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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차수현은 백화점에서 나온 후 온은수의 차가 밖에 세워진 걸 발견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초라한 자신의 몰골을 보더니 가슴이 움찔거렸다.

비록 싸움에서 진 건 아니지만 온씨 일가의 명성을 망친 것만 같아 죄책감이 몰려왔다. 온은수가 만약 그녀가 밖에서 몸싸움이나 하고 다니는 걸 안다면 끝까지 추궁할 것이다.

다만 피하는 것도 답이 아니기에 차수현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는 차에 올라탔다.

다행히 온은수는 한창 노트북을 보느라 그녀의 움직임에 관심이 없었다.

차수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움츠린 채 창 밖을 내다봤다. 그녀는 최대한 온은수의 시선을 피하려 했다.

차는 일정한 속도로 달렸고 차수현도 이 일이 이렇게 지나갈 거로 여겼다. 온은수가 차분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봤다.

헝클어진 머리와 몸을 할퀸 몇 개의 빨간 흉터까지 보자 온은수는 미간을 확 찌푸렸다.

“어떻게 된 거야?”

차수현은 순간 선생님께 혼나는 기분이 들었다.

“죄송해요, 앞으로 더 조심할게요.”

“넌 온씨 집안 사람이야. 일거수일투족이 전부 우리 집안을 대표한다고! 고작 옷 사러 가서 이 사달을 내, 이왕 이렇게 된 거 앞으론 얌전히 집에만 있어. 내 허락 없인 외출금지야!”

차수현은 그에게 혼날 준비가 다 되었지만 외출금지라는 말에 덜컥 겁이 났다.

“은수 씨, 이번 일은 내가 잘못했어요. 나도 인정해요. 하지만 절대 먼저 소란을 피운 게 아니에요. 상대가 먼저…….”

“변명 같은 거 하지 마.”

온은수는 가차 없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차수현은 입술을 꼭 깨물더니 한참 후에야 말을 이어갔다.

“은수 씨, 이번 일은 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온씨 집안의 명성을 어지럽혔어요. 죄송해요, 어떤 처벌이든 달갑게 받을 테니 제발 외출금지만은 풀어줘요.”

엄마가 큰 병원으로 옮긴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또 곧 있으면 수술이 다가오는데 유일한 가족인 차수현이 없으면 누가 옆에서 챙겨준단 말인가?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온은수가 노트북을 접고 언짢은 눈빛으로 그녀를 째려봤다.

“지금 나랑 흥정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온은수의 차분한 말투에 무언의 압박감이 깃들어 있었다.

“병원 가서 엄마를 보살펴야 해요.”

“너희 집안은 간병인을 청할 돈도 없어?”

차수현은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 차씨 집안은 당연히 간병인을 청할 능력이 된다. 하지만 차한명은 자신의 애인과 그 딸에게만 돈을 마구 쓰며 명품을 사 줄 뿐 단 한 번도 차수현의 엄마에게 병원비를 내줄 생각이 없었다.

차씨 집안의 역겨운 그 얼굴들을 떠올리며 차수현이 대답했다.

“은수 씨가 못 믿으시겠으면 사람을 시켜서 물어봐요. 몇 해 동안 엄마가 아플 때 제가 줄곧 옆에서 보살펴드렸어요. 모든 사람이 은수 씨처럼 여유가 있어 돈으로 일을 해결하는 줄 알아요?”

온은수의 표정이 한껏 짙어졌다. 차 안의 분위기도 싸늘할 따름이었다.

“차 세워.”

온은수의 언짢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차가 급정거했다.

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

“꺼져 당장.”

차수현은 미처 반응하지도 못한 채 이미 차에서 끌려 나왔다.

매정하게 멀어져 가는 차를 바라보며 그녀는 입가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하마터면 잊을 뻔했다. 자신과 온은수의 관계는 단 한 번도 공평한 관계가 아니었다. 그녀는 단지 온은수가 돈으로 산 가짜 아내일 뿐인데 무슨 자격으로 그와 상의한단 말인가?

하지만 차수현은 엄마를 홀로 병원에 남겨둘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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