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씨 가문의 별장.여운초는 여운별이 개들에게 쫓겨난 뒤로 겁을 먹고 달아나자 위층에서 내려와 소파에 앉았다.전이진은 그녀에게 따뜻한 물 한 잔을 가져다주었고 여운초도 물잔을 건네받으며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러나 마시지 않고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전이진은 과일을 씻어 먹기 좋게 잘라 정교한 과일 접시 위에 올려놓았고는 또 그녀가 좋아하는 간식과 그가 직접 만든 다양한 케이크를 가져와 다른 정교한 접시에 차려놓았다.그리고 그 음식들을 들고 와서 탁자 위에 올려놓았고 다시 여운초의 곁에 앉았다.“먹어봐.”“배 안 고파.”전이진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간식 같은 거 먹으면 기분이 좀 나아져.”“난 지금도 기분이 좋아.”전이진은 그녀의 얼굴을 가볍게 만지작거리다가 그녀의 예쁜 코를 톡 치며 말했다.“내가 운초 씨를 처음 접한 것도 아니고. 운초 씨가 어쩐 기분일지 난 다 알아.”여운초는 전이진의 어깨에 기대어 말했다.“난 여운별보다 여섯 살 더 많아. 운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난 이미 철이 들었어. 비록 그때 어머니가 나에게 좋게 대해주지 않았지만 나에게 여동생을 낳아줘서 마냥 기뻤어.”“여운별은 철이 들기 전에는 피부가 하얗고 부드러워서 사실 너무 귀여웠어. 난 이 여동생을 아끼고 사랑했는데, 매번 어머니가 운별이를 무척 귀여워하면서도 날 미워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난 정말 괴로웠어.”“어머니는 나를 여운별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했어. 부모님 모두 운별이를 손에 떠받쳐 키우면서 너무 예뻐하셨거든. 그 뒤로 천우가 태어나도 운별이는 여전히 많이 사랑을 받았지.”“그 뒤로 나도 점점 깨달았어. 나와 여운별은 자매사이고 같은 엄마가 낳았지만, 여전히 다르다는 걸. 운별이는 엄마와 아빠를 둔 아이였고 난 아빠가 없는 아이였어. 내 엄마는 곁에 계시지만 그 엄마는 날 사랑한 적이 없어.”“그리고 운별이가 점점 크면서 날 괴롭히기 시작했지. 내가 바보도 아니고 괴롭히는 걸 내가 당하고만 살 수는 없었어. 운별이는 날 이기지 못했고 그럴
“우린 자매고 한 가족 인인데 원수처럼 지내고 있어... 지금은 상황이 돌고 돌아 여운별이 처참하게 살게 되었지. 지금은 내가 복수할 능력이 생겼지만, 마냥 기쁘지는 않아. 오히려 너무 슬퍼.”전이진은 여운초가 친엄마 밑에서 비참하게 살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여운초는 그에게 과거의 일을 잘 알려주지 않았다.지금 여운초가 어린 시절의 일을 말하는 것을 듣고 있는 전이진은 화가 치밀어 이가 갈렸고 또 마음이 몹시 아팠다.그의 눈시울이 붉어졌고 말없이 눈물을 흘리는 약혼녀를 안타깝게 감싸 안으며 따뜻하게 안아주었다.“그래, 마음껏 울어. 모든 자매가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부모가 다 자애로운 것도 아니지. 어떤 사람은 부모 자격이 전혀 없어. 우리가 스스로 부모 형제를 선택할 수도 없기에 무정한 사람을 만날 때면 다만 멀리할 수밖에 없는 거야.”여운초는 휴지를 뽑으려고 했다.전이진은 이내 얼른 휴지를 꺼내 약혼녀의 눈물을 부드럽게 닦아줬다.여운초는 몰래 눈물을 훔쳤다. 그녀의 목소리는 쉬어서 잘 나오지 않았지만 강인함이 그대로 묻어나왔다.“다 지나갔어. 나는 이미 견뎌냈고 아버지 대신 복수도 했어. 아버지를 죽인 사람들은 모두 감옥으로 들여보냈으니 그걸로 됐어.”“여운별이 감옥에서 나와서 나랑 맞서 싸움을 해도 난 이제 두렵지 않아. 게다가 내 눈도 이미 회복되었기에 운별이한테 질 수도 없어.”그녀는 잠시 감개무량해서 생각이 많아졌을 뿐이다.그녀와 여운별은 비록 친자매이지만 여운별은 그녀를 언니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또 그녀를 언니로 받아들이지도 않을 것이다.여운별이 앞으로 무엇을 하든 여운초는 이제 그 모든 공격을 막을 자신이 있었다.지금 여운초는 이미 빛을 볼 수 있었고 여씨 가문을 확고히 장악하고 있으며 이미 매우 강해졌다. 그리고 그녀의 배후에는 전이진이 있는데 두려울 게 아무것도 없었다!그녀를 이 지경으로 해친 추미자도 감옥으로 들어갔다.여운별은 응석받이로 자란 사람이 아니었기에 두려워할 것
전이진은 가벼운 뽀뽀에 만족하지 못하고 아예 여운초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진한 키스를 나누었다.한참 뒤 전이진은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면서 말했다.“그래. 운초 씨만 믿을게. 운초 씨의 스타일은 나랑 너무 많이 닮았어. 우리는 천생연분이야.”“뻔뻔하긴.”“뻔뻔하지 않으면 운초 씨의 마음을 빼앗을 수 없잖아.”두 사람은 발소리를 듣고서야 서로를 풀어주었다.집사가 들어와서 두 사람 곁으로 다가가 공손히 말했다.“아가씨, 제가 이미 사람을 보내 몰래 둘째 아가씨를 따라다니라고 지시했습니다. 둘째 아가씨가 떠난 뒤로밖에 있는 경비원의 휴대전화를 빌려 전화를 한 통 하셨어요.”집사는 전화번호가 적혀있는 종이를 여운초에게 건네주었다.“둘째 아가씨께서 이 번호로 전화를 걸었는데 통화 시간이 너무 길지 않았어요.”정현숙의 새 휴대전화 번호가 적힌 쪽지를 받아든 여운초가 말을 이었다.“누구 번호에요? 여씨 가문의 친척들 번호가 아닌 것 같은데.”여운초는 고개를 들면서 말했다.“여운별의 행방을 계속해서 주시해주세요. 그리고 운별이가 어디로 갔는지, 누구와 접촉했는지, 들키지 않도록 해주세요.”이 전화번호의 주인이 누구인지 그녀도 곧 알아낼 것이다.집사가 공손하게 대답하고는 더는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도록 조용히 물러났다.전이진은 여운초로부터 메모지를 건네받으며 말을 건넸다.“이 번호가 누군지 내가 알아볼게.”“나 스스로 알아낼 수 있어.”“나 요즘 한가해. 심심한데 나한테 맡겨. 아니면 내가 자꾸...”전이진의 시선은 그녀의 몸 위를 몇 번이고 훑어볼 뿐 아무 말도 잇지 않았다.여운초는 얼굴을 붉히며 몇 마디 응석 부리더니 결국 도와달라고 부탁했다.전이진은 여운초가 한동호에게 도움을 청할까 봐 걱정했다.그녀는 이토록 작은 일을 한동호에게 도움을 받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스스로 해결할 수 있었으니까.“정 선생님께 저녁에 직접 요리를 해서 대접하려고 하지 않았어? 얼른 우리 리조트로 돌아가자.”전이진이 되물었다.“더 쉬지
그 소식을 들은 여운초는 전이진을 올려다보면서 웃으며 물었다.“정말? 지난번에 예정 씨한테 들었는데, 성씨 큰 사모님 출산일이 다음 달이라고 하던데 벌써 낳으셨어?”“보름 앞당겨졌대. 만삭이라 조산은 아닐 거야.”“날도 아직 이른데 먼저 병원에 가서 병문안하고 리조트로 돌아가자.”이경혜는 하예정의 친이모이기에 성씨 가문과 전씨 가문은 서로 친척인 셈이다. 성씨 큰 사모님이 아기를 낳았기 때문에 전씨 가문의 사람들도 가보아야 했다.“그래.”여운초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선물을 좀 준비해야겠어. 내가 금목걸이를 사놓았는데 지금 줄까? 아니면 한 달 때 줄까? 아기가 한 달 될 때 옷 몇 벌 더 사야 할 거야.”“선물 좀 준비해서 가져가면 돼. 나머지는 한 달 때 보내자. 금목걸이를 여러 개 준비했어?”여운초는 선물을 준비하러 갔다. 그녀는 영양제를 꺼내면서 말했다.“효진 씨 배 속에 아기 선물 하나, 예정 씨 아기 선물 하나를 준비하다가 아예 몇 개 더 사놓았어. 나중에 아기들이 또 태어나면 선물하려고.”전이진은 몸을 일으켜 보양식 상자를 꺼내 선물 주머니에 담는 여운초를 부드럽고 애틋한 눈빛으로 말했다.“그래. 몇 개를 더 사두면 좋지. 앞으로 우리 사이에도 아기가 태어날 테니까.”여운초는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다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아이를 낳는 일은 아직 일러. 정 선생님 말씀대로 내가 지금 임신이 어려워 1년 반 동안 몸조리를 해야 한다고 하셨잖아. 만약 다른 의사가 날 치료해준다면 5년은 더 조리해야 한다고 하셨어.”“괜찮아. 우리가 아기를 위해 미리 준비해 두면 좋잖아. 아기가 태어나면 작은 부자로 될 수 있으니까.”여운초는 웃고 있을 뿐 이제는 말을 잇지 못했다.엄마가 되려면 시간이 얼마나 흘러야 할지 모르기에 급하게 준비할 필요 없었다.선물을 준비한 여운초는 올라가서 옷을 갈아입고 전이진을 따라 집을 나섰다.전이진은 병원에 유청하를 방문하러 가는 김에 병원에서 여운초의 약을 지어주
“청하 언니.”여운초는 웃으며 침대 앞으로 걸어갔다.유청하도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운초 씨, 오셨어요? 얼른 앉으세요.”유청하는 여운초를 부축해 앉히려고 했지만, 여운초는 스스로 손을 뻗어 의자를 당겨 앉았다.유청하는 여운초 그녀의 동작을 지켜보다가 울고 있는 아들을 돌보는 것도 잊었다. 그리고 여운초에게 물었다.“이제 잘 보이나요?”유청하는 정겨울이 여운초에게 눈을 치료해 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사실은 잘 몰랐다.임신 말기에 정겨울은 병원에서 진찰을 받는 것 외에는 거의 외출하지 않았다.성기현도 아내에게 다른 사람의 일을 거의 말해주지 않았다.지난번에 시누이한테 정겨울이 여운초의 눈을 치료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고 말한 것 같았다. 유청하도 그 말을 듣고 정겨울이 확신한다면 더없는 좋은 일이라고 대답까지 한 기억이 있었다.다만 여운초가 너무 불쌍하다고 느꼈다. 그들은 모두 여운초가 다시 빛을 볼 수 있기를 바랐다.“네, 가까운 거리의 사물들은 잘 보여요. 하지만 먼 곳은 여전히 어렴풋이 보여요. 근시처럼요.”여운초도 부드러운 어조로 대답했다.“언니, 얼른 누워서 쉬세요. 제가 듣기로는 산후조리 기간에는 적게 앉고 많이 누워야 한다고 했어요. 아니면 허리가 아프다고 했어요.”“보인다니 정말 잘된 일이에요. 천천히 치료받으면 완전히 나아질 거예요. 나야 괜찮지만, 우리 아들이 너무 울어서 기현 씨가 어찌할 바를 몰라요. 일어나서 아기가 대변을 보았나 확인하려고 앉았어요.”여운초가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접한 유청하는 기쁘기만 했다. 그녀는 남편의 손에서 아들을 받아 안은 다음 아이를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아들의 기저귀를 검사하더니 입을 열었다.“정말 응가 했네요. 기현 씨, 기저귀 갈아줘요. 이 아이는 깨끗한 걸 좋아해서 응가만 하면 울어요. 그리고 또 미지근한 물로 씻겨주어 편안하게 해주어야 잠을 잘 자요.”모두 초보 엄마, 아빠였지만 유청하는 남편보다 더 능숙했다.성기현이 기저귀를 가져왔고 아들의 엉덩이
“정 선생님 의술은 정말 훌륭하죠. 이진 씨가 오기 전에 정 선생님께서도 오셨어요. 너무 바빠서 10분도 못 머무르고 떠났지만요.”정겨울은 예준하의 넷째 형수이고 또 성소현과 예준하가 커플이었기에 성씨 가문과 예씨 가문은 앞으로 사돈이 될 것이다. 하여 유청하가 아기를 낳았다는 소식을 들은 정겨울도 자연스레 아기 보러 병원으로 왔다.“맞아요. 또 환자들에게 진찰해 주어야 하니까요.”전이진은 늘 정겨울에게 감사했다. 정겨울은 의사 선배의 덕에 여운초의 눈이 이미 반쯤 치료되었다고 말했고 그녀가 여운초에게 약을 조금만 더 쓰면 여운초가 금방 빛을 볼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전이진은 여전히 감사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이진 씨와 운초 씨 결혼 날짜도 얼마 남지 않았죠?”“네, 얼마 안 남았어요.”결혼 이야기를 꺼내자 전이진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만발했다.“형수님은 언제 퇴원하세요?”“순산이라 이틀이면 퇴원할 수 있을 거예요.”전이진은 또 알았다고 대답했다.전이진과 성기현은 서로 나눌 얘기가 별로 없었다. 주로 과거에 성씨 가문과 전씨 가문은 서로 적대적 관계였기 때문이다.그 뒤로 하예정이 이모를 되찾은 후 친척 관계가 맺어지자 두 가문도 하예정을 위해 이전처럼 죽기 살기로 싸우지는 않았다. 그러나 두 가문이 서로 협력하거나 친구처럼 지내는 것은 불가능했다.가끔 뒤에서 서로를 찌르기도 했지만, 너무 깊게 찌르지 못했다. 하예정이 알게 되면 중간에 끼여 난처해지기 때문이다.두 사람은 곧 이야기할 거리가 없어지자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만 보았다.성기현은 전이진에게 물었다.“TV 볼래요? 제가 TV를 켜드릴게요.”“괜찮아요. 이따가 리조트로 돌아갈 거에요.”“네.”또 할 말이 없어졌다.다행히 여운초가 안에서 빨리 나왔다.아기가 잠든 후 그녀는 아기를 유청하의 옆에 눕혀 엄마 옆에서 자도록 했다. 아기가 더 오래 잘 수 있기 때문이다.여운초가 나오자 전이진은 몸을 일으켜 약혼녀를 맞이하러 일어섰다.여운초가 입을 열었다.“청하 언니가 쉬
성씨 가문 별장 대문 앞에 세 대의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선두에 선 그 차의 운전사는 경적을 울렸다.곧 집사가 나왔다.집사는 먼저 문을 열고 차창 앞으로 다가갔고 운전사가 제때 차창을 내리눌렀다.“누구를 찾으세요?”집사는 차 뒷좌석의 사람을 보았다. 늙은 여자가 앉아있었지만, 집사가 여태껏 본 적 없는 모르는 사람이었다.집사는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을 감히 별장 안으로 쉽게 들여보내지 못했다.그러자 운전기사가 대답했다.“우리 가주님께서 성씨 가문의 큰 사모님께서 출산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특별히 이곳으로 축하드리러 왔어요. 우리 집 가주의 성씨는 이씨 성입니다.”이씨 성이라고?집사는 조금 더 분명히 묻고 싶었지만, 갑자기 이윤미가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이 기억났고 집사도 무언가 깨달은 듯 다시 입을 열었다.“잠시만 기다리세요. 제가 들어가서 우리 사모님께 말씀드릴게요.”운전사가 고개를 돌려 이은화를 보았고 이은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운전사가 알았다고 대답했다.집사는 몸을 돌려 들어갔다.몇 분 후, 집사가 나왔다.집사는 별장의 문을 열어 이은화의 차가 별장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집사의 도움으로 이은화의 차량은 주차장에 잘 주차되었다. 이은화가 곧 차에서 내렸고 그녀의 경호원들도 뒤를 따랐다.“선물을 들여보내고 바로 나와. 내가 여기서 기다릴게.”이은화가 경호원들에게 엄숙한 어조로 지시를 내렸다.경호원들도 공손하게 대답했다.집사가 이은화 일행을 집안으로 모셨다.이은화는 급하게 방에 들어오지 않고 성씨 가문의 정원 환경을 둘러보다가 한참 후에야 집사를 따라갔다.화장한 덕에 이은화의 늙은 얼굴을 어느 정도 가릴 수 있었고 그녀의 얼굴에 쓰인 불쾌함도 잘 감추었다. 그러나 집사는 그 표정을 포착하지 못했다.이은화는 이경혜가 직접 마중 나오지 않아 조금 불쾌했다. 이은화는 자신이 귀한 손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게다가 그녀는 이경혜보다 나이가 많은 선배이기도 했다.비록 이은화는 이경혜가 자신의 조카딸이라고 백
이은화도 이경혜를 보면서 자신의 맏언니의 그림자를 찾으려고 애썼다. 듬직하고 세련된 분위기가 맏언니를 닮았다는 것 빼고는 외모는 별로 안 닮았다. 하지만 형부를 많이 닮았다.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유심히 살펴보면서 그 누구도 나서서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한참 후에야 이경혜가 담담하게 말을 건넸다.“앉으세요.”이은화는 몇 걸음 앞으로 다가가 이경혜의 앞에서 멈추어 섰고 이경혜에게 나지막이 말을 건넸다.“우리 형부를 많이 닮았네. 어렸을 적 넌 네 아빠를 많이 닮았고 네 동생이 우리 맏언니를 많이 닮았는데.”“무슨 뜻이죠?”이경혜가 냉랭하게 물었다.이은화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너도 이미 많이 알고 있다는 걸 나도 알아. 강성에서 돌아다니는 헛소문을 너도 모를 리가 없겠지.”전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은 강성에 오랫동안 머무르고 있었다.다들 이씨 가문 전임 가주의 두 딸이 관성에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그녀의 친딸까지 몰래 관성에 와서 그 일에 관해 조사했다.이은화도 그녀가 관성에 온 지 보름 만에 알아낼 수 있는 모든 것을 전부 알아냈다.주로 관성에서 이씨 성을 가지 사람이 많지 않았기에 연령대가 이은화의 조카딸에게 맞는 사람은 이경혜뿐이었다.게다가 이경혜의 젊은 시절의 위대한 업적으로 놓고 봐도 이은화는 의심할 필요 없이 이경혜가 바로 그녀의 조카딸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업계에서 장사하는 이경혜의 야무진 모습에는 맏언니의 그림자가 보였다.그 당시, 맏언니가 아이를 낳고 나서도 몸을 가누지도 못한 채 회사와 가족 일로 바삐 돌아쳐 이은화에게 부분적인 일을 맡기지 않았더라면 맏언니와 여동생을 쓰러뜨리고 가주 자리에 앉을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이경혜는 여전히 담담한 태도로 말했다.“알죠. 사람들은 모두 말하죠. 저와 제 여동생을 제외한 제 가족들이 모두 당신 손에 죽었다고. 그리고 제 이모도 당신 손에 죽었죠.”이은화의 표정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소파 앞으로 다가가 자리에 앉았다.그리고 경호원들에게 그녀가 가져온
하지만 하예정은 아직 용씨 가문 사모님과 여운별이 한자리에 함께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기에 그녀가 여운별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두 사람이 동시에 눈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 의혹을 완전히 떨쳐낼 수 없을 것이다.여운별은 애초에 하예정을 기다리지 않았다.지금 두 사람의 만남은 우연이어야 했다. 만약 그녀가 미리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면 너무 작위적으로 보였을 것이다.지나친 의도는 하예정의 의심을 부추겼을 것이다.하예정이 그녀를 조사하고 있다고 용태호가 알려준 적이 있었다.물론, 아무리 뒤져도 쓸 만한 정보는 나오지 않을 터였다.하예정은 이미 그녀가 여운별일 거라고 의심하고 있었다.여운별은 문득 가장 증오하는 얼굴이 떠올랐다. 언젠가 마주했던 언니의 목소리, 그 익숙한 울림이. 하예정의 의심을 부추긴 것은 분명 여운초의 말 때문일 것이다.하지만 다행히도 용태호는 능수능란한 사람이었다.하예정이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도록 만들었기 때문이었다.그녀가 찾아낼 수 있는 건 모두 그의 손끝에서 빚어진 허상일 뿐이었다.그러나 하예정이 심효진과 친밀한 사이라는 점은 우려할 만했다. 심효진은 소씨 가문의 며느리였고, 소씨 가문은 정보망이 촘촘하기로 유명했다.하예정이 누구를 조사하려면 소씨 가문의 손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하예정은 빈손이었다. 여운별이 여씨 가문의 둘째 딸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여운별은 마음 한편이 가벼워짐을 느꼈다.그리고 그 여유는 곧 그녀의 표정에 스며들어 하예정을 마주할 때면 그녀는 점점 더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었다.마치 자신이 진짜 용씨 가문 사모님인 것처럼, 여운별이라는 사람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듯 말이다.용태호는 그녀한테 내일 밤에 있을 연회에 두 명의 경호원과 함께 참석하라고 말했다. 용씨 가문 사모님의 신분으로 참석하라는 것이었다.그 연회에는 관성시 상류 사회의 귀부인들이 모일 터였다.전씨 가문의 명해은도 내일 밤 연회에 참석할 예정이며 며느리인 여운초도 데려갈
하예정이 자주 타는 차는 이미 집 앞에 멈춰 서 있었다.경호원은 우빈에게 차 문을 열어주곤 그를 차에 태운 뒤 안전벨트를 매주었다.하예정은 차에 올라타자마자 하이힐을 벗고 편안한 신발을 갈아 신고는 말했다. “우빈이 안전벨트 다 맸어?”하예정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아저씨가 우빈이 도와서 안전벨트 다 매주셨어요. 작은이모, 이제 출발하셔도 돼요.”하예정은 웃으며 고개를 돌린 뒤 시동을 걸었다.20분 뒤 두 대의 차가 유치원 앞 주차장에 멈춰 섰다.하예정은 차에서 내렸다.우빈이는 이미 스스로 안전벨트를 풀고 작은 책가방을 메고 있었다. 하예정이 차 문을 열자 우빈은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이모, 오후에 아저씨가 데리러 올 때 내 캐리어도 챙겨달라고 부탁해 주세요.”“집에 먼저 들르지 않을 거니?”하예정이 웃으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집에 가서 밥부터 먼저 먹고 갈래?”우빈은 큰 눈을 반짝이며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아저씨는 절대 나를 배고프게 하지 않아요. 아저씨랑 가면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 없어요.”우빈에게 있어서 노동명은 이미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였다. 아이에게 아버지는 언제나 거대한 나무와 같아서 그 곁에 있으면 세상 어떤 두려움도 사라지게 된다.하예정은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우빈이 노동명에게 전적으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하예정에게는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모른다.노동명과 하예진이 결혼을 한다면 세 사람은 분명히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될 것이다.하지만 이혼 후 아이를 홀로 키우며 재혼하는 여자가 가장 염려하는 것은 두 번째 남편 또는 그의 가족들이 아이를 받아들이지 않거나 받아들인다 해도 그 아이를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명과 그의 가족들은 우빈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해 주고 있었다. 그 사실이 바로 하예진이 노동명에게 마음을 열게 된 이유였다.노씨 가문은 노동명이 평생토록 우빈만을 아들처럼 생각하며 지내도 괜찮다는 마음이었다.비록 우빈은 노동명의 친아들이
“잘 자요.”하예정은 남편에게 조용히 인사를 건넨 뒤, 문을 살며시 닫았다.전태윤은 문 앞에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그가 먼저 서재에서 자겠다고 말했지만 아내에게 밀려 나가며 문이 닫히는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쫓겨난 기분이 들었다.전태윤은 콧등을 문지르며 어쩔 수 없이 서재로 발걸음을 돌렸다.그날 밤은 그렇게 고요하게 보냈다.다음 날 아침, 전태윤이 일어났을 때 그의 아내는 이미 일어나 있었다. 그를 위한 꿀물도 준비해 놓았다.“여보, 좋은 아침이에요.”하예정은 조카 우빈이가 아침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우빈의 작은 책가방을 들고 우빈이와 부엌을 나오던 참에 막 내려온 전태윤을 마주쳤다.그녀는 다정하게 인사를 건넸다.“꿀물을 준비했어요. 마시는 거 잊지 마요.”전태윤은 어젯밤 술에 취하지 않았지만 독한 술을 마셨던 기억이 떠올랐다.숙취로 인한 두통을 걱정한 하예정은 그를 위해 세심하게 꿀물을 준비한 것이다.전태윤이 이렇게 다정하고 배려 깊은 아내를 만난 것은 크나큰 행운이었다.하예정은 그렇게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다.“알겠어, 좀 있다 마실게. 오늘 꽤 일찍 일어났네.”평소에는 항상 그가 먼저 일어났었다.“네, 우빈이가 일찍 일어나서요.”“이모부!”우빈은 맑은 목소리로 전태윤을 불렀다.전태윤은 다가가 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유치원에서 말 잘 들어야 해.”우빈은 대답했다.“저 말 잘 들어요. 아주 잘 듣고 있어요. 선생님과 친구들이 저를 엄청 좋아해요.”“그래, 그래, 모두가 너를 좋아하고말고.”전태윤은 웃으며 우빈의 작은 얼굴을 가볍게 꼬집었다.우빈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그럼요, 남녀노소 누구나 다 저를 좋아해요. 관성에서 가장 잘나가는 어린이라고요.”하예정은 웃음을 터뜨리며 우빈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렸다.“그거, 지율 삼촌한테서 배운 거지?”전지율은“관성에서 내가 제일 잘 나가”를 늘 입에 달고 다녔다.우빈은 전지율과 자주 놀았기 때문에 그에게서 이런 말장난을 배운
“술 냄새도 별로 안 나요. 제가 잠들면 천둥이 쳐도 깨지 못할걸요. 이렇게 고생스레 서재에서 밤을 보낼 필요 없어요.”하예정은 그녀의 아랫배에 올려놓은 전태윤의 큰 손을 잡으며 말했다.“내가 샤워도 하고 따뜻한 물도 마시고 껌 두 알을 먹어서 술 냄새를 좀 없앴어... 창빈이가 그러는데 내 몸에 술 냄새가 심하다고 그러던데.”하예정은 작은 소리로 전창빈을 몇 마디 욕했다.전창빈은 진실만 말했을 뿐인데도 말이다. 전창빈은 전태윤이 입만 열면 술 냄새가 확 난다고 느꼈다. 그리고 전태윤 본인도 자신의 몸에서 술 냄새가 풍겨 하예정이 맡을까 봐 걱정한다고 생각했다.“창빈 도련님이 태윤 씨를 기다린다고 했는데. 만났어요?”하예정이 물었다.전태윤이 대답했다.“응. 원림성의 A시로 선우씨 가문에서 가정 요리사에 지원하겠다고 했어. 예정아, 할머니께서 창빈에게 골라주신 아내가 바로 선우씨 가문의 큰손녀 선우민아 씨라고 해.”“저도 알아요. 어머님이 이 사실을 얘기하자마자 우리 할머니가 창빈 도련님을 위해 아내를 정해주셨다는 사실을 눈치챘어요..”전태윤은 웃으며 말을 건넸다.“역시 내 아내답게 똑똑하네.”“저는 멍청하지 않거든요.”“그럼. 내 아내는 늘 똑똑하지.”만약 멍청하다면 전태윤의 마음에 들지도 않을 것이다.“우리 할머니께서 정해주신 사람은 전부 멀리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아요.”하예정과 여운초만 관성 출신이었다.전태윤은 한참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그렇다면 할머니께서는 나와 이진이를 가장 아끼셨구나. 우리에게 관성의 아내를 골라주셨잖아.”그는 말하면서 또 하예정의 입술에 몇 번 뽀뽀했다.전태윤은 사랑하는 아내를 침대에 데려가고 싶었다.그러나 아기를 위해 그는 또 애써 참았다.“이혁 도련님과 전우 도련님의 아내는 어디 분이세요?”“몰라.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어. 어차피 관성의 사람 아닐 거야. 요즘 두 사람 다 관성에 있는 걸 못 봤어.”전태윤은 하예정을 안고 밖으로 나갔다.그는 아내를 방으로 데려다주며 부드럽게 말을 건
“형, 너무 늦었어. 형도 힘들 텐데 그만 쉬어 나도 이만 돌아갈게.”전태윤과 얘기를 다 마친 전창빈은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전태윤이 말을 건넸다.“너무 늦었는데 여기서 하룻밤을 보내고 가. 묵을 곳이 없는 것도 아닌데.”전창빈이 말을 이었다.“안 멀어. 여기 방은 있지만 갈아입을 옷이 없어서 그래. 그리고 잠자리를 바꾸면 잠도 잘 안 오고.”전창빈은 장소를 옮기면 새로운 거주 환경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침대를 가리는 사람이 잠자리를 바꾸면 늘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곤 한다.전창빈의 개인 별장이 그리 멀지 않고 잠자리를 가리는 전창빈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전태윤도 더는 전창빈을 만류하지 않았다. 다만 그에게 천천히 운전하고 집으로 돌아가 문자를 보내라고 당부했다.“그럼 얼른 쉬어.”전태윤은 배웅하러 일어나지 않았다.전창빈이 멀리 떠난 뒤 전태윤은 물을 반 잔 더 마시고는 다시 몸의 냄새를 맡았지만, 여전히 술 냄새가 났다.그는 하예정에게 영향을 줄까 봐, 그녀가 깨어날까 봐 서재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그는 2층으로 올라가 자신의 방 입구로 돌아갔다. 그러나 문을 밀어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서 잠시 안을 바라만 보다가 몸을 돌려 서재로 들어갔다.하예정은 한밤중까지 자고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야 했다.자기 전에 우유 한 잔을 마시면 한밤중에 일어나곤 한다.화장실에 다녀온 하예정은 잠에서 깼다.그녀는 그제야 전태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침대 앞으로 돌아와 앉아 침대 머리맡에서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보니 이미 새벽 세 시가 넘었다.전태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단 말인가!‘돌아오지 않은 건가? 언제 돌아오는지 문자도 없고.’하예정은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한참 후에야 전태윤이 전화를 받았다.“여보, 아직 안 왔어요? 많이 바빠요?”하예정은 관심 있게 물었다.그는 예전에 아무리 바빠도 새벽에는 반드시 집에 돌아왔다.그러나 지금 새벽 3시가 넘었는데도 돌아오지 않는 이유는 사업에 관한 일이
장소민이 먼저 집으로 오고 그 뒤로 전현림이 또 왔다.그리고 자기가 사고 쳤다고 생각한 전창빈이 또 따라왔다.전태윤은 묻지 않아도 결과를 짐작할 수 있었다.전창빈은 잠자코 있다가 입을 열었다.“처음에는 동의하지 않으셨어. 엄마는 내가 이미 사업을 하고 있고 잘 경영하고 있는 데다 올해부터 가족 사업을 돕고 있는데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를 한다면서. 요리를 좋아하면 집에서 하거나 호텔에서 해도 되는데 굳이 가정 요리사로 일할 필요 없다고 생각하시거든. 근데 아버지는 날 지지해 주셨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면 된다고 하셨지. 그러다가 두 분이 서로 말싸움하다가 엄마가 이기지 못해서 홧김에 방에 돌아가셔서 문을 닫으셨거든. 아빠가 몇 번이고 오랫동안 문을 두드렸는데도 들어가지 못해서 엄마가 화가 좀 풀리면 다시 들어가려고 했어. 근데 엄마는 아빠가 떠난 틈을 타서 조용히 집에서 나와 형 집으로 오셨지 뭐야. 나랑 아빠는 엄마가 여전히 방에 계시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것도 엄마가 화가 풀리고 나서 아빠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야 엄마가 여기로 오신 것을 알게 됐어. 그래서 따라온 거고.”전창빈은 미안한 듯 계속해서 말했다.“부모님께서 항상 감정이 좋으셨는데 내 결정 때문에 불쾌하게 지내시니 내가 너무 불효자인 것 같아.”전창빈은 자신이 불효하다고 느꼈지만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로 지원하기로 한 결정을 포기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다.“부부싸움도 안 하는 부부가 어디 있겠어? 나와 네 형수님도 많이 다투었거든. 부부간에도 소통이 필요한 법이지. 한쪽이 막무가내로 나오지 않는 한 잘 얘기를 나누다 보면 금세 풀릴 거야. 우리도 그런 억지를 부리고 소통할 수 없는 여자와 결혼하지 않을 거야. 그런 상황도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을 거고.”전창빈은 전태윤이 그에게 말한 부부간의 관계에 관한 얘기들을 잘 듣고 있었다.전씨 가문의 어르신들은 모두 금실이 좋으셨다. 전창빈은 어릴 때부터 이러한 말들을 들으며 자랐기 때문에 사실 이미 부부 관계에 대한 일들에 대
잠시 후, 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할머니께서 나에게 임무를 맡기셨는데 나도 이제 움직이려고. 호영 형처럼 반년 동안 움직이지 않으면 아내를 얻을 수 없을지도 몰라.”전창빈은 그들이 동생으로 태어난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형들의 교훈을 잘 섭취하고 피할 수 있을 테니까.“할머니께서 골라주신 여인은 보통 성품이 좋은 사람이야. 너의 성격에 잘 맞게 골라주셨을 거야. 언제 출발하려고?”전태윤이 문득 물었다.“다음 주 월요일에 출발하려고. 이틀 동안 손에 있는 일을 먼저 정리하려고. 중요한 일들은 형에게 맡길게. 알아서 처리해 줘.”“그렇게 급해?”전태윤은 눈살을 찌푸렸다.전창빈은 약간 쑥스러워하며 말했다.“선우씨 가문은 A시에서 손꼽히는 명문가야. 그 가문에 들어가서 일하면 급여와 대우가 나쁘지 않을걸. 그리고 선우민아 씨가 입맛이 까다롭다고 하는데 수많은 사람이 가서 도전해 보고 싶어 하거든. 그곳에는 이런 말이 전해지고 있대. 가정 요리사가 선우씨 가문에서 석 달 동안 일하고 나오면 일자를 걱정할 필요 없고 반년 이상 버티고 나오면 큰 호텔들이 앞다투어 요구한다고 해. 몇 년 동안 일을 해도 해고되지 않는다면 아마 신으로 불릴지도 모르지.”전태윤은 실소했다!“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야? 그분 입맛이 그렇게 까다롭대?”“선우민아 씨뿐만 아니라 다른 몇몇 아가씨들 입맛도 까다롭대. 전부 먹는 것에 매우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라 요리 실력을 엄청 중요하게 생각하거든. 누군가는 일반적인 야채 볶음 하나에도 통과되지 못한다고 해.”전태윤이 피식 웃었다.“도전해 볼 만하군.”전태윤은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관심이 있는 건 아니라고 추측했다.어쨌든 사진만 보았을 뿐 실물을 본 적도 없고 함께 지내본 적도 없다. 전창빈은 그렇게 쉽게 마음이 흔들릴 남자가 아니었다.하지만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가 되는 것은 매우 도전적인 일이다. 마침 전창빈은 요리를 가장 좋아했다. 그는 아마 십여 년 동안 키워온 요리 실력으로 선우씨 가문의 요리사가 될
묻지 않아도 전창빈이 조금 전에 여기에서 TV를 보며 차를 마시고 간식을 먹으며 전태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전창빈은 곧 따뜻한 물 한 잔을 따라왔다.그리고 전태윤의 앞에 따뜻한 물잔을 내려놓고 옆에 서서 전태윤의 분부를 기다리면서 언제든지 시중을 들어줄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전태윤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앉아.”“고마워.”전창빈은 얼른 자리에 앉았다.“이렇게 예의를 갖추면서도 사고 치지 않았다고? 말해봐, 네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부모님께서도 의견이 안 맞으시다니.”“형, 나 정말 사고를 치지 않았거든. 그냥 원림성의 A시에 가보고 싶어서 그래.”“가서 뭐 하려고? 설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왜 그렇게 멀리 가려고 해? 집에서 설을 쇠지 않으려고? 할머니께서 아시면 네가 가장 먼저 얻어맞을걸.”설쯤에 전씨 할머니는 자손들이 모두 돌아와 온 가족이 오손도손 모여있는 것을 좋아하셨다.손자며느리가 몇 명 더 있으면 더 좋을 것이지만.이제 고현도 전호영을 따라 돌아올 것이다. 약혼할지는 아직 미지수였다.곧 약혼식도 치를 것으로 보인다.고현은 전호영을 위해 그녀의 여자 신분을 폭로해 그가 게이가 아니라는 오해를 풀어주었다.“나 가정 요리사에 지원하고 싶어. A시의 선우씨 가문에서 요리사를 채용하고 있는데 그 가문 아가씨의 입맛이 엄청 까다로워서 요구가 엄청 높대. 나도 도전해 보려고. 좋은 기회야.”전태윤은 눈살을 찌푸리다가 곧 물어보았다.“할머니께서 선우씨 가문의 딸을 정해주셨어?”원림성의 A시는 너무 멀다.아마 H시와 이웃 도시일 것이다.용정도 그곳 사람이었다.설마 전씨 할머니께서 그 진흙탕에 뛰어드실 계획인 건가...전태윤은 그의 전씨 가문과 예씨 가문의 사이가 가깝고 여운초의 눈도 예씨 가문의 정겨울이 치료해주고 있는 데다 또 성소현은 앞으로 예씨 가문의 다섯째 사모님으로 될 여자였다. 게다가 성소현은 하예정과 사촌 사이로 전씨 가문과 예씨 가문은 서로 얽히고설킨 관계가 되었다.앞으로 예
전태윤은 저녁 12시에야 집에 도착했다.그는 술도 좀 마셨지만 취하지는 않았다.전태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전창빈은 밖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리자 곧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전태윤의 차가 별장 입구에 도착하여 멈추었다.경호원이 차에서 내려 전창빈이 나오는 모습을 보고는 안부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곧 전태윤의 차 문을 열어주어 그를 부축하려 했지만 거절당했다.“안 취했어.”전태윤이 나지막이 말했다.“형.”전창빈이 몇 걸음 앞으로 나아가 전태윤을 부축하려고 손을 내밀었지만, 전태윤은 거절했다.“창빈아, 어쩐 일이야?”친동생을 본 전태윤은 매우 놀랐다.“술 한 잔만 마셨어. 취하지 않았으니까 부축해주지 않아도 돼.”“형한테 할 말이 있어서 기다리고 있었어.”전창빈은 여전히 전태윤을 부축해주었다. 전태윤의 술 냄새를 맡은 전창빈이 말을 건넸다.“독한 술을 마셔서 술 냄새가 많이 나네.”“이야기가 잘 풀려서 좀 마셨어.”전태윤은 집 안으로 들어가면서 자신의 옷 냄새를 맡아보며 전창빈에게 물었다.“술 냄새가 많이 나? 네 형수님이 술 냄새를 맡을 수 있겠지?”전태윤은 오늘 밤 서재에서 자야 할지도 모른다.하예정은 그가 술과 담배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때때로 그는 담배 한 대 피워도 껌을 씹어 담배 냄새를 제거한 후에야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의 아내가 냄새를 맡을까 봐 걱정했다.특히 하예정은 지금 그들의 사랑의 결실을 배속에 품고 있었다.그런 하예정에게 담배 냄새를 맡게 하면 더욱 안 된다.집에는 담배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그의 친구들도 그가 집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전창빈은 말을 잇기 모호했다.그가 하예정도 아닌데 그 냄새를 맡을 수 있을지 잘 몰랐다.전태윤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냄새가 나는데? 늦었는데 오늘 예정이를 방해하지 말고 서재에서 하룻밤 자야겠어.”전태윤은 문득 멈춰 서서 고개를 돌려 전창빈에게 물었다.“아까 우리 부모님 차를 본 것 같은데?”전태윤은 자신이 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