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현경은 자신이 평생을 걸쳐 꿈에도 가지고 싶었던 여자의 입에서 고백을 들을 줄 몰랐다.그를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 것이다.한순간 그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그녀를 꽉 안고 싶었다.그러나 심아윤의 일을 겪은 후 그런 모험은 하고 싶지 않았다.임아영은 심아윤보다 더 악질이었기에 소이연과 육민의 생명을 가지고 장난을 칠 수 없었다.“임아영은 내 생명의 은인이에요. 버릴 수 없어요.”육현경은 결국 냉담하게 그녀를 대했다.소이연의 가슴 한쪽이 쓰려왔다.육현경이 기억을 잃어 이렇게 말하는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가슴이 아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사랑이 아닌 감사함으로 함께 하는 건 결국 행복하지 않을 거예요. 앞으로 갈등도 더욱 심해질 거예요. 당신은 지금 그녀를 해치는 거예요.”“그렇지 않으면 죽을 거예요.”“그렇게 무서워요?”“말했잖아요, 내 생명의 은인이라고.”“생명의 은인... 그래서 그 사람에게 남은 인생을 바치겠다는 거죠?”“그래야만 해요.”“그럼 나는요? 당신한테 버림받는 건가요?”“미안해요.”육현경의 사과는 그녀를 자극했다.“루카스, 당신의 진짜 신분을 알아요? 누구인지...”“알고 싶지 않아요. 아는 게 많아질수록 더 힘들어 질거예요. 이연 씨,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그의 냉담한 말에 소이연은 눈시울이 점점 붉어지다가 눈물이 차올랐다.육현경의 모습은 소이연의 가슴을 후벼팠다.“인정해요. 내가 먼저 당신을 흔들었죠. 바람피운 거나 다름없어요. 한때는 아영 씨를 버리고 당신과 함께하겠다는 생각도 했었죠. 그러나 지금은 아니에요. 영원히 아영 씨를 사랑할 거예요.”육현경의 말에 소이연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그를 가지는 건 쉽다고 생각했으나 그건 그녀의 오만이었다.“이연 씨, 당신한테 너무 미안해요.”육현경은 가슴 아픈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뱉었다.“당신이 누군지 알면 분명히 후회...”“말했죠,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다고요. 나한테 아무런 이득이 없어요. 당신이 나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나를 내버려둬요.
소이연은 일부러 그의 병실 앞에서 넘어졌다.그런 그녀에게 관심을 주게 될거라 생각했다.그렇다, 그녀는 결국 야비한 수단을 쓴 것이다.육현경은 본능적으로 손을 뻗으려다가 멈추었다.그렇게 소이연은 바닥에 넘어졌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냉담한 눈빛의 육현경을 바라보았다.“일어나기 힘들면 간호사를 불러올게요.”“도와주면 안 되나요?”육현경의 반응에 소이연은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물었다.“남녀가 엄연히 다른데.”“이제라도 임아영에게 충성하겠다는 건가요?”“정신적으로 바람을 피웠던 게 미안해서요.”“하.”소이연은 콧방귀를 꼈다.그래도 여전히 가슴이 아팠다.자신의 애인이 다른 여자를 위해 그녀와 거리를 두려고 하다니.그녀는 이를 꽉 깨물고 몸을 일으켰다.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이번에는 진짜로 두 다리가 움직여지지 않았다. 두 팔의 힘으로 도저히 일어설 수 없었다.그녀가 바닥에서 허둥대는 모습을 그는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었다.둘은 그렇게 한참이나 서로를 바라보았다.“간호사를 불러올게요.”소이연의 그녀의 힘으로 일어설 수 없음을 발견한 것이다.“필요 없어요!”그녀는 얼굴이 벌게지도록 힘껏 소리쳤다. “누구도 필요 없어요.”“그럼 맘대로 해요.”육현경은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차갑게 그녀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소이연은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그는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그는 어쩌다가 그녀에게 아무런 감정도 남아있지 않게 된 걸까.심지어 그녀는 그가 아까 병실은 들어오던 때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되었다.마치 그가 자신의 모든 감정을 깨닫고 최후의 선택을 한 것처럼 말이다.사람 감정이 이렇게 쉽게 변한단 말인가!“쾅!”병실 문이 열리며 심문헌이 육현경의 얼굴로 주먹을 날렸다.소이연은 그가 언제 왔는지 알 수 없었다.그의 주먹의 힘에 육현경은 뒤로 밀려났다. 옆에 벽이 없었다면 바닥에 넘어졌을 것이다.“나는 당신을 계속 존경했어. 그런데 오늘부터 당신을 경멸해! 어떤 상황에서도 남자로서 자
소이연은 깜짝 놀랐다.그녀는 바닥에 누워 있었기에 그들의 싸움을 막을 수 없었다.그들의 싸움은 점점 격렬해졌다.심문헌은 미친 것처럼 육현경에게 주먹을 휘둘렀다.육현경은 상처가 있었기에 싸움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심문헌! 그만해요!”소이연은 만류는 들리지도 않는 듯 심문헌은 눈이 빨개져 육현경의 얼굴에 주먹을 내리쳤다.‘이 얼굴로 소이연을 꼬신 거지?’육현경도 심문헌의 강도가 점점 세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도 잘못이 있었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그러나 점점 그의 분노도 끌어올라 심문헌에게 반격을 날리기 시작했다.그렇게 둘은 혼연일체가 되었다. 옆에서 보는 소이연은 급해져 소리를 질렀으나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그녀는 더 이상 볼 수 없어 핸드폰을 들어 천우진에게 전화를 걸었다.2분 후, 천우진과 육민이 급하게 병실로 들어왔다.“멈춰요!”천우진은 심문헌을 당겼지만 그는 멈추지 않고 다시 육현경에게 달려들었다.육현경도 물러서지 않고 맞섰다.천우진은 급히 두 사람의 중간에 끼어들었지만 심문헌은 거침없이 주먹을 뻗어 천우진의 코를 가격했다.그의 코에서는 쌍코피가 흘렀다.그 모습에 심문헌은 어안이 벙벙했다.그런 심문헌의 모습에 육현경도 주먹을 멈추었다.“됐어요?”천우진은 얼굴의 피를 닦으며 물었다.심문헌을 그런 그의 모습에 입술을 깨물었다.그와 육현경의 얼굴은 온통 상처투성이였다.“됐냐고요?”답이 없자 천우진은 더 높은 목소리로 되물었다.“아니요.”심문헌은 천우진 때문에 다시 화가 일렁거렸다.자신의 잘못이 아니었다.만약 육현경이 소이연을 잘 보살폈다면 때리지 않았을 것이다.“그럼 날 때려요.”천우진이 차갑게 말했다.“당신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요?”천우진을 한 대 때린 것이 미안했던 것인지 심문헌은 퉁명스럽게 물었다.“어른은 주먹으로 일을 해결하는 게 아니에요.”“됐어요, 그만할게요.”“그만 말해요, 듣기 싫으니까.”말을 마치며 심문헌은 육현경을 돌아보았다.“후회할 날이 올 거야.”그리고는
육현경은 자신의 입술을 쓸었다.심문헌은 그를 정말 죽을힘을 다해 때렸다.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병실을 둘러보았다. 카메라를 향해 시선을 주지는 않았지만 그는 방금 방안에 카메라가 설치되었음을 발견했다.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임아영은 감시하는 것이다.육현경은 주먹을 꽉 쥐며 화를 참았다.옆 병실.임아영은 핸드폰으로 몰래카메라 속의 루카스가 소이연에게 냉정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며 기뻐했다.그녀는 다시 한번 자신이 갖고 싶은 건 다 가질 수 있음을 확신했다.그깟 소이연이 뭐란 대수란 말인가.임아영은 핸드폰으로 메세지를 보냈다.[소이연을 당분간 가만두고 내 연락 기다려.][네.]임아영은 차갑게 웃었다.육현경이 현실을 깨달은 이상 그녀도 모험을 할 필요가 없었다.그녀는 심지어 소이연이 루카스와 자신의 행복을 바라보며 고통스러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어렸을 때부터 시작된 불공평은 그녀로 하여금 세상에 대하여 적대심을 갖게 만들었다.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보다 행복한 사람을 두고 볼 수 없었다!...소이연은 병실로 돌아왔다.심문헌의 얼굴은 상처로 가득했기에 의사가 와서 치료를 해주었다.“아파요...”죽을 듯이 싸움을 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지금 최대한 약하게 하는 중이에요.”만지면 아프다고 난리를 치니 의사도 더 이상 손을 댈 수 없었다. “제가 혼자 할게요.”“이 상처들은 소독도 해야 해요. 아니면 낫지 않을 거예요.”“소독을 하지 않으면 감염...”“제가 할게요.”의사의 설명에 천우진이 입을 열었다.“상처 위에 약을 바르면 되는 거죠?”“네.”천우진은 의약 면봉을 심문헌의 얼굴에 가져댔다.“뭐 하는 거예요?”“계속 말하면 세게 할 거예요.”“저 천우진 씨....아!”천우진은 면봉으로 그의 상처를 눌렀다.“뭐 하는 거예요!”심문헌은 천우진을 노려보았다.“말했죠. 말을 안 들으면 세게 할 거라고.”“저기 천우진 씨...”천우진은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아까보다는 약한 손놀림으로 연고를 바르는 데만
천우진은 꼼꼼하게 약을 다 발라주었다.그제야 의사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의약품을 챙겨 나가려 했다.“잠시만요.”심문헌은 의사를 붙잡았다.“상처가 남아 있나요?”“아니요.”“이 사람 코가 많이 부었는데 치료해 주세요.”심문헌은 사악하게 웃었다.“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죠.”심문헌은 의약 가방안에서 소독약과 연고를 꺼내 천우진의 코에 가져다 대었다.천우진은 그가 일부러 골탕 먹이는 것을 알았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그의 반응에 심문헌은 미간을 찌푸렸다.‘왜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거지?’심문헌은 일부러 손에 힘을 주어 그의 코를 닦았지만 천우진은 반항조차 하지 않았다.“안 아파요?”심문헌은 그가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나는 유치하지 않아요.”“...”심문헌의 얼굴이 구겨졌다.“다 됐어요?”천우진이 물었으나 심문헌은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천우진은 의사를 보며 입을 열었다.“죄송한데 이것 좀 정리해 주세요.”“그래요.”의사는 의약품을 정리하고 떠났다.“심문헌 씨, 내 병실로 가요. 이연과 할 말이 있어요.”“내가 들으면 안 되나요? 한 가족이 될 사이인데, 나는 곧 이연 씨와 결혼할 거예요.”천우진에 의해 배척을 당하니 그는 마음이 불편했다.“저녁에 알려 줄게요.”“나를 무시하는 거예요?”“내가 당신 동생에게 부족하다고 생각하나요?”“나는 그렇게 말한 적 없어요.”그러나 이건 긍정이었다.“제길.”심문헌은 더 이상 반박할 말이 없어 욕설을 내뱉으며 떠났다.그가 떠나고 소이연은 입을 열었다.“저분더러 휴식하라고 보낸 거죠?”천우진은 소이연이 한눈에 알아챈 것에 경악했다.전에는 심문헌에게 숨기는 것이 없었기에 그의 행동은 충분히 이상했다.
“육현경과 어떻게 된 거예요?”천우진은 재빨리 화제를 바꿨다.“심문헌이 왜 육현경이랑 싸우기 시작한 거죠?”소이연은 눈이 어두워졌다.육현경을 사랑하는 건 너무 힘들었다.소이연은 자신만 용기를 낸다면 함께할 수 있을 줄 알았다.그러나 그건 너무 오만한 생각이었고 임아영을 너무 얕보았다.“나를 철저하게 거절하더라고요.”“그래서 심문헌이 달려든 건가요?”“네.”“무슨 생각이예요?”“당장은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천우진은 그녀의 대답에 미간을 구겼다.그녀도 천우진이 자신을 아끼는 마음을 잘 알고 있다.“자꾸만 현경 씨가 비밀이 있는 것 같아요.”처음에 육현경이 그녀를 거절했을 때 가슴이 아팠지만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다.그러나 지금 냉정하게 생각하자 그녀는 뭔가 꺼림칙했다.그의 태도 변화는 너무 빨랐다.정확히 말하면 병실 안에서의 태도가 너무나 빨리 돌변했다.병실에 들어섰을 때만 해도 그는 그렇게 적대적이지 않았다.그러다가 갑자기 태도가 변한 것이었다.“무슨 비밀이요? 당신을 사랑하지만 임아영을 책임져야 한다는 거?”“육현경은 너무 우유부단해요. 솔직히 처음 알던 그와 다른 사람이 됐어요. 예전에는 일을 빠릿빠릿하게 해결했는데.”“그러니까 의심하는 거예요. 숨기는 게 있지 않을까요?”“이연 씨. 사람은 변해요. 지금처럼 기억을 잃은 사람에게 희망을 품지 마요.”“나는 당신이 육현경을 포기하고 심문헌을 선택했으면 해요.”그는 소이연이 임씨 가문에게 상처 입지 않길 바랐다. 천씨 가문도 대단하지만 임씨 가문도 뒤처지지 않았고 심지어 할아버지도 깨어나지 않은 지금은 매우 위험했다.지금 아무리 천우진이라도 소이연을 상처 없이 보호하기는 어려웠다.“심문헌이 좋으면 가져요.”소이연의 말에 천우진은 어이가 없었다.“둘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당연히 농담으로요. 아무리 정략결혼이어도 남자를 좋아할 리는 없겠죠.”“그냥 제안일 뿐이예요. 듣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고요.”천우진은 말을 돌렸다.“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서울.예수진의 마지막 오디션은 절대적인 표수로 다른 연기자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명실상부였다.예수진의 연기는 모든 심사위원과 관객들의 인정을 받았다.오디션이 끝나고 주최 측은 파티를 개최했다.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난 후 시청률은 항상 좋았다. 그리고 예수진과 계지원의 결혼이 폭로된 후 시청률은 더욱 급증했다. 최근 3년 동안 이런 시청률과 인기를 끈 예능은 없었을 것이다.주최 측은 이로 많은 이익을 얻었을 것이다.예수진이 화장대로 돌아가자 스태프가 열정적으로 그녀를 맞이했다.“수진 언니, 오늘 계 감독님께서 오시나요?”예수진은 메이크업을 지우며 잠시 멍해졌다.“왜 오는 거죠?”“예전에 심사위원이셨잖아요.”“아... 주최 측이 요청했는지는 몰라요. 물어보지 않았어요.”“주최 측은 계 감독님을 요청하셨는데 아이 때문에 오지 않는다고 하셔서요.”스태프는 결국 물어본 이유를 말했다.“저희는 수진 님께서 다시 한번 요청하셨으면 좋겠어요.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요.”“거절한 건 그 이만의 이유가 있을 거예요. 강요할 수는 없어요.”계지원이 워낙 이런 자리를 좋아하지 않았기에 그녀도 강요하기 싫었다.더구나 그녀가 스태프의 부탁을 들어주고 계지원이 결국 나오지 않는다면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된다.“그렇구나...”스태프는 많이 실망한 눈치였다.“다음 기회를 기다려 보죠.”예수진이 쐐기를 박자 스태프도 포기했다.메이크업을 지운 후 예수진은 자신의 매니저와 계지원이 보낸 차에 올라탔다.그녀는 거절했지만 계지원은 이미 결혼한 사이로 이목이 집중되기에 이런 준비는 필수적이라고 밀어붙였다. 예수진도 마음속으로 자신이 돈을 많이 벌면 이런 비용은 자신이 해결하리라고 다짐하면서 어쩔 수 없이 허락했다.차는 서울의 고급 클럽에 멈추었다.예수진이 들어갈 때 이미 많은 연기자와 스태프들이 도착했다.“수진 씨.”주최측의 담당자는 열정적으로 그녀를 맞이하며 혼자 온 그녀의 주위를 둘러보았다.“혼자 오셨어요?”“계지원 씨는 집에서 애들
그녀는 마음속으로 오디션에서 예수진에게 밉보이지 않은 것에 안도했다.그래서 연예계의 누구도 얕보면 안 되는 것이다. 사람 일은 누구도 모르는 것이니까.같은 테이블의 다른 감독은 운이 그렇게 좋지 않아 자신이 예수진에게 했던 일들을 생각하며 후회했다.이번 기회를 빌어 계지수에게 사과를 하고 싶었으나 그는 오늘 참석하지 않았다.그러니 이번 일은 이렇게 넘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파티장의 분위기는 너무 좋았다.모든 이들은 적극적으로 술을 마시며 순위에 상관없이 이 자리를 즐겼다. 이번이 아니면 다시 모이기는 너무 어려울 테니까.예수진처럼 주량이 좋은 사람도 술을 들이부으니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그녀와 함께 술을 마시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그녀 또한 오는 사람을 막지 않았다.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 그녀의 잠재적 파트너였다. 계지원과 헤어진 후 이들과 일을 계속 해야 했기에 누구에게도 밉보이면 안 된다.그녀는 메쓱거워지자 휴식을 취하러 화장실로 들어섰을 때 가희와 마주쳤다.두 사람은 한참 서로를 바라보았다.“삼촌이랑 진짜 함께 할 줄은 몰랐네요.”가희가 먼저 비웃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둘은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어요.”“이건 저랑 지원 씨 사이의 일이예요.”“계지원은 내 삼촌이에요.”“피가 섞인 것도 아니잖아요.”“어떻게 확신하는 거죠?”“육씨 가문에 그렇게 오래 있었는데도 지원 씨의 신분을 모르는 거예요?”가희는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참았다.예수진에게 계지원이 할아버지의 친 아들임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만약 예수진이 재산을 뺏으려 들면 어찌하나?’‘계지원은 돈에 관심이 없었지만 예수진은 아니다. 예전에 육씨 가문에서 아가씨의 행세를 했던 사람이기에 육씨 가문에서 더 많은 것을 가져가려 할 것이다.’“예수진 씨, 너무 교활하네요.”가희는 속마음을 참지 못하고 발설하고 말았다.예수진은 그런 그녀를 담담히 바라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육은숙과 가희가 자신에 대한 적의는 잘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