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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화

Author: 송진
방 밖으로 나가고 나서야 성유리는 그제야 깊은숨을 몰아쉬었다.

자리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성유리는 복도에 서서 가만히 멍만 때리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성유리는 자신의 뒤에서 들려오는 선명한 라이터 소리를 들었다.

딸깍하는 소리에 성유리가 고개를 돌려 누가 서 있는지를 확인했다.

아마 어젯밤에 미리 마주친 탓일까? 오늘 그를 마주한 순간 성유리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성유리의 손은 뜻대로 되지 않아 미세하게 떨려왔고 그녀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박한빈은 성유리에게 시선도 돌리지 않고 있는데 말이다.

그는 한 손에는 담배를, 다른 한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메시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길고 넓은 복도에 오직 두 사람이 남아있었고 박한빈과 전혀 모르는 사이라 하더라도 성유리는 불편하고 적응이 되지 않았다.

조금 망설이던 성유리는 불편함을 못 이겨 다시 방으로 돌아가기를 선택했다.

그녀가 몸을 돌린 순간, 앞에 누군가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비틀거리는 그 사람은 성유리를 못 봤는지 그대로 그녀의 몸에 강하게 부딪혀버렸다.

상대가 자신의 몸에 부딪히는 그 찰나에 성유리는 코를 찌르는 알코올 냄새를 맡았다.

촬영장에서 주는 도시락도 느끼하고 저녁으로 먹는 일식도 성유리의 입맛이 아니었기에 오늘 그녀는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였다.

갑작스레 맡아버린 진한 알코올 냄새에 성유리는 위안에서 뭔가가 강하게 요동치는 느낌이 들었고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았다.

두 사람이 정신을 못 차리고 다시 부딪히려는 그때, 뒤에 있던 박한빈이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성유리의 손을 잡아 옆으로 비켜 세웠다.

성유리에게 부딪힌 그 남자는 비틀거리며 자리를 떠났고 성유리는 빠르게 박한빈의 손을 뿌리쳤다.

예상보다 센 성유리의 힘에 박한빈은 뒤로 뒷걸음질을 쳤다.

안색이 어두워진 박한빈이 뭐라 하기도 전, 성유리는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쓰레기통에 구토하기 시작했다.

위가 이상하리만큼 불편한데 더해 하루 종일 먹은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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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한빈은 현재 도한시에 머물고 있었고 그 무렵 에릭은 막 보석으로 풀려난 참이었다.사실 이번 일은 그에게도 꽤 억울한 일이었다. 애초에 초대받은 손님일 뿐이었고 문제의 물건을 가져온 것도 그가 아니었다.정작 그걸 들고 온 사람은 죽었고 에릭과 함께 있던 사람들만 모조리 곤경에 빠졌다. 하지만 에릭은 신경 쓰지 않았다.어차피 자신의 결백만 입증하면 이곳 사람들은 그에게 어찌할 수 없었다.문제는 박한빈이었다.그의 기본적인 사업들은 여전히 국내에 있었고 만약 이번 사건과 관련된 소문이라도 퍼진다면 그에게 미칠 영향은 치명적일 터였다.그래서 직접 금성에서 이곳으로 넘어와 경찰 수사에 협조한 것이다.이곳 경찰이 그의 결백을 증명해 준다면 박한빈을 음해하려던 언론 보도는 모두 허위 사실 유포가 될 테니까.박한빈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였다는 걸 알면서도 에릭은 진지하게 말했다.“이번 일은 정말 고마워.”박한빈은 그를 쓱 쳐다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휴대폰을 들고 화면 속의 문자를 바라보고 있었다.에릭은 한국어를 말하기는 가능했지만 글자는 읽을 줄 몰랐다.그래서 박한빈의 휴대폰 화면에 떠 있는 메시지를 봐도 내용은 알 수 없었다. 다만 상대방에게서 답장이 오지 않았다는 것만은 분명했다.그제야 에릭은 상황을 눈치챘다.“네 아내야?”침묵하던 박한빈이 이번엔 고개를 끄덕였다.그 모습을 본 에릭이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설마 화난 거 아니야? 솔직히 말해서 그냥 나랑 같이 해외로 가는 게 어때? 여기는 제약이 너무 많잖아. 이런 것만 없었어도 너도 굳이 이렇게까지... 야, 내 말 듣고 있긴 해?”박한빈은 에릭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핸드폰을 손에 쥔 채 몇 초 더 기다려 봤지만 성유리의 답장은 끝내 오지 않았다. 그러자 곧바로 휴대폰을 들고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에릭이 뒤에서 뭐라고 말했는지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걸어가면서 전화를 걸었지만 전원이 꺼져 있었다.걱정스러운 마음에 박한빈의 미간이 점점 더 잔뜻 찌푸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27화

    비록 그때의 연정우는 단순한 ‘공범’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당연하게도 친척이기에 어쩔 수 없이 그런 오해를 받아야 했다.하지만 정말로 선하고 올곧은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그들을 돕는 선택 자체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건이 터졌을 때도,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무마하고 수습하려 하지 않았을 거고.권력이라는 것은 중독성 강한 독과도 같아서 한 번 손을 대면 점점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된다. 그렇지만 피라미드 꼭대기에 설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그 자리에 오르는 유일한 방법은 결국... 제일 위에 있는 사람을 끌어내리는 것, 그리고 성유리의 존재로 인해 연정우가 바라보게 된 대상은 박한빈이었다.더군다나 박한빈 때문에 한때 잃어버린 것들이 있었으니 연정우가 그를 증오하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심지어 성유리는 나중에 연정우가 자신에게 그렇게 집착한 것도 단순한 감정 때문만이 아니라 박한빈을 이기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사업적인 수법과 벌이로는 박한빈을 뛰어넘기 어려웠지만 만약 성유리와 함께한다면?어떤 의미에서는 그것도 일종의 승리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그래서였을까. 박한빈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연정우가 끝까지 자신과 함께 장례식에 가려 했던 이유는 그저 모든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뿐이었다.박한빈이 원했지만 가질 수 없었던 사람을 결국 자신이 가졌다는걸.성유리는 생각하고 있던 그대로 연정우에게 말했다.그 말투는 마치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듯 지극히 차분한 목소리였다.감정이 배제된 그저 객관적인 관찰자 같은 어조로.“그러니까 네가 피해자라고 착각하지 마.”성유리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어쩌면 넌... 단 한 번도 날 진짜로 좋아한 적이 없을지도 몰라. 네가 좋아했던 건 박한빈을 이긴다는 그 감정이었을 뿐이야.”그 말이 끝나자 연정우가 잡고 있던 손이 천천히 풀렸다.“정말... 너무하네.”그가 힘없이 웃으며 계속 말했다.“어찌 됐든 우리는 함께했던 사이였어. 심지어 결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26화

    성유리는 고개를 들어 연정우와 잠시 눈을 맞춘 후 대답했다.“응. 일이 좀 있어서 못 왔어.”“아, 어머니께서는 이미 안에서 기다리고 계셔. 들어가 볼 거야?”성유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연정우는 마치 이곳의 주인처럼 앞장서서 그녀를 안내했다.비록 그런 연정우의 뒤를 따라가긴 했지만 성유리는 항상 두세 걸음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계단을 오르던 중, 성유리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이번 도한시에 뜬 보도 봤어?”그녀의 물음에 연정우의 발걸음이 멈췄다.그러더니 고개를 돌려 성유리를 바라봤는데 눈빛에는 어딘가 의아함이 섞여 있었다.성유리는 그 자리에서 멈춰 연정우와 여전히 눈을 맞추며 말했다.“박세빈 그 사람이 국내로 돌아올 수 있었던 건... 너 때문이지?”그녀는 질문을 하고 있었지만 목소리에는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연정우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었다.“이거... 지금 나를 추궁하는 거야? 경찰도 날 찾지 못했는데 너는 바로 나한테 이렇게 물어보네. 증거라도 있어?”“없어.”성유리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그냥...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야.”“그렇다면 네가 이 질문을 꺼낼 때 이미 답을 정해놓았겠네?”연정우는 옅은 미소를 지은 채 대답했다.“어차피 너는 내가 한 짓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거라면 내가 해명을 하든 부정하든 아무 의미가 없지 않겠어?”그 말에 성유리는 한동안 침묵했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난 단지... 그 이유를 모르겠을 뿐이야.”“무슨 이유?”“넌 왜 그렇게 박한빈 씨를 증오하는 거야?”성유리의 말이 떨어지자 연정우의 표정에서 천천히 웃음기가 사라졌다.아까까지만 해도 흠잡을 데 없는 우아한 미소를 짓고 있었던 그는 마치 얇은 얼음에 금이 가듯 조금씩 변해갔다.그러다 갑자기 성유리를 향해 한 걸음 다가서며 되물었다.“네가 생각하기엔 왜일 것 같아?”서로의 거리가 갑작스럽게 좁혀지자 성유리는 불편함을 느꼈다.하지만 여전히 계단 위였고 물러설 틈도 없어 주춤거리고 있던 찰나, 연정우가 그녀를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25화

    얼마나 지났는지 모를 만큼 뒤척이다가 성유리는 겨우 잠이 들었다.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창밖이 훤히 밝아 있었다.성유리는 화들짝 놀라며 일어나 곧장 서재로 달려갔다.하지만 박한빈은 이미 없었다.도우미에게 물어보니 그들이 도착했을 때부터 그는 이미 자리를 비운 상태였고 새벽 일찍 차를 몰고 나간 것 같다고 했다.성유리는 도우미의 대답에 아무 말 없이 입을 꼭 다물었다.방으로 돌아와 보니 박한빈이 남긴 쪽지가 있었다.[일을 해결하러 가야 해. 며칠 후에 돌아올게.]그러나 쪽지에는 박한빈이 어디로 갔는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성유리는 그 쪽지를 한참 바라보다가 조용히 그것을 접어 서랍에 넣었다.그날, 뉴스에서 에릭 사건에 대한 보도가 나왔다.하지만 연루된 인물들이 많아서인지 뉴스에서는 자세한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보도된 정보도 그다지 파장이 크지 않았고 빠르게 묻히는 분위기였다.그렇지만 성유리는 이게 전부일 리 없다고 생각했다.지금의 고요함은 단지... 폭풍이 몰려오기 전의 침묵일 뿐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그 일로 신경이 곤두서 있던 차에, 갑자기 사씨 집안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사민혁이 오늘 퇴원하여 작은 파티를 연다는 내용이었다.지금 성유리는 파티에 참석할 기분이 아니었지만 요청한 상대가 사씨 집안이기에 잠시 망설였다.“혹시 시간 안 되는 거야?”전화를 건 사람이 물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성유리는 곧장 대답했다.“아뇨, 괜찮아요. 몇 시에 시작하나요? 미리 가서 도울 일이 있으면 도울게요.”그녀가 이렇게 흔쾌히 답한 건 단순히 거절하기 어려워서가 아니었다.현재 연정우와 사씨 집안의 친밀도를 봤을 때, 연정우도 아마 참석할 가능성이 컸다.그렇다면 이 기회에 직접 그에게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곧 류수미가 파티 시간과 장소를 문자로 보내왔다.사민혁이 병에서 회복한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너무 떠들썩한 장소는 적절하지 않았다.그래서 이번 모임은 가까운 지인들만 초청된 조용한 자리였고 장소 역시 사씨 집안의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24화

    일할 때의 박한빈은 유독 냉엄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풍겼다.가까이 오지 말라는 듯한 기운에 성유리조차도 걸음을 멈칫했다.하지만 박한빈은 인기척을 들었는지 곧바로 시선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갑작스러운 방문에도 박한빈은 표정이 바뀌지는 않았지만 성유리와 눈이 마주친 순간 눈빛이 조금 부드러워졌다.“왜 왔어? 먼저 자라고 했잖아.”성유리는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물컵을 그의 앞에 놓았다.“무슨 일인데요?”망설이던 그녀가 조용히 물었다.박한빈은 물컵을 흘끗 바라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자 성유리는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한번 다그치듯 물었다.“네?”“에릭이 잡혔어.”그제야 박한빈이 입을 열었다.하지만 성유리는 그의 대답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최근까지 계속 국내에서 활동했었는데...”그는 천천히 설명을 이어갔다.“며칠 전에 파티를 열었어. 그런데 어젯밤... 거기서 사람이 죽었대.”그 말에 성유리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그래서요?”“약물 과다복용이 원인이야.”그 한마디에 성유리의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렸다.“설마...”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박한빈은 옅게 웃었다.“그래. 네가 생각하는 그거.”성유리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박한빈은 마치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라도 한 듯, 곧장 말을 덧붙였다.“나는 손도 대지 않았어. 물론 에릭이 전에 나한테도 권한 적은 있었지만 난 선을 넘지 않아.”“그리고 우리가 함께 지낸 시간이 얼만데 내가 만약 그랬으면 네가 모를 리 있겠어?”성유리는 대답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불안한 얼굴이었다.그러자 박한빈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지금 경찰이 개입했어. 너도 알잖아. 국내에서 이 일로 걸리면 형량이 얼마나 무거운지.”“더 웃긴 건, 그날 파티 초대 명단에 내 이름도 있었다는 거야.”그 말에 성유리는 즉시 고개를 들어 박한빈을 보며 물었다.“그럼 이건 일부러 당신을 노리고 벌인 일이라는 말인가요?”“그래.”박한빈은 물컵을 들어 올렸지만 마시지 않고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23화

    박한빈이 대답하지 않자 성유리는 짜증 섞인 말투로 다시 물었다.“하늘이가 이제 막 박한빈 씨한테 마음을 열기 시작했는데 좀 더 잘 대해주실 수는 없어요?”“내가 하늘이한테 못 해주고 있나?”그제야 침묵하던 박한빈이 입을 열었다.“그럼 대체 무슨 말을 하신 건데요?”다시 묻는 성유리의 말에 박한빈은 발걸음을 뚝 멈추더니 그녀를 한번 바라본 후 담담하게 말했다.“네가 다쳤으니까 푹 쉬어야 한다고 했어.”“그게 다예요?”“그럼 네 생각엔?”박한빈이 피식 웃어 보이며 되물었다. 성유리는 그가 숨기고 있는 게 더 있는 것 같아 다시 물으려 했지만 박한빈은 순식간에 그녀를 들어 올려 안고는 침실로 빠르게 걸어갔다.“뭐 하시는 거예요!”놀란 성유리가 외치자 박한빈은 태연하게 되물었다.“네 생각엔?”그 한마디에 성유리는 순간 말문이 막혀 잠시 머뭇거리다 겨우 입을 열었다.“아까 박한빈 씨가 전 쉬어야 한다고 했잖아요.”“응. 그래서 쉬게 해주려고.”그렇게 말하면서 박한빈은 이미 성유리를 침실로 데려와 침대 위에 눕혔다.그는 손을 놓지도 않은 채, 발로 문을 쾅 닫아버렸다.곧이어 성유리는 침대 위에 깔리듯 눕혀졌다.“박한빈 씨...”그녀는 박한빈의 다 낫지 않은 상처를 걱정하며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그는 단숨에 그녀의 입술을 막아버렸다.박한빈의 동작은 다소 조급했고 숨이 막힐 정도로 거칠었다.당황한 성유리는 그의 가슴을 밀어내려 했지만 박한빈의 손이 재빠르게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위로 들어 올렸다.그 순간, 성유리가 입고 있던 잠옷이 단숨에 벗겨졌고 그 바람에 단추가 튕겨 나가 바닥에 떨어지며 또랑또랑한 소리를 냈다.하지만 바로 그때, 침묵을 깨듯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다.갑작스러운 소리에 방 안의 공기가 순간 멈춘 듯했다.그러나 박한빈은 무시한 채 계속 성유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그러나 벨 소리는 끊이지 않았고 결국 듣다 못한 성유리가 그를 밀쳐내며 말했다.“전화 받으세요!”박한빈은 입술을 꼭 다물고 표정을 굳혔지만 결국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22화

    박한빈은 여기가 공공장소라는 걸 물론 알고 있었다.사실, 진짜로 무슨 일을 벌일 생각은 없었다. 그저 단순히 성유리를 놀라게 하고 싶었을 뿐이다.물론 이 방식이 어느 정도 자신에게 해를 입히는 행동이긴 했지만 성유리가 당황해서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보니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었다.비행기는 곧 금성에 도착했다.성유리는 비행기에서 내리고 나서야 김서영이 하늘이를 데리고 마중 나왔다는 걸 알게 됐다.그녀를 발견한 하늘이는 곧장 달려와 성유리를 꽉 껴안으며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성유리는 그런 아이를 살며시 안았지만 그 순간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해졌다.방금 전, 그녀는 자신이 했던 행동이 떠올랐다.만약 그때 정말로 박한빈과 무슨 일이 있었다면 그건 하늘이에게 너무 무책임한 일이 아니었을까?그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지금은 두 사람 다 무사히 돌아왔다.성유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하늘이를 꼭 안았다.한편, 김서영은 조용히 박한빈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그 시선을 눈치챈 그는 가만히 서서 김서영이 자신의 안전을 확인할 시간을 주고는 입을 열었다.“걱정 마세요. 그냥 가벼운 찰과상 정도니까.”박한빈의 말투는 상당히 가벼웠다.원래도 걱정하는 눈빛으로 아들을 바라보던 김서영은 그 말을 듣자 미간을 더 깊이 찌푸렸다.“그렇게 자랑스러워할 일인가?”그 말 속에 담긴 불만을 박한빈도 느꼈지만 그는 태연하게 답했다.“아뇨, 그냥 걱정하실까 봐 말씀드린 거예요. 정말 괜찮습니다.”김서영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는데 대신 성유리를 바라보았다.“집에 가자.”짧은 김서영의 한마디에 성유리는 가볍게 대답한 뒤, 허리를 숙여 하늘이를 안아 올렸다.그 모습을 본 박한빈은 그녀의 가녀린 체격이 신경 쓰였는지 이내 다가와 말했다.“내가 안을게.”처음에 성유리는 거절하려 했다.평소라면 하늘이도 스스로 걸으려 하거나 내려달라고 했을 텐데 이번에는 박한빈을 한참 바라보더니 먼저 두 팔을 내밀었다.그 예상치 못한 행동에 성유리와 김서영도 순간 놀랐고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21화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건 그 사람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야.”박한빈의 말에 성유리는 반박하지 못했다.하지만 잠시 후,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렇지만 만약 저 때문이 아니었다면 박한빈 씨랑 그 사람은 아무런 관계도 없었을 거예요. 그리고 그 사람 때문에... 당신도 목숨을 잃을 뻔했잖아요.”“음, 말하자면 그렇긴 하지.”성유리의 말에 박한빈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그런데 내가 그런 걸 두려워할 것 같아?”그는 말하면서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그렇다면 넌 네 남편을 너무 얕본 거지.”처음에 성유리는 미간을 찌푸리며 박한빈의 말을 듣고 있었지만 남편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순간 멍해졌다.그래서 얼른 박한빈의 손을 쳐내고는 고개를 돌렸다.지금 비행기는 아직 이륙 전이라, 창밖에는 끝없이 평탄한 활주로만 보일 뿐이었다.박한빈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가 웃으며 물었다.“지금 부끄러워하는 거야?”“누가 부끄러워한댔어요?”성유리는 즉시 반박하며 미간을 찌푸렸다.그러나 박한빈은 대답 대신 그녀의 귓불을 살짝 꼬집었다.“그럼 이건 왜 이렇게 빨개졌는데?”“더워서요!”성유리는 단박에 부정하며 박한빈의 손을 밀어냈다.마침 그 순간, 승무원이 그들 곁을 지나가고 있었다.그리고 성유리의 말을 들은 승무원은 걸음을 멈추고 조심스럽게 물었다.“고객님, 혹시 기내 온도가 불편하신가요?”성유리는 그저 아무 말이나 내뱉은 것뿐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관심을 받게 되자 순간 당황했다.하지만 이미 이렇게 된 이상, 더 이상 물러설 수도 없었다.“조금 덥긴 하네요.”그녀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잠시만 기다려 주세요.”성유리의 말에 승무원은 즉시 온도를 조절했고 그 바람에 그녀 쪽의 바람 세기가 확연히 강해졌다.원래도 얇은 옷차림이었던 성유리는 추위에 몸을 움츠렸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옆에 있던 박한빈이 그녀의 반응을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었다.성유리가 자신과 끝까지 맞서려고 한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아무 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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