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지금은 입장이 달라졌다. 나태웅이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그건 대표님이 가장 잘 아시겠죠. 대표님이 남편이시잖아요!”보스의 사모님이나 되는 사람을 누가 감히 함부로 부릴 수 있을까?그런데 아침에 혼인신고까지 하고 온 사람이 어딜 사라진 거지?배준우가 담배를 꺼내며 차갑게 말했다.“명성에 서류 전달하러 갔어!”그 말을 들은 나태웅은 가슴이 철렁했다.“고 비서가 명성에 갔다고?”명성 지사에는 변태로 소문난 장 사장이 있어 김연화도 매번 거기 가기 싫어했다.고은영은 장 사장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텐데 혹시 갔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배준우가 음침한 얼굴로 말했다.“명성 지사 담당이 누구지?”나태웅은 순간 눈앞이 아찔했다.‘김연화 이 멍청한….’그는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지금 처리할게.”말을 마친 그는 부랴부랴 사무실을 나서며 고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고은영은 가는 길에 음료수 하나 구매하려고 슈퍼에 가다 나태웅의 전화를 받았다.“고 비서 지금 어디야?”“아직 버스 타기 전이예요. 30분 정도 뒤에 명성에 도착할 것 같아요.”나태웅은 그 말을 듣고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했다.“안 갔으면 됐어. 당장 회사로 복귀해!”“네?”“당장 복귀해. 대표님이 찾으셔!”고은영은 순간 어이가 없었다.회의에는 김연화가 같이 들어가는 거 아니었나? 또 무슨 일로 찾으시지?불만이 많았지만 결국 그녀는 알겠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전화를 끊은 고은영은 곧장 회사로 돌아갔다.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민초희가 그녀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김연화는 배준우가 회의 들어가는 시간에 맞춰서 비서실로 복귀했다.서류를 들고 있는 고은영을 보자 그녀는 굳은 얼굴로 따지듯 물었다.“아직도 안 갔어요?”“그게….”“일 지체되면 고 비서가 책임질 거예요?”김연화는 시간을 확인하며 짜증을 부렸다.소리를 들은 나태웅이 음침한 얼굴로 사무실에서 나왔다.“김연화 씨.”나태웅의 목소리를 들은 김연화는 언제 그랬냐는 듯 해맑은 표정
나태웅은 안타까운 시선으로 김연화를 바라보며 말했다.“김 비서는 다 좋은데 성격이 너무 급한 게 문제야!”조금만 차분하게 일을 처리했더라면 오늘 같은 상황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조급해진 김연화는 계속 죄송하다고 사과했지만 나태웅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외근을 마치고 돌아온 정유비는 한창 혼나는 김연화를 보고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훈계를 마친 뒤, 나태웅이 말했다.“앞으로 고은영 씨는 대표님이 직접 지시한 업무만 진행할 거야. 다른 업무는 자네들이 알아서 분담해!”알아서 분담하라니?그 말은, 그들이 고은영이 원래 하던 몫까지 완성해야 한다는 의미였다.“정 비서, 따라와!”나태웅은 그 말을 끝으로 차갑게 등을 돌렸다.빨리 발견해서 다행이지 만약 고은영이 명성에서 나쁜 일을 당했다면 배준우는 비서실 전체를 상대로 칼춤을 출 게 분명했다.나태웅은 배준우가 시골 처녀 고은영을 왜 이렇게까지 감싸고 도는지 가끔 이해를 할 수 없었다.신원조사도 해봤지만 두 사람은 과거에 접점이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정유비는 김연화의 옆을 지나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김연화는 화가 울컥 치밀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정유비가 나태웅의 사무실로 들어가자 김연화는 민초희한테 화풀이했다.“뭘 그렇게 봐요?”민초희는 상대하기 싫었기에 조용히 시선을 거두고 할 일을 했다.김연화는 정유비한테 밀렸다는 생각에 울화가 치밀었다. 그녀는 명성 서류를 다시 민초희한테 던지며 말했다.“민 비서가 이거 전달해요.”민초희는 냉랭한 말투로 대꾸했다.“나 실장님 말씀하신 거 못 들었어요? 고 비서님 업무 대신해야 해서 시간 없거든요? 김 비서님 일은 김 비서님이 직접 하세요!”“이게….”김연화는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동영그룹에서 5년이나 일했지만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실력이 워낙 출중했기에 다른 부서 상사들도 그녀만 떠받들었다.민초희가 말했다.“비서실에서 비서실장 후임을 뽑겠다고 말했지 김 비서님이라고 꼭 집어 말한 적은 없잖아요!”하지만
배 대표님 맞아?억대의 프로젝트 회의를 하고 있는중에, 지금 여기서 사생활에 대해 묻고 있다고!?민초희와 재무 경리는 눈을 마주치고, 서로의 눈에 스치는 경악을 보게 됐다!두 사람은 배준우가 크게 화를 내며 고은영을 멍청하다고 욕할 줄 알았다.그런데, 순간 배준우의 말투에 부드러움이 추가됐다.“다 사면 들 수 있어?”민초희.“…….”재무 관리자.“…….”두 사람은 심장이 움츠러들고 곧이어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저 사람이 정말 고비서 맞아?별거 아닌…… 비서!?고은영은 자신이 들 수 있다고 하더니 부엌에 아무것도 없지 않냐고 다시 물었다.배준우는 그녀에게 일단 조금만 사라고 말했다. 그녀가 다 들지 못할 까 봐 걱정하는 둣했다. 회의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멀리 떨어져 앉아 전화 내용을 제대로 듣지 못해 모두 배준우에게 전화를 건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지 추측하고 있었다.배 대표의 이런 부드러운 모습을 보게 되다니!방금 전화 너머의 대상을 향한 배준우의 말투는 이전에 모두가 보지 못했던 부드러운 말투였다.민초희과 재무 매니저는 특히 더욱 큰 충격에 빠졌다. 이전에 배준우는 고은영에게 엄청 사납게 굴어 고은영도 그를 무서워했다…….그러나 이 통화에서 두 사람의 관계가 그들이 보는 것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아무튼 사장님과 비서 그런 사이는 아닌 것 같았다.배준우가 전화를 끊자 표정이 다시 차가워졌다. 방금 전의 부드러움은 착각인 듯 그의 무거운 목소리만 들렸다.“계속해.”모든 사람들이 순간 정신을 차리고 다시 회의를 시작했다.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사는 고은영은 자신이 방금 도대체 무슨 놀라운 일을 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그녀는 통 밀가루 한 봉지, 국수, 양념 몇 개를 사고, 야채 코너에 가서 녹색 야채를 골라서 샀고, 양념은 모두 소포장된 것으로 골랐다.비록 그녀가 고른 것은 작은 포장들 이었지만, 양이 많아서 계산할 때는 한 봉지 가득이었다.생각보다 들기에 무거웠다!어려서부터 농사일을 하던 그녀는
배준우는 미간을 찌푸렸다.“이게 무슨 국수야?”“야채 국수예요.”고은영이 진지하게 말했다.배준우도 야채 국수인 걸 눈치챘다. 면과 녹색 잎 야채가 모두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것 외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기름도 없는 것 같았다. 예상이 맞다면 물국수인 것 같은데?배준우는 앉아서 젓가락을 들고 뒤적거렸으나, 역시 다진 고기조차 없는 간단한 물국수였다.한 입 맛본 배준우는 하마터면 토할 뻔했다.고은영은 그의 표정을 보고 다시 긴장하기 시작했다.“맛, 맛이 없나요?”“소금 말고는 아무맛도 안 나네. ”배준우는 애써 차분하게 말했다.아침에 그녀는 여러 가지 면을 만들 줄 안다고 해서 한 번 맛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배준우는 앞으로 고은영의 일에 대해 너무 궁금해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은영은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저희는 예전에 모두 이렇게 만들었어요!”그녀가 밥을 짓는 것을 접하는 유일한 시간, 즉 할머니와 함께 있을 때였다. 할머니는 이렇게 먹으면 건강에 좋다고 줄곧 말하셨다. 그래서 면을 만들 때마다 소금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넣지 않았다.그녀는 요 몇 년 동안 모두 이렇게 먹어와서 이 맛에 익숙해졌지만, 배준우는 처음이었다.이 맛은 그에게 있어서 보통 맛없는 것이 아니었다.“휴…….”결국 한숨을 쉬며 일어나 국수를 들고 주방으로 갔다.고은영은 따라가야 할지 어떡해야 할지 몰랐다.그녀 역시 자신이 잘못한 것 같았지만, 어떻게 해야 맞을지 몰랐다.곧 주방에서 '타닥타닥’ 기름이 튀는 소리가 들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의 후각을 자극하는 향기가 퍼졌다.배준우가 다시 나왔을 때, 그 하얀 국수에 토마토 계란 볶음이 추가되었었고, 다진 고기도 볶았져 있었다. 고은영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배준우가 낮게 말했다.“네 건 주방에 있어.”그녀 것도 있다고?그녀는 아까 자신이 먹을 것을 만들지 않았다. 오늘 아침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배 대표와 함께 식사한 적이 없었다.게다가 언니가 싸준 음
이전에 고은영은 점심에 안지영과 함께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는데, 오늘은 두 사람을 보지 못했다.다른 부서는 별거 아니지만, 프런트나 비서실 모두 좀 쉬쉬했고, 특히 비서실은 더 그랬다.지금 메인 비서의 자리를 다들 비집어 들어오려고 하는 상황에, 고은영이 오늘 점심에 배 대표님 사무실에서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이게 무슨 뜻이지?암묵적 관행을 논다고?만약 그렇다면, 그녀는 자멸을 자초하는 것이다. 동영 전체, 심지어 해성까지도 배준우가 미색에 매혹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지금 전체 비서실에서 고은영이 어떻게 죽을지 보고 있었다…….이 순간 휴게실에서 고은영이 밥을 먹고 졸린 표정을 짓자, 배준우는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빨리 설거지해!”“알, 알았어요!"고은영은 얼른 정신을 차렸다. 설거지는 마땅히 해야 한다. 이것은 그녀가 아무런 실수 없이 할 수 있었다.배준우는 점심에 자는 습관 있었다.고은영이 작은 주방을 정리하고 나오자 배준우가 이미 홈웨어로 갈아입고 침대에서 잠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두 눈동자를 꼭 감고 있어 평상시 일 할 때의 날카로움은 사라지고 조용한 가운데 특유의 온순함이 묻어났다.고은영은 살금살금 다가가서 담요를 집어 들고 그에게 덮어주었다.그러나 일어나면서 긴 머리카락이 어디에 걸렸는지 모르게 당겨지자 그녀는 '스읍…….'하고 차가운 숨을 한 번 들이마시더니, 발 밑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그대로 배준우의 몸 위로 넘어졌다.고은영. “…….”머리가 '윙' 하는 소리와 함께 터져버렸다!'망했다!'라는 세 글자만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이번에 정말 끝장났다고 생각했다. 몸 아래 있는 남자는 숨이 조금 답답했다고 느끼자 움찔거렸다. 고은영은 그가 깨어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눈을 감고 얼른 배준우의 몸 위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머리카락은 여전히 걸려 있어, 그녀는 아픈 느낌에 다시 배준우의 품속으로 넘어졌다.고은영의 세계는 이미 완전히 공백과 혼란으로 가득 찼고, 산소 부족으로 인해 숨이 막
“스읍”하고 고은영은 찬 공기를 들이마셨고, 머리카락도 순간 성공적으로 풀렸다.걸렸던 한 줄은 선명하게 짧아졌는데, 분명히 배준우에 의해 끊겨졌을 것이다.고은영이 반응도 하기 전에 배준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내 방에서 나가!”고은영은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크게 숨도 못 쉬고 재빨리 뛰쳐나갔다.대표 사무실 문을 나서고, 그녀는 자신의 등과 이마가 온통 식은땀으로 뒤범벅된 것을 발견했다.민초희, 정유비 그리고 김연화 모두 돌아온 그녀를 보는 표정이 각양각색이었다.특히 김연화와 정유비 두 사람이 고은영을 보는 눈빛은 더욱 하찮았다!그녀의 창백한 낯빛을 보면, 그녀가 배 대표를 꼬시는데 실패하고 곧 동영에서 쫓겨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은영 자신도 오늘 틀림없이 쫓겨날 것이라고 생각했다."은영 씨 괜찮아요?"민초희는 그녀 옆에 와서 물 한 잔을 건넸다.그녀는 회의실에서 배준우의 그 통화내용을 직접 들었고, 고은영과 배준우의 관계가 그녀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고 생각했다.고은영은 놀란 심장이 아직 제자리에 돌아오지 못한 채, 민초희를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저는 괜찮아요, 고마워요!"말하면서 서둘러 회사를 뛰쳐나갔다.고은영이 회사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안지영이다.얼른 휴대폰을 꺼내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지영은 지금 기숙사에서 쉬고 있었는데 그녀의 번호를 보고 심장이 움츠러들었다."너 또 무슨 일이야?"분명히 안지영이 보기에, 고은영이 지금 그녀에게 전화하면 틀림없이 사정이 있는 것이다.고은영은 울음을 터뜨릴 듯한 말투로 말했다.“지영아, 내 높은 연봉이 없어질 것 같아!""아니, 너 이거……."안지영은 너무 어이가 없었다.고은영은 언제 어디서나 이런저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 같은데 아이는 도대체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왔을까?특히 그녀에게 그런 엄마가 있다니, 정말 쉽지 않아!"기다려!"고은영이 우물쭈물하며 분명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안지영은 조급하게 한마디 하
배준우와 고은영이 한 지붕 아래 머무르지 않는 한, 그렇게 많은 상황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안지영의 말이 옳다고 느꼈다!당시 배준우가 그녀를 보는 눈빛은 그의 침대에 기어든 여자를 보는 것 같았다.아주 흉악하고 위험했다!“그럼 나는 동영에서 쫓겨나지 않을까?”이 일을 생각하니, 고은영은 또 가슴이 두근거려 안지영을 애타게 쳐다보았다.안지영은 고개를 저었다."아니, 지금 그는 너라는 아내가 필요하니 감히 너를 회사에서 쫓아내지 않을 거야."배준우가 왜 그녀와 결혼했겠어, 분명 배씨 가문을 상대해야 하기 위함이다.그러니 그녀를 해고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곁에 머물러 있긴 하겠지만, 절대 그녀가 가까이 다가갈 기회는 주지 않을 것이다.그래서 고은영에겐 이번 일이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두 사람을 이렇게 분석하자 고은영 역시 기분이 많이 좋아졌고, 아까와 같은 두려움은 없었다."하지만 너 앞으로 꼭 조심해야 해. 배 대표가 널 가까이하게 하진 않겠지만, 너 오늘 이 일은 너무 심했어."고은영은 크게 머리를 끄덕였다.“응, 그럴게.”그녀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자 안지영은 오히려 조금도 안심할 수 없었다. 그녀의 이 데면데면한 성격은 타고난 것이기 때문에 또 이런 일이 일어날것만 같았다. .그녀가 고쳐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분명히 불가능하다.점심에 휴게실에 있었던 일 때문에 고은영은 오후에 출근할 생각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김연화와 정유비는 이때 배준우의 눈앞에 끼어들려고 애썼다.물론 그녀들은 다른 마음을 가진 것이 아닌 오직 메인 비서 자리만을 생각하고 있었다.도중에 배준우가 회의실에 가는 길에 고은영의 작업대를 지나갈 때, 고은영은 머리를 낮게 파묻고 책상 밑으로 내려가고 싶은 마음까지 있었다.“똑똑!”남자의 관절이 뚜렷한 손가락 뼈가 나무 작업대 위를 두드렸다.배준우의 뒤를 따르던 김연화와 정유비 두 사람의 얼굴이 굳어졌다.고은영은 놀라움에 심장이 떨려, 덜덜 떨며 고개를 들었
배준우는 말을 듣고 그녀를 쳐다보았다!고은영은 작은 손을 함께 잡고 긴장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배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괜찮네. 너한테 잘 어울려."그녀는 눈대중으로 대략 168센치 정도 되는 큰 키를 가지고 있고, 가냘픈 몸매에 골격미가 있었다.배준우는 일어나서 소파로 향하며 약간 권위적인 말투로 명령했다."이리 와."고은영이 고분고분 걸어가자 배준우는 그녀를 소파에 눌러 앉혔다.남자의 따뜻한 손바닥이 그녀의 어깨에 닿는 순간, 고은영의 마음은 긴장감에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그녀는 배준우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몰라 전혀 말할 엄두가 안 났다.다음 순간, 남자의 길쭉한 손가락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지자 고은영의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휴가 후에 바로 머리를 자르러 갈게요!"이 말을 할 때, 그녀는 가슴이 좀 아팠다.그녀가 이 긴 머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하늘도 알 것이다. 할머니도 여자아이의 머리카락은 목숨으로 기른 것이니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하셨기 때문이다.배준우."왜 잘라?"“저……!"점심에 있은 민망한 장면이 뇌리에 스쳐 지나갔고, 고은영의 작은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점심에 있었던 일.. 전 정말 고의가 아니었어요!"배준우의 손이 멈칫하더니 숨결도 약간 무거워졌다.손에 힘도 이 순간 자신도 모르게 더 세졌다. 고은영이 아픔에 '스읍…….'하고 소리를 냈다.배준우."아파?"한 단어, 여전히 차갑다!고은영.“안 아파요!”그녀는 배준우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보이지 않아, 그의 앞에서 아프다고 말하지 못했다.배준우는 차갑게 웃었다."아프면 말해.""진짜 안 아파요!"그가 화만 안 낸다면, 이 정도의 고통은 그녀에게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배준우는 곧 끝냈다."일어나."고은영이 고분고분 몸을 일으켰다. 다음 순간 배준우에 의해 몸이 돌려졌고 그의 눈 밑에는 약간의 웃음기가 감돌았다.그의 성격이 너무 차가워서 그런지 이 웃음은 선명하지 않았다.배준우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올리
량천옥이 예리하게 얘기했다.정록담이 고개를 끄덕였다.량천옥이 다시 나씨 가문에 돌아오게 된 원인이 본인의 딸일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그리고 그들의 인연이 이렇게 이어지게 될 줄도 몰랐다....그 시각.나태현은 고은지를 사무실로 부른 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묵묵히 담배를 필 뿐이었다.고은지는 차가운 표정으로 사무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얼마 지나 고은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아무 일 없으면 먼저 나가보겠습니다.”말을 마친 고은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나태현은 차갑게 고은지를 보면서 뭐라 말하고 싶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지금 어디서 살지?”고은지가 문고리를 잡은 순간 나태현이 물었다.“이게 우리의 거래에 속하는 내용인가요?”“...”나태현이 이를 꽉 깨물었다. 그 사이에 고은지는 이미 사무실을 나가고 없었다.고은지는 고은영의 집에서 사는 것도 아니고 란완 리조트에서 사는 것도 아니다.고희주를 란완 리조트에서 빼앗긴 후, 고은지는 돌아가지 않았다.고은영이 전화를 걸 때마다 고은지는 집을 구했다고 했다.하지만 어디에 구한 것인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이지훈이 들어왔다.“어디서 사는지 알아봐.”“네? 누구요?”이지훈은 약간 멍해 있었다. 나태현이 알아보라는 게 누구인지 몰랐기 때문이다.하지만 나태현의 눈빛을 보고 바로 알 수 있었다.“알겠습니다. 지금 가서 알아보겠습니다.”역시 고은지에게 다른 마음을 품은 게 확실하다.하지만 이지훈은 나태현이 도대체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오랜 시간 함께 했지만 나태현의 속은 읽을 수가 없었다.고희주는 나태현의 딸이고, 고은지는 고희주의 엄마다.그런데 지금은 지신혜와 약혼을 준비하고 있다.“약혼식, 고은지가 책임지게 해.”“네?”이지훈은 나태현의 말을 듣고 그대로 굳어버렸다.지신혜와 나태현의 약혼식을 고은지가 준비하게 하라고? 아무리 나태현을 오랜 시간 모신 이지훈이라고 해도 그 순간만큼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한
나태현 사무실에서 나온 후, 량천옥은 서류를 들고 오는 고은지와 마주하게 되었다.차갑던 기운은 고은지를 보자마자 누그러졌다.고은지는 량천옥을 보고 약간 의외라고 생각했다.두 사람의 시선은 허공에서 부딪혔다. 그것도 잠시, 고은지가 얼른 시선을 돌렸다.그 모습은 마치 두 사람이 전혀 모르는 사이인 것 같았다.량천옥은 숨이 막힐 듯이 가슴이 아팠다.하지만 지금은 무너질 때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나태현이 고은지를 죽도록 괴롭히겠다고 했지만 량천옥이 마음먹고 막는다면 나태현도 방법이 없다.천락 그룹에서 나와 차에 탄 량천옥은 앞에 있는 정록담에게 얘기했다.“지씨 가문에 똑바로 전해. 고은지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모두 지씨 가문의 탓으로 돌리겠다고.”지씨 가문에서는 이미 고은지의 신분을 알고 있었다.그러니 지신혜와 나태현의 약혼을 위해 고은지를 처리하려 들지도 모른다.정록담이 고개를 끄덕였다.“네.”량천옥이 이어서 얘기했다.“아이의 일도 어서 빨리 알아봐.”량천옥은 고은지가 계속해서 나태현의 곁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무리 량천옥이 타일러도 나태현을 떠나지 않는 건, 아마도 고희주 때문일 것이다.량천옥은 고은지가 망가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그래서 무조건 아이를 찾아서 고은지에게 평온한 일상을 되돌려 주어야 한다.고은지가 상류층의 더러운 싸움에 엮이지 않았으면 했다.정록담은 량천옥의 뜻을 잘 알았다.“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사람을 풀었습니다. 빠르게 알 수 있을 겁니다.”거기까지 들은 량천옥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빠르게 변하는 창밖의 모습을 보면서 량천옥이 눈을 감았다.“나씨 가문에 가봐야 할 것 같아.”“거, 거기에 가서 뭘 하시려고요?”량천옥이 나씨 가문에 가겠다는 말을 들은 정록담은 약간 놀았다.량천옥이 나씨 가문에서 겪은 일은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량천옥도 불쌍한 사람이었다. 이런 어머니를 만난 것은 량천옥의 최대 불행이었다.얼마나 지났을까.량천옥이 상류층에서 힘들게 움직일 때도 그곳으
자격?자격이라면 나태현과 량천옥 다 비슷했다.량천옥은 나태현 앞에서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이번에는 우울증이라는 단어가 나태현의 신경을 긁었다. 나태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백지장이 되었다.“그 아이를 상처입힌 걸 생각하면 우리 둘 다 비슷해.”고희주가 왜 아파트에서 자살하려고 했는가. 우울증에 걸려서 그런 것이다.그런 힘든 환경이, 고희주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나태현은 질식할 듯한 시선으로 량천옥을 바라보았다. 량천옥은 약간 부드러워진 말투로 말했다.“복수하고 싶으면 나한테 해. 고은지는 건드리지 마. 아이와 은지를 만나게 해줘.”그 말투는 부탁하는 말투였다. 하지만 그 속에는 감출 수 없는 결연함이 있었다.마치 이게 마지막 양보이자 마지막 기회인 듯 말이다.나태현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량천옥이 말을 이었다.“무슨 대가를 원하는지 말만 해. 다 들어줄 테니까.”량천옥은 상응한 대가를 치르고 고은지가 남은 생을 편히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나태현도 량천옥이 대가를 치르기를 바라지 않는가.만약 량천옥이 대가를 치르지 않기를 바란다면, 강성의 사람들이 힘을 합쳐도 량천옥을 무너뜨릴 수 없을 것이다.그러니 이건 량천옥의 결정에 걸린 일이다.나태현이 손에 쥐고 있는 건 량천옥을 증오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기회이다.그러니 량천옥은 그 기회를 나태현에게 주려고 하는 것이었다.하지만 그런 기회 앞에서 나태현은 아무렇지 않아 했다.“대가를 치러서 이 모든 것을 끝내려고 하다니,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거 아닌가요?”나태현이 차갑게 웃으면서 말했다.“...”나태현이 일어나서 량천옥을 바라보면서 경멸의 눈빛을 보냈다.“이제야 얼마나 두려운가 봐요? 아무것도 하지 못해서? 당신이 그녀를 괴롭혔을 때, 그녀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어요!”량천옥은 그 말을 듣고 차가운 눈빛으로 물었다.“그래서,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으면 좋겠어?”나태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걸 뿐이었다.
량천옥은 원래 고은지가 나태현을 떠나 행복하게 살았으면 했다.고은지가 무슨 대가를 원하든지 다 내어줄 생각이었다.하지만 량천옥은 그럴 수가 없었다.나태현은 지신혜와 약혼했다. 그리고 량천옥에게 복수한 후 고은지를 함정에 빠뜨릴 것이다.그것이 나씨 가문의 복수 방식이다.고은지가 나태현의 지옥 같은 복수에 동참하게 된 것이 아이 때문이라면...량천옥은 두 눈을 감고 차갑게 얘기했다.“그 아이를 찾아내.”“네!”정록담이 대답했다.무조건 찾아야 한다.원래는 나태현의 딸이니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찾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아이는 고은지의 약점과도 같았다.“그리고 지씨 가문 사람들도 지켜봐.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니까.”지씨 가문을 언급하는 량천옥의 말투는 아주 차가웠다.장씨 가문과 나씨 가문은 강성에서 라이벌 관계로 유명했다.그리고 앞뒤가 다르기로 유명한 가문은 바로 지씨 가문과 진씨 가문이었다. 그런데 나씨 가문이 지씨 가문과 결혼을 할 줄은 몰랐다.지씨 가문에서 고은지와 나태현의 관계를 안다면 고은지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정록담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그 순간 량천옥은 고은지를 전면적으로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은지가 나태현의 곁에 있는 것도 고희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다른 것에 대해서는 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한 시간 후.량천옥은 천락 그룹에 도착했다.원래 어제 나태현을 만나기로 했지만 고은지를 먼저 만나고 싶어서 나태현을 만나지 않았다.고은지가 나태현의 곁에 있는 원인이 궁금했다.하지만 고은지는 량천옥이 모든 대가를 내놓아도 나태현과의 거래를 취소하지 않으려 한다.나태현을 찾으러 가는 량천옥은 고은지 앞에서의 량천옥과 사뭇 달랐다.량천옥의 삶은 이미 피폐하지만 량천옥에게서는 차갑고 올곧은 힘이 느껴졌다.나태현 앞에 걸어온 량천옥이 차갑게 물었다.“아이, 어디에 보낸 거야.”물론 정록담을 시켜 알아보게 했지만 나태현에게 슬쩍 물어보는 것이었다.나태현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량천
량천옥은 그 냉랭함 앞에서 숨도 쉬지 못했다.“앞으로 날 찾아오지 마요. 난 당신을 보고 싶지 않아요. 우리 관계도 인정하고 싶지 않고요.”“...”공기는 순식간에 차가워졌다.수년간 찾아 헤맨 아이한테서 이런 말을 들으니, 가슴이 아프지 않을 수가 없었다.량천옥은 그동안 자기 딸을 찾은 순간을 떠올렸다.그 세월을 어떻게 되돌려줄지, 어떻게 사랑을 줄지 말이다.하지만 그 딸이 본인 곁에 있을 줄은, 게다가 본인이 이미 그 딸을 상처입혔을 줄은 전혀 몰랐다.량천옥은 자기 딸을 죽일 뻔했고, 자기 손녀의 목숨도 앗아갈 뻔했다.“날 만나고 싶지 않아 하는 건 당연한 일이야. 나 때문에 너를 상처입히지 마.”“당신 때문에 나를 상처 입힌다고요? 당신 때문에?”고은지의 말투가 차가워졌다.량천옥을 비웃는 듯한 말투가 섞였다.그 말에 량천옥은 죄책감보다 더한 고통을 느꼈다.정말 너무 아팠다.“명심해요. 앞으로 절대 내 앞에 나타나지 않겠다고.”고은지는 일어서서 떠나려고 했다.량천옥과 더는 말을 섞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량천옥은 떠나려는 고은지를 보고 마음이 급해졌다.고은지가 량천옥의 곁을 지나갈 때, 량천옥은 고은지의 손목을 잡고 말했다.“내가 미안해. 그렇게 할게. 그러면 나태현과의 거래를 그만둬.”“...”“나 때문이 아니라면 그만둬!”량천옥은 이 거래가 고은지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잘 알고 있었다.량천옥과 나씨 가문의 원한은 결국 나태현이 알아냈다.나태현은 량천옥을 쉽게 놔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고은지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고은지는 나태현의 아이를 낳은 사람이니까 말이다.나씨 가문 사람이 얼마나 매정한 사람인지 량천옥은 잘 알았다.량천옥의 요구에 고은지는 차가운 표정으로 량천옥의 손을 뿌리쳤다.“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그런 말을 해요?”“난 그럴 자격이 없지만 아이를 위해 생각해 봐. 나태현은 희주가 네 딸인 걸 알면서도 이 거래를 진행했어. 얼마나 무서운 놈이야!”량천옥은 무서운 것도 없었고 두려워하
고은영의 의아해하는 모습을 본 안지영이 이어서 얘기했다.“네 언니는 부드러워 보이지만 그 부드러움은 너에게만 주는 거야. 조영수와 이혼한 걸 보면 알 수 있어. 네 언니는 참기만 하는 성격이 아니라는 걸.”“...”고은영은 숨 쉬는 것이 점점 힘들어졌다.조영수와의 이혼은 고은지가 먼저 말을 꺼낸 것이다.홀로 희주를 키우는 것이 힘든 것을 알았어도 그런 힘듦을 고려할 처지가 아니었다.고은영은 고은지가 걱정되었다.안지영과 대화를 나눈 후에는 더욱 불안해졌다.나씨 가문의 사람도 장씨 가문의 사람처럼 깨끗하지 못했다. 만약 나태현에게 복수하려는 것이면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다.“은영아?”고은영의 얼굴이 점점 파리해지는 것을 본 안지영이 손을 뻗어 고은영의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고은영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안지영을 멍하니 쳐다보았다.“무슨 생각해?”“나씨 가문의 사람들... 너무 괘씸해.”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점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바였다.나태웅도 한결같이 미친 짓을 벌이고 있으니, 그 가문 사람들은 괘씸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나태현은 괜찮은 사람 같아보아였거든. 그런데 왜 네 언니랑 이런 거래를 하게 된 건지 모르겠네.”안지영은 나태현에 대해서 잘 몰랐다.강성의 모든 사람이 나태현이 지신혜와 약혼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시점에 고은지를 자기 곁에 두다니.고은지가 복수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아니면 나태현도 고은지가 연약한 사람이라, 복수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걸까?만약 그렇다면 나태현이 자만한 것이다. 혹은, 량천옥에 대한 원한이 너무 깊다고 생각할 수 있다.“글쎄. 모르겠어. 어쨌든 량천옥과 연관 있는 일이야.”고은영이 얘기했다.안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됐어, 이번 일에는 신경 쓰지 마. 어차피 네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확실히, 이건 고은영이 끼어들 수 있는 일이 아니다.두 사람의 이익 관계에 대해서도 대충 알고 있었다.다만 고은지가 나태현을 향한 증오가 어느
희주가 그렇게 된 건 량천옥 때문이니까 말이다.안지영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어휴, 이게 도대체 다 무슨 일이람.”정말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순간이었다.“나태현이란 량천옥 씨는 또 무슨 원한이 있길래.”“...”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고은영이 대답하기도 전에 안지영이 얘기했다.“하지만 량천옥 씨가 너무 겁 없이 살아와서 적을 많이 만들었어. 나씨 가문과 원한이 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어떤 원한인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나태현과 고은지가 손을 잡을 정도니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닌 것 같았다.“이 일에는 신경 쓰지 마. 량천옥 씨가 복수를 당한다고 해도 그건 인과응보니까.”깊이 생각하던 안지영이 대답했다.안지영은 량천옥에게 호감이 전혀 없었다.전에 고은영을 죽이려고 달려들지 않았던가. 그래서 안지영은 영원히 량천옥을 용서할 수 없었다.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응! 인과응보야!”전에 량천옥이 고은영에게 잘해줄 때, 고은영은 그 원한을 다 잊으려고 했다.하지만 후에 일어난 일 때문에 고은영은 량천옥을 용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그래도 네 언니를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네 언니가 미워하는 건 량천옥뿐만이 아닐 것 같거든.”“...”그 말을 들은 고은영은 의문스러운 시선으로 안지영을 쳐다보았다.고은영의 세상에는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래서 놓치고 있는 일들이 있었다.하지만 안지영은 방관자로서 더 냉정하게 사건을 볼 수 있었다.“아마 나태현도 미울 거야. 나태현은 거의 폭탄을 곁에 둔 거랑 다름없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말이야.”“우리 언니는 부드러운 사람이라서 위협이 되지 않을 거야.”“순진하기는.”“...”순진하다는 말을 또 들은 고은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안지영이 이어서 얘기했다.“네 언니가 조영수와 이혼하고 희주가 폭력을 당한 건 다 나태현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걸 잊지 마. 그러니 나태현을 죽도록 미워하고 있을 거야.”“...”“원래 부드러운 사람이 화가 나
하지만 고은영은 그 차가움이 싫지 않았다.고은영은 심호흡을 하고 대답했다.“가지 않을 거야.”“은영아, 난 네가 잘 살았으면 좋겠어. 내 주변에서 행복할 수 있는 건 이제 너밖에 없어.”고은지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얘기했다.그 말을 들은 고은영은 금세 두 눈을 붉혔다.“걱정하지 않아도 돼. 사실 나...”“나 바빠서 이제는 끊어야 할 것 같아.”고은영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아는 고은지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고은영은 이미 끊긴 전화를 보면서 마음이 아파졌다.그리고 고은지가 전에 한 말을 떠올렸다.고은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은영과 고희주라고 말이다.이제 희주의 아빠도 찾게 되었고 고은지의 친모도 찾게 되었지만 고은지는 여전히 고은영과 고희주만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래서 나태현의 일에 고은영이 휘말리지 않기를 바랐다.고은지의 일 때문에 행복한 고은영의 삶에 영향을 끼칠까 바였다.나태웅의 함정은 아주 깊어서 바닥이 안 보일 정도였다. 고은지는 그런 함정에 고은영과 함께 빠지고 싶지 않았다.전화에서 들려오는 기계음 소리를 들으며 고은영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안지영을 바라보면서 대답했다.“우리 언니야.”“들었어. 그렇게 마음 약한 언니도 반대하는 일이야. 그러니 진씨 가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 것 같아?”안지영에게 있어서 고은지는 마음 약한 사슴과도 같은 사람이었다.그런 고은지도 진씨 가문을 극도로 싫어하니 할 말 다 한 것이다.고은지가 마음 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떠올린 고은영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지금의 고은지는 예전의 고은지와 다르다고 얘기하고 싶었다.안지영은 고은영을 보면서 물었다.“웬 한숨이야?”고은영은 고개를 저었다.“아무 일도 아니야. 그저 짜증도 나고, 우리 언니도 걱정되니까...”진씨 가문의 일은 고은영에게 있어서 중요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걱정되는 건 고은지였다.고은영이 고은지에 대해서 얘기하자 안지영은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고 얘기했다.“천락 그룹으로 간 이유가 나태현이
정말 고은영을 지켜줄 사람 하나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을까.”“내가 마음이 약하다고 해도 그건 상대를 봐가면서 하는 거야. 예를 들면 네 앞에서 마음 약해지는 거지.”“...”화가 잔뜩 나 있던 안지영은 고은영의 말을 듣고 갑자기 화가 사르르 풀렸다.“쳇, 그래도 양심은 있네.”“걱정하지 마. 진씨 가문의 일에는 양보하지 않을 거니까.”’“그러면 약속해. 진윤과 진정훈이 너를 설득해도 넘어가지 않겠다고.”안지영은 진윤과 진정훈이 고은영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지금은 짜증 나는 김영희와 진유경이 나타나서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만약 진윤과 진정훈이 와서 고은영을 설득한다면?신장 수술은 간단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었다. 적합성 검사에 통과된 후에 수술을 거부한다면 수많은 비판을 받게 될 것이다.그러니 결론은 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 누가 얘기해도 소용없으니까.”“음, 그래. 이제야 마음에 드네. 만약 거절하기 힘들면 나한테 말해.”안지영은 그렇게 으름장을 놓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 고은영이 정말 신장을 내어줄까 봐 계속 걱정되었으니까 말이다.안지영은 진씨 가문 사람들이 어떤 족속인지 잘 알고 있었다.“너한테 뭐라고 하는 건 아닌데, 그래도 진씨 가문과는 많이 엮이지 마. 거기는 심보가 고약한 사람들이 가득하니까.”“...”“전에는 량천옥과 짜고 들면서 진유경과 배준우를 결혼시키려고 했잖아. 아마 진유경의 뜻을 이뤄주지 못해서 화가 잔뜩 나 있을걸?”“...”안지영은 진씨 가문에 대한 호감이 하나도 없었다. 고은영도 마찬가지였다.고개를 끄덕인 고은영이 대답했다.“응, 알았어!”“내가 잔소리하는 거 같아 보여도 들어! 넌 너무 순진해서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면 그걸 철석같이 믿잖아.”안지영은 고은영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배준우의 일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하지만 지금 배준우는 고은영의 남편이니 고은영을 잘 지켜줄 수 있을 것이다.그래도 안지영은 마음이