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팀은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서 중 하나에요.”성소원이 일부러 회사 정기 회의에서 야유 조로 비아냥거렸다.“누구든 영업에 천부적 재능이 없으면 자리만 떡하니 차지하지 말고 다른 능력 있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남겨줘야죠! 우리 회사는 노후 보내러 온 장소가 아니란 걸 다들 잘 알고 있겠죠? 오더를 한 개도 내리지 못한 채 기본 수당만 받는 사람은 앞으로의 진로를 좀 더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요!”강서연은 줄곧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오후 내내 그녀는 구겨진 미간을 펴지 못했다.다만 종일 지쳐있다가 집에 돌아왔는데 문을 열자마자 구현수가 양반처럼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고 있었다. 주방은 텅 비었고 목을 축일 따뜻한 물조차 없었다.강서연은 오랫동안 참은 서러움이 그 순간 완전히 폭발하고 말았다.“당신... 밥을 안 지었어요?”구현수가 흠칫 놀라더니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눈앞의 그녀는 작은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었고 어깨를 들썩거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강서연은 맑고 커다란 두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다만 질문 조의 말투가 전혀 질문처럼 들리지 않았고 오히려 서러움에 북받친 새신부가 제 남편 앞에서 애교를 부리는 것만 같았다.구현수는 가슴이 움찔거려 그녀를 더 지그시 바라봤다.“왜 그래?”그는 소파에서 일어나 무고한 표정으로 물었다.“결혼한 뒤로 줄곧 당신이 밥을 했잖아?”강서연은 머뭇거리다가 입술을 꼭 깨물었다.구현수의 체구에서 무언의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녀 앞에 서 있으니 덩치가 훨씬 더 커 보였고 순간 강서연은 마냥 연약해 보였다.게다가 그녀의 성격이 온순하고 너그럽게 포용해주다 보니 구현수를 탓할 것도 없었다.다만...“그래요, 맞아요.”강서연이 시선을 아래로 떨구며 말했다.“줄곧 내가 밥을 했죠. 하지만 이젠 출근도 해야 하잖아요. 현수 씨가... 현수 씨가 집안일을 좀 분담하면 안 되나요? 이 집에 나만 사는 것도 아니잖아요! 내가 오늘 늦게 돌아왔는데 현수 씨가 밥을 짓지 않더라도 최소한 식자재는
강서연은 이 제안을 미처 거절할 새도 없이 구현수에게 이끌려 집 문을 나섰다.가는 길에서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머릿속엔 오직 이까짓 월급으로 무엇을 먹을 수 있을지 고민 중이었다.그녀는 구현수를 힐긋거리며 생각했다.‘현수 씨는 줄곧 가난하게 살아서 강주시에 어떤 음식점들이 있는지 모를 거야! 현수 씨 소비 수준이라면 길거리 음식으로도 대충 끼니를 때울 수 있어. 그리고 어떤 음식점들은 주식이 무한 리필이라 충분히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거야.’강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씩 웃었다.그녀는 결혼한 이후로 줄곧 아껴 쓰며 검소하게 생활했다. 평소 끼니를 준비할 때도 저렴한 채소만 골라서 샀다. 다만 전에 강씨 일가의 연장자 도우미가 말하기를 젊은 부부는 열정이 식어가는 게 가장 두려운 일이라고 했다. 가끔 나가서 로맨틱한 데이트를 하는 것도 부부의 감정을 더 승화할 수 있다고 했다.‘그럼... 오늘 아예 현수 씨를 데리고 밖에서 거하게 한 끼 먹을까?’강서연은 생각에 푹 빠져있다가 고개를 번쩍 들어보니 어느덧 구현수와 함께 가장 번화한 거리의 제인 호텔 입구에 떡하니 서 있었다!“여기로 해.”구현수는 마치 재래시장에서 배추 고르듯 홀가분하게 말했다.“뭐라고요?”강서연은 비명을 지를 뻔했다.“여기서 먹자고.”구현수가 실눈을 뜨고 가볍게 웃었다.“이 호텔 괜찮은 것 같아.”강서연은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무심코 가방을 꽉 잡았다.이곳은 강주에서 가장 비싼 오성급 호텔이라 그녀는 평소 문 앞을 지나면서도 고개 들어 간판을 쳐다보지 못했다.이런 곳에서 음식을 먹으면 그녀의 월급으로 아마 밑반찬 한 접시도 사지 못할 것이다!구현수가 그녀를 이끌고 안으로 들어가자 종업원 두 명이 깍듯하게 90도 경례를 했고 매니저가 앞으로 마중 나오며 노련하게 미소 지었다.“어서 오세요.”“현수 씨!”강서연은 불쑥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왜 그래?”“우리...”‘우린 돈이 모자란다고요. 딴 곳으로, 저렴한 곳으로 바꾸면 안 될까요? 우리와 같은
강서연은 낯빛이 살짝 변하더니 심장이 쿵쾅댔다.그가 뭘 알아낸 걸까?아니면 딴 사람들에게 강씨 일가에 사생아가 한 명 있는데 강유빈을 사칭하여 이 혼약을 이행했다고 엿들은 걸까? 그와 결혼한 여자는 사실 짝퉁이고 강씨 일가에서 애지중지 키운 딸이 아니란 걸 알게 된 걸까?남자들은 다 허영심이 있다 보니 자신과 결혼한 배우자가 예쁜 재벌 집 딸이길 바라지 그녀처럼 못생기고 촌스러운 신데렐라길 원치 않을 것이다.강서연은 살며시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옷깃을 잡아당겼다.그녀는 절대 인정하면 안 된다고 되뇌었다. 구현수는 싸움을 벌여 감방까지 갔던 사람이다...그런 그가 작정하고 화를 내면 후폭풍은 아마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네? 할 얘기라니요?”그녀는 맑고 커다란 눈망울로 그를 쳐다보며 애써 화제를 전환하려 했다.“아 참, 나 이번 달에 실적이 별로 없어서 다음 달에 더 분발해야 해요! 그래서... 집에 돌아가 함께 밥 먹을 시간이 별로 없을 거예요. 현수 씨 혼자 잘 지낼 수 있죠?”“내가 애야? 당연한 소릴 하고 있어.”구현수가 웃으며 그릇에 담긴 랍스터 볶음밥을 절반 덜어서 그녀에게 줬다. 강서연이 기어코 안 받으려 하자 구현수가 음침한 눈빛으로 목소리를 내리깔고 물었다.“내가 먹여줘?”그녀는 결국 목을 움츠리며 그에게 수긍했다.잠시 후 구현수의 휴대폰이 진동했는데 배경원한테서 온 문자였다.그는 몰래 주변을 살피다가 멀지 않은 곳에서 사악한 미소를 날리고 있는 배경원과 그의 옆에 서서 입을 틀어막고 있는 유찬혁을 발견했다.“나 화장실 다녀올게.”구현수는 담담한 말투로 그녀에게 말하고는 레스토랑 복도 모퉁이로 걸어갔다.배경원은 끝내 참지 못하고 크게 웃었다.“부부가 애틋해 죽던데요?! 랍스터 볶음밥 1인분을 서로 한 숟가락씩 나눠 먹다니, 심지어 머리까지 맞대고요... 형이 이렇게 로맨틱한 사람인 걸 난 왜 전에 몰랐죠?”구현수가 힐긋 째려보자 배경원은 애써 입을 다물고 더는 나불거리지 못했다.“형, 경원이 뭐라 할
배경원은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배씨 가문이 강주에서 세력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깨알만 한 작은 회사까지 조사해낼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그의 신분으로 조사를 시작한다면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않을 수가 없다.만에 하나 또 저번처럼 강명원을 처리하다가 누군가에게 오해를 받는다면...배경원은 마른기침을 해대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형, 알아볼 순 있는데 미리 부정적인 얘기부터 해둘게요. 이 기간에 누군가가 헛소문을 퍼뜨리며 내가 형수님과 바람났다고 떠들어대도 절대 믿으면 안 돼요... 악!”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유찬혁이 그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입사한 지 2개월이 되어가니 강서연은 더 열심히 일에 전념했다. 사회초년생의 생존 법칙도 거의 파악했고 성소원의 괴롭힘에도 원만하게 해결할 줄 알게 되었다. 방진영이 대놓고 또는 은밀하게 집적거려도 그녀는 저 자신을 지키는 법을 터득하여 업무상에서 그와 최대한 적게 접촉하려 했다.다만 이 또한 엄청난 정력을 소모하기에 그녀는 매일 피곤해 죽을 지경이었다.집에 돌아와 하이힐을 벗고 소파에 누우면 가끔은 너무 피곤해 새벽까지 잠들기가 일쑤였다. 깨어나 보면 몸에 얇은 담요를 덮고 있고 구현수가 옆 마룻바닥에서 팔을 베고 잠들어 있었다.그녀가 구현수의 소파를 차지하고 잠들었을 때 구현수는 침실에 있는 그녀의 침대에 들어가 자지 않았다.강서연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불안감을 느끼는 동시에 가슴에 따뜻한 전류가 흘렀다.구현수가 그런 그녀에게 말했다.“회사 다니기 그렇게 힘들면 그냥 관둬, 하지 마.”“어떻게 그래요?”강서연이 그를 쳐다보며 되물었다.“일을 안 하면 무슨 돈으로 집세를 내고 밥을 먹어요 우리?”“이까짓 돈에 연연하는 거야?”“이까짓 돈이요?”강서연이 어이없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양반 납셨네요. 집안 살림을 안 하니까 쌀이 귀한 줄도 모르겠죠? 내 월급으로 우리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어휴, 오더를 많이 내리지 못하고 보너스를 받지 못하면 우리 앞으로 엄청 고생해야 할
임우정은 강서연이 회사에서 성소원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게 안쓰러워 그녈 위해 업무를 더 뛰었고 본인의 거래처들도 그녀에게 소개해주며 발주를 내리는 데 관한 기교를 많이 전수해주었다.“너 기억해. 오더는 한 번에 성사되는 게 아니야. 주문 건 한 건도 수차례 상의해야 성사할 수 있어. 이 또한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야.”강서연이 가볍게 머리를 끄덕였다.“평소에 바이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해. 네가 그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야 그 사람들도 너에게 오더를 한 건이라도 내릴 것 아니야!”“네, 그건 저도 알아요.”“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임우정이 웃으며 말했다.“영업을 뛰려면 뻔뻔스러워져야 해! 체면을 다 내려놓아야 지갑이 두툼해질 수 있다고! 알겠어?”강서연은 예쁘고 커다란 두 눈을 반짝이며 반달웃음을 지었다. 이때 스크린에 그녀들의 식번이 떴고 강서연은 재빨리 음식을 가지러 카운터로 향했다.점심은 아주 간단한 패스트푸드인데 강서연은 가장 저렴한 야채 요리만 한 개 들고 왔다. 이에 임우정은 참지 못하고 질문을 건넸다.“그걸로 배부르겠어?”“문제없어요.”강서연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저 원래 적게 먹어서 이거면 돼요.”“되긴 뭘 돼?! 영업을 뛰려면 안 그래도 체력 소모가 엄청날 텐데 너 그 작은 체구로...”임우정은 말끝을 흐리더니 무언가 생각난 듯 조심스럽게 물었다.“설마 집에 남편이 너 돈을 못 쓰게 감시하고 있어?”강서연이 해명하려고 할 때 구현수한테서 문자가 한 통 날라왔다.그녀는 문자를 확인하고 한동안 침묵했다. 임우정은 어두운 표정의 강서연을 보더니 휴대폰을 뺏어와 힐긋 보고는 화가 나서 자리에서 펄쩍 뛰어오를 뻔했다.“너무했네 진짜!”임우정은 화가 나서 말까지 더듬거렸다.“아니 어떻게... 쇼핑을 할 수 있어? 벨트 하나에 60만 원이라고?”“언니, 목소리 낮춰요!”강서연이 재빨리 그녀를 말렸다.다만 요즘 들어 구현수가 이상해진 것도 사실이었다. 매일 다양한 방식으로 삶을 즐겼는데 어느 하루는 강서연이
“언니는 몰라요.”강서연이 가볍게 미소 지었다.“사실 현수 씨 나한테 엄청 잘해줘요...”“잘해줘?”임우정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결혼 둘째 날 강서연이 드레스를 돌려주러 가게에 갔다가 점원에게 굴욕을 당했을 때 구현수가 홧김에 가게에서 제일 비싼 드레스를 구매했고 그 점원더러 강서연에게 무릎 꿇고 사이즈를 재게 했다. 임우정도 그녀에게서 이 얘기를 전해 들었다.그땐 이 남자가 믿음직스럽지 못하고 허영심이 차서 체면만 중히 여기며 심지어 성격이 매우 난폭하다고 생각했다.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강서연의 적금으로 제멋대로 즐긴다는 것이다!“서연아, 현수 씨가 드레스 가게에서 널 위해 앞장 서주고 집에서 전해 내려온 가보까지 너에게 줬다고 널 엄청 잘해주는 거라고 여긴다면 네가 아직 너무 단순하고 결혼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밖에 해석이 안 돼! 결혼은 두 사람이 함께 꾸며나가는 거야. 너 혼자 죽어라 애쓰는데 남편이란 자는 정작 집에 앉아 양반다리를 하고 네가 벌어온 돈이나 마구 써대는 게 아니야! 그건 잘못된 거야.”임우정은 화가 나서 손가락으로 강서연의 머리를 살짝 찔렀다.강서연은 참 좋은 여자아이였다. 그저 심성이 너무 착한 게 탈이었다.누군가가 조금만 잘해줘도 평생 기억하며 여력을 다해 보답하려고 한다.구현수처럼 감방까지 갔다 온 사람을 만나니 착하고 순진한 그녀는 등골이 빼 먹혀 뼈도 추스르지 못할 정도였다!“사내대장부가 나가서 돈 벌 생각은 안 하고 종일 마누라 돈만 써대는데 대체 뭐가 좋다는 거야! 그런 사람은 남자가 될 자격도 없어!”임우정이 한마디 보태자 강서연은 순간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음침한 눈길로 정색하며 쏘아붙였다.“내 남편 함부로 말하지 말아요!”임우정은 놀라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요, 난 항상 남편을 맞춰주고 보호해주려고 애써요!”강서연이 작정하면 말로 그녀를 이길 자가 없다.“그 사람은 내 남편인데 지켜주고 맞춰주는 게 뭐가 잘못됐죠? 단점이 얼마나 많은지도 다 알아요. 이
구현수는 제인 호텔 맨 위층 테라스에 앉아 있었고 손가락 사이에 낀 담배는 거의 타들어 갈 듯싶었다. 먼 곳의 해수면에 파도가 반짝이고 바닷새가 공중에서 선회하며 하얀 덫을 수놓아 절경을 이루었다.이때 탁자 위의 휴대폰이 진동하더니 카드에 60만 원이 입금되었다는 문자가 도착했다.배경원과 유찬혁은 서로 마주 보며 껄껄 웃었다.“형 진짜 여복이 터졌네요! 형수님이 예쁜 데다가 흔쾌히 돈까지 주잖아요, 하하하!”“여태껏 살아오면서 여자 돈을 써보긴 형도 처음이죠? 느낌 어때요? 짜릿해 죽겠어요?”구현수가 둘을 힐긋 째려보며 휴대폰을 다시 원위치에 내려놓았다.비록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마음속에서부터 따뜻한 전류가 흐를 것만 같았다.강서연이 진짜 계좌 이체할 줄은 상상치도 못했다. 그녀의 은행카드에 기껏해서 60만 원 정도 남아있다는 걸 구현수는 잘 알고 있었다.그는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몇 번 털면서 복잡한 눈길로 먼 곳을 바라봤다.“아 참, 형.”유찬혁이 나지막이 말했다.“경원이가 직접 나서기 불편해서 내가 호정 무역회사를 조사했어요. 성소원 씨는 회사 임원 층인데 주주인 외삼촌을 믿고 안하무인 격이래요. 게다가 또...”유찬혁은 계속 더 말해야 할지 망설였다.구현수의 눈빛이 확 어두워졌다.“얘기해.”“게다가 또 방진영 씨의 여자친구예요.”유찬혁이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방진영 씨는 강서연 씨 부서의 매니저이자 대학교 선배이기도 해요. 학교 때 서연 씨를 쫓아다니기도 했고요...”구현수의 얼굴은 굳어버린 얼음처럼 아무런 파동이 없었지만 책상 위에 놓인 두 손은 어느샌가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유찬혁이 마른기침을 해댔다.“형, 사실 학교 때 일은 별 거 아니에요.”“그래.”구현수가 그를 쳐다보며 되물었다.“내가 뭐라고 했어?”유찬혁은 실소를 터트렸다.아무 말도 안 했지만 말을 내던진 것보다 더 심각했으니까.“계속해.”“회사에서 성소원 씨가 항상 서연 씨를 괴롭히고 있대요. 그래서 서연 씨는 입사한 첫 달에 오더를 한 개도
그는 허리를 숙여 물건을 주웠다.부드러운 순면 텍스처와 그 위에 묻어난 은은한 체취가 불쑥 그에게 이상한 느낌을 주었다.그건 강서연의 속옷인데 지극히 심플한 기본 아이템이었다.구현수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그는 목이 바짝 말라 혀로 입술을 살짝 핥고는 옷들을 세탁기에 넣으려 하는데 이때 마침 문이 열리고 강서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현수 씨 집에 있어요? 오후에 물을 너무 많이 마셨더니 화장실이 급해 죽겠어요...”불현듯 서로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은 어안이 벙벙해졌다.강서연은 충격에 휩싸인 채 그를 쳐다보다가 그의 손에 쥔 옷 바구니와 그 안에 담긴 더러운 옷들과 이미 열린 세탁기와 그리고...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귀까지 빨개졌다.“그걸 왜 들고 있어요?!”강서연은 냉큼 다가가 재빨리 그의 손에서 속옷을 뺏어왔다. 지금 이 순간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뻘쭘한 건 구현수도 마찬가지였다.그녀의 반응만 보면 집에 도둑이 들었다고 착각해도 모자랄 판이었다...‘잠깐, 설마 지금 날 도둑 취급하는 건 아니겠지? 여자 속옷만 훔치는 변태 도둑 말이야?!’구현수는 낯빛이 확 돌변했다. 그는 마른기침을 하며 애써 담담한 말투로 그녀에게 대답했다.“집에서 할 일 없어서 옷 좀 빨려고 했어.”강서연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감히 그를 쳐다보지 못했고 심장은 여전히 마구 쿵쾅댔다.“그냥... 놔둬요 일단. 이따가 내가 씻을게요.”“이 집은 두 사람이 함께 가꿔나가는 거니까 집안일도 서로 분담해야지.”“아니에요, 정말 그럴 필요 없어요! 이건 내 물건이라 내가 알아서 씻을게요...”강서연은 황급히 머리를 흔들었다. 부끄럽고 난처한 그 모습이 실로 귀여울 따름이었다.구현수는 그녀를 지그시 바라봤다. 좀 전에 억눌렀던 설렘이 또다시 부풀어 오를 것만 같았다.“난 당신 남편이야.”그가 중저음의 목소리로 일부러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부부 사이에 네 거 내 거가 어디 있어? 당신 속옷을 빨아주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