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릉은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북막이더냐? 북막 사람들이 이런 수단을 쓰다니. 백만 냥의 황금이단다!""이리 나리께서는 북막이 요 몇 년 동안 형편이 좋지 않아 국고가 일찍이 비어 있기 때문에 이 백만 냥의 황금은 독고 가의 것으로 의심된다 했사옵니다. 독고 가문에서 그와 동맹을 맺을 때 금을 숨긴 장소를 북막인에게 알렸답니다. 그래서 북막인은 이 황금을 가져간 후 먼저 태자의 목숨을 사려 하옵니다. 태자께서 전쟁에 앞서시니 태자에게 일단 사고가 나면 북당에는 황태자를 잃을 것이고 반드시 한동안 정세가 크게 흔들 것이옵니다. 북막은 그때를 틈 타 침공을 할 것이고 짐들이 반응할 기회도 주지 않을 것이 옵니다. 만약 전쟁을 신속하게 끝낼 수 있다면 백만 냥의 황금은 아주 가치 있게 쓴 편입니다. 왜냐하면 북막인들은 더 이상 소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3년에서 7년 정도 소모하면 어떻게 백만 냥의 황금에 그치겠습니까? 그러니 이 장사는 어떻게 보아도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지요."원경릉은 이번에 진정으로 제왕의 집안에서 태어난 비애를 느낄 수 있었다. 대권을 쥐었지만 오히려 자신을 위험한 지경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마마께서도 너무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이리 나리께서 이번에 온 것은 초왕부에 방어를 설치하는 동시에 암암리에 태자를 보호할 사람들도 안배할 것이옵니다. 아무래도 태자께서 항상 초왕부에 있을 수도 없으니 말이죠. 다만 이번에는 이전의 모든 위기들보다 더 심각합니다. 백만 냥의 황금이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지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사옵니다. 천지통에서 알아낸 소식에 따르면 늑대골 출신의 사람도 올 가능성이 높사옵니다.""늑대골 출신의 사람? 거의 대부분 다 죽지 않았더냐?"원경릉의 긴장하기 시작했다. 늑대골에서 나온 사람이 얼마나 모질고 무공 또한 얼마나 높은지 훼천과 홍엽을 보면 알 수 있었다."아닙니다. 늑대골은 3년에 한 무리가 나오는데 이 사람들은 나온 후 독고 가문을 위해 8년을 일하고, 8년 후 죽지 않았다면
이리 나리와 우문호는 서재에서 대략 한 시진이 넘도록 말했다. 이리 나리가 상황을 알려준 후 그들은 어떻게 방어를 배치하고 어떻게 무기를 서둘러 연구개발하여 조중 신하들과 아바마마께서 전쟁에 동의하도록 설득하는지를 상의했다.우문호는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저 원 선생이 무서워할까 봐 걱정되었기에 그래서 이리 나리와 상의한 후 바로 소월각으로 돌아가 원경릉을 찾았다.미색은 이미 나간 상태였고 원경릉은 방에서 다바오를 위해 옷을 꿰매고 있었다. 다바오는 그녀의 발밑에 엎드려 큰 귀를 쫑긋 세웠다. 우문호가 들어오는 것을 보자 다바오는 꼬리를 흔들며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우문호는 앞으로 가 원경릉을 안고 그녀의 붉어진 눈시울을 바라보며 말했다."걱정하지 말거라. 괜찮다."원경릉은 그를 보며 눈시울이 더욱 붉어졌다."늑대파가 있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으니까 괜찮을 것이다. 게다가 쌍둥이도 있고 떡들도 있고 설랑이랑 호랑이까지 있으니까 우리는 그들한테 지지 않을 것이야."다바오는 두 번 낑낑 소리를 냈고 원경릉은 다바오를 보며 웃었지만 웃음소리에는 울컥함이 배어 있었다.“다바오도 도울 수 있다네."우문호는 그녀가 애써 걱정스러움을 감추는 것을 그윽하게 바라보며 손을 뻗어 그녀를 품에 안아 위로해주었다. "맞소. 그래서 더 걱정할 필요가 없다네. 나와 이리 나리는 이미 계획이 있다. 신속하게 군사만 내보낸다면 이 현상령이 더 이상 두렵지 않을 것이야. 일단 군사를 내보내면 북막사람들은 더 이상 이 황금을 쓰려 하지 않고 반드시 다시 가져가 전쟁을 준비할 거다.""알겠소."원경릉은 자신이 있다는 그의 말을 듣고 왠지 마음이 놓였다. 사실 그는 어느덧 북당이라는 나라를 일으킬 수 있는 영웅으로 성장해 있었기에 그 해 초에 알게 된 사람과는 완전 딴판이다.그녀는 그에게 자신이 있었다. 몇 번의 위기도 넘겨왔는데 이번도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두 사람은 서로 껴안고 서로에게 힘을 주었다. 그녀를 놓아주었을 때 그녀의 눈빛은 다시 의연한 빛을 되찾았다.그
원경릉은 바느질을 내려놓고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왜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것이냐? 괜히 그거 땜에 마음속이 불안해지지 않느냐. 무슨 칠순 여든이 되는 노인네가 살아생전을 회상하는 것처럼 말하지 마소."그는 그녀를 바라보며 천천히 웃기 시작했다."그려, 말하지 않으마."원경릉이 말했다."당신도 아쉬워하거나 후회하지 마오. 당신은 평생 나한테 잘해주는 것으로 과거에 했던 잘못을 메워야 하기 때문이오. 그리고 이번 생에는 나보다 먼저 갈 생각은 하지도 마오. 어떤 고비든 이를 악물고 버텨서 넘겨야 한다네.""그런 당연한 소리를!"그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원경릉은 미소를 지었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옷을 다 꿰매고 다바오에게 입히자 다바오가 득의양양하게 갔다.우문호는 원경릉을 안고 말했다."안심하오. 아무리 큰 고비라도 내가 짊어질 것이니!"원경릉은 그의 품에 기대어 힘찬 심장소리를 들으며 묵묵히 답했다.태상황께서 편찮으셔서 원경릉은 다음날 궁으로 갔다.그녀는 사실 궁에 들어갈 때 태상황이 그녀를 보고 싶어 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태상황은 그녀가 오는 것을 보고 아주 기뻐했다.세 사람은 대전에서 바둑판을 두었고, 소요공과 수보는 바둑을 두고 태상황이 관전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원경릉과 몇 마디 얘기도 나눌 수 있었다.세 사람 모두 기침이 좀 나고 콧소리가 심해서 고뿔이 심하게 걸린듯했다. 그러나 어의가 처방한 약을 드시고 있으니 원경릉은 약을 따로 처방하지 않았다.태상황은 왜 다섯째가 오지 않느냐고 물었고 원경릉이 답했다."신하를 소집하여 일을 의논하고 있사옵니다. 내일 시간이 나면 오라고 전하겠습니다.""바쁘면 일을 보라 하거라. 과인은 괜찮으니 급히 올 필요 없다네. 그저 물어본 것이다."태상황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혹시 요 며칠 다섯째가 무슨 말을 하더냐?"원경릉은 태상황이 무엇을 묻는지 알고 있다. 이 건곤전에서 그녀는 너무 많은 것을 꺼릴필요 없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원경릉은 이런 말을 듣고 하마터면 뛰어오를 뻔했다."출정을 하시려는 것이옵니까?"태상황은 그녀의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아 콧방귀를 뀌었다."어찌 우리를 무시하는 것이느냐? 우리가 전쟁에서 싸울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는지도 모른다.""맞다네. 예전에 황궁 별채에서도 우리는 똑같이 갑옷을 입고 적에게 대항하지 않았는가?"소요공이 묻자 원경릉이 다급히 말했다."그게 어떻게 똑같습니까? 그때는 안풍 친왕 부부도 있었사옵니다.""그들이 없어도 우리는 너무 뒤처지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이 싸움은 매우 중요하니 그들도 아마 올 것이야!”태상황이 말했다."하지만 조정에 무관이 없는 것도 아니고 어찌 태상황께서 지휘를 하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건 절대 안 돼옵니다. 전쟁터가 얼마나 험악한데, 태상황께서는 지금 몇 걸음 걸으셔도 숨을 헐떡이고 심장도 좋지 않아 갈 수 없습니다."원경릉은 그의 말이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태상황은 몸이 이렇게 나쁘고 몇 년 전에 거의 목숨을 잃을 정도였다. 비록 운이 좋아 구해냈지만 요 몇 년 동안 강해져 봤자였다. 항상 때때로 병이 나고 심장병과 천식까지, 이 모두 작은 병이 아니다. 전쟁터에 나가 정말 발작이라도 일으키면 누가 그를 구할 수 있을까?원경릉은 절대 동의할 수 없었지만 상대는 그녀의 동의를 구할 생각도 없이 간단명료하게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이미 결정을 내렸다네!"원경릉은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 그때 별채에서 한바탕 싸우고 나서 싸우는 것에 빠져버린 건가? 전쟁에도 빠져들 수 있나?"태자비."소요공은 자리를 바꾸어 태사의자에 앉았고 마치 대장군과도 같은 위엄을 풍겼다."내가 묻겠네. 두 군사가 대적했지만 강약에 큰 차이가 있다네. 강자가 이기는가 아니면 약자가 이기는가?"원경릉은 그의 지혜로운 눈동자를 바라보았다."그것은 만약 병력의 강약 차이가 크다면 강자가 이길 가능성이 조금 더 높을 것이옵니다.""좋네. 태자비는 강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강자가 이길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네. 그럼 강약
"이것을 말하기에는 너무 일러요. 아바마마께서 전쟁에 동의하지도 않으시고 조중에도 지지하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그러자 태상황은 이상한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과인이 그의 동의가 필요하느냐?""태상황께서는 정사에 간섭하지 않으시지 않습니까?"원경릉은 간섭하지 않을 수 있으면 될수록 간섭하지 않는 그의 원칙을 알고 있었고 특히 이런 큰일에는 더욱 그러했다.태상황은 그녀를 보며 유유히 뒤로 기대었다."지난날 간섭하지 않은 것은 오늘날 과인의 뜻대로 하기 위해서다."원경릉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잠시 넋을 잃었다."다섯째는 아직 이 일을 모르는 것이지요?""돌아가서 다섯째에게 알려주면 된다. 사실 그가 아느냐 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다섯째는 출전할 수 없기 때문이야. 다섯째의 성격으로 보아 우리를 따라 전쟁터에 나간다면 우리를 보호하느라 언제 전쟁에 전념할 수 있겠느냐?"원경릉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그럼 아마 다섯째가 동의를 하지 않을 것 같사옵니다."태상황이 또 웃기 시작했다."그가 동의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수 있느냐? 우리를 막을 수 있느냐?"원경릉이 말했다."할바마마, 전장은 너무 위험하니 가지 않으셨으면 좋겠사옵니다."소요공은 빈랑을 물고 무심히 말했다."우리는 본디 무장 출신이네. 다만 후에 한 사람은 본업에 충실하지 않고 황제가 되었고 두 사람은 생각이 바뀌어 큰 관리가 되어 이 나라를 잘 관리하려 노력했다네. 허나 무장의 가장 좋은 귀착점은 바로 전쟁터에서 죽는 것이네. 나는 정말 죽어야 한다면 오히려 전쟁터에서 죽어야 우리가 가장 원하는 귀착점이라고 생각한다네."이 말을 듣고 원경릉은 마음을 쓸어내렸고, 그녀는 곧 그에게 설득될 것 같았다. 그러나 태상황의 건강을 떠올리고 그녀는 단념하지 않고 수보를 바라보았다."이 일을 희상궁께서는 아십니까? 희상궁께서 아시면 슬퍼하지 않을까요?"희상궁이 밖에서 걸어 들어오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나는 동의한다네!"원경릉은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았다."동의하신다니요?
원경릉이 돌아가자 마침 그 자리에는 이리 나리도 있었다. 그녀는 태상황과 수보, 그리고 소요공의 결정을 그들에게 알려주었다.우문호가 듣고는 고개를 저었다.“일단 전쟁이 시작되고 나면 어떻게든 어르신들을 전장에 내보내서는 안된다네. 우리 북당에 장군이 없는 것도 아니고, 나와 셋째 형님 모두 지휘를 할 수 있다네. 넷째 형님은 병사를 이끌지 않게 해도 전장에 나가는 것은 가능하다네. 그리고 남강에서 이미 좋은 소식이 전해져왔으니 아홉째도 돌아올 수 있네. 지금 조중의 장군은 비록 예전과 같지 않지만 그래도 어르신들이 지휘를 나서야 할 정도는 아니라네."이리 나리가 모처럼 쓴웃음을 지었다."북막에서는 어떻게든 생각지 못했을 것이옵니다. 이쪽에서 현상금으로 태자를 협박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르신들이 궁중에서 들볶을 수 있을 줄은 예상하지도 못했겠지요. 만약 어르신들이 출정하여 지휘를 하신다면 군중의 사기는 반드시 크게 북돋아질 것이고 북막사람들이 들어도 심장이 떨려올 것입니다. 태상황의 이 수법은 정말 북막이 넋을 잃게 한 방 날렸을 겁니다."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물었다. "지금 편들어 줄 때 입니까?"이리 나리가 말했다."저는 단지 일만 논할 뿐이옵니다. 요 몇 년 동안 태상황께서 사람들에게 준 인상은 병들고 나이가 많으며 몸이 성치 않다는 겁니다. 그 누가 생각을 해도 태상황께서는 전장에 나갈 수 없을 것입니다. 북막에서는 그를 이 빠진 노인네라 여겼는데 어찌 언젠가 그가 갑옷을 입고 출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겠습니까? 만약 안풍 친왕 부부도 전쟁터에 나간다면 더 대단하지요."그러자 우문호가 반박했다. "누가 뭐라 해도 할바마마를 전쟁터에 내보낼 수 없사옵니다.""체면에 얽매이지 마시오.""이게 어떻게 체면과 관련이 있사옵니까? 그는 저의 할아버지인데 어떻게 그를 모험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리 나리는 자신의 가족이 위험에 맞닥뜨리게 할 것이옵니까?"우문호가 단도직입적으로 세게 묻자 이리 나리가 자애롭게 원경릉을 바라보았다."당연히
명원제는 그때 어서방에서 정무(政務)를 보고 있었고, 밖에는 많은 대신들이 부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태상황의 명을 듣고 명원제는 곧바로 다녀갔다.대전에 들어서자 우문호가 세 사람에게 둘러싸여 찻상 옆에 앉아있는 것을 보았고 검 세 자루를 보니 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는 대전에 들어가 태상황에게 물었다."아바마마, 짐에게 무슨 일로 오라고 하신 것이옵니까?"그는 말을 하며 우문호를 싸늘하게 힐긋 쳐다보았다. 그는 아마도 우문호가 궁에 들어와 태상황을 설득하여 조중의 일에 간섭하고 그가 내세우는 관점을 지지할 사람을 찾으려는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우문호는 아주 억울하게 그를 바라보았고 태상황은 그를 앉으라고 명한 뒤 말했다."너희 부자 두 사람은 여기에 앉아 우리 세 사람의 무공이 퇴보하였는지 한 번 보거라."그러자 명원제가 멈칫했다. 어서방 쪽은 아주 바쁜 상황인데 감히 그를 불러서 무공을 겨루는 것을 보라니!하지만 그는 하기 싫다고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기에 그저 상황을 받아들였다. "그럼, 짐이 한 번 보겠사옵니다."세 사람은 동시에 일어났고, 각기 검 한 자루를 들고 마당으로 갔다.바람이 불어오자 세 사람의 옷소매는 휘날리고 있었다. 태상황의 등은 아주 꼿꼿했고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 우문호는 그 모습을 보며 그가 검을 들기도 힘들어한다고 느꼈을때 그는 바로 놀라서 입을 떡 벌렸고 눈은 휘둥그레졌다. 태상황이 그 무거운 검을 들어 올렸고 곧 번개와도 같은 속도로 주수보를 향해 찔렀기 때문이다. 주수보는 몸을 날렵하게 피했고 몇 번의 깔끔한 회전으로 검을 피했다. 그리고 소요공은 칼을 들고 허공으로 뛰어 올라 태상황을 향해 검을 찍어 내렸다. 태상황은 허리를 굽혀 바닥에서 한 번 구르고 난 뒤 재빨리 뛰어 올라 다시 검을 들고 소요공을 향해 찔렀다.소요공은 뒤로 공중회전을 하며 2장 넘게 멀리 뛰여 올랐지만 수보가 허공에서 날아왔다. 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검은 이미 그를 향해 찔러오고 있었고, 소요공이 허허 웃으며
명원제는 단번에 넋을 잃었고 온몸의 피가 머리로 솟아올랐다. 그는 손수건이 자신의 얼굴에 떨어지고 다시 바닥으로 미끄러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이것은 그가 자리에 오른 후 처음으로 태상황의 매서운 안색을 마주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갑자기 어찌할 바를 몰랐고 우문호를 쳐다보았다. 우문호도 아바마마가 틀림없이 자신에게 화풀이를 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먼저 무릎을 꿇고 아바마마 대신 죄를 빌었다."할바마마께서는 이만 노여움을 푸십시오!"그러자 태상황은 담담하게 말했다."과인은 화를 내지 않았고 네 아비도 불쾌해 하는 것이 아니다. 아들이 아비에게 맞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네가 물어보거라 그렇지 않느냐? 아들이 아무리 커도 아비의 기분이 좋지 않으면 뺨을 몇 대 때리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다. 그가 태자든 황제든 무슨 상관이더냐!"명원제는 그의 말을 듣자마자 태상황이 우문호를 대신해 나서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안색이 급격하게 변했다."그렇지 않느냐?"태상황은 그를 보며 직접 물었고 명원제는 작은 소리로 답했다."소자 죄를 잘 알겠사옵니다!""네가 태자일 때 과인이 언제 이유 없이 너를 때린 적 있더냐? 네가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과인은 그저 너를 꾸짖었을 뿐 손찌검을 한 적은 없었다.""어바마마께서는 그러시지 않았사옵니다!"명원제는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는 고개를 저었다."그것이 왜 인지 아느냐?"명원제는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 "아바마마께서는 소자의 체면을 세워주려 하는 것이라 생각하옵니다."태상황이 콧방귀를 뀌었다."그래, 알고 있으면 됐다. 네가 걸핏하면 손을 대는 것을 보니 어디 그를 북당의 황태자라 여기는 것이느냐? 신하들이 어찌 그에게 복종할 수 있겠느냐?"명원제가 겸연쩍게 말했다."소자 이제 잘못을 알았사옵니다.""예전에 하던 것을 보니 참으로 대단하더구나! 이렇게 철이 들고 유능한 아들이 있는 것에 만족하면서 살거라."명원제는 수보와 소요공을 힐긋 보았다. 그들은 눈치를
추 할머니 방에서 나온 원경릉은 마음이 몹시 무거워졌다.사실, 추 할머니는 이미 연세가 많고, 그동안 몸이 계속 좋지 않아 치료를 반복하는 것에 지쳤을 것이 당연했다. 오랜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쉽게 포기하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아마도 추 할머니는 주위 사람들과 이별하기 싫어서 끝까지 버티고 있는 것 같다.원경릉은 그저 새로운 약이 효과가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녀 또한 평생을 함께해온 이들이 드디어 모였을 때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았다.모든 것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늘릴 수 있기를 바랐다.아마도 지금이 그들에게 있어 가장 아름답고, 걱정 없이, 짐 없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일 것이다.요즘 미색도 자주 숙왕부에 들러 작은 일들을 도와주고, 어르신들을 돌보며 노력했다. 미색은 오기 전, 손왕비에게도 함께 가자고 권유했지만, 손왕비는 무상황을 겁내며 오려 하지 않았다.그는 미색에게 원경릉은 이제 더 이상 초왕비나 의원이 아니기 때문에 황후로서의 신분을 지키며 조심해야 하며, 혼자서 궁 밖으로 자주 나가는 것은 위험하니 반드시 호위를 대동해야 한다고 당부하라고 전해달라고 했다. 손왕비의 말은 선의였지만, 미색은 늘 그래왔듯 그녀를 반박했다."신분이라니요? 신분으로 따지면 숙왕부의 어르신들도 황후 못지않게 귀한 분들입니다!"숙왕부에 도착한 미색은 이 말을 원경릉에게 그대로 전했다.원경릉은 듣고 웃으며 말했다."둘째 형수도 선의로 말한 것이오. 하지만 자네의 말도 맞소. 신분이 뭐가 중요하오? 신분으로 따지면 나는 원래 의원이라네. 황후는 그저 자리일 뿐, 결코 내 영광이 아니라고 생각하네.""전적으로 동의합니다!"미색이 그녀를 지지했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회왕비였지만, 황실의 신분에 얽매이지 않으며, 자신을 대흥 군주라고 여기지 않고 늑대파 출신이라고 자처했다. 그녀는 험난한 강호에서 버틴 사람으로서 자신의 사업을 가지고 있었다.미색은 앞으로 손왕비에게도 일을 시작하라고 권유하
황실에 새로운 가족이 생긴 것은 큰일이었기에, 서둘러 잔치를 준비해야 했다.이전에 원 할머니는 숙왕부에서 자주 연회를 열면 안 된다며 경고한 적이 있었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에겐 고기를 많이 먹는 것이 좋지 않은데 연회라 그저 고기만 먹는 것이 아니라 술도 같이 마시게 되니 절제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 할머니는 큰 경사가 아니면 고기를 금지한다는 엄명을 내렸었다.하지만 제왕 부부가 딸을 낳은 지금은 큰 경사였기에 한 무리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기대하는 눈빛으로 원 할머니에게 허락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차례로 설득에 나섰고, 결국 원 할머니도 어쩔 수 없이 허락하며, 술과 고기의 양은 반드시 자신이 통제한다는 조건을 붙었다.그녀는 이제 숙왕부의 집사처럼 보일 정도로 나서서 제지했고, 그녀도 이 역할을 즐기는 것 같았다. 그녀가 가장 원하던 노후 생활은 존경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니 말이다.추 할머니의 병세는 약물 치료 후 조금 호전되었다. 병세가 더 악화하지 않았고, 진통제 주사의 빈도도 줄어들었다.사실 원경릉이 사용하는 약물이 병세를 억제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모두의 격려와 그녀의 강한 의지가 병세를 멈춘 이유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숙왕부 사람들은 이것만으로도 또 한 번 연회를 열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물론, 원 할머니는 단호히 거절했다.연회가 열리는 날, 원경릉도 참석했다. 그녀는 숙왕부의 활기를 또 한 번 느끼고 싶었고, 그 분위기가 역시나 그녀를 매우 기쁘게 만들었다.나이 든 늙은이들이 마련한 연회가 젊은 그녀조차도 활기를 느낄 정도로 생동감이 넘쳤다.고기의 양은 엄히 제한되었고, 채식 요리가 늘어났다. 원 할머니는 야채를 구워도 맛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었다. 다들 원 할머니의 말을 따르듯 채소를 먹긴 했지만, 여전히 제한된 고기를 서로 차지하려고 분주했다. 모닥불이 모든 사람의 기쁨 어린 얼굴을 비추고 있었고, 안풍친왕 부부도 직접 고기를 구워 열기를 더했다.식사가
며칠 뒤, 다섯째가 정말 아이를 데리고 궁에서 나왔다.원경릉은 이미 화를 풀었다. 그가 어찌 나쁜 마음을 품었겠는가? 그는 단지 딸과 단둘이 시간을 더 보내고 싶었을 뿐이었다.그리고 사실이 증명하듯이, 계란이는 무상황을 만난 후 아버지를 금세 잊어버렸다. 그녀는 무상황을 태조부라고 부르며 함께 뜰을 산책하고, 함께 식사하며, 얼굴과 손을 닦아 주고, 함께 바둑도 두었다.이때 택란이가 조심히 원경릉에게만 말했다.“어마마마,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이 돈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들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금이고 은이고 다 주려 한다면, 틀림없이 아주 사랑한다는 증거일 것입니다.”원경릉은 순간 자신이 이 사실을 잊고 지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 무상황의 계란이에 대한 애정은 누구보다 특별했다.예전에 그녀는 무상황이 계란이를 너무 편애하여 다른 왕비들이 질투해, 형제자매 사이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했었다.실제로 손왕비가 몇 마디 불평하며 약간 질투를 내비치긴 했지만, 미색이 바로 반박했다. “뭘 안다고 그러십니까? 이 금을 계란이에게 준다면, 앞으로 조정에 돈이 필요할 때 계란이가 가만히 보고만 있겠습니까? 손왕비나 제가 받았다면, 돈을 내놓으려 하겠습니까?”이 말에 손왕비는 순식간에 화를 가라앉히고, 곧장 원경릉에게 사과했고, 그 이후로 원경릉도 더는 걱정하지 않았다.우문호와 원경릉은 함께 정원을 거닐며, 안풍친왕의 자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섯째도 이 소식에 안도하며 말했다.“그들을 만나보고 싶소. 삼촌이라고 불러야 하오? 아니면 작은아버지라고 불러야 하오?”아직 그는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지 적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그들이 돌아온다고 들었지만, 언제가 될지는 모르오.”원경릉이 대답했다.“안풍친왕의 성격을 생각하니, 자녀들도 그를 닮았을지 궁금해졌소.”원경릉이 웃으며 여우 같은 한 가족이진 않을까 생각했다.안풍친왕의 자녀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지만, 원용의에게서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원용의가 아이를 낳았다.제왕은 아이를
“황조부님, 다섯째와 계란이가 왔습니까?”원경릉이 무상황에게 묻자, 무상황이 순간 하던 동작을 멈추고, 얼굴에 기쁨을 띄우며 말했다.“그들이 온다고? 그럼, 얼른 사람을 불러 음식을 더 준비하라 해서 둘이 술 한잔해야겠구나!”원경릉은 깜짝 놀랐다. 그의 말을 들으니, 그들 부녀가 아직 오지 않은 듯했다.그들은 그녀를 찾으러 궁을 나선 것이 아니었던가? 평소 바쁘던 그가, 오늘 이렇게 일찍 업무를 마쳤는데, 자신을 찾지 않았다면 대체 어디로 간 걸까?그녀가 궁을 나설 때, 그는 틈이 나면 왕부에 들르겠다고 약속했었다.무상황은 그녀가 말이 없자 물었다.“그래서 온다는 것이냐, 안 온다는 것이냐?”원경릉은 그들 부녀가 자신을 두고 나가 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안 옵니다.”무상황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그래, 무슨 계란이를 데리고 나를 보러 오겠느냐?! 쓸데없는 생각이구나.”그의 심기가 불편해지는 것 같자, 원경릉이 더 기분 상할 틈도 주지 않게 서둘러 그를 달랬다. “분명 온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일이 많은 탓에 아직도 바삐 보내나 봅니다.”“거짓이다!”하지만 무상황은 여전히 믿지 않았다.“계속 바쁘면 직접 오지 않고, 사람을 시켜 아이만 보내면 되지 않느냐? 그놈은 계란이가 이곳에 오면 궁에 가지 않을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계란이를 빼앗아 갈지 걱정해서지.”그럴 가능성도 있었다. 딸에 대한 다섯째의 애정은 언제나 독단적이었다. 심지어, 어머니인 그녀의 자리를 탐낼 때도 있었다.원경릉이 서둘러 화제를 돌리며 물었다.“왕비님께 자녀가 있다고 들었는데, 조부님께선 알고 계셨습니까?”“알고 있지.”무상황이 순간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 되물었다. “넌 몰랐단 말이냐?”“아무도 제게 말해주지 않았습니다.”원경릉은 억울해하며 답했다.“부부라면 자녀가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걸 일일이 말해줘야 하는 것이냐?”무상황은 그녀를 약간 어리석게 여겼다.“……”원경릉은 잠시 생각하다
원경릉은 추 할머니와 함께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뒤, 이리 나리를 몰래 끌고 나가 조용히 물었다.“왕비께 자녀가 있습니까?”그러자 이리 나리가 되물었다. “예이와 진이를 말하는 것이냐?”원경릉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네, 예이와 진이입니다. 그들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북당에는 없다. 하지만 스승님께서 이미 추 마마를 보러 오라고 하셨다는구나.”추 할머니와 왕비가 같은 세대 사람이였기 때문에 이리 나리는 항상 추 할머니를 마마라고 불렀다.“그들이 돌아온다니… 정말입니까?”원경릉은 순간 이유 모를 흥분을 느꼈다. 그들에게 자녀가 있다는 것을 몰랐을 때, 북당이 그들을 제대로 대우해 주지 않아,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한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그들에게 자녀가 있다는 말을 들으니 정말 기뻤다.“그래. 돌아올지 말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돌아올 것 같다고 생각한다. 사부님이 명을 내렸으니, 감히 거역하지 못할 것이다.”“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아마 다섯째도 만나고 싶을 것입니다. 어찌 그들은 친왕과 왕비의 곁에서 지내지 않는 것입니까?”“상황을 대충 알고 있지 않느냐? 사부님께서 한때 황태자가 될 뻔하셨다. 그래서 그들은 모습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무상황도 장인어른께서도 황위에서 물러나 다섯째가 황제가 되었다. 상황이 변했으니, 그들도 이제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혹시 그들이 너무 조심스러웠던 건 아닙니까? 굳이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될 것입니다.”원경릉이 답했다.이리 나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주 작은 위험이라도 있을 수 없다. 작은 일이 큰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니 조정에 폐를 끼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동안 일이 참 많지 않았냐?”원경릉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에 수많은 문제가 쌓여 있어 몇십 년 동안도 해결되지 않았으니, 굳이 더 많은 문제를 만들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자세히 생각하니, 북당이 그들에게 빚진 것이 참 많은
하지만 원경릉은 거절했다. 모두가 시중을 들지 않는데, 그녀만 시중을 데리고 오면 괜히 특별한 척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황후라는 신분도 숙왕부 사람들 눈에는 단지 어린아이처럼 보일 뿐이었다.그녀는 짐을 다 챙긴 후, 계란에게 아버지를 잘 돌보라고 당부하곤, 서일의 보호를 받으며 궁을 나섰다.그러자 사식이는 한숨을 쉬었다. 이제 막 궁에 왔는데, 원경릉이 다시 나가버리니 앞으로 심심한 나날을 보내야 할 자신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원경릉이 숙왕부에 도착했을 때, 이리 나리 부부도 추선을 방문하기 위해 와 있었다.이리 나리도 추선과 정이 깊은 사이었다. 공주는 원경릉에게 이리 나리가 어렸을 때부터 왕비가 키웠다고 말해 주었다. 처음에는 왕비가 아이를 키우는 법을 모르기에 대부분 추할머니가 그를 돌보았는데, 나중에 무예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도 추할머니 덕분에 엄한 왕비 곁에서 고생을 조금 덜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원경릉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군요. 왕비께서 아이를 낳지 않으셨으니, 아이를 키우는 게 익숙하지 않으셨겠지요.""듣자 하니, 왕비께서 아들과 딸을 한 명씩 낳으셨다고 하네. 열몇 살에 어디론가 보내셨다네.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리도 그들을 몇 번 보지 못했다고 하더군.""왕비께서 아이를 낳으셨다니요?"원경릉이 살짝 놀란듯 물었다."저는 아이를 데려다 키웠다고 들었습니다. 예전에 보친왕..."공주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아니네. 정말 아니네. 왕비께서 직접 낳으신 아들딸이네. 쌍둥이고, 나리보다 훨씬 나이가 많네.""그렇습니까?"원경릉은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과거 왕비 부부가 은거하고 지낸 탓에 자녀를 보지 못한 것이 이해는 되었지만, 최근 몇 년간 그들은 경성에 머물러 있었고, 자녀들이 찾아왔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관계가 아무리 나빠도 몇 년 동안 부모를 찾아오지 않을 수는 없을 텐데. 혹시나 부모와 자식 간에 어떤 갈등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 되었다. "그렇네. 나리가
추선의 방에서 나온 원경릉은 청우헌으로 가서 세 거두와 이야기를 나누고 혈압까지 재주었다.그녀는 그들의 말에서 추선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추선으로, 왕비의 옛 시녀였다. 그러나 가장 힘든 시절에 추선은 왕비와 왕부를 떠나지 않았고, 줄곧 평남왕 우문극을 돌봐왔다고 했다.그리고 그 두 명의 첩인 운 마마와 몽 마마는 실제로 왕비의 첩이라고 했다. 대체 왜 왕비의 첩이 되었는지 명확히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두 사람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그녀들은 이미 왕비의 첩으로 불렸다.세 거두는 추선의 병세를 물었다. 원경릉이 악성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자 충격을 받았다.현대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 그들은 ‘악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그들의 얼굴에 한순간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아, 원경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왕비의 시녀라 하셨는데, 잘 아시는 것입니까?”무상황이 말했다.“숙왕부에서는 누구의 시녀인지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매미도 시녀를 그만두고, 모두와 함께 고생했다. 평생 혼인도 하지 않고.”“매미요?”“네가 말하는 추선이다.”원경릉은 웃음이 터질 뻔했다.추선의 이름을 매미로 부르는 것도 어찌 보면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추선이 큰 병에 걸렸다는 소식은 숙왕부 전체에 퍼졌고, 많은 사람이 원경릉에게 그녀의 병세를 물었다.원경릉은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그렇게 침통한 표정을 짓는 것도, 누군가를 이렇게 걱정하는 모습도 처음 보았다. 평소 그들은 늘 차가운 태도를 보였고, 유일하게 열정을 보일 때는 식사 시간뿐이었으니 말이다.그날, 원경릉은 숙왕부에서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숙왕부의 식사 방식은 한 사람이 큰 사발 하나씩 받는 것이었다. 이날 집안사람들은 음식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아, 남긴 음식이 가득했다.이런 일은 전례가 없었다.원경릉은 이로부터 추선이 그들 마음속에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소요공에 따르면, 과거 추선은 적성루에서 음식을 배분하는 일을 맡았다고 했다. 고기를 얼마나 줄
“이전에 무슨 큰 병을 앓았습니까?”원경릉이 물었다.“폐결핵이었네. 의원을 불러 치료했지만, 몇 년 동안 건강이 계속 좋지 않았네.”왕비가 대답했다.“치료했던 의원의 능력이 뛰어났겠습니다. 누구였습니까?”“주진이요.”왕비가 말했다.주진의 이름을 들으니, 원경릉은 그녀가 왕비와 오랜 세월을 함께해온 자라는 것을 확신했다.원경릉은 초능력을 사용해 노파의 폐 상태를 감지했다. 결절과 섬유화가 있었고, 심지어 종양으로 의심되는 덩어리도 발견했다. 나이가 많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았고, 우선 약물을 통해 상태를 지켜보기로 했다.그저 악성이 아니길 바라며 기도할 뿐이었다.우선 링거를 놓고 산소를 공급하며, 스테로이드를 사용해 기관지를 확장해 그녀가 조금 더 편하게 호흡할 수 있도록 했다.약물을 사용하자 노파의 안색이 서서히 나아졌고, 호흡도 훨씬 수월해졌다.그러자 노파가 감사의 말을 전했다.“이렇게 숨을 쉬어본 게 정말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치료가 진행되는 동안, 두 명의 나이 든 여성이 방을 드나들었다. 다들 원경릉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기에, 왕비가 그녀들을 소개해주었다.“모두 수년간 나와 함께해온 사람들이네.”그러고는 잠시 망설이더니 말을 덧붙였다.“내 첩들이네.”그러자 원경릉은 자신이 잘못 들은건 아닌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의 첩인지 아니면 왕의 첩인지 궁금했지만, 차마 질문하기엔 입이 쉽게 열어지지가 않았다.잠시 후, 원경릉이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를 가리키며 물었다.“그럼, 이분은요?”“날 처음 모신 사람이네. 이름은 추선이야. 수십 년 동안 대부분 평남왕부에서 평남왕을 돌보며 지냈네.”왕비가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원경릉은 이해했다. 그들은 정말 이곳에 정착하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예전에 함께 지내던 사람들을 하나씩 데려와 함께 여생을 보내려는 것이었다.젊은 시절 함께 했던 사람들이니, 나이가 들어도 서로 곁에 머물고 싶어 했다.왕비는 원경릉과 함께 밖으로 나와 진지하게 말했다.“심각하다는 건
다섯째는 갑자기 마음이 불안해졌다.아이가 혼인을 올리지 않고 곁에 머무는 건 분명 기쁜 일이었고 효심이 있는 일이었지만 평생 결혼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외로울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만약 자기와 원경릉이 저세상으로 떠난다면, 그녀가 혼자 어떻게 지낼 수 있을까 싶었다.그렇다고 해서 혼사를 허락하자니, 세상에 과연 걸맞은 사내가 있을지 걱정되었다.택란을 그녀보다 못 한 사내에게 보내는 건 그녀에게 너무 큰 희생이다.다섯째가 갈등하는 것 같자 원경릉이 웃으며 그를 다독였다.“택란은 이제 여덟 살이네. 너무 앞서 생각하지 마오.”다섯째가 그녀를 흘깃 쳐다보며 말했다.“자네는 모르네. 시간이 정말 순식간에 흘러가네. 벌써 여덟 살이니, 7년만 지나면 성인이 되오.”그는 시간이 조금만 천천히 흘렀으면 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두는 게 좋소. 너무 멀리 내다봐도 소용없네.”원경릉은 그의 손을 잡고 살며시 깍지를 꼈다.“아이도 운명과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오. 만약 언젠가 자네만큼 훌륭한 남자를 만난다면, 그와 혼사를 해도 나쁠 게 없지 않겠소?”“그런 남자는 있을 리 없소!”우문호는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람이었다.하지만 이런 칭찬해도 우문호는 여전히 복잡해 보였기에, 원경릉은 자신이 그를 걱정하게 만든 것 같아 후회했다. 하지만 자신이 말하지 않아도 그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리 없었다.택란이 태어난 날부터 우문호에게는 새로운 적이 생겼다. 바로 택란과 혼인할 상대였다.그 적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몰랐지만, 그는 여전히 미워하고 있었다.더구나 금나라의 어린 황제가 혼사를 직접 언급했으니, 이제 그 적은 실체가 생겼고, 이에 따라 그는 한동안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었다.그 후 며칠간 택란은 매우 순진하고 착하게 행동했다. 아버지가 시간이 날 때마다 곁에 머물며 대화를 나누고, 놀고, 책을 읽고, 글씨를 쓰며 시간을 보냈다.어린 나이임에도 이미 아부하는 법을 터득해, 다섯째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 더 이상 화낼 수 없게 했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