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왕의 협박정후가 당황해서 고개를 돌리며, “누가? 무슨 말을?”안왕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상부인(尚夫人)이 정후 나리에게 한가지 묻고 싶다며, 왜 이렇게 오랫동안 자신을 보러 오지 않냐고.”정후의 얼굴에 핏기가 싹 가시며, 두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바닥에 꿇어앉아 몸을 채로 치는듯 탈탈거렸다.안왕이 오만하고 냉담한 모습으로 정후를 보고, “정후, 사람은 다 이기적인 법이네, 반편생을 골육간의 정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살았는데 관직과 앞날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지금 눈 앞에 큰 기회를 두고 정말 포기할 수 있나? 당신이 이렇게 태자비를 감싼다고 당신한테 일이 터지면 태자비가 감싸 줄까 과연?”정후는 땅에 꿇어 앉아 여전히 몸을 떨며 곧 울음이라도 터트릴 것만 같다.“왕야, 어떻게 알게 된 거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정후는 스스로 철저하게 비밀을 지켰다고 생각했고 상부인은 절대 다른 사람에게 얘기할 사람이 아닌데 안왕은 어떻게 안 거지?안왕이 차갑게 웃으며, “자신이 저지른 일을 속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군. 상부인 뿐 아니라 정후가 벌인 일을 난 다 알고 있어. 이제 정후에게 두가지 선택만 있지, 어제 계획대로 일을 진행하느냐, 아니면 내가 이 일을 천하에 공개하느냐, 정후가 직접 결정하지.”정후는 무릎걸음으로 나오며 애원하길, “안됩니다, 왕야, 상의한 대로 해요, 왕야 제발 비밀을 지켜주세요.”“그럼 내가 말한 대로 해.” 안왕이 차갑게 말했다.정후는 울상을 지으며, “왕야, 만약 이 일이 발각되면 사형을 면치 못합니다. 왕야 저는 정말 할 수 없어요, 왕야 제발 저를 용서해 주세요, 이거 말고 다른 일은 뭐든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안왕이 아래로 내려다보며 화조차 내지 않고, “정후 당신에게 안타깝게도 내게 도움이 될 만한 다른 능력은 없어, 이 일이 만약 발각될 경우 분명 사형감이지만, 나도 절대 당신이 발각되게 하지 않을 거야. 당신이 발각되면 내가 발각되니까. 내 목숨이 아깝지
인생에 대한 태상황의 생각주지스님이 정말 힘을 써 주신 게 현실로 증명됐다. 명원제는 초왕 가족이 잠시 초왕부에 살도록 윤허했기 때문이다.게다가 초왕의 전에 봉호로 회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초왕부라고 불러도 예법에 저촉되거나 타당하지 못한 면이 없었다.세 아가의 만 한달 축하연이 어떤 격식으로 거행되어야 하는지 황제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태상황이 일률적으로 황제의 적장자의 규례에 따라 거행할 것이라고 발언했다.그동안 태상황은 건곤전에서도 안정 하지를 못하고 종일 뒷짐을 지고 왔다 갔다 하며 뭔가 상당히 애타는 듯한 모습이었다.상선이 태상황에게,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술이 고프신 건 아닌지요? 만약 드시고 싶으시면 제가 가서 주재상과 소요공에게 입궁하여 폐하를 모시라 전하겠습니다.”태상황이 뒤를 돌아 상선에게, “부르지 마, 됐어, 걔들은 귀찮아.”“그럼 왜 그러십니까?” 상선이 물었다.태상황이 말없이 여전히 뱅글뱅글 맴을 돌고 자리에 앉아 다바오를 오라고 하더니 개를 훈련시키다가, 상선이 멍하니 한쪽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아무 생각없이: “괜찮으면 초왕부에 좀 보러 가.”“뭘 볼까요?” 상선은 태상황이 증손자를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 짐짓 모르는 척, “초왕부에 볼 게 뭐가 있습니까? 궁에 볼 게 많지요.”태상황이 성질을 내며, “가라면 갈 것이지, 뭘 보든 상관없으니 그냥 가.”상선이 웃으며: “예, 그럼 다녀오겠습니다.”태상황이: “창고에 태자비가 몸보신에 쓸 만한 물건이 있는지 보고 가져다 줘라.”상선이: “태상황 폐하, 최근 궁에서 나간 인삼(人參)과 녹용(鹿茸)이 아마도 태자비께서 매일 드셔도 1년동안 다 못 드실 양입니다.”“뭘 안다고 그래? 해산한 여인은 몸조리를 잘 해야 하고 말고? 몸조리를 잘해야 계속 낳을 수 있지.” 태상황이 역정을 냈다.상선이 ‘아!’하더니, “일년 육개월은 아마도 낳지 못하실 겁니다. 얼마나 위험한지 모르시겠지만 세 도련님은 배를 가르고 낳으신 겁니다.”“일년 육개월후에 낳
태자에게 후궁을?젊은 사람들은 이해할 수가 없다니까!죽기 살기로 싸워서 결국 편안해 지자는 거 아닌가?상선은 초왕부에 와서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어르려고 했다.왜냐면 본인은 남녀의 인연이 없는 몸이라 소월각 안에 들어가 아이들을 볼 수 있고 원경릉도 일어나 옆에서 같이 있을 수 있었다.만두는 특히 상선을 좋아해서 상선을 보자 헤벌쭉 웃었다.만두는 많이 먹고 통통해서 웃는 모습이 동자승 같은데 상당히 귀엽고 상선이 어르는 맛이 있다.“궁 안에 사시면 딱 좋을 텐데요.” 상선이 아쉬운 듯 만두를 내려놓고 경단이와 찰떡이를 안으며, “궁 안에 사셔야 합니다, 밖에 계시니 한 달에 한 번 뵙기도 어렵고 태상황 폐하께서는 아가들이 보고 싶으신데 태자비께서 아직 나오지 못하는 개월수라 궁 안을 안고 걷지도 못하고, 폐하 본인도 밖에 나오시기 어려운지라 아주 많이 그리워하세요.”원경릉이 웃으며: “만약 태상황 폐하께서 데리고 계신 것이 좋으시면 만 한달이 차거든 데려다 주시고 2년간 데리고 있다가 돌려주셔도 됩니다.”상선이 보물을 다루듯 경단이를 가슴에 안고 살살 흔들며, “정말이십니까? 만약 정말 이시면 폐하깨서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실 겁니다.” 원경릉이: “저도 한적하니 좋지요.”상선이 미소를 머금고 원경릉에게: “맞아요, 몸조리를 잘 하셔야지요, 오늘 태상황께서 또 그러셨습니다, 앞으로 만약 태자 전하께서 딸을 원하시면 후궁에게 낳도록 하고 마마를 고생시킬 수는 없다고. 태상황 폐하는 참으로 마마를 제 몸처럼 아끼세요.”원경릉이 놀라며, “뭐요? 어느 후궁에게서 낳게 한다는 겁니까?”“아직 후궁도 없지 않습니까? 서두르지 마시고 천천히 고르시지요.” 상선이 말했다.원경릉이 정신이 안 돌아온 상태로 희상궁이 한손으로 경단이를 빼앗으며 화가 나서: “후궁이 왠말입니까? 왕비마마께서 아직 산후 조리도 마치지 않으셨는데 고작 태자 생각한다는 게 전하께 후궁을 맞이하시게 하는 겁니까?”상선이: “빠르던 늦던 언젠가는 있을 일이 아닙니까? 전에 친
태자 책봉 전희상궁이 화가 나서: “어서 가기나 해, 때와 장소를 가려서 말을 해야지, 사람 마음 다치게 하는 거 안보여?”상선이 희상궁의 격한 반응을 보고 태자비 원경릉의 불쾌한 낯빛을 떠올리며 가는 수밖에 없었다.상선이 돌아가서 태상황에게, “폐하께서 분부하신 말씀을 소인이 했더니 태자비는 불쾌해 하시고, 희상궁도 바로 저를 쫓아내던 데요, 일이 쉽지 않겠습니다!”태상황이: “무슨 말?”“말씀하셨던 후궁일 말입니다.”태상황이 놀라며, “후궁? 뜬금없이 왠 후궁?”상선이: “아직 맞지 않아서 그렇지 맞으면 후궁의 딸도 있는 거지요.”태상황이 담담하게: “네가 이런 몹쓸 놈이라고 욕 먹었다고 했지? 아직 후궁조차 없는데 네가 먼저 말을 꺼낸 데다가 배를 갈라 아이 셋을 나은 게 가슴 아프다고 했지? 어쩌자고 이럴 때 가서 태자비에게 후궁이 어쩌고 산통이 어쩌고 지껄였어? 과인이 보니 넌 나이가 들수록 잔인해 져. 독하다 독해.”상선이 말문이 막혀서, “소인이 뭐가 잔인한데요? 이건 오늘 폐하께서 분부하신 일이 아니십니까?”“시끄러워, 과인은 성정이 착해서 이런 일 안 해, 과인이 살아 있을 동안은 후궁 어쩌고는 없는 일이니, 과인이 죽은 후에 알아서 들 하든가!”태상황은 ‘인생 뭘까’하는 눈빛인 상선에게: “아가들은 어땠어?”상선이 얼른 답하길: “좋아요, 소인이 안으니 바로 웃는데 웃는 모습이 제가 그냥 샘물처럼 녹아버리겠더라구요.”“하루에 젖은 몇 번 먹는데? 끙아는 몇 번 하고? 쉬는? 잠은 얼마나 자? 찰떡이는 황달 없어졌어?”태상황이 줄줄이 질문을 해대는데 상선이 눈만 뻐끔뻐끔 뜨고 아무 말도 못하는게 후궁얘기에 정신이 팔려서 이런 얘기를 묻기도 전에 희상궁에게 쫓겨났기 때문이다.태상황은 상선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것을 보고 한숨을 쉬더니, “진짜 갈수록 쓸모가 없다니까 태자에게 후궁이 필요한 게 너와 무슨 상관인가?”말을 마치고 유유히 다바오를 데리고 나가 산책을 했다.상선이 따라 나가 복도 앞에 앉아 태상황이 다바
태후를 조르는 현비진심이든 거짓이든 후궁 마마들은 태후 앞에 문안하며 모두 세 쌍둥이의 복을 비는 말을 하곤 했다.태후도 기분이 좋은데 유일하게 불만인 것이 태자가 동궁에 살지 않는 것으로 태후가 아무 때나 세 쌍둥이를 볼 수 없다는 점이다.하지만 주지 스님이 세 쌍둥이가 부처님 오신 날 태어나서 태어난 곳에서 한동안 머물러야 한다고 하니 주지 스님의 말 대로 했다. 어쨌든 그 방면에선 주지 스님이 전문가니 말이다.이날 현비는 또 태후를 찾아왔다.태후도 요즘 현비를 보면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필 자기 조카에 소씨 집안 사람이라 또 귀찮게 해도 형식적으로 대강대강 받아주는 수밖에 없다.사실 황제가 현비의 책봉을 이래저래 늦추는 게 태후가 생각해도 이상하다.하지만 태후는 이 사실을 묻지 않고 늘 자식의 뜻을 따랐듯이 아들이 그렇다면 그러려니 했다.현비는 여전히 질질 짰지만 오늘 한층 더 조급증이 나는지 아니면 그날 호비에게 따귀를 맞았는데 황제가 결국 호비에게 아무런 처벌도 내리지 않은 것을 두고, 자신의 지위와 신분이 매우 위험하다고 느꼈나 보다.현비가 훌쩍 거리며: “고모, 폐하께서 조카를 말려 죽이시려고 해요. 바깥사람들이 전부 제가 무슨 나쁜 짓을 했는지 모르지만 그래서 폐하의 심기를 거스르는 바람에 아들은 태자로 책봉되었는데 어미의 품계는 오르지 못한다고 추측한다고요. 마마께서 조카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않으시면 조카는 사람들을 볼 낯이 없어요.”태후는 위로할 수 있는 말은 다했는데 현비가 이렇게 집착하며 나날이 강도가 더하는 게 방법이 없어: “네 품계를 높이지 않는 것은 폐하가 틀림없이 생각이 있어서니 네가 아무리 소란을 피워도 소용없다. 미움만 커지게 할 뿐이니 돌아가거라, 나도 널 도울 수가 없구나.”현비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여전히 달갑지 않다는 얼굴로, “북당 왕조가 시작된 이래 아들이 태자에 오르면 어미의 품계가 오르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이건 조상께서 정해 놓은 규칙임을 태후마마도 아시는데 폐하께서 어찌 조상의 규칙을
진실을 알게 된 태후태후가 본론으로 들어가며: “이제 황태자가 정해졌으니 이 어미도 한시름 덜었구나, 그런데 아들 덕에 어미가 귀해진다고 하지 않더냐, 우리 북당은 예로부터 자식덕에 비빈의 품계를 올려주는 규례가 있는데 태자를 세웠는데도 현비의 품계를 올려주지 않으니 바깥 사람들이 네가 아직 그럴 기분이 아니라고 예단해도 어쩔 수 없구나.”명원제가 미소를 지으며, “어마마마 안심하세요, 짐에게 이미 생각이 있습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태후가 명원제에게, “어미에게 얘기해 다오, 현비가 출산을 방해했던 일 때문이 아니냐?”명원제의 눈이 다시 한번 병풍을 흘끔 보더니: “태자비가 해산하기 전후 및 해산할 때 현비가 ‘어미를 버리고 아이를 남기라’고 했는데 다행히 태자비의 명이 길어 살아서 버텨내고 다섯째를 태자에 옹립 시켰지요. 짐도 당연히 조상의 규칙을 알고 태자의 어미도 함께 책봉하고자 했으나 짐이 연속으로 삼일간 황실의 종묘에서 성배를 잃어버린 것이 열조께서 전부 현비의 책봉에 동의하지 않아서 인가 싶습니다.”태후가 놀라서, “세상에 그랬단 말이냐?”명원제가: “어마마마 걱정하지 마세요. 현비는 이런 걸 따질 사람이 아닙니다. 결국 어미를 버리고 아이를 살리라는 건 현비의 주장이었으니, 지금 아들은 귀한 몸이 되고 어미는 평범한 신분인 것도 바로 그 이치가 아니겠습니까.”태후가 쓴웃음을 지으며 이치 따위 따지지 않았으면 좋았을 뻔 했다.“어미를 버리고 아이를 남기라니 도대체 무슨 소리냐?” 태후가 그날 해산할 때 현비가 소동을 일으킨 것을 알았지만 구체적으로 무슨 짓을 했는지 몰랐다.명원제가 약간 의외라는 듯, “어마마마, 그 일은 궁 안에 소문이 자자한테 모르셨습니까?”명원제는 태후가 이미 알고 있는 줄 안 게 어쨌든 이미 비밀도 아니고 태후가 벌하는 것을 본 적이 없어서 예전처럼 고모 조카 정에 끌려서 그러는구나 생각했었다.“무슨 소문인데? 그런데 왜 나는 몰랐지?” 태후가 점점 어안이 벙벙해 졌다.호상궁이 당황해서 태후를 쳐다보
불같이 화가 난 태후그때 현비는 황제가 다섯째를 이렇게 바로 태자로 책봉할 줄 알기나 했나? 만약 알았으면 원경릉을 아예 받아들이지도 않았을 것이다.명원제가 간 뒤 태후가 소리 지르며: “당장 나와!”현비가 눈이 퉁퉁 부은 채 바닥에 꿇어 앉아 슬픈 목소리로: “고모, 조카는 어떻게 해야 되나요?” 태후는 현비가 여전히 자기만 아는 것을 보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따귀를 때리며, “네가 정말 날 아주 열 받아 죽게 할 참이구나. 천하에 어찌 너 같은 시어머니가 있느냐? 며느리가 산실에서 생사를 오가는데 도울 생각은 하지 않고 목숨을 구하려는 걸 방해해? 세상 어떤 이치로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야, 심지어 내 조령이라고 거짓으로 꾸며 나를 불의한 존재로 모함하다니. 초왕비가 마침 황실의 대통을 낳았는데 너는 내가 그녀를 죽이려 했다고 말해? 어찌 이런 법이 있을 수가 있어, 내가 지금 당장 너를 죽여도 시원치 않아.”태후는 분노로 이를 딱딱 부딪히며 한바탕 욕을 해댔다.“고모, 왜 또 그 얘기를 하세요? 당시에 조카도 잠시 미련했던 거잖아요?” 현비는 따귀를 맞고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넌 이생에 정신 차리긴 글렀어,” 태후는 계속 욕을 해대며, “어쩐지 삼일 목욕 때 누가 아가들을 안아도 괜찮았는데 유독 너만 안지 못하고 네가 안으면 울고, 찰떡이는 울다가 숨이 멎을 뻔한 게, 아이들이 막 태어났지만 전생의 영성이 있어서 네가 자신들의 어미를 죽이려 했던 걸 알고 너를 멀리하는 게야. 앞으로 내 명령없이 세 아이 곁에 갈 수 없을 줄 알아.”태후는 현비가 산실에서 소란을 피운 것을 생각하니 부들부들 떨리는데 감히 어디서 아이들을 봐? 아이들이 현비를 싫어하는 것이 일시적인 충동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누가 그래? 현비는 태후가 이 일을 들어서 알게 되면 화를 낼 걸 알고, 호상궁에게 신신당부하며 비밀을 엄수하게 했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지난 뒤 돌이켜보니 자신이 그렇게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현비는 즉시 태후의 말에 수긍이 안돼서,
태후는 눈썹을 찌푸렸다.“뭣하고 있는 게야? 서둘러 초왕부에 가서 오해를 풀어야 하지 않겠느냐?”“태후 마마, 화 푸십시오. 굳이 초왕부에 가서 말을 하지 않아도 태자비는 현비가 거짓을 전했다는 것을 알 겁니다. 그리고 모두들 현비가 거짓말을 했다는 걸 압니다.” 호 상궁이 말했다.“그게 더 큰일이야! 그들은 내가 현비를 감싸고 있다고 여길 텐데…… 나와 현비가 한 통속이라고 알 것이야!”“태후 마마 걱정 마십시오. 그 누구도 태후 마마에 대해 논할 수 없습니다.” 태후는 호 상궁의 말을 듣고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그렇게 설교할 시간에 당장 초왕부로 가보거라!”태후가 호 상궁에게 명령했다.“예!”원경릉은 갑자기 태후의 사람인 호 상궁이 왕부로 찾아온 것을 보고 의아했다.이미 오래전 일로 현비가 태후를 들먹이며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원경릉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굳이 해명할 필요도 없는데, 태후께서 왜 호 상궁을 보내 이 일을 해명하려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원경릉은 호 상궁에게 자신이 전혀 태후 마마를 의심하지 않고 있으니 염려 마시라고 전해달라고 하며, 덧붙여 태어난 세 증손주들을 대신해 태후 마마의 안부를 물어달라고 했다.태후는 돌아온 호 상궁에게 말을 전해 듣고 기쁜 마음으로 우문호를 불러 선물을 하사했다.*호 상궁이 떠난 후, 원경릉은 잊고 있었던 현비의 독사 같은 말들이 떠올라 기분이 나빠졌다.그녀가 아무리 잊어버리려고 노력해도, 쏟아진 물을 주워 담을 수 없듯 현비가 했던 말이 가슴에 박혀있었다. 당시에 현비는 아이들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그냥 원경릉을 없애버리고 싶어 했다. 그렇기에 아이들이 태어나고도 그런 소란을 피운 것이다.원경릉은 현비와 원한 관계도 없는데, 현비가 왜 이렇게 자신을 죽이려고 드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는 마음이 답답해서 자신의 감정을 누군가에게 터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우문호가 국자감에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우문호가 왕부로 돌아오자 그녀는 하인들을 시켜 그가 좋아하
만두와 우문예는 여전히 변경 도성에 머물고 있었고, 형제들과 함께 금나라에서 돌아온 참이었다. 이번 금나라 황제의 대혼이 다소 수상쩍다고 여겨, 그들은 몰래 금나라에 잠입하여 상황을 살펴보았다.금나라 황제가 계란이를 황후로 책봉했다는 사실을 알고, 그들은 몹시 화가 났었다. 그러나 통천각 지붕에서 황제와 금나라 금군 수장의 대화를 엿듣고 나서야, 그 속에 깊은 뜻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에게 따지지 않기로 했다.계란이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형제들은 먼저 약도성에서 그녀를 기다리기로 했다. 이 일은 아버지가 알면 안 되는 문제였다. 지금은 아버지가 모르는 상황이니, 장남이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해야 했다. 적어도 계란의 생각이 어떠한지부터는 제대로 확인해야 했다.우문예는 여전히 화가 났다. 단순한 분노를 넘어서, 애지중지 키운 보물이 누군가에게 빼앗길 것 같은 두려움이 들었다.여동생이 언젠가는 시집을 가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여동생이 적어도 서른 살이 되어서야 결혼하길 바랐다. 계란이가 충분히 즐기고, 세상을 경험한 후, 성숙한 마음가짐으로 시집을 가야 앞으로 혼인을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이제 겨우 열한 살인데, 벌써 이런 걱정을 해야 한다니 말이다. "형, 어마마마가 찾으세요?"경단이 물었다."맞아. 아바마마께서 내가 군영에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돌아가면 불려 가서 이야기해야할 것이다."그러자 우문예가 말했다."그럼, 먼저 경성으로 돌아가십시오. 우리가 남아서 계란이를 기다릴 테니.""괜찮다. 돌아가서 아바마마께 직접 설명하마.""설마 아바마마까지 속이려는 것입니까?"찰떡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들은 앞으로 아버지께 거짓말을 하지 않기로 약속했었다. 어머니도 아버지를 속이는 것은 권력을 남용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었다.우문예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미간을 찌푸렸다."아바마마를 속이는 건 안 된다. 하지만 이 일을 절대 들켜서는 안 된다.""그럼, 아바마마께 뭐라고 말할 셈입니까?"우
모두 아주 소박하고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우문호 부부는 마차를 타고 달빛 아래 궁으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그러다 문득 금나라 어린 황제의 혼사가 떠올라 우문화가 입을 열었다.“위왕, 안왕에게 금나라 황제의 혼례에 참석하라고 시켰는데, 아직도 보고할 소식을 전하지 않았더군.”“아마 별다른 일이 없어서 보고하지 않았을 것이오.”원경릉이 말했다.“택란은 금나라와 함께 광물 채굴을 진행하기를 원했으니, 혼례 참석뿐만 아니라 그 일을 도와달라고도 시켰네. 그러니 보고해야지 않겠소.”그러자 원경릉이 조용히 우문호 곁에 기대며 말했다. “택란? 자네가 딸 이름을 부르는 걸 들으니, 왠지 익숙하지 않소.”“아이가 이제 컸으니, 늘 애칭으로 부르면 사람들이 웃을 것이오.”우문호는 딸의 체면을 지켜줘야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어찌 아직도 만두나 경단이라 부르는 것이오? 아들이 체면을 잃는 것이 걱정되지 않소?”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모르는 소리. 남자는 체면을 잃는 것을 걱정할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뻔뻔하게 굴 필요가 있소.”우문호는 머리를 숙여 원경릉에게 입맞춤을 하고는 활짝 웃어 보였다. “그래야 좋은 부인을 얻을 수 있소.”“정말 갈수록 뻔뻔해지오.”원경릉은 그의 목덜미를 감싸 안으며, 그의 이마 위에 가볍게 입맞춤했다. 다섯째의 모습을 보자, 그녀는 옛 기억들이 떠올랐다. 또한 다섯째가 참 잘생겼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왜 예전에는 그런 생각이 강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일까?“원 선생, 아이들이 보고 싶소. 내일은 만두한테 군영에서 돌아와 함께 밥이라도 먹자고 해야겠소.”우문호가 그녀를 끌어안으며 말했다.“좋소.”원경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아이들이 보고 싶었다.그들의 곁에는 이제 만두뿐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멀리 떨어진 도성에서 각자 바쁘게 지내고 있다.비록 그들이 안전하다는 걸 알지만, 늘 마음 한쪽에서는 걱정이 되었다.궁으로 돌아온 후, 우문호는 서일에게 내일 군영에 가서 만두를 데려오라고 하였다.남영은 경성
원경릉은 그 편지를 들고 바로 실험실로 향했는데, 실험실에는 전에 가져온 현미경이 놓여 있었다.편지를 현미경 아래에 두고 자세히 보긴 했지만, 양여혜가 말한 얼음 벌레는 발견되지 않았다.양여혜는 얼음 벌레가 강한 세균이라, 정상적인 환경에 처해있으면 많이 번식할 것이라 했었다. 하지만 왜 보이지 않는가?발견되지 않으니, 그녀는 조사할 길이 없었다. 얼음 벌레를 찾아내려면 아마도 금나라 황실 안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만약 이 얼음 벌레의 번식력이 약하다면, 편지에 조금 묻었을 뿐인데 수천 리를 오가며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다섯째의 상처로 파고들었다는 것이었다. 대체 얼마나 불운해야 감염이 된다는 말인가?정말 금나라로 가야 하는 것인가?다음 날, 우문호 부부는 무상황을 뵙고 선물을 나눠주러 숙왕부로 향했다.이번에도 그는 무상황을 위해 담배를 가져갔지만, 무상황은 한 번 맡아보기만 한 후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나는 이미 끊었다.”우문호와 원경릉은 서로를 바라보며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무상황은 전부터 끊겠다고 말을 해왔지만 늘 몰래 한 모금씩 피우곤 했었다. 이번에 진짜 끊을 수 있을까?“나이가 들었으니, 너희 얼굴을 좀 더 보고 싶구나. 택란이 시집가는 모습도 보고, 운이 좋다면 택란이가 아이를 낳는 것도 봤으면 좋겠구나.”무상황이 감탄하며 말하자, 원경릉이 그의 곁에 앉았다. “어찌 갑자기 이렇게 슬픈 이야기를 꺼내십니까? 분명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무상황이 답했다. “추 할머니 사건 이후로, 나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난 십여 년 전부터 죽은 목숨 아니더냐?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지난 십여 년을 훔쳐 온 것처럼 마음이 늘 불안했다. 계속 건강을 챙기지 않으면, 언제 이 늙은이가 떠날지 모를 일 아니더냐?”그는 원경릉을 바라보며 자애로운 눈빛을 띠었다. “그러니 이제부터 식사에도 신경 쓰고 너희의 감시를 받으며, 최대한 오래 너희 곁에 남을 것이다.”“좋습니다!”원경릉은 겉으로는 웃어 보였지만
“괜찮소. 나도 왜 갑자기 재채기를 하는지 모르겠소.”우문호가 코를 문지르고는 머쩍하게 웃으며 말했다.“아마도 우리 딸이 나를 그리워해서 그런 것 같소. 원 선생, 이제는 경성으로 부를 때도 되지 않았소?”“간지 얼마나 됐다고 그러나. 오가는 길에서 지칠까 걱정하지 않는 것이오?”원경릉이 웃으며 물었다.우문호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루라도 보지 않으니, 격세지감이네. 딸을 낳으면 좋은 점도 있지만 나쁜 점도 있네. 늘 걱정되는 마음 뿐이지 않나? 아들들은 훨씬 안심되네.”“아들들이 듣지 않도록 하시오. 편애한다고 하지 않겠소?”원경릉이 말을 덧붙였다.“난 가식적인 사람이라, 아들 앞에서는 말하지 않소!”원경릉은 그의 가식적인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다.“이만 어서방으로 가시오. 냉수보가 조급할 테니, 어서 가보시오. 나는 돌아가서 물건을 정리하고 있을 테니.”원경릉이 말했다.“알겠소. 내일 함께 숙왕부에 가서 가져온 선물을 나눠야겠네.”그쪽 물건을 유난히 좋아하는 삼대 거두가 얼마나 즐거워할지 떠올리며 우문호는 눈웃음을 지었다.“아, 금나라 황제가 보내온 편지를 주시오.”“어서방에 있네. 곧 사람을 시켜 가져다 오라 하겠소. 왜 갑자기 찾는 것이오?”원경릉이 웃으며 대답했다.“그저 한 번 보고 싶었을 뿐이네.”한편, 어서방 안에서 냉정언과 이리 나리는 한참 동안 우문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너무 빤히 바라보는 그들의 모습에 우문호는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였다. 그는 탁자를 두드리며 말했다,“경성을 떠나 병을 치료하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 보라 했더니. 어찌 그렇게 쳐다보는 것입니까?”“이상합니다. 대체 얼굴에 무슨 일이 생긴 것입니까? 훨씬 젊어 보이십니다. 대체 어디서 병을 치료했고 무슨 약을 먹은 것입니까?”냉정언이 물었다.“단약, 단약을 먹었습니다.”다섯째가 불만스럽게 대답했다.“무슨 단약입니까? 공주에게 드리려 하니, 하나만 주십시오.”이리 나리가 답했다.여자들은 다 예쁜 것을 좋아하는
위왕이 거만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저는 돕지 않습니다. 택란이 폐하를 사모한다고 말하거나, 혼인을 하고 싶다고 하지 않는 한, 꿈도 꾸지 마십시오!”“그럼 난 기다리겠소!”경천이 답했다.위왕은 그의 눈빛에서 보이는 익숙하고도 강한 결단력을 보며 말했다.“정말 고집이 세시군요. 대체 어찌 말해야 할까요? 세상엔 수많은 여인이 있습니다. 택란보다 더 뛰어난 여인도 있을 텐데, 어찌 택란만 붙잡고 이러십니까?”경천의 목소리는 매우 부드러웠지만, 한 마디 한 마디가 확고하게 느껴졌다.“나는 오로지 하나만 바라볼 뿐이네. 내 생애 다른 여인을 얻을 생각도, 후궁을 들일 생각도 없소. 택란만 있으면, 나는 그 누구도 마음속에 두지 않네.”위왕과 안왕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경천의 말에 다소 감동하였다.그러나 약속을 하는 것은 쉽지만, 그것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스무살, 서른이 되어서도 오늘 한 말을 기억하길 바랍니다.”위왕이 말했다.그러자 경천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택란이 돌아오자, 다시 입을 열었다.“어제 내가 한 일은 조금 어처구니없었다. 그러니 신경 쓰지 말고, 전부 없던 일로 생각해라.”“예!”택란은 조금 어리둥절했다. 그는 여전히 시선을 마주하기도 힘들 정도로 뜨거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우리는 이제 좋은 벗이 될 수도 있지 않느냐? 나를 벗으로 생각해 줄 것이냐?”경천이 미소를 지으며 택란을 바라보자, 그녀가 웃으며 대답했다.“그럼요. 저희는 벗이니깐요.”위왕은 그제야 경천이 그렇게 나쁘진 않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는 택란에게 계속 압박을 가하지 않았다. 두 나라가 협력하는 상황이니, 요구를 제기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그들이 궁을 떠나려 하자, 경천은 말리지 않고 두둑한 선물을 준비해 그들을 궁 밖으로 모시도록 했다.그들이 떠난 후, 경천은 통천각에 올라가 그들이 멀어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찌푸리고 있던 미간을 천천
“이득을 취할 수는 있지만, 약속은 해줄 수 없다.”위왕이 웃으며 말하자, 택란또한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하하하. 참 현명하십니다!”“그럼! 국사는 국사, 개인적인 일과 섞여서는 안 된다.”택란도 동의했다.“그럼 저도 오늘 밤 장관에 머물겠습니다. 내일 저와 함께 궁으로 들어가시지요.”“그래, 걱정하지 마라. 내가 함께 가마.”안왕이 말했다.택란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고 물러나, 주 아가씨와 냉명여를 데리고 나갔다.다음 날 그녀는 두 친왕과 함께 동행하였고, 궁에 도착하자마자 삼 태감이 직접 그들을 어서방으로 모셨다.경천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듯, 안색이 다소 어두워 보였다. 하지만 택란을 보자 눈동자, 그의 눈망울은 여전히 빛이 났다.협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러 왔기에, 안왕과 위왕도 편견을 내려놓았다. 경천이 택란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며, 두사람은 못내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그들 역시 젊었었고 사랑에 빠졌던 적이 있었기에, 그 사람을 위해 유치하고 때로는 무서운 짓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경천이 한 일도 그저 좋아하는 사람을 얻기 위해 노력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비록 책략이 다소 대담하긴 했지만, 혈기 왕성한 나이니 이해할 만했다.경천은 상석에서 내려와 직접 두 친왕에게 사과를 올렸다.“어젯밤 내내 생각해 보니, 어제 일로 두 분께 큰 불편을 가져다주었을 것이오. 부디 용서해 주시오!”위왕은 급히 일어나 예를 올리며 말했다. “폐하, 그렇게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어젯밤 일은 저희도 이해합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앞으로 두 나라가 자주 오갈 것이라는 점입니다. 작은 일이니,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경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는 말이오. 앞으로도 자주 오가며 지낼 것이네.”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택란을 힐끗 쳐다보았다. 택란은 계획서를 들여다보고 있다가, 뜨거운 시선을 느낀듯 고개를 들었다.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미소를 지었고, 하얀 볼도 살짝 불그스레해졌다.두 나라 모두 광물 채굴
위왕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혹시 복수하려는 것이냐?”“복수가 아니라, 그저 사실을 말할 뿐입니다.”안왕은 그에게 책임을 떠넘겨 혼자 감당하게 한 위왕을 보며 만족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위왕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어찌 다섯째에게 설명할지 생각해 보거라. 보책은 아직 네 손안에 있잖냐.”안왕은 여전히 두꺼운 보책을 손에 쥐고 있었다. 잃어버릴 수 없는 귀한 것이지만, 가만히 들고 있기도 거슬렸다.이렇게 골치 아픈 상황이 생길 줄 알았다면 차라리 꾀병을 부리고 위왕 혼자 오게 한 것이 더 나았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각자 방으로 돌아가 목욕을 한 후, 막 침대에 누웠을 때 택란이 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두 사람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고, 바로 택란을 만나러 나갔다.안왕은 보책을 가지려 했으나, 택란에게 넘겨받으면 곧 금나라 황후임을 인정하는 셈이 되므로, 절대 넘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적어도 어린 황제는 아직 그들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택란은 두 분 큰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린 후 자리에 앉아 말했다.“큰아버지, 오늘 일은 아바마마께 절대 말하지 마십시오.”안왕도 원하던 바였기에 다급히 답했다.“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먼저 네 아버지한테 숨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른다.”“예. 저도 그것이 걱정입니다.”택란의 가장 큰 걱정은 바로 아버지였다.“어린 황제도 참, 어린 시절의 약속마저 진지하게 받아들이다니… 설령 너와 혼사를 약속했다 해도, 네가 승낙하지 않을 것 아니더냐.”안왕이 말하자 택란은 잠시 머뭇거리며 말했다.“그때 이미 동의했었습니다.”다만 그때는 그저 그를 달래, 그의 상처가 심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 뿐이었다.“승낙했다니?”안왕과 위왕은 서로 놀란 표정으로 시선을 마주했다. 그러면 이 일은 전적으로 어린 황제의 탓도 아니다.“하지만 넌 그때 겨우 여덟, 아홉 살이었다. 그저 아이들의 장난일 뿐일 테니, 동의했다고 해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도 된다.”위왕이 재빨
“폐하, 공주께서 폐하가 드리신 선물을 받지 않으신 것입니까?”언제 올라온 건지, 진이는 어느새 그의 곁에 서 있었다.“응.”경천은 뒤돌아 상자와 두 개의 옥패를 바라보았다. 그가 오랜 시간 동안 배우며 수많은 옥을 망친 끝에 겨우 지금과 같은 모습을 조각해 낸 것이었다.하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속상해하지 마십시오. 공주께서 아직 어리셔서 폐하의 노고를 다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깐요.”진이가 위로하자 경천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 그녀는 아주 잘 알고 있어서 받지 않는 것이다.”진이가 잠시 멈칫했다.“너무 잘 안다니요? 그런 것 같진 않아 보였는데요.”경천은 이미 실망한 기분을 떨쳐버렸고, 대신 굳건한 의지를 다졌다.“진아, 나는 그녀의 뜻을 완전히 이해했다. 그녀는 먼저 좋은 황제가 되어주기를 바란단다. 이곳을 떠나기 전, 나에게 한 나라의 군주라 하지 않았냐? 황제로서 역할을 다하기를 바라는 것이다.”“아... 그런 것입니까!”진이는 비록 이해하지 못했지만, 황제가 속상해하지 않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택란 일행은 궁을 나섰다. 냉명여가 그녀에게 물었다.“누나, 어찌 황제가 주신 옥패를 받지 않으시나요? 그를 싫어하시는 것입니까?”택란은 웃으며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나는 절대 그를 싫어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강단 있는 황제이고, 뛰어난 통치로 금나라가 정권 이양 위기를 넘길 수 있도록 했다. 게다가 그는 두 나라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두 나라에 평화를 가져왔다.”“그럼, 어찌 그의 선물을 받지 않으셨습니까?”냉명여는 다른 사람의 선의를 함부로 거절하면 안 된다고 배웠기에, 그녀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택란이 답했다.“그 옥패가 약속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명여야, ‘약속’이라는 말은 무거운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만약 네가 그것을 이행할 능력이 없다면, 함부로 약속하지 말아야 하는 법이다.”“하지만 그도 누나와 혼사를 올리겠다고 한 말에 대한 약속을 지키려는 것 아닙니까?”“그래. 하지만 나
경천은 그녀의 말을 반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네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택란이 말했다."어쩌면 5년 후에는 오늘 한 모든 일이 어리석고 충동적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좋아하는 여인을 만나게 될 때, 그 감정이 단순한 사모인지 은혜 때문인지 알게 되실 것이고, 오늘의 행동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릅니다."경천은 단 한 마디만 응한 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태도가 이렇게나 분명하니, 절대 그런 말로 그녀를 얽매여 부담을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오늘 한 모든 일은 그의 결정이며 그의 태도였다. 그녀는 몰라도 되고,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긴 하지만, 그는 언제나 그녀를 기다릴 것이었다.그리고 그녀의 인정을 얻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택란은 한숨 놓은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해한다니 다행입니다.""알고 있다."경천의 얼굴은 약간 창백했지만, 애써 미소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삼 태감이 책자를 가져왔다. 경천은 그것을 택란에게 건넸고, 택란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았다. 그가 제시한 조건은 매우 공정했으며, 심지어 약도성에 이익을 양보한 정도였다.책자를 접은 후, 그녀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우리 약도성을 생각해 줘서 고맙습니다. 두 나라의 원한을 풀기 위해 애써줘서, 그리고 약도성의 백성과 조정이 화해할 수 있도록 도와줘서 고맙습니다.""알고 있었던 것이냐?"경천이 다소 놀라며 묻자, 택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예. 알아봤습니다.""오해하지 마라. 그저 너를 위하여 한 일이 아니니, 부담 갖지 않아도 된다."그는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해명했다.택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오해하지 마시지요. 저는 정말 부담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를 위해 이렇게 많은 일을 해줘서 고마울 뿐입니다. 오늘도 사실 많이 감동했습니다. 다만, 저는 아직 혼사에 대해 논할 나이가 아니고, 사적인 감정보다는 다른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 어리고, 앞으로 혼사를 하더라도 반드시 아바마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