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혜주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그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유상수의 불륜녀가 낳은 아이를 키워주는 대신 반드시 유상수와의 표면적인 명분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그녀는 이미 불륜녀로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이었고 지금은 또 다른 불륜녀가 그녀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었다. 만약 이 사실을 다른 외부인이 알아채기라도 한다면 그녀는 아마 한주시의 웃음거리로 될 것이 분명했다.그녀가 결혼식을 올리려는 이유 또한 유상수에게 혼외자식이 생겼다는 사실이 퍼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고 자신이 한주시 재벌가들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되지 않기 위함도 있었다.이와 같은 이유로 유상수를 설득할 수 있을 것이었다.그는 자신의 체면을 지키는 것이 그녀가 “사랑한다.”라고 그에게 백번을 속삭이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있었으니까.백혜주는 비록 그의 앞에서 온순한 사람인 척 굴었지만, 유상수는 백혜주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온순한 얼굴 뒤에는 사악한 마음이 숨겨져 있었고, 그녀가 정말로 사랑에 미친 사람이었다면 유상수는 오히려 그녀를 경계했을 것이었다.그러나 좋은 체면 때문이 아니었다면, 웃음거리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면 당연히 바로 받아들였을 것이다.생각에 잠긴 그는 나직하게 말했다.“역시 네가 생각이 깊어. 하지만... 넌 임신한 상태잖아. 결혼식을 준비하기엔 몸에 무리가 갈 거야. 난 네가 힘든 게 싫단다.”백혜주는 한숨을 내쉬었다.“어떻게 되었든 결국은 이 아이에게 명분을 주려는 거잖아요. 결혼식만 올리면 모든 게 해결되는데 난 아무렇게나 해도 상관없어요.”그녀의 말을 들은 유상수는 순간 자신이 확실히 백혜주를 홀대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그는 뜸을 들이며 말했다.“그런 말을 하지 마. 나도 네가 속상하다는 거 알고 있단다. 한창 젊을 때는 너와 결혼식을 올릴 순 없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나아졌으니 결혼식도 올려야겠지. 그럼 아주 성대하게 올려야겠구나. 결혼식 준비에 관해서는 네가 신경 쓸 것이 하나도 없다. 그냥 집에서 편히 배 속에 아이만
“결혼식만 올리면.”백혜주는 유현아를 흘겨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그러니까 넌 좀 경계심을 올려. 종일 다른 집안 여식들과 쇼핑하며 차나 마실 궁리나 하지 말고.”유현아는 여전히 다소 정신을 못 차린 것 같았지만 백혜주의 경고에 그제야 입을 열었다.“알았어요, 엄마.”전화를 끊은 유상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집을 나서버렸다. 최연서는 그가 나간 것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유현진에게 문자를 보냈다.유현진은 문자를 보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그녀는 아직 백혜주가 무슨 속셈인지 알아내지 못하였다. 단톡방에 소식이 하나 올라와 있었다. 의 방영일이 정해졌다는 것이었다. 원래 두 드라마의 방영일은 하루 차이가 났었다. 그러나 현재, 두 드라마는 같은 날짜, 같은 시간 저녁 8시에 방영하게 된 것이었다.을 하루빨리 방영하기 위해 방송사에서는 아직 종영되지 않은 드라마의 마지막 화를 삭제하기도 했다. 그렇게 그 드라마는 과 같은 시간대에 방영하게 된 것이었다.심지어 그들의 홍보 수단 또한 아주 사악하였다. 첫 방의 시청률은 아주 중요한 것이었고 바로 드라마 광고마저 없애고 방영했을 뿐만 아니라 인터넷에 이런저런 글을 올리며 조회수를 올렸다.애초부터 두 드라마의 방영일은 아주 비슷했을 뿐만 아니라 현재 의 방영일을 바로 과 같은 날짜로 바꿨으니 첫 방송 시청률부터 빼앗아 버리겠다는 의도가 아주 분명했다.논란이 많은 소설을 각색한 드라마이니 애초에 화젯거리였고 드라마를 제작한 제작진들도 그다지 평판이 좋은 팀은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기회를 노려 화젯거리를 이용한 것이고 스폰으로 ‘인기'를 얻은 것이었다.의 홍보팀은 아주 잠잠하고 경쟁의식을 느끼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차이현이라는 감독의 평판이 아주 좋았고 그의 작품이라면 재밌는 것이 아주 많았다.만약 이 먼저 방영을 한다면, 그 드라마를 본 사람들은 아마도 같은 ‘스폰' 받
차이현은 삐친 척 말했다.“그래서 지금 나한테 시비 걸려고 연락한 거예요?”차이현이 가볍게 웃음을 지으며 나직하게 말했다.“에이, 설마요. 그냥 감독님께서 자본가들의 돈지랄에 속상해할까 봐 특별히 안부차 전화 드린 것뿐이에요.”차이현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흥, 현진 씨는 현진 씨 할 거나 하세요. 이런 쓸데없는 곳에 신경 쓰지 마시고요. 어차피 이런 일은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맞는 선택이거든요. 그 결과가 어떻든 나만 정정당당하면 되거든요.”“흘러가는 대로... 그래도 우리는 아직 늦지 않았어요.”유현진이 뜸을 들이며 말했다.“그 사람들이 먼저 뒷돈을 주고 방영일을 바꾼 거잖아요. 그러니 우리도 그 사람들의 찌라시를 퍼뜨리는 거죠. 그 사람들은 어차피 표절 논란으로 드라마 홍보하고 있었잖아요. 안 그래요? 그러면 저희는 표절 논란을 더 크게 만들어 버리는 거죠. 일이 커지면 커질수록 좋거든요. 최대한 표절 당한 작가한테도 연락해서 같이 소송을 제기하죠. 표절 논란을 받은 예전의 드라마도 다 들추어내면 되잖아요.”“그리고 원작자를 더 지지하는 방향으로 여론을 이끌면서, 특히 ‘이 드라마는 원작과 연관이 없습니다', ‘배우와 원작은 연관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반박을 하는 거죠. 그러면 여론을 통해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들과 남의 인기를 빼앗으려는 사람, 그리고 그 인기를 묵혀 더 큰 이익을 얻고 아무것도 모르는 시민에게 어떻게든 팔아먹으려는 사람들을 혼내주는 거죠!”“그렇게 되면 인기와 그들이 원하던 평판도 전부 와르르 무너지게 될 거예요. 최대한 다시는 이 바닥에서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비리를 낱낱이 밝히는 거죠. 우리가 잘 지낼 수 없다면 누구도 잘 지낼 수 없어요.”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던 차이현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누가... 그런 것을 가르쳐준 거죠?”“전 그냥 정의감이 불타올랐을 뿐이에요.”차이현의 입가가 바르르 떨려왔다.“난 왜 현진 씨가 복수하려는 걸로 느껴지는 거죠? 송민영 씨가
민경하가 서류를 들고 나가버린 후, 강한서는 바로 휴대폰을 꺼내 한성우에게 연락했다.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도와줘.”한성우는 소파에 엎드려 과일을 먹고 있었다. 주방에선 물소리가 들려왔다. 차미주가 바삐 주방에서 움직이며 음식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었다.장시간 동안 엎드려 있었더니 한성우는 허리가 뻐근해지는 것 같았다. 그는 요즘 너무나도 한가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강한서의 연락을 받은 후에도 그는 거만하게 답했다.“뭘 도와줘?”강한서는 바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했다. 그러나 한성우는 생각도 해보지도 않고 바로 거절했다.“그런 부도덕한 일은 네가 알아서 해.”강한서는 거절을 당해도 화내지 않았다. 그는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차미주가 아직 네 검진 결과를 못 봤지? 그래도 네 여자친구인데 차미주도 알아야 할 권리가 있지 않을까?”한성우가 이를 갈며 말했다.“... 이 개자식아. 내가 그동안 어떻게 널 도와 현진 씨 마음을 돌려줬는데?”강한서가 차갑게 피식 웃으며 말했다.“네가 말을 안 했으면 나도 잊고 있을 뻔했네. 네가 중간에 끼어들어서 이간질하지 않았다면 우린 이미 재혼하고도 남았어!”“...”한성우는 헛기침을 내뱉었다. 그는 넉살 좋은 사람처럼 강한서와 다시 얘기를 나누려 했다.“장난인 거 알지? 그런 일은 당연히 네 친구인 내가 도와줘야지. 그러니까 입 싹 다물고 있어. 내 연애에 방해하지 말고.”강한서는 코웃음을 쳤다.“하, 네가 모르는 것 같아서 알려주는데, 그렇게 속이고 있으면 관계도 오래 못 가. 그러니까 알아서 적당한 때에 밝혀.”“그게 네가 할 말은 아니지 않나?”한성우가 반박했다.“넌 현진 씨한테 현진 씨가 먼저 너를 덮쳤다고 속였잖아. 잊었냐?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못 한다더니 네가 딱 그런 식이네. 내가 미주랑 사귀게 되었으면 평생 미주한테 잘해주면 되잖아, 안 그러냐?”“...”강한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통화를 하고 있던 와중에 차미주는 냄비를 들고 주방에서 나왔다.한성우
속으로 야한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에 차미주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입술이 무의식적으로 그의 턱에 닿게 되었고 두 사람은 서로 당황한 듯했다. 이내 분위기도 어색해지게 되었다.물론 제일 당황했던 사람은 바로 차미주였다. 한성우는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차미주는 헛기침을 내뱉으며 어색한 분위기를 바꿔보려 했다.“어때, 꽉 끼진 않아?”“괜찮아.”한성우는 대답을 하며 차미주의 반응을 살펴보고 있었다.“그럼 됐어.”차미주는 바로 이어서 물었다.“강한서가 왜 너한테 전화를 한 거야?”한성우의 손이 순간 움찔 떨려오고 하마터면 삐끗 몸이 넘어갈 뻔했다.“아니, 별거 아니야. 그냥 수다 떨고 있었어.”차미주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물어보던 것이었기에 그에게 갈비찜을 그릇에 담아주며 그의 옆에 앉아 말했다.“너희 회사 단톡방 있어?”“있지. 왜?”차미주의 눈이 반짝거렸다.“그럼 얼른 현진이 드라마를 시청하라고 해. 송여우 드라마랑 현진이 드라마 같은 시간대에 방영하게 되었거든. 그래서 시청률이 낮게 나올까 봐 좀 걱정되네.”한성우가 웃으며 말했다.“단톡방엔 100명이 조금 넘는 사람들이 있어. 아무리 그 사람들이 본다고 해도 시청률이 그리 오르진 않을 거야.”그 말을 들은 차미주는 어깨가 축 내려가게 되었다.한성우는 잔뜩 풀이 죽은 그녀의 모습에 위로를 했다.“아직 첫 방 시간이 안 되었잖아. 어쩌면 시청률이 생각보다 잘 나올 수도 있지.”차미주는 큰 기대를 걸지 않고 있었다. 여하간에 톱스타와 시청률 경쟁을 한다는 건 아주 어려운 것이었으니까.비록 그렇다 해도 그녀는 방송 시간에 맞춰 다른 친구들을 불러 TV 앞에 앉아 본방송 사수할 사람이었다.차미주는 인맥이 많았다. 각 방송사 시청률 또한 그는 바로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그녀는 드라마를 보면서 시청률 통계표를 보고 있었다.예상대로 첫 방송 시청률은 4%를 달성하게 되었고 꽤 좋은 성적이었다.은 1.3%를 달성하게 되었다. 좋지도
두 사람의 촬영은 이미 대충 끝난 상태였다. 오늘의 촬영만 끝마치면 바로 종방일 만 기다리면 되는 것이었다.차이현의 매니저는 단톡방에 좋은 소식이라며 문자를 보냈고 유현진은 대충 확인한 뒤 메이크업 받으러 갔다.그녀는 이따 한열과 송민영 등 배우들과 촬영을 해야 했다.비록 의상은 갈아입지 않아도 되었지만, 메이크업은 수정해야 했다.여주와 남주에겐 전문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있었지만, 유현진은 다른 배우들과 함께 지정된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찾아가 줄을 서서 메이크업을 받아야 했다. 원래는 두 명이었지만 다른 한 명은 집안 사정으로 오지 않게 되었다.그래서 그들에겐 단 한 명의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있었고 기다리는 시간도 엄청 길었다.한열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브러쉬를 들고 살살 쓸며 그의 얼굴 화장을 수정해 주고 있었다.한열의 얼굴이 자꾸만 한쪽으로 기울자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계속 손으로 그의 머리를 돌렸다. 그랬기에 얼굴 음영을 수정하는 데만 시간이 오래 걸리게 되었다.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짜증이 쌓여가고 있었지만, 말을 꺼낼 수 없었다.옆에 있던 그의 매니저가 멈칫하더니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려 확인했다. 역시, 그곳엔 유현진이 우뚝 서서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촬영장에서 바로 메이크업을 수정해야 했기에 서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고 유현진은 촬영 때문에 높은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오랫동안 서 있으니 당연히 발이 아파져 왔고 그녀는 계속 자세를 바꿔가며 발목을 풀어주고 있었다.매니저는 시선을 거두고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물었다.“수정 화장은 끝난 건가?”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말했다.“네, 거의요.”한열의 얼굴은 아주 완벽했기에 크게 화장을 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극 중에서 그는 40대 남성 역할을 맡고 있었기에 얼굴에 음영을 주어 나이가 들어 보이게 만들어야 했다.사실 감독은 한열의 중년 역할을 따로 다른 중년 배우를 찾아 촬영할 생각이었다.하지만 한열이 직접 시도해 보고 싶다고 하니 안창수는 당연히 그를 열정적이라며 칭찬하며 승낙
문자를 확인하자마자 강한서는 아주 진지하게 답장했다.힐끔 쳐다보던 민경하는 눈가가 바르르 떨리게 되었다.강한서의 답장은 이러했다.「발등에 있던 점은 없앤 거야?」민경하의 눈썹이 꿈틀거렸고 얼른 문자를 전송하려던 강한서의 손을 막았다.“대표님, 이건 사모님의 발이 아닙니다.”강한서는 동작을 멈추고 그를 흘겨보았다.“그걸 어떻게 아는 거죠?”민경하가 얼른 설명에 나섰다.“이 사진은 전에 인터넷에 뜨겁게 달군 적이 있었거든요. 심지어 이모티콘으로 만들어 떠돌기도 했었죠.”말을 마친 그는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이모티콘 목록을 보여주었다.강한서는 보더니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말했다.“그럼 현진이가 이걸 왜 나한테 보낸 거죠?”민경하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아마도 신발이 발에 맞지 않아서 보낸 것일 수도 있겠네요. 아니면 정말로 그냥 심심해서 장난을 걸었다거나 말이죠.”강한서가 물었다.“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민경하는 이내 통통한 발이 하이힐에 끼어버린 사진을 강한서에게 보내면서 말했다.“이걸 사모님께 보내보세요.”강한서는 민경하의 말대로 바로 보냈다.유현진은 통통한 발 때문에 하이힐이 망가진 사진을 보고는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곤 응석을 부리는 듯한 어투로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촬영팀에서 준비한 신발이 다 사이즈가 작아서 아파. 그래서 현진이 발도 아야 해.”강한서는 메시지를 받자마자 바로 음성을 틀었다.이윽고 애교 섞인 유현진의 목소리가 iPad를 통해 울려 퍼졌다.순간, 두 사람 사이엔 정적이 흐르게 되었다.민경하가 웃음을 참으며 헛기침을 내뱉었다.“큼, 역시 신발이 발에 안 맞으셨던 거였네요.”강한서는 순간 소름이 오소소 돋게 되었고 바로 음성으로 답장을 보냈다.“네가 나랑 처음 만났을 때도 이렇게 말했었다면 우린 아마 지금이 없었을 거야.”유현진은 그의 답장을 들으며 한참이나 웃어댔다.강한서가 그녀와 결혼 전에도 연애를 해보지 못한 건 분명 그의 성격 탓이었다.
도우미는 이미 방을 정리해 두었다. 유현진은 얼른 그녀를 방으로 들여보내 쉬게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유현진의 집에 관심을 보이며 굳이 유현진의 남편을 만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당시 거실에는 커다란 웨딩사진이 설치되기 전이라 1층에는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이 없었다. 그 “동창”은 계속 “아쉽다”는 말투로 학교 다닐 때 성적도 좋았으면서 왜 일찍 결혼했냐는 둥, 아무리 결혼이라지만 조건만 따질 게 아니라 대화가 통해야 한다는 둥, 나이 차가 많으면 세대 차이가 느껴진다는 둥 그런 말들을 해댔다. 한참이나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유현진은 그제야 그 말에 담긴 뜻을 파악했다. 그녀는 아마 유현진이 강한서의 재산을 보고 나이 많은 남자와 결혼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것을 인지한 유현진은 조금 화가 났지만 예의상 대놓고 입 밖으로 불쾌한 기분을 나타내지는 않았다. 다만 그녀의 태도가 많이 차가워졌을 뿐이었다. 그 “동창”도 자신이 말이 많았다고 생각했는지, 더는 그 화제로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만약 단순히 그뿐이었더라면, 유현진은 그 동창이 조금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무 말이나 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강한서가 집으로 돌아오자, 강한서가 유현진의 남편이라는 것을 안 그녀의 태도는 완전히 바뀌었다. 그녀는 말끝마다 “오빠”라고 부르면서 강한서가 물만 마셔도 “오빠 물 마시는 포즈가 너무 멋져요.”라고 하면서 칭찬했다. 그 “동창”은 몸매가 아담하고 귀여운 타입이었다. 외모는 너무 예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봐줄 만한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는 학창 시절부터 반에서 남자아이들과 사이가 좋았고, 학교 축제가 있을 때면 그녀가 굳이 직접 나서지 않아도 남자아이들이 먼저 나서서 그녀를 도와주었다.학교의 여신이라 불리던 유현진도 그런 “대접”은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유현진은 안 그래도 차미주에게 그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왜 자신이 남자들에게 인기가 없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그녀에게
이틀 후 깔린느 정기 회의에서 서해금은 직원들의 건강검진을 언급하며 각 부서가 직원들의 시간을 조율하고 차례로 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말했다. 말을 마친 후 시간을 확인하며 말을 이었다.“그럼 특별한 사항 없으면 오늘 회의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잠깐만요.” 한현진이 서해금의 말을 가로막았다. 모두가 그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서해금도 눈을 들어 한현진을 응시하며 여유 있게 말했다. “현진 씨, 더 지시할 거라도 있어요?” 한현진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지시라뇨. 이 자리에 계신 분들 모두 제 선배님들이세요. 업무적인 부분은 앞으로도 많이 배우고 의지해야 할 분들입니다. 다만 서 대표님께서 직원 건강검진에 대해 언급하신 걸 듣고 마침 오늘 회사 고위층 분들도 다 계셔서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어서요.” “서 대표님, 괜찮으실까요?”모두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한현진이 아마도 회사 관리와 관련된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회사에 온 지 몇 달이 되었고 비록 진씨 가문 사모님 홍혜림을 중심으로 몇몇 고객을 끌어들였지만 서해금의 기반은 그렇게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두 사람의 실력 차이가 매우 컸고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도 큰 진전이 없었으니 한현진은 분명히 조급할 것이다.서해금은 두 손을 가볍게 포개어 테이블에 놓고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정기 회의는 원래 경영진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자리입니다. 어떤 의견이라도 편하게 말씀하세요. 좋은 제안이라면 우리는 반드시 적극적으로 채택할 겁니다.” 그녀는 매우 너그러운 태도로 민주적인 자세를 보여주었고 이것이 바로 서해금이 이렇게 확고한 위치를 유지하는 이유였다. 회의에서 나온 의견과 제안은 결코 당면에서 거절하지 않으며 오히려 지지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뒤에서는 다른 수단을 써서 상대를 밀어내는 법이었다. 사람들의 마음을 다루는 데 그녀는 능숙했다.한현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서 대표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직설적을 말
송가람은 급히 말을 이었다. [지금 저도 정확히 알 수가 없어요.] 그녀는 강한서보다 더 초조해했다. 황 닥터는 금지된 물품을 소지하고 있던 이유로 출국 금지 명령을 받았고 당분간 국내로 돌아오지 못한다고 했다. 그가 오지 않으면 강한서를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그는 분명히 모든 것을 기억해 낼 것이다. 송가람은 점점 더 초조해졌다.[한서 오빠, 저랑 같이 외국에 가서 교수님한테 진료받으러 갈래요? 그쪽에서 꼭 잘 봐주실 거예요.] 송가람은 더 이상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강한서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가람아, 평소 같았으면 바로 갔겠지만 지금은 안 될 것 같아. 너도 알잖아. 요즘 한주시 상황이 얼마나 복잡한지. 난 지금 이곳을 떠날 수 없어. 정말 어쩔 수 없으면 여기서 다른 의사를 찾아서 진료를 받는 방법을 찾아볼게.][그럴 수는 없어요!] 송가람이 목소리를 높였다. 강한서는 잠시 멈칫했다. [왜 안 되지?] 송가람은 자신이 너무 지나치게 행동했다는 걸 깨닫고 잠시 말을 더듬으며 겨우 입을 열었다. [교수님은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뇌과학 전문가 중 한 분이세요. 국내 의사들하고는 비교도 안 되죠.]의사를 바꾸면 강한서가 예전에 사용한 약에 대해 물어볼 것이었고 그렇다면 그녀는 그것을 말해야 하므로 폭로될 위험이 있었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었다. 강한서는 난처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네.] 그는 잠시 침묵을 지킨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그 약은 효과가 좋았어. 매번 먹고 나면 머리가 맑아지고 잡생각들이 사라졌거든.] [그런데 지금은 그 약이 다 떨어져서 최근에 다시 두통이 찾아왔어. 그 약만 있으면 황 닥터가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 텐데.]송가람의 눈이 번쩍였다. ‘맞다. 그 약이 있었지.’ 그녀는 속으로 들뜬 마음을 억누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서 오빠,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하지만 이 보험은 직원 개인에게만 해당되며 가족은 이 보험을 가입할 수 없다. 지금 강한서의 의도는 이 혜택을 직원의 가족에게까지 확장하려는 것이다. 주혁은 집에 두 명의 환자가 있고 약을 자주 복용해야 한다. 만약 그가 회사의 이 선의를 거절한다면 그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 예전에 아들을 위해 인공 와우 이식 수술을 받을 돈을 마련하려고 위험을 무릅쓰고 직장을 잃었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절대로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강한서의 개인적인 의도도 있었다. 이런 세심한 직원에 대한 배려는 점차 아래 직원들이 한현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바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위층은 작은 이익에 별로 신경 쓰지 않지만 일반 직원들에게는 다르다. 대부분 사람들이 열심히 돈을 버는 이유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다. 그들 대부분은 삼십대에서 마흔다섯 사이로 이 나이대의 사람들은 부모님을 부양하고 자식들을 키워야 한다. 회사가 약속한 성과급 같은 허황한 말보다는 이런 쉽게 보상받을 수 있는 실비보험이 직원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주기 때문에 더욱 마음을 얻을 수 있다. 한현진은 마치 뭔가 깨달은 듯 강한서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이렇게 사람 마음을 얻는 거구나.” 강한서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사실 처음엔 이런 생각까지는 못 했어. 할머니가 병원에 갈 때는 항상 진씨 아저씨랑 같이 가서 내가 직접 겪을 일이 거의 없었거든. 이런 일도 거의 없었고.” “그런데 한 번은 민 실장이랑 같이 출장 가는 길이였어. 그때 민 실장 어머니께서 비를 맞으면서 우리를 마중 나왔는데 길이 미끄러워서 자전거를 타다 넘어지셨어. 가벼운 사고가 나이었고 수술이 필요한 정도로 심했었지.”“그때 민 실장한테 병원에 남아서 어머니를 돌보라고 하고 혼자 고객을 만나러 갔어. 며칠 만에 일을 마치고 병원에 들렀더니 수술은 다행히 성공적이었어.” “그런데 입원부터 치료까지 전부 합쳐서 거의 천만 원 가까이 들었더라. 민 실장은 보험 청구를 했
강한서가 가식적인 말투로 말했다. “부탁할게. 나중에 내가 너랑 여정 씨에게 크게 한 턱 쏠게.”강한서에게 등을 돌린 신우가 손을 들어 중지를 내밀었다. 한현진이 강한서에게 나지막이 물었다. “신우 씨가 널 꽤 귀찮아하는 것 같아. 전에 여정 씨에게 신우 씨는 욕을 하지 않는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아닐 걸?”강한서가 헛소리를 지껄였다. “난 우리 사이가 좋다고 생각해. 봐봐, 지금 얼마나 열심히 우릴 도와주고 있어.”한현진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그래? 난 왜 신우 씨가 마지못해 하는 것 같지?’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이제 이런 일로 신우 씨 번거롭게 하지 말자. 우리 다른 방법 찾아보자. 언제까지 부탁할 순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도 계속 신우에게만 매달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신우처럼 능력 있고 입도 무거운 사람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현진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언제까지 신우에게 부탁할 수는 없었다. 신우의 할아버지가 위독하시기 때문에 지금은 삼촌들의 후계자 싸움이 가장 치열한 시기였다. 수많은 눈이 서로의 약점을 노리고 있었기에 신우의 처지 역시 살얼음판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럴 때일수록 그 어떤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된다. 신씨 가문에서 요즘 경쟁이 제일 치열한 것이 바로 제일 많은 계약금이 걸린 프로젝트였다. 강한서는 이 기회를 빌려 신우에게 투자금을 보태 그동안 진 신세를 갚을 생각이었다. 그날 오후, 지문 대조 결과가 나왔다. 편지 봉투와 그림에는 한현진과 강한서의 지문을 제외한 세 사람의 지문이 있었다. 그 세 사람 중 한 명은 주혁의 아내였고 또 다른 사람은 주혁의 아들인 주지호였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지문 대조 시스템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또 다른 사람의 지문이었다. 그 결과에 한현진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이 정보를 따라 뭔가를 캐낼 수 있을 것이라 여겼지만 이렇게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조사 결과는 결국 시스템에조차 등록되어 있
시원하게 욕을 날린 신우는 의리 있게 강한서의 부탁을 들어줬다.10여 년 전 주혁이 경찰서에 남겼던 지문을 받은 강한서는 곧 생체 인식 실험실에 보내 두 지문을 대조하도록 했다. 2시간도 지나지 않아 결과가 나왔다. 한지와 편지봉투에서는 주혁의 지문을 찾을 수 없었다. 그 결과에 한현진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말도 안 돼. 뭔가 착오가 있는 거 아냐? 그때 직접 손으로 나에게 건네줬었어. 심지어 장갑도 하지 않았는데, 지문이 안 나왔다고?”신우가 말했다. “여긴 여정이와 여정이 사수가 함께 만든 실험실이에요. 게다가 형사들과 자주 협력하는 곳이기도 하고요. 지문 대조 시스템은 여길 따라올 곳이 없어요. 한 번도 틀린 적 없었어요.”신우의 말은 지문 대조 결과가 틀렸을 리가 없다는 얘기였다. 신우는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갑을 꺼냈다. 이제 막 담배 한 대를 꺼내려던 그때, 손에 들린 담배가 강한서의 손에 내쳐져 툭, 쓰레기통으로 떨어졌다. 신우: ???머리가 복잡했던 한현진은 두 사람을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럼 왜 없는 거지?”여전히 오리무중에 빠진 한현진과 달리 강한서는 이미 눈치 채고 있은 듯 말했다. “혹시... 지금 그 사람은 애초부터 주혁이 아니었던 거야. 그래서 경찰에게 지문이 남아있을까 봐 그런 방법의 자신의 모든 지문을 지워버린 거야. 자신의 진짜 신분을 들키지 않기 위해.”강한서의 추측에 한현진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어떻게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거야? 그건 너무 많이 앞서간 거 아냐? 기사님은 가족도 있고 아이도 있어. 만약 정말 사람이 바뀐 거라면 가족들은 눈치 채야 하는 거 아냐?”“데가 이 세상에는 그렇게 똑같이 생긴 사람은 없어. 아무리 닮은 쌍둥이라고 해도 가족들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잖아.”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어쩌면 가족들은 원래 그 사람이 돌아오길 바라지 않을 수도 있지.”한현진은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그녀는 얼른 강한서에게 물었다.
“얼른 다시 가져와. 급히 쓸데가 있어.”강한서: ?“왜 그래?”한현진이 말했다. “전화로 얘기하긴 복잡한 일이야. 아무튼 얼른 전화해서 그림 다시 가져오라고 해. 만약 안 건드렸으면 못 건드리게ㅔ 하고 만약 꺼냈으면 얼른 다시 포장하라고 해. 내가 금방 갈게. 만나서 더 자세하게 얘기해 줄게.”강항서가 대답했다. “알겠어. 지금 당장 다시 가져올게.”한현진은 일찍 퇴근하고 집으로 향했다. 전화에서 한현진이 워낙 급하게 얘기한 탓에 강한서도 그녀가 걱정이라 손에 있던 일을 미리 마친 후 칼퇴근해 집으로 돌아왔다. 만나자마자 강한서를 본 한현진이 물었다. “기사님 아직 그림 안 넣었지?”강한서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네가 너무 일찍 얘기해서 넣지도 못한 상황이야. 네가 그림을 가진 후로 우리 두 사람을 제외하면 아무도 그림을 본 적이 없어.”한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랍에서 일회용 장갑을 꺼내 낀 후 그림과 평지를 함께 꺼내 일회용 봉투에 넣었다. 한현진의 행동을 본 강한서의 눈가가 파를 뛰었다. “증거 수집해?”한현진은 봉토를 밀봉하며 말했다. “정말 증거가 될 수도 있어. 일단 가직해 둬.”“대체 무슨 일이야?”한현진이 장갑을 벗고 나서야 강한서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과 본인의 의심과 의혹을 얘기했다. “이번 주에 기사님께서 뭔가 사고를 친게 틀림없어. 그래서 재판장에서 지문 인식하는 걸 거부하는 거겠지. 만약 기사님이 전과범이고 회사에서 그 사람을 그대로 둔다면 기사님이 영향을 끼치는 것 나뿐만이 아니야. 그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아.”“내가 생각해봤는데 일단 지문을 수집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일단 고여정 씨께 이 사람이 대체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아봐. 그래야 만일이 사태에 대비를 하지.”한현진의 말을 들은 강한서가 의문을 제기했다. “주혁 씨의 지문은 이미 시스템에 등록되어 있어. 무슨 범죄를 저질렀는지는 신상 조회를 하면 바로 나올 텐데 지문을 지우는 게 무슨 소용 있어?”한현진이 멈칫했다. “없을
주현의 생각은 성월과 달랐다. 송가람은 사랑에 눈이 멀어 남자의 사랑을 바랐지만 주현은 아니었다. 그녀의 목표를 애초부터 매우 명확했다. 주현은 상대방이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신분과 지위를 노렸다. 그건 20년, 30년을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것들이었다. 지금 주현이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지름길이 눈앞에 놓였는데 그 기회를 잡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주현은 성월의 성격을 잘 알았다. 성월은 반평생을 야심으로 가득 찬 서해금 곁을 지키며 진작 서해금의 충직한 개가 되었다. 성월에게 신분은 뛰어넘을 수 없는 벽 같은 거였고 자신의 미래는 스스로 기회를 잡아 개척해 나가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서해금 역시 자신의 두 손으로 그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송병천과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서민 출신에 남편을 잃고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이 무슨 수로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웃기지 말라 그래.’하지만 그 말을 주현은 감히 성월 앞에선 할 수 없었다. 주현은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 “이모, 도와줘요. 신씨 가문으로 돌아가든 아니든 저 한 번 해보고 싶어요. 송가람 씨와 조금이라도 가까이 할 수 있는 일로 부탁해요. 활동이든 파티든 데리고 다닐 수 있는 자리로요. 그래야 신씨 가문에 호감을 살 수 있죠.”성월의 학창 시절, 그녀의 집안은 그야말로 찢어지게 가난했다. 주현의 부모님이 빌려주신 돈으로 급한 불을 끈 덕에 성월은 늘 주현의 집안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주현의 애교에 견디지 못한 성월이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송가람 씨 비서로 전근 보내볼게. 너, 네 남자친구한테 기본적인 건 잘 가르쳐. 묻는 말에 아무 것도 대답 못하면 안 돼.”주현이 순간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성월에게 팔짱을 끼고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요, 이모! 역시 이모가 날 제일 예뻐할 줄 알았어. 주말에 집에 와서 식사해요. 안 가신지 꽤 됐잖아요...”한편, 사무실로 돌아온 한현진의 마음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만약 어제 바로 세정제
서해금이 입술을 짓이기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냉정하다니, 한현진 답지 않아.”성월이 말했다. “사실 전 그렇게 냉담한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오일을 깨뜨린 것도 주혁 씨였고 몰래 부업을 하다 한 대표님 얼굴에 먹칠한 것도 주혁 씨잖아요. 그러니 당연히 원망하는 마음이 있을 거예요.”말이 없던 서해금이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인사팀에 잠깐 다녀와요. 일단 주혁을 가람이 운전기사로 전근시켜요.”성월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대표님, 가람 아가씨에게 운전기사를 붙일 생각이시면 제가 다른 기사님을 찾을게요. 회사에는 지금 마침 새로 입사한 젊은 신입사원들이 많아요. 어리고 건강하고 운전 경력도 전부 5년이 넘었어요. 주혁 씨는 한현진 곁에서 한동안 일을 하신 분인데, 가람 아가씨 운전기사로는 적합하지 않을 것 같아요.”“전근시키라고 하면 시켜요. 제가 이렇게 하는 덴 이유가 있어요. 그러니 성 비서는 나서지 말아요.”성월이 다급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네.”성월이 사무실을 나서자 주현이 곧바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모, 어떻게 됐어요? 대표님께 말씀 드렸어요?”성월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대표님께서 이미 송가람 씨에게 다른 운전기사를 붙이셨어. 이미 결정된 일이야.”순간 주현은 조바심이 났다. “왜 갑자기 결정 난 거예요? 회사에서 요즘 새로 신입사원 모집했잖아요. 보안팀은 싫어할 거란 말이에요.”성월이 말했다. “대표님께서 주혁을 송가람 씨 운전기사로 전근시켰어. 지금 인사팀에 가서 그 일부터 처리해야 해.”그 말을 들은 주현이 투덜거렸다. “한현진 밑에 있던 사람이잖아요. 게다가 본인 상사를 배신까지 했고요. 대표님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사람을 딸 운전기사로 쓰시겠다는 거예요?”순간 얼굴을 일그러뜨린 성월이 주현을 구석진 곳으로 끌고 갔다. 성월은 주변을 확인하고 나서야 주혁의 팔을 내치며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너 미쳤어? 여긴 회사야. 여기서 집인 줄 알고 그렇게 큰 소리로 대표님 뒷담화를 하는 거야?
직원들은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어떤 직원은 회사의 조치가 꽤 인간적이라며 칭찬했고 또 어떤 직원은 아무리 화장실 청소라도 그렇게 부식성이 강한 세제를 쓰진 말았어야 했다며 안전 문제를 인지하지 못한 회사의 관리에 문제가 있다고 비난했다. 이번 일은 단순히 청소 직원이 화상을 입은 것으로 그쳤지만 만약 누군가 범행을 저지르려고 한다면 부식성이 강한 세정제는 범죄자에게 칼을 준비해준 것과 다를 것이 없는 꼴이었다. 의문을 제기하던 직원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한현진과 눈을 마주쳤다. 그제야 실언했다는 것을 인지한 직원이 다급하게 말했다. “대표님, 전 회사에서 조치를 제대로 못했다는 뜻이 아니라요. 단지 위험 요소가 될 수도 있는 거니까, 저도 모르게 제일 최악의 상황을 상상해본 거예요.”한현진이 고개를 들었다. “무슨... 위험 요소요?”그 직원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못... 못 들으셨어요?”“죄송해요.”한현진이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전 친구 문자에 답장하느라 못 들었어요.”직원이 입술을 달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옆에 있던 또 다른 직원이 얼른 말을 이었다. “회사에서 며칠 동안 청소하시는 직원분들이 다치는 사고가 있었잖아요. 그 일 때문에 다들 마음이 뒤숭숭해요.”한현진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한 직원이 말을 이었다. “아, 맞다. 대표님. 다치신 분 중에 대표님이 아는 사람도 있어요. 전에 대표님 운전 기사셨던 주혁 기사님이요. 그 분이 제일 심하게 다치셨어요.”한현진이 미간을 찌푸렸다.“기사님이요? 확실해요? 어제 볼 일 보러 갔다가 기사님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멀쩡하셨는데. 언제 다치신 거예요?”한현진의 말에 직원이 멍해졌다.“그럴 리가요. 며칠 전에 이미 다치셨어요. 대표님과 비슷한 시기에 휴가를 내셨어요.”한현진이 곰곰이 생각했다. “그날 제가 급한 일 때문에 길게 얘기를 나누진 못했어요. 손에 붕대 같은 건 본 기억도 없고 기사님께서도 저한테 그런 얘기는 없으셨는데... 심하게 다치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