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휘왕은 그녀에게 검을 내려놓으라고 지시하며 말했다."오늘 밤엔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양쪽 모두에게 적절한 때가 아니다."고청영이 물었다."왜 그렇습니까? 임양운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가 나서도 영군왕을 잡을 수 없는 겁니까?""잡지 않을 것이다." 노 휘왕이 이마를 문지르며 말했다."방시원이 연주를 포위하고도 쉽게 행동하지 않는 것은 추몽이 연왕을 실질적으로 권한이 없는 상태로 만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부 연주의 백성들이 의군이라 불리는 것에 합류했고, 만약 진성이 실패한다면 연주와 영주의 관청이 조정의 이름으로 명분을 만들어 백성들을 학살할 것이다. 이는 더욱 큰 봉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것이 송석석이 선제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이유다."고청영이 급히 검을 내던지며 물었다."그럼 왜 영군왕은 지금이 아니라는 겁니까?"노 휘왕이 답했다."간단하다. 그는 추몽이 방시원을 격퇴하고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뒤, 목종욱과 교전을 벌여 목종욱이 진성으로 돌아가 왕을 돕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가 진성에서 자리를 굳힐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노 휘왕은 그의 계획을 훤히 알고 있었다."그 후, 자객을 보내 북명왕과 소 대장군 및 그의 집안의 아들들을 암살하려 들 것이다. 전쟁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남강과 성릉관의 전쟁은 모두 통제 가능한 수준이니 말이다. 그들에게 몇 개의 성지를 넘겨주고 성릉관에서 50리를 물러나 국경선을 양보하면 자연스럽게 전쟁을 멈출 수 있을 것이다.""그가 겸손한 군자로 보이느냐? 하지만 그의 속마음은 누구보다도 잔인하다. '나를 따르는 자는 살고, 거스르는 자는 죽는다'는 식이지. 그때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면 내 명성을 이용해 대대적인 피비린내 나는 숙청을 벌이고, 이후 나를 제거한 뒤 스스로 황제 자리에 올라갈 것이다. 세금을 감면하고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인자한 군주의 명성을 쌓겠지. 그러면 그는 아무런 잘못도 없는 사람이 될 것이다."고청영은 영군왕이
경공이 매우 뛰어난 그들은 각자 흩어져 급히 도망쳤다. 임양운이 그중 한 명을 쫓을 수 있었으나 모두를 붙잡는 것은 불가능했다.그래서 그는 더 추격하지 않았고, 어둠 속에서 손을 뻗어 송석석의 귀를 단번에 잡아서 귀가 거의 뒤집힐 정도로 돌려버리며 소리쳤다. "이렇게나 대담하다니! 방비도 하지 않은 채 전투에 나설 생각을 하느냐? 정말 네가 천하무적이라도 된 줄 아느냐?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도 못했냐는 말이다!"송석석은 고통스러워하며 아둥바둥댔다. 바로 그때, 염선생이 등을 키며 모두의 몸에 흘러내리는 핏자국을 비췄다.임양운은 그제야 송석석이 부상을 입은 것을 보았지만 그는 여전히 그녀의 귀를 잡고 있는 손을 놓지 않았고, 오히려 더 힘을 주며 이를 갈았다."너는 사청엄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예상하지 못했느냐? 어찌하여 매산으로 편지를 보내 도움을 청하지 않았느냐? 점점 자만해지고 있구나. 네 사숙이 오면 두고 보자. 아주 혼쭐이 날 것이다!"임양운이 송석석에게 이렇게 크게 화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릴 적에는 그녀가 아무리 큰 사고를 쳐도 그는 허리를 굽혀 선물을 들고 나와 사과하곤 했었다.이번엔 반대로 송석석이 허리를 굽혀 용서를 구해야 했다."잘못어요! 잘못했어요! 사부님, 제발 용서해주세요."임양운은 그녀의 몸에서 핏자국 없는 곳을 찾아 그녀의 무릎을 발로 살짝 차며 말했다. 그 발길질은 강하지 않았지만, 심청화와 다른 사람들 눈에는 굉장히 거칠어 보였다.그러나 누구도 감히 말하지 못했다. 염선생이 다가와 부상 처리를 먼저 하고 나중에 천천히 혼내도 늦지 않다며 송석석을 놓아 달라고 부탁했다.임양운은 송석석과 심청화의 부상을 보고 마음이 약해져 손을 놓으며 말했다."아직 약도 안 먹고 상처 치료도 안 하고 뭣들 하느냐? 설마 이 경위부에 치료약조차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 사부에게 말하려는 건 아니겠지?""있어요! 있어요!" 송석석이 급히 대답하며 글썽이는 눈으로 사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동안
날이 밝자 임양운은 그들을 데리고 왕경루로 향했다.송석석은 그제야 사문 사람들만이 아니라 여러 문파의 장문인과 장로까지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뿐만 아니라 시만자, 몽둥이, 그리고 만두의 사부도 왔다.시만자는 자신의 사부를 보자마자 소리를 지르며 곧바로 달려갔다."사부! 어떻게 오셨어요? 왜 저한테 한마디도 안 하셨어요?"적염문의 장문인은 자신의 복덩이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너희들이 경사를 지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부가 당연히 직접 와서 힘을 보태야 하지 않겠느냐?""사부님 최고예요! 나중에 사부님께 또 장원을 한 채 마련해 드릴게요!"시만자가 사부의 팔을 끌어안으며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러자 적염문 장문인이 그녀를 살짝 꾸짖었다."사부가 이렇게나 많은 장원이 필요하겠느냐? 더는 마련할 필요 없다. 이 대신, 독고산에 온천이 있다하니 그곳을 사서 너희 사형들과 사제들이 몸을 담그고 뼈와 근육을 단련할 수 있도록 하고 싶구나."시만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원하게 말했다."사요! 당장 사버릴게요!"다른 사람들은 적염문 장문인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다른 문파에서는 제자를 기르고 먹이고 무기를 마련해 주는 반면, 적염문 장문인은 제자의 덕을 보며 살아가는 것도 모자라 거리낌 없이 누리는 모습이었으니 말이다.새벽이 밝아올 무렵, 노 휘왕은 서방에서 나왔다. 밤새 잠을 한숨도 못 잔 그의 얼굴은 몹시 수척해 보였다. 나이가 들은 탓인지 밤을 새우기가 영 힘들었던 것이다.그는 여전히 문 앞을 지키고 있는 관백을 바라보며 비웃음을 지었다."참패하고 돌아왔느냐?"관백은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왕야, 오늘도 외출하시겠습니까?""나가지 않는다. 네 일이나 알아서 하거라." 노 휘왕이 무심하게 말했다.하지만 사청엄이 떠나지 않고 여전히 그의 곁에 서 있자, 노 휘왕이 다시 차갑게 말했다."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묻거라."사청엄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이미 임양운 일행이 진성으로 돌아온 것을 알고 계
노 휘왕은 두 주먹을 움켜쥔 채 뒤따라갔다.의원이 진찰한 결과, 정삼숙의 두 다리는 부러졌고 이가 세 개나 빠졌으며 얼굴의 여러 뼈에도 골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노 휘왕을 향해 웃으려 했다. 고통에 일그러진 몰골이었지만 끝내 웃음을 잃지 않으며, 게속 괜찮다고 했다.노 휘왕은 순간 마음이 아파져 고개를 돌렸다. 평생을 함께한 사람이 이런 참혹한 꼴을 당했으니,그는 분노하면서도 동시에 무력감을 느꼈다.그의 영패는 이미 영주에 있을 때 하나 더 만들어 두었었다. 이는 혹시 누군가가 후에 영패를 훔쳐 그의 부하들을 지휘하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 다른 영패를 사용해 이를 저지하기 위해서였다.그렇기에 지금 이 상황에서 쓰이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한편, 수로 작업의 혼란은 빠르게 진정되었고, 김창명은 관리 소홀의 책임으로 체포되어 황실 감옥에 갇힌 탓에 이후 수로 작업은 선평후가 직접 감독하게 되었다.하도사의 다른 관리들도 모두 직무 태만의 문제로 교체되었다.이렇게 모두 겉으로는 김창명이 수로 작업을 책임지고 있는 듯 보였지만, 숙청제와 송석석은 실제로 이미 내부에 또 다른 지도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김창명이 죽는다고 해서 큰 영향은 없을 것이었기에 사청엄은 조금도 급하지 않았다. 그는 추몽의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만 있었다.연주에서의 연왕은 이미 마음이 불안해진듯 가만히 앉아 있질 못했다.방시원이 성을 포위한 지 2주나 넘었지만 아무런 움직임이나, 공격의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기에더욱 초조해진 것이다. 성을 포위했다는 말은 외부의 소식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또한, 각지에 퍼뜨린 도적들의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목종욱이 방시원과 합류했는지, 그리고 진성의 상황이 어떤지도 전혀 알 수 없었다.포위된 상황에서도 소식을 완전히 차단할 수 없었다. 단지 시간이 오래 걸릴 뿐, 산길을 타고 밀림을 넘어가면 연주에 충분히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즉, 만약 소식이 도착했다면 그것은 열흘 전의 상황일 가
밤이 되자, 김수덕이 첩자를 데리고 돌아와 급히 보고했다."왕야, 하상지가 이미 흩어져 있던 병력을 모두 소집하였으며, 시씨 가문의 군마 500필을 얻었습니다. 지금 돌아오는 중으로, 걸음 속도로 보아 사흘 뒤 도착할 것입니다."연왕은 벌떡 일어나며 크게 기뻐했다."정말인가?!""정말 확실합니다! 첩자가 바로 문밖에 있으니 왕야께서 직접 물어보십시오 .""어서 들여 라!"연왕의 가슴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마침내 병력을 모두 소집하게 되었지만, 시씨 가문에서 군마 500필이 나온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시만자의 사건 이후로 시씨 가문과는와는 이미 갈라선 사이였는데 말이다.그때 첩자가 들어와 한쪽 무릎을 꿇고 말했다."왕야, 하대감께서 소인을 보내 보고하도록 하셨습니다. 사병은 모두 소집되었으며, 영군왕의 참모인 추선생도 5천 병력과 500필의 군마를 이끌고 지원한다고 했습니다. 단, 영군왕의 요구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노 휘왕을 구출하는 것입니다."연왕은 영군왕이라는 말을 듣고 잠시 멍해졌다. 그는 이전에도 영군왕을 끌어들이려 했지만 그의 태도는 모호하기만 했고, 도저히 속내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이미 영군왕을 배제한 상태였다.이번에는 오히려 처음에는 동조했던 사람들이 모두 발을 뺀 상황에서 영군왕이 나서준 것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그의 아버지인 노 휘왕은 진성에 있었지만, 실상은 인질로 잡혀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청엄이 화가 난 것은 당연했다.그는 사청엄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학문이 깊고 의젓한 군자였고, 효심이 깊어 그의 효성은 강남 전역에 알려져 있었다.노 휘왕이 홀로 진성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 사청엄도 어쩔 수 없이 이쪽으로 손을 내밀었을 것이다.연왕은 즉시 사람들을 소집하여 사흘 뒤의 계획을 논의했다.그는 거짓 항복 계략에 동의했다.무상이 처음 이 계략을 제안했을 때는 상당히 위험하다고 생각했었지만, 이제 안팎으로 협공만 할 수 있다면 방시원을 속여 성 안으로 유인해 잡는 것이 가능할 것 같
방시원은 이미 첩자의 보고를 받아 몇몇 신비한 부대가 영주 밖에서 합류하여 연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보다 더 일찍, 그는 염선생으로부터 받은 서신을 통해 연왕이 항복하는 척하며 군대를 성 안으로 유인한 뒤, 안팎에서 협공을 가하려 한다는 정보를 받았었기에, 연왕이 단지 영군왕의 한 수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알았다.방시원은 오랫동안 정보 첩자로 일한 경험이 있어, 이런 두세 개의 정보만으로도 실제 상황을 분석하고 전략을 세울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한편, 노홍과 제방은 원래 진성에 남아 있어야 했지만, 어제 갑작스럽게 연주 밖에서 그와 합류하게 되었는데, 방시원은 처음에 진성이 가장 위험할 때에 왜 이 둘을 보낸 건지 의아해했다. 하지만 송대감의 사부이자 만종문의 문주가 직접 진성에 왔고, 심지어 많은 무림인을 데리고 내려와 지원 중이라는 제방의 설명을 듣고 이내 안심했다.일반적으로 무림인은 조정의 다툼에 관여하지 않지만, 만약 반란이 발생하면 정의를 지키기 위해 산에서 내려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방시원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만종문의 문주 임양운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지략과 용맹을 겸비하면서 묵가의 기술에 능했고, 특히나 기계 무기 분야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육안통 또한 그의 손에 의해 개량되었으니 말이다.그가 진성을 지키고 있으니 영군왕은 결코 뜻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이틀 후, 정말로 염선생의 말대로 연주 성벽 위에서 누군가의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방 장군, 우리는 이미 역적 연왕과 사청엽, 회왕과 사청엄을 붙잡았습니다. 많은 관리와 병사들은 그들에게 미혹당했을 뿐 반역할 의도는 없었으며, 지금은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공적을 세움으로써 죄를 보상하려하니 방 장군께서는 성에 들어와 상의해 주시길 바랍니다.”소리치는 사람은 김수덕으로, 측비 김씨의 오라버니였다.방시원은 천리경을 들어 확인해보았다. 김수덕 옆에는 무상이 서 있었고, 연왕과 회왕은 온몸이 결박된 채 대검이 그들의 목에 겨누어져 있었
연왕은 이번 협상이 단지 허위 계략일 뿐이며, 자신이 결국 방시원에게 넘겨져 그를 성 안으로 유인하는 미끼로 사용될 것이라는 사실을 역시나 몰랐다.방시원이 협상에 동의하며 단독으로 이동했고, 무상 또한 단독으로 이동했다. 양측 뒤에는 호위병이 따랐으나 모두 열 장 떨어진 거리에서 머물렀다.무상은 자신과 연주의 대다수 관리들이 연왕의 반란 계획을 알지 못했으며, 설령 알았던 사람들이라도 연왕의 세력에 눌려 감히 말하지 못했음을 설명했다.그러나 방시원은 이를 믿지 않았다. 방시원은 그들이 모두 오래전부터 음모를 꾸민 자들이라고 단언했었기에, 그의 태도는 매우 강경했으며, 이는 무상에게 그가 영군왕의 배후와 비밀 병력의 존재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는 확신을 줄 수 있었다.무상은 그의 태도를 통해 확인하려 했을 뿐 아니라 추몽을 굳게 신뢰하고 있었다.이 신뢰와 존경은 그가 시씨 가문을 설득했다는 점에서 비롯되었다.무상과 연왕은 오랫동안 시간 시씨 가문을 공략했었지만, 시철진은 결코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었다. 그들이 처음으로 연왕을 배신하기로 결정한 것도 바로 이 점에서 영군왕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무상은 참모이니 자연히 승산 있는 자를 따라야 했다. 연왕은 이미 몰락하였으니 그를 따라 계속 반란을 도모한다면 죽음뿐이었다.협상 과정 자체는 사실상 중요하지 않았다. 양측 모두의 목적은 성에 들어가는 것이었고, 단지 각자 계산이 다를 뿐이었다.무상은 해가 저물어가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추몽이 요구한 대로 해가 지기 전, 방시원의 군대를 성 안으로 유인해야만 했다. 지금까지 남은 시간은 한 시진 남짓이었다.그래서 협상은 오래 지연되지 않았다. 무상은 연왕을 그들에게 넘기기로 동의했지만, 방시원에게 반드시 약속을 지켜 진성으로 돌아간 뒤 관대한 처분을 황제께 청할 것을 요구했다.사실 연왕을 넘기는 것은 필수적이었다. 그래야 방시원의 경계를 느슨하게 할 수 있으니 말이다.수장이 없으면 방시원은 그들이 더는 큰일을 벌일 수 없다고 생각할
무상이 직접 보내 연왕과 회왕은 함께 성문에서 압송되었다. 회왕은 인수할 때 무상이 자신을 풀어줄 줄 알고 있엇는데, 경군들이 그들을 억류할 때까지 무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자 당황해서 허우적거리며 의문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무상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안심하라는듯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전에도 그를 묶어 놓고, 나중에 같이 나간다고 했지만 결국엔 셋째 형만 넘겨주겠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무상이 자신까지 경군에게 넘기는 것을 본 회왕은 그가 자신까지 진성으로 보내려고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들자 당황해서 크게 소리쳤다. “나는 무죄요! 내가 연왕을 체포한 것이니 난 놔주오!” 그러자 방시원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어리석긴.” “무상…!” 회왕의 얼음처럼 차가워진 눈빛으로 무상을 바라보았다. 그는 사나운 표정에서 이내 애원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무상 선생, 당신은 내가 억울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소…? 얼른 방 장군에게 말해주시오!” 하지만 무상은 눈을 내리깔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저희 황제폐하께서 유무죄를 잘 판단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니 전하께서는 안심하십시오.” ‘저희 황제폐하’라는 말을 힘 있게 말하자 회왕은 일말의 희망을 잡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 때가 되어 추몽이 병마를 이끌고 쳐들어오면 경군의 목숨은 모두 연주에 남게 될 테니 난 당연히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야. 하지만 정말 그런 거라면 무상이 왜 미리 말하지 않는 것이지?’ 그는 마음속으로 걱정하면서도, 자신을 위로했다. ‘나는 그들의 비밀을 알고 있어. 그들이 정말로 날 버린 것이라면 직접 죽이겠지 왜 방시원의 손에 넣겠어? 내가 추몽이 병마를 이끌고 성을 포위해서 습격할 것을 말할까 봐 두렵지도 않나?’그가 다시 고개를 들어 무상을 바라보자, 무상이 그를 향해 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았다. 어떻게 되었든 경군은 연주를 떠
하지만 모두가 여전히 그녀의 목을 조르고 귀를 잡아당기며 다그치자, 결국 시만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설명했다. "앞뒤 사정 같은 건 없어! 그냥 우리 둘이 왕경루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그가 갑자기 사람들 인생의 꿈이라는 게 결국 단순히 혼인하는 것과 자식을 낳는 것이 아닐까 하고 묻길래, 그냥 맞장구치면서 그렇다고 했을 뿐이야. 그랬더니 날 보면서 그럼 우리도 한 번 해보자고 하기에 나도 알겠다고 한 거야."그녀는 다시 털썩 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말을 덧붙였다."난 그저 장난인 줄 알았어. 그런데 연말에 갑자기 그가 혼사를 준비해야겠다면서 매산으로 돌아가 사부께 허락을 구하고, 그 다음 내 사부께 인사를 드린 뒤 시씨 가문에 정식으로 청혼하겠다고 하더라고. 내가……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어?송석석이 단호하게 말했다."왜 말을 못 해? 네가 혼인할 생각이 없으면 거절하면 되잖아. 오해라면 바로잡으면 되고! 지금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다가, 그가 정식으로 청혼하러 갔을 때 너희 아버지와 사부께서 다 허락하신 후에 그때 가서 네가 거절하겠다고 하면…… 그건 그냥 장난치는 거 아니야?"신신이 손을 내밀어 그녀를 제지하며 말했다."잠깐, 잠깐. 시만자, 내가 물어볼게. 너 오사형과 혼인하고 싶어?"시만자의 눈빛이 흔들렸다."모르겠어.""이걸 모를 수가 있어?""진짜 모르겠어."그러자 신신이 몽동이처럼 허리에 손을 올리고는 화가 난 듯 말했다."그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는 알 거 아니야?"시만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조용히 말했다."그것도 모르겠어."모두가 얼이 빠졌다. 신신은 이를 악물고 마지막으로 물었다."그럼 넌 그와 혼인할 거야?"하지만 시만자는 여전히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모르겠어."신신은 어이없는 듯, 입을 떡 벌린 채 끝내 참지 못하고 화를 냈다. "이 애매한 태도 진짜…! 한 대 치고 싶다!"그러나 송석석이 다른 누군가가 시만자를 때리게 놔둘 리 없었다. 누군가 때려야 한다면, 그건 그녀 자
황실로 돌아오니 비로소 설날 분위기가 느껴졌다.사람들은 폭죽을 터뜨리며 투호와 활쏘기를 즐겼고, 각각의 놀이에는 상금과 특별한 보상이 걸려 있었다.폭죽 놀이는 폭죽을 손에 들고 있다가 터지기 전에 던져야 했는데, 반드시 공중에서 터져야 했다. 만약 땅에 떨어진 후 터지면 패배로 간주되었다. 물론 손에서 터져도 상을 받을 수 있었는데, 이는 손이 다 터질 정도로 아픈데도 상을 못 받는 건 말이 안 된다는 몽동이의 주장 때문이었다.송석석이 돌아왔을 때, 그들은 이미 한 시진이 넘도록 놀고 있었다. 땅에는 붉은 종이 조각들이 두껍게 깔려 있어, 그 위를 걸으면 푹신한 느낌이 들었다. 발을 떼고 나면 신발 바닥이 붉게 물들어 한층 더 명절 분위기가 살아났다.송석석은 이런 분위기가 무척 마음에 들었기에, 곧 함께 어울려 즐겁게 놀았다.그녀는 한 번도 손에서 폭죽을 터뜨린 적이 없었다. 항상 터지기 직전에 정확하게 던져 공중에서 맑고 경쾌한 펑! 소리와 함께 터뜨렸기 때문이다. 몽동이의 두 손도 벌겋게 부어 올랐지만, 얼굴에서는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미 상을 한가득 받아서 탁자 위가 꽉 찰 정도였다.염선생도 한동안 함께 어울려 놀다가, 한쪽에 앉아 심청화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심청화의 화폭 속에는 젊고 열정적인 얼굴들이 담겨 있었다. 활짝 웃는 그들의 얼굴과 땅을 가득 덮은 붉은 종이 조각들이 한데 어우러져, 설날 분위기가 그대로 화폭에서 흘러나오는 듯했다.그 사이, 양 마마가 교자와 탕원을 준비해 따끈따끈한 상태로 내왔다.탕원은 시만자가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그녀는 탕원이 가족의 화합과 온전함을 상징한다며, 설날이면 반드시 탕원을 먹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반면, 교자는 원보를 닮아 부귀를 상징하기에 송석석은 교자를 가장 좋아했다. 시만자가 그런 송석석에게 계속 탕원을 먹으라고 강요하자, 송석석 또한 시만자에게 교자를 먹으라고 강요했다. 그렇게 한참동안 서로 얼굴이 붉어지도록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엔 마주 보고 크게 웃어 버렸다
사실 황후는 자신이 말을 하면, 송석석이 바로 화를 낼 것이라 생각하고, 그대로 내버려 두려고 했다.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송석석은 그저 오해였다면 더 말할 필요 없다며 담담하게 받아넘겼다. 그 태도에 오히려 황후와 란주 상궁이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란주 상궁은 무안해하며 감사를 표하고 한쪽으로 물러났다. 그녀는 혹시라도 송석석이 다시 그 문제를 끄집어내려는 기색이 있는지 조용히 살폈지만, 송석석은 여전히 아무 말없이 차를 마실 뿐이었다. 그럼 이 일은 이렇게 마무리 되는 것인가? 그렇다고 이것으로 정말 오해가 풀린 것이라 할 수 있을까, 화해한 걸로 칠 수 있단 말인가?제 황후와 란주 상궁 모두 그런 것 같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대화가 끊긴 이상 더 이어나갈 수도 없었다. 괜히 말을 보탰다가는 오히려 변명처럼 보일 것이었다.제 황후가 얼굴을 굳힌 채 말했다."차가 식었구나. 왕비께 따뜻한 차를 다시 올려라."그녀는 속으로 몹시 불쾌했다. 송석석이 마치 단단한 벽을 세우고, 자신이 건네려던 화해의 손길을 차단해 버린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자신이 먼저 나서서 강하게 말할 수도 없었다.송석석은 여전히 차를 마시며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그녀는 황후와 나란히 앉아 말없이 있다가 묻는 말에만 간결하게 대답할 뿐, 먼저 화제를 꺼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황후를 거스르지도 않았다.그녀는 조금도 조급해 하지 않았다. 어차피 장춘궁을 나가면 다른 궁에서 또 그녀를 초대할 것이었기에, 그곳에서 형식적인 응대를 하며 빠져나갈 핑계를 찾느니, 차라리 이곳에서 조용히 있는 편이 더 나았기 때문이다.그녀는 문득 어떠한 생각이 들었다.‘올해와 작년의 차이가 정말 크구나. 사제가 곁에 없는 것도 서운한데, 불만이 가득한 황후와 함께 이곳에 갇혀 함께 설날을 맞아야 하다니.’화해? 그것은 그저 체면을 위한 것일 뿐,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 일은 오해가 아니었기에 화해할 이유 또한 없었다.게다가 황제가 정말 그녀를 두둔하며 둘이 화해하기를 바
장춘궁 안은 지열이 따뜻하게 데워져 있었다. 송석석이 막 도착했을 때, 궁인들ㅇ 황후가 옷을 갈아입으러 갔다며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기에 그녀는 외투를 벗고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한편, 제 황후는 침전에서 제비집을 먹고 있었다. 란주 상궁이 계속 재촉하자, 그녀는 짜증스럽게 대꾸했다."조금 기다리게 하면 뭐가 어떻다고 자꾸 재촉하는 것이냐?!"란주 상궁이 조심스럽게 말했다."마마, 전에는 왕비님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안된다고 그러지 않으셨습니까? 이렇게 모셔왔으니, 이야기를 잘 나누시고 오해를 풀면 더 이상 문제될 일이 없을 것입니다."제 황후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본궁도 본래 그렇게 생각했었지. 하지만 아까 폐하께서 뭐라고 하셨는지 너도 들었지 않느냐? 폐하께서는 송석석이 본궁을 치든 욕하든 다 받아들이라고 하셨다. 애초에 본궁을 황후로 여기지도 않고, 그저 자신이 가장 아끼는 사람이 분을 풀 수 있도록 하려는 거야."황후는 분에 못 이겨 제비집도 더 이상 먹지 않고 앞으로 밀어버렸다. 그녀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폐하께서는 병 때문에 정신이 흐려지신 것이냐, 아니면 정말 그렇게까지 송석석을 좋아하시는 것이냐?"그러자 란주 상궁이 그녀를 부드럽게 달래며 말했다."폐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건, 북명왕비께서 감히 마마를 치지는 못할 거라는 걸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저 마음속에 쌓인 분을 마마께 푸시는 거지요. 그러니 너무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누구는 화가 없는 줄 아느냐?"제 황후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본궁은 속이 안 타겠냐는 말이다. 본궁이 무슨 큰 악행을 저질렀다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세 번이나 금족령을 당하고, 후궁의 권한도 빼앗겼으며 대황자의 양육권마저 잃었다. 이제는 명부의 화까지 받아줘야 하다니, 이렇게 초라한 황후 자리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냐!"란주 상궁은 점점 초조해져 한숨을 쉬며 말했다."마마, 더 이상 고집을 부리시면 안 됩
올해 섣달 그믐날의 황실 연회는 예년에 비해 한층 조용했다.제 황후는 하루 동안 금족령이 풀렸으나 거의 말을 하지 않았으며, 걱정이 태산인 듯한 모습이었다.황자와 공주들이 그녀에게 차례로 문안 인사를 드릴때도 그녀는 그저 무심하게 대응할 뿐이었다.숙청제 또한 기력이 좋지 않았다. 새벽부터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여기저기 바쁘게 움직이느라 피곤할 수밖에 없었다.태후는 감기에 걸려 일찍이 혜 태비와 함께 연회를 떠났다.태후가 떠날 때, 제 황후는 급히 사람을 시켜 말했다."대황자를 지안궁에 데려가 태후께서 편히 쉬실 수 있도록 곁에서 모시게 하십시오."이에 숙청제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태후께서 편찮으신데, 그를 곁에 두어야 할 이유가 무엇이오?"제 황후는 단정한 태도로 대답했다."태후께서 대황자를 무척이나 아끼시지 않습니까. 그런 태후께서 아프신데 어찌 곁에서 병시중을 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그러고는 한숨을 쉬며 덧붙였다."본디 신첩이 직접 모셨어야 하나, 신첩이 무능하여 그리하지 못하니 대황자가 대신 효를 다하도록 하려는 것뿐입니다."숙청제는 싸늘한 눈길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황후가 한 걸음 물러서는 듯하며 금족령을 풀고자 하는 속셈이라는 것을 알았으나, 굳이 막을 이유도 없으니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황후의 말이 일리가 있군. 대황자를 지안궁으로 데리고 가라. 태후께서 완쾌하실 때까지 밤낮으로 곁에서 시중 들게 하라."제 황후의는 곧바로 얼굴이 굳어졌다. 하지만 더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그저 오 대반이 마지못해 따라 나서는 대황자를 데리고 나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그녀는 황제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애써 두 눈에 맺힌 눈물을 꾹 참아냈다.송석석은 아무것도 보지 않은 척 고개를 숙이고는, 조용히 차가워진 음식을 먹을 뿐이었다.한편, 일곱째 아가씨 사건과 관련하여 황제는 제 황후를 따로 처벌하지 않았다.오 대반의 말에 따르면, 황제가 크게 노하긴 했으나 대황자를 태자로 책봉할 가능성을 고려해 이 시점에
황제는 몸 상태가 조금 나아지자마자 상소문을 보기 시작했다. 승상을 신뢰하긴 했지만, 절대적으로 믿지는 않았다.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대군이 남강에 있지도 않고, 시몬 밖에서 사국 군대를 추격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혹시 북명왕이 군대를 이끌고 진성으로 돌아오는 중이라는 사실이 차단되어 어전에 보고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사여묵의 속도로는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모든 고을을 손쉽게 장악할 수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그래서 황제는 각 주부에서 올리는 상소문을 직접 확인하고자 했다.이때, 송석석이 다시 경위부로 복귀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는 송석석을 어서방으로 불렀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전처럼 한가롭게 담소를 나누는 자리가 아니라 그녀에게 사여묵에 대한 소식이 있는지 떠보려는 것이었다.송석석은 이에 대해 사실대로 답했으며, 자신 또한 매우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숙청제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거짓이 아님을 확신했지만, 어떤 경우든 이 상황은 몹시 불리했다. 만약 그들이 매복 공격을 당했다면 이는 곧 남강군의 패패를 의미했고, 남강이 다시 사국의 손에 넘어가게 된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그는 문득 사여묵이 처음에 내린 결정이 경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을 지키는 것으로 충분했지, 굳이 추격에 나설 필요는 없었다고 여겼다.그러나 곧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사여묵이 계속 남강에 머물렀다면, 남강 사람들이 그를 신처럼 받드는 상황이 더욱 심화될 것이었다. 이는 조정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송석석은 경위부로 돌아왔지만, 소식을 기다리는 날들은 매우 괴로웠다. 하루하루가 한없이 길게 느껴졌다.그녀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왜 이렇게 오랫동안 아무 소식도 없는지 알 수 없었다.평무종이 사람을 보내 그녀에게 전했다. "운익각에서도 원래 남강에 첩자를 두었으나, 그들이 군대와 함께 가지 않았기 때문에 소식이 없던 것이고, 이제 사람을 새로 보냈으니 안심해라."하지만 송석석이 어찌 안심할 수 있겠는가?매일 밤, 그녀는 서방에서
그날 밤, 단신의는 약 상자를 메고 홍작과 함께 황실로 향했다. 가기 전, 약왕당의 야간 진료를 맡고 있던 의원에게 왕비의 다리 부상을 치료하러 간다고 알렸다.마차가 잠시 후 황실 앞에 멈췄고, 단신의는 상기된 얼굴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내자, 단신의는 먼저 송석석을 흘끗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녀에게 화를 내지 않고 대신 염선생에게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노인을 이용해 빌미를 만든다면, 최소한 미리 한 마디는 해야 하지 않겠소? 하마터면 허어사 앞에서 들통날 뻔했단 말이오!"그의 분노가 터지자, 사람들은 비로소 무슨 일인지 알아차렸다.염선생이 급히 사과하며 물었다."허어사가 정말 단신의께 가서 물어보았습니까?""그 자가 병이 난 탓에 장공주가 나를 불러 진료하게 했소. 그런데 눈물을 쏟으며 폐하를 치료할 방법이 있는지 계속 물었단 말이오. 처음에는 병명이 뭔지도 말하지 않아서 정말 당황스럽기 그지없었소." 단신의가 말을 마치자마자 콧방귀를 뀌었다."혹시 탄로나진 않았겠지요?" 송석석이 다급히 물었다. 허어사가 죽음을 각오하고 간언하려 했던 일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는 작은 티끌도 용납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스스로 황제를 오해하여 황제가 피를 토하게 만든 일을 자책하며 무한한 죄책감 속에서 살아갈 것 같았다.그렇다고 진실을 말할 수도, 말하지 않을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이었다."웃기는 소리. 내가 어떻게 진실을 드러낼 수 있었겠느냐?" 그러자 단신의가 옷자락을 툭툭 털며 말했다."폐하의 병세를 내가 어찌 함부로 남에게 말하겠느냐? 그저 묻지 말라고만 말해도 충분했다.""곤란하게 만들어 죄송합니다, 백부님." 송석석이 말하자, 단신의는 그녀를 한번 쳐다보더니, 이내 나무랄 수 없다는 듯 눈길을 돌렸다. 오늘 어사부에서 돌아온 후 그는 최근 벌어진 일들을 모두 파악했고, 일이 이렇게까지 커졌다는 사실에 놀랐다."폐질환이 맞느냐?" 단신의가 물었다."우리도 오 대반의 말로 들은
식사가 끝난 후, 시만자는 평남백 부부를 데리고 왕경루의 큰 정원을 구경하겠다고 했다.왕경루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기와집이 있는데, 그곳에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 공연을 하는 사람, 물건을 파는 사람, 음식을 파는 사람 등 온갖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시만자는 진성에 온 이후로 줄곧 바빴던 터라 아직 구경할 틈이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평남백 부부를 데리고 나가며 송석석과 주진을 단둘이 대화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자신도 신신과 함께 놀아보려는 속셈이었다.그들이 떠난 후, 송석석과 주진은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 문제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낼수 있었다. 밖에 있던 손님들은 평남백 부부가 나가는 것을 보고, 북명왕비가 일곱째 아가씨를 홀로 남겨 질책할 것이라고 생각해 귀를 기울이며 기다렸다. 하지만 두 사람은 오히려 더욱 화기애애하게 웃으며 얘기하고 있었고, 분위기는 처음보다 더 좋아보였다.시중드는 사람들이 계속 드나드는 탓에 아예 한쪽 천을 걷어 올러져,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밖에서도 볼 수 있었다. 구경꾼들은 하나같이 눈치가 빠른 사람들 뿐이라 두 사람이 정말로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인지, 아니면 가식적으로 웃는 것인지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그들은 정말 즐거워 보였다. 악명 높은 주진이 뜻밖에도 이렇게 품위 있고 매끄럽게 대화를 이어간다는 점은 모두에게 놀라움을 안겨주었다.바로 그 순간, 사람들은 그녀가 단순한 상인 가문의 여성이 아니라 백작부의 딸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평남백부가 비록 관직에 나서지 않고 조용히 살고 있지만, 가문의 기반은 여전히 탄탄했다. 북명왕비조차 지금 그녀의 체면을 세워주고 있지 않은가!주진은 가끔씩 밖을 힐끗 보았다. 그녀는 송석석이 이번 사건으로 인해 자신에게 뜻밖의 피해를 입혔음을 언급하자,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왕비마마, 농담도 잘 하십니다. 어찌 무고한 피해라 하겠습니까? 오히려 하늘이 내린 기회라 할
송석석과 시만자, 그리고 신신은 란계원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하인이 평남백부의 세 식구와 남종과 여종들을 데리고 정원으로 들어와 란계원 밖에서 이름을 알렸다.송석석은 시만자와 신신의 부축을 받아 직접 마중을 나갔다. 평남백 부부와 일곱째 아가씨 주진이 서둘러 예를 갖추었다.송석석이 웃으며 말했다."예까지 차릴 필요 없습니다. 어서 안으로 들어오시지요."송석석은 이 말을 하며 세 사람을 한 번 훑어보았다.수년간 여러 사람을 만나왔던 그녀는 이들의 표정과 태도, 행동거지를 통해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평남백은 검은색 외투를 걸치고 안에는 화조 무늬가 새겨진 금실 장식의 비단 옷을 입었으며, 가슴에는 큰 염주를 걸고 있었다. 부유하면서도 불교적인 면모가 한눈에 느껴졌다.다만 서 있을 때 무의식적으로 옆에 있는 딸 쪽으로 몸을 기울였고, 얼굴에 떠오른 미소에는 약간의 아첨이 묻어나 있었기에, 교제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평남백 부인은 밝은 진홍색의 상의에 흰색 여우털 외투를 입고 있어 혈색이 특히 좋아 보였으며, 얼굴도 매끈해 보였다. 만약 눈가에 주름이 없었다면 세월의 흔적을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였다.그러나 이들 부부는 이미 인생의 반을 살아왔음에도 아직도 세상을 잘 모르는 듯한 풋풋함이 느껴졌다. 그들은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는 아버지에게 의지하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딸에게 의지하는 유형의 사람들이었다.반면 일곱째 아가씨 주진은 전혀 달랐다. 그녀는 호수빛 푸른색 비단 옷에 솜을 덧댄 간결한 외투를 걸친 모습으로, 매우 깔끔하고 당당해 보였다.또한 얇고 긴 눈썹은 약간 올라가 있었고, 살구 모양의 눈과 오뚝한 콧날, 뾰족한 턱선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기에 섬세하고 부드러운 매력도 느껴졌다. 비록 이러한 외모가 그녀의 당당한 기질과 어울리진 않을 것 같았지만, 이상하게도 전혀 어색함 없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왕비마마께서 정말 좋은 장소를 고르셨습니다!" 주진은 밝고 시원한 웃음을 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