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윤 씨, 제가 뭘 하면 될까요?” 소나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심아윤은 싱긋 웃고는 말했다. “비록 이번엔 나은 씨 때문에 우리 계획이 실패했지만, 나은 씨, 당신도 그렇게 멍청한 사람은 아니니까 저는 계속 같이하고 싶은데요. 제가 드린 지분은 받으시고, 뭔가 생각나는 게 있으면 다시 말씀드릴게요.”“만약 저한테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지르라고 하면요?” 소나은이 되물었다.“그래서 나은 씨 생각에 우리가 했던 짓들이 사람 죽이고 불지르는 일보다 더 나은 것 같아요?심아윤이 콕 집어 얘기했다.결국 모두 불법이었다.소나은은 아직도 모르는 걸까?!소나은은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이 지분을 받으면 심아윤이 시키는 모든 일을 해야만 했다.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다.눈앞의 지분을 보니, 그녀가 이걸 받기만 하면 소씨 그룹은 그녀 손 안에 있는 셈이다.겉으로는 그녀에게 잘 해주는 할머니와 엄마도 사실 그녀를 이용하기 위한 것뿐이고, 그녀 마음속의 진정한 적은 소준환 뿐이었다. 소준환은 아무것도 안 하고 단지 그가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당연하게 소씨 그룹의 모든 것을 물려받았다.그녀는 달갑지 않았다.소나은이 계약서를 받아 들었다.심아윤의 입꼬리가 사악하게 올라갔다.애초에 소나은이 거절할 거라고 의심할 필요도 없었다.“지금 저는 소이연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아직 생각하지 못했어요. 제 생각보다 똑똑하기도 하고, 육현경한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도 너무 과소평가했고요.”이번에 소이연이 무사히 감옥에서 나올 수 있었던 건 확실히 육현경의 도움 때문이었다.“확실히 소이연이 쉽진 않죠.” 소나은이 거들었다.“제가 좀 더 생각해 보고 다시 알려줄게요.” 심아윤이 무뚝뚝하게 말하고는 돌아가라는 눈치를 줬다.“좋아요. 이번 일을 교훈 삼아서 저도 최선을 다할 거예요.” 소나은이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소나은이 심아윤의 룸에서 나왔다.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흥분되는 게 더 컸다.그녀는 지금 소씨 그룹 최대 주주가 되었다.
소이연은 의심할 만했다.첫째로는 새로운 희망이 생길 수도 있지 않냐는 예수진의 말투에 분명히 따뜻한 느낌이 있었다.예수진은 애교를 부릴 줄 아는 여자아이였고, 자신의 마음을 잘 숨기지 못했다.아마 그녀의 인생에 정말 또 다른 한 줄기 빛이 생겼다는 뜻이었을 것이다.둘째로는 육현경이 계지원이 예수진을 챙길 거라고 했다. 만약 그들이 솔직한 대화를 통해 오해를 풀 수 있다면, 머지않아 사귈 거라고 생각했다.“왜 그렇게 생각해요?” 예수진이 되물었다.여전히 그녀의 성격 대로였고, 과장된 목소리였다.소이연은 미간을 찌푸렸다.“저랑 계지원 사이에 가능성이 더 있겠어요?! 그 사람은 본인이나 잘 돌보면 다행이에요. 어디 감히 저한테 접근해요? 저랑 계지원은...” 예수진이 잠시 침묵하고 말했다.“저도 달갑지 않은 건 인정해요.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혼자였던 것도 계지원을 기다린 거였어요.저를 안 좋아하더라도, 밖에서 다른 여자들이랑 많은 관계가 있었다고 해도, 어쩌면 충분히 즐기고 나면 저한테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환상을 가질 정도로 미련했어요.”소이연은 휴대폰을 꽉 쥐고 이 말들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예수진이 말했다. “예전에는 제가 계지원한테 아직도 마음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어요. 사실 누굴 속이려고 했던 게 아니라, 저 자신을 속인 거였고, 계지원은 저한테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그랬던 거였어요. 근데 사실 전 진짜 잘 못 지냈어요. 죽을 것처럼 일하고, 죽을 것처럼 술 마신 것도 다 잊어버리려고, 저 혼자 아프지 않으려고...”“수진 씨, 사실...”“이제 괜찮아요. 진짜 포기했어요.” 예수진은 소이연의 말을 끊고 말했다. “저 다른 사람 좋아해요.”“네?” 소이연이 놀라서 물었다.“저도 믿기지 않아요. 사랑이 이렇게 빨리 변할 수도 있더라고요.” 예수진이 웃으며 말했다.“처음에 제가 계지원한테 고백했던 날 밤에는 둘이 아주 잘 지냈어요. 근데 다음날 다른 여자를 품에 안고 딱
소이연은 꾹 참고, 결국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누군가 어떤 감정들을 놓아주었다면, 당사자가 다시 미련을 남기게 해서는 안 된다.“이연 언니도 지수도 걱정 마요. 저 잘 지낼게요. 어느 날 진짜 갈 곳 없으면, 그땐 사양하지 않을 거예요.” 예수진은 한껏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알겠어요.” 소이연이 대답했다.“이제 끊을게요. 요리 배우러 가야 해요.”“네?”“지금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제일 기초적인 것들부터 배우기로 했어요.” 예수진이 진지하게 얘기했다.마치 정말 노력해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만약 하도경이 정말 예수진에게 빛을 가져다줄 수 있다면, 그녀는 축복을 택할 것이다.“그럼 공부 방해 안 할게요.” 소이연이 놀리며 웃었다.“다음에 이연 언니랑 지수 집으로 초대해서 식사 대접할게요.”“뱉은 말은 지켜야 해요.”전화가 끊기고.소이연도 한숨 돌렸다.그녀는 확실히 피곤했다.소송에 휘말린 뒤부터 예수진 사건까지, 마음 놓고 편히 잔 적이 거의 없었다.그녀는 하품을 몇 번 하더니, 저절로 눈이 떠질 때까지 잤다.소이연이 기지개를 켜며 배달 음식을 시키려던 그때, 갑자기 예수진이 요리를 배운다는 것이 생각났다...그녀는 요리에 관심이 없었지만, 육민이 자주 올 것을 생각하니, 항상 배달 음식만 먹일 수도 없었다.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옷을 갈아입고 마트에 장을 보러 가려고 방에서 나왔다.문을 열자, 키가 큰 사람 한 명, 작은 사람 한 명이 서있었다.소이연은 눈썹을 찡그렸다.주말도 아닌데 육현경이 육민을 데리고 왔다.한 마디 말도 없이.“나 외국에 다녀와야 해. 내일 바로 가.” 육현경이 설명했다. “민이 데려다주러 왔어. 일주일만, 마침 문씨 아저씨도 일주일 동안 고향에 다녀오신대.”소이연은 갑자기 그녀에게 사건이 발생하기 전 육현경이 해외에 있다가 돌아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마도 밀린 일을 처리하러 가는 것이다.그녀는 속으로 묘한 감정이 들었지만, 담담히 말했다. “알겠어.”“엄마, 나가려
”엄마가 민이한테 밥해줄 거예요?”육민은 너무 설렜다.“나 엄마랑 같이 장보러 갈래요. 나도 같이 갈래요.”소이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육민을 혼자 집에 두고 나오는 건 그녀도 원하지 않았다.소이연은 육민의 손을 잡고 육현경에게 말했다.“바쁘면 먼저 돌아가. 내가 민이를 돌볼게.”육현경은 대답하지 않았다.소이연은 더 말하지 않고 육민의 손을 잡고 근처 마트로 향했다.육현경이 묵묵히 뒤를 따랐다.소이연이 그에게 몇 번이나 돌아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결국 침묵하기로 했다.세 사람이 그렇게 마트에서 장을 보았다.“엄마, 우리 뭘 살까요?”육민은 이런 마트에 처음 오는 거라 흥분을 주체 못했다.마트 안에는 별의별 물건들이 다 있었다.문씨 아저씨는 번마다 만단의 준비를 해서 같이 마트를 돌아다닐 기회가 없었다.“먹고 싶은 거 말해 봐. 엄마가 사 줄게.”“그럼 물고기요. 랍스타 그리고 대게…”육민은 다양한 해산물을 먹고 싶다고 했다.소이연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육민의 입맛은 그녀와 많이 비슷했다.해산물 코너에 가서 한가득 사고, 생각해 보니 해산물만 먹으면 안 될 것 같아 야채, 스테이크 그리고 간식거리도 샀다.장보기를 끝내고 소이연이 육현경에게 말했다.“민이를 좀 봐줘. 나 좀 개인용품 사야겠어. 계산대에서 기다려.”“알았어.”소이연이 돌아올 때 생리대 몇 봉지를 안고 왔다.육현경과 육민은 한창 계산대에서 계산하는 중이다.그녀가 오는 것을 보고 육현경은 생각없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이리 줘, 같이 계산할게.”소이연이 망설이자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뒤에 줄을 선 사람들이 얼른 계산하라고 재촉하는 눈빛을 보냈기 때문이다.소이연은 눈을 딱 감고 손에 든 생리대 몇 봉지를 그에게 넘겼다.육현경이 받아 들고 보았다.소이연은 조금 어색해서 고개를 돌려 딴청을 부렸다.“손님, 지금 저희 마트에서 행사를 진행해서 생리대를 사면 콘돔 하나 드리거든요. 세 가지 사이즈가 있으니 골라 주세요.”계단원이 콘
확실한 건 또 무엇이냐며 소이연이 미간을 찌푸렸다.육현경은 거절하지 않고 바로 두 봉투를 소이연에게 건넸다.그녀가 받은 순간 바로 바닥에 내려놓았다.이렇게 무거울 줄은 몰랐다.마음의 준비가 없이는 감히 들 수 없는 무게였다.방금 육현경은 홀가분하게 들었는데 말이다.“그래도 억지 부릴 거야?”육현경이 묻자 그녀가 입술을 오므렸다.별로 많이 산 것 같지 않은데 언제 이렇게 많이 주워 담았대?육현경은 그녀가 난처하지 않게 하려고 다시 봉투를 들고 앞장서서 걸었다.소이연은 망설이다가 육민의 손을 잡고 뒤를 따랐다.집에 돌아오자마자 방금 장본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그러다 무료로 받은 콘돔을 발견했다.그녀는 육민과 같이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육현경을 보며 어떻게 줄지 고민했다.“도와줘?”육현경이 시선을 돌려 그녀를 보았다.언제 어디서든 그녀의 마음을 읽는 것 같았다.소이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육현경이 일어서서 다가왔다.바로 육현경에게 콘돔을 건넸다.육현경이 힐끗 쳐다보았다.“네가 좋아하는 거잖아.”“…”소이연은 시선을 회피했다.“필요 없어.”“나도 필요 없어.”육현경이 직설적으로 말했다.소이연이 그를 쳐다보았다.육현경과 심아윤도 이걸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두 사람 모두 나이가 적지 않아 아이를 낳기 위해서 이런 결혼을 선택했으니까.“그럼 버릴게.”소이연이 바로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버리지 마. 혹시 쓸지 어떻게 알아?”육현경이 갑자기 가서 꺼내 왔다.그러자 소이연이 눈살을 찌푸렸다.가져가든 던지든 더는 말하지 않았다.어쨌든 돈을 내지 않았으니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두었다.정리를 마치고 소이연이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방금 무슨 반찬을 하려고 생각했을 때 육현경이 또 부엌으로 들어왔다.“나 혼자 할 수 있어.”“저녁 8시야. 민이 배고프대.”그 말에 소이연이 시간을 확인했다.“내가 밥하는 게 빨라.”육현경이 제안했다.“옆에서 배워도 돼. 그러면 너도 빨리 배울 거야.
”엄마, 이런 우리 집 너무 좋아요.”육민의 갑작스러운 발언에 소이연은 의아했다.“이런 건 어떤 건데?”“세 식구가 같이 밥 먹고 같이 마트 가고 같이 밥도 만들어 먹는 거요.”육민이 당연하듯 말했다.소이연은 입술을 오므리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엄마는 싫어요?”육민이 토끼 같은 두 눈을 깜박거리며 불쌍한 척 말했다.“싫지 않아.”소이연이 웃으면서 덧붙였다.“민이 좋아하는 건 엄마도 좋아해.”“세상에서 민이를 잘해주는 건 엄마밖에 없어요. 엄마 많이 많이 사랑해요.”육민은 작은 입으로 온갖 애교를 다 부렸다.소이연은 참 궁금했다.츤데레 같은 육현경의 성격에 어떻게 애교 발린 말만 하는 육민을 키워냈는지 말이다.저녁 식사를 마치고 소이연이 설거지하러 주방으로 들어갔다.육현경이 도와주려고 했지만 그녀한테 쫓겨났다.엄격하게 말해서 접근하지 못하게 거리를 두었다.부자가 소파에 앉아 있더니 갑자기 육민이 엄숙하게 말했다.“아빠, 언제면 엄마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어요?”육현경의 눈길이 줄곧 주방 안에 있다가 아들의 말을 듣고서야 고개를 돌렸다.“나 이제 연기하지 못하겠어요.”육현경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육민은 소이연의 앞에서 하는 행동과 집에서 하는 행동이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성공하지 못하면 더는 도와주지 않겠어요.”육민이 원망했다.“노력하고 있잖아.”아들에게 꾸중을 들으니 육현경은 정말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여자 마음을 얻는 게 그렇게 어려워요? 왜 우리 학교 여자애들은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나만 좋아하던데?”육민이 나지막하게 말했다.줄곧 아버지인 육현경을 숭배했었다.하지만 유독 연애에 대해서만 바보 된 것처럼 버벅거렸다.“나도 예전에 그렇게 생각했는데 네 엄마를 만난 이후로 완전히 역전됐어.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말을 알아?”“몰라요.”“나중에 너도 저런 여자 나타나면 알게 될 거야.”“만나기 싫어요.”육민이 단호하게 말했다.“나를 좋아하는 여자애들이 많거든요
”이번 소송에서 도와줘서 고맙다고.”소이연이 솔직하게 말했다.결정적인 단서는 대부분 육현경이 조사해 주었다.특히 재무 부서에서 사람을 찾아 그녀의 필체를 모방하여 서명하고 도장을 찍은 증거를 찾아낸 것이다.“나 때문에 발생한 일이니까 고마워할 필요 없어.”소이연은 더는 말하지 않았다.진심으로 육현경과 심아윤이 빨리 결혼해서 그녀와 관계를 끝내길 바랐다.하지만 그의 덕분에 지금 무사하게 풀려나서 당장 결혼하라고 강요할 자격이 없었다.“참, 수진과 도경 씨가 같이 있어. 알아?”소이연이 화제를 돌렸다.“알아.”그녀는 육현경의 대답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육현경의 정보력과 능력에 의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수진의 말투를 들어보면 두 사람 감정이 꽤 좋은 거 같았어. 난 두 사람의 사이가 우정인지 아님 사랑인지 평가하고 싶지 않아. 수진이가 행복해하는 거 보니까 더는 수진의 감정에 끼어들지 말았으면 좋겠어. 툭 털어놓고 말해서 수진 앞에서 지원 씨가 계속 참고 있었다는 걸 말하지 마. 그리고 지원 씨도 더는 수진의 행복을 방해하지 말았으면 좋겠어.”“걱정 마. 그럴 일은 없을 거야.”육현경은 확신했다.“비록 지원은 내 작은 삼촌이지만 친구로서 다 평등하게 대했어. 만약 도경이 진심으로 수진을 좋아하고 수진도 도경을 받아준다면 두 사람 행복하길 바라야지. 나뿐만 아니라 지원도 그렇게 생각할 거야.”소이연이 그를 쳐다봤다.육현경은 정말 무조건적으로 계지원을 신뢰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도경과 수진이 관계를 확실히 할 때 나와 지원이도 다 봤어. 지원이가 그걸 보고 바로 가버리더라.”육현경은 그녀가 믿지 않자 더 명확하게 말했다.“만약 두 사람 관계를 방해하거나 수진을 빼앗으려 했다면 그렇게 가지 않았어. 지원은 마음씨가 착한 애야.”그 부분은 소이연도 인정했다.그녀와 육현경이 전에 썸을 타다 사이가 멀어졌을 때 일이다.소이연이 술에 취했을 때 계지원은 솔직히 상관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병원까지 데려다 주었다.심지어 그녀의 안전을
말이 끝나자 회의실이 떠들썩해졌다.소승영과 소준환도 깜짝 놀랐다.소나은은 손에 든 주식 거래서를 뒤에 선 비서에서 건넸다.“아버지와 사랑하는 내 동생, 그리고 이사님들께 보여드려.”“네, 회장님.”비서는 서둘러 주식 거래서를 소승영과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백지장에 검정 글자로 주식이라고 명백이 써져 있어 다들 믿을 수밖에 없었다. 소나은은 확실이 소씨 그룹에서 지분이 가장 많은 사람이 되었다.소승영과 소준환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소나은은 부자를 향해 싸늘하게 웃었다.원래는 가족들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건드렸을 때 비장의 카드를 꺼내려고 했다.하지만 자신의 욕심을 억누르지 못했다.너무나 대놓고 과시하고 싶어서 더 고민하지도 않고 소씨 그룹 회의실에 들어가 회장 자리에 앉은 것이다.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느낌은 정말 통쾌했다.“문제없다면 아버지와 준환은 이쪽으로 앉으세요.”소나은은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켰다.그동안 소승영은 오랫동안 소씨 그룹에서 회장 노릇을 해와서 이런 상황을 납득할 수 없었다.의기양양한 그녀를 보고도 이사진들 앞에서 화낼 수 없어서 문을 박차고 나갔다.소준환도 다급하게 그의 뒤를 따랐다.소나은이 흐뭇하게 웃었다.소승영이 분노한다고 해도 전혀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침착하게 말했다.“우리 계속 회의를 진행하시죠.”아주 차분하게 회의를 진행했다.회의를 마친 후, 소나은은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갔다.자리에 앉은 찰나에 소준환이 문을 걷어차며 들어왔다.소나은은 힐끗 쳐다볼 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무슨 짓을 한 거야? 감히 몰래 소씨 그룹의 주식을 사들였어? 돈은 어디에서 났어? 소나은! 감히 나와 소씨 재산을 쟁탈해? 정말 간사하다. 우리 집에서 어떻게 너 같은 간사한 년이 나왔을까? 너와 소이연은 자매가 아니랄까 봐 정말 똑같아!”소준환이 입을 열자마자 욕을 퍼부었다.정말 듣기가 거북했다.“소준환, 네가 그렇게 대단한 줄 알아? 지금 네 꼴을 봐. 싸울 능력도 없으
“나는 지금 하연이 임신했을 때랑은 완전 달라요.”“성별이 다르면 입덧도 다르다던데.”소이연은 현재 임신 중인 예수진과 아이에 관한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그래요?”“가서 검사 안 해봤어요?”“당연히 검사해봤죠.”성격이 급했던 예수진은 진작에 아이의 성별이 궁금해 병원을 찾아갔었다.“그런데 매번 갈 때마다 돌려 말하면서 나한테는 어떻게 생겼는지도 안 보여줘요. 답답해 죽겠다니까요 정말.”“하하하.”그럴 때마다 예수진의 표정이 얼마나 웃길지 상상하던 소이연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아들을 원해요 아니면 딸이 더 좋아요?”“당연히 아들이죠.”돌려 말하는 것 없이 직설적으로 대답하는 예수진에 소이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아들이 더 중요하다 그런 거예요 설마?”“제가요? 그 반대죠 완전히. 지원 씨가 딸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 매일 둘이 꼭 붙어 있는다니까요. 그거 볼 때마다 화가 나서 나도 아들 낳아서 계지원 열 받게 하려고요.”역시나 일반인들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예수진이 웃겨 소이연은 이번에도 웃음을 흘렸다.“아들인지 딸인지는 모르겠는데 자꾸만 딸 같아요.”“임산부의 촉은 보통 틀리지 않죠.”“또 아빠한테만 달려가겠네요.”“전생에 얼마나 잘 놀았으면 딸을 이렇게 줄줄이 낳아요. 다 키워야겠네.”“무슨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해요.”한마디에 한 번씩 한숨을 쉬며 말하는 예수진에 소이연과 하지수 모두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언니는 배 속의 아기가 남자 같아요 여자 같아요? 아들이 좋아요 딸이 좋아요?”“난 다 상관없긴 한데 솔직히 딸이 갖고 싶어요.”“딸은 안돼요. 딸 낳으면 오빠가 계지원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절대 덜하진 않을걸요. 오빠랑 언니 둘 다 미모가 이렇게나 출중한데 딸 낳으면 얼마나 이쁘겠어요. 오빠가 죽고 못 살죠 아주.”“...”소이연은 예수진의 말이 그다지 신빙성은 없어도 또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다.“어쨌든 아들을 낳든 딸을 낳든 그건 우리가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
“축하드려요!”제 아내가 또 남사스러운 말을 할까 걱정됐던 계지원은 발 빠르게 축하 인사를 전했다.“그래요, 정말 축하해요!”곧이어 다들 축하하자 하도경은 참지 못하고 육현경을 놀려주었다.“육현경, 아직 안 죽었다? 여행 간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임신이야. 문수보다 낫네, 문수는 지수 씨랑 저렇게 오래됐어도 아무 소식도 없는데. 너 진짜 어디 문제 있는 건 아니지?”“입 다물어.”“내 실력 의심하는 거야 지금?”“뭐래.”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하도경의 발언에 송문수는 어이없다는 듯 화를 냈다.“솔로인 너는 나 비웃을 자격 없거든. 나는 결혼이라도 했지 너는 있는 게 뭐야?”“뭐?!”“우리 중에 너만 솔로야. 분발해 하도경.”이미 말문이 막힌 하도경을 향해 송문수가 한마디 더 하자 하도경은 욕설을 내뱉으며 말했다.“닥치고 마셔, 오늘 내가 너 취해서 쓰러질 때까지 먹일 거야.”“누가 쓰러질지는 두고 봐야지.”서른 살 넘게 먹은 사람 둘이 아이처럼 싸우는 것도 그들의 일상인지라 그들을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그때 진정한 예수진이 소이연에게 조심스레 물었다.“언니, 오빠가 그거 안 하고 했어요?”“네?”“아니, 그렇게 빨리 애 갖고 싶어 하진 않을 것 같았는데. 아직 제대로 못 누렸잖아요.”예수진이 알고 있는 육현경은 소이연과의 둘만의 시간을 한 일 년은 더 누려야 직성이 풀릴 사람이었기에 아까도 그녀는 소이연이 임신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었다.두세 달밖에 안 됐는데 덜컥 임신을 해버리면 육현경은 만족을 못 할 게 분명한데.한편 이런 질문을 받은 소이연은 얼굴이 빨개져서는 둘의 신혼여행을 되돌아봤다.사실 신혼여행을 갔을 때부터 소이연은 아무리 급해도 안전조치는 꼭 하는 육현경에 의아해하고 있었다.둘은 합법적인 부부이니 아이가 생긴다 해도 아무런 문제 될 것도 없고 민이도 남동생이든 여동생이든 상관없이 동생을 원한다고 했었는데 왜 굳이 그걸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그렇게 궁금해하다가 어느 날 참지 못하
“둘이 아무 소리도 없더니 할 건 다하네.”당연히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예수진이었다.“우리 지수를 그렇게 적극적인 여자로 만들고 송문수 대단하다.”제 친구 앞이라고 빼지 않는 송문수는 고개를 쳐들며 말했다.“내가 매력이 좀 넘치잖아.”“적당히 해.”그 모습에 예수진이 어이없다는 듯 말하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언니랑 지수는 왜 술 안 마셔?”워낙 시끌벅적한 걸 좋아하던 예수진은 술도 아주 좋아하는데 본인은 임신 중이라 마실 수가 없으니 자꾸만 주변 사람들을 부추기고 있었다.“이연이는 안돼.”“지수도 오늘은 안 돼.”제 말이 끝나자마자 들려오는 송문수와 육현경의 대답에 그녀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왜? 두 사람도 임신했어 설마?”“아니야.”얼토당토않은 말에 하지수는 다급히 부인했다.“그런데 왜 못 마셔?”“생리니까 못 마시지.”“송문수, 언제 이렇게 다정해졌냐? 지수 생리인 것도 다 알고 기특하네 좀.”예수진의 장난에도 기분이 좋았던 송문수는 아주 환하게 웃어 보였다.“이연 언니는 왜 못 마셔?”예수진은 이번에는 못마땅한 눈빛으로 육현경을 보며 물었다.“아무튼 안돼.”“언니도 생리야?”그렇게 우연이 겹칠 리가 없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미간을 찌푸리는 예수진에 소이연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고는 입술만 물어뜯고 있었다.“뭘 자꾸 그렇게 물어.”“언니 어디 아파요? 나 놀래키지 말고 말 좀 해봐요.”육현경까지 말을 아끼니 깜짝 놀란 예수진은 잔뜩 긴장한 채로 물었지만 돌아오는 건 육현경의 핀잔이었다.“넌 매일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이연이가 왜 아파!”“그럼 왜 못 마시냐고.”예수진의 질문에 입술을 말아 물며 소이연을 보는 육현경의 눈에서는 꿀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예수진은 소이연을 신 모시듯 떠받드는 제 오빠를 보며 정말 한 사람을 바꾸는 건 사랑밖에 없다는 걸 다시 한번 실감하였다.“도대체 뭘 숨기는 거야?”예수진이 끝까지 캐묻자 소이연이 할 수 없이 숨을 한번 들이마시며 답했다.“나 임신했
사실 하지수는 늘 송승우를 어떤 사람이라고 정의 내려야 할지 몰랐었다.우수하지 않다고 하기엔 국가사업에 공헌할 정도로 대단한 두뇌를 지니고 있었지만 또 그렇다고 아무도 비비지 못할 정도로 대단한 건 아니었다.그런데 송승우는 늘 고고한 척, 자신이 다른 사람의 우위에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CEO들은 몸에서 돈 냄새가 난다면서 싫어했던 그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회사를 물려받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해왔었다.그는 다른 사람과 교류할 때마다 무의식인지 아니면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늘 자신의 박학다식함을 뽐내며 자신의 우수함을 드러내려 했다.이제 보니 가식적이라는 말이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다.하도 가식적이어서 하지수는 이제 그가 짜증 날 지경이었다.“어릴 때 게임 할 때도 송승우는 옆에 앉아서 코드나 쳤고 우리가 예능 볼 때는 그런 조작된 건 안 본다면서 머리 나쁜 사람들만 좋아하는 거라고 비웃었어. 우리가 디저트를 먹으면 지능 떨어진다고 무시했고...”예수진은 송승우 때문에 힘들었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쉴 새 없이 말했다.하지수와 다르게 정말 힘들어했던 그녀는 송승우가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미친 건가 하는 생각도 잠시 했었다.“됐어, 그 사람 얘기 그만하자.”“너랑 문수만 잘 지내면 됐지, 송승우는 과거일 뿐이야.”“응.”이제 송승우한테는 조금의 감정도 남지 않은 하지수는 예수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그때 도우미 하나가 와서 식사 준비가 끝났다고 알려주자 그들은 다 같이 테이블로 향했다.거기에는 하연이와 민이도 있었는데 민이는 육현경을 쏙 빼닮아 겉은 차가워 보였지만 사실은 동생을 아주 잘 챙겨주는 아이였다.물론 그의 다정함은 자신이 인정한 사람 한해서만이었다.민이가 하연이를 챙겨주는 모습을 보던 예수진은 감탄하며 말했다.“우리 조카가 결혼할 생각만 하면 난 벌써부터 가슴이 아파.”“제수씨도 아무 말 없는데 네가 왜 가슴이 아파.”장난을 치는 송문수의 말을 예수진 바로 맞받아쳤다.“언니는 당연히 괜찮겠지, 며느
예수진의 말에 정곡을 찔린 듯 소이연은 얼굴을 붉혔다.“거봐요, 오빠는 내가 제일 잘 안다니까. 그냥 겉으로만 멀쩡해 보이는 거예요.”소이연의 반응에 예수진은 득의양양해 하며 말을 이어나갔다.“겉으로는 차가워 보여도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아주 대범해지는 사람이거든요. 언니는 이제 오빠의 넘치는 사랑을 받을 일만 남았네요, 물론 침대 위에서요.”“그만 해요 수진 씨.”신나서 얘기하는 예수진에 못 말린다는 듯 웃던 소이연이 그녀를 타박하듯 말했다.“태교하는 사람이 자꾸 그런 생각 하면 어떡해요?”“아직은 그냥 핏덩이라서 아무것도 몰라요.”“...”“지수야, 너는 요즘 뭐 하고 지내? 평소에 문자 보내도 답장 늦게 하던데.”말을 하던 예수진은 임신한 뒤로 아무것도 못 하게 하는 계지원 때문에 요즘 부쩍 재미없어진 일상을 떠올리고는 서러운 듯 입술을 삐죽였다.“그냥 회사일 처리하고 있었지. 얼마 전에 경영에 문제가 생겨서 회사 부도날 뻔했거든. 그래서 문수 씨랑 일 처리만 했어.”“송문수?”“걔가 회사 일을 한다고?”송문수가 일한다는 소리에 예수진은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그래, 안 믿길 거 아는데 진짜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문수 씨 정말 많이 변했어, 더 이상은 맨날 놀러만 다니던 망나니 아니야. 이번에도 문수 씨 덕분에 송씨 집안이 다시 일어서게 된 거야. 그리고 이연 언니랑 현경 씨도 많이 도와줬고.”하지수는 곧바로 소이연을 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정말 고마워요 언니, 언니랑 형부 도움 아니었으면 저희 집안은 진작에 끝났을 거예요.”“아니에요, 별로 힘든 일도 아니었는데요 뭘.”“현경이가 안 그래도 문수 씨 많이 변했다는 말 하더라고요. 밤에도 전화해서 기획서 어떻냐고 물어볼 정도로 열정적이래요.”“진짜 그렇게나 많이 변했다고요?”소이연까지 긍정하자 예수진은 눈을 크게 뜨며 하지수를 바라봤다.“네가 바꾼 거야?”“내가 그 정도는 아니야. 그냥 나이가 점점 드니까 본인이 알아서 바뀐 거겠지.”“송문수가 바뀐 뒤
그래서 하지수는 이를 악문 채로 따져 물었다.“문수 씨, 당신 형이 올린 인스타 봤어?”자신이 송승우를 이긴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었는데 갑작스레 인스타를 언급하는 하지수에 송문수는 자연스레 핸들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안 그래도 거슬렸는데 하지수의 저 질문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었다.“그걸 봤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아?”“응, 괜찮아. 그냥 인스타일 뿐인데 뭘 신경 써.”자신이 송승우를 선택할까 봐 두려워하는 모습이 조금도 보이지 않자 하지수는 조금 실망했지만 그래도 괜찮은 척 말했다.“신경 안 쓴다니 다행이지만 그래도 당신 아내로서 해명할게. 나랑 송승우 씨는 아무 사이도 아니야.”아무 사이도 아니라니, 둘이 얼마나 뜨거운 사랑을 나눈 사이였는지 온 집안사람들이 다 아는데 저런 말을 하는 하지수가 어이없었지만 송문수 본인도 뭐 그다지 깨끗한 사람은 아니었기에 그는 자신도 하지 못한 것을 하지수에게 요구할 자격은 없다 생각해서 입을 다물었다.하지수는 송승우를 진짜 사랑한 거였지만 자신은 그저 다른 여자들을 갖고 논 것이기에 더 따질 권리가 없는 것 같았다.“오늘 어머니랑 같이 쇼핑가기로 했는데 송승우 씨가 먼저 따라가겠다고 한 건 맞아. 나랑 어머니도 거절하기 힘들어서 같이 오긴 했는데 나는 송승우 씨랑은 말도 안 섞었어. 거리도 엄청 많이 뒀고 못 믿겠으면 어머니한테 물어봐도 돼.”하지수의 해명을 듣고 있던 송문수는 오로지 저를 위해 저렇게 자세히 상황설명을 해주는 건가 싶어 또 가슴이 벌렁거리기 시작했다.그녀의 작은 행동에 또 흥분한 송문수는 운전에 집중할 수가 없어 애써 심호흡을 하며 정면을 주시했다.“내가 선택한 사람은 당신이니까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한테 진심일 거야. 당신한테 미안한 짓은 절대 안 해.”하지수의 약속에도 송문수는 꿈쩍도 안 했지만 하지수는 둘 사이의 작은 오해가 큰 불화로 번지지 않게 하려고 아무런 반응이 없어도 상황설명을 마쳤다.제 할 일을 마친 하지수는 안광이 사라진 눈으로 차 시트에 기대 있었
송문수는 애초에 쉽게 만족하는 사람이었기에 하지수가 조금만 잘해주면 한동안 기뻐했다.둘의 웃는 모습을 지켜보던 허영지도 흐뭇하게 그들을 지켜보며 이렇게 사이좋은 둘이라면 걱정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지수 데리고 밥 먹으러 가려고 온 거라고 했지?”“네.”“옷도 다 입어봤으니까 얼른 가봐.”데이트하러 가라는 말만 안 했지 사실 허영지는 그 둘에게 오붓한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었기에 서둘러 둘의 등을 떠밀었다.“어머니는요, 저녁 어떻게 하시려고요?”“승우 집에 있잖니. 승우랑 같이 쇼핑 좀 더 하면서 네 시아버지 옷 좀 더 보려고. 내 걱정 말고 얼른 가봐.”송승우는 당연히 내키지 않았지만 어머니가 말도 다 뱉은 마당에 거절하기도 쉽지 않아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그럼 차 키는 두고 갈게요.”“저랑 문수 씨는 이만 옷 갈아입을게요.”옷을 갈아입은 둘은 손을 잡고 쇼핑몰 밖으로 나갔고 그 둘의 뒷모습을 노려보던 송승우는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승우야.”송승우는 갑자기 들리는 어머니의 부름에 다급히 표정을 감추었지만 허영지는 이미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안다는 듯이 말했다.“그때 너랑 지수 사이 우리도 다 알아. 하지만 너희 둘은 이미 끝난 사이고 지수랑 문수가 저렇게 잘 지내니까 이제는 너도 형으로서 축복해줘야 하지 않겠니?”송승우도 물론 어머니의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그 옛날 하지수가 좋아하던 건 분명 자신이었는데, 그때의 제삼자인 송문수가 하지수를 채가는 게 송승우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말을 마친 허영지는 이만 옷을 갈아입으러 피팅룸으로 들어갔다.송승우도 성인이었기에 조언도 적당히 해야지 선을 넘으면 그냥 가족 사이의 불화만 생길 것이기에 허영지도 여기서 멈춘 것이었다.하지만 어릴 때부터 송문수에게 져본 적이 없던 송승우는 이번에도 제 여자를 그에게 내어주고 싶지 않아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주먹을 꽉 쥐었다....송문수의 차에 앉은 하지수는 처음으로 저를 데리러 온 송문수에 못내 기분이 좋
하지만 원체 쇼핑을 싫어하는 송문수의 성격을 알고 있던 하지수는 그의 냉담함에 실망하지 않았다.이렇게 앉아서 옷을 갈아입는 저를 봐주는 것도 그의 노력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문수 왔구나.”허영지의 부름에 송문수가 짤막하게 답했다.“좀 있다 모임 있어서 지수 데리러 왔어요.”“그래, 젊은 사람들이야 그런 모임에 나가면 좋지.”전에는 송문수가 밖에 나가겠다고 하면 거절은 안 해도 표정은 굳어지던 허영지가 너그럽게 대꾸하는 것도 의외였다.“아직 이르니 너도 정장 한번 입어보고 가.”“바로 가야 되는데 갈아입기 귀찮아요.”“얼른 갈아입어.”“엄마, 나 온종일 일해서...”“지수가 너 준다고 한참 고른 건데 와이프 위해서 그 정도도 못 해줘?”남녀 사이에 있어서는 목석같기만 한 제 아들을 보며 허영지가 미간을 찌푸렸다.엄마의 말을 들은 송문수가 하지수를 바라보자 하지수는 다급히 말했다.“잘 어울릴 것 같아서 고르긴 했는데 갈아입기 싫으면 그냥 보기만 해. 맘에 들면 당신 사이즈로 맞출게.”“입어볼게, 맘에 안 들 수도 있으니까.”송문수가 하도 담담하게 대답해서 떨리는 그의 손가락을 주의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사실 그는 하지수가 자신을 위해 옷을 골라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놀라는 중이었다.기쁜 마음 반 당황스러움 반으로 옷을 갈아입은 송문수가 나오자 직원들은 일제히 그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너무 잘 어울리세요, 손님 더 멋있어 보이는 것 같아요.”“진짜요?”송문수가 직원들의 말을 반신반의하자 하지수가 나서며 말했다.“진짜야. 진짜 너무 멋있다.”“그래?”하지수의 확신에 찬 대답을 들은 송문수는 흘러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득의양양해 하며 대꾸했다.“다 내가 잘 생겨서 그런 거야. 옷이랑은 큰 상관 없지.”이렇게 가끔 자아도취 하는 송문수를 보며 하지수는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에게로 다가가 넥타이를 정리해주었다.그 둘의 다정한 모습을 보던 주위 사람들은 다들 흐뭇한 미소를 지었지만 송승우만은 아주 언짢아하
생일파티에 관한 일을 다 의논한 뒤 하지수는 허영지와 함께 그녀의 드레스를 맞추러 갔는데 하지수의 드레스도 같이 맞추자는 시어머니의 권유에 그녀도 옷을 입으로 들어가게 되었다.그래서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것인데 하필 그때 송승우가 송문수의 전화를 받게 된 것이다.옷을 다 입어보고 나서도 시어머니와 쇼핑을 하느라 굳이 핸드폰을 보지 않았던 하지수는 송문수에게서 연락이 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다시 한번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을 때 송승우가 이번에도 자신이 받으려고 했는데 하지수가 그걸 보고 빠르게 핸드폰을 낚아채 갔다.그녀의 행동에 표정이 굳어버렸던 송승우는 이내 송문수가 자신이 올린 인스타를 봤을 생각에 다시 입꼬리를 올리며 시선을 신문에 고정한 채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문수 씨.”송문수의 이름을 부르는 하지수의 목소리에는 기대와 반가움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잠시 떨어져 있던 연인이 재회할 때나 나올법한 목소리에 송승우의 표정은 한층 더 어두워졌다.“아직도 바빠?”“어머니 모시고 드레스 피팅해보고 있었어. 지금은 디자이너님이랑 디테일 얘기하고 있어. 나도 아까 하나 입어봤는데 사진 보내줄게.”“지금 데리러 갈 건데 어디야?”잔뜩 신나서 말하던 하지수는 이제 고작 4시밖에 안 됐는데 퇴근했다는 송문수가 의아하여 놀라며 물었다.“퇴근했어?”“주말이라서 일찍 퇴근했어.”“회사도 좀 안정돼서 직원들도 앞으로 주말은 다 쉬기로 했어.”“그래.”고개를 끄덕이며 주소를 불러준 하지수는 웃는 얼굴로 전화를 끊고는 허영지에게로 다가갔다.하지만 송문수와 하지수가 싸울 것이라 예상했던 송승우는 화도 내지 않는 송문수에 혹시 그가 하지수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하지만 사실 송문수는 인스타를 보자마자 차오르는 화에 핸드폰을 손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꽉 쥐고 있었다.다른 사람이 채갈까 봐 하지수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심정이 굴뚝같은데 그런 그녀가 옛날에 좋아하던 송승우와 함께 있는 걸 본 이상 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