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으면 그저 그녀와 강이한의 대치이지만 말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그녀는 더 많은 파문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이 쪽 일이 좀 까다로워서 당분간은 못 돌아갈것 같아요. 돌아가면 만나러 갈게요.”“알겠어요!” 이유영은 거절하지 않았다.마음속으로는 박연준이 빨리 돌아오길 기도했다.박연준이 많이 보고싶다는건 아니다.그저 박연준이 출국한건 강이한이 벌인 짓이라 만약 돌아온다면 일이 해결되었다는 뜻이니까.전화 반대편에 있는 남자는 그녀가 거절하지 않자 오히려 어리둥절해했다. 그리고는 옅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걱정마요, 빨리 돌아갈게요.”“네.” 이유영은 내심 좋았다.그리고 둘은 더 말하지 않았다.하지만 통화할때 이유영은 이유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그리고 박연준과의 전화를 끊었다.잠시 생각한 이유영은 결국 정국진에게 전화를 걸었다.그쪽은 바쁜듯했다. 한참 뒤에야 전화를 받았고 주변은 조용했다.“나는 니가 크리스탈 가든에 도착하면 전화할 줄 알았어.” 전화 반대편의 정국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유영이 물었다. “큰 문제는 아니죠?”“큰 문제 아니야, 그냥 좀 귀찮아졌어!” 정국진이 아무렇지도 않다는듯 말했다.하지만 이유영은 여전히 긴장되었다.크리스탈 가든이 국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잘 알고있다.여기서 만든 주얼리는 해외 귀부인들 사이에서 특히 유행이다. 만약 크리스탈 가든이 이런 일을 벌였다면 어떤 영향력일지는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현재 소식은 모두 끊겼다.하지만 강이한이 이런 일을 벌였으니 그 뒤에 또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을지 누가 알까?세상에 바람 안 새는 벽이 어디 있을까!저번 생이든 이번 생이든 이유영이 가장 많이 겪은건 여론의 압력이다. 그건... 딱히 좋은 경험이 아니었다.세상에 사람이 몇인데, 그 입들을 어떻게 하나하나 막으리.“그쪽은 별일 없지?” 정국진이 이유영에게 물었다.이유영이 말했다. “걱정마세요, 별일 없어요!”별일 없다고는 했지만, 지금 강이한은…이어서 정국진이 말했다. “조민정
청하시의 바람은 비밀과도 같다!한지음은 강이한에 의해 강주로 보내졌고 두명의 하인에게 보살핌을 받고 있다!한지음은 아파트 로비에 앉아있었다. 오는 내내 길이 울퉁불퉁했고 어두컴컴했다! 새로운 환경에 도착하니 공기도 낯설었다.강서희가 베란다에서 전화를 받았다. “네, 알겠어요!”전화를 끊었다.눈빛은 매서웠다!이유영......! 끝까지 가보자는 거지?이유영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강서희도 강이한과 이유영이 이혼하기만 하면 그들이 끝날 줄 알았다.하지만 강이한이 그럴 줄은!강서희는 죽상을 하고 있는 한지음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문이 강서희에 의해 떨어질 뻔했다.하이힐을 신은 그녀는 온몸에 우아함을 풍기고 있었다!유일하게 그 기질과 어긋나는 것은 그녀 눈빛에 담긴 흉포함이었다.“넌 겨우 이 정도밖에 안돼!” 오빠가 결국 이유영과 이혼한 이유는 한지음한테 있다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아니었다!한지음이 퇴원한 후 강이한은 그녀를 만나러 온 적이 없다!한지음에 대한 보살핌도 강씨 집안에게 맡겼다! 오빠가 전에도 말했듯이 한지음에 대한 보살핌은 그저 한지석 때문이었다.이 말을 들은 한지음은 조롱 섞인 웃음을 지었다. “내쪽은 이미 다 정해뒀어. 지금은 이유영과 함께 있을테지?”“......”“강서희, 니가 아무리 발악을 해도 강씨 집안의 사모님이 될 수 없어!”짝! 한한지음의 말이 끝나자 강서희가 뺨을 때렸다.얼굴에는 손바닥 자국이 그대로 드러났다!“여기서 마지막 시간을 잘 즐겨!”“잠깐!”강서희가 몸을 돌리려는 그 때 한지음은 그녀를 향해 입꼬리를 올렸다. “지금 이유영을 강이한 곁에서 밀어낼수 있는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해?”“......”“유경원? 아니면 너?”“닥쳐!” 강서희가 매섭게 소리쳤다.그녀와 강이한의 사이는 금기와도 같았다!몇 년 동안 그녀는 자신의 계획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이 입밖에 내는것은 허락할 수 없었다.“돌아가서 잘 생각해봐, 응?
이 점에서 보면 강씨 집안은 한지음을 홀대하지 않았다.비록 다 강서희가 찾은 사람이지만 진영숙쪽에서도 전화가 왔고 이제 시작이라아직 밝히지 않은것들이 아주 많다.가만히 있을 그녀가 아니다.“핸드폰 좀 써도 될까요?” 한지음이 물었다.하인은 난감해하며 말했다. “죄송해요 한아가씨. 강아가씨께서 누구와도 연락하지 말라고 하셔서요.”이 말을 들은 지음의 얼굴에는 폭풍우가 지나갔다.강서희, 분명히 자기를 연금시킨 것이다.이 여자가, 무슨 자격으로?“알겠어요, 괜찮아요.”“아가씨가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말을 들은 하인은 드디어 한시름 놓았다.하인은 방금 주방에서 모든걸 목격했다. 그 강아가씨는 그리 착한 인간이 아니다.......두가지 의미다!오후내내 유영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지현우가 전화로 그 사람들이 떠났고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고 말했을때까지는.“그래요, 알겠어요.”“......”“지금부터는 하고있는 일 미뤄두고 이 휴유증들을 처리해줘요!”“알겠습니다!”전화가 끊겼다.유영은 물을 한모금 마시며 마음속의 급박함을 달랬다.정말 오늘 같은 일은 잘 처리하지 못한다면 아주 골치가 아플것이다.강이한이란 인간, 정말 독하다!조민정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이사장님.”“무슨일이죠?”“강도련님 곁에 있던 이시욱이 왔습니다.”이시욱!예전에는 줄곧 조형욱이었다.조형욱이 어디로 뭘 하러 간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강이한 곁에 있었던 사람은 이시욱이다.“들어오라고 하세요!” 유영은 탐탁치 않았다.하지만 이 시기에 강이한과 맞서면 안된다는 것도 잘 안다.조민정이 떠나고.이시욱이 들어왔다. 그는 공손한 어조로 말했다. “사모님, 도련님이 밑에서 기다리십니다!”“이시욱.”“네.””내가 그 사람이랑 이혼했다는걸 몰랐어?” 지금은 강이한에게 화풀이 할수는 없지만 그의 밑에 있는 사람이라면, 사양하지 않았다.하지만 이시욱이 말했다. “도련님이 본부하셨습니다.”이 강이한이!유영의 손에 쥐어져 있던 컵이 책상위로 세게 박혔다
유영은 지금 화가나는 정도를 넘어섰다!강이한을 마주한 지금, 마치 솜뭉치에 주먹을 날린것 마냥 가뜩이나 답답한 가슴이 더 답답해졌다!“원본 내놔!” 유영이 말했다.지현우와 통화할 때부터 내부 스파이에 대한 일을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가뜩이나 답답하니 내일 출근해서 물어보려 했다.강이한이 눈꺼풀을 젖히고 그녀를 쳐다봤다. 유영이 예전에 그를 대했던 편안함이 느껴졌다.“홍문동에 있어.”유영은 말이 없었다.차는 곧바로 홍문동에 도착했다.차에서 내릴때 시욱이 가방에 있는 물건을 꺼내 작은 봉지에 담아 강이한에게 넘겼고, 강이한은 유영에게 넘겼다.“결혼했는데 아직 친정 물건을 쓰다니, 다른 사람이 보면 뭐라 할거야!””잘난척은!” 유영은 봉지를 홱 잡아당겼다!”이 남자를 대꾸하기 싫었다.10년간강이한은 어떤 귀한 물건이든 모두 그녀에게 줬다. 하지만 당시 유영은 별로 떠벌리지 않았고 겸손한 그녀는 그 물건들을 좀처럼 쓰지 않았다.지금 하고 있는 사업이 아니었다면 그녀도 이렇게 하지 않았을거이다.그녀의 화난 뒷모습을 보며 강이한이 웃었다.바로 차에서 내리지 않고 그는 시욱에게 물었다. “이렇게 쪼그만게 전에는 어떤 용기로 나한테 대들었을까?”특히 할머니 생신날을 생각하면, 그때는 유영이 가장 심하게 소란을 피운 날이었다.그녀는 한번도 그랬던적이 없었다!마치......무슨 일에 쫓기는것 처럼, 아니, 단순하게 급한게 아니었던것 같다!더 나아가면, 그와 이혼을 하지 않으면, 목숨에 위협을 받는것 처럼?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스쳐갔을때, 강이한의 마음도 졸여졌다!......강이한이 안쪽으로 들어갔다.유영이 식탁에서 자기의 음식을 먹는것을 보았다. 운명을 받아들인것만 같았다.강이한은 그런 상태가 마음에 들었다.그는 앞으로 나아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둘은 마주 앉았다. 보기드문 오랜 평화로움이었다.“어때, 맛있어?”“난 안가려!” 유영은 대답하지 않았다.강이한이 피식 웃었다!“옛날에는 많이 가렸어!”그녀는 마치 곱게
그의 세상에서 다른 여자는, 중요할까?“만약에 내가, 한지음의 눈이 아직 희망이 있다고 말하면, 니가 나랑 여기서 실랑이 할 시간이 있을까?”강이한, “......”한지음의 얘기를 꺼냈다.강이한의 눈빛에 분명 이상한 점이 보였다.이 같은 모습에 이유영을 웃음을 터뜨렸다. “대체 언제부터, 다른 여자가 니 마음속에서 그렇게 중요해진거야?””유영아, 그 사람은 한지석의 여동생이야!”“너의 여동생이라고 말하는줄 알았네!” 예전에는 그랬잖아?그의 여동생이었다!그러기에 그녀가 무슨 짓을 하든 모두 험악한 짓이었다. “이유영!” 남자의 말투가 험해졌다. 그는 한지음의 얘기를 꺼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유영이 말을 꺼냈으니.그는 이어 말했다. “전에 있던 일은 말하고 싶지 않아. 너도 한지음이 이렇게까지......!”“강이한!”남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영이 말을 끊었다.그녀는 그를 바라봤다, 계속 바라봤다.“그럼 지금까지, 넌 그 일들을 내가 했다고 생각한거야, 맞지?” 사실 마음속에는 이미 답이 있었다.이 남자, 줄곧 내가 한 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이러면, 더 무섭잖아!그녀가 어떤 사람이든 그는 모두 받아들였다! 이건 이유영에게 굉장히 두려운 사실이었고 그녀도 이런 용납은 바라지 않는다.그녀가 원하는건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 믿어주는 남자였다.하지만, 분명히 강이한은 아니다!“내가 니 마음속에는 그런 사람이었구나, 그럼 니가 지금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이유영은 일어나 그릇을 식탁에 내리쳤다.강이한은 그녀를 바라봤다, 계속 바라봤다.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에는 위험과 위협이 공존했다.“원본 어딨어?” 이유영은 강이한과 더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군말없이 그와 함께 홍문동에 갔으며 그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목적은 분명했다.말이 끝나기 무섭게남자의 숨결이 차가워졌다.그녀는 신경 쓰지 않은채 계속 강이한을 바라봤다. 두사람은 마주보며 대치하고 있었다!!“따라와!” 결국 강이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쪽으
이유영은 바로 홍문동을 떠나지 않았다.그녀는 다실 쪽으로 가 정국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유영아!”“외삼촌, 저 파리로 돌아가고 싶어요!” 유영이 떠보듯 말했다.전화 반대편의 남자는 어리둥절했다.“무슨 일이야?””크리스탈 가든쪽의 일은 처리하는데 며칠 걸릴것 같아요. 외삼촌이 보고싶어서 가보려고요!”“괜찮아, 요즘 본부에서 일이 좀 생겨서 돌아와도 같이 있어줄 시간이 없어.” 전화 반대편의 정국진이 말했다.이 몇년간정국진이 이렇게 바쁜적은 없었다. 그러기에 지금 유영에게 이 말을 건낼때도 그는 어이가 없었다.유영이 눈을 질끈 감았다!강이한이 한 그 말의 뜻을 알것 같았다.그리고 유영은 그제야 깨달았다...... 강이한과 10년을 같이 살면 뭐해? 이 남자의 겉모습도 제대로 본적이 없는데.“그래요, 그럼 그쪽 일 다 끝나면, 제가 돌아갈게요!”“이제 두달뒤면 설인데, 그떄 들어와.”“그럴게요!”유영이 전화를 끊었다.온몸에 퍼지는 오한을 멈출수 없었다!눈을 감고 심호흡을 몇번해도 그 기운이 빠지지가 않았다.......위층 서재!남자의 하얀 손가락이 핸드폰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시욱에게 전화가 갔다!전화는 금방 걸렸다. “도련님.”“이유영이 누구한테 협박 받은적은 없는지 조사해봐!” 강이한은 생각할수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그는 모든 기억을 그 날 아침으로 미뤘다!이유영과 강이한이 싸운 그 날 아침.전날 밤까지만 해도 평소와 같았다. 그 날 밤에는 심지어 할거 다 했는데 이튿날 아침에 뜬금없이 이혼?하룻밤 사이에 사람이 바뀐것 같았다.그 이후로 이유영은 그와 이혼하기 위해 심지어 목숨을 걸었다.여기서 강이한은 의심을 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유영이 그 전에...... 분명히 어떠한 자극이나 위협을 받았을 것이다.“사모님을 협박할 사람은 없지 않을가요?” 전화 반대편의 시욱이 어리둥절했다.강씨 집안!그 집안은 크리스탈 가든에서 어떤 존재일까?대체 누가 감히 이유영을 협박할까
”외삼촌이 미 몇년간 바쁜적이 없었는데 방금 통화하니까 본부에 일이 생겼대! 무슨 일인지 알려줄수 있어?”이 일이 강이한과 관련이 있다고 이유영은 확신했다.그리고 바로 이 점이 그녀를 오한에 떨게 했다.이 남자, 능력이 대체 어디까지인거야?거기는 파리란 말이야!그의 손이 이미 파리까지 뻗어졌다고!?강이한이 말했다. “큰 문제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그냥 좀 바쁘기만 할거야.”“강이한, 이런 행동이 로열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아는거야 모르는거야!?”“니 외삼촌이 관리만 잘하면 바람이 새지는 않을거야. 그냥 바쁘기만 할거야. 그리고 니 쪽 일은 신경쓸 시간이 없겠지, 안그래?”너......”유영은 화가 머리 끝까지 차올랐다!지금 그녀는 그의 얼굴을 잡아 뜯고싶었다.그녀가 발작하려 할때 팔에서 힘이 전해지더니 한바퀴를 빙돌아 남자의 품으로 안겨졌다.가뜩이나 화가 난 유영은 더 화가 났다.“움직이지마.” 그녀가 발버둥을 치려할때 남자의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아기를 달래는듯한 목소리였다.하지만 강압이 살짝 들어간 달램이었다. “니가 말을 잘 듣지 않으면 그 사람들은 더 바빠질거야!”그 사람들!정국진, 박연준!박연준은 청하시에서 대체 어떤 사람일까?강이한이 그 쪽 사람들까지 건드릴줄은 몰랐다.“대체 그 사람들한테 무슨 짓을 한거야?” 유영은 너무 궁금했다.강이한이 무슨 짓을 한건지.무작정 정국진을 물어보지도, 그렇다고 박연준을 물어보지도 못했다.모두 똑똑한 사람들이었다!괜히 물어봤다가 그들이 이상한 낌새라고 눈치챘을가봐 걱정이 되었다.“유영, 너는 정말 똑똑해!” 강이한은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을것을 안다.역시, 그녀도 참을성 하나는 대단해.“근데 넌, 박연준과 정국진이 알게된다면 어떨것 같애?”유영의 눈커풀이 떨렸다!이걸 물어보네.온몸에 퍼지는 숨결을 누를수가 없었다.그녀의 모습을 본 강이한이 웃으며 말했다. “나쁘지 않아. 크리스탈 가든에서 일을 하더니, 역시 발전이 있어!”예전의 유영이라면
유영이 객실로 들어갔다!남자는 그녀에게 위협적인 눈빛을 주었다. 그녀는 결국 그들의 쓰던 안방으로 돌아갈수 밖에 없었다.익숙한 모든 것을 본 유영의 마음은 평화롭지 못했다.“정말 안 씻을거야?” 그녀가 방문앞에서 움직이지 않자 남자의 호흡이 그녀의 목에 닿았다. 놀란 유영은 온몸에 긴장감이 들었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눈에는 온통 증오로 가득찼다.저번 생에 강이한은 나를 이곳에서 불태워 죽였다. 그런데 이번 샘에서도 그녀를 못살게 군다니! 그들의 전전생에 그녀는 대체 이 남자에게 무슨 빚을 졌길래.이번생에 이런 수난을 당하는걸까.유영이 열 받아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르는 그때 핸드폰이 ‘지잉-’하고 울려 그들의 분위기를 깨뜨렸다.번호를 보니 소은지가 걸어온것이다.그녀는 전화를 받았다. “은지야!”“저녁에 순정동으로 돌아갔다며?”“응.” 지금 홍문동에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소은지가 걱정할까봐 무서웠다.소은지한테는 강이한이 그닥 좋은 남자가 아니였다!“그럼됬어, 나 먼저 잘게.”“응.” 전화가 끊겼다.거센 팔힘이 그녀를 품으로 안겨지게 했다. 그 순간...... 유영은 본능적으로 그를 밀어내려 했지만 남자에게 꽉 잡혀버렸다.“유영아, 정말 말 안들을거야?””강이한......” 그 순간, 유영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온 몸에서는 매서운 기운이 풍겼다.그녀는 그가 자신을 건드리는게 싫었다.그리고 강이한은, 그걸 눈치챘다!두 사람의 호흡이 무거워졌다. “보고싶었어!”“넌 나한테 이러면 안돼.” 유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녀는 지금 남자에게 한 주먹을 날리고 싶었다.그의 손에 대체 뭐가 들었길래! 박연준과 외삼촌이 연속으로 어려움에 처했는지 모르겠다.그녀는 할수없이 이 남자에게 잠시 굴복해야 했다.하지만 굴복한다고 해도 선은 지켜야 한다.그들사이에는 전생과 현생이 있는데 어떻게 예전으로 돌아갈수 있을까!?“내가 너 건드리는게 겁나?”, “왜, 응?” 그녀 몸의 떨림은, 강이한도 느낄수 있었다.그를
“나는 이제 유영이의 손을 놓지 않을 거야. 유영이 곁을 떠나지 않을 거야!”박연준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여진우는 눈썹을 치켜올렸다.박연준의 강한 의지가 담긴 말이었지만 여진우에게는 마치 농담처럼 들렸다.그는 냉정하게 말했다.“유영이를 붙잡고 싶다면 네가 그럴 만한 능력이 있는지 보여줘.”여진우의 말은 깊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박연준은 그의 말을 곱씹으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잠시 후 여진우는 병실로 들어갔고 복도에는 박연준만이 남았다.그의 눈에는 전에 없던 결의가 서려 있었다.그가 이유영에게 저지른 악행은 너무 많았다.하지만 이번에는 온 힘을 다해 그녀 곁을 지키고 싶었다.문기원이 박연준의 뒤에서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며 문기원의 가슴도 아려왔다.“선생님.”문기원은 다가가 박연준을 불렀다.“갔어?”“네.”“어디로?”“그게...”문기원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묻어났다. 박연준도 강이한이 정말 떠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는 강이한의 사람들이 모두 서주를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고 이온유도 함께 떠났다.하지만 어디로 떠났는지는 아는 사람이 없었고 그렇게 강이한은 정말로 이유영의 세상에서 모든 흔적을 지우듯 떠나버렸다.그런 떠남은 숨이 막히는 듯했고 동시에 고통스러웠다.“갔으니 다행이야.”한참 후, 박연준은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떠난 사람은 고통스럽지만 남아 있는 사람의 마음은 더 아팠다.강이한은 왜 이때 떠났을까? 아마도 어둠 속에서의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을 것이다. 하지만 박연준은 이유영 곁에 남았고 미래는 더욱 불확실했다....마취가 풀리자 이유영은 엄청난 고통에 신음했다.“아가씨, 의사 선생님께서 죽을 좀 드시라고 하셨어요.”“괜찮아요.”이유영은 온몸을 떨었고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여진우가 들어오며 고통을 참고 있는 이유영을 보고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갔다.“많이 아파?”“오빠.”“내가 의사 선생님께 진통제를 놔달라고 할게.”“괜찮아!”“너
그러니 그들과 거리를 두는 게 최선이었다.병원 복도에서 여진우는 박연준에게 담배를 건넸다.“병원에서는 담배 안 피워.”박연준의 말에 여진우의 손이 굳었다. 결국 그는 담배를 다시 담뱃갑에 넣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유영이 다 나으면 두 사람 이혼 서류 준비해.”여진우의 어조는 단호했고 그 말에 박연준은 머리가 멍해졌다. 그는 여진우를 쏘아보았고 그 순간 그의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다.“강이한이 떠났다고 해서 유영이가 네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여진우의 날카로운 말이 박연준의 마음을 꿰뚫었다.어젯밤까지만 해도 그는 이런 말을 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이유영은 수술 후 마취가 풀리면 엄청난 고통을 겪을 것이고 그 고통을 감수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여전히 모든 것을 견디고 있었다.그 이유는 바로 박연준과 강이한 때문이었다.“너...”“내가 이런 말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여진우는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그 미소는 차갑고 조롱 섞였지만 동시에 강렬한 힘이 느껴졌다.이유영의 세상에는 이제 그녀를 지키는 장벽이 생겼고 박연준은 더 이상 그녀를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과거 강이한의 세계에서 이유영은 혼자였다. 그녀의 세상은 강이한이 만들어낸 틀 속에 존재했고 그의 말이 법이었다.그러나 이제는 달랐다. 그녀의 곁에는 가족이 있었고 그녀를 보호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이제 누구도 그녀를 함부로 다룰 수 없었다.박연준은 숨을 깊이 들이쉬었지만 가슴속 답답함은 사라지지 않았다.“엔데스 가문은 지금...”“지금이 가장 중요한 순간이야. 위기의 순간이라고!”여진우는 그의 말을 가차 없이 잘라냈다.박연준은 할 말을 잃었다. 여진우의 말이 옳았다.그들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박연준이 대답하기도 전에 여진우는 덧붙였다.“엔데스 가문 하나쯤이야, 정씨 가문이 이유영을 지키려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어.”박연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처음 그가 이유영과 강제로 결혼한 이유는 그녀
여진우는 이유영을 계속해서 달래며 말했다.“무서워하지 마. 긴장 풀고 심호흡해. 응?”시간이 흐르면서 이유영의 불안한 감정은 점차 가라앉았다. 마치 맹수처럼 그녀를 괴롭히던 기억들은 여진우의 따뜻한 위로에 힘없이 사라져 갔다.그녀의 마음은 평온을 되찾았고 여진우 역시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수술이 시작되었다.마취 단계에 접어들자 이유영은 조심스레 물었다.“이식할 각막이 누구의 것인지 알려줄 수 있어?”그 말을 들은 여진우는 무의식적으로 강이한을 쳐다보았고 강이한 또한 그를 바라보았다.두 남자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공기에는 묘한 긴장감과 씁쓸함이 감돌았다.결국, 여진우는 시선을 돌리며 짧게 대답했다.“모르겠어. 기증받은 거야.”“그 사람은?”“죽었어.”여진우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와서 미련을 갖기엔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이유영은 조용히 그의 말을 곱씹으며 그녀의 몸에서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마취가 퍼지며 이유영의 의식이 흐려지는 순간, 여진우는 문득 물었다.“유영아, 만약 강이한이 처음부터 자기 각막을 너에게 주겠다고 했으면 받아들였어?”그 순간, 수술실의 공기는 얼어붙었다.강이한은 이유영을 바라보았고 그의 눈에는 고통이 가득했다.하지만 이유영은 점점 깊은 잠에 빠져들고 있었기에 대답하지 못했다.강이한은 이유영이 받아들이지 않았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녀는 그를 증오했고 혐오했다. 그의 것으로 여겨지는 어떤 것도 자신의 일부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이유영의 고집은 누구보다 강했다. 오랜 세월 동안 그녀가 연서의 그림자 속에 머물렀을지라도 그녀는 스스로를 지키려 애썼다.하지만 이유영은 몰랐다. 마지막 순간, 그녀는 더 이상 연서의 그림자가 아니었고 오히려 연서는 그녀의 기억 속에만 존재할 뿐이었다.강이한과 박연준 역시 그러한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었을 것이다....수술이 끝났다.수술실에 함께 들어갔던 두 사람은 각자 다른 길로 나왔다.마치 그들의 인생처럼, 이
자신의 오빠이자 가장 믿는 사람이 곁에 있으니, 수술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유영은 든든했다.“그래, 다행이야.”이유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녀가 긴장으로 몸까지 떨리는 모습을 보며 여진우의 눈에는 안타까움이 스쳤다.이런 감정은 여진우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는 그 감정을 기꺼이 받아들였다.그래서 이유영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더욱 부드러워졌다.“무서워하지 마. 내가 늘 곁에 있을게.”여진우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독였다.사실 이유영은 아직도 이 수술을 왜 꼭 용성시에서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파리에서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녀는 묻지 않았다.수술실에서.이유영은 이미 수술대에 누워 있었고 여진우는 약속대로 그녀 곁을 지켰다. 그리고 그 옆에는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다.소독약 냄새가 모든 것을 덮어버렸고 그녀는 주변을 제대로 구분할 수 없었다.하지만 여진우는 강이한을 보는 순간, 그의 눈빛이 복잡하게 흔들렸다.여진우는 알고 있었다.강이한이 이유영과의 관계에 마침표를 찍기 위해 이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것을.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정말 끝난 걸까?“오빠.”“왜 그래?”“무서워.”차가운 의료 기구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자 이유영의 목소리는 더욱 떨렸다.여진우는 그녀가 대기실에 있을 때보다 더 심하게 떨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심지어 말할 때도 그녀의 목소리에는 억누를 수 없는 공포가 묻어났다.“무서워하지 마. 오빠가 곁에 있어.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있으니까, 좀 편안하게 있어 봐.”“그래도 무서워...”이유영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 공포는 마치 그녀의 영혼에서부터 나오는 것 같았다.수술대 반대편에 누워 있던 강이한은 이유영의 말을 듣고 온몸이 떨렸다.그는 그녀의 공포가 왜 그런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박연준에게 자신의 곁은 지옥과 같다고 말했던 것이다.이유영은 강이한 곁에 있을 때, 단 한 번도 편안한 날을 보낸 적이 없었다.그의 눈앞
밤은 그렇게 평온하게 지나갔다.이유영은 깊이 잠들었고 여진우 덕분에 기분이 한결 나아졌으며 박연준과 강이한에 대한 불쾌한 감정도 점차 사라졌다.물론 임소미는 계속해서 이유영에게 전화를 걸어 곁에 가고 싶다고 말했지만 이유영은 가족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걱정스레 거절했다.하지만 사실, 그녀는 마음 깊숙이 가족들이 곁에 있어 주길 바라고 있었다.여자는 다 그렇다. 가장 힘든 순간에는 가족들에게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지만 또 한편으로는 가족이 곁을 지켜 주길 바라는 것이다.이유영은 편안하게 잠들었지만 몇몇 사람들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다음 날 아침, 그녀가 일어나기 전에 우지와 우현은 서둘러 아침 식사를 마쳤다.오늘은 이유영의 수술이 예정되어 있어 아침을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가자.”여진우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그는 조심스럽게 이유영을 품에 안아 일으켜 세웠다.“수술실까지 같이 가는 거야?”“응.”“박연준은?”“그가 보고 싶어?”“아니, 그런 건 아니야!”요즘 계속 박연준이 곁에 있었기에 갑자기 사라지니 자연스럽게 찾게 되었을 뿐이었다.하지만 박연준이 없는 것이 차라리 나았다. 그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유영은 계속 화가 났다.차 안에서도 이유영은 박연준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여진우가 온 이후로 박연준이 그녀에게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오빠.”“응?”“수술이 끝나면 나를 집으로 데려가 줘.”이유영은 집에 가고 싶었다. 월이도 보고 싶었다.그녀는 요즘 밤마다 월이를 그리워했다. 세상에서 자신의 아버지조차도 아이를 해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이유영은 더욱 두려워졌다.그런 세상 속에서 그녀는 아이 곁을 지켜주고 싶었다.그러나 그보다도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고 그 변화를 실제로 느끼고 싶었다.“물론이지.”여진우의 목소리는 따뜻했다.이유영은 조용히 미소를 머금었다.하지만 앞좌석에 앉아 있던 박
여진우는 마치 아무런 빛도 없는 건조한 사람이었다.과거에 강이한과 박연준은 그 면을 이용해 이유영을 협박했지만 지금은 그런 방법을 포기했다.강이한은 이미 포기했고 박연준은 그저 묵묵히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수술, 다 준비됐어?”여진우는 낮고 깊은 목소리로 물었다.그의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이 엿보였다.“그럼.”박연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실수는 절대 없어야 해.”여진우는 단호하게 말했다.“물론이지.”강이한과 박연준은 이번 수술이 이유영에게 다시 빛을 가져다줄 마지막 기회라고 믿었고 최고의 의료진을 준비해 어떤 문제도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했다.“그럼 다행이야.”여진우는 짧게 답했다.“너는 내일 여기 있을 거야?”박연준이 물었다.“맞아. 수술이 끝나면 유영이를 데리고 같이 돌아갈 거야.”박연준은 말없이 여진우를 바라보았다.이유영과 함께 돌아간다고? 이게 무슨 뜻인가?박연준은 지금 이유영의 남편이었다. 그들의 관계를 떠올리니 가슴이 답답해졌다.여진우는 그의 속마음을 읽은 듯 쏘아붙였다.“그런 생각은 하지 마. 만약 너희 사이에 희망이 없다면, 이제 그만 포기해.”그의 말은 날카롭게 박연준의 가슴을 찔렀다. 이미 답답한 가슴이 더 찢어지는 것 같았다.포기라고? 말은 쉽지만 실제로 포기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포기라니, 흥.”“포기 말고 더 좋은 방법이라도 있어?”더 좋은 방법? 없었다.“너와 그 녀석, 둘 다 유영이에게 어울리지 않아.”여진우의 단언에 박연준은 씁쓸하게 그를 바라보았다.“네 말이 맞아. 나도, 강이한도, 유영이에게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야.”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부터 이유영에게 접근한 목적이 순수하지 않았으니까.그들은 그녀에게 험난한 세상을 선물했고 그녀는 그 폭풍 속에서도 강인한 난초처럼 꿋꿋이 살아남았다.하지만 그들은 결국 이유영을 자신의 세계로 억지로 끌어들이려 했고 그녀는 더 거센 폭풍을 맞아야 했다.만약 자신들이 없었다면 그녀의 삶은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모이산의 코코넛 주스는 유명해서 파리 수도에서도 판매될 정도였다. 임소미도 피부에 좋다며 코코넛 주스를 즐겨 마셨다.“정말 신선하고 은은한 맛이네!”“원액 그대로라서 그래. 원래 이런 맛이야.”이유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응, 정말 맛있어.”코코넛 주스의 맛은 확실히 좋았다. 적어도 이제는 익숙해진 맛이었다.예전에는 하얀 색감과 끈적한 질감이 부담스러워서 선뜻 손이 가지 않았지만 이곳의 코코넛 주스는 맑고 달콤했다. 마치 자연 그대로의 신선함이 담겨 있는 듯했다.멀리서 강이한과 박연준이 광장 한가운데 펼쳐진 캠프파이어를 바라보고 있었다.“이제 가야 해?”강이한이 고개를 끄덕였다.“응, 난 먼저 갈게.”박연준은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게 막힌 듯했다.“안 가봐?”강이한이 물었다.“여진우가 곁에 있으니까. 이유영은 내가 안 가는 걸 더 좋아할 거야.”박연준의 목소리에는 씁쓸함이 배어 있었다.강이한은 자신과 이유영 사이에는 미래가 없다고 단정 지었지만 사실 박연준도 마찬가지였다.이유영은 박연준을 마주할 때마다 냉정했고 그의 접근을 극도로 거부하는 태도는 박연준의 마음을 서늘하게 했다.“다행히도 유영이의 곁에는 정씨 가문이 있어.”강이한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렇지.”박연준도 작게 중얼거렸다. 다행히도, 정씨 가문이 있었다.강이한은 전생을 떠올렸다. 그때 이유영은 어둠 속에서 혼자 남겨졌었다.그럼에도 그녀는 용감하게 이혼을 요구했다. 그가 곁을 떠나는 것이 얼마나 가혹한 일인지 알면서도 이유영은 주저하지 않았다. 그녀의 신념은 확고했다.한 번 넘은 선은 결코 되돌릴 수 없다는 듯,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단단한 갑옷을 두른 채 자신을 지켜냈다.강이한은 돌아서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박연준, 만약 나와 유영이 사이에 단 한 줄기 희망이라도 있었다면...”그러나 그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그럼에도 박연준은 이해했다.단 한 줄기 희망이라도 있었다면 강이한은 온 힘을 다해 이유영을 붙잡았을
“나랑 이유영이 사이에는 이제 아무런 미래도 없어. 그러니까 이제 포기할게.”강이한은 여진우의 품에 안긴 이유영을 잠시 바라보다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박연준은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답답해져 숨이 턱 막히는 듯했다.강이한은 진심으로 이유영을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더 이상 붙잡지 않고 온전히 그녀를 놓아주기로 했다.박연준의 가슴은 답답하게 조여오고 쓰라린 통증이 밀려왔다.저녁노을은 붉은빛을 띠며 마치 영원히 기억될 것처럼 아름다웠다. 강이한은 저 붉게 물든 노을처럼 이유영에 대한 모든 기억을 마음 깊이 새겼다.“내가 왜 수술을 내일로 잡았는지 알아?”“...”“나는 해 뜨는 아침의 유영이를 보고 싶었어. 희망 속에 빛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거야.”아침 해는 희망을 상징한다.그는 이유영이 희망 속에서 빛나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었다.“네 곁에 그렇게 오래 있을 동안 그런 모습 한 번도 보지 못했어?”“유영이에겐 절망의 순간들이 너무 많았어.”강이한의 말에 박연준의 온몸이 굳어버렸다.강이한의 말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지난 시간 동안, 이유영은 강이한 곁에서 수많은 절망을 겪었고 그 절망은 결국 그녀를 완전히 집어삼켰다.그 어떤 상황도 그 절망을 바꿀 수 없을 것이다.하지만 이제...내일 수술이 끝나면, 그녀의 미래는 희망으로 채워질 것이며 비로소 진정한 빛 속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강이한은 떠났다.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모닥불이 활활 타올랐고 우지와 우현은 들뜬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이유영은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여진우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활기찬 분위기가 가득했고 이유영은 모닥불이 뿜어내는 따스한 열기를 온몸으로 느꼈다.“입 벌려.”옆에서 여진우의 목소리가 들렸다.“내가 할 수 있어!”“입 벌려!”여진우의 목소리는 한층 더 단호해졌다.“...”결국 이유영은 조용히 입을 벌렸고 여진우는 적당한 크기로 자른 구운 고기를 그녀의 입에 넣어주었다.고
여진우의 품에 안기자 이유영은 마음이 금세 편안해졌다.정씨 가문으로 돌아온 후부터 이유영은 이런 안정적인 가족의 따뜻함을 온몸으로 느끼며 위로를 받고 있었다.“수술은 언제로 잡혔어?”“내일.”“그러면 여기서 같이 있어 줄게.”“좋아.”여진우가 곁에 있어 준다는 말에 이유영의 불안은 잦아들고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여진우는 이유영을 더욱 꽉 껴안았다.그는 이유영이 겪은 진짜 어둠이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 수술이 성공해도 그 고통은 평생 그녀의 가슴 속에 남을 것이다....맞은편 건물에서 강이한과 박연준은 나란히 서서 여진우 품에 안긴 이유영을 바라보고 있었다.강이한의 눈에는 슬픔과 씁쓸함이 서렸고 목소리는 이미 쉰 듯했다.“나는 유영이의 세상에 나만 있다고 생각했어.”“그래서 평생 너를 떠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그렇다. 무슨 일이 있어도 떠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강이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무슨 일이 있어도 어떤 상황이 닥쳐도 이유영은 절대 자신을 떠나지 않을 거라 믿어왔다.하지만 결국, 강이한의 생각은 틀렸다.이유영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도 강이한을 떠날 수 있는 사람이었고 게다가 지금은 그녀 곁에 가족들이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이상 용서는 거의 불가능했다.“내일 이후로...”박연준은 말을 멈추었다.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내일 이후로 어떻게 될까?내일 이후, 그는 이유영이 견뎌온 그 숨 막히는 어둠 속으로 떨어질 것이다.“내일 이후... 박연준, 유영이 곁에는 이제 네가 유일해!”강이한은 진심으로 결심했다.이유영을 떠나 박연준을 우천시로 보냈을 때부터 그는 이미 완전히 결심했다.이유영의 곁에서 떠나기로.“너 정말...”박연준은 불안한 마음으로 강이한을 바라보았다.강이한은 예전부터 세상에서 믿을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라 말해왔다.그런데 이제 와서 어떻게 마음을 쉽게 놓을 수 있었던 걸까?물론, 그럴 리가 없었다.그는 한때, 이유영과의 관계가 이렇게 변할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