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구안은 더 이상 방어에만 치중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적을 공격하기 시작했다.그녀는 갑자기 이전에 ‘피박쥐’ 고원처럼 철장에 매달려 위로 올라갔다.상대가 주먹을 위로 치켜올리자, 봉구안은 그의 손목을 움켜쥐고 몸 전체의 무게를 실어 내리눌렀다.그 과정에서 상대의 권법을 깨부수고 손목뼈까지 탈구시켰다.그리고는 자연스럽게 그의 살인 실을 빼앗아 목에 감았다.봉구안은 실을 세게 조여 상대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찰나의 순간, 관중석에서는 모두 숨을 죽이고 상황을 지켜봤다.누군가의 목이 떨어지는 모습을 간절히 기다리는 눈빛이었다.그러나 봉구안은 그들의 기대와 달리 상대를 간신히 기절시키는 선에서 멈췄다.“죽여라! 죽여!”“내 돈 걸었어! 재미있는 장면을 보여줘야 할 거 아냐!”관중들의 불만 섞인 고함이 철장을 울렸다.하지만 봉구안은 그 모든 소음을 무시하고, 차갑게 무대의 주최자를 바라보며 말했다.“다음 상대를 내놔.”주최자는 그녀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소환 승!”소욱은 긴장이 조금 풀린 듯 숨을 내쉬었다.이제 다음 도전자를 선발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무대에 도전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앞으로 나설 수 있었다.강림이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전진파 제자들에게 외쳤다.“뭐하고 있어? 빨리 나가야지! 너희는 남은 수들이 많잖아!”전진파 제자들은 그의 의도를 이해했다.그러나 명문 정파로서 그들은 정정당당히 싸우고 이기고 싶었고, 속임수를 쓰거나 억지로 나서기를 꺼려했다.하지만 이들이 반드시 봉구안을 이겨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그저 시간을 충분히 끌며 그녀를 더 강력한 적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목표였다.그 순간, 진한길이 황제와 함께 도전자 대열로 나서는 것을 보았다.그는 황제의 의도를 즉각 파악하고 그를 따라갔다.강림도 망설이다 이를 악물며 말했다.“죽으면 죽지! 최악의 경우 소환에게 지는 거겠지!”“부관장!”차선아 역시 앞으로 나섰다.그러나 주최자는 여러 사람 중 몇 명만 선발했고, 소욱은 결국 선택되
한 무리의 사람들이 고함을 쳤다.“보여줘! 보여주라고!”“제기랄, 우리 이렇게 많이 네 승리에 돈을 걸었는데 네가 기권하면 우린 다 쫄딱 망한다고!”“정원아를 어서 끌어내! 나도 그 여자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보고 싶으니 말이야!”봉구안의 한 마디가 사람들을 불안하고 동요하게 만들었다.사회자는 그들을 진정시키려 애썼다.“조용, 조용! 다들 조용하시오!”“여러분에게 보장하겠소. 정원아는 분명 살아 있으니 어서 진정하시오…”봉구안은 단호하고 냉랭하게 말했다.“정원아의 얼굴을 보지 못하면, 저는 경기를 포기하겠습니다.”그녀가 두 판을 연달아 이긴 후, 그녀에게 돈을 건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 포기한다면 그들의 이익에 손해를 끼치는 셈이었다.사람들은 그녀를 따라 외치기 시작했다.“정원아를 끌어내라!”“맞아, 안 그러면 우린 돈 돌려달라고 할 거야!”천 명에 가까운 관중들이 외치는 소리에 사회자는 얼굴이 창백해지며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갔다.그는 슬며시 자리를 떠나 비밀문으로 들어가 안쪽에서 상부에 보고를 올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다시 나타났다.“좋소. 우리 주인께서 말씀하시길, 정원아를 먼저 데리고 나와 여러분에게 보여줄 수 있다고 하셨소. 그녀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실 수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 보시오! 다만, 여러분들은 추가로 돈을 더 걸어야 할 것이오!”관중들은 일제히 환호했다.“좋아!”전진파의 사람들은 얼굴이 굳었다.그들 또한 정원아의 상태가 어떤지 알고 싶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높은 곳에서 다시 철창 하나가 내려왔다.이번 철창은 조금 작았다.안에는 하얀 옷을 입은 여인이 있었고, 그녀는 힘없이 구석에 기대어 있었다.철창이 땅에 닿자, 전진파의 제자들이 애타게 그녀를 불렀다.“원아! 정원아!”“사매님!”희미하게 정신이 든 정원아가 눈을 떴다.“다행이다, 부관장님! 사매가 아직 살아 있습니다!”사회자는 봉구안을 향해 물었다.“어떻소?”그는 곧바로 신호를 보내 철창을 다시 올리려
강림은 멍하니 우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평범하게 생긴 남자, 군중 속에 섞이면 금세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남자를…“무림맹이 처음 설립될 당시, 강호에 세 명의 악귀가 나타났는데, 우상이 바로 그들 중 우두머리였소.”“그들은 소림의 속가 제자로, 방화와 약탈, 강탈, 살인을 일삼으며 악행을 저질렀지. 무림맹은 이 세 사람을 제거하기 위해 숭화산에서의 결전을 벌였소.”“그 전투에서 무림맹은 합심하여 두 명의 악귀를 처치했지만, 우상의 무공은 너무 강해서 그만 도망치고 말았소.”“소환은 그 전투에서 중상을 입었고, 며칠 지나지 않아 우상은 동방세의 신부를 납치했소…”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강림은 그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여전히 몸이 오싹해졌다.평소 장난스럽고 가벼운 그의 태도와는 달리, 그는 잠시 멈칫하며 목이 메인 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저 놈은 동방세의 부인을 토막으로 나눠서 매일 한 조각씩 보냈었소. 그 일로 동방세는 거의 미쳐버릴 뻔하였소.”“나중에 소환이 우상을 찾아내 결투를 벌였지만, 그 싸움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오. 다만, 그 싸움에서 소환이 패배했다는 것만 알려졌소.”“소환은 원래도 부맹주라는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 싸움 이후로는 아예 무림맹을 떠나버렸소.”“그 후 몇 년 동안 동방세는 계속 우상을 찾아다녔는데, 오늘 여기서 저 놈을 보게 될 줄이야.”강림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갑게 변했다.그는 그 시절 겨우 열몇 살의 어린 소년으로, 무공도 대단치 않았고, 고작 곁에서 한마디 거들며 허세나 부리던 아이에 불과했다.그러나 우상의 잔혹함은 그의 두 눈으로 직접 본 것이었다.동방세의 부인의 죽음은 지금도 무림맹이 씻을 수 없는 치욕이었다.그것은 분명히 소환의 가슴 속 깊이 박힌 한 가시일 터였다.강림은 지금이라도 소환과 함께 우상을 죽이고 싶었다.그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소욱의 마음도 무거워졌다.그는 봉구안의 과거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그 모든 풍류와 연애는 그녀가 겪은 수많은
우상이 철창 안으로 들어섰다. 마치 자신의 집 마당이라도 되는 양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이곳을 시합장으로 여기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철창 문이 닫히고서도,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며 봉구안에게 물었다.“소환, 저것들 봐라. 니가 이길 거라 믿는 사람이 있긴 한 거지?”봉구안은 냉정한 얼굴로 대답을 삼켰다.그 순간, 철창이 천천히 끌어올려졌다. 땅에서 떨어진 철창은 하늘 중간쯤에 멈췄다.그 후에도 우상은 움직이지 않았다.두 손을 등 뒤로 깍지 낀 채, 마치 어른이 어린아이를 타이르듯 설교하듯 말했다.“소환, 넌 여전하구나. 아직도 저렇게 젊은 혈기로 설쳐대다니.”“이런 식으로 싸우면 안 되잖아.”“내가 네 속셈 모를 줄 아나? 네가 원하는 건 입맞춤 따위가 아니잖아. 너는 이 기회를 틈타 정원아란 계집을 구하려는 거겠지.”봉구안의 눈빛이 더욱 차가워졌다.둘이 철창 안에서 주고받는 말은 관중들에겐 들리지 않았다.우상은 그녀를 안심시키려는 듯, 부드럽게 속삭였다.“걱정 마라. 내가 굳이 이걸 폭로하진 않을 테니까. 그렇지 않으면, 이 싸움이 뭐가 재밌겠어? 반 시진 동안, 내가 쓰러지든지, 아니면 네가 죽든지... 난 이곳에서 너와 끝장을 볼 거야.”그가 머리를 살짝 기울이며 웃음을 지은 순간, 손에 힘을 모아 공격을 날렸다.봉구안은 날렵하게 몸을 비틀어 피했다.우상의 공격이 허공을 가르자,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으며 말했다.“오… 좀 실력이 늘었네?”이어지는 두 번째 공격.이번엔 번개같이 빠르고 맹렬했다.봉구안이 또 한 번 피했지만, 이번엔 처음처럼 여유롭지 않았다.우상은 여전히 웃었다.“보아하니, 실력이 꽤 늘었구먼.”그는 마음을 무너뜨리는 데서부터 싸움을 시작했다.관중석은 숨을 죽인 채 철창을 응시했다.봉구안은 우상을 보며 그가 저지른 모든 악행들을 떠올렸다.그녀의 분노가 타올랐다. 주먹을 꽉 쥐며 공격에 나섰다.그러나, 그녀의 주먹이 그의 몸에 닿자, 아파한 것은 오히려 그녀 자신이었다.
우상은 봉구안의 신념을 한 걸음씩 부수기 시작하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소환, 넌 세상의 악인을 다 없애고 싶다지만, 너무 순진한 생각이야.”“너는 이 지하 투기장이 존재하는 걸 조정이 정말 모를 거라 믿어? 여기 관할하는 관리 중에서 이걸 묵인하지 않은 자가 누가 있겠느냐? 왜 그럴까?”“그들은 돈과 권력을 원하니까, 그리고 치적을 쌓고 싶으니까.”“그럼 넌? 넌 또 뭐 때문에 이러고 있는 건데? 너 우리를 다 반짝이는 너를 돋보이게 하는 배경이라고 생각하지? 우리를 이겨서 더 많은 사람들이 너를 대영웅이라 칭송하기를 바라는 거겠지.”“하지만 내가 묻겠다.”“그렇게 말하는 정의란 도대체 뭐냐? 악인은 또 누구냐?”“내가 악인이라면, 죄악을 방조하는 조정은 악인이 아니겠냐?”“그래, 넌 날 죽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네가 사람 마음속의 악념까지 죽일 수 있겠느냐?”“내가 너한테 알려주지. 악념이 존재하는 한, 죄악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아.”“너 따위 필부가 뭔데 사람 본성을 상대로 싸운다는 거냐?”“넌 내가 악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도 선행을 해본 적 있다.”“예를 들면, 화살에 맞아 죽어가던 산토끼를 살려준 적도 있지.”“네가 말하는 ‘좋은 사람’들은 어떤가? 그들도 악행을 저지르지 않은 자가 누가 있겠냐?”“악념 하나 품지 않은 사람이 있겠냐? 칠정육욕 아래 완벽한 인간이란 없단다.”“소환, 넌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 엄격해. 그건 정의가 아니야…”철창 밖, 차선아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눈썹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소환, 제발 이겨야 해!’강림은 돈주머니를 단단히 움켜쥐고 속으로 빌고 있었다.‘제발, 소환만 무사하면 십 년 동안 뭐든 다 망해도 상관없어!’소환에게 돈을 건 관중들도 흥분하기 시작했다.그는 지금 우상에게 짓밟힐 위기였고, 사람들은 소리쳤다.“내가 쟤한테 돈을 걸었으면 안 됐어!”“야, 네가 이기라고 했잖아! 빨리 일어나라고!”“야, 이기든 지든 너무 보기 안 좋잖아!”“잠깐… 뭐야? 무슨 일이
우상이 죽었다.그의 몰락을 안타까워하는 이는 없었고, 사람들은 새로운 광란 속으로 빠져들었다.방금 전까지 망설이던 이들조차 연이어 소환에게 모든 것을 걸기 시작했다.강림은 온통 혼란스러웠다.이겼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비로소 눈을 떴다.그러곤 멍하니 물었다.“어떻게 한 거야? 소환은 방금까지만 해도 발밑에 깔려 있지 않았나?”멀지 않은 곳에서 차선아가 중얼거렸다.“살인사. 소환이 상대의 살인사를 썼어.”이미 의식을 차린 방민이 입을 열었다.“그뿐만이 아니야. 철선권도 썼어!”그래.그게 핵심이었다.살인사만으로는 상대할 수 없다.철선권은 살인사와 함께 사용해야지만 제대로 쓰일 수 있다.게다가 이미 사람들에게 노출된 살인사라면 단 한 번의 기회밖에 없었다.그리고 소환은 그 기회를 노렸던 것이었다.차선아는 자신이 부끄러워졌다.자신이라면 결코 시합 중에 상대의 기술을 관찰하고 복제하여 활용하지 못했을 것이다.이는 바로 그 유명한 말이 떠오르게 했다.타산지석, 나에게도 쓸 수 있는 돌이 될 수 있다.그리고 남의 창은 나의 검이 될 수 있다.철창이 천천히 내려왔다.소환은 그 안에서 우뚝 서 있었다.한 손에는 우상의 머리를 들고 있었다.그녀의 모습은 마치 곧은 소나무 같았고, 꺾이지 않는 지조를 지니고 있었다.마치 험난한 바위 틈새에서 자라는 능소화 같았다.어려움과 두려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꽃처럼 말이다.사람들은 환호했지만, 소환은 신경 쓰지 않았다.그들의 각양각색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철창이 완전히 내려오고, 문이 열리자 소환은 우상의 옷을 찢어 그의 머리를 감쌌다.그리고 여전히 충격에 빠져 있는 사회자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미인을 내놔. 내가 이겼잖아.”사회자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이토록 무서운 사람일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방금 전의 시합을, 관객은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그는 또렷하게 보았다.우상은 뛰어난 무술을 가졌고, 몰래 갑옷을 착용하여 칼과 창조차 통하지 않았다.하지만 소환은 정
봉구안이 시합에 오르기 전, 이미 도주 경로를 치밀하게 계획해 둔 상태였다.그녀는 스스로를 잘 알고 있었다.지금의 체력으로는 끝까지 버틸 수 없다는 걸.이런 식의 연속적인 시합은 애초에 공정이라 할 수 없었다.그래서 처음부터 그녀는 마지막까지 링을 지킬 생각이 없었다.이전까지의 시합은 단지 관중들이 그녀에게 돈을 걸게 만들고, 결국 투기장이 정원아를 풀어놓게끔 압박하기 위한 과정이었다.강림은 아직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전진파의 무리들과 함께 뛰고 있었다.속으로는 원망했다.‘소환, 이 녀석! 무슨 일이든 하기 전에 나한테 말이라도 좀 해줘야지!’그러나 봉구안은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었다.그녀가 혼자서 정원아를 납치한다면, 투기장의 모든 시선은 자신에게만 집중될 것이다.하지만 동료가 끼어들면, 동료가 많아질수록 함께 도망칠 가능성은 줄어들 뿐이었다.이 사실을 차선아는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그래서 그녀는 칼을 뽑아 추격에 나섰다.“뻔뻔한 도둑놈아! 우리 전진파 제자를 돌려놔!”강림은 그제야 모든 걸 깨달았다.“그렇구나! 저 녀석이 그 꽃 도둑놈이었어! 나도 속은 거야!”봉구안은 정원아를 품에 안고 투기장을 빠져나왔다.밖은 온통 칠흑 같은 어둠이었고, 여기저기서 희미한 빛이 반짝였다.그러나 그 빛은 금세 커졌고, 가까이서 확인하니 그것은 모두 투기장 경비병들이었다.그들은 이미 빠르게 모여들어 횃불을 높이 들고 그녀를 에워쌌다.안쪽에서는 또 다른 추격대가 다가오고 있었다.봉구안은 눈을 번뜩이며 재빠르게 정원아를 뒤쫓아 나온 차선아에게 넘겼다.그리고 우상의 머리도 함께 건넸다.“가! 내가 뒤를 막을게!”그녀는 이미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더 멀리 달아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차선아는 눈빛이 흔들렸다.하지만 이 순간의 봉구안은 예전의 소환과 하나도 달라 보이지 않았다.상황이 급박했기에 망설일 틈이 없었다.차선아는 단호히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정원아를 데리고 떠났다.전진파의 제자들
은육을 통해 몰래 지원군을 요청한 건 소욱의 지시였다.그 이유는 두 가지.첫째, 봉구안 때문이다.이 무자비한 투기장의 방식으로 봐선, 봉구안이 이기더라도 쉽게 투기장을 벗어날 수 없을 게 뻔했다.둘째, 백성들을 위해서였다.투기장의 잔혹함과 잔인함을 목격한 뒤로 소욱은 이미 결심했다. 이곳을 없애겠다고.이런 삐뚤어진 풍조를 방치한다면, 이는 곧 방조와 다름없으니까.태창의 수비대는 현재 황제의 얼굴을 알지 못했으나, 은육이 가지고 명패는 알아볼 수 있었다.해당 명패를 소지한 자는 지방 관리를 감찰하고, 지역 수비대를 지휘할 권한을 갖고 있었다.은육이 이끌고 온 수비대는 약 3만 명.수비대의 장수인 백효지는 장창을 손에 쥔 채 분노에 차 소리쳤다.“전원 무기를 내려놓고,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라!”“명령을 거역하는 자, 즉시 처단한다!”그리하여 병사 절반은 투기장의 관중을 포위하고, 나머지 절반은 투기장을 봉쇄하며 내부 인원을 체포하기 시작했다.봉구안은 이 상황을 보자 팽팽히 당겨졌던 긴장이 풀리는 듯했다.은육은 명패를 소지한 사람으로 가장하며, 소욱 일행을 군중에서 떼어내 안전한 곳으로 인도했다.소욱은 짙은 자주색과 검은색이 섞인 평복 차림이었다.겉보기엔 평범한 옷 같았지만, 고급스러운 소재가 그의 품격을 감추지 못했다.백효지는 황제의 얼굴을 알지 못했으나, 소욱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게다가 명패를 들고 있던 사람은 극히 평범한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황제일 가능성은 현저히 적었다.틀림없이 자신의 호위무사를 대신 자신에게 보냈을 터였다.수비대장인 백효지는 그제야 다가와 소욱에게 고개를 숙이며 정중히 말했다. “이곳은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먼저 역관으로 가셔서 편히 쉬십시오!”소욱은 곁눈질로 봉구안을 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걸을 수 있겠느냐?”봉구안은 대부분 가벼운 외상이었고, 걷는 데는 큰 지장이 없었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 괜찮습니다.”소욱은 다시 은육에게 명령
대하 사국 연합군은 조유관을 이미 손에 넣은 것처럼 자신만만하게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단춘은 통쾌한 듯 술 한 사발을 마시고는 노래를 불렀다."조유관, 조유관, 만 리 장풍이 슬픈 손님을 보내는구나! 곧 이곳은 대하의 조유관이 될 것이다!"그날 밤, 단춘은 황제에게 상세한 전황을 보고하며 동방 공격 준비가 완료되었음을 알리고 추가 병력을 요청했다.다른 세 나라도 본국에 추가 병력을 요청하며 이번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결의를 다졌다.남제의 화룡탄이 떨어졌으니 이제 겁날 것이 없었다.아무리 봉구안이 뛰어난 무예를 가졌다 해도 병력이 부족하면, 솥에 쌀이 없듯 능력이 무의미할 뿐이었다.단춘의 눈에는 승리에 대한 갈망이 가득했다."활과 석궁을 준비하라!""예, 장군!"그때, 한 다른 나라의 장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단 장군, 북연이 먼저 남제를 공격하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먼저 조유관을 공격하는 것이 너무 성급한 건 아닙니까?"단춘은 크게 웃으며 결정을 내렸다."북연이 이미 유리한 고지를 점했고, 남제를 무너뜨리는 것은 시간 문제다.""남제의 병력 배치를 이미 파악했으니, 동방 병력이 부족할 때 행동하는 것이 맞다.""그들이 대군을 파견하거나 화룡탄을 다시 생산하기 전에 움직이지 않는다면, 조유관을 공격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단춘의 결단에 장군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상황에 맞게 전략을 변경하는 것은 타당한 선택이라는 데 반대 의견은 없었다.하지만 일부 장군들은 계속 기다리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그 이유는 바로 동방에 주둔한 사령관 봉구안 때문이었다.그녀는 여성이자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을 지휘하는 천재적인 능력을 지닌 인물이었다.수많은 전투에서 소수의 병력으로 다수의 적을 물리친 기록이 많았고, 양 나라와 북연 모두 그녀의 손에 큰 타격을 입은 경험이 있었다.특히 양나라는 그녀에게 철저히 패배해 남제의 속국으로 전락한 상태였다.이런 상대를 과소평가했다가는 큰
봉구안이 동방으로 간 이후, 소욱은 매일같이 편지를 보냈다.하지만 그녀는 며칠에 한 번씩만 답장을 보냈다.그럼에도 소욱은 그녀를 탓하지 않았다.동방에서 적군과 싸우느라 제대로 된 식사나 목욕도 하지 못할 정도로 바쁠 텐데, 그런 와중에 답장을 보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하지만 진한길이 전갈이 없다고 보고할 때마다, 소욱의 마음 한구석에는 어쩔 수 없는 서운함이 남았다.그는 단지 그녀의 편지를 받고 싶었고, 그녀의 근황을 알고 싶었다.소욱은 이마를 손으로 짚으며 쓰린 눈가를 문질렀다.쉰 목소리로 물었다.“동방세의 상황은 어떤가?”그와 봉구안은 계획을 세워두었다.사방의 적군을 잠시나마 안정시켜 동방세가 거미줄을 개량할 시간을 벌어주려 한 것이다.이를 위해 그는 동방세에 많은 인원을 지원했다.진한길이 공손히 대답했다.“현재 절반 이상 완료된 것으로 보입니다.”소욱은 턱을 약간 들며 명령했다.“서둘러 끝내라고 전하라.”이번 전쟁은 남제의 존망이 걸린 일이었다.소욱은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었다.진한길은 머리를 숙이며 물러났다.……북방.북연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은 남제를 여러 차례 공격했지만, 서녀국이 동맹을 깨고 배신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북연 황제는 분노를 터뜨리며 앞에 있던 음식을 발로 걷어찼다.그의 눈은 분노로 가득 찼다.“서녀국이 감히 배신을 하다니! 남제를 정복한 후, 다음은 서녀국을 정복할 것이다! 나를 배신한 자는 절대 살려두지 않겠다!”다른 나라 장군들도 맞장구쳤다.“서녀국, 정말 간사한 자들입니다!”“정말 간교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런 자들은 오래전부터 망했어야 했습니다!”“황제 폐하의 명령을 따르겠습니다!”북연 황제의 눈은 차갑게 빛났다.“동방과 남방의 상황은 어떤가?”그는 다른 나라들도 서녀국처럼 배신하지 않을까 염려했다.“폐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하와 수화부는 결코 동맹을 깨지 않을 것입니다!”한 장군이 비꼬듯 말했다.“깨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싸우지도 않더군요.”
모용란이 천룡회와 결탁해 조묘에서 반란을 시도한 이후, 모용가는 황제의 미움을 사게 되었다.태황태후는 옥양산에 유폐되었고, 모용가는 더 이상 황제 앞에서 발언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그나마 성은이 하늘과 같아, 태황태후가 있는 옥양산을 방문하는 것만은 허락되었다.하지만 태황태후는 모용가의 후손들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젊어서부터 모용가를 위해 헌신했건만, 나이가 들어서도 그들은 그녀를 가만히 놔주지 않았다.이날 옥양산을 찾은 사람은 이미 세상을 떠난 조카 모용 대인의 정실 안씨와 몇몇 방계 후손들이었다.창백한 얼굴로 서 있는 젊은 후손들을 바라보며, 태황태후는 이번에는 단호하게 말했다.“내가 모용란에게 해를 입어 이렇게 되었는데, 아직도 나를 통해 뭘 얻으려 하는가?”“앞으로 더는 이 옥양산에 오지 말거라!”태황태후는 그저 조용히 불공을 드리며 평온하게 지내고 싶을 뿐이었다.안씨는 물러서지 않고 공손히 솜옷을 내밀며 말했다.“고모님, 조카 며느리는 그저 돌아가신 남편을 대신해 효를 다하려는 것뿐입니다.”“고모님께서 이 옥양산에 계신 모습이 너무 가엾어 솜옷을 지어 왔습니다.”“날씨가 추우니 부디 건강을 잘 챙기십시오.”“고모님께서 원하지 않으신다면, 앞으로는 감히 다시 찾아오지 않겠습니다.”태황태후는 솜옷을 흘깃 보며 냉담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안씨조차 그녀를 신경 쓰고 있는데, 정작 황제는 그녀의 생사조차 관심 두지 않았다.지금껏 황제는 그녀에게 사람을 보내거나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그녀가 저지른 잘못이란 단지 모용란을 잘못 믿은 것뿐인데, 그것이 그렇게나 큰 죄란 말인가?피는 물보다 진하다 했거늘, 황제는 그녀에게 무심하기 그지 없었다.“네 마음이 그리하다니, 물건은 두고 가거라.”밤이 되었다.모용가.안씨가 집으로 돌아오자, 몸종이 다급히 다가와 말했다.“부인, 모용욱 나리의 하인이 부인을 찾아왔습니다.”모용욱은 그녀의 남편 모용렴의 사촌 동생이었다.안씨는 큰 가문을 혼자서 지키며 많은 어려움을 겪
황성의 백성들은 언제나 소문에 민감했다.최근 황후가 동방으로 떠나 대하 사국 연합군을 10리나 후퇴시켰다는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졌다.비록 조정이 공식적으로 개선을 축하하지 않았지만, 백성들은 이미 기쁨에 겨워 있었다.골목과 찻집마다 이야기꾼들이 황후의 업적을 열심히 떠들어대며 분위기를 띄웠다."사국 연합군들이 남제를 공격한다니 처음엔 겁이 났었지만, 알고 보니 다 허세였잖아!""지금까지도 우리 국경을 뚫지 못하다니, 정말 우스운 일이야!""북쪽에는 용맹한 북영군이 있고, 양국이 우리 남제의 국경을 지키고 있잖아.""남쪽엔 서왕의 지원군, 서쪽엔 남산왕의 군대가 버티고 있어.""그리고 이제 동쪽은 황후 마마께서 굳건히 지키고 계시지!""전설적인 북대영의 장군이셨다고 하더라! 이 정도면 어느 나라도 우리 남제를 넘보는 건 꿈도 못 꾸지!""황후 마마께서 경관을 쌓아 적군을 위협했다고 들었어.""대하 사국 연합군이 조유관 근처에도 못 오고 쫓겨났대. 정말 통쾌하지 않아?""역시 황후마마는 사내들보다도 더 용맹하시네!""우리 남제에 이런 황후가 있다니, 참으로 큰 복이지!"좋은 소식은 끊임없이 전해졌다.그러던 중, 한 남자가 급히 달려와 큰 소리로 외쳤다."여러분, 큰일 났습니다! 서녀국이 배신했다고 합니다!"사람들은 깜짝 놀라 몰려들며 물었다."뭐라고요? 서녀국이 어떻게 했다는 건가요?"남자는 탁자 위로 올라가 목소리를 높였다."남제 서쪽에는 서녀국, 소주국, 정국 이렇게 세 나라가 있습니다.""며칠 전에 서녀국이 후방에서 기습을 감행해, 우리 남제 서방군과 함께 소주국과 정국을 앞뒤로 협공했다고 합니다.""알고 보니, 서녀국이 남제와 동맹을 맺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겁니다!""이제 서쪽 방어는 안심해도 됩니다!"사람들은 밝은 표정으로 이 말을 들었지만, 한 할머니가 그 남자의 옷자락을 붙잡고 의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젊은이, 그 말이 정말인가? 우리 남제가 정말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것이야?"사람들이 서
봉구안은 군의를 처형한 뒤, 그와 체격이 비슷한 사람을 골라 군의로 위장시켰다. 며칠이 지나자 예상대로 적국의 첩자가 나타났다.그 첩자는 군의를 찾아와 봉구안에게 독이 든 약을 먹이려 했지만, 미리 잠복해 있던 은위들에게 현장에서 체포되었다.그가 입 안에 숨겨둔 독낭까지 제거해 스스로 목숨을 끊지 못하게 한 뒤, 곧바로 봉구안 앞으로 끌려왔다.왜소한 체구에 평범한 외모를 가진 이 첩자는 보기에 매우 볼품이 없었다. 그러나 눈빛만큼은 남달랐다.비록 체포된 상황에서도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침착하게 바닥만 응시한 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봉구안은 그를 잠시 살펴보더니 차갑게 명령했다.“조유관 밖으로 내쫓아라.”심문도, 고문도 없이 그냥 풀어주라는 뜻이었다.은삼을 비롯한 은위들은 어리둥절했다.심지어 첩자조차도 잠시 흔들리는 눈빛으로 봉구안을 바라보았다.그는 그녀가 정말 자신을 무사히 풀어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그는 이 사실을 차마 믿을 수 없었다.결국 전쟁 중에 적국의 첩자를 풀어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발각된 첩자는 죽음을 면할 수 없는 것이 보통이었다.그러나 봉구안은 더 이상 그를 쳐다보지 않고, 다시 병법도가 그려진 모래판을 바라보며 말했다.“단 장군에게 내 말을 똑똑히 전해야할 것이다. 이런 허튼 수작을 부릴 바엔 차라리 대하로 숨어버리라고 전하거라.”첩자는 잠시 머뭇거리다 손을 꽉 쥐고 답했다.“알겠습니다.”은삼은 여전히 그 첩자를 풀어주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는 은이를 바라보며 뭔가 말을 해달라는 눈빛을 보냈다.하지만 은이는 개꼬리풀 하나를 입에 문 채 태연히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여유로운 태도를 보였다.결국 은삼은 황후의 명령에 따라 첩자를 조유관 밖으로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이를 마친 뒤, 은삼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마마, 어째서 호랑이를 다시 산으로 돌려보내시는 겁니까?”그는 황후를 따른 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냉혹하고 결단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충분
서왕은 순간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남강왕이 남제가 다른 의도를 품고 있을까 염려하며, 그를 인질처럼 붙잡으려는 의도가 분명해 보였다.서왕은 남강왕 앞에서 완부옥의 손을 잡으며 침착하게 말했다.“폐하의 말씀대로 제가 3만 대군과 함께 이곳에 머물며 적을 막아야 하는 것이 옳습니다.”“폐하, 부인과 함께 남강에서 아기의 탄생을 기다리겠습니다.”완부옥은 능숙하게 서왕의 팔짱을 끼고 그의 어깨에 기대며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전하~ 이렇게까지 절 생각해주시다니, 정말 감동이에요.”그녀는 연기에 몰입한 나머지, 서왕의 팔에 살짝 닿은 자신의 움직임조차 의식하지 못했다.서왕은 그녀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뜻밖의 접촉에 몸이 굳고, 귀끝이 살짝 붉어졌다.남강왕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서왕 내외가 이렇게 화목하다니, 참 보기 좋구나.”“좋다! 남제의 3만 병력이 남강에 들어와 적과 함께 싸우는 것을 허락하마.”서왕은 황제와 친형제처럼 가까운 사이였기 때문에, 서왕이 남강에 머물러 있는 동안 3만 병력이 갑작스럽게 행동을 취할 가능성은 적었다.더구나 서왕의 안전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이유로, 남제 역시 남강을 함락시키는 일을 벌일 가능성도 거의 없었다.황혼 무렵, 완부옥은 서왕과 함께 남강에서 머무는 자신의 거처로 돌아왔다.그녀는 걸음을 맞추며 서왕에게 조심스레 물었다.“전하, 남강왕을 만나고 나면 곧바로 남방으로 돌아간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요?”서왕은 침착하게 대답했다.“상황이 바뀌었소.”“아이가 남제 음식은 잘 먹지 못하고, 남강 음식을 더 좋아하지 않소?”“여기 있어야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고 생각하오.”완부옥은 예상치 못한 답변에 살짝 놀랐다.그는 초기 계획을 변경하고, 공사를 명목으로 남강에 머무르기로 결정한 것이 분명했다.“폐하께서 이렇게 하도록 허락하실까요?”서왕은 단호하게 대답했다.“황제께서는 나에게 남방 방어를 맡기셨소.”“남강이 첫 방어
완부옥은 서왕이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는 모습을 예상하지 못했다.그녀는 가볍게 웃으며 변명했다.“아이를 놀라게 할까 봐 그런 거예요~”정말이지, 별난 상황이었다.서왕이 왜 갑자기 아이에게 그렇게 집착하게 됐는지 그녀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서왕은 여전히 의심의 눈빛으로 완부옥을 쳐다보며 물었다.“정말로 내게 숨기는 게 없소?”완부옥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없습니다.”그는 원래 남자를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지 않았던가?오히려 남자를 찾아 시간을 보내는 게 나을 텐데, 왜 그녀의 뱃속 아이에게 이렇게 집착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그녀가 계속 이 아이를 처리하지 못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서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아이도 피곤할 터이니 이만 쉬도록 하시오.”그제야 완부옥은 서왕의 행동이 왜 그렇게 이상하게 느껴졌는지 깨달았다.이번 여정 내내 그는 ‘아이가 밥을 먹어야 한다’거나 ‘아이가 쉬어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곤 했다.그는 그녀를 그저 아이를 담는 그릇 정도로 여기는 것 같았다.‘이런, 죽일 놈의 남자!’……이틀 후, 완부옥은 서왕과 함께 남강 국경에 도착했다.서왕은 그녀를 따르며 길을 나섰다.최근 남강은 외세의 침략 위협에 직면해 있었다.수화부의 연합군이 다시 침공을 시도하며 남강과 남제를 동시에 공격하려 했고, 남강은 그야말로 벼랑 끝에 몰려 있었다.서왕이 남강과의 연합 방어를 논의하기 위해 온다는 소식을 들은 남강왕은 반갑게 맞이했다.왕궁 내, 남강왕은 성대한 연회를 준비해 서왕 부부를 환대했다.완부옥은 오랜만에 남강 전통 음식을 보자 벌써부터 군침이 돌았다.그녀가 술잔을 들려 하자, 서왕이 손으로 막으며 말했다.“아이가 있는 몸이니, 술을 마셔서는 안 됩니다, 부인.”완부옥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아이, 아이, 또 아이!그녀는 결국 입맛을 다신 채 술잔을 내려놓았다.‘견뎌야 해!’남강왕은 서왕을 찬찬히 살피며 칭찬했다.“어린 나이에 이토록 큰 업적을 이루다니, 정말
단춘은 사국 연합군의 지휘를 맡아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그는 봉구안이 조유관을 지키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봉구안은 뛰어난 군사적 역량을 지닌 인물로, 북방 양국을 속국으로 만들 정도의 힘을 갖추고 있었다.더군다나, 어제의 전투에서 단춘의 군은 큰 타격을 입었다.‘경관을 쌓는다는 건 단순히 상대를 죽이는 것을 넘어, 그들의 사기를 완전히 꺾겠다는 뜻이겠지. 반드시 저 여자를 제거해야만 해.’단춘은 마음을 굳혔다.부장은 그를 안심시키며 말했다.“장군, 걱정 마십시오. 우리가 관내경을 제거했듯이, 남제 황후 역시 우리 첩자들을 통해 충분히 없앨 수 있을 것입니다.”하지만 단춘은 남제 사람들이 퍼뜨린 비아냥 섞인 시가 떠올라 기분이 좋지 않았다.‘양고기를 먹는 게 몸 냄새를 가리기 위해서라니. 그 놈들, 정말 끔찍하게도 괘씸하군!’그는 냉랭한 목소리로 부하에게 명령했다.“그 여자뿐만 아니라, 날 조롱했던 그 어린 놈까지 없애버려야겠다.”“알겠습니다, 장군!”부장은 단춘의 명령에 힘차게 대답했다.……그 시각, 남부 지역에서는 서왕과 완부옥이 남방에 도착했다.현재 남방은 자연적인 요새 역할을 하는 방어 지형과 함께 서왕이 이끌고 온 5만 대군 덕분에 철벽같은 방어선을 형성하고 있었다.서왕은 완부옥을 객잔에 머물게 하고 자신은 군영으로 향했다.부부였음에도 함께 머무는 일은 없었다.완부옥으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완부옥은 이번 여정 동안 서왕의 지나친 친절과 그녀의 배 속 ‘아이’에 대한 과도한 관심이 점점 더 부담스러워졌다!그녀는 여러 차례 사고를 가장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그 아이를 없애려고 했으나, 서왕이 한 순간도 그녀를 놓지 않고 감시하는 통에 시도조차 어려웠다.‘정말, 미칠 노릇이군!’밤이 깊었고, 완부옥은 서왕이 객잔에 돌아오지 않을 거라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려던 참이었다.그런데 익숙한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부인께서는 저녁을 먹었느냐?”서왕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낮게
은이는 한마디로 쫓아내려 했지만, 봉구안은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정말로 단순한 효심이었다고 생각하느냐?”관 부인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러자 봉구안은 차갑게 진실을 밝혔다.“네 두 아들은 기병대에 들어가고 싶어했다. 하지만 관 장군은 생전에 허락하지 않았지.”“그게 무슨 상관인가요?” 관 부인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봉구안의 눈빛은 날카로웠다.“적국의 첩자들이 단 몇 마디로 네 두 아들을 설득해 독을 쓰게 만들었다고? 다른 유혹 없이 그런 일이 가능했다고 생각하느냐?”그녀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내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관 장군이 출전하던 날, 네 두 아들은 서로 자신이 나가 싸우겠다고 앞다퉜다더군. 결국 그 싸움을 자신들의 발판으로 삼아, 영웅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니겠느냐?”“그들은 규칙에 따라 적장을 이기면 영웅으로 칭송받고, 설령 지더라도 약간의 부상 정도로 끝날 거라 여겼을 것이다.”“하지만 적군은 관 장군이 살아 돌아오지 못할 함정을 마련해 뒀지. 네 아들들은 그것을 몰랐던 게야.”“그럴 리가 없습니다! 마마께서 오해하신 것입니다!” 관 부인은 현실을 부정하며 고개를 저었다.봉구안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네 아들들은 어리석고 탐욕스러웠다.”“가볍게 보자면 독을 쓴 자들이고, 무겁게 보자면 적국에 협력한 배신자들이다.”“그들이 지금 살아 있는 건, 내가 관 장군의 공을 고려해서 봐준 것이다.”“그런데도 계속 이렇게 나온다면, 관 장군이 목숨을 바쳐 얻어낸 것마저 모두 잃게 될 것이다.”관 부인은 그대로 주저앉아 절망에 빠졌다.“이럴 수가… 어찌 이런 일이…”……부검을 마친 늙은 의관은 동대영을 떠나려 했지만, 봉구안은 그를 본진으로 초대했다.그녀는 간단한 음식을 준비하고, 스승과 제자를 정중히 맞았다.“그날 내 목숨을 살려준 은혜는 잊지 않겠네.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하네.”“오늘은 간소한 음식으로 대신하겠지만, 나중에 제대로 연회를 열겠네.”약동은 머리를 숙인 채 스승의 곁에 조용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