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훈은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사실을 왜곡한 적 없습니다. 제 말은 전부 사실입니다. 만약 거짓이 하나라도 있다면 달게 벌을 받겠습니다!”백성호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더 보충할 건 없어?”한지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른 사람들에게 물었다.“있습니다. 사실 성호가 얘기하지 않은 게 있어요. 놈들은 우리 애들을 총살한 뒤에 국제 언론에 대놓고 저희를 모함했어요. 저희 용국의 군대가 그들의 기술을 빼돌리려고 잠입했다가 폭탄을 맞고 사망했다고요.”“놈들은 사망한 병사들이 저녁에 그들의 설계도를 훔치기 위해 군영으로 잠입했다고 사실을 왜곡해서 보도했어요.”한 장관이 손을 번쩍 들더니 이를 갈며 말했다.“그럼 반격해야 한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한지훈이 물었다.“당연히 했었죠. 하지만 나라의 이미지에 먹칠할 수도 있다는 말에 지금까지 참았어요.”백성호는 어깨를 부르르 떨며 억울한듯 말했다.그가 이러는 것도 이해할 만했다. 생사를 함께하던 형제가 죽었는데 살인자라는 놈들이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형제들을 모함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 화가 나는 일이 어디 있을까?“사망 인원은 총 몇 명이야?”한지훈은 속으로 가장 묻고 싶지 않았던 질문을 했다.“여섯 명이요.”백성호가 말했다.“나를 사망자가 있는 곳으로 인도해 줘.”한지훈은 어두운 표정으로 씁쓸하게 말했다.“사령관님….”한지훈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먼저 밖으로 나갔다.사망자는 흰 천에 덮인 채, 사치실에 누워 있었다. 핏자국이 얼룩진 것으로 보아 그들의 죽음이 얼마나 장렬했는지 알 수 있었다.한지훈은 사망자들 앞에서 묵묵히 모자를 벗고 묵례했다.“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이다. 북양 대군은 지시를 받들라. 내일 이들을 위해 성대한 장례식을 치를 것이다.”“네!”장관들의 얼굴도 눈물범벅이 되었다.다음 날.싸늘한 바람이 부는 가을의 아침이었다.한지훈은 직접 병사들의 유골을 관에 넣고 북양군의 군기를 덮은 뒤에 그들의 관에 정성스럽게 ‘구국영웅’이라는 글자를 새겼다.“어찌 전쟁
현장에 있던 30만 북양 병사들은 격앙된 심정으로 그들의 장관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이런 사람이 자신의 상관이라서 정말 자랑스럽다고 생각했다.“사령관님, 그럼 위쪽에는 뭐라고 하실 겁니까?”용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겁이 나서가 아니라, 한지훈의 직속 부하 중 한 명으로써 그의 안위가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무슨 일이 생기든 내가 책임진다. 그리고 난 무사할 거고 용국도 헛된 희생을 하지 않을 거니까 너무 걱정 마.”한지훈이 말했다.“예, 알겠습니다.”용일은 고개를 끄덕인 뒤에 입을 다물었다. 그 역시도 희생한 병사들을 위한 복수가 절실했다.“사령관님, 공국 놈들이 또 국제 뉴스에 대고 헛소리를 지껄이네요. 한번 보실래요?”백성호가 물었다.한지훈은 고개를 끄덕인 뒤에 그의 손에서 핸드폰을 받았다.“공국의 일선 기자의 보도에 따르면 용국의 북양대군은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고 국경선 100km 떨어진 지점까지 군사를 물렸다고 합니다. 이는 용국 측이 자신들의 부당행위를 어느 정도 인정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기자는 전했습니다.”“이로써 알 수 있는 바, 용국의 군대는 실력이 공국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공국은 군사 영역에서 또 하나의 업적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용국이 현재 공국의 실력을 따라오려면 적어도 30년은 분발해야 할 것 같습니다.”“군사 기밀을 훔치려다가 폭탄에 맞아 사망한 용국 병사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전합니다. 다음 생에는 그들이 비겁한 용국의 군대로 태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그것을 제외하고도 공국은 대놓고 용국을 비하하고 자신들을 치켜세우고 있었다.“작전에 지장이 있을까 봐 일단 철수하라고 한 건데 놈들이 이렇게 나온다면 어쩔 수 없지.”한지훈이 차갑게 말했다.그날 밤, 북양의 영토에는 차가운 모래바람이 불었다.평소라면 초소를 지키는 보초병 외에 다들 잠들었을 시간이지만 오늘 저녁 북양의 군영에는 잠든 병사가 한 명도 없었다.5만 명의 북양 정예군이 공터에 집결했다.공국 쪽에서
“그런 것 같아. 수만 명은 되는 것 같은데. 저놈들 미쳤나?”마크 역시 경악을 금치 못했다.“괜찮아. 비록 숫자가 좀 많기는 하지만 우리 대군이 전투에 참여하면 바로 쓸어버릴 수 있어.”잭이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그거야 그렇지.”마크는 침착하게 경보기를 울렸다.아찔한 경보음이 군영에 울려퍼졌다. 만약 용국 군영이었다면 경보음이 울리고 1분 안에 집합을 마무리해야 했다.하지만 3분이 지난 뒤에야 공국 병사들은 느릿느릿 군영에서 나오고 있었다.다들 잠이 덜 깬 모습이었는데 일부는 군복도 입지 않은 상태였다.북양군의 탱크 부대는 그러거나 말거나 바로 공격을 개시했다.순식간에 불길이 치솟고 대지가 진동했다.공국의 군영은 모두 한곳에 몰려 있었기에 북양군의 장갑차는 힘들이지 않고 한 방향으로 폭탄을 쏘아대기 시작했다.폭탄이 옆에서 터지고 동료들이 하나둘씩 쓰러져갈 때에야 공국 병사들은 정신을 차리고 반격을 시작했다.그들은 소총을 챙겨 사방에서 조여오는 적군을 향해 겨누었다.“와봐, 용국의 쓰레기들. 너희들은 곧 위대한 공국 군대들에 의해 이곳에서 목숨을 잃게 될 거다!”“멍청한 용국 군대, 오늘 세계 최강 군대의 실력을 보여주지!”“빨리 놈들을 쓸어버리고 돌아가서 잠이나 자자고!”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믿었던 무기는 북양군에게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했다.한지훈은 장갑차를 맨 앞에 세웠다. 탄약은 장갑차 외부에 약한 기스만 냈을 뿐이었다.“어떻게 된 거야? 놈들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장갑차를 가지고 있어? 총탄이 아예 안 박히잖아!”“우리 공국에도 십여 대밖에 없는 장갑차인데… 게다가 다 다른 곳에 있잖아. 놈들은 어떻게 수백 대의 장갑차를 소유한 거지?”“세상에! 이건 분명 꿈일 거야. 설마 다른 나라에서 용국에 장비를 지원한 걸까?”공국의 군대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상대의 화력이 너무도 거셌고 그들의 공격은 거의 먹히지 않았다.“공격을 중지한다!”장갑차 위에 선 한지훈이 싸늘한 목소리로 명령했다.포격을 멈춘 장갑차
그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던 방어 공사는 북양의 장갑차 앞에서 허무하게 무너져 버렸다.병사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그들은 북양군의 거센 기세에 완전히 짓눌려 싸울 의지를 잃어버렸다.강대한 실력 앞에 그들은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한지훈은 여기 오기 전까지 수많은 공격 방식을 고민했지만 이렇게 순수하게 힘으로 짓누르는 방식이야 말로 가장 치명적인 것이었다.공국의 병사들은 어둠 속에서 무너져내리는 자신들의 방어선을 바라보며 용기마저 잃어버렸다.적지 않은 병사들이 도망치듯 뒤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지휘부가 있는 쪽으로 뛰어갔다. 그곳에 마지막 방어선이 있기 때문이었다.상대가 반격을 포기하면서 북양의 진군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공국의 지휘부에 앉아 있는 장관들은 여전히 북양에서 쳐들어오면 그들을 박살낼 자신이 있다고 의기양양해하고 있었다.그런데 cctv로 북양의 장갑차가 방어선을 무너뜨리는 것을 보고 그런 자신감은 처참히 부서졌다.공국의 장관이라는 자들은 방으로 숨어들어 짐을 싸기 시작했다.“젠장! 전에는 용국 군대가 나약하기 짝이 없다며? 아무리 도발해도 가만히 있더니 오늘은 대체 뭘 잘못 먹은 거야?”“망할! 이럴 줄 알았으면 절대 도발하지 않는 건데!”공국의 지휘관들이 재산을 챙겨 도망을 준비할 때, 병사 한 명이 안으로 뛰어들어왔다.“사령관님, 북양군이 코앞까지 왔습니다. 저희는 이제 어떡해야 할까요?”병사의 눈은 온통 공포로 질려 있었다.“뭘 어떡해? 싸워서 막아야지! 절대 놈들을 이쪽으로 들여보내서는 안 돼! 당장 총 들고 나가!”사령관이라는 자가 포효하며 말했다.“안 돼요, 사령관님. 상대의 장비가 너무 좋아요. 저희의 화력으로는 제압이 불가능합니다. 많은 병사들이 뒤로 후퇴하고 있어요.”병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뭐라고? 여기로 오면 어떡해? 당장 나가서 적과 맞서 싸우지 않고! 후퇴하는 자는 내 손에 죽는다!”돌아온 건 사령관의 분노한 포효뿐이었다.만약 장관이 지금 뭘 하고 있었는지 못 봤다면 그
“저희는 일부러 국경선 근처에서 군사훈련을 진행했어요. 북양군을 도발하기 위해서요. 폭탄도 저희가 일부러 투척한 거예요.”“그리고 우리는 북양에서 사절을 파견하여 사과하러 온 것처럼 위장했죠. 하지만 이미 그들을 죽인 뒤였어요.”공국의 병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좋아. 마지막 질문. 이 모든 것을 사주한 자가 누구냐? 사절을 총살하라고 시킨 자 말이야.”“사령관이요. 모든 건 그 사람이 지시했고 총도 그 사람이 쏜 거예요.”병사가 말했다.“너희의 사령관은 어디 있지?”한지훈이 물었다.병사는 고개를 돌렸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던 병사들도 서로 눈치만 보며 우물쭈물했다.“제가 사령관께 보고를 올리러 갔을 때 그 사람은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조금 전에 지휘실에 보고하러 갔던 병사가 말했다.한지훈은 차갑게 코웃음치고는 몸을 날려 지휘부의 가장 높은 곳으로 가서 주변을 둘러보았다.아니나 다를까, 공국의 군영과 2km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전속력으로 도망치고 있는 SUV 한 대가 보였다.한지훈은 그대로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2분 뒤, 그는 검은 그림자를 질질 끌고 돌아왔다.“일반 병사는 목숨을 살려줄 수 있지만 총살의 주모자는 살려둘 수 없다.”한지훈이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공국 병사들은 지휘관의 시체를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일부는 모든 게 이 지휘관 때문이라고 탓하는 사람도 있었다.“우리의 형제를 총살한 놈이 여기 있다. 시체를 변방의 성벽에 걸어 모두에게 전시할 것이다.”“형제들의 복수는 했으니 이미 반항을 포기한 병사들은 건드리지 말도록.”지시를 내린 뒤, 한지훈은 대군과 함께 북양 지휘부로 돌아갔다.“백성호, 네가 기록한 영상을 국제 언론에 보내서 보도하게 해. 이제 외부에 진실을 알릴 때야.”다음 날, 국제 신문에는 영상 하나가 게시되었다. 영상을 본 사람들은 숙연해졌다.아무도 북양군의 행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공국이 그렇게 당한 데는 모두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적지
황학용과의 약속 날까지는 일주일 정도 남았다.왜 시간을 질질 끄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지훈은 그가 뭔가를 준비한다고 직감했다.그는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하고 약왕파에게 선택할 시간을 주기로 했다.만약 황학용이 여전히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우치지 못한다면 기꺼이 그 목숨을 거둬줄 생각이었다.별장으로 돌아온 한지훈은 고운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그는 아이가 어릴 때 최대한 많은 시간을 아이와 함께 보내야겠다고 다짐했다.그날 저녁, 퇴근하고 돌아온 강우연의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무슨 일 있어? 안색이 별로 안 좋네.”한지훈은 강우연에게로 다가가서 어깨를 마사지하며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강우연은 눈을 감고 탄식하듯 말했다.“회사에 일이 너무 많아요. 신제품 출시에 문제가 좀 생겼어요. 충분한 판매 경로가 확보되지 않았어요.”“내가 판매 경로 좀 알아봐 줄까?”한지훈이 물었다.강우연은 몸을 일으키더니 정색해서 말했다.“여보, 나도 성인이라고요. 계속 당신의 보호 아래서만 살 수는 없어요. 회사의 대표는 나고, 난 그에 상응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요. 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를 바라요.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죠? 난 당신 등 뒤에 선 사람이 아니라 당신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당신의 걱정을 덜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전쟁부의 일은 나도 아는 게 없고 도움이 못 되지만 회사나 생활 방면에서 나도 당신의 도움이 되고 싶다고요.”그 말을 들은 한지훈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와이프 말은 들어야지. 난 개입하지 않을게.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는 당신이 먼저 나한테 말해줘.”강우연은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고마워요, 여보.”그 뒤로 그녀는 씻으러 욕실로 들어갔다.한지훈은 구석에 숨어 입을 틀어막고 웃고 있는 고운이를 보고는 짐짓 인상을 쓰며 다가갔다.“고운이 잡으러 가자!”다음 날.강우연은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직원들의 안색이 어두운 것을 보고 인상을 썼다.“조
강우연은 한참을 고민을 했지만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이미 신약을 위해 여러 곳을 뛰어다녔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미미했다.핸드폰을 펼친 강우연은 SNS에서 놀랄만한 기사를 발견했다.“서경의 홍영그룹에서 강중에 제약회사를 오픈할 예정이라고?”강우연은 뭔가 중요한 정보를 알게 되었다는 느낌이 왔다.홍영그룹이 설립한 지사는 이미 강중에서 사업 파트너를 확보한 상태라고 했다. 대체 어떤 운 좋은 회사가 그들의 눈에 띄었는지 궁금했다.서경의 홍영그룹이라고 하면 용국의 서부 지역에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는 거물이었다.의약, 과학기술, 보건사업, 부동산, 엔터테인먼트까지 그들의 세력이 닿지 않은 산업이 손에 꼽을 정도고, 우연그룹의 1년 매출을 다 합쳐도 그들의 하루 매출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다행히 본사를 강중으로 옮기는 게 아니라, 지사만 설립한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강중의 각 기업은 분명히 영향을 받을 것이다.강우연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노크소리가 들렸다.“들어와.”“대표님 찾는 전화인데요?”비서인 서은정이 안으로 들어와서 말했다.“네, 전화 바꿨습니다.”강우연은 서은정에게서 휴대폰을 건네받고 인사를 건넸다.“강 대표님이신가요?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수화기 너머로 한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누구시죠?”강우연은 낯선 목소리에 약간 긴장하며 물었다.“홍철복이라고 합니다. 서경 홍영그룹에서 강중에 지사를 설립하기로 하였는데 제가 지사 관리를 맡았지요. 강중에 있는 회사들 리스트를 읽어봤는데 저희의 요구에 부합되는 기업은 우연그룹뿐이더군요.”홍철복이 말했다.강우연은 인상을 찌푸리며 경계를 세웠다. 홍영그룹 같은 대기업에서 먼저 그들에게 손을 내민다는 것이 뭔가 좀 이상했다.“홍 대표님이셨군요. 그런데 저희 회사의 뭐가 마음에 들어서 저희를 선택했는지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아, 오해하지는 마세요. 그냥 홍영 측의 수요를 좀 더 자세하게 알고 싶어서 드리는 얘기니까요.”강
그 시각, 강중의 번화가의 어느 한 별장.꽤 호화롭게 지어진 별장이었다. 정원에 엄청나게 넓은 꽃밭이 펼쳐져 있고 분수와 조경이 조화를 이루어 무척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이곳은 홍철복이 며칠 전에 구매한 별장으로, 그가 생활하는 공간이었다.“홍 대표님, 강우연이 차에 탔습니다.”비서로 보이는 사내가 홍철복에게 다가가서 말했다.“알았으니까 나가봐.”흔들 의자에 배가 불룩 나온 한 중년 사내가 누워 있었다. 의자마저도 그의 중량을 이기지 못하고 삐걱대고 있었다.그가 바로 홍영그룹 강중 지사의 대표, 홍철복이자 홍영그룹의 고위임원 중 하나였다.그의 맞은편에는 30대 중반의 사내가 앉아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는데 그는 강중 지사의 2인자인 홍안복이었다.“그 여자는 이미 오고 있는 중이래. 혼자.”홍철복이 말했다.“사실 우리 실력으로 강중 의학계를 삼키는 건 시간문제일 텐데 굳이 필요 없는 사람까지 끌어들여야 할까요?”홍안복이 물었다.“넌 몰라. 약왕파의 황학용 소종주의 부탁이니 뭔가는 해야 할 게 아니야. 게다가 북양왕은 상대하기 만만한 놈이 아니야. 앞으로 우리가 강중을 먹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거라고. 북양왕만 멀리 보내버리면 다른 상회들은 알아서 우리의 말을 따르게 돼있어.”말을 마친 홍철복은 담배연기를 길게 들이마셨다.“북양왕이 대단한 놈이라고 해도 우리 홍영그룹은 강대한 실력을 갖추지 않았습니까. 굳이 이런 비겁한 짓까지 할 필요는 없을 텐데요. 이 일이 공개되면 윗분들에게 해명하기 힘들어집니다.”홍안복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걱정할 거 없어. 가문은 우리가 최단 시간 내에 강중과 각 상회를 합병하라고만 했지 그 과정은 전혀 간섭하지 않겠다고 했거든.”“어차피 결과만 좋으면 장땡이야. 과정이 어떻든 고민할 필요가 없어. 안복아, 이게 왜 가문에서 날 이곳의 총 담당으로 보내고 넌 아직도 2인자인 이유야.”홍철복은 진한 담배연기를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그리고 황학용이 먼저 우리를 찾았는데 우리가 약왕파의 힘을
백발노인의 단검이 한지훈의 목에 가까워지며 불과 한 치도 남지 않았을 때, 한지훈의 몸 앞에 갑작스럽게 금빛 광막이 나타났다!“뭐지?! 저... 저건 화산의...”창안백은 이 장면을 보자마자 벌떡 일어섰고, 화산의 다른 고수들 몇 명도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한지훈이 자신의 검에 맞아 죽을 거라고 확신했던 백발노인은 눈앞에 갑자기 솟아오른 금빛 광막을 보고 놀라며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그러나 이미 휘둘러버린 공격은 멈출 수가 없었다!바로 그 순간, 광막 안에서 하얀 빛의 섬광이 튀어나왔다!“으아악!”백발노인은 놀란 나머지 마치 돌처럼 굳어버렸고, 심지어 단검을 쥔 손도 떨리기 시작했다.“쉭!”그가 손에 쥐고 있던 단검은 금빛 광막을 뚫고 들어갔고, 몸은 하얀 섬광과 충돌했다! “쾅!”폭음과 함께 백발노인의 몸은 거칠게 날아갔다!하지만 하얀 섬광은 멈추지 않고 백발노인을 날려버린 뒤, 땅에 있는 바위를 폭발시켜 깊이가 3미터에 달하는 구덩이를 만들어냈다.“푸헉!”백발노인이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피를 한가득 뿜어냈다! 그 하얀 섬광은 바로 한지훈이 장도령과 싸우던 때 장도령이 모으지 못했던 천뢰였고, 한지훈은 단지 동방 오우에게서 깨달은 진법을 활용해 그 섬광들을 흡수한 것이었다. 방금 몸이 고정되던 순간, 한지훈은 위험을 감지했지만 다행히 인체의 자기장은 의지로 조종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백발노인의 검은 한지훈의 목숨을 앗아갔을 것이다!그 하얀 섬광이 나타나자 천지의 기운이 땅 위를 덮으며, 임비양의 정혼진도 효력을 잃게 되었다.한지훈은 몸이 잠시 정체된 것을 느꼈고, 곧 다시 움직임을 회복했다. “방금 누가 비침으로 나를 음해하려 했지? 당장 나와라!”한지훈은 고개를 들어 단상 위를 차갑게 바라보며 소리치자, 임비양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한지훈을 노려보며 말했다. “한지훈, 네가 죽을 고비에서 살아남은 것만도 다행인데, 또 강적을 만들겠다는 건가?”임비양의 말투는 단호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지금 그는 백발노인이 더 이상 한지훈을 자극하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차라리 한순간에 죽음을 맞이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한지훈에게 산 채로 고문당하며 죽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다.“흥! 한지훈, 네가 무슨 말을 하든, 비무 중 생명을 해치는 것은 무맹의 규칙을 위반하는 것이다! 여기는 무맹의 영역이며, 창릉은 무맹의 본원이다!”“옳고 그름은 아직 네놈이 평가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금 당장 구만리를 풀어주어라!”백발노인은 두 눈을 부릅뜨며 한지훈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동시에, 높은 단상에 있던 사람들은 백발노인의 등 뒤에서 감춰졌던 한 손이 이미 단검 두 자루를 꽉 쥐고 있음을 분명히 보았다.“구만리를 풀어주라고? 좋다!”한지훈은 담담히 미소를 지으며 순식간에 발을 들어 구만리를 세게 걷어찼다!“쾅!”굉음과 함께 구만리의 몸은 짐짝처럼 날아올라 20미터 이상이나 멀어져 있던 단상 위로 떨어졌다.“쿵!”구만리의 몸이 단단히 단상에 떨어지며 먼지가 일었다.이때의 구만리는 온몸이 이미 피로 물들어 있었고, 입에서는 피 섞인 거품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그의 몸이 격렬히 경련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장에서 즉사했다.“허억!”단상 아래의 모든 사람들이 차가운 숨을 삼켰다. 구만리, 구만리가 죽다니?!단 한 번의 기술로 한지훈에게 패배당했을 뿐만 아니라, 공개적으로 한지훈에게 한 발로 차여 죽다니!하지만 그들에게 가장 이해되지 않는 점은, 한지훈이 명백히 천성대진 속에 갇혀 있어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다는 것이다.“한지훈! 네 놈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백발노인은 바닥에 피투성이가 된 구만리를 잠시 훑어보더니, 눈빛에서 서릿발 같은 살기를 내뿜었다!이 노인의 실력은 결코 구만리와 맞먹을 수준이 아니었고, 평소라면 그가 구만리의 복수를 하겠다고 나설 일은 절대 없을 터였다.그러나 한지훈이 아직 말을 꺼내기도 전에, 백발노인은 갑자기 몸을 날려 한지훈을 향해 돌진했다.동시에, 임비양이 갑자기 손을
“용국의 국왕 폐하를 잡초처럼 여긴다고 했던가?!”한지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구만리의 가슴을 강하게 걷어찼다.쾅!구만리의 몸은 다시 수 미터 날아가며, 땅의 암반에 깊은 균열을 남겼다.111“푸헉!”비록 한지훈은 평범한 사람의 상태였지만, 자기장을 조종하여 뿜어낸 발차기는 마치 작은 유성이 가슴을 강타하는 것처럼 강력했다.구만리가 이를 견딜 수 있을 리 없었다!땅에 떨어지자마자 그는 대량의 피를 토해냈고, 피 속에는 내장의 조각들까지 섞여 있었다.“네놈이...”구만리는 힘겹게 팔을 들어 한지훈을 가리켰지만, 오장육부의 고통이 너무 심해 도저히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용국 백성을 모두 개미 취급했던가?!”한지훈은 번개처럼 구만리 앞에 다가서더니, 발을 들어 그의 복부를 세게 짓밟았다.“아아악!”구만리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활처럼 휘었다.그는 마치 허리를 짓밟힌 새우처럼 두 손을 뻗어 한지훈의 다리를 붙잡으려 했다.“나를 깔끔히 죽이고 체면이라도 살려주어라!”쾅!구만리가 다리를 붙잡기 전, 한지훈의 무릎이 그의 얼굴을 강하게 들이받았다.구만리의 몸은 땅에 밀착된 채 10미터 이상 미끄러져 나갔다.그의 얼굴은 피로 범벅이 되어 이목구비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네놈이 장도령의 복수를 하겠다고 하지 않았던가?!”한지훈은 발을 들어 구만리의 얼굴을 짓밟았다. 꽈득! 그의 턱뼈와 광대뼈가 산산조각이 나는 소리가 들리며, 얼굴 전체가 함몰되었다. 이 장면을 본 주변 사람들은 두 눈을 감으며 차마 구만리의 얼굴을 직시하지 못했다.“한지훈! 설마 무종의 규칙을 모르는가?! 비무는 악의적으로 상대를 죽이는 자리가 아니다! 구만리가 이미 패배했는데, 어째서 그를 잔혹하게 죽이려는 것이지?!”그 순간, 높은 대 위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오며 한지훈을 제지했다. 한지훈은 고개를 들어 차가운 시선으로 높은 대 위의 무리를 쳐다보았다.“오? 악의적으로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고?! 참으로 의로운 말이군! 내가 천성대진에 억눌려
가장 용납할 수 없는 것은, 한지훈의 전력이 천성대진으로 완전히 봉인된 상태, 즉 평범한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구만리는 오성 용급 천왕계 강자임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사람의 손에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그는 백 년 넘게 살아온 세월을 헛되이 보낸 것이 아닌가?!“어떠한가?!”한지훈은 구만리를 냉정하게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너 같은 자를 죽이는 데에는 오릉군 가시 하나면 충분하다. 드래곤 장총 아래에서 죽을 자격이 있는 건 고수 중의 고수뿐이다. 넌 그럴 자격이 없다!”“푸헉!”한지훈의 말이 끝나자마자, 구만리는 피를 토해냈다.그가 자격이 없다고?!“한... 한지훈!”구만리의 얼굴이 일그러졌고, 온몸에서 살기가 폭발하며 소리쳤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몰려들었고 지금 이 순간, 구만리는 분노의 극한에 도달했다!“휭!”갑자기 창릉산 전체에 강풍이 휘몰아쳤다.“구 씨 형님, 안 됩니다!”단해룡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하마터면 욕을 할 뻔했다! 이 강풍은 검기가 얽혀 만들어진 것으로, 삼성 천왕계 이하의 사람들은 결코 버틸 수 없는 위력이었다.문제는 적이 오직 한지훈 한 명뿐이라는 점이었다!이 강풍은 자신들 편까지 죽이는 셈이었다.“제기랄!”단해룡의 얼굴이 창백해지며, 같은 시대의 사람들이 구만리를 구 미치광이라고 부른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이 노인은 완전히 미친 게 분명했다!그는 단해룡의 외침을 무시한 채, 검을 휘둘러 사방에서 검기 폭풍을 일으켰다.“휙!”폭풍이 지나간 자리마다 수많은 시신의 목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한지훈, 죽어라! 반드시 네놈을 갈기갈기 찢어 죽여버리겠다!”구만리는 광기에 찬 목소리로 외치며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한지훈은 그 모든 것을 냉정히 바라볼 뿐이었고, 그는 몸을 가볍게 돌려 수많은 검기를 피하며 구만리를 향해 돌진했다.“구만리! 넌 이미 졌다! 멈춰라!”대장로는 구만리가 필사의 기술을 사용하자 걱정스러워하며 외쳤다.하지만 대장로의 경고는 물론, 단해룡의 호소
“찌익! 쾅!”한지훈의 오릉군 가시가 구만리의 검신에 닿는 순간, 연이어 두 번의 굉음이 울려 퍼졌다.특히 두 번째 폭음이 끝난 후, 구만리의 검을 중심으로 강렬한 빛이 사방으로 퍼졌다.구만리는 손바닥이 저릿해지는 감각을 느끼며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이럴 수가?!방금 전의 그 강렬한 빛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한지훈은 지금 진법도 사용할 수 없고, 천성대진에 의해 모든 힘이 봉인된 상태였기에 그야말로 평범한 사람이어야 했다.설마...아니, 말도 안 돼!천성대진은 단해룡의 절기로, 천신계 강자라 해도 천성대진에 들어가면 힘이 절반으로 줄어든다.하물며 한지훈은 겨우 오성 용급 천왕계일 뿐인데, 진법이 통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하지만 그 순간, 구만리의 머릿속에 한 단어가 번뜩였다.자기장!“네... 네놈이 설마 인체 내 자기장을 사용할 수 있다니?!”구만리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말을 더듬었다.자신뿐만 아니라, 조룡의 비술을 전수받은 장씨 집안이라 해도 이런 경지는 불가능했다!비록 그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의 상황을 설명할 방법은 자기장 외에는 떠오르지 않았다.구만리가 충격에서 헤어 나오기도 전에, 한지훈은 이미 몸을 날려 그의 앞에 다가갔다!오릉군 가시는 허공에서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구만리의 등 뒤로 돌아가 다시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이 모든 과정은 겉보기에는 간단해 보였지만, 실상은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없었다.현재 한지훈은 물체를 조종하는 것은 커녕, 병왕급의 실력조차 발휘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구 씨 형님! 등 뒤를 조심하십시오!”단해룡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큰 소리로 외쳤지만, 모든 것이 이미 늦어버렸다. 오릉군 가시는 번개처럼 빠른 속도로 구만리의 어깨를 강타했다.“퍽!”둔탁한 소리와 함께 구만리는 강한 충격에 의해 앞으로 튕겨 나갔고, 그의 어깨에는 달걀만 한 크기의 혈흔이 생겨났다.“쿵!”구만리는 바위 위로 거칠게 떨어졌다가 다시 한번 튕겨 오른 후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단 한
검의를 깨달은 자만이 비로소 완전히 새로운 경지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아무리 강력한 검경이라 해도 검의 앞에서는 정오의 태양 아래 녹아내리는 얼음과 같았고, 모든 살기는 즉시 소멸하고 만다.“큰소리를 잘도 치는구나? 구만리, 네가 방금 뱉은 말로도 이미 죽어 마땅하다! 검의라 한들 어떠하냐? 하늘의 도리를 거스르는 자를 하늘이 돕겠느냐!”한지훈은 차분한 표정으로 손을 늘어뜨린 채 서 있었고, 그의 손에 쥔 오릉군 가시에서는 희미한 백색의 광채가 번져 나오고 있었다.“흥, 말이 많구나. 네놈에게 이 검의의 위력을 보여주마! 내 검의 아래 죽는 것이라면, 너도 죽어서 영광스러운 줄 알아라!”구만리는 말을 마치자마자 몸을 날려 화살처럼 한지훈을 향해 돌진했다!이 순간, 한지훈은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기에 보통 사람의 몸으로는 구만리의 살수를 피할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였다.“죽어라!”구만리가 포효하며 외치자, 사람들은 눈앞에 번쩍이는 흰빛을 보았다.구만리의 몸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검으로 변한 듯, 한지훈을 향해 똑바로 찔러 들어갔다!그와 동시에 공기 중에서는 휘몰아치는 날카로운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검기는 해일처럼 밀려왔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파도처럼 한지훈에게 몰아쳤다.이것이 바로 검의의 위력이었고, 주변의 모든 것을 찢어버릴 수 있는 검기로 변화시키는 능력이었다.그러나 한지훈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마치 구만리의 위력에 놀란 듯 다가오는 그의 모습만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한지훈이 겁에 질려 움직이지 못하는 건가?”“흥, 겁먹지 않았다 한들 무슨 소용이냐? 주변의 공기마저 검기로 바뀌었으니, 그가 피할 수나 있을까?”“그가 아직도 오성 용급 천왕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절대 불가능해!”주변 사람들이 저마다 차가운 목소리로 수군거렸다. 구만리의 검 끝이 한지훈의 목에 불과 한 치도 못 미치는 순간, 한지훈은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발뒤꿈치를
구만리는 뒷짐을 진 채 곧장 한지훈을 공격하지 않았고, 대신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한지훈, 네가 정말 대단한 인물임은 인정하겠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 것을 보면, 나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구나!”“용국 백전명장이라 불릴 만하다만, 유감스럽게도 너의 용맹함은 내 앞에서 아무런 소용이 없단 말이다! 지금의 너는 그저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니 나의 충고를 듣거라.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게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는 길일 테니!”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구만리의 손에 삼척 길이의 장검이 나타났다.검날은 차가운 빛을 반짝이며 마치 검기가 뿜어져 나오는 듯 보였다.구만리가 손목을 살짝 돌리자 은백색의 검화가 번뜩였고, 공중에는 허공을 찢는 듯한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순식간에 검광이 번쩍이더니, 주변에 서 있던 몇 그루의 소나무가 허리 높이에서 단숨에 잘려 나갔다!이 검술은 단순해 보였으나, 검기를 외부로 뻗어나가 주변의 몇십 그루에 이르는 거대한 나무를 자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게다가 나무가 잘려 나갔음에도 쓰러지지 않는다는 점은 검기가 얼마나 정밀한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구만리의 검술은 역시 절묘하군! 검기를 몇 미터 밖으로 뻗어나가면서도 이렇게 순수하게 유지할 수 있다니, 우리가 평생을 바친다 해도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일세!”주변에서 지켜보던 이들이 감탄하며 말했다.그들이 감탄의 말을 마치기도 전에, “까직!”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구만리의 발아래 바위로 된 지면이 마치 머리카락처럼 가늘게 몇 미터 깊이로 갈라졌다!습!이곳 창릉산의 제단은 만 년 전 화산암이 자연적으로 형성된 곳으로, 그 단단함은 말할 것도 없었다.검은커녕 포탄을 쏘아도 하얀 자국 정도만 남길 수 있을 뿐이었다.“이것이야말로 현세 제일의 검경 대사이군!”“그렇소. 구만리의 검경은 장도령을 훨씬 능가한다고 들었는데, 그 소문이 사실이었네!”“한지훈이 천성대진의 제약을 받지 않았다고 해도, 구만리의 상대가 될 수 없겠지!”구만리의 절기를
한지훈은 저도 모르게 내심 놀랐다. 이 천성대진은 정말 대처하기 만만치 않았다. 비록 그 또한 미리 대처할 준비를 하긴 했지만, 역시나 상대방의 수에 걸려들고 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지훈의 온몸을 감싸던 기운이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일반인이랑 별다를 바 없게 되었다. 축대 위에서 지켜보고 있던 대장로 또한 한지훈의 변화를 알아채게 됐고, 이내 앞으로 나아가 도와주려 하자 동방소가 손을 내밀어 그를 가로막았다. “대장로, 이제 너 혼자만의 힘으로는 절대 멀쩡히 돌아갈 수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마 또 맹주의 따귀를 한 대 더 때리려는 거야?”그 말을 들은 대장로는 몸을 살짝 떨게 됐다. 처음 날린 따귀는 단지 단해룡의 경고일 뿐이었고, 만약 그가 다시 손을 대게 된다면 무맹과 무종은 관계는 철저히 끊어지게 된다. 때가 되면 용국의 종무는 필연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대장로님, 사실 저희 또한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희 원 씨 집안 또한 북양 왕이 이대로 죽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필경 인원이 적고 발언권이 별로 없으니 멋대로 상황을 좌우할 수는 없습니다!”이때 원상용이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대장로를 향해 말했다. “너희들...”답답한 이 상황에 대장로는 발만 동동 구를뿐이었다. 사실 그들이 말한 대로, 설사 대장로가 목숨 바쳐 나선다 하더라도 이 결말을 장담할 수는 없었다. “내가...”순간 그는 과거의 자신을 회상하게 되었다. 한 씨 별장을 떠나게 될 당시, 대장로는 무종 장로의 인부를 꺼내고는 바로 깨뜨려 버렸었다. 자신은 더 이상 무종 장로가 아니라고, 무종과는 이젠 무관하다고 밝힌 것이었다. 무종 대장로의 신분을 벗게 됐지만, 그는 언제나 한지훈과 함께 생사를 같이할 것이라고 뒷말을 덧붙였다. “죽고 싶어?”그의 단호한 태도에, 단해룡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대장로의 뒷모습을 주시하며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대장로가 입을 떼려는 순간, 한지훈이 고개를 들어 대장로를 향해
대장로가 이렇게까지 날뛰는 이유는, 그는 방금 단해룡과 구만리가 주고받는 눈빛을 통해 이미 낌새를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렇게나 악랄한 사람들이 어떻게 선배라는 이유로 존경심을 받고 있는 건지 이해가 안 됐다. 특히나 단해룡은 무맹의 맹주라는 신분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런 수단으로 사람을 해치려는 건 정말 납득이 안 됐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한지훈 한 사람을 겨냥하는 것 자체가 기가 찼다. 게다가 무맹 맹주와 구만리뿐만 아니라 십여 명의 5대 명산 고수들도 있었다. 그들은 단순한 기선제압에 그치지 않고, 천성대진으로 한지훈의 모든 실력까지 빼앗아내 일반인으로 만들 작정이었다. 심지어 마지막엔 구만리가 깨끗이 한지훈을 처단하게 만들려는, 그야말로 염치없는 발상들이었다. “뭐라고? 그럼 대장로 말은, 나더러 이 대결에서 져주라는 거야?”단해룡는 마냥 차가운 눈빛으로 대장로를 바라보았다. “단해룡, 넌 엄연히 무맹 맹주야. 신분과 지위가 다 어느 정도 높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서 한지훈 한 사람을 포위 공격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파렴치하기 짝이 없어서 그래. 게다가 천성대진까지 이용하여...”대장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단해룡은 갑자기 손을 들어 강하게 뺨을 내려쳤다. “팍!”대장로는 단해룡이 감히 자신의 따귀를 때릴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전혀 무방비하고 있었던 그는 그 따귀에 몸이 5~6 미터 밖으로 밀려났다. 대장로 또한 삼성 지급 천왕계의 실력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결코 단해룡의 상대는 아니었다. 설사 그가 단해룡과 같은 급수에 있다 하더라도 진법 면에서는 훨씬 미치지 못한다. 무섭도록 강력한 따귀에 대장로는 멍해졌을 뿐만 아니라, 축대 아랫사람들마저도 이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오래전부터 무맹과 무종은 비등한 실력을 갖고 있었고, 그중 단해룡과 대장로의 지위도 매우 비슷했다. 그러므로 방금 단해룡이 날린 이 따귀는 의심할 여지도 없이 무맹이 무종에게 던지는 도전장이 된 것이다. “대장로, 너 명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