뒤바뀌어졌다.장수희 가족은 거머리처럼 들러붙어 그들의 피를 빨아먹고 있었다.형으로서 온경준은 최대한 온재준의 가족을 도와주었으나 그들은 도와준 은혜도 모르고 그의 딸을 모함하고 있었다.상황을 지켜보던 네티즌들은 어안이 벙벙했다.[씨X, 반전이 있었어. 뻔뻔한 건 저 모녀였다고! 모두 앞에
온지유도 예상한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그게 누군데요?”장수희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이름은 몰라. 이름을 물어볼 새가 없었거든. 그냥 아주 젊은 아가씨였어. 내가 정말 미쳤지, 낯선 사람의 말을 철썩 믿었다니!”낯선 사람에게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더 시끄럽게 곡소리를 내었다.그러나 온채린은 네티즌의 악플 공격을 견뎌낼 수가 없었는지 창백해진 안색으로 울면서 말했다.“어떻게 해요. 전 이제 끝났어요. 인턴은커녕 아무런 회사에서도 저를 받아주지 않으려고 할 거예요. 언니, 제발 살려주세요. 여진에서 인턴으로 취직 안 해도 돼요. 그러니까 제발 아니라고만 말해주세요. 제가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한 마디만 해주세요. 앞으로 어떻게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고 취직해요!”모녀는 온지유에게 다가가 빌었다.“지유야, 내가 이렇게 빌게. 네 동생을 생각해서라도 제발 한 번만 봐줘. 내가 이렇게 네 앞에 무릎을 꿇고 빌게!”장수희는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딸을 위해 어떻게든 용서를 받으려고 했다.온지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수록 그녀에게 잔인하게 돌아왔다.정미리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더니 일으켰다.“무릎 꿇을 필요도 없어. 괜히 우리가 괴롭힌 거 같잖아. 잊지 마, 모든 악행엔 대가가 따르는 법이야!”사람들 속에서 구경하던 주소영은 상황이 역전하고 온지유가 뭔가를 눈치채자 안색이 파랗게 질려버렸다.온지유가 이렇게나 운 좋은 줄은 꿈에도 몰랐다.이런 상황도 뒤집을 수 있다니 말이다.그녀는 들키고 싶지 않아 얼른 사람들 속에서 빠져나왔다.기자도 자신이 했던 질문이 공격스러웠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장수희 모녀의 말이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되자 그제야 온지유에게 말했다.“온지유 씨, 방금은 죄송했습니다. 제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그런 질문을 했네요. 하지만 이미 방송에 나갔고 저분들이 온지유 씨를 모함한 건 선을 넘은 행동이니 끝까지 책임을 지게 하기를 바랍니다.”그러면서 기자는 떠보듯 말을 보
그 뒷모습은 누군가와 아주 닮아있었다. 그래도 함부로 단정 지을 수 없기에 온지유는 가까이 다가가서 확인하려고 했다.이때 한 사람이 그녀의 손목을 잡으면서 말했다.“지유야, 숙모가 잘못했어. 앞으로 다시는 너한테 해가 되는 일을 하지 않을게.”장수희는 경찰서에 가는 것이 두려웠다. 자칫하면 감옥에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온지유의 용서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이거 놔요.”온지유는 마음이 급했다. 익숙한 뒷모습이 점점 멀어지는 것을 보고는 있는 힘껏 벗어나려고 했다.하지만 장수희의 손아귀 힘은 아주 강했다. 그녀는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말했다.“내가 밉다고 해도 네 작은아버지한테 이러면 안 되지. 너도 온씨 성을 가졌잖니. 나랑 채린이 감옥에 가면 네 작은아버지가 어떻게 살겠어?”온채린은 급기야 무릎까지 털썩 꿇었다.“언니! 제발 용서해 줘요. 저 아직 졸업증도 받지 못했어요. 감옥에 다녀오면 누가 저를 직원으로 채용하겠어요. 저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언니, 우리 친척이잖아요.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줘요, 네?”“나도 이렇게 무릎을 꿇으마, 지유야.”두 사람은 온지유를 잡아당기면서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큰길 건너편에서 뒷모습은 점점 작아졌다. 차량이 지나가면서 일어난 차가운 바람이 피부에 닿아 찢길 듯이 아팠다.온지유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이거 놔요! 당장 놔요!”끼익!“지유야!”두 사람이 밀고 당기는 가운데,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던 온지유는 그대로 밀려났다. 지나가던 차량이 미처 브레이크를 밟지 못할 정도의 거리에서 말이다.빠르게 달려오는 차량을 보고 온지유는 죽음을 예감했다. 이때 한 손이 그녀의 허리를 잡더니 힘껏 옆으로 끌어당겼다.두 사람은 바닥에서 몇 바퀴를 굴렀는지 모른다. 다행히 온지유는 아픈 곳 하나 없이 멀쩡했다. 그러나 남자의 신음을 듣고 정신을 화들짝 차렸다.그녀를 안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여이현이었다. 이곳에서 나타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한 상
경찰의 말을 들은 연희진은 그제야 울음을 그쳤지만 눈동자에 서린 불안과 불만은 여전했다.그 시각 경찰서의 다른 한 곳에는 은서우가 앉아있었다. 소파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은서우의 심정은 잔뜩 흐린 날씨만큼이나 심란하고 우울했다.은서우의 머릿속에는 지난날 소씨 가문과 얽힌 수많은 갈등이 스쳐 지나갔다. 소씨 가문으로부터 멸시받고 협박받았던 아픈 기억들이 봇물 터지듯 은서우의 머릿속을 가득 점령해버렸다. 차마 형언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감각은 점점 더 선명해져 은서우가 이 지옥에서 벗어나야겠다는 결심이 확고해지게 만들었다.만약 경성에 더 머물렀다간 언제가 되든 탐욕스러운 소씨 가문에 의해 쥐도 새도 모르게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은서우는 천천히 핸드폰을 꺼내 이리저리 누르다가 인명진의 번호를 발견하고 멈추었다.은서우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전화를 걸었다.곧이어 핸드폰 너머로 차분하고 자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무슨 일이에요, 은서우 씨?”은서우는 입술이 파르르 떨렸고 목이 멨으나 가까스로 울음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원장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연락 드렸어요. 소씨 가문에서 저에 대한 괴롭힘이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아 제가 경성에 더 머물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그래서 말인데 원장님께서... 다른 도시에 제가 일할 만한 곳을 알아봐 주실 수 있나요? 저는 이곳을 떠나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어요.”핸드폰 너머 인명진의 침묵이 이어졌다.인명진은 잠깐의 생각을 마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은서우 씨의 지금의 마음을 이해해요. 은서우 씨가 그렇게 결정했다니 저도 도와야죠. 제가 다른 지역에 있는 의료협력 프로젝트와 인맥을 통해서 은서우 씨가 소씨 가문과 얽히지 않을만한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은서우 씨에게 적합한 직업을 찾아보도록 할게요.”인명진의 말을 들은 은서우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정말 감사드려요, 원장님. 원장님께서 이곳에 남아서 그들과 맞서라고 할까 봐 걱정했는데 이렇게나 저를 지지해주실 줄은
“만약 아드님께서 정말 정신질환을 앓고 계신다면 전문적인 감정을 거친 뒤 저희가 관련 절차에 따라 처리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기 전까지는 소태훈 씨는 반드시 저희의 감시와 조사를 받아야 합니다.”그 시각, 경찰서의 또 다른 방에는 조금 전에 제압당한 소태훈이 점차 이성을 되찾고 있었다. 하지만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소태훈의 교활한 눈빛만은 숨겨지지 않았다.소태훈의 감시를 책임진 경찰은 한시도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았다.경찰의 시선을 느낀 소태훈은 고개를 들고 일부러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경찰관님, 아까는 제가 갑자기 병이 도져서 그랬습니다. 저도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 저도 정말 저 자신을 통제하기 어렵습니다.”경찰은 차디찬 태도로 대답했다.“이제 곧 소태훈 씨가 말할 시간이 있으니 지금은 얌전히 있으십시오.”소태훈은 입을 삐죽이고는 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끊임없이 경우의 수를 계산하고 있었다.경찰은 은서우에게 전화를 걸어 연희진의 진술을 전해주고 진실 여부를 물었다.은서우는 전화기 너머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경찰관님, 그 사람은 완전히 반대로 말했습니다. 소씨 가문에서는 오래전부터 저에게 무차별적인 비난과 악의적인 압박을 가해왔고 그들의 가족 내부의 문제도 모두 제 탓으로 돌려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는 참을 수 없어 신고해서 도움을 요청하려고 한 것입니다.”경찰은 은서우의 말을 열심히 기록했다.“저희도 은서우 씨의 정황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번과 같은 가족 간 분쟁으로 인해 벌어진 사건은 전면적인 상황 파악이 필요합니다.”“그러니 은서우 씨께서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는 절대 일방적인 진술만 듣는 데 그치지 않을 것이고 사실과 법에 따라 공정한 판결을 내릴 것입니다. 그러니 은서우 씨께서도 부디 평정심을 유지하시고 사건 처리 과정에 불필요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소씨 가문과의 직접적인 충돌이 또 생기지 않게 주의해주십시오.”은서우는 감사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감사합니다, 경찰관님. 저도
쓰레기통은 공중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고 안에 있던 쓰레기들은 모두 밖으로 쏟아져 코를 찌르는 악취가 공기 중을 가득 채웠다.이때, 젊은 경찰 몇 명이 양옆에서 소태훈의 팔을 잡으려고 시도했다.소태훈은 사정없이 몸을 비틀며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소태훈의 힘은 놀라울 만큼 셌고 경찰의 속박에서 벗어난 것도 모자라 팔꿈치로 다른 경찰의 복부를 강타하기도 했다.복부를 가격당한 경찰은 고통에 뒤로 몇 걸음 물러나기도 했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경찰서 접수 로비에 있던 사람들은 다들 놀라서 구석으로 피신을 하였고 어떤 사람은 겁에 질려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연희진은 한쪽에서 조급한 마음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뿐이었다.연희진은 처절하게 외치며 소태훈을 말리려고 했으나 소태훈이 난동부리는 소리에 먹혀 무용지물이었다.“이러지 마 태훈아, 어서 멈춰!”연희진의 속이 타들어 가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소태훈은 완전히 자신의 난동 퍼포먼스에 심취하여 엄마의 목소리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일이 점점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커지자 경찰서 서장이 현장에 도착했다.그는 키가 크고 몸집이 우람했으며 눈빛은 카리스마가 넘쳤다.서장은 먼저 혼란스러운 현장을 한번 훑어본 뒤 심호흡을 하고 소리쳤다.“다들 그만 하세요!”소태훈은 갑작스러운 외침에 놀라 잠깐 움직임이 느려졌다.경찰서장은 그 틈을 타 당장 소태훈에게 돌진했고 눈 깜짝할 새에 소태훈의 손목을 정확하게 잡아 비틀어 그의 팔을 뒤로해서 잡았다.그리고 나머지 한 손으로 소태훈의 목을 단단하게 붙잡고 그를 바닥에 눕혀 제압했다.소태훈은 여전히 발악했지만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소태훈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고 입으로는 여전히 알 수 없는 말들을 지껄였지만 아까처럼 미친 듯이 날뛰지는 않았다.경찰들은 그제야 한숨을 쉬며 난장판이 된 경찰서를 정리하기 시작했다.연희진은 그 광경을 보고 다급히 경찰에게 가서 눈물 젖은 목소리로 간절하게 호소했다.“경찰관님, 제발 우리 아들 좀 살려주십시오! 제 아들이
소태훈이 보낸 메시지들을 본 은서우는 참을 수 없이 역겨움이 몰려왔다.소태훈이 보낸 메시지의 내용은 점점 더 과격해졌고 내용에는 선을 넘은 협박과 무리한 요구가 가득했다. 그중에는 심지어 은서우의 신변을 위협하는 내용도 있었다.은서우는 더는 소씨 가문의 도를 지나친 괴롭힘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은서우는 심호흡하고 단호하게 경찰서에 전화해 그동안 소씨 가문에서 장기적으로 자신을 괴롭혀 온 정황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그동안 소태훈이 자신에게 보낸 섬뜩한 내용의 메시지들과 그가 제기한 변태적인 요구들까지 모두 알려주었다.경찰 측에서는 최대한 빨리 수사에 착수하고 그에 따른 보호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경찰의 개입이 확정되자 은서우는 그제야 한숨 돌렸다.은서우의 신고를 받은 경찰들은 바로 움직였고 귀를 찢는 듯한 사이렌 소리가 도시의 소음을 가르며 경찰차 몇 대가 재빠르게 소태훈의 거처로 향했다.건물 사이를 가르고 지나가는 빨갛고 파란 경광등에 지나가던 사람들도 하나둘 관심을 가졌다.경찰은 은서우가 제공한 상세한 단서들에 근거하여 정확하게 소태훈을 찾아냈다.오만하기 짝이 없었던 소태훈의 모양새는 엄숙하고 위엄있는 경찰들을 발견한 순간 한없이 볼품없어졌지만 소태훈은 여전히 기를 쓰고 침착함을 유지하는 척했다.경찰은 영장을 제시하며 단호하게 말했다.“소태훈 씨, 당신은 타인을 협박한 혐의로 함께 경찰서로 가서 수사에 협조해주셔야겠습니다.”소태훈은 뻔뻔하게 경찰의 말에 반항하는 것도 모자라 팔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뭘 믿고 날 잡아간다는 거야? 난 아무 짓도 안 했다고!”하지만 경력 있는 경찰들에게 소태훈의 막무가내 난동쯤은 일도 아니었다. 경찰은 단번에 소태훈을 제압해 경찰서로 데리고 갔다.소태훈의 소식을 들은 연희진은 급한 마음에 무슨 정신으로 왔는지도 모를 정도로 곧바로 경찰서로 달려왔다.경찰서에 도착한 연희진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머리는 산발이었고 공포와 초조함으로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연
심지어 점점 더 지나치게 그녀를 이용하려 했다. 사람은 끝까지 베풀어도 결코 만족할 줄 모르는 존재였다. “제가 강하게 나가지 않는 게 아니라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거예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요.” “짐 싸요. 나랑 같이 지방에 좀 다녀옵시다. 병원 규모를 더 키우기 위해 프로젝트 협상을 해야 해요.” 인명진은 완전히 이곳 경성에 자리를 잡기로 한 듯했다. 온지유가 이곳에 있으니 그녀를 지켜야 했고 제자를 배양해서 훗날 온지유의 아들과 딸을 보호할 준비도 해야 했다. “그런데 전에 환자에게 중요한 수술을 해주기로 약속하지 않았어요?” “그건 다른 사람이 맡도록 조정할 거예요.” 사실 그 수술은 은서우가 맡는 게 가장 좋았지만 이번 일정상 그가 직접 동행해야 했기에 차선책으로 지석훈을 불러들이는 것도 방법이었다. “알겠어요.”인명진이 이미 준비해둔 계획이 있으니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은서우는 따로 챙길 짐도 없었다. 사무실에 교대 근무를 위해 가져다 둔 여벌 옷이 있었으니 그것만 들고 가면 충분했다. 오히려 더 편했다. 은서우는 서둘러 옷을 챙겨 들고 인명진을 따라 병원을 나섰다.민지아에게서 다시 메시지가 왔다. [은서우 씨, 내가 당신을 망가뜨리는 걸 원하지 않는다면 얌전히 내 말 들으세요. 안 그러면 당신은 절대 내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겁니다.] 은서우는 원래 무시하려 했지만 그대로 두면 민지아가 끈질기게 달라붙을 게 뻔했다. 결국 짧게 답장을 보냈다. [이 문자 그대로 경찰서에 제출해도 상관없다면 마음대로 하세요.] 그녀의 굳어진 표정을 인명진이 놓칠 리 없었다. “또 그 집에서 연락 온 겁니까?” “아니에요.”은서우가 부정하는 순간 인명진은 그녀가 지금 어떤 문제에 부딪혔는지 바로 눈치챘다. “민지아 쪽 문제는 내가 한 번에 정리해 줄까요? 내 비서가 오늘은 이 일에 내일은 저 일에 휘말리는 꼴은 보고 싶지 않거든요.” 인명진이 낮고 서늘한
민지아가 은서우의 길을 단단히 막아섰다. “이 돈으로 나를 떼어놓을 생각이라면 틀렸어요. 이 정도 돈은 나한테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민지아는 은서우를 꽉 붙잡고 놓지 않았다. “내 말 잘 들어요.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난 당신을 완전히 망가뜨릴 수도 있어요.” 은서우는 두려웠지만 그 두려움보다 더 큰 것은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녀는 민지아를 멸시하며 차가운 눈빛으로 답했다. “당신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어요. 당신이 먼저 돈을 준거니까 같이 망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내 인생은 이미 끝났으니까요. 그런데 당신은 겨우 인명진 원장님 병원에 들어갔으면서 해고되는 걸 감당할 수 있을까요?”민지아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밤새 공부하고 지식을 암기하며 힘겹게 시간을 보내고 겨우 인명진의 병원에 들어갔다. 때때로 환자들의 괴롭힘에 시달리며 죽음까지 생각할 정도로 힘든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인명진의 곁에 있을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버틸 수 있었고 그 기쁨이 그녀를 지탱해주었다. 이를 악물고 참은 끝에 지금의 자리에 올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은서우의 협박에 넘어갈 수 없었다. “날 협박하는 거예요? 꿈 깨세요.”은서우는 민지아의 모습을 보며 그녀 역시 내심 갈등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그녀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제가 당신을 협박할 이유가 뭐죠? 원장님이 어떤 분인지 잘 아시지 않나요? 그렇게 오랫동안 그분을 봐오셨는데도 모르시겠어요? 저는 지금 원장님께서 시키신 일을 하러 가야 합니다. 만약 제가 제시간에 가지 않으면 원장님이 문제를 삼을 거예요. 그때는 당신이 제일 먼저 끌려 나올 거란 걸 알아두세요.”그 말을 끝으로 은서우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그대로 떠났다. 민지아는 은서우가 떠나는 모습을 어두운 얼굴로 바라보며 분노가 치솟았다. 은서우처럼 하찮은 사람이 이제 그녀에게 협박까지 하고 나선다니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민지아는 손톱을 깊게 물어잡았다. 그녀
여자 실습생의 눈빛은 살기를 품고 있을 만큼 날카로웠다. 은서우는 한순간의 탐욕이 이렇게 큰 골칫거리를 초래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만약 의사를 그만두게 된다면 더 이상 수입이 없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그녀는 생활조타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마세요. 원하는 건 뭐든지 다 줄게요. 그 카톡은 다시 사용할 수 없고. 이렇게 하죠. 기회를 잡아 약을 타줄게요. 아니면 다시 한번 기회를 만들어 줄까요?” 은서우는 실습생의 손을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그녀도 이제는 어쩔 수 없이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실습생은 돈이 부족하지 않았고 아니었다면 그때 그렇게 많은 돈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그녀는 단지 병원에 남고 싶을 뿐이었다.“한 번 더 기회를 만들어 주면 인명진 씨가 또 한 번 속을 거라고 생각해요? 은 선생님, 우리 원장님을 바보로 아는 거예요?” 인명진은 절대 바보가 아니었다. 게다가 일반 약물은 그에게 전혀 효과 없는 듯했다. 은서우는 속으로 답답함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 번의 실수가 이렇게까지 이어질 줄은 몰랐다. 이제 그녀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여자 실습생이 은서우의 어깨를 슬쩍 감싸며 비꼬듯 말했다. “은 선생님, 정말 대단하세요. 우리 원장님이 은서우 씨를 보조로 올려주셨다니. 원장님 옆에서 지내면서 그렇게 많은 기회를 얻은 거겠죠?” “그런데 말 나온 김에... 은서우 씨, 이 얼굴...” 여자 실습생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은서우의 양쪽 뺨을 세게 움켜잡았다. 은서우는 그 차갑고 도발적인 눈빛을 느끼며 마치 전시된 상품처럼 타인의 평가에 복종하는 기분을 느꼈다. 그녀는 여자 실습생이 다음에 어떤 말을 할지 전혀 알 수 없어 불안감에 휩싸였다.예상과 달리 여자 실습생은 이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은 선생님, 난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미친 사람은 아니에요. 그리고 그런 눈빛으로 날 쳐다보지 마세요. 나도 이름이 있
“오늘부터 내 보조로 다시 일을 시작해요. 은서우 씨가 금방 적응할 거라고 믿어요.” 은서우는 깜짝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 “원장님, 정말요? 잘 해낼게요. 절대 실망시키지 않겠어요.” 인명진은 일어난 후 은서우의 옆으로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우선 이번 주 업무 계획과 관련 자료들을 파악하세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저한테 물어보세요. 저는 은서우 씨에게 전적으로 믿음을 가지고 있어요.” 은서우는 잠시 인명진을 바라보다가 주저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렇게 해도 괜찮을까요?”인명진의 곁에는 원래 보조가 있었다. 만약 그녀가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인명진의 기존 보조는 분명 그녀에게 불편한 상황을 일으킬 것이다. 게다가 병원에는 인명진에게 집착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동안 이미 인명진과 가까워진 그녀가 이제 그저 보조로 들어가게 된다면 온갖 비난에 시달릴 게 뻔했다. 은서우는 단지 소씨 가문과의 관계를 확실히 끊고 평범하고 안정된 삶을 원할 뿐이었다.인명진은 무심코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어디가 안 좋은데요?” “원장님, 원장님이 병원 내에서 얼마나 인기 있는지 잘 아시잖아요. 제가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예전 보조는 물론이고 저는 원치 않게 모든 사람의 적이 될 거예요.” “돈이 부족한 거 아니었나요?” 인명진은 은서우의 말을 아예 듣지 않은 채 그의 깊고 검은 눈동자가 그녀에게 무겁게 내리깔렸다. “그렇긴 하죠...”소씨 가문은 마치 끝없이 깊은 구덩이처럼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는 한 푼도 저축하지 않았고 자신을 위해 조금이라도 돈을 모을 필요가 있었다. 인명진은 얇은 입술을 서서히 올리며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돈이 부족하다면 제가 돈을 두리는 게 뭐가 나쁩니까? 제 보조도 그저 보조일 뿐이고 당신은 임상 경험이 있으시잖아요. 제가 처리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하지만...” “하지만은 없습니다.” 은서
집에 돌아온 은서우는 가장 먼저 샤워를 했다. 물의 온도를 가능한 한 뜨겁게 맞추며 마치 이렇게 해야만 오늘 밤의 끔찍한 기억들이 씻겨 내려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손목을 힘껏 문질렀다. 그곳은 그 더러운 남자들이 손을 댔던 곳이었고 비록 옷을 입고 있었지만 여전히 불쾌감이 밀려왔다. 은서우는 계속해서 바디샴푸를 덧발라가며 문질렀다. 피부가 붉어질 때까지 반복했지만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는 그 불쾌한 기분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샤워를 마친 은서우는 깨끗한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앉았다. 몸은 피곤했지만 전혀 잠이 오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핸드폰에 고정되었고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인명진에게 문자를 보냈다. [인명진 씨, 오늘 밤 정말 고마웠어요. 절대 잊지 않을게요.] 문자를 보낸 후 은서우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두 손으로 무릎을 끌어안은 채 침대에 쪼그려 앉아있었다.병원으로 돌아가는 것은 은서우의 오랜 바람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자신이 잘 해낼 수 있을지 인명진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그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핸드폰 화면이 밝아지며 인명진의 메시지가 떴다. [잘 도착했으면 됐어요. 너무 걱정하지 말고 푹 쉬세요. 내일 병원에서 봐요.] 짧고 간결한 메시지였지만 그 한마디가 은서우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은서우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자신에게 너무 멀리 생각하지 말고 우선 지금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해결하자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녀는 다시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한 생각들로 가득했지만 점점 더 피로가 밀려오며 결국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은서우는 잠든 사이에도 편히 잠들지 못했다. 술집에서 만난 그 남자들의 추악한 얼굴과 그들이 던진 불쾌한 웃음소리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도망치려 했지만 끝없이 펼쳐진 어둠 속에 갇혀 버린 자신을 발견할 뿐이었다. 그때 어둠 속에서 인명진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는 여전히 침착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